1 복제 속도만으로 고르면 무엇이 지워질까
1967년,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스피겔만과 두 동료가 작은 실험 하나를 했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도 인용된다. 그들이 한 일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RNA 한 가닥이 시험관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게 하되, 오직 빠른 것만 골라 남겼다. 논문 제목의 첫머리도 ‘세포 밖에서 하는 다윈식 실험’이었다.
구체적인 방법은 이랬다. 대장균을 전문으로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에서 복제효소를 가져온다. RNA 한 가닥을 본떠 새 RNA를 만드는 일을 맡는 단백질이다. 이것을 재료, 그리고 소량의 온전한 바이러스 RNA와 함께 시험관에 넣는다. 한 차례 복제하게 한다. 그런 다음 그 시험관에서 조금을 덜어 새 재료가 든 시험관으로 옮기고, 다시 복제하게 하고, 다시 옮긴다.
복제에 허용하는 시간은 몇 차례마다 줄였다. 한 번에 20분이던 것이 나중에는 5분이 됐다. 따라서 보상받는 것은 딱 하나였다. 정해진 시간 안에 더 빨리 복제하는 것. 여기에는 세포도 숙주도, 감염시켜야 할 대상도 없었다. 온 세상에 복제효소와 재료와 시간만 남아 있었다.
이 실험 조건 자체가 하나의 체였다. 한 가지만 재니, 그 한 가지와 관련된 것만 남겼다. 처음에 넣은 바이러스 RNA는 염기가 4,200개 넘게 이어진 가닥이었다.
계속 옮겨가며 복제시키자 가닥은 점점 짧아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제효소는 매번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야 한다. 가닥이 짧을수록 한 번 베끼는 일이 빨리 끝나고, 그만큼 다음 복제를 일찍 시작할 수 있다.
74번째로 옮겼을 때 남은 RNA의 길이는 처음의 약 6분의 1이었다. 이후 이런 실험에서 골라진 짧은 변이체들은 염기가 겨우 200개 남짓이었다. 나중에는 다른 실험실에서 50여 개밖에 남지 않은 것도 얻었다.
4,200개가 넘던 것이 200개 남짓으로. 이 산물에는 ‘스피겔만의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워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쓰레기가 아니었다.
세포 안에서 살아가는 바이러스에게 그 서열들은 숙주를 알아보고, 껍질을 조립하고, 감염을 마치는 기능을 암호화한다. 하나같이 살아남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이다. 다만 복제 속도만 재는 시험관 안에서는 그 기능들이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 보탬이 되기는커녕 시간만 잡아먹었다.
이 실험이 보여준 것은 범위가 좁지만 단단하다. 선택은 선택 기준이 정한 바로 그 일만 최적화한다. 그 기준에 보탬이 되지 않으면서 비용까지 드는 것은 무엇이든 지워진다.
누가 결승선에 먼저 닿는지만 겨루는 장거리 달리기와 조금 닮았다. 짐을 메고 뛰는 사람은 언젠가 짐을 버리게 된다. 결승선을 지난 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이 그 안에 들어 있더라도.
기준을 바꾸면 남는 것들도 달라진다. 1974년, 같은 실험실에서 복제를 방해하는 염료를 시험관에 넣었다. 몇 차례 옮겨가며 복제시키고 나자 그 염료를 견디는 돌연변이 RNA가 이겼다.
다르게 말해보자. 선택 기준 자체가 하나의 구축된 틀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이처럼 경계와 항목이 있고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것을 ‘구축’이라 부른다. 그 틀은 자신이 보상하는 것을 남긴다. 그 밖에 있는 것은 다른 곳에서 아무리 필수적이어도 지워진다.
자연에서도 이것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환경이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엇이 성공인가’를 정한다. 그것을 써놓은 사람이 없을 뿐이다.
시험관에서는 실험자가 기준을 정한다. 탁 트인 물속에서는 누가 정할까. 누구도 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삭제는 일어난다.
시험관에서 한 가지 더 똑똑히 보아야 한다. 모든 분자가 같은 시험관의 물에 잠겨 모든 것을 공유한다. 선택의 눈에는 복제의 빠르기만 보인다. 이번 글에서 다룰 막 한 겹이 바꾸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2 이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완전히 뒤섞인 물속에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분자들이 잔뜩 떠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런 것들을 복제자라고 한다. 자신을 본떠 사본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복제자다. 그중 한 가닥에 돌연변이가 생겨, 자유롭게 퍼져나갈 수 있는 촉매 능력을 만들어냈다고 해보자. 어떤 반응을 조금 더 빨리 일어나게 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만드는 비용은 그 분자가 치렀다. 그렇다면 이득은? 이득은 사방으로 퍼져 그 물속의 모든 복제자가 누린다. 한 건물에서 어느 집이 자기 돈을 들여 엘리베이터를 고쳤는데 온 건물 사람들이 다 타는 것과 같다. 고친 집이라고 더 얻는 것은 없다. 그러면 ‘누가 개선했는가’와 ‘누가 자손을 더 많이 남기는가’ 사이의 연결은 약해지다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분자들을 나누어 가두는 가장 중요한 효과는 보호가 아니다. 어떤 개선이 낳은 이득을 그 개선을 만들어낸 쪽에 다시 묶어주는 것이다.
다른 문제도 보자. 복제할 때 오류가 생긴다는 사실에는 넘을 수 없는 상한이 따라붙는다.
1971년, 독일의 화학자 만프레트 아이겐은 복제 오류와 유지할 수 있는 정보량 사이의 임계 관계를 제시했다. 그는 그보다 4년 전, 극히 빠른 화학 반응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관계의 논리는 복잡하지 않다. 책을 베끼는 일로 설명할 수 있다.
책 한 권을 베낀다고 해보자. 글자 하나를 틀리게 옮길 확률이 1퍼센트다. 열 글자를 베끼면 모두 맞을 가능성이 크다. 천 글자를 베끼면 거의 틀림없이 오류가 생긴다. 글자가 많아질수록 한 편 전체에 오류가 없을 확률은 더 빠르게 떨어진다.
이제 조건 하나를 더하자. 정확히 베낀 책이 더 인기가 좋아서, 그 책을 다시 베끼려고들 한다. 틀리게 베낀 책들도 유통은 된다. 인기가 덜할 뿐이다.
책이 너무 길어 온전히 맞는 사본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면, ‘정확한 판본’은 더 이상 인기에 힘입어 어느 한 책에 모여 유지될 수 없다. 정보가 흩어진다.
예시로 숫자를 넣어보자. 정확한 판본이 열 배의 우위를 지니고, 한 자리에서 오류가 날 확률이 1퍼센트라면 상한은 약 230자리다. 오류율이 0.1퍼센트로 낮아지면 상한은 약 2,300자리가 된다.
이것은 모형으로 계산한 대략적인 규모다. 오늘날 세포가 DNA를 복제할 때는 효소와 여러 겹의 교정 덕분에 대략 10억 글자를 베껴야 오류 하나가 난다. 그래서 수십억 글자 길이의 유전체를 지킬 수 있다.
오늘날의 RNA 바이러스는 이 상한을 살아서 보여주는 사례다. 복제 오류가 많아서 대부분의 유전체는 수천에서 1만여 글자에 불과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체는 약 3만 글자로, RNA 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긴 축에 든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교정 효소를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효소의 도움 없는 복제가 유지할 수 있는 서열의 길이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정확도를 높여줄 효소를 만들려면 더 긴 서열이 필요하다. 이것이 유명한 아이겐의 역설이다.
아이겐은 1971년 논문에서 이미 하나의 돌파구를 제안했고, 1977년 무렵에는 슈스터와 함께 일련의 논문으로 체계화했다. 그들은 이것을 하이퍼사이클, 곧 초순환이라고 불렀다.
발상은 이렇다. 긴 가닥 하나에 모든 정보를 혼자 보존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짧은 가닥 여럿이 서로 돕게 한다. 갑의 산물이 을의 복제를 돕고, 을은 병을 돕고, 마지막 것이 다시 갑을 돕는다. 이렇게 닫힌 고리를 만든다. 그러면 각각의 가닥은 길지 않으면서도 전체가 지니는 정보량은 클 수 있다.
약점은 일찌감치 지적됐다. 어느 가닥이 변이한 뒤에도 앞 고리의 도움은 계속 받으면서 다음 고리는 돕지 않는다면? 복제 자원은 공짜로 차지하고, 수고까지 덜었으니 더 빨리 복제한다. 고루 뒤섞인 수프 한 냄비 안에서는 이런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구성원이 고리 전체를 먹어치울 수 있다.
1979년, 존 메이너드 스미스는 이 구상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듬해 다른 연구자 세 명이 낸 논문의 제목에는 세 단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초순환, 기생자, 포장. 세 번째 단어가 돌파구였다.
1987년, 두 연구자가 훗날 확률적 교정 모형이라 불리게 된 틀을 세웠다. 서로의 기능을 보완하는 여러 가닥을 수많은 작은 구획에 나눠 담는다. 가닥은 구획 안에서 복제하고, 구획은 일정 크기까지 자라면 분열한다. 그 안의 가닥들은 무작위로 두 딸구획에 나뉘어 들어간다.
묘미는 여기에 있다. 무작위 분배가 구획들 사이의 차이를 계속 만들어내고, 구획 차원의 성패가 다시 그 차이를 가려낸다. 어떤 구획은 우연히 비교적 균형 잡힌 조합을 받아 전체로서 더 빨리 증식한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구성원이 심하게 들어찬 구획은 전체 성능이 떨어져 후손 구획을 더 적게 남긴다.
큰 학급 하나를 여러 모둠으로 나눠 과제를 시키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큰 학급에서는 게으른 사람이 사람들 틈에 섞여 똑같이 점수를 받는다. 모둠으로 나누면 게으른 사람이 우연히 많이 모인 모둠은 과제를 못 내고, 그런 사람이 적은 모둠은 잘 해낸다. 게으름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그 결과가 게으른 사람이 속한 모둠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이렇게 두 층위에서 서로 잡아당기는 선택이 나타난다. 분자 차원의 선택은 빨리 복제하는 것들을 편든다. 구획 차원의 선택은 반대 방향으로,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것들을 편든다. 높은 층위의 선택이 낮은 층위의 선택을 제약한다. 이 모습은 이 시리즈 뒤에서도 거듭 만나게 된다.
낮은 층위의 단위들이 저마다 복제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함께 번식하는 더 높은 층위의 단위 안에 담겨 있을 때, 두 층위의 선택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높은 층위가 낮은 층위를 억누를 수 있는지는 한 가지에 달렸다. 높은 층위의 성패가 그 내부 구성과 실제로 연결되어 있는가.
2016년의 한 실험은 이 작동 원리를 뒷받침했다. 연구자들은 RNA 복제계를 작은 액적으로 주기적으로 나눴다가 다시 섞었다. 계속 균일하게 유지한 계에서는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RNA가 복제 자원을 장악할 수 있었다. 반면 주기적인 구획화가 집단 사이에 차이를 만들자, 부담이 적은 액적이 더 많은 몫을 보탰고 전체 계는 먹혀 무너지지 않았다.
이것은 오늘날 실험실에서의 시연이지, 초기 지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의 기록이 아니다. 이 원리가 성립하는 데도 조건이 있다. 구획이 자라는 속도가 그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와 실제로 연결되어야 한다. 구획들이 너무 빨리 융합하면 서로의 차이가 지워진다.
그리고 막만이 유일한 방법도 아니다. 광물 표면에 붙어 있는 분자, 멀리 확산하지 못하는 분자는 막 없이도 이득을 곁에 붙잡아둘 수 있다. 선택에 정말 필요한 것은 이득과 그것을 만들어낸 쪽이 서로 가까이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들은 7절에서 살펴보겠다.
3 10의 13제곱이라는 격차
먼저 막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보자. 막을 이루는 분자에는 특징이 하나 있다. 한쪽 끝은 물을 좋아하고 다른 쪽 끝은 물을 꺼린다. 이런 분자를 양친매성 분자라고 한다. 일상에서 가장 익숙한 예는 비누다. 한쪽은 기름을 붙잡고 다른 쪽은 물에 녹아들 수 있어서 기름때를 씻어낸다.
이런 분자를 한 무더기 물에 넣으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물을 꺼리는 끝이 물에 노출되는 것은 에너지 면에서 손해다. 그래서 분자들은 스스로 모여든다. 물을 꺼리는 끝끼리 붙어 안쪽에 숨고, 물을 좋아하는 끝은 밖을 향한다.
농도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두 겹으로 늘어설 수 있다. 두 줄의 분자들이 꼬리를 맞대고, 물을 좋아하는 머리는 각각 안쪽과 바깥쪽의 물을 향한다. 그런데 이 이중층의 가장자리가 물에 드러나 있어도 에너지가 높다. 그래서 저절로 말려 양끝이 맞붙고, 닫힌 작은 주머니, 곧 소포가 된다.
비눗방울도 비누 분자 두 겹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사이에 물 한 겹이 끼어 있고 꼬리는 바깥 공기로 뻗는다. 세포막은 정확히 반대다. 분자 두 겹이 기름 한 겹을 끼고 있다. 이런 막은 두께가 겨우 5나노미터 안팎이다. 2만 겹을 포개야 종이 한 장 두께가 된다.
이 과정에는 단백질 촉매가 전혀 필요 없다. 저절로 일어난다. 1985년, 누군가 1969년 호주에 떨어진 머치슨 운석에서 유기분자들을 추출해 물에 넣었다. 그것들도 저절로 작은 주머니를 만들었다. 막의 재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 속에도 있다.
거들어주는 것도 있다. 2003년에는 아주 흔한 점토 한 종류가 지방산 소포의 형성을 훨씬 빠르게 하고, 점토 입자도 소포 안에 함께 들어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보다 앞서서는 이 점토의 표면이 RNA의 단위들을 하나씩 이어 수십 단위 길이의 사슬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점토 한 알이 두 가지 일을 모두 거든 셈이다.
하지만 자가 조립이 가능한 조건에는 범위가 있고, 그 범위는 생각보다 좁다. 분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려면 물속 농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그 값은 상수도 아니다. 온도와 염 농도, 산성도에 따라 바뀌고, 분자가 달라지면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오늘날 세포막에 쓰이는 인지질은 분자 하나에 물을 꺼리는 꼬리가 두 개 달려 있다. 가장 단순한 지방산에는 하나뿐이다. 올리브유 속 올레산이 그런 지방산이다.
화학에서는 농도를 흔히 리터당 몰로 나타낸다. 소금에 빗대면, 물 1리터에 소금 60그램 가까이를 녹인 것이 리터당 1몰이다. 바닷물의 농도는 대략 그 절반이다.
꼬리가 두 개인 인지질은 물을 피하려는 작용이 강해서, 이 값이 보통 리터당 100만분의 1몰보다도 낮다. 구조가 더 단순하고 꼬리가 하나인 지방산은 리터당 0.001몰, 심지어 100분의 몇 몰까지 높아질 수 있다. 자릿수가 몇 개나 차이 난다.
여기에는 아주 현실적인 뜻이 있다. 단순한 지방산 막과 현대의 막은 ‘물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분자가 얼마나 많은가’, ‘막들 사이에서 물질 교환이 얼마나 빠른가’라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
게다가 단순한 지방산은 산성도도 가린다. 올레산을 보자. pH가 대략 8에서 9 사이인 아주 좁은 범위에서만 안정적인 소포를 만든다. 산성 쪽으로 가면 기름방울로 뭉치고, 알칼리성 쪽으로 가면 더 작은 덩어리로 흩어지려 한다.
다음은 투과성이다. 막은 안과 밖을 나눈다. 그런데 나누는 방식은 통과 순위의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큰 표와 같다. 산소 같은 분자는 막의 소수성 부위를 아주 쉽게 통과한다. 투과 속도는 초당 100여 센티미터 규모까지 높아질 수 있다. 물은 대략 초당 100분의 1센티미터 규모다.
글리세롤은 작고 전하도 없지만 물과 친해서, 초당 약 100만분의 5센티미터로 떨어진다. 칼륨 이온은 초당 1조분의 1센티미터까지 낮아질 수 있다.
가장 빠른 산소와 가장 느린 칼륨 이온 사이에는 대략 10의 13제곱에서 14제곱에 이르는 격차가 있다. 뒤의 것이 앞의 것보다 10조 배 이상 느리다는 뜻이다.
10의 13제곱 차이라니, 얼마나 큰 것일까. 대략 ‘1초’와 ‘30만 년’ 사이의 차이에 해당한다. 같은 막이 어떤 분자에게는 거의 활짝 열려 있고, 다른 분자에게는 거의 완전히 닫혀 있다.
이 수치들은 서로 다른 막과 온도, 측정 방법에서 나온 값이므로 한 벌의 정밀한 매개변수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하지만 그 규모 자체가 아주 일관되게 말해주는 것은 있다. 이것은 벽이 아니라, 통과 순위에 따라 성능이 가파르게 달라지는 체다. 그리고 그 체의 모양이 세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한다.
칼륨 이온을 막을 수 있으므로 세포는 안과 밖의 이온 조성을 다르게 유지할 수 있다. 당신 몸의 세포 안에는 칼륨이 바깥보다 30배 안팎 많고, 나트륨은 바깥의 약 10분의 1이다. 물은 막지 못하므로 삼투압은 따로 처리해야 한다.
산소는 막지 못하므로 산소의 독성은 문을 닫아 피할 수 없다. 반대로, 당신 폐의 산소가 혈액으로 들어가는 것도 바로 이렇게 막을 직접 통과해서다. 문이 따로 필요 없다.
이 표에는 예외적인 항목이 하나 있다. 양성자, 곧 수소 원자가 전자를 잃고 남은 원자핵이다. 보통의 전하 하나짜리 이온으로 어림하면 칼륨 이온과 비슷한 범위에 있어야 한다.
실제로는 초당 1만분의 1에서 100분의 1센티미터 규모다. 칼륨 이온보다 훨씬 쉽게 샌다. 같은 막에서 비교하면 1,000만 배에서 1억 배나 높다. 왜 그렇게 잘 새는지를 두고는 설명이 갈린다.
한 설명은 이렇다. 막 안에서 이따금 물 분자들이 한 줄로 늘어서면, 양성자는 직접 비집고 지나갈 필요 없이 그 물 사슬을 따라 차례차례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기억해두자. 5절에서 쓰인다.
선택성이 생기자 곧바로 수송 문제가 생긴다. 어떤 것은 막이 막지 못하고, 어떤 것은 너무 철저하게 막는다. 그런데 세포에 필요한 재료 가운데에는 하필 뒤쪽에 속하는 것이 많다.
현대의 세포는 세 종류의 장치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통로는 물과 친한 길을 끊김 없이 만들어준다. 물질이 농도 차이를 따라 지나가며, 통로 자체는 보통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운반체는 목표 물질과 결합한 뒤 모양을 바꿔 반대편으로 건넨다. 펌프는 에너지를 직접 써서 물질을 농도 차이에 거슬러 옮긴다.
하지만 최초의 막에는 이런 장치가 꼭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2008년의 한 실험에서는 지방산 같은 단순한 분자로 만든 막을 썼다. 바깥에 재료 분자를 넣자 작은 분자들은 안으로 들어가고 긴 핵산 가닥은 안에 남았다. 바깥의 재료는 들어오되 안의 주형은 빠져나가지 않으니, 주형을 따라 새 가닥을 이어 늘리는 반응이 소포 안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그때 이어 붙인 것은 아직 RNA가 아니었다. 이런 소포 안에서 RNA 주형을 따라 RNA를 조립하는 데 처음 성공한 것은 2013년이다.
전 과정에 수송 단백질은 하나도 없었다. 동시에 이 실험들은 맞바꾸어야 하는 것이 있음을 드러냈다. 막이 성길수록 영양분은 수송 단백질 없이도 들어오지만, 내부의 작은 분자와 이온도 더 쉽게 샌다. 막이 촘촘할수록 붙잡아두는 힘은 커지지만, 전하를 띤 재료를 얻으려면 전용 장치에 더 의존해야 한다.
여기에는 ‘막이 안정적일수록 좋다’는 일방향의 법칙이 없다. 사슬이 길수록 물을 꺼리는 쪽의 작용이 강해져 막은 안정되지만, 분자가 드나들며 교환되는 속도는 낮아진다. 사슬이 짧으면 그 반대다.
마그네슘이나 칼슘처럼 전하가 두 개인 금속 이온은 특히 골치 아프다. 이들은 이런 분자의 머리 부분에 결합해 막을 흩어지게 한다. 순수한 올레산 소포는 리터당 몇 밀리몰의 마그네슘 이온만 있어도 파괴된다. 그런데 마그네슘은 바로 수많은 RNA 촉매 반응에 필요한 이온이다.
4 경계는 희석을 막고 동시에 압력을 만든다
막 한 겹이 어떤 분자들을 같은 작은 공간 안에 붙잡아두었다. 희석 문제는 줄었다. 대신 역학 문제가 찾아왔다. 먼저 삼투부터 보자.
벽에 아주 미세한 구멍이 난 주머니가 있다고 하자. 물 분자는 통과하지만 설탕 분자는 통과하지 못하는 구멍이다. 주머니에 설탕물을 담아 맹물에 담근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물이 주머니 안으로 들어간다. 주머니가 부풀고, 부풀면서 생긴 압력이 물의 유입을 막을 때까지 계속된다. 이 압력을 삼투압이라고 한다. 건포도를 맹물에 담그면 서서히 부푸는 것도 같은 이치다.
삼투압의 크기는 한 가지에만 달렸다. 안쪽에 ‘통과하지 못하는 입자’가 바깥보다 얼마나 더 많은가. 입자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개수다. 이제 주머니를 세포막으로, 설탕을 RNA와 단백질, 그 밖의 거대분자로 바꿔보자.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사람의 적혈구에는 세포벽이 없어서 맹물에 넣으면 금세 부풀어 터진다. 병원에서 수액을 놓을 때 맹물이 아니라 생리식염수를 쓰는 이유다.
묽은 용액의 삼투압은 간단한 관계식으로 어림할 수 있다. 실온 부근에서 막을 통과하지 못하는 물질의 농도가 리터당 1몰이면 약 2.5메가파스칼의 압력이 생긴다. 2.5메가파스칼은 어느 정도일까. 자동차 타이어 공기압의 열 배가 넘는다.
따라서 안팎의 농도가 리터당 10밀리몰만 달라도 약 25킬로파스칼이다. 100밀리몰 차이면 약 250킬로파스칼이다. 아주 작은 농도 차이로도 지질막 한 장을 팽팽히 밀어 터뜨릴 수 있다. 그러니 투과하지 못하는 거대분자를 소포 안에 잔뜩 넣는 것은 농도만 높이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는 부담도 함께 만드는 일이다.
현대의 세균은 적어도 세 가지 방식으로 이 부담을 나눠 진다.
부풀면서 생기는 기계적 하중은 대부분 세포벽이 받는다. 염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세포가 작은 분자들을 능동적으로 모으거나 내보내 안팎의 차이를 조절할 수 있다. 갑자기 담수에 노출되면 막에 있는 어떤 장치들이 압력솥의 안전밸브처럼 움직인다. 장력이 올라갈 때 저절로 열려 내부 물질을 빠르게 내보내고, 막이 팽창하다 터지는 것을 막는다.
마지막 장치는 평소 먹이를 들이는 통로가 아니다. 급격한 압력을 빼는 비상 밸브다.
현대 세균 내부의 압력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는 측정법에 따라 수십 킬로파스칼에서 2메가파스칼 안팎까지 다르게 나온다. 세포벽이 두꺼운 부류에서 가장 높게 추정된다. 규모를 놓고 보면 관계는 분명하다. 지질 이중층 자체가 견딜 수 있는 장력에는 한계가 있다. 현대의 세포는 지속적인 하중을 세포벽으로 넘기고, 갑작스러운 변화는 압력 배출 밸브로 처리한다.
세포벽도 공짜는 아니다. 세균이 자랄 때는 벽을 잘라내는 동시에 다시 지어야 한다. 페니실린이 가로막는 것은 바로 다시 짓는 단계다. 자르는 일은 계속되는데 메우지를 못하니, 세균은 자기 안의 압력에 떠밀려 터진다.
세균의 큰 무리 하나는 막 바깥에 막을 한 겹 더 두른다. 해로운 물질을 많이 막지만 영양분 일부도 막는다. 결핵균 같은 부류는 한층 더 나아가 바깥을 밀랍 같은 지질층으로 감싼다. 많은 약물이 스며들지 못하며, 이것도 결핵이 잘 낫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보호막을 한 겹 더할 때마다 치러야 할 값도 하나씩 는다. 다만 이 청구서는 오늘날 세포의 것이다. 최초의 세포에게 거꾸로 들이밀 수는 없다.
체외 실험에서는 이 문제를 세 가지 방법으로 피하거나 이용한다. 소포 안팎 용액의 농도를 되도록 같게 맞춘다. 또는 막을 빨리 통과하는 물질을 써서 면적이 늘 때 부피도 함께 늘게 한다. 아니면 거꾸로, 내부에 투과하지 못하는 거대분자를 일부러 넣고 압력 차이를 이용해 막 성분을 경쟁적으로 끌어오게 한다.
다음은 분열이다. 소포가 안에 든 것을 다음 세대로 넘기려면 자랄 줄도 알아야 하고, 하나가 둘로 나뉠 줄도 알아야 한다. 초기의 방법은 꽤 거칠었다. 2003년의 바로 그 연구진은 지방산 소포가 바깥에서 더해준 지방산을 흡수해 자라게 한 뒤, 미세한 구멍으로 억지로 밀어 넣어 작은 것들로 나눴다.
이 방법으로 순환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밀어 짜는 힘은 실험 장치가 외부에서 가한 것이었고, 내부 물질도 빠져나갔다. 2009년 연구가 풀고자 한 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외력으로 억지로 쪼개는 대신, 소포가 스스로 분열 직전까지 가게 할 수는 없을까.
먼저 기하학적 사실 하나를 보자. 구의 표면적은 반지름의 제곱에, 부피는 세제곱에 비례한다. 따라서 구가 커질수록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모자란다. 세포가 대체로 작은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것이다. 너무 크게 자라면 막이 안쪽에 물자를 들여보내는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 제약은 막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와 무관하다. 순전히 기하학의 문제다. 막 분자가 계속 더해져 면적은 늘어나는데 안쪽 부피가 제때 따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그만큼의 면적을 담아낼 수 있는 모양이 더 이상 구형만은 아니게 된다. 남는 면적은 타원체나 관, 긴 실 모양으로 드러난다. 반대로 물이나 내부 물질이 막 면적보다 빠르게 늘면 막의 장력이 올라가고, 끝내 새거나 터진다.
쇼스택은 젊은 시절 염색체의 말단을 연구했고, 그 공로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연구실의 방향을 생명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아보는 쪽으로 돌렸다.
2009년, 주팅과 쇼스택은 이 기하학적 제약을 이용해 단백질이 전혀 필요 없는 성장과 분열의 경로를 만들었다. 큰 올레산 소포를 막을 천천히 통과하는 물질의 용액에 넣고, 원래 소포에 있던 막 지질의 약 다섯 배에 해당하는 올레산을 더했다. 바깥 막의 면적이 먼저 늘었고, 내부 부피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자 구형 소포가 수십 분 만에 긴 실로 늘어났다. 그런 다음에는 부드럽게 저을 때 생기는 전단력만으로도 긴 실이 여러 딸소포로 끊어졌다. 내부 RNA가 새어 나오는 양도 앞서 기계로 밀어 짜던 방법보다 훨씬 적었다.
같은 논문에는 대조 실험도 실려 있다. 막을 빨리 통과하는 물질로 바꾸자 용질이 들어간 뒤 물도 따라 들어가, 부피 증가가 면적 증가를 따라잡았다. 소포는 구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고 실처럼 늘어나는 현상은 크게 줄었다. 이 대조 실험의 뜻은 이렇다. 지방산을 넣었다고 자동으로 분열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면적 증가와 부피 증가 사이에 일시적인 어긋남이 생기고, 여기에 외부의 전단력이 더해져 끊어지는 데 있다. 여기서 성장과 분열은 어떤 능력이 아니다. 한 번의 어긋남이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물음의 모양을 바꾸기 때문이다.
분열이 일종의 ‘능력’이라면 그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한 번의 어긋남이라면 설명할 것은 이것뿐이다. 왜 면적과 부피가 보조를 맞춰 늘지 않았는가. 그 답은 기하학과 투과성에 있다. 새로운 장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5 막은 용기가 아니라 발전기다
이 절에서 다룰 것은 이 글 전체에서 직관에 가장 어긋나는 사실이다. 막 한 겹 자체가 에너지 장치일 수 있다. 댐을 상상해보자. 물을 높이 올려 양쪽에 낙차를 만든다. 낙차 자체가 에너지다. 수문을 열어 물을 낮은 곳으로 돌려보내기만 하면 수차를 돌릴 수 있다.
세포도 같은 일을 한다. 끌어올리는 것이 물이 아니라 양성자일 뿐이다. 막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양성자를 퍼 올려, 양쪽 사이에 양성자 농도 차이와 전위차를 만든다.
이 차이가 낙차다. 얼마나 큰 낙차일까. 막 양쪽의 전압은 100여 밀리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막 두께도 몇 나노미터뿐이다. 길이로 환산하면 미터당 3,000만 볼트다. 번개에 견주는 사람도 있다.
막에는 수차 같은 장치가 하나 달려 있다. 양성자가 낙차를 따라 되돌아오면서 장치를 회전시키고, 이 회전으로 세포의 에너지 화폐를 만든다. 사람이 하루 동안 만들어 쓰는 이 에너지 화폐의 양을 모두 합치면 대략 자기 몸무게와 맞먹는다. 그러니 여기서 막은 용기가 아니다. 댐 자체다.
이 설명은 당시 16년 동안 거부당했다. 1961년 7월, 피터 미첼이 《네이처》에 낸 논문에서 제안한 그림이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 주류의 설명 틀은 전혀 달랐다.
주류는 이렇게 생각했다. 호흡 사슬이 먼저 확산할 수 있는 ‘고에너지 중간 분자’를 만들고, 그 분자가 다음 단계로 에너지를 넘긴다. 이 생각은 당시에 알려져 있던 다른 종류의 에너지 생산 방식과 잘 맞았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는 어떤 구체적인 중간 분자를 분리하거나 붙잡거나, 존재를 입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미첼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는 먼저 막을 사이에 둔 불균형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의미의 고에너지 분자 하나에 대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 가설은 오랫동안 격렬한 저항을 받았다. 단지 보수적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이 가설을 받아들이려면 당시로서는 대단히 낯선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에너지가 어떤 분자 안에 담겨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기술적인 이유도 있었다. 초기의 실험 시료는 양성자가 새기 쉬웠고, 막이 온전한지 통제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실험이 두 모형을 깔끔하게 구별하지 못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고에너지 중간 분자의 후보가 여럿 제시됐다. 호흡 사슬의 거의 모든 구성 요소가 한 번씩 의심을 받았다. 어느 것도 여러 곳에서 재현할 수 있는 결정적 검증을 얻지 못했다. 훗날 그 회전 장치를 연구해 노벨상을 받은 보이어도 1962년에는 하나를 붙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분자는 다른 효소가 일할 때 생기는 중간 산물이었고, 이 문제와는 관계가 없었다.
1963년, 미첼은 건강 문제로 대학을 떠났다. 잉글랜드 남서부의 버려진 저택을 수리하고 자기 돈으로 작은 연구소를 세워, 동료 모일과 함께 그곳에서 실험했다. 1960년대 중반에 그들은 또 다른 일을 해냈다.
미토콘드리아가 호흡하기 시작하면 측정할 수 있을 만큼 양성자가 방출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호흡 사슬의 각 단계와 양성자 이동 사이의 양적 관계를 연구했다. 이는 ‘전자 전달이 실제로 양성자를 막 건너편으로 옮긴다’는 주장에 직접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1966년, 멋진 실험 하나가 나왔다. 두 연구자가 식물의 한 막 구조를 먼저 산성 환경에 넣어 내부를 양성자로 채웠다. 그런 다음 재료가 들어 있고 더 알칼리성인 용액으로 재빨리 옮겼다. 이렇게 안팎에 인위적인 양성자 낙차가 만들어졌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빛으로 구동되는 전자 전달이 전혀 없는데도 이 낙차는 잠시 에너지 화폐 합성을 밀어붙였다. 미첼에게 대단히 유리한 실험이었다. 그래도 논쟁이 곧바로 끝나지는 않았다. 중간 분자를 지지하는 쪽은 ‘낙차가 간접적으로 어떤 미지의 중간 분자를 만들었다’는 수정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정말 피하기 어려운 것은 1974년의 재구성 실험이었다. 두 연구자가 호염성 고세균 한 종류의 빛 구동 양성자 펌프와 미토콘드리아의 회전 장치를 인공 소포 안에 함께 넣었다. 염전의 물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것들 중에도 이런 고세균이 있다. 빛을 비추자 양성자 펌프가 낙차를 만들고, 회전 장치가 그 낙차로 에너지 화폐를 만들어냈다.
이 계에서는 전자 전달 사슬의 다른 성분을 모두 빼버렸다. 남은 것은 세 가지뿐이었다. 펌프 하나, 밀폐된 막 한 겹, 수차 하나. 그래도 에너지 전환은 이루어졌다.
1961년의 제안에서 주된 논쟁이 수습된 1977년 무렵까지, 약 16년이 걸렸다. 1978년 노벨 화학상은 미첼에게 단독으로 돌아갔다.
수습되었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항복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후반이면 막을 가로지르는 낙차가 에너지 전환의 중심 고리인지에 대한 큰 논쟁은 사실상 끝나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합이 이루어지는지, 세부를 두고는 여전히 큰 견해차가 있었다. 1977년에는 원래 서로 맞섰던 진영의 주요 인물 몇몇이 함께 종설을 썼다. 그 자체가 양쪽이 더 큰 하나의 틀을 공유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작동 규모도 살펴보자. 포유류 미토콘드리아의 전형적인 호흡 사슬을 예로 들면, 음식 분해 과정에서 나온 전자를 운반하는 NADH에서 전자 한 쌍을 넘겨받을 때마다 여러 단계가 합쳐 약 열 개의 양성자를 막 바깥쪽으로 옮긴다. 회전 장치의 막 속 회전자는 같은 부품들이 고리 모양으로 이어져 있다. 한 바퀴를 돌면 에너지 화폐 분자 세 개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회전자 고리가 부품 열 개로 이루어졌다면 한 바퀴에 양성자 약 열 개가 필요하다. 화폐 하나당 양성자 약 3.3개인 셈이다. 고리의 부품이 열네 개라면 약 4.7개다.
자연에서 알려진 고리는 작게는 여덟 개, 크게는 열일곱 개로 이루어진다. 포유류 미토콘드리아는 여덟 개짜리다. 화폐 하나당 양성자 약 2.7개가 든다. 그러니 에너지 화폐 분자 하나를 만드는 데 양성자를 몇 개 써야 하는지는 생물마다 다르다.
이 장치가 회전한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1997년, 일본의 연구자들이 회전축에 형광을 띠는 가는 실 하나를 붙이고, 현미경으로 그 실이 돌아가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들이 쓴 것은 이 장치에서 막 바깥으로 튀어나온 절반뿐이었다. 에너지 화폐를 먹여주자 작동이 뒤집혔다. 에너지 화폐를 쓰면서 회전했다. 수차는 양수기로도 쓸 수 있다. 같은 해, 일찌감치 회전을 예측한 보이어와 구조를 밝혀낸 영국인 워커가 함께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한 가지 더 있다. 이 원리가 성립하려면 막이 수학적인 의미에서 양성자를 절대 통과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위 시간당 새는 양이 퍼내는 양과 되돌아 흐르는 양보다 충분히 작으면 된다.
절대 조건이 아니라 비율의 조건이다. 수차를 미는 이온이 꼭 양성자여야 하는지 자체도 논쟁거리다. 한쪽은 나트륨이 더 오래됐다고 본다. 근거 가운데 하나는 물리적인 문제다. 초기 막에서 양성자가 특히 심하게 새고 나트륨 이온은 덜 샜다면, 나트륨 낙차를 오래 유지하는 편이 실제로 더 쉬웠을 것이다.
다른 쪽은 양성자가 더 오래됐다고 본다. 자연의 알칼리성 열수와 그보다 산성인 바닷물 사이에는 이미 쓸 수 있는 양성자 낙차가 직접 만들어지므로, 처음 사용한 에너지는 지구화학이 먼저 공급했을 수 있다는 이유다. 최초로 수차를 민 이온이 무엇인지는 현재 증거만으로 논란의 여지 없는 답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이 답과 무관하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이 장치는 균일한 용액 속에 ‘양성자 농도’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막 양쪽의 불균형을 에너지로 삼는다. 양쪽이 자유롭게 섞이는 순간 낙차는 사라진다.
1974년의 재구성 실험은 이 점도 대조로 보여주었다. 닫힌 소포가 없으면 펌프가 양성자를 옮겨도 막을 사이에 둔 낙차를 만들 수 없었다. 온전한 소포에 수차까지 함께 넣으면, 빛을 비출 때 에너지 화폐가 나왔다.
그러므로 경계와 에너지 장치는 막의 별개 기능 두 가지가 아니다. 안팎을 나누는 일 자체가 이런 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 조건이다.
이제 3절의 그 예외적인 항목이 이어진다. 오늘날 생물 대다수는 이 에너지 체계를 양성자에 걸고 있다. 나트륨을 쓰는 것은 일부 세균과 고세균뿐이다. 그런데 양성자는 전하 하나짜리 이온 가운데 하필 막을 통해 가장 쉽게 새어 나가는 이온이다.
마음대로 바꿔버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막 양쪽의 낙차를 보존하려면 천천히 샐수록 좋다. 그런데 하필 가장 빨리 새는 것을 골랐다. 왜일까. 3절 끝에서 본 제약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 초기의 막은 마그네슘과 칼슘처럼 전하가 두 개인 이온에 약했고, 마그네슘은 또 촉매 작용에 반드시 필요했다.
쓸 수 있는 이온은 애초부터 몇 가지 없었다.
6 다 담지 못해도 빼앗을 수는 있다
막 한 겹이 어떤 분자들을 둘러싸면 다른 분자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길도 동시에 막힌다. 하나 마나 한 소리 같지만, 계산할 수 있는 결과가 따라온다.
소포가 만들어질 때 균일한 용액의 일부 부피를 무작위로 둘러싸기만 한다면, 어떤 분자가 몇 개나 들어갈지는 작은 그릇들을 잔뜩 펼쳐놓고 참깨를 뿌리는 것과 같다. 그릇마다 평균 몇 알씩 들어가는지는 계산할 수 있다. 특정 그릇에 몇 알이 들어갈지는 우연에 달렸다.
지름 100나노미터인 소포로 계산해보자. 어떤 핵심 분자의 환경 속 농도가 리터당 1나노몰이라면, 소포 하나에 평균 약 1만분의 3개가 들어간다. 다시 말해 소포 1만 개 가운데 약 3개만이 적어도 하나를 얻는다. 농도를 리터당 1마이크로몰로 높이면 평균 약 0.32개, 하나 이상 얻을 확률은 약 27퍼센트다.
리터당 10마이크로몰로 높여야 평균 약 3.2개, 확률은 약 96퍼센트가 된다. 이제 서로 다른 다섯 성분이 필요하고, 각각의 농도는 모두 리터당 1마이크로몰이며, 각 성분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고 해보자.
서로 독립이라는 단순화된 가정 아래, 소포 하나에 다섯 가지가 모두 담길 확률은 약 1,000분의 1.4다. 열 가지면 약 100만분의 2다. 요리에 양념 다섯 가지가 필요한데, 각 양념을 우연히 갖춘 부엌이 약 네 집 중 한 집씩밖에 없는 셈이다. 다섯 가지를 다 갖춘 부엌은 천 집 가운데 한두 집이다.
이 계산법은 실험에서 흔히 쓰는 기준선이며, 실제 계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 분자가 막에 달라붙을 수도 있고, 서로 뭉칠 수도 있고, 특정 막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벗어나는지는 계마다 직접 측정해야 한다. 언제나 유리한 쪽으로 벗어난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구획들 사이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리와, 각 구획이 필요한 것을 다 갖추지 못하게 하는 원리는 같은 것이다. 앞의 것만 골라 가질 수는 없다.
부피가 작으면 농도가 낮은 분자는 그 수가 0, 1, 2처럼 불연속적인 값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빠졌는가’가 구획들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가 된다. 농도가 조금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다. 확률적 교정 모형은 바로 이 차이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이 차이를 감당한다.
오늘날의 세포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2002년, 연구자들은 대장균에 형광 유전자 두 개를 넣었다. 하나는 세포가 청록빛을, 다른 하나는 노란빛을 내게 했다. 두 유전자 앞에는 똑같은 스위치가 달려 있었다. 이치대로라면 세포마다 두 빛의 양이 같아야 했다.
그런데 현미경으로 보니 같은 세균 집단 안에서도 어떤 세포는 청록빛이 강하고 어떤 세포는 노란빛이 강했다. 스위치도 같고 환경도 같았다. 차이는 세포 안에 몇 개 없는 분자들이 저마다 우연에 맡겨 움직이는 데서 나왔다.
다 갖추지 못한다는 문제 말고도 더 직접적인 문제가 있다. 구획끼리 다툰다는 것이다. 2004년, 연구자 세 명이 지방산 소포 안에 투과하지 못하는 RNA를 가둬 내부 삼투압을 높였다. 그중에는 또 쇼스택이 있었다. 그런데 지방산 막은 붙박이 재료가 아니다. 개별 지방산 분자는 물속을 돌아다니며 서로 다른 소포 사이에서 교환될 수 있다.
‘팽팽하게 부푼’ 소포와 비교적 느슨한 소포가 함께 있으면, 앞의 것은 지방산을 흡수해 자기 장력을 낮추고 뒤의 것은 막 일부를 잃는다. 하나는 커지고 다른 하나는 줄어든다. 풍선 두 개 가운데 빵빵한 것이 쭈그러진 것의 껍질을 조금씩 벗겨오는 것 같다. 무엇을 넣었느냐에 따라 앞쪽 소포의 표면적은 20에서 50퍼센트까지 늘었다. 이 원리에는 촉매 작용이 전혀 없다.
이 실험에서 RNA는 그저 막을 통과하지 못하는 거대분자 한 가닥이다. 내부 RNA가 많을수록 압력이 높아지고, 지방산이 순유입되고, 막 면적이 늘어난다. 내부의 화학적 차이가 순전히 물리적인 힘만으로 경계의 성장률을 바꾼 것이다.
실험실의 시연이지만, 한 가지를 눈앞에 보여준다.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가 주머니의 성장이 빠를지 느릴지를 정할 수 있고, 전 과정에 효소가 하나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1절의 시험관을 돌아보자. 거기서 선택의 눈에 보인 것은 복제의 빠르기뿐이었다. 여기서는 주머니의 내용물과 주머니 자신의 운명이 이어졌다.
2011년, 같은 실험실에서 이번에는 지방산 소포에 오늘날 세포가 쓰는 인지질을 조금 섞었다. 인지질이 섞인 소포는 지방산을 잘 붙잡았고, 섞이지 않은 소포에서 막을 빼앗아 계속 커졌다.
이것은 훗날 세포막이 왜 인지질로 바뀌었는지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조금만 있어도 막을 빼앗는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인지질이 많아지면 막이 조밀해져 바깥의 재료도 들어오지 못한다. 세포는 수송 장치들을 또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이득이 다음 문제까지 덤으로 데려왔다.
7 막 없이도 안과 밖은 생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몸의 세포 안에는 막 없는 ‘방’이 여럿 있다. 세포핵 속 핵소체는 막에 싸이지 않은 액적 덩어리다. 세포가 고온이나 다른 스트레스를 만나면 몇 분 만에 새로운 액적들이 맺히고, 스트레스가 지나가면 다시 흩어진다.
이 절에서는 막 없이도 안과 밖을 만드는 세 가지 방법을 살펴본다. 첫 번째가 액적이다. 전하를 띤 어떤 거대분자들을 섞으면 자발적으로 모여 농도가 아주 높은 영역을 이룬다. 주위의 묽은 용액과 공존하면서도 고루 섞이지 않는다.
기름과 물이 갈라지는 것과 조금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액적 안에는 물이 많이 들어 있고 분자는 빠르게 드나들 수 있다. 다만 분배될 때 안쪽에 머무는 쪽으로 기울 뿐이다. 액적이 만드는 것은 농도의 경계이지, 끊김 없는 장벽이 아니다.
이 현상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1929년, 네덜란드의 콜로이드 화학자 두 사람이 체계적으로 기술했다. 1930년대에는 소련의 생화학자 오파린이 이를 생명의 기원을 구상하는 데 가져와 코아세르베이트라고 불렀다.
그보다 앞서 오파린과 영국의 홀데인은 저마다 초기 바다에 유기물이 차츰 쌓여 묽은 수프처럼 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코아세르베이트는 오파린이 수프 속 분자들에게 찾아준 첫 번째 용기였다.
현대 세포생물학이 이런 액적을 세포의 조직 원리로 다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무렵이다. 당시 선충의 생식세포 속 어떤 과립이 액체처럼 합쳐지고, 방울져 흐르고, 물질을 빠르게 교환한다는 관찰이 나왔다.
2018년의 한 실험에서는 RNA를 자르는 리보자임을 모형 액적에 넣었다. 리보자임과 잘릴 RNA 조각이 액적 안에서 1,000배 넘게 농축되었고, 절단 반응은 여전히 일어났다. 하지만 농축되었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같은 농도에서 비교하면 이 액적 안의 절단은 오히려 일반 용액보다 약 60배 느렸다.
액적의 약점도 구체적이다. 연속된 장벽이 없어서 이온을 막지 못하고, 따라서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낙차를 저장하지 못한다. 액적끼리는 융합도 한다. 합쳐지는 순간 서로의 차이는 사라진다.
융합이라는 문제를 돌아가려는 시도도 있었다. 2022년의 한 연구에서는 가열한 암석의 미세공극과 기포 표면에 계를 만들었다. 온도 차이와 흐름 속에서 액적이 모이고 자라고, 합쳐지고 끊어지는 모습이 관찰됐다.
이는 환경의 흐름이 막의 분열 장치 일부를 대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생대의 어느 특정한 암석 구멍이 실제로 이런 액적 집단을 유지했다는 증명은 아니다.
두 번째 방법은 단백질로 만든 껍질이다. 세균에는 단백질로 만든 작은 새장 같은 구조가 있다. 껍질은 이십면체로, 아주 작은 축구공처럼 생겼다. 지름은 보통 100에서 수백 나노미터이고, 안에는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효소가 들어 있다.
이 효소는 식물의 잎에도 있으며, 지구에서 양이 가장 많은 단백질이라고 흔히 불린다. 새장 같은 껍질이 내부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바깥보다 높게 유지하니 효소가 훨씬 빨리 일한다.
이 구조는 알려진 모든 남세균과 일부 독립영양 세균에서 발견된다. 구조적 증거를 보면 주요한 두 유형은 서로 독립적으로 구축된 두 체계일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껍질은 더 작아서 지름이 약 20에서 40나노미터다. 바이러스 껍질과 비슷한 단백질이 스스로 조립하며, 특정 표지를 이용해 화물을 안에 싼다. 안에 온통 기체만 든 껍질도 있다. 물에 사는 많은 세균과 고세균이 뜨고 가라앉는 것을 조절하도록 돕는다. 물고기의 부레 같은 역할이다.
이런 구획은 상당수가 서로 독립적으로 발명됐다. 그러니 진화의 역사에서 ‘나누어 가두기’가 모두 몇 번 일어났는지는 셀 수 없다.
세 번째 방법은 애초에 생물이 만든 것도 아니다. 지난 세기 1980~1990년대부터 일부 연구자들은 최초의 국소 반응 공간이 반드시 자유롭게 떠다니는 소포였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주장했다.
해저의 어떤 곳에서는 바닷물이 암석으로 스며들어 암석과 반응한 뒤 다시 솟아나온다. 따뜻하고 알칼리성을 띤 액체가 되어 나온다. 이것이 주위 바닷물과 섞이면 광물이 침전해, 작고 구멍이 많고 얇은 광물 벽을 지닌 벌집 구조로 자란다.
첫 글에서 언급한 대서양 해저의 ‘잃어버린 도시’에는 흰 탄산염 굴뚝이 최고 60미터, 20층 건물 높이로 솟아 있다. 각 구멍의 물은 이웃 구멍이나 바깥과 제한적으로만 교환된다. 광물 구조가 먼저 기하학적 구획을 제공한 셈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물리 실험과 모의실험이 있다. 2002년, 두 연구자는 미세한 길이 규모에 걸친 온도 차이를 이용해 물속 DNA의 거동을 연구했다. 온도 차이만 있으면 DNA는 차가운 쪽으로 치우쳤다. 여기에 대류가 더해지면 흐름이 분자들을 온도 차이가 있는 영역으로 계속 돌려보내 붙잡아두었다. 실험과 모형에서는 약 1,000배가 넘는 국소 농축이 일어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열수 통로 안에서 벌어지는 이 복합 작용을 컴퓨터로 더 살펴보았다. 한쪽 끝이 막혀 있고 폭이 밀리미터 규모인 가늘고 긴 공극에서는, 낱개의 뉴클레오타이드조차 1억 배 넘게 농축될 수 있었다.
염도는 구체적인 제약이다. 염 농도가 리터당 약 0.5몰이면, 곧 바닷물과 비슷하게 짜면, 이 효과는 눈에 띄게 약해지거나 거의 검출하기 어려워진다. 낮은 염도에서 한 실험을 자연 바닷물의 이온 조성에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이 실험과 모의실험은 미세공극 안의 열 흐름이 실제로 분자를 농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생대의 어느 열수계가 정말 이렇게 농축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증거가 없다.
광물 공극에는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도 하나 있다. 구멍은 복제하지 않는다. 농축할 수 있고, 촉매 작용을 할 수 있고, 구획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구멍을 하나 더 만들지는 않는다.
액적은 적어도 하나가 둘로 나뉠 수 있다. 단백질 껍질은 세포가 직접 만들고 세포와 함께 번식한다. 반면 광물의 구멍은 그저 한 장소다. 그 자리에 머문다.
어느 구멍 안에 유리한 분자 조합이 생겼더라도, 구멍 자체가 자라거나 나뉘지 않고 내용물을 계보에 따라 딸구멍으로 넘기지 않는다면, 확률적 교정 모형에 필요한 ‘구획의 번식’은 생겨나지 않은 것이다.
흐름은 내용물을 하류의 새 구멍으로 옮길 수 있다. 하지만 구획 하나가 전체 구성물을 고스란히 지닌 채 통째로 이동하는 것과는 다르다. 광물 구획에서 자유로운 세포까지 가려면 여러 고개를 넘어야 한다. 구멍 안에서 경계가 어떻게 자라나는가. 안의 것을 지닌 채 광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어떻게 흩어지지 않는가. 떨어져 나온 뒤에는 어떻게 스스로 자라고 나뉘는가. 이미 주어진 낙차를 잃고 난 뒤에는 어떻게 자기 힘으로 낙차를 만드는가.
단계마다 구체적인 공학 문제가 있다. 최초의 화학이 어디서 일어났든, 나중에 걸어 나온 것은 모두 자기 막을 지닌 세포였다.
8 경계는 보여도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를 유지하는 구획은 얼마나 작아질 수 있을까. 유전물질, 단백질을 만드는 기계, 기본 대사를 맡는 단백질, 그리고 충분한 물과 이온이 모두 들어가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면, 자율적인 세포의 지름은 구형으로 약 250나노미터가 하한이라는 고전적 추정이 나온다.
이 숫자에는 사연이 있다. 1996년, 화성에서 온 운석 안에서 세균처럼 보이는 미세한 구조를 찾았다는 보고가 나왔다. 길이가 수십에서 100나노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2년 뒤 미국 국립과학원은 세포가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회의를 따로 열었다. 회의에서 추산한 하한이 대략 앞서 말한 250나노미터 부근이었다. 그 ‘화성 세균’은 세포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전부 담기에는 너무 작았다.
배양에 성공한 해양 부유 세균 가운데 펠라기박터 우비크는 자유롭게 살며 스스로 복제하는 가장 작은 세포 중 하나이고, 바다에서 가장 수가 많은 세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부피는 약 0.015에서 0.058세제곱마이크로미터다. 몸통 너비는 겨우 100여 나노미터라서 500여 개를 나란히 놓아야 머리카락 한 올 굵기가 된다.
더 작은 후보들은 부피가 약 0.01세제곱마이크로미터까지 내려간다. 하지만 이런 극소형 무리는 유전체가 심하게 줄어든 경우가 많고, 대사물을 공급해주는 군집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의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독립적으로 스스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는지는 정의를 둘러싼 논쟁거리다.
마이코플라스마라는 부류에는 세포벽이 없다.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을 일으키는 것도 그중 한 종류다. 세포 크기는 흔히 약 300에서 800나노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합성 능력을 잃어 갖가지 물질을 숙주에게 의존한다. 어떤 거대바이러스는 이런 가장 작은 세포보다 몸집이 크다.
그러므로 ‘스스로 복제하는 가장 작은 세포’와 ‘정말 자유롭게 사는 가장 작은 세포’는 같은 기록이 아니다. 다만 둘 다 일반 광학현미경의 한계에 닿을 만큼 작다. 1,000배로 확대해도 흐릿한 점 하나만 보인다.
그렇다면 최초의 막은 무엇을 남겼을까. 막 자체는 화석이 되지 않는다. 세포가 죽으면 막을 이루는 지질 분자는 분해된다. 남을 수 있는 것은 분해 뒤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탄소 골격이다.
생물의 무리마다 만들어내는 골격이 조금씩 다르므로, 이런 잔해를 생체지표라고 한다. 최초의 막을 찾는다는 것은 실제로 세포막에서 왔다고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분자 잔해를 찾는 일이다.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암석 속 이런 분자의 농도는 극히 낮아 흔히 10억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시추할 때 쓰는 진흙, 플라스틱, 실험실 용매, 그리고 나중에 지하로 스며든 석유까지, 어느 것이든 젊은 유기물을 들여올 수 있다.
20세기 말에는 약 27억 년 전 호주 암석에서 이런 분자를 찾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2012년, 연구자들이 극도로 깨끗한 방법으로 다시 시추해 암석 코어를 채취했다. 2015년에 발표한 결과를 보면 측정량은 아무 시료도 넣지 않은 공시험 대조군과 비슷했다. 이 이야기는 다섯 번째 글에서 온전히 다루겠다.
이런 검증을 거쳐 암석과 동갑이라고 확인할 수 있는 막 지질 분자는 현재 약 16억 4,000만 년 전까지 믿을 만하며, 약 17억 3,000만 년 전의 것을 보고한 사례도 있다. 세포 모양의 미화석은 약 34억 년 전의 것이 있다. 그 사이 17억 년 동안 세포에는 분명 막이 있었다. 다만 그 막들은 추적할 수 있는 분자를 남기지 않았다.
그 미화석에 관한 세 겹의 증거는 첫 글에서 이미 이야기했다. 남아 있는 것은 탄소질 외형, 광물화된 윤곽, 실 모양 구조다. 지질 이중층 한 장이 온전한 분자 구조 그대로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세포 같은 경계를 보는 일과 그 막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내는 일 사이에는 먼 거리가 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오늘날 세균과 고세균이 서로 다른 두 벌의 막 지질을 쓴다고 했다. 골격은 서로 거울상이며, 꼬리도 연결 방식도 다르다. 최초의 막은 어느 쪽이었을까. 아니면 어느 쪽도 아니었을까. 아직 답은 없다.
이제 이 글에서 다룬 구축된 틀로 돌아갈 수 있다. 막 한 겹은 ‘안’을 정함으로써 ‘밖’을 정한다. 이 행동은 희석 문제를 풀고, 개선이 낳는 이득을 그 개선을 만들어낸 쪽에 다시 묶어주며, 덤으로 에너지 저장에 필요한 물리적 전제까지 된다. 그리고 생겨난 순간부터 자기만의 잔여항을 만들어낸다. 구축된 틀이 담아내지도 없애지도 못하는 부분을 이 시리즈에서는 잔여항이라고 부른다.
무작위 분배에서 빠진 성분은 잔여항이다. 없으면 없는 것이다. 작은 부피 자체가 불연속성을 뜻한다. 삼투압도 잔여항이다. 해결된 것이 아니라 세포벽과 압력 배출 밸브에 넘겨졌다. 펌프로 내보내야 하는 것들도 잔여항이다. 펌프는 계속 에너지를 써야 한다. 막에 가로막혀 밖에 남은 모든 것 역시 잔여항이다.
이 잔여항들은 어느 하나 해결되어 사라지지 않았다. 모두 여전히 있다. 자리가 바뀌었거나, 부담을 지는 쪽이 달라졌을 뿐이다. 암석 속에는 또 다른 잔여항도 있다. 이 경계가 한때 존재했다는 것은 보이지만,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판별 기준은 아직도 걸러내고 있다. 암석은 다시 잘리고 있다. 실험실의 소포들은 여전히 실처럼 늘어나고, 끊어지고, 서로의 막 지질을 빼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