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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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 108 · 하나의 세계 만들기

사마천,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어렵다

강요와 모욕 속에서도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에 길을 남기다.

1. 태사령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태사령이었다. 천문과 달력, 전해 오는 문헌과 옛 기록을 다루는 자리였다. 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피고, 사람이 무엇을 남겼는지 모으는 일.

아버지에게는 끝내지 못한 일이 있었다. 옛이야기들을 정리해 고금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쓰는 것. 기원전 110년, 한 무제가 봉선 의식을 거행했다. 「태사공자서」에 따르면 사마담은 황허와 뤄수이 사이 지역에 남아 참여하지 못했고, 울분 속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사명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그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울었다. 가문과 주나라 사관들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죽으면 그 일을 이어야 하며, 자신이 쓰고자 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미완의 일이 아들의 손으로 넘어왔다.

사마천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자신은 영민하지 못하지만, 아버지가 정리한 옛 기록을 모두 논술하여 감히 빠뜨리지 않겠다고.

아버지가 죽고 3년 뒤, 그는 태사령이 되어 궁중에 보관된 문헌을 읽고 정리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태초의 개력 작업에도 참여하며 저술을 계속했다. 여행에서 본 것, 서고에서 읽은 것, 아버지가 모은 자료가 조금씩 책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물려받은 부탁이었다. 그러나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판단까지 대신하지는 않는다. 어떤 자료를 믿을 것인가. 누구의 삶을 남길 것인가. 시대와 시대를 어떻게 이을 것인가. 아버지가 남긴 것은 완성된 책이 아니라, 아들이 계속 선택해야 할 일이었다.

2. 이릉

기원전 99년. 사마천은 이미 여러 해째 쓰고 있었다. 그러다 그 일의 대가를 바꾸어 놓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릉은 보병 5천 명을 이끌고 흉노를 공격했다. 한대의 기록은 압도적인 병력에 맞선 전투와 싸우며 물러나는 후퇴를 전한다. 마침내 화살이 떨어졌고 구원군도 오지 않았다. 포위를 뚫지 못한 이릉은 항복했다.

소식이 조정에 닿았다. 훗날 임안에게 쓴 편지에서 사마천은 돌이킨다. 앞선 전황에 잔을 들어 축하하던 이들이 이제 패장의 잘못을 물고 늘어졌다. 황제는 슬퍼하고 분노했으며, 신하들은 두려워했다.

무제가 의견을 묻자 사마천은 다른 말을 했다. 이릉과 가까운 친구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상대하며 힘을 다한 사람의 이전 행적을, 한 번의 패배가 모두 지워도 되는가. 살아남은 것은 한나라에 보답할 기회를 기다리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짐작했다.

충고는 충고로 들리지 않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무제는 그 말을 이릉을 두둔하고 이사장군 이광리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광리는 총애받는 후궁 이부인의 오빠였고, 황제가 의지하는 장수였다.

사마천은 사법 관리들에게 넘겨졌고, 끝내 황제를 속였다는 죄로 처벌받았다. 물음을 받고 자신의 판단을 말한 대답이 감옥과 형벌의 장치 속으로 들어갔다.

패장을 하나의 표지로만 만들지 않으려던 사람이, 이제 자기 삶을 하나의 죄명 속에 밀어 넣게 되었다.

3. 선택

감옥 안에서 갈 수 있는 길은 점점 좁아졌다.

「보임안서」에서 그는 집이 가난하여 형을 면할 재물이 부족했다고 쓴다. 교유하던 이들도 구해 주지 않았고, 곁의 가까운 사람들도 한마디를 해 주지 않았다고.

궁형, 또는 부형. 국가가 몸에 가한 잔혹한 손상이었다. 그는 그 형을 받았고, 이후에도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았다. 그의 ‘선택’을 말할 때는 선택지를 폭력으로 좁힌 강제의 조건도 문장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왜 그래도 살아 있는가. 책을 아직 다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긴 편지는 삶의 선언만은 아니었다. 임안은 재능 있는 사람을 추천하라고 권한 바 있었다. 사마천은 이 신분과 처지에 놓인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답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다. 향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말. 당시 사인 사회가 요구하는 죽음 앞에서 그는 자신이 남아 있는 까닭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 했다.

처형당했다면 아홉 마리 소에게서 털 하나가 빠지는 일이나 개미의 죽음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세상은 그를 절개를 지키다 죽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죄가 다하여 죽은 사람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죽는다고 곧 자기 삶을 해석할 권리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붙든 것은 마음속에 아직 다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아픔이었다. 글이 후세에 드러나지 못한 채 자신과 함께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뜻이 막힌 저술가들의 계보를 그렸다. 갇힌 문왕과 『주역』, 곤궁한 공자와 『춘추』, 쫓겨난 굴원과 「이소」, 눈먼 좌구명과 『국어』, 다리를 상한 손빈과 병법. 촉으로 옮기라는 명을 받은 여불위와 전해지는 『여람』, 진나라에 갇힌 한비와 「세난」·「고분」도 있었다.

이들은 마음에 맺힌 것이 있으나 자기 도를 펼칠 수 없었기에, 옛일을 서술하며 뒤에 올 사람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길이 막힌 자리에서 미래의 독자가 생겼다.

사마천은 자신도 그 미래 안에 두었다. 아버지의 부탁은 남아 있었지만, 자기만의 말을 이루는 일은 이미 자신의 바람이었다. 사람은 삶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가족을 생각한다고 그도 인정했다. 남아 있기 위해 그런 감정이 없음을 입증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미완의 책을 자신과 함께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 남아서 그 일을 맡는 것은 죽는 것보다 어려우면서도, 여전히 가고자 하는 길이 되었다.

4.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어렵다

형을 받은 뒤의 일상을 사마천은 편지에 썼다.

그 수치를 생각할 때마다 등에서 땀이 나 옷을 적신다고. 하루에도 창자가 아홉 번 뒤틀린다고. 고통은 한 번 일어난 뒤 과거가 된 사건이 아니었다.

집에서는 무엇을 잃은 듯 멍하고, 밖에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기에 모든 것을 평온하게 극복한 승자는 없다. 친구에게 아직도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몸의 손상과 사회적 모욕이 얽혀 있었다. 그는 형벌을 겪은 사람이 경멸받는 자리를 거듭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람 이하로 취급받는다고 해서 실제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수치는 상처를 주고 그 상처에 낙인을 찍는 질서에 속한다. 피해자가 마땅히 떠안을 이름이 아니다.

그는 나중에 중서령을 맡아 궁정에서 계속 일했다. 자신을 해친 권력 가까이에서 일이 이어졌다. 편지는 바깥의 직위와 안에서 겪는 삶 사이에 얼마나 깊은 거리가 있을 수 있는지 들려준다.

플라톤의 이야기에서 소크라테스는 탈출을 거부하고 죽음으로 간다. 사마천은 형을 견디고 글을 쓰기 위해 남는다. 한쪽의 지속은 장렬함으로 기념되고, 다른 쪽은 구차하게 생을 붙드는 일로 취급되었다. 둘을 나란히 놓으면 그 평가의 불균형이 드러난다.

죽은 사람은 깨끗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더럽다는 뜻이 아니다. 사마천을 더 큰 영웅으로 뽑을 필요도 없다. 모욕받은 사람에게도 존엄이 있다. 계속되어야 했던 삶 역시 이해받을 가치가 있다.

죽음의 이야기에는 흔히 닫히는 장면이 있다. 살아가는 이야기에는 내일과 모레, 아직 쓰지 못한 다음 장이 들어가야 한다. 그의 모든 날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는 계속 썼고,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 편지를 남겼다.

베토벤은 청력을 크게 잃은 뒤에도 작곡했고, 사마천은 형을 받은 뒤에도 역사를 썼다. 두 가지 지속되는 노동이 서로를 비춘다.

질병과 사법적 폭력은 다르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고통을 순전히 신체적인 것과 순전히 사회적인 것으로 나눌 수도 없다. 베토벤에게도 고립이 있었고, 사마천에게도 몸의 상처가 있었다.

몸의 고통에는 반드시 적응할 수 있고 사회의 고통에는 결코 적응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겠다. 더 작고 무거운 사실로 충분하다. 그는 아픔을 썼고, 역사도 계속 썼다. 작품이 존재한다고 그 상처가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5. 하늘과 사람 사이

그는 책을 이루었다.

『사기』. 「태사공자서」가 밝힌 규모는 130편, 52만 6,500자다.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인물의 생애를 길게 늘어놓은 책이 아니라, 역사를 보는 여러 방법이 함께 떠받치는 건축이다.

황제(黃帝)에서 한 무제 시대까지. 오래된 전승, 왕조의 흥망, 마침내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 이른바 3천 년이라는 넓은 시간이 한 편씩 들어가 읽을 수 있는 글이 되었다.

「보임안서」에는 유명한 바람이 있다.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꿰뚫으며, 일가의 말을 이루겠다는 것.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묻는다.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천명인가, 사람의 행동인가. 「백이열전」에서는 선한 사람이 굶주리거나 일찍 죽고, 폭력적인 자는 오래 산다. 이른바 천도는 옳은가, 그른가. 아름다운 인과응보 공식이 질문을 닫지 않는다.

고금의 변화를 잇는다. 제도, 전쟁, 재산, 개인의 선택이 어떻게 함께 국면을 바꾸는가. 표는 같은 때의 사건들을 견주게 한다. 서는 예악, 달력, 하천, 경제를 따라간다. 전기는 구체적인 사람 앞에 우리를 데려간다.

일가의 말을 이룬다. 물려받고 검토하며 자기 논술을 만든다. 자기 의견이라고 저절로 옳지는 않다. 다만 자료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더미로 남겨 두지 않는다.

이 연작의 말로 하면 세 가지 구축이다. 철학의 질문, 역사의 조직, 한 사람이 책임지려는 판단.

공자는 옛것을 전할 뿐 새로 짓지 않는다고 했고, 사마천도 옛일을 서술한다고 말했다. 계승과 창조는 서로 통하지 않는 방이 아니다. 고르고 배열하고 잇는 일 자체가 판단에 모양을 준다. 많은 편의 ‘태사공은 말한다’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직접 들린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와 문자 사이의 긴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사기』에서는 문서, 옛 소문, 조사, 인물의 이야기가 엮인다. 항우에게 항우의 이야기가, 유방에게 유방의 이야기가, 한신에게 한신의 이야기가 있다. 이름에 얼굴이 돌아온다.

항우는 졌지만 본기에 자리한다. 공자는 봉국이 없지만 세가가 있다. 진섭의 봉기는 실패했지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라는 물음은 남았다. 실제 정치적 지배, 역사적 영향, 문화의 계승이 서로 다른 척도로 자리를 마련한다.

항우의 비극을 쓴다고 그의 폭력과 자만에 대한 비판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유협이나 재산을 모은 사람을 기록한다고 모든 행동을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주의 깊게 보면서도 판단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목적이다’라는 말은 현대 윤리의 언어를 빌린 이 글의 독서 바람이다. 사마천이 칸트의 원리를 이미 썼다는 뜻은 아니다. 책에 더 가까이 가서 말하자면, 한 사람은 승패표의 기호로만 남지 않아도 된다.

6. 소크라테스 곁에

다시 두 사람을 나란히 놓아 보자.

『크리톤』에서는 친구가 탈출을 제안하고 소크라테스가 거절한다. 『파이돈』에서는 마지막 날의 대화와 죽음으로 들어간다. 플라톤의 목소리가 그 작별을 후대 독자에게 전한다.

사마천은 다른 물음을 가져온다. 중한 형을 받은 뒤 어떻게 살 것인가. 미완의 작업에 어떻게 미래를 줄 것인가. 그는 상처를 자유롭게 선택하지 않았다. 상처 뒤에도 할 수 있는 부분을 선택하려 했다.

두 사람 모두 바깥의 판결이 자신을 다 말하게 두지 않는다. 한 사람은 마지막 대화로 가고, 다른 사람은 책으로 돌아온다. 닮은 지속이 서로 다른 처지에서 모습을 얻는다.

소크라테스의 고집에도 긴 일상이 있었다. 독약을 마시는 몇 분 사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그가 죽은 뒤에도 대화는 쓰이고 읽히며 논쟁되었다. 그의 물음 모두가 죽음으로 완결되지는 않았다.

사마천의 일은 특히 구체적인 시간을 필요로 했다. 자료를 정리하고, 장을 쓰고, 목소리에 형상을 주어야 했다. 아들의 손이 아버지의 일을 이었고, 나중에는 독자와 필사자의 손이 다시 이어야 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투명한 대역이 아니다. 사마천은 직접 썼지만, 책을 보존해 줄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판단을 단순히 남에게 맡길 수 없듯, 책의 생존도 한 사람이 혼자 떠맡을 수 없다.

집중된 마지막 하루와, 정확한 길이를 확정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후반생. 한쪽에는 작별이, 다른 쪽에는 박수 없는 계속이 있다. 짧은 고통과 긴 고통의 경기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한 번 죽었고, 사마천은 하루하루 살아갔다. 이 문학적 대조가 비추려는 것은 다른 종류의 지속이다. 이해받지 못하는 날에도 남아서 계속하는 일.

7. 압박 속에서 만들기

이 연작에는 떠밀리고 재촉받고 제한받은 사람이 여럿 있다.

전승 속 윤희는 노자에게 글을 남겨 달라고 청한다. 월리스의 편지는 다윈이 오래 쌓은 연구 앞에 공동 발표와 우선권 문제를 놓는다. 전란은 두보의 시를 바꾸고, 청력 상실은 베토벤의 작업과 교류 조건을 바꾼다.

그러나 부탁은 강제가 아니며, 편지가 이론을 무에서 만들지는 않는다. 두보는 안사의 난 전에도 시인이었다. 베토벤은 병 때문에 음악을 얻은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궁형이 백지 같은 사람에게서 역사가를 제조하지 않았다. 사마천은 이미 쓰고 있었다. 여행과 독서, 관직의 경험, 아버지의 유언, 형성 중이던 판단을 함께 감옥으로 가져갔다.

형벌은 그가 자기 글쓰기를 이해하는 언어를 바꾸었다. 편지와 자서에서 곤경 속에 책을 쓴 선인들은 동행자가 된다. 미완의 책에는 자신과 함께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고, 그래서 일이 더욱 절실해졌다.

해하에서 사방의 초나라 노래를 듣고 우희를 향해 슬픈 노래를 부르는 항우. 잡힌 뒤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좋은 사냥개가 삶아진다고 말하는 한신. 독자는 여기서 사마천 자신의 처지가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울림이 창작의 원인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자료, 서사의 기술, 서로 다른 인물에 대한 판단도 그 장면을 만든다. 모두를 작가의 비밀 자서전으로 바꿀 수는 없다.

몸이라는 바탕이 끌에 깎이고 남은 것이 작품으로 들어간다는 말도 비유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겪은 일이 예전 설명에 다 담기지 않을 때, 아직 말하지 못한 것에 형상을 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두보는 삶의 갈라진 틈을 시로 가져온다. 베토벤은 달라진 조건에서 소리를 탐구한다. 사마천은 옛 기록과 자기 질문을 엮어 역사를 만든다. 모두 응답하지만, 상처가 대신 붓을 잡아 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없으면 깊이도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형벌의 칼에 감사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상처 뒤에 작품을 남기지 못한 사람의 삶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귀한 것은 사람의 노동이지, 다치게 한 힘이 아니다.

8. 그가 알 수 없었던 것

『사기』는 남았다. 사마천 생애의 마지막 부분은 그만큼 선명하게 남지 않았다.

죽은 해와 장소, 구체적인 사정은 확정하기 어렵다. 『한서』의 본전은 그의 일과 형벌, 나중의 관직을 기록하고 긴 편지를 보존하지만, 명확한 사망 기록을 주지는 않는다.

그토록 힘써 다른 사람을 기록한 이의 마지막 페이지가 비어 있다.

그는 책의 모든 미래를 미리 알 수 없었다. 『한서』는 죽은 뒤 책이 차츰 세상에 나왔으며, 선제 때 외손자 양운이 널리 퍼뜨렸다고 한다. 한 집안이 간직한 책에서 점점 더 많은 독자의 책상 위로 가는 길은 뒤에 오는 손들이 걸어야 했다.

전해진 텍스트에는 빠진 부분과 보충, 후대 편집의 흔적이 있다. 반고 등이 편찬한 『한서』는 기전체의 일부를 이어받되 통사가 아니라 한 왕조의 역사를 썼다. 이후 정사들도 다시 바꾸었고, 마침내 『사기』를 맨 앞에 둔 이십사사의 배열이 이루어졌다. 계승 또한 새로 만든다.

두보는 후대가 자신을 어떻게 시성으로 부를지 몰랐다. 바흐는 자기 음악이 어떤 미래로 들어갈지 몰랐다. 사마천도 2천 년 뒤 독자를 몰랐다. 후대의 영광을 모르는 것과 자기 삶 전부를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두보는 이룬 것 없이 눈물이 장마처럼 쏟아진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러나 한 행이 한순간을 품을 수는 있어도 삶 전체의 마지막 판결은 아니다. 바흐의 음악은 가족과 제자들을 통해 이어졌다. 사마천도 고통스러운 편지에서 이미 미래의 사람에게 희망을 보냈다. 실의와 열린 미래가 한 작품 안에 함께 있을 수 있다.

시와 푸가와 역사서는 만든 사람보다 오래 산다. 시간이 천재에게 자동으로 상을 주어서가 아니다. 가족과 필사자, 연구자, 출판자, 연주자와 독자가 남은 것을 거듭 다시 일어나게 한다.

『사기』는 아직 읽힌다. 2천 년은 그 고통을 청산하는 보상이 아니다. 그가 생각했던 ‘뒤에 올 사람’이 계속 도착하는 자리다.

9. 살아 있는 사람

이 연작이 상상하는 다리 어귀에 한 사람이 더 왔다.

마른 몸에 등이 조금 굽었다. 소크라테스는 가볍게, 칸트는 단단하게, 진시황은 뻣뻣하게, 워싱턴은 힘을 빼고 서 있다. 베토벤은 주먹을 쥐었고, 노자는 벌써 자취를 감춘 듯하다. 사마천은 아직 무언가를 짊어진 모습이다.

130편. 50만 자가 넘는 글. 옛 전승에서 한대까지 이어지는 시간. 아직 건네지 못한 일이 등에 무게를 남겼다.

그의 통증을 두보의 슬픔, 베토벤의 격렬함, 예수의 수난과 겨루게 할 수는 없다. 누구의 처지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대신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장렬한 작별에서 끝나지 않고 그 뒤 평범한 날들을 살아간 사람을 특히 바라본다.

책을 아직 다 쓰지 못했다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래서 남았다. 책으로 생존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는 뜻이 아니다. 책이 자신이 알아볼 수 있는 자기 길을 주었다.

두 사람에게 말을 시킨다면 이렇게 상상하고 싶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달아남으로써 내 이유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사마천은 말한다.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을 나와 함께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두 문장을 함께 들을 수 있다. 죽음으로 가는 지속과 남아서 쓰는 지속이 다리에서 서로에게 자리를 내준다.

깨끗한 죽은 사람과 더러운 산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을 다치고 명예를 심판받아도 사람의 자리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책은 이루어졌다. 천인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하며, 일가의 말을 이룬다. 바람이 글로 들어갔고, 글은 작가를 떠났다.

이 상상의 결말에서 그는 마침내 책을 내려놓고 다리의 저편으로 걸어갈 수 있다.

모습이 멀어진다. 사료가 알려 주지 않은 끝은 여전히 비어 있다. 책은 우리를 향해 열린다.

읽기 안내와 출처

아버지의 유언, 태사령 임명, 개력, 책의 편수와 글자 수는 『사기』 130권 「태사공자서」를 따랐다. 가계는 당사자의 자기 이해이며, 대대로 중단 없이 재직했다는 독립적 증거는 아니다. 출생·수형·성립·사망 시점의 불확실성을 정확한 나이나 이후 십수 년의 일지로 바꾸지 않는다.

이릉의 전투와 조정 반응은 『한서』 54권과 62권을 대조했다. 「보임안서」는 당사자의 설명이지 전체 재판 기록이 아니다. 속죄할 재물이 부족했다지만 50만 전이라는 액수는 적지 않는다. 형벌의 가능성은 모든 시기에 자유롭게 고르는 동일한 목록이 아니었다. 뒤에 이릉의 가족이 처형된 사건도 사마천의 형과 한순간으로 합치지 않는다.

편지의 집필 연대에는 이견이 있고 판본에 따라 글자가 다르다. 발분하여 저술한 선인들의 계보는 논증이지 각 책의 확정된 성립 연표가 아니다. 여불위와 한비는 『사기』 85권·63권을 참조했다. 천인·고금·일가의 말을 잇는 세 구절은 편지에 있다. 130편과 52만 6,500자는 자서가 보고한 수치로, 현존 각 판본을 새로 센 값이 아니다.

백이, 항우, 공자, 진섭의 배치는 현대적 도덕 순위표가 아니다. 본기·세가·열전에는 다른 역사적 기준들이 작용한다. 사람을 목적으로 보는 말, 끌질과 구축, 남는 것, 호메로스와의 대조는 이 글의 해석 언어다. 전승 과정의 결락과 보충 때문에 완성을 단 한 번의 최종 탈고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해하 장면과 한신의 발언은 『사기』 7권·92권에 있다. 인용문의 亨은 여기서 삶는다는 뜻이다. 작가 경험과의 공명이 수형 뒤 쓴 자서전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탈출 거부와 마지막 날은 각각 『크리톤』·『파이돈』의 장면이다. 영웅성이나 통증의 분량을 겨루지 않으며, 생존과 존엄을 작품 완성의 대가로 삼지 않는다.

『한서』 62권은 이후 중서령 재직과 점진적인 유포, 양운의 전파를 기록한다. 이전의 완전한 소실이나 작가가 평생을 실패라고 여겼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한서』는 기전체 요소를 이어받은 단대사다. 다리, 체형, 자세와 대화는 죽음의 사정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이다. 두보의 인용구는 「배 안에서 병으로 베개에 엎드려 마음을 적은 삼십육 운을 호남의 친척과 벗들에게 드리다」에서 가져왔으며, 『전당시』 233권에 실려 있다.

『사기』 130권: 태사공자서 · 『한서』 62권: 사마천전과 보임안서 · 『한서』 54권: 이광소건전과 이릉의 행적 · 『사기』 61권: 백이열전 · 『사기』 7권: 항우본기 · 『사기』 47권: 공자세가 · 『사기』 85권: 여불위열전 · 『사기』 63권: 노자한비열전 · 『사기』 92권: 회음후열전 · 플라톤: 『크리톤』 · 플라톤: 『파이돈』 · 『사기』 48권: 진섭세가 · 『한서』 61권: 장건이광리전 · 두보: 「배 안에서 병으로 베개에 엎드려 마음을 적은 삼십육 운을 호남의 친척과 벗들에게 드리다」(『전당시』 233권)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