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안내: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작은 같은 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로 읽을 수 있으며, 설정과 시간 관계, 지나치게 단정적인 표현 일부를 다듬었다. 이 한국어판의 작품 속 대사는 별도로 옮긴 것으로, 공식 한국어 자막이나 정발본의 문구가 아니다.
벽이 무너지고 수백만의 거인이 걸어 나온다.
뛰지 않는다. 걷는다.
아마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일 것이다. 동시에 가장 꼼꼼히 뜯어봐야 할 일이기도 하다. 무엇을 했는지를 뜯어보려는 게 아니다. 무슨 근거로 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먼저 그의 이유를 끝까지 말해 보자
어떤 이유를 평가하려면, 먼저 그 이유를 가장 강한 형태로 제시해야 한다.
에렌이 처한 상황은 실제였다. 파라디섬 앞에서는 마레를 중심으로 국제 군사 동맹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피해망상이 아니었다. 빌리 타이버는 각국의 주요 인사 앞에서 공개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세계 연합 함대는 실제로 집결하고 있었고, 마레는 실제로 공격했다. 섬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멸망할 위험은 현실이었다.
에렌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것도 있었다. 미래의 기억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보았다.
그는 한 번 이긴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고 믿었다. 이번 공격을 막더라도 바깥세상의 섬 주민을 향한 적의가 곧 사라지지는 않는다. 미래의 기억은 이 판단에 보통의 예측에는 없는 무게를 실어 주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앞으로 일어날 중요한 장면의 조각들이었다. 가능한 모든 미래를 담은 완전한 지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내놓은 방안은 이렇다. 바깥세상의 기술, 군사력, 경제를 파라디섬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려 놓는다. 다시는 이곳을 위협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려면 인류의 약 80퍼센트를 짓밟아 죽여야 한다. 20퍼센트만 남긴다.
이것이 그가 제시한 이유다. 먼저 인정해야 한다. 외부의 위협은 실제였고, 에렌이 미래의 기억 조각을 본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에 관한 말이다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이 글 전체는 그 구별에 달려 있다.
눈앞에는 사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지금 벌어지는 전쟁이다. 세계가 전쟁을 선포했고, 함대가 왔고, 섬은 공격받고 있다. 현재의 문제이며, 구체적이고, 진행 중이다.
둘째는 영원에 관한 판단이다.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수십 년 뒤에도 다시 온다. 이 일에는 끝이 없다. 이것은 미래에 관한 말이다.
땅울림은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대응이 아니다.
근거는 간단하다. 땅울림은 시작하자마자 집결 중이던 세계 연합 함대를 빠르게 파괴했다. 눈앞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는 일과, 사람이 사는 대륙을 계속 짓밟는 일은 이미 규모와 차원이 다른 행동이다.
그런데도 에렌은 계속 걸었다. 인류의 80퍼센트가 짓밟혀 죽을 때까지.
그러므로 땅울림을 실제로 떠받친 이유는 애초부터 ‘그들이 지금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가 아니었다.
‘그들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였다.
왜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이유가 될 수 없는가
예방 전쟁에 흔히 제기하는 반론은 앎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계산이 틀릴 수 있다는 말이다. 상대가 나중에 공격하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늦지 않을 수도 있다. 역사에서 이 명분을 내세운 전쟁은 나중에 보면 대다수가 잘못된 계산이었다.
이 반론은 에렌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가 다루는 것은 평범한 추측이 아니다. 이미 자기 기억 안으로 들어온 미래의 조각들이다. 그렇다고 그 조각들을 통해 모든 가능성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의 증거를 가장 유리하게 해석해 주더라도, 아래의 문제는 남는다.
그러니 더 단단한 이유가 필요하다. 예측이 완전히 정확한 경우에도 여전히 성립하는 이유여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아직 그 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일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남아 있다.
예측에 따라 먼저 손을 쓰면 위협 하나만 제거하는 게 아니다. 다른 것도 함께 없앤다. 그 사람이 그런 위협이 되지 않을 기회를 없앤다.
누군가 장차 가해자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그를 먼저 피해자로 만든다. 그러면서 그가 그 길에 들어서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마저 함께 없애 버린다.
추상적인 도덕 명제가 아니다. 작품은 스스로 살아 있는 증거를 내놓는다. 그것도 아주 일찍.
가비는 변했다
가비가 파라디섬에 온 목적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섬에 악마가 산다고 굳게 믿었다. 이미 사람을 죽였고, 언제든 또 죽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앞선 글에서 그녀의 논리에 얼마나 빈틈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가비는 선전 문구를 건성으로 되풀이한 게 아니다.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 판단으로 내면화했고, 그 믿음을 위해 죽을 각오도 되어 있었다.
‘미래에 반드시 가해자가 될 사람’이라는 판단이 합리적으로 들어맞을 인물을 하나 꼽는다면 가비다.
그러다 한 농가에서 그녀를 받아 준다. 가비는 그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일하고, 빨래한다. 그 집 소녀와 친구가 된다. 그들이 다투는 모습도, 아픈 사람을 돌보는 모습도 본다. 그 ‘악마’들이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는지 본다.
그녀의 세계는 한 번 통째로 무너졌다. 그러고는 새로 자라났다.
나중에 가비는 땅울림을 막는 편에 선다.
가비는 이 작품이 에렌에게 내놓은 가장 완전한 반박이다. 그 변화는 땅울림보다 먼저 일어났다.
에렌은 이 일을 보았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땅울림이 끝나기 전에 가비는 이미 그것을 막는 편에 서 있었다. 그 사실 자체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원래 계획대로 계속 나아갔다.
그가 속인 것은 마레가 아니다
두 번째 문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에렌이 주로 속인 상대는 적이 아니었다.
자기편이었다.
그는 아르민에게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미카사에게도, 함께 시체 더미를 헤치고 살아 나온 조사병단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을 밀어냈다. 일부러 모진 말을 했고, 일부러 미움받을 사람이 되어, 곁에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는 예거파를 이용했다. 가장 충성스럽고, 그를 위해 가장 기꺼이 죽으려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에렌을 따랐고, 에렌의 앞길을 치웠으며, 에렌을 위해 자기편을 죽였다. 하지만 전체 계획은 몰랐다.
그는 자기편을 전체를 알 필요 없는 실행 부대로 만들었다.
전쟁에서 적을 속이는 일은 정상이다. 전쟁의 일부다. 자기편을 속이는 일은 다른 문제다. 자기편은 그를 멈춰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 통로를 끊은 것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무도 자신을 막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대하는 역할까지 그가 정해 놓았다
세 번째 문제는 더 철저하다.
에렌은 자신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의문을 제기할 사람들의 각본까지 써 두었다.
그의 구상은 이렇다. 친구들이 자신을 막으러 나서고, 자신을 죽인다. 그러면 그들은 ‘악마를 죽인 영웅’이 된다. 전쟁이 끝난 뒤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 에렌은 전투 중 일부러 여력을 남겼고, 일부러 그들에게서 거인의 힘을 빼앗지 않았다.
그러니 친구들이 달려들어 그를 막는 일 자체가, 그가 마련한 계획의 한 단계였다.
반대자까지 계획 안에 배치해 놓았다면, 그 계획에는 더 이상 바깥이 없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계획과 올바른 계획은 겉에서 보면 똑같다. 차이는 오직 한 곳에 있다. 혹시 틀렸을 때 누군가 멈추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에렌에게는 이의를 거부할 이유가 누구보다 충분했다. 정말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집만 부리는 게 아니었다. 확실한 증거를 쥐고 있었다.
확신은 의문을 거부할 가장 좋은 이유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가장 위험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었는가
이 대목에서는 반대편의 주장에도 충분히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서 한 말은 전부 공허해진다.
없었다.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깨끗한 것은 정말 하나도 없었다.
히스토리아를 이용하는 방안은 그녀가 계속 아이를 낳아 거인의 힘을 대대로 넘기게 하는 것이었다. 여성 한 사람을 그저 생식 기관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땅울림보다 먼저 제시되었고, 더 비열하기도 했다.
지크의 방안은 모든 엘디아인에게서 생식 능력을 없애 이 민족을 조용히 멸종시키는 것이었다. 말을 바꿔 놓았을 뿐, 집단 학살이다.
외교라는 길은 빌리 타이버가 온 세계 앞에서 선전포고한 순간 닫혔다. 섬 사람들에게는 백 년 동안 자신들을 미워해 온 세계를 설득할 힘이 실제로 없었다.
이 반론들은 모두 성립한다.
하지만 판단 기준은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는가’에 있지 않다. 인류 역사에서 거의 모든 대규모 살육에 앞서 ‘다른 방법은 없다’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말을 한 사람들도 대개 진심이었다. 너무나 쓰기 편한 말이다. 너무 잘 통하기 때문에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기준은 다른 데 있다.
에렌은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없도록 만드는 데 몇 년을 썼다.
그는 숨겼다. 조종했다. 대안을 내놓을 법한 사람은 모조리 밀어냈다. 자신과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아르민과의 마지막 대화는 에렌이 죽기 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에렌은 그 대화의 기억을 지웠고, 자신이 죽은 뒤에야 아르민에게 돌아오게 했다. 그 대화는 서로 계속 묻고 반박하며 계획을 다시 검토하는 공동의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가능한 선택지를 단 하나로 줄여 놓은 사람이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인 이유는, 그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네 가지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사실 아주 소박한 규칙 네 가지다.
하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지금 손쓸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 사람에게는 아직 그 일을 하지 않을 기회가 있고, 먼저 손을 쓰는 순간 그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둘. 수단은 ‘당장의 위협을 없애는 것’을 넘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영원히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과, 지금 공격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셋. 자기편에게 숨겨서는 안 된다. 너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편뿐이다.
넷. 멈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한다. 그 역할마저 네가 짜 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이 네 가지는 도덕적 요구가 아니라 설계상의 요구다. 동기가 깨끗한지도, 예측이 정확한지도 묻지 않는다. 오직 한 가지를 묻는다. 그 계획에는 ‘내가 틀렸다’는 말이 들어설 자리가 있는가.
에렌의 계획에는 네 가지 중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 글에서
그런데 이 계획은 성공했다.
인류의 80퍼센트가 죽었고, 파라디섬은 살아남았으며, 친구들은 영웅이 되었다. 그가 원한 것은 모두 손에 들어왔다.
다음 글에서는 그 뒤에 일어난 일을 다룬다. 한자리에서 이미 이천 년을 기다린 사람을 다룬다. 그리고 이 연작이 마지막으로 물으려는 질문을 다룬다. 이긴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 연작은 만화와 TV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텍스트로 삼는다. 결말이 창작 기법상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평가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이야기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