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안내: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작은 같은 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로 읽을 수 있으며, 설정과 시간 관계, 지나치게 단정적인 표현 일부를 다듬었다. 이 한국어판의 작품 속 대사는 별도로 옮긴 것으로, 공식 한국어 자막이나 정발본의 문구가 아니다.
‘길’이라 불리는 곳에 작은 소녀가 있다. 벌써 이천 년째 그곳에 서 있다.
소녀는 모래를 쌓는다. 쌓고 또 쌓아서 사람 모양을 만든다. 그 모양들은 거인이 되어 바깥세상으로 보내진다.
소녀는 이 일을 이천 년 동안 해 왔다.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유미르 프리츠는 노예였다.
부족 안에서도 맨 아래에 있었다. 어느 날 우리에 있던 돼지를 풀어 주었고, 사냥감이 되어 숲으로 쫓겼다. 목숨을 구하려다 속이 빈 커다란 나무 안으로 떨어졌다. 그곳에서 무언가와 접촉한 뒤,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얻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그 힘으로 프리츠 왕을 위해 산을 깎고 길을 냈다. 영토를 넓히고 적을 짓밟았다. 그의 딸 셋을 낳았다. 마지막에는 프리츠 왕을 향해 창이 날아왔고, 그녀는 몸을 날려 막았다.
그렇게 하라고 명령한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죽자 프리츠 왕은 힘을 이어 가려고 세 딸에게 그녀의 몸을 먹였다. 유미르 자신의 의식은 그곳에 남았다. 엘디아인을 위해 계속 거인을 만들었다. 이천 년 동안.
이제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할 차례다.
그녀는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길에는 경계가 없다. 그곳에서 그녀가 가진 힘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세계의 모든 거인을 그녀가 빚어냈다. 감방도 없고 쇠사슬도 없다. 곁에 서서 감시하는 사람도 없다. 프리츠 왕은 진작 죽었다. 죽은 지 이천 년이 지났다.
그녀는 언제든 멈출 수 있다. 그런데 이천 년 동안 멈추지 않았다.
왜인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거부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숲으로 쫓겨 들어간 날부터 평생 동안, ‘아니’라고 하는 행동이 눈앞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 그래도 되는 줄 모르는 것이다.
가장 철저한 지배에는 간수가 필요 없다. 누군가 거부하는 모습을 그 사람이 한 번도 보지 못하게 하면 된다.
앞선 네 글에서 다룬 모든 것이 결국 이곳을 가리킨다. 지워진 역사, 서로 차지하려던 자리, 한 사람만 볼 수 있는 증거. 그것들이 하는 일은 하나다. 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서 ‘아니’라고 하는 행동을 없애는 것이다.
이천 년 동안 아무도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
길에는 어느 시대에나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조의 거인을 계승한 역대 왕들, 역대 계승자들은 그곳에서 그녀를 보았다. 지크도 갔고, 에렌도 갔다.
그런데 이천 년 동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얻으러 왔다.
힘을 달라. 거인을 달라. 이 명령을 전달해 달라. 이 위대한 계획을 이루어 달라.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에렌이 처음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신도 악마도 아니라고, 그저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거냐고.
이 말은 작품 전체에서 에렌이 한 가장 좋은 일이다. 그 점은 분명히 말할 가치가 있다.
다만 나머지 절반도 함께 말해야 한다. 그가 물은 것 역시 그녀가 가진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협력이 필요했고, 그 힘이 필요했다. 에렌은 그녀의 안부를 보러 길에 간 것이 아니었다.
두 사실은 동시에 참이다. 서로를 상쇄할 수도 없다. 에렌은 그녀를 사람으로 본 유일한 인물이다. 동시에 무언가를 얻으러 온 또 한 사람이다.
에렌이 미카사에게 했던 말
파라디섬의 한 식당에서 에렌은 미카사에게 이 작품에서 가장 무거운 말을 한다.
미카사가 줄곧 자신을 따른 이유는 아커만 일족의 본능 때문이라고 한다. 두통도, 복종도, 여러 해 동안 자신을 위해 해 온 모든 일도 그녀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한다. 피에 새겨진 무언가가 작동했을 뿐이라고.
그는 그녀를 노예라고 부른다.
이 말이 치명적인 것은 모욕적이어서가 아니다. 그 말이 무효로 만드는 것은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평생 내린 모든 선택은 그녀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그녀는 여러 차례 그를 구했고, 그를 위해 사람을 죽였으며, 자기 전부를 걸었다. 그 모든 것이 본능이었다면, 그녀는 그런 일들을 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힘에 떠밀려 그 일들을 끝마친 몸일 뿐이다.
유미르의 처지도 같다. 유미르 역시 이천 년 동안 그런 시선 속에 있었다. 그녀가 바친 것은 인정받지 못한다. 그저 하나의 기능일 뿐이다.
미카사는 이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
반박할 방법도 없다. 자기 사랑이 본능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런 혐의는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일을 한다.
본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그를 죽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곁에 남겨 두고 싶은 사람을 죽였다. 그가 아직 살아 있고, 구할 수 있고, 함께 걸어갈 기회도 남아 있을 때였다. 그녀는 그의 목을 벤 뒤 입을 맞추었고, 그 머리를 안고 나왔다.
‘복종할 줄밖에 모른다’고 불린 사람이, 복종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그 혐의에 가능한 유일한 대답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본능은 그를 지키고, 따르고, 그를 위해 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본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가 살아 있기를 가장 간절히 바라는 순간, 제 손으로 그의 삶을 끝내는 것이다.
그 순간 일어난 일을 유미르는 길에서 모두 보았다.
그러고는 웃었다. 그러고는 사라졌다. 그러고는 거인의 힘이 이 세계에서 사라졌다.
그 사이에 어떤 원리가 작동했는지를 두고 독자들은 여러 해 논쟁했다. 작품도 하나의 답으로 못 박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는 분명하다.
유미르는 프리츠 왕에게 무언가를 걸었다. 사랑인지 다른 무엇인지 선뜻 이름 붙이기 어렵다. 어쩌면 평생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것을 그에게 걸었고, 이천 년 동안 거두지 못했다. 창을 막은 것은 강요당해서가 아니었다. 자기 스스로 몸을 날렸다. 그래서 스스로 풀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 구해 주러 오기를 기다린 게 아니었다. 누군가 직접 해 보이기를 기다렸다.
이천 년 동안 기다린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아니’라고 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었다.
그래도 전쟁은 돌아왔다
땅울림이 멈췄다. 인류의 80퍼센트가 죽었다. 거인의 힘이 사라졌다. 에렌이 죽었다.
파라디섬은 지켜졌다.
에렌의 계획대로라면 성공이다. 원한 것을 전부 얻었다. 섬을 지켰고, 친구들은 악마를 죽인 영웅이 되어 전후에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만화의 마지막에 추가된 몇 페이지가 있다.
파라디섬은 안전한 곳이 되지 않았다. 스스로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섰다. 계속 무장했고, 여전히 자신을 미워하는 세계에 맞섰다. 시간이 흘러 화기가 발달했고, 섬은 파괴되었다. 그림에는 폐허가 남는다.
그는 이겼다. 그러고는 졌다.
여기서 ‘졌다’는 것은 군사적 패배를 뜻하지 않는다. 군사적으로 그는 완벽하게 이겼다. 전례가 없을 만큼 이겼다.
패배란, 승리를 거두는 동안 그 땅이 스스로 망가졌다는 뜻이다.
억압에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구조적인 위험이 있다. 저항하려면 사람을 동원해야 하고, 규율이 필요하며, 결정을 한곳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억압자가 쓰는 것과 같은 부품들이다. 저항하는 사람은 저항하는 동안 자신이 맞서려던 바로 그것이 되기 쉽다.
에렌은 파라디섬을 자유롭게 하려고, 파라디섬을 무력으로만 말할 줄 아는 곳으로 만들었다.
인류의 80퍼센트를 죽여 얻은 것은 작품이 길이를 밝혀 주지 않는 유예 기간이었다. 추가 페이지는 멸망의 원인이 처음과 정확히 같은 증오였음을 증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폭력이 영원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보여 준다.
아르민은 다른 일에 평생을 건다
TV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대화에서 아르민은 땅울림의 죄를 자신도 짊어지겠다고 말한다. 그 책을 에렌에게 보여 준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에렌에게 알려 준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임을 받아 든다. 그 자리는 이 작품에서 누군가 자기 뜻으로 걸어 들어간 유일한 자리다. 아무도 그를 배치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가 그러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이후에 들어선 협상의 길을, 남은 생을 걸어야 할 일로 읽는다.
막 인구의 80퍼센트가 짓밟혀 죽은 세계에서, 그는 바깥의 연합국을 대표하는 평화 사절로 파라디섬을 향한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다. 에렌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건너뛴 바로 그 일이다. 아르민의 이후 삶을 관통하는 일이 있다면 나는 이것이라고 본다.
작품은 아르민이 평생 했을 협상 하나하나의 성공이나 실패를 알려 주지 않는다. 얼마만큼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전쟁이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만 보여 준다.
그렇다면 에렌이 옳았다는 뜻인가?
아니다.
먼 훗날의 파괴를 외교가 끝내 전쟁을 영원히 없애지는 못했다는 증거로 보더라도, 에렌의 방안이 성공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방안 역시 전쟁을 영원히 끝내지 못했다. 파라디섬은 결국 파괴된다. 작품은 그사이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땅울림은 벽 밖 인류의 80퍼센트를 죽였다.
둘 다 실패했다. 하지만 두 실패는 같은 종류가 아니다.
한쪽의 방안이 실패하면 누군가 고쳐서 다시 시도할 수 있다. 다른 쪽의 방안이 역사를 영원히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죽은 인류 80퍼센트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난 글의 네 가지 규칙이 끝내 확인하려는 것은 이것이다. 그 계획에는 ‘내가 틀렸다’는 말이 들어설 자리가 있는가. 아르민의 방식에는 있었다. 에렌의 방식에는 없었다.
적어도 작품은 어느 쪽에도 ‘역사를 영원히 해결했다’는 증명서를 주지 않는다.
자유
‘자유’라는 말은 이 작품에 수백 번 나온다. 에렌이 첫 화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외치는 말이다.
그런데 작품이 마지막에 내놓는 정의는 그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다르다.
에렌의 정의는 이렇다.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한다. 벽 안에서 바깥을 볼 때도 그 뜻이었고, 온 세상을 짓밟을 때도 그 뜻이었다. 이 정의대로라면 그는 정말 자유로워졌다.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그를 막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세 번째 글에서 짚었듯, 그는 작품 전체에서 생각을 바꾼 적 없는 유일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단 한 번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고 싶어서 나갔다. 세상이 사라지기를 바라서 사라지게 했다. 평생 한 번도 자신을 거부하지 않았다.
한 번도 자신을 거부해 본 적 없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저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을 뿐이다.
미카사가 한 일은 다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주 분명했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였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포기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자유로운 행동은 미카사가 했다. 그 행동의 내용은 포기였다.
그러니 이제 정의를 적을 수 있다.
자유는 아무도 너를 막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네가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유미르는 이천 년을 기다렸다. 바로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 에렌은 아르민에게 미카사가 적어도 십 년 동안 자신을 잊지 않고, 곧바로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털어놓았다. 이 대화는 에렌이 죽기 전에 이루어졌고, 그 기억은 그의 죽음 뒤에야 아르민에게 돌아왔다.
그가 털어놓은 이 바람은 여러 해 욕을 먹었고, 그럴 만했다. 이야기는 미카사가 그 행동을 해낸 장면 바로 뒤에 이 속마음을 드러낸다. 두 장면을 붙여 놓으니 대비가 눈을 찌른다.
그는 여전히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행동을 한 뒤의 그녀는, 이미 그의 바람에 맞춰 살지 않아도 되었다.
작품은 그를 변호하지도, 이 대목을 지워 버리지도 않는다.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소년 하나가 개 한 마리와 함께 그 나무 아래로 다가온다. 나무는 아주 크게 자라 있다. 그 아래 에렌이 묻혀 있다.
소년이 무엇을 할지는 작품이 말하지 않는다.
마침표를 찍기를 거부한다.
아마 이 다섯 글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이것일 것이다. 그 네 가지 규칙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판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 옳고 그름은 진작부터 가려내기 어려워졌다. 규칙이 가려내려는 것은 더 단순한 한 가지다. 모든 일을 끝낸 뒤에도, 누군가는 계속 걸어갈 수 있는가.
벽 안의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다른 길이 있는 줄 모르기 때문이다. 수용구의 아이들도 그럴 수 없다. 갈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에렌도 그럴 수 없다. 자기 길을 한 줄의 직선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나무 아래 소년 하나가 서 있다.
그 아이는 아직 그럴 수 있다.
이 연작은 만화와 TV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텍스트로 삼는다. 결말이 창작 기법상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평가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이야기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