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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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애니메이션 · 『진격의 거인』
전체 5편 중 3편

그는 한 번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아홉 거인 가운데 진격의 거인에게는 다른 거인에게 없는 특성이 하나 있다. 미래 계승자의 기억을 받을 수 있다.

Aug 31, 2026 · Han Qin (秦汉)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스포일러 주의: 원작 만화 전권과 TV 애니메이션 완결까지의 설정, 인물의 죽음과 결말을 다룹니다.

한국어판 안내: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작은 같은 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로 읽을 수 있으며, 설정과 시간 관계, 지나치게 단정적인 표현 일부를 다듬었다. 이 한국어판의 작품 속 대사는 별도로 옮긴 것으로, 공식 한국어 자막이나 정발본의 문구가 아니다.

그리샤는 레이스가의 지하실에 서 있다. 손에는 칼이 있다.

눈앞에는 한 가족이 있다. 아이들도 있다.

그는 멈춘다. 도저히 할 수 없다.

그때 그의 기억 속에 누군가 나타나 앞에 선다. 그 일을 하라고 재촉한다.

그 사람은 미래에서 온 그의 아들이다.

앞을 볼 수 있는 힘

아홉 거인 가운데 진격의 거인에게는 다른 거인에게 없는 특성이 하나 있다. 미래 계승자의 기억을 받을 수 있다.

다른 거인의 힘은 뒤만 돌아볼 수 있다. 계승자가 얻는 것은 앞선 계승자들의 기억이다. 오직 진격의 거인만이 미래의 계승자로부터 기억의 조각을 전해 받을 수 있다.

이 설정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크루거라는 남자에게서다. 그리샤에게 거인의 힘을 넘기면서 그는 이상한 말을 한다. “미카사와 아르민, 모두를 구하고 싶다면.”

그때는 미카사도, 아르민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샤는 그 두 이름을 모른다. 크루거는 더더욱 알 리가 없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대신하고 있다.

이후 레이스가의 지하실에서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 이번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에렌 자신이다. 그리샤가 손을 쓰지 못하자 에렌은 그 기억 속에 나타나 아버지가 끝까지 해내도록 몰아붙인다.

그리샤는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는다.

그가 그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또 다른 기억 속의 지크에게 몸을 돌려 에렌을 막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기 기억 속에서 아들이 어떤 사람이 될지 본다. 그리고 다른 아들에게 그 아이를 막아 달라고 빈다.

카를라

이제 이 작품에서 글로 다루기가 가장 어려운 대목이다.

에렌의 어머니 카를라는 초대형 거인이 벽을 부순 날 죽었다. 거인에게 붙잡혀 먹혔고, 에렌은 곁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그 죽음은 평생 그를 지배한 모든 증오의 시작이었다. 그가 이를 악물 때마다 떠올린 이유였다.

나중에 우리는 그녀를 먹은 거인이 디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디나는 원래 그곳으로 향하려던 게 아니었다. 원래는 베르톨트를 먹었을 것이다.

베르톨트를 먹었다면 초대형 거인은 아르민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 뒤로 이어질 길이 끊어진다.

그래서 에렌이 그녀의 방향을 틀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에렌은 ‘길’을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 거인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냈다. 자기 어머니 쪽으로.

이 대목에서 많은 독자가 바로 등을 돌렸다. 앞서 아무 복선도 없던 내용이라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다는 이유였다. 그 불만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를 어떻게 썼느냐를 두고 벌이는 논쟁이다. 이 연작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그 대목이 무엇을 뜻하는지만 다룬다.

뜻은 이렇다. 에렌은 자신이 본 길을 보존하려고 자기 어머니마저 소모했다.

더 서늘한 층위도 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의 모든 동기의 근원이다. 거인을 미워한 이유, 밖으로 나가려 한 이유, 끝내 마지막 행동에 이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그날에 닿는다.

그런데 그날을 마련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는 그 길을 실행에 옮기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그 길에 들어설 이유까지 스스로 만들어 냈다.

최초의 원인이 없다

이제 이 닫힌 고리를 펼쳐 보자.

에렌은 왜 땅울림을 일으켰는가? 미래의 기억에서 자신이 땅울림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 모습을 보았는가? 실제로 그 일을 했기 때문이다.

왜 그 일을 했는가?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출발점이 없다. ‘여기서부터 그가 결정하기 시작했다’고 짚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많은 사람은 이것이 작품의 가장 큰 허점이라고 본다. 나는 오히려 반대로 읽고 싶다. 이것은 허점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부자유가 띠는 정확한 모양이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실히 안다고 믿는 순간, ‘내가 이렇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미 죽는다. 남는 것은 실행뿐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는 선택하는 대신 점검표를 대조한다.

다른 점은 보통 사람이 가진 ‘미래’는 추측이라는 것이다. 추측이 틀렸다면 돌아설 수 있다. 에렌이 가진 미래는 진짜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돌아설 가능성을 잃었다.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은 유일한 사람

이 작품에서 거의 모든 사람은 생각을 바꾼다.

라이너는 자신을 둘로 찢어 놓았고,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입으로 되풀이해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가비는 섬의 ‘악마’가 사실은 밥을 짓고 말다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직접 본다. 그녀의 세계는 한 번 완전히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진다. 아르민은 내내 흔들린다. 미카사도 생각을 바꾼다. 히스토리아는 죽고 싶어 하던 소녀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된다. 지크는 마지막에 평생 붙들었던 계획을 뒤집는다.

오직 에렌만 첫 화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번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우리는 대개 ‘흔들리지 않는다’를 미덕으로 읽는다. 굳세고, 순수하며, 바깥의 소란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 에렌에게는 분명 그런 면이 있다. 오랜 세월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를 좋아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맥락 안에 다시 놓고 보면, 그것은 다른 모습이 된다.

한 번도 생각을 바꾼 적 없는 사람은 의지가 강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을 내리는 일을 그만둔 사람일 수도 있다.

결정에는 전제가 있다. 결과가 두 가지일 수 있어야 한다. 정말로 반대편을 택할 가능성이 있어야 선택도 의미가 있다. 이미 읽은 각본을 따라 한 걸음씩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의 행동은 결정과 똑같이 보인다. 갈등하고, 망설이고, 괴로워하며, 울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정이 아니다. 실행하는 동안 일어나는 감정이다.

첫 화부터 자유를 외친 사람이, 작품 전체에서 단 한 번도 선택한 적 없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 자신도 모른다

여기서 정면으로 답해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에렌에게는 정말 선택이 있었는가?

여러 해 논쟁이 이어졌다. 어느 쪽이든 작품 속 문구를 근거로 내놓을 수 있다.

한쪽은 에렌의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를 인용한다. 다른 쪽은 TV 애니메이션의 마지막에 에렌이 아르민과 나눈 대화를 가져온다. 에렌은 자신이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바보라고 말한다.

작품은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나는 작가가 게으름을 피운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이 답하지 않는 이유는 에렌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로 자기 행동을 설명해 온 사람은 어느 순간 정말로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거짓말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려면 먼저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 안에서 ‘해야만 한다’와 ‘하고 싶다’가 여러 해에 걸쳐 한 몸처럼 자란 것이다. 이제 둘 사이의 틈은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질문은 안에서 물어서는 답을 얻을 수 없다. 자기 바깥으로 나가서 방금 떠오른 생각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 검사할 수는 없다.

그러니 마지막 대화에서 에렌이 횡설수설하는 것은 글이 무너진 탓이 아니다.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가, 그냥 하고 싶었다고 했다가,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그 모습 말이다.

바로 그 상태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 증거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다

다만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사실도 하나 있다.

에렌은 실제로 미래의 기억에 접한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며, 그 조각들을 최종적인 방안으로 만든 유일한 사람이다.

그가 하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 “이럴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은 없다”는 말은 모두 한 가지 증거 위에 서 있다. 그런데 그 증거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그것을 보여 준 적 없다. 보여 줄 수 없기도 하다. 꺼내 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여 주려고 시도한 적도 없다.

아르민도 대조해 볼 수 없다. 미카사도 그럴 수 없다. 에렌을 따라가는 조사병단 사람 가운데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한 사람이 자신만 볼 수 있는 증거를 쥐고, 그 증거로부터 끌어낸 결론을 모두에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지금은 이 문장을 읽어도 조금 불편한 정도일 것이다. 다음 글에서 이것은 연작 전체에서 가장 무거운 문제가 된다.

그는 그 아이의 이름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작은 일 하나를 놓아 두자.

에렌은 마레에서 램지라는 아이를 만난다. 가난한 난민 아이는 앞서 에렌의 동료들에게서 물건을 훔쳤다. 에렌은 나중에 구타당하는 그 아이를 구해 준다. 잠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름을 알게 되고, 가족의 모습도 보게 된다.

그 뒤 땅울림이 그 땅을 짓밟고 지나간다.

땅울림에 짓밟힌 수많은 사람 가운데 이 아이만큼은 숫자가 아니었다. 에렌은 그 아이의 이름을 알았다.

다음 글에서

그렇다면 에렌이 제시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는 이유를 제시했다. 증거만 놓고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확실한 개전의 이유였다. 추측도, 짐작도, 정세를 보고 내린 판단도 아니었다.

그는 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그 이유를 다룬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옳았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다룬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지금 행동에 나설 이유로 삼아도 되는가.

이 연작은 만화와 TV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텍스트로 삼는다. 결말이 창작 기법상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평가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이야기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