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 · 고생물 · 후기 · 더 깊이 읽고 싶은 분께

사다리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다: DD 순서를 따라 돌아보는 30억 년

본문만으로도 읽기는 완결됩니다. 저자의 DD 틀로 다시 돌아보고 싶다면 읽어 보세요. 철학적 독해이지 생물의 서열표는 아닙니다.

Han Qin · 읽는 데 약 20분 · 공개일

1 두 가지 순서

이 연재는 모두 스물세 편이며, 시간순으로 놓여 있다. 1편은 30억여 년 전의 돌 한 조각 위에 서서, 거기에 생명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지 묻는다. 22편은 후기 마이오세의 숲에서 멈춘다. 그 숲에는 몇 종류의 유인원이 있었고, 대부분은 훗날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그 사이의 글들은 대체로 지층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막, 산소, 진핵세포, 성, 다세포, 캄브리아기, 육지 진출, 석탄, 그리고 거듭되는 비우기와 다시 채우기.

이것은 하나의 순서, 시간의 순서다. 이 글에서는 순서를 바꾸어, 같은 스물세 편을 다시 놓아보려 한다.

새로 빌려올 순서는 이 연재 뒤에 놓인 이론적 틀 자체의 뼈대다. 이름은 DD 순서다. 모두 열여섯 단계이며, 그 앞에는 0DD가 하나 더 있다. 혼돈이라 부르는, 아직 아무런 구분도 세워지지 않은 자리다. 1DD부터는 한 단계마다 법칙 하나를 더 세우고 선 하나를 더 긋는다. 먼저 분명히 하자. 이것은 저자의 철학적 틀이지, 생물학에서 받아들여진 진화 단계표나 종의 서열이 아니다. 본문만으로도 읽기는 완결된다. 선택적으로 읽는 이 후기는 배경의 생각을 꺼내 무엇을 비추고 무엇을 놓치는지 살펴보려는 글이다.

첫 번째 주기, 1DD부터 4DD까지는 동일성, 모순, 간격, 인과다. 두 번째 주기, 5DD부터 8DD까지는 복제, 자기 유지, 분화, 번식이다. 세 번째 주기, 9DD부터 12DD까지는 선택, 감지, 기억, 예측이다. 네 번째 주기는 13DD인 자기 주체에서 시작하며, 14DD는 목적이다. 그 위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각 주기는 셋 더하기 하나로 이루어진다. 앞의 세 단계가 저마다 법칙 하나를 세우면, 네 번째 단계가 그 셋을 합친다. 인과는 동일성, 모순, 간격을 합쳐 방향이 있는 세계를 만든다. 번식은 복제, 자기 유지, 분화를 합쳐 처음부터 다시 자라날 수 있는 생명을 만든다. 예측은 선택, 감지, 기억을 합쳐 과거로부터 미래를 추론할 수 있는 머리를 만든다.

이 사다리는 처음부터 생물학을 재료로 세운 것이 아니었다. 출발점은 극도로 단순했다. 어떤 법칙도 미리 가정하지 않고, 단 한 가지 일만 했다. 부정하는 일. “이것은 저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이 남긴 틈에서 다시 한번 “이것은 저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한 단 한 단 자라 올라갔다. 열여섯 단으로 자라고 나서야 네 곱하기 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칸을 그려놓고 그 안을 채운 것이 아니다.

고생물 연재 역시 이 사다리를 보여주려고 쓴 글은 아니다. 스물세 편을 쓰는 동안 본문에는 DD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둘 다 제 모습을 갖추었으니, 한번 나란히 놓고 어디가 들어맞는지, 어디가 들어맞지 않는지 살펴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들어맞는 곳은 많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주기의 여덟 단계는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이 연재 안에 들어와 있다. 첫 번째 주기는 암석 안에 있지 않다. 암석을 읽는 사람의 손에 있다. 네 번째 주기에 이르면, 이 연재는 그 문 앞에서 멈춘다.

들어맞지 않는 곳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가 있다. 사다리의 순서는 구조의 순서이지 시간의 순서가 아니며, 사다리에는 모터가 달려 있지 않다. 이 연재에서 가장 잘된 글 몇 편은 바로 이것을 입증한다.

2 첫 번째 주기: 암석을 읽는 사람이 가져온 네 개의 선

1DD는 동일성이다. 이것은 이것이지, 저것이 아니다.

1편에서는 실제로 누군가 세어본 수를 소개했다. 생명의 정의를 모으니 123개였다. 하나하나가 하는 일은 같다. 연속된 화학의 세계에 선을 하나 긋고, 이쪽은 생명으로 치고 저쪽은 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1편은 이 동작을 깎아내기라고 불렀다. “보통 깎아낸다고 하면, 끌을 쥔 사람이 있다. 이 첫 칼질에는 없다.”

동일률은 바로 그 첫 칼질의 형식이다. 칼이 어디에 떨어지는지는 관여하지 않는다. 칼이 내려간 뒤부터 양쪽이 서로 다른 것이 되게 할 뿐이다. 123개 정의가 갈리는 것은 동일률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동일률은 칼을 줄 뿐, 칼을 내리칠 자리는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자리의 근거는 뒤의 몇 단계에 가서야 생긴다. 그런데 선 위에는 늘 무언가가 걸쳐 있다. 바이러스, 프리온, 1편 첫머리의 그 원뿔. 보는 방향을 바꾸면 더는 해당하지 않는다. 동일률의 잔여항은 칼날 위에 걸쳐 있는 것들이다.

2DD는 모순이다. 어떤 것은 동시에 A이면서 A가 아닐 수는 없다.

9편의 에디아카라 생물들은 이 단계의 잔여항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디킨소니아는 동물인가, 지의류인가. 카르니오디스쿠스(Charniodiscus)는 산호의 친척인가. 수십 년 동안 이들은 저마다 여러 칸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분류표는 생물 하나가 오직 한 칸에만 들어가기를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모순율의 요구다. 하지만 에디아카라 생물들의 몸은 그 표를 따라 자라지 않았다.

9편은 칸과 나무를 대비했다. 칸은 선택한 형질로 나누고, 나무는 조상과 후손을 따른다. 서로 다른 모순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분류의 근거가 다르다. 어느 가지의 초기 구성원이어도 익숙한 형질의 칸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논리적 일관성이 분류가 세계를 다 담았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3DD는 간격이다. 여기와 저기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23편의 황금못은 간격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지질학자는 세계 각지에서 경계를 대비할 기준점을 고른다. 백 곳이 넘는 위치를 정의하고 승인해야 한다. 점 자체에는 두께가 없다. 양쪽 지층은 각각 이름 붙은 구간에 속하지만, 공통 이름이 그 안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담지는 못한다.

이 틀에서 간격이 인과보다 앞선다는 것은 구조적 순서이지, 우주가 시간보다 공간을 먼저 만들었다는 주장이 아니다. 고생물학도 쌓인 지층에서 출발한다. 뒤집힘 같은 교란이 없는 퇴적 순서에서는 대체로 아래가 먼저 형성된다. 위아래를 앞뒤로 읽는 것은 시작이지, 아직 시계는 아니다. 두께를 연수로 바꾸려면 퇴적률·동위원소 연대 등의 보정이 필요하고 분자 차이에도 속도 모형이 필요하다. 19편의 불일치는 그런 환산과 기록의 빈틈에서 나온다.

4DD는 인과다.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제약하며, 되돌아갈 수 없다.

4편의 대산소화 사건은 이 단계의 원형이다. 남세균이 내놓은 산소는 원래 광합성의 폐기물이었다. 그것이 바다와 대기에 쌓여 행성 전체의 화학을 다시 써놓았다. 이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산화된 철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줄무늬 철광층을 겹겹이 이루었고, 지금도 거기에 있다. 13편의 석탄도 마찬가지다. 숲 하나의 탄소가 땅속에 묻혔다가, 수억 년이 지나서야 사람 손에 캐어 나왔다. 되감을 수 없는 것은 역사 전체이지 화학반응 자체가 아니다. 철은 다시 환원될 수 있고 산소량도 줄어들 수 있다.

인과라는 단계는 앞의 세 단계를 합친다. 동일성이 있고, 구별이 있고, 거리가 있는 데다 방향까지 더해져야, 세계는 ‘이전’이 ‘이후’를 제약하는 세계가 된다. 그러나 18편은 이 단계의 잔여항을 짚었다. 백악기 말 멕시코만에는 소행성 하나가 충돌했고, 인도에서는 드넓은 현무암질 용암이 분출하고 있었다. 둘 다 실제로 일어났고, 둘 다 충분히 컸으며, 시기도 매우 가까웠다. 인과율은 그 멸종에 원인이 있다는 것은 보장한다. 원인을 구별해낼 수 있다는 것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방향이 분명해도 기여에는 불확실성이 남는다. 새 기록과 모형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다. 두 번째 지구가 없다고 영원히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네 단계를 함께 놓고 보면, 이 연재 안에서 공유하는 점이 드러난다. 모두 암석 속이 아니라 암석을 읽는 사람의 손에 있다. 돌은 “이것은 생명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어느 칸에 넣지도, 제 몸에 못을 박지도, “충돌 때문이지 화산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23편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의도가 없는 깎아내는 자가 구축한 틀을, 의도가 있는 깎아내는 자들이 서술한다.” 첫 번째 주기는 이 사람들이 늘 지니고 다니는 네 가지 도구다. 이 도구들은 선험적이다. 틀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화석을 보고 배운 것이 아니라, 화석을 집어 들기 전부터 이미 손에 쥐고 있었다는 뜻이다.

3 두 번째 주기: 선을 처음으로 제 몸에 긋다

두 번째 주기의 네 단계, 복제, 자기 유지, 분화, 번식은 이 연재 전반부의 뼈대다. 첫 번째 주기의 선은 읽는 사람이 그었다. 이 주기부터는 생명이 스스로 선을 긋기 시작한다.

5DD는 복제다. 이 양식이 사라지지 않는다.

2편의 최후 공통 조상은 이 단계의 모습이다. 오늘날 지구의 모든 생명, 세균, 고세균, 참나무, 사람은 몇 가지 변형이 있는 거의 보편적인 유전 암호와 같은 에너지 화폐, 같은 계열의 리보솜을 쓴다. 이 공통점들이 하나의 공통 조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조상은 부재를 통해 복원되었다. 자기 자신의 화석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든 후손이 함께 지닌 것들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의 윤곽을 그려냈다.

복제의 법칙이 말하는 것은 양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사본 하나하나가 모두 같다는 보장은 없다. 2편에서 세균 사이를 옆으로 건너다니던 유전자들은 생명나무의 뿌리를 그물처럼 얽어놓았다. 후손을 남기지 못한 초기 생명들은 거꾸로 추론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복제의 잔여항은 끝내 이어 복제되지 못한 모든 것이다.

6DD는 자기 유지다. 쇠퇴에 능동적으로 맞선다.

3편의 막은 자연이 그은 첫 번째 선이다. 지질로 된 막 한 겹이 작은 화학물질 덩어리를 둘러싸면, 안의 농도는 바깥과 달라질 수 있고 그 차이를 유지할 수도 있다. 이것이 자기 유지의 가장 작은 모습이다. 모든 것이 고르게 퍼지려 하는 세계에서, 고르지 않은 상태 하나를 지켜내는 것. 이 연재에서 ‘구축된 틀’을 정의할 때 “선은 자연이 그을 수도 있다. 막 한 겹이 그 예다”라는 문장을 따로 넣은 것도 이 단계를 두고 한 말이다.

1편의 실험은 이 질문에 가까이 다가간다. 2016년 설계·합성·축소를 거쳐 특정 배양 조건에서 자라는 473개 유전자의 세포가 만들어졌다. 모든 생명의 절대적 최솟값은 아니다. 발표 당시 149개 유전자의 구체적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연구가 이어졌다. 작동하는 축소 체계를 만들었다고 필요한 부품의 이유를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다.

복제와 자기 유지를 여기 나란히 놓으면 1편의 오래된 논쟁 하나도 풀린다. 생명의 기원에서 먼저였던 것은 복제인가, 대사인가. 스스로 복제하는 분자가 먼저였는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화학 순환이 먼저였는가. 1편은 일곱 갈래 길을 늘어놓았다. 모든 길을 누군가는 걷고 있지만, 마지막 줄은 모두 비어 있었다.

사다리는 복제를 5DD에, 자기 유지를 6DD에 놓는다. 하지만 사다리의 순서는 구조의 순서다. 온전한 생명이라면 이 둘을 함께 갖추어야 하며,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역사 속에서 무엇이 먼저 나타났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는 까닭 중 하나는, 양쪽 모두 구조의 순서로 시간의 순서를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7DD는 분화다. 같던 것들이 달라진다.

8편의 다세포성은 이 문제를 선명하게 한다. 넓게 세면 기원이 최소 45차례지만, 세포가 모였다고 모두 번식과 다른 기능을 나누는 것은 아니다. 많은 계통은 실이나 덩어리 형태로 오래 지속되며, 실패한 반제품이 아니다. 복잡한 분업은 동물·육상식물·일부 대형 조류와 균류처럼 더 적은 가지에 집중된다.

16편의 벌집은 다른 규모의 분화를 떠올리게 한다. 여왕벌과 일벌은 유전적 도구를 공유하지만 DNA가 글자마다 같다는 뜻은 아니다. 유충의 영양 등 여러 요인이 발달 경로에 영향을 준다. 대개 여왕벌이 주요 산란을 맡고 일벌의 번식은 억제되지만, 특정 조건에서는 일벌도 알을 낳는다. 강한 분업은 군체를 어떤 면에서 몸처럼 만들 뿐, 벌을 실제 세포로 바꾸지는 않는다.

21편은 이 단계를 거꾸로 걸어보았다. 기생하는 따개비는 몸을 거의 통째로 잃고 번식 구조와 영양분을 흡수하는 뿌리 모양 연결망을 남겼으며, 동굴의 물고기는 눈을 잃었다. 분화가 늘어나는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8DD는 번식이다. 한 세대가 자신을 다음 세대에 새로이 건네준다.

이 단계는 앞의 세 단계를 합친다. 수정란 하나는 다시 복제하고, 다시 자신을 유지하고, 다시 온몸을 분화시켜야 한다. 세대마다 처음부터 한 번 더 자라는 것이다. 유성생식은 이 과정에 한 가지를 보탠다. 서로 다른 두 개체의 정보를 다시 조합한다. 6편에서는 이것을 “우연의 제도화”라고 요약했다. 매 세대 두 배짜리 계산서를 치러야 한다. 무성생식만 하는 암컷의 자손은 모두 번식할 수 있는 딸인 반면, 유성생식에서는 자손의 절반이 수컷이다. 무성생식 계통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그런데도 복잡한 생명에서는 재조합이 거의 어디에나 있다. 이 ‘두 배’는 성비가 약 일대일이고 추가적인 부계 양육이 없으며 나머지 조건이 비슷하다는 모형의 비교다. 모든 유성생물이 내는 고정 청구서가 아니다.

여기서 사다리와 시간이 들어맞지 않는 지점 하나와 맞닥뜨린다. 사다리에서 분화는 7DD, 번식은 8DD다. 그러나 시간상으로는 진핵생물의 유성생식이 복잡한 다세포 몸보다 먼저 나타났다. 이 연재도 6편의 성을 먼저 쓰고, 8편의 다세포를 나중에 썼다.

들어맞지 않는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사다리가 묻는 것은 이것이다. 어떤 것이 온전한 번식이 되려면, 먼저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 분화할 수 있는 몸이 세대마다 처음부터 다시 자라는 것. 이것이 분화를 아우른 번식의 모습이다. 지구에서 어떤 일이 먼저 일어났는지는 시간의 일이다. 사다리는 거기까지 관여하지 않는다. 구조상 앞에 있다고 반드시 역사에서도 먼저 온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주기에는 첫 번째 주기에 없던 일도 일어났다. 5편에서는 세균 하나가 다른 세포에 삼켜진 뒤 소화되지 않고 미토콘드리아가 되었다. 8편에서는 세포들이 모여 함께 번식하는 몸을 이루었다. 16편에서는 일벌들이 모여 전체가 선택을 받는 벌집을 이루었다. 이 세 번의 사건에서 선택받는 단위의 층위가 바뀌었다. 이 연재는 이런 일을 상전이 현상이라고 불렀다. 이는 고도로 통합된 체계에서 더 큰 전체가 중요한 선택 단위가 된다는 뜻이다. 모든 사회성 곤충이 같은 전환을 겪거나 하위 수준의 선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상전이는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 일이 아니다. 같은 단계 안에서 일어난다. 선을 긋는 그 ‘자신’이 세포 하나에서 더 큰 세포 하나로, 세포 하나에서 몸 하나로, 몸 하나에서 벌집 하나로 바뀐다. 사다리는 바뀌지 않았다. 사다리에 서 있는 것이 바뀌었다.

4 세 번째 주기: 걸러지던 것에서 보는 것으로

세 번째 주기는 선택·감지·기억·예측이다. 앞의 둘은 화석의 결과와 기관으로 논의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뒤의 둘은 과정 자체가 직접 보존되기 어렵다. 그래서 여기서는 기억하고 예측하는 연구자로 시선을 옮긴다. 증거를 보는 창의 차이이지, 고대 동물에게 그런 능력이 없었다는 주장이 아니다.

9DD는 선택이다. 어떤 후손은 남고, 어떤 후손은 남지 못한다.

이 연재에는 선택의 가장 거친 형태를 다룬 글이 꼬박 세 편 있다. 14편의 페름기 말, 가장 유명한 수치는 해양 생물종의 96퍼센트가 멸종했다고 말한다. 그 글에서는 이 숫자가 어떻게 계산되었는지 살폈다. 18편의 백악기 말에는 공룡 가운데 새라는 한 가지만 건너갔다. 20편의 신생대에는 포유류가 비어버린 생태적 지위들을 채웠다.

선택의 법칙은 이 연재가 거듭 지키려 했던 단계다. 가장 잘못 쓰기 쉬운 단계이기 때문이다. 14편에서는 라우프가 쓴 작은 책의 제목을 인용했다. 《멸종: 나쁜 유전자 때문인가, 나쁜 운 때문인가》. 살아남은 것이 평소에 가장 뛰어났던 것은 아닐 수 있다. 20편 끝에는 이렇게 썼다. 자리를 기다리는 누구도 없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리도 없었다. 체에는 눈이 없다.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남기는지는 그 순간의 조건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면 조건은 또 바뀐다.

10DD는 감지다. 환경을 능동적으로 느끼고, 그 환경에 반응한다.

10편의 캄브리아기는 이 단계가 화석 속에서 가장 환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삼엽충의 겹눈에서는 작은 수정체 하나하나가 투명한 방해석 알갱이다. 결정의 광축은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정확히 향한다. 돌로 세상을 보는 동물들이었다. 한 가지 설명에 따르면 캄브리아기의 그 폭발은 눈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볼 수 있는 사냥꾼이 생기자, 보인다는 것은 곧 생사가 걸린 일이 되었다. 껍데기, 가시, 숨기, 위장이 한꺼번에 쓸모를 얻었다. 10편은 이 설명을 여러 설명 중 하나로만 다루었지, 정답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17편의 공룡 색깔은 감지를 다른 방향에 놓는다. 색의 의미는 흔히 다른 눈에 보인다는 데 있다. 구애, 경고, 숨기. 그런데 오늘날 연구자가 공룡 한 마리의 색을 복원할 때 기대는 것은 자기 눈이 아니라, 현미경으로 본 멜라노솜의 모양이다. 17편은 독자에게 결론을 두 번 읽으라고 했다. 두 번째로 읽을 때는 물어야 한다. 그때 선명한 노란색이 있었다면, 이 방법으로 그것을 볼 수 있었을까. 연구자의 감지는 한 층위에 있고, 그때 그 동물들의 감지는 다른 층위에 있다. 둘 사이에는 1억 년과 주로 멜라닌 관련 색을 포착할 뿐 전체 색을 보여 주지는 않는 대리지표가 놓여 있다.

11DD는 기억이다. 과거의 감지를 간직한다.

여기가 처음으로 주의해야 할 곳이다. 11편은 화석 기록을 목록이 아니라 체라고 했다. 숲에서 사슴 한 마리가 죽으면 거의 틀림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지층은 무언가를 남겨두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의 법칙이 말하는 것은 생명 하나가 자신의 과거 감지를 간직했다가 미래의 자신을 위해 쓰는 일이다. 암석 속에는 그런 ‘자신’이 없다.

지층은 흔적을 보존하지만 생물처럼 기억하지는 않는다. 읽는 사람이 암석에 자기 기억을 빌려준다. 석탄과 산호초에는 축적·보존 조건이 필요하다. 교란이 기록을 끊거나 깎을 수는 있지만 이후 모든 축적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15편은 크고 지속적인 체계의 회복이 늦어진 이유를 묻는다. 작은 암초나 국지적 퇴적을 지우는 말은 아니다. ‘연속이 없다’는 표현도 이 범위에서 읽어야 한다.

12DD는 예측이다. 과거의 양식으로 미래를 추론한다.

이 단계는 세 번째 주기를 합친다. 선택이 있고, 감지가 있고, 기억이 있어야 머리는 이미 일어난 일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고생물학 전체는 이 단계를 거꾸로 쓴다. 현재의 양식에서 과거를 거슬러 추론한다.

19편의 분자시계는 이 역추론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다. 두 종의 DNA가 얼마나 다른지 보고, 대체로 일정한 변화 속도를 적용해 언제 갈라졌는지 계산한다. 12편에는 이 역추론이 빗나간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생명나무대로라면 물고기에서 네발동물로 넘어가는 이행형 화석이 먼저, 네발동물의 발자국이 나중이어야 했다. 그런데 폴란드의 한 채석장에서 그 이행형 화석들보다 더 오래된 발자국이 나왔다. 추론의 잘못은 산수에 있지 않았다. 기록의 앞뒤가 곧 사건의 앞뒤라고 전제한 데 있었다.

1편 마지막 절의 제목은 바로 이 단계의 잔여항을 말한다. “표본 수는 하나인데, 도구도 그 하나에 맞춰 만들었다.” 우리는 한 종류의 생명만 보았다. 생명을 알아보는 데 쓰는 모든 도구도 그 한 종류에 맞춰 만들었다. 예측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는 과거가 얼마나 많은 양식을 내주었느냐에 달려 있다. 생명에 관해서 과거가 내준 것은 하나뿐이다.

이 주기를 묶어 보면 서술 시점이 움직인다. 걸러진 집단과 눈과 색에서, 불완전한 흔적을 기억하고 예측하는 연구자로 옮겨 간다. 이 글이 택한 관점이지, 화석으로 확정된 동물과 인간의 인지 경계는 아니다.

두 번째 주기에서는 주로 생명의 조직을 보았고, 세 번째 주기 후반에는 생명을 읽는 사람도 그림 안에 들어온다. 생명이 이 지점에서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읽는 우리가 그림 밖에 있는 척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5 네 번째 주기의 문 앞에서

네 번째 주기는 13DD, 자기 주체에서 시작한다. 예측이 일어날 뿐 아니라 ‘내가 예측한다’며 경험을 자기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23편은 카메라를 이 연재 자체로 돌렸다. 그 글에서 말했듯, 이 연재는 시작할 때 깎아내는 자의 자리를 사람에게서 떼어내려 했다. 자연선택이 형태 공간을 나눈다. 목적도 편견도 없지만, 구축된 틀은 그래도 닫히지 않는다. 이 말은 첫 번째 층위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두 번째 층위에서 깎아내는 자는 한 번도 다른 존재로 바뀌지 않았다. 분류하는 사람, 투표하는 사람, 도표를 그리는 사람, 이 스물세 편을 배열하는 사람이다.

황금못을 정하는 투표는 아주 작은 13DD의 장면이다. 한 무리의 사람이 암벽을 마주한다. 같은 돌의 어디에 못을 박을지 손을 들어 표결한다. 그 순간 그들은 지층을 예측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측하는 것이 자신임을 알고, 이 선을 자신이 긋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투표를 하고, 이유를 써 남긴다. 13DD의 선은 처음으로 선을 긋는 사람까지 화면 안에 그려 넣는다.

22편은 마이오세 유인원에서 멈추고 이후 인간 계통을 펼치지 않았다. 이 후기의 읽기 순서에서는 그렇게 자기라는 질문의 문 앞에 선다. 이는 서술의 경계이지 자기의 기원에 화석 연대를 매기거나 다른 동물의 관련 능력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이 되는가’를 묻는 순간 독자는 더욱 그림 밖에 숨을 수 없다.

14DD는 자기 목적 주체다. ‘나’를 알아볼 뿐 아니라 자기 방향과 가치를 알아보고 감당한다. 유한한 삶에서 왜 행동하는지 묻는 것은 한 가지 입구이지 주체 자격시험이 아니다. 그 질문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사람이 목적으로서의 지위를 잃지는 않는다.

돌아보면 본문이 경계한 서술도 이해된다. 나중의 도착점을 과거에 집어넣지 말자는 것이다. 일벌의 번식 분업에 도덕적 희생을 전제할 필요는 없고, 물고기의 팔다리가 미래의 육지라는 종착지를 위해 변한 것도 아니다. 비용과 기능을 논의할 수는 있지만 결과만으로 생물이나 계통 전체의 당시 의도를 써 줄 수는 없다.

여기서 목적은 주체가 자기 삶을 자기 일로 감당한다는 뜻이지, 모든 생물학적 기능이나 목표 지향 행동을 가리키지 않는다. 후대의 시선은 진화에 인간의 목적을 덧씌워 모든 변화가 오늘을 준비한 듯 그리기 쉽다. 이 틀에서 경계할 ‘식민화’는 그것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당시 생명들에게 열려 있던 가능성을 삼켜 버리는 일이다.

종의 멸종과 개체의 죽음은 같은 사건의 큰 판과 작은 판만은 아니다. 하나는 계통의 끝이고 다른 하나는 한 생명의 끝이다. 죽음을 성찰하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지만, 성찰하지 못한다고 죽음의 무게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연재는 주로 멸종과 지속을 따라왔으며, 주체가 자기 유한성을 마주하는 문제는 아직 펼치지 않았다.

14DD보다 위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이 연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편에도 쓰이지 않은 대상 하나가 있다.

6 사다리에는 모터가 없다

이제 첫머리에 놓아둔 말로 돌아가자. 사다리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다.

한 단계씩 위로 배열된 것은 한 단계씩 올라가는 과정으로 읽히기 쉽다. 복제에서 자기 유지로, 분화에서 번식으로, 선택에서 감지로, 기억으로, 예측으로, 그리고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동물로. 23편에서 해체한 그 행렬 그림, 유인원 한 마리가 조금씩 허리를 펴더니 사람이 되는 그림은 이런 독법을 그려놓은 모습이다.

이 연재에는 바로 그런 독법을 막아서는 글이 몇 편 있다.

7편, 지루한 10억 년. 거친 지구화학 곡선과 드문 화석 때문에 조용해 보일 수 있지만, 진핵생물의 새로운 변화가 멈췄다는 뜻은 아니다. 해상도가 낮으면 많은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사다리 비유가 쓸모 있으려면 역사 구간마다 상승을 요구하지 않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8편. 다세포성은 여러 번 생겼지만 분업의 정도는 크게 달랐다. 실이나 덩어리 형태로 아주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반드시 올라야 할 단 아래에 막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역시 온전한 역사다.

21편, 단순화. 한 편 전체가 아래로 내려가는 계통을 다룬다. 기생충은 소화관을 잃고, 동굴 물고기는 눈을 잃었다. 어떤 동물은 복잡한 몸에서 세포 몇 개만 남은 상태로 되돌아갔다.

15편, 공백기. 멸종 뒤 수백만 년 동안 여러 조사 지역에서 넓은 석탄층과 크고 복잡한 암초계가 부족하다. 전 세계에 석탄 흔적 하나나 작은 암초 하나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생명은 지속되었고, 긴 안정기를 필요로 하는 일부 축적·조직 방식이 더디게 회복되었다.

이 네 편을 합치면 이 사다리의 한 가지 구조적 성질이 드러난다. 각 단계의 잔여항은 다음 단계가 들어설 자리를 남기지만, 그 위로 밀어 올리지는 않는다.

이 틀에서 3DD부터 4DD로 넘어가는 대목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 있다. 간격의 잔여항이 인과의 자리를 벌려놓았다는 것이다. 공간 속 거리가 닫히지 않아 앞뒤의 문제가 남고, 거기서 인과가 세워진다. 같은 생각으로 뒤의 몇 단계를 읽어보자. 복제는 닫히지 않는다. 복사본에는 오류가 생기고, 환경에 닳아 사라진다. 그러면 자기 유지가 발을 디딜 자리가 생긴다.

자리를 연다고 추진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틀이 복잡성을 허용해도 역사가 반드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만들어진 뒤 단순해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30억 년의 자료가 비유에 주는 제약이다. 사다리는 의존관계를 정리할 수 있지만 진화에 모터를 달 수는 없다. 이는 증거에 제약받는 철학적 독해이지 화석이 DD 이론 전체를 입증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사다리에 대한 제약이자 보호이기도 하다. 사다리에 모터가 있다면 14DD의 목적은 5DD부터 이미 올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읽히고, 사다리 전체가 한 편의 목적론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 틀이 처음에 수행한 것은 오직 부정이었다. 그 위의 단계들은 하나하나 자라난 것이지, 부름을 받고 온 것이 아니다.

7 이 연재도 하나의 선이다

마지막으로, 이 연재 자체를 다시 사다리에 놓아보자.

이 연재가 하는 일은 첫 번째 주기에 놓인다. 선을 긋고, 배제하고, 간격을 재고, 인과를 알아보는 일이다. 이야기하는 대상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주기에 놓인다. 복제, 자기 유지, 분화, 번식, 선택, 감지, 그리고 화석이 우리 대신 남겨둔 그 조금의 것들이다. 이 연재를 쓰는 행위는 세 번째 주기의 마지막 단계에 속한다. 과거의 양식으로 과거 자체를 추론하는 일이다. 자신을 돌아본 글인 23편은 이미 13DD 위에 서 있다.

모든 단계에서 질문은 이어진다. 동일성에는 경계 사례, 분류에는 옛 칸 밖의 생명, 간격의 이름에는 다 담지 못한 지층, 인과에는 검증할 귀속이 남는다. 복제에는 전해지지 않은 것, 자기 유지에는 미해명 유전자, 분화에는 오래 단순한 계통, 번식에는 조건별 비용이 있다. 선택은 우연을 지우지 않고 감지는 대리지표를 쓰며 보존은 흔적을 거르고 예측은 제한된 증거로 나아간다. 잔여항은 만능의 ‘모른다’가 아니라 다음 구체적 질문의 입구다.

이것은 이 연재의 실패가 아니다. 이 틀에는 핵심적인 판단 하나가 있다. 구축된 틀에 잔여항이 있다는 것은 결함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구축된 틀이 닫히지 않는 까닭은 선을 긋는 동작 자체가 선 양쪽에 무언가를 남기기 때문이다. 사다리가 한 단계 자랄 때마다 선을 하나 더 긋고, 잔여항이 한 곳 더 생긴다. 열여섯 단계 뒤에도 마찬가지다.

23편 끝에서는 이 연재를 사다리 바깥에 서서 썼다고 했다. 다음 연재는 고인류를 다루기에 바깥에 설 수 없다고도 했다. 이제 이 말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이 연재가 쓴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주기다. 하지만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이미 세 번째 주기 위에 있다. 다음 연재에서는 어떤 동물이 어떻게 이 연재를 읽을 수 있는 자리에 이르렀는지를 쓰려 한다. 13DD를 쓰게 될 것이고, 14DD도 쓰게 될 것이며, 자신이 선을 긋는다는 것을 아는, 깎아내는 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이 후기에서 쓰지 않은 그 단계가 어쩌면 다른 모습으로 거기에 나타날지 모른다. 그에 앞서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이미 네 번째 주기에서야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했다. 이 스물세 편이 하나의 구축된 틀임을 알고, 그 틀은 사람이 그은 것임을 알며, 계속 읽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단을 외울 필요는 없다. 돌 하나, 깃털 하나, 이빨 하나로 돌아가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은 아직 보여 주지 않는지 물어보자. 다음 질문은 당신이 골라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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