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편: 서주 — 주공, 예를 만들다
상나라는 제사를 통해 권력을 조직했다. 핵심은 왕이 하늘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독점한다는 데 있었다. 이 체계는 잘 돌아갈 때는 한없이 잘 돌아갔고(무정의 중흥), 무너지기 시작하면 바닥도 한없이 낮았다(구세의 난). 운영자 개인의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왕이 유능하면 체계가 잘 작동했다. 왕이 무능하면 온갖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상나라는 제사를 통해 권력을 조직했다. 핵심은 왕이 하늘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독점한다는 데 있었다. 이 체계는 잘 돌아갈 때는 한없이 잘 돌아갔고(무정의 중흥), 무너지기 시작하면 바닥도 한없이 낮았다(구세의 난). 운영자 개인의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왕이 유능하면 체계가 잘 작동했다. 왕이 무능하면 온갖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주나라 사람들이 마주한 물음은 이것이었다. 운영자 개인의 능력에 그토록 기대지 않아도 되는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 물음을 던진 사람도, 답을 내놓은 사람도 주공이었다.
1. 무왕의 깎아내기와 주공의 구축
상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무왕이었다. 무왕은 깎아내는 사람이었다. 목야의 한 차례 결전으로 천하의 향방이 결정되었고, 상나라가 600년 동안 쌓아 올린 기반이 뒤집혔다. 빠르고, 격렬하고, 되돌릴 수 없는 깎아내기의 극치였다.
하지만 무왕도 모든 깎아내는 사람이 맞닥뜨리는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다 깎아내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상나라 사람들은 패배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들의 문화도, 제사 체계도 남아 있었다. 동쪽의 광대한 영토는 주나라가 한 번도 제대로 지배해 본 적 없는 땅이었다. 주나라는 관중에 근거지를 둔, 서쪽 한편의 중간 규모 정권이었다. 결전에서는 이겼지만, 이제 다스려야 할 정복지는 자신들보다 훨씬 컸다.
무왕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불과 2년 뒤에 죽었다. 어린 성왕과 풀리지 않은 문제들을 한 무더기 남겨 놓고.
이때 주공이 나섰다.
주공 단은 무왕의 동생이었다. 그가 한 일은 두 가지였다. 첫째, 어린 성왕을 대신해 7년 동안 섭정하며 천하를 다스렸다. 둘째, 그 7년 동안 하나의 온전한 제도 체계를 설계하고 세웠다. 후대에 ‘예악 제도’라고 부르게 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섭정 자체야 드문 일이 아니다. 숙부가 조카 대신 일을 맡는 것은 부족 정치에서도 흔했다. 특별했던 것은 주공이 섭정한 방식과 그 목적이었다. 주공은 성왕이 자라면 그에게 권력을 넘겨줄 날만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물론 결국에는 실제로 권력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그동안 주공이 한 일은 이 기회의 틈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제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중국 정치사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그 이전의 정치적 변화, 곧 선양과 천하를 한 집안이 세습하는 가천하의 성립, 상탕의 혁명은 모두 사건에 떠밀려 일어났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푸는 식이었다. 주공은 달랐다. 그는 당장의 어떤 문제 하나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체계를 설계하고 있었다. 목표도 현재의 위기를 처리하는 데 있지 않았다. 앞으로 닥칠 위기를 예방하는 데 있었다.
깎아내기와 구축의 관점에서 보면 주공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자각을 갖고 구축에 나선 설계자였다. 그전까지 구축은 저절로 이루어졌다. 선양 체계는 부족 연맹이 자연스럽게 진화한 결과였고, 가천하는 혈연 정치의 기본값이었으며, 제사 체계는 상나라 종교 문화의 자연스러운 연장이었다. 자리에 앉아 “제도 하나를 설계해 보겠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주공이 처음으로 그 일을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위대함도, 그의 한계도 정해졌다.
2. 봉건제 — 혈연으로 공간을 짜다
주공이 가장 먼저 풀어야 했던 문제는 공간이었다.
주나라의 핵심 영토는 관중에 있었고, 사방으로 고작 수백 리 규모였다. 상나라를 멸망시킨 뒤 명목상의 지배 범위는 위수 유역에서 동쪽 바닷가까지 뻗었다. 면적이 수십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걸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상나라의 해법은 방국 연맹제였다. 중앙인 대읍상과 각 방국은 느슨한 조공 관계로 묶여 있었다. 방국의 우두머리들은 상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정기적으로 조공하되, 내부의 일은 자율적으로 처리했다. 문제는 충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방국의 우두머리와 상왕 사이에는 혈연의 끈이 없었다.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등을 돌리는 데 큰 대가가 들지 않았다. 상나라가 동이를 거듭 정벌한 것도 동쪽 방국들이 끊임없이 이탈했기 때문이다.
주공의 해법은 봉건제였다. 왕족과 공신을 각지에 나누어 봉하고, 그곳에 제후국을 세우게 했다. 봉건제의 본질은 혈연으로 공간을 짜는 것이었다.
핵심 논리는 이렇다. 왕의 형제들을 요충지에 봉한다. 주공 자신의 아들 백금은 노나라, 곧 상나라 옛 땅의 핵심 지역에 봉해졌다. 무왕의 동생 강숙은 상나라 수도 조가 근처의 위나라에, 소공의 아들은 북방 변경의 연나라에 봉해졌다. 이들은 주 왕실과 직접 혈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혈연관계가 없는 방국의 우두머리들보다 훨씬 충성스러울 것이었다.
공신들도 함께 봉해졌다. 강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진 것이 그 예다. 공신의 봉토는 왕실을 지키고 혈연망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았다. 혈연의 그물이 닿지 않는 곳은 공신으로 메웠다.
봉건제의 절묘함은 정치 문제를 가족 문제로 바꾸었다는 데 있다. 천하는 더 이상 정치 지도자 한 사람과 낯선 지방 우두머리들의 관계가 아니었다. 한 집안의 어른과 그 아들, 형제, 조카들의 관계가 되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집안을 다스리는 일을 크게 확대한 것이었다. 권력의 계승과 분배에 복잡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지 않았다. 연장자와 연소자의 순서를 지키고, 가까운 친족과 먼 친족을 구별한다는 가족 윤리를 따르면 되었다.
더없이 깔끔한 설계였다. 세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풀었다.
통제의 문제. 봉해진 제후에게는 자기 영토를 잘 지킬 이유가 있었다. 그 땅이 자기 집안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남 밑에서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터전을 경영하는 셈이었다. 유인과 책임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충성의 문제. 제후와 천자는 친척이었다. 물론 친척끼리도 등을 돌릴 수 있다. 그래도 낯선 사람에게 등을 돌릴 때보다 심리적 부담과 도덕적 대가가 훨씬 컸다. 혈연 윤리를 핵심 가치로 삼는 문화에서 천자에 대한 불충은 집안 어른에 대한 불효와 같았다. 이보다 더 심한 도덕적 비난은 없었다.
확장의 문제. 제후 한 사람을 봉할 때마다 새로운 영토를 개척할 경영자가 한 사람씩 생겼다. 제후는 봉토에 도착하면 직접 성을 쌓고, 황무지를 일구고, 생산을 조직하고, 질서를 세워야 했다. 중앙은 행정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없었다. 분봉 자체가 확장의 장치였다.
상나라의 방국 연맹에서 주나라의 봉건제로 넘어간 것은 구축 방식의 업그레이드였다. 방국 연맹은 ‘정복한 뒤 공존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였고, 봉건제는 ‘정복한 뒤 적극적으로 관계망을 짜기’였다. 앞의 것은 수동적이고 뒤의 것은 능동적이었다. 앞의 것을 묶어 주는 끈이 이해관계와 두려움이었다면, 뒤의 것은 혈연과 윤리였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설계는 첫날부터 자기 파멸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3. 봉건제의 잔여항: 혈연은 옅어진다
봉건제의 핵심 가정은 혈연이 충성을 낳는다는 것이었다.
첫 세대에는 이 가정이 들어맞았다. 주공이 봉한 백금, 강숙, 태공은 무왕과 주공에게 형제이거나 부자 사이이거나 전우였다. 함께 천하를 얻었고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다. 혈연 위에 전우애와 공동의 이해관계까지 겹쳐져 있었다. 첫 세대 제후들이 주 왕실에 바친 충성은 진짜였고 단단했다. 제도로 붙잡아 둘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혈연은 옅어진다.
첫 세대는 형제다. 둘째 세대는 사촌이다. 셋째 세대에는 사촌보다도 먼 친척이 된다. 다섯째 세대에는? 열째 세대에는? 춘추 시대에 이르면 노나라 군주와 주나라 천자의 혈연관계는 족보를 뒤져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멀어졌다. 이름으로는 여전히 한집안이지만, 실제로는 남이나 다름없었다.
혈연이 옅어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이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공통 조상은 한 단계 위로 올라가고, 혈연이 마음을 붙잡는 힘은 크게 약해진다. 그동안 각 제후국은 자기 봉토에 뿌리를 내리고 저마다의 이해관계와 문화, 정체성을 키워 갔다. 다섯째, 여섯째 세대쯤 되면 제후가 자기 영토에 느끼는 소속감은 주 왕실에 느끼는 소속감을 훨씬 웃돈다. 노나라 사람은 먼저 노나라 사람이고, 그다음에야 주나라 천자의 친척이었다.
주공이 이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 그가 내놓은 대응책은 예(禮)였다.
4. 예 — 구축의 소프트웨어 층
봉건제가 하드웨어라면, 그것이 정하는 것은 공간의 배치다. 누가 어디에 있고, 얼마나 큰 땅을 다스리며, 어떤 의무를 지는가. 하지만 하드웨어를 움직이려면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봉건제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가 바로 예였다.
예란 무엇인가?
후대 사람들은 예를 의례나 예절, 지켜야 할 규칙 정도로 이해했다. 뜻을 좁힌 것이다. 주공이 설계한 예는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행동 규범 체계였다. 천자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역할에 대해, 모든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정했다. 제사를 어떻게 지내고, 전쟁을 어떻게 치르며, 밥을 어떻게 먹고, 옷을 어떻게 입으며, 어떻게 걷고 말하고, 혼인하고 장례를 치를 것인가까지.
예의 본질은 차등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행동 규범이 아니라 위계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 규범이다. 천자는 솥인 정(鼎)을 아홉 개, 제후는 일곱 개, 대부는 다섯 개, 사(士)는 세 개 사용한다. 천자를 위한 춤은 팔일무, 곧 여덟 줄에 여덟 명씩 모두 64명이 춘다. 제후는 육일무, 대부는 사일무다. 이 모든 세부적인 차등이 같은 메시지를 되풀이한다. 사람마다 다르고, 자리마다 다르다. 네 자리가 네 행동의 한계를 정한다.
이 체계는 어떤 기능을 했을까?
첫째, 일상의 행동을 통해 위계질서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상나라의 제사 체계는 왕권을 재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큰 제사를 치러야 했다. 주공의 예악 체계는 그 기능을 일상 구석구석에 흩어 놓았다. “누가 천자이고 누가 제후인지” 다시 깨닫기 위해 제삿날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날마다 밥을 먹을 때 쓰는 그릇이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주고받는 예가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위계질서는 특별한 순간에 재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 생산되었다.
제사 체계보다 훨씬 효율적인 정당성 생산 방식이었다. 제사가 집중 생산이라면 예는 분산 생산이다. 집중 생산에는 중단 위험이 있다. 왕이 앓아눕거나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나면 제사를 못 지낼 수 있다. 반면 분산 생산은 거의 멈출 수 없다. 그렇다고 날마다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둘째, 폭력 대신 행동 규범으로 질서를 유지한다.
가령 제후 한 사람이 분수를 넘어 천자에게만 허용된 규격의 정을 사용했다고 해 보자. 봉건제라는 하드웨어 차원에서 대응할 방법은 군대를 보내 정벌하는 것뿐이었다. 비용이 엄청났다. 하지만 예라는 소프트웨어 차원에서는 우선 도덕적 비난이 쏟아졌다. 그 비난의 힘은 사회가 예를 얼마나 내면화했느냐에 달려 있었다. 모두가 예를 인정한다면, 선을 넘은 사람은 귀족 사회 전체로부터 집단적으로 배척당한다. 칼을 뽑을 필요도 없다.
예는 군사적 비용을 도덕적 비용으로 대체했다. 질서를 떠받치는 힘이 폭력에서 여론으로 옮겨 간 것이다. 비용은 자릿수가 달라질 만큼 줄었다.
셋째, 예로 혈연이 옅어지는 데 맞선다.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주공은 혈연이 옅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다섯 세대가 지나면 천자와 제후는 친척 같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양쪽이 같은 예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떨까. 천자를 알현할 때 같은 절차를 밟고, 사신을 보내 안부를 물을 때 같은 격식으로 말한다면, 적어도 행동의 차원에서는 여전히 하나의 체계에 속해 있게 된다.
예가 혈연의 희석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혈연이 옅어진 뒤 그 자리를 대신할 연결은 제공할 수 있다. 혈연의 연결은 생물학적이어서 쇠퇴한다. 예의 연결은 문화적이므로 이론상 쇠퇴하지 않는다. 대대로 전하기만 한다면 대대로 효력을 낸다.
주공의 진짜 야심은 여기에 있었다. 혈연의 끈을 문화의 끈으로 바꾸는 것. 예가 혈연의 바통을 넘겨받게 해서, 혈연이 힘을 잃은 뒤에도 봉건제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중국 정치사에서 그 누구도 품어 본 적 없는 높이의 야심이었다. 이전의 모든 구축은 혈연이든 폭력이든 신과 통하는 능력이든, 어떤 자연적인 연결에 기대고 있었다. 주공은 처음으로 사람이 설계한 문화적 연결을 통해 정치 체계를 움직이려 했다. 자연에서 인공으로 건너가는 도약이었다. 이제 구축이 의지할 것은 타고난 무언가가 아니라 설계한 무언가였다.
5. 악 — 구축의 감정 층
예가 행동을 맡는다면 악(樂)은 감정을 맡는다.
주공의 체계에서 예와 악은 한 쌍이다. 예는 차이를 가르고, 곧 위계를 구별한다. 악은 함께 어우러지게 하고, 곧 감정을 하나로 모은다. 예는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악은 나와 다른 사람이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매우 깊은 통찰이다. 위계의 구분만 있고 감정의 통합이 없는 체계는 취약하다. 아래에서는 원망이 쌓이고, 중간에서는 불안이 커지며, 맨 위는 고립된다. 악의 역할은 위계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서도 모두가 자신을 ‘우리’의 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제사 때 함께 부르고 추는 노래와 춤, 연회에서 함께 즐기는 음악은 참여자들의 몸에 공명을 일으킨다. 공명은 동질감을 낳고, 동질감은 소속감을 낳는다.
훗날 공자가 ‘예악’을 늘 함께 강조한 것은 무심코 붙여 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주공의 설계 의도를 정확히 이어받았다. 예만 있고 악이 없으면 체계가 너무 차가워 사람이 견디지 못한다. 악만 있고 예가 없어도 안 된다. 모두가 한 덩어리로 뒤섞여 위계가 풀려 버린다. 예와 악이 함께 가고, 차등과 소속감이 공존해야 체계가 굴러간다.
구축의 관점에서 보면 악은 예의 잔여항을 관리하는 도구다. 예는 위계의 억압에서 생겨나는 불만과 원심력이라는 잔여항을 만들어 낸다. 악의 기능은 그 잔여항을 흡수하는 것이다. 불만을 없애지는 못한다. 불만의 구조적 원인인 위계 차이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신 불만이 흘러나갈 통로를 마련한다. 엄격한 위계 속에서는 답답함을 느끼지만, 함께하는 음악과 의례 속에서는 온기를 느낀다. 답답함과 온기가 함께 존재하면서 체계는 유지된다.
정교한 잔여항 관리다. 잔여항을 없애는 대신, 구축 체계를 해치지 않고 풀려 나갈 출구를 주는 것이다. 후대의 많은 제도 설계도 이 발상을 이어받았다. 과거 시험은 권력에서 배제된 지식인에게 신분 상승의 길, 즉 불만을 풀어낼 통로를 열어 주었다. 하지만 과거제 자체가 황권의 구조를 바꾸지는 않았다. 구축된 틀은 그대로였다.
6. 종법제 — 혈연을 법으로 만들다
봉건제는 공간의 문제를, 예악은 행동과 감정의 문제를, 종법제는 계승의 문제를 해결한다.
종법제의 핵심 규칙은 지극히 간단하다. 적장자 계승이다. 정실이 낳은 첫아들이 주요 지위와 재산을 물려받고, 나머지 아들들은 한 등급 낮아져 분가한다. 천자의 적장자는 계속 천자가 되고 나머지 아들은 제후로 봉해진다. 제후의 적장자는 계속 제후가 되고 나머지 아들은 대부로 내려간다. 대부의 적장자는 계속 대부가 되고 나머지 아들은 사로 내려간다. 사의 적장자는 계속 사가 되고 나머지 아들은 평민이 된다.
이 규칙의 정교함은 여러 겹이다.
첫째, 하나의 확고한 규칙으로 계승 분쟁을 없앴다.
상나라 구세의 난은 계승 규칙이 불명확한 데 뿌리를 두고 있었다. 종법제는 가장 단순하고 단호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적장자가 잇는다. 예외는 없다. 적장자가 가장 똑똑한지, 가장 유능한지, 아버지에게 가장 사랑받는지는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규칙은 규칙이다. 어떤 변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종법제는 자질을 희생하는 대신 확실성을 선택한 셈이다. 재주가 뛰어난 서자들이 왕위를 놓고 서로 죽이게 하느니 평범한 적장자 하나가 뒤를 잇는 편을 택했다. 서로 죽이는 데 치러야 할 대가가 평범한 사람의 즉위가 가져올 대가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구세의 난이 남긴 교훈은 너무도 뼈아팠다.
둘째, 경쟁자를 제도적으로 밖으로 내보냈다.
적장자가 뒤를 잇고 나머지 아들들은 다른 곳에 봉해진다. 나간 사람은 한 등급 내려가 새로운 땅에서 자기 가문을 시작한다. 이론상 그들은 이제 적장자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 자기 영토와 신분을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잔여항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잠재적 경쟁자를 지부의 창립자로 바꾸는 것이다. 당신은 밀려난 게 아니다. 새로운 사명을 받은 것이다. 상실감은 새 영토를 경영한다는 감각으로 대체된다. 심리를 다루는 솜씨가 참으로 절묘하다.
셋째, 봉건제와 종법제를 하나로 묶었다.
봉해진 제후는 동시에 천자와 같은 일족의 구성원이다. 종법 관계는 집안에서의 자리를 정하고, 봉건 관계는 정치에서의 자리를 정한다. 두 자리가 포개진다. 천자의 동생이기 때문에(종법) 제후가 되는 것이다(봉건). 가족 안에서의 높고 낮음과 정치 안에서의 권력 서열이 같은 위계다. 가족 질서와 정치 질서가 하나가 된다.
이렇게 묶어 놓으면 정치적으로 선을 넘는 행위는 곧 가족 윤리를 어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제후가 천자를 섬기지 않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반란이 아니다. 동생이 형에게 불복하고, 작은 갈래인 소종이 큰 줄기인 대종에 불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덕적 대가가 두 배가 된다.
주공은 봉건제, 예악제, 종법제라는 세 체계를 하나의 전체로 엮었다. 봉건제는 공간을 맡고, 종법제는 혈연을 맡으며, 예악은 행동과 감정을 맡는다. 세 체계는 서로를 지탱하고 서로를 규정한다. 중국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완전한, 체계적 제도 설계였다.
7. 구축의 가정과 구축의 균열
하지만. 또 그 ‘하지만’이 나올 차례다. 주공의 체계 역시 모든 구축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암묵적 가정 위에 서 있었다. 가정을 뒤집어 드러내면 균열도 보인다.
가정 하나: 적장자 계승제가 계속 지켜질 수 있다.
규칙은 규칙이고, 실행은 실행이다. 적장자 계승제는 종이 위에서는 빈틈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운영할 때는 영원한 유혹과 마주한다. 적장자가 정말 형편없고 서자가 정말 뛰어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공의 답은 이렇다. 상관없다. 형편없어도 그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제도의 차원에서는 옳은 답이다. 확실성이 자질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본성의 차원에서는 직관을 거스른다. 아버지가 평범한 적장자와 재주 넘치는 서자를 보면서도 자기 판단을 억누르고 규칙을 따르려면, 규칙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은 규칙을 만든 세대에서 가장 강하고 이후 세대마다 약해진다. 또다시 세대에 따른 쇠퇴다.
뒤의 역사는 이 약점을 거듭 확인해 주었다. 서주 말기 유왕이 신후와 태자를 폐하고 포사의 아들을 세운 일, 춘추 시대 제후국 안에서 수없이 벌어진 적자와 서자의 계승 다툼이 모두 이 균열에서 나왔다.
가정 둘: 문화의 끈이 혈연의 끈을 대신할 수 있다.
주공이 건 가장 큰 내기는 혈연이 옅어진 뒤에도 예가 체계를 붙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내기에는 한 가지 가정이 숨어 있었다. 예가 멋대로 고쳐지지도, 본래 뜻과 다른 것으로 변질되지도, 형식주의로 굳어지지도 않으리라는 가정이다.
실제로 예는 전해지는 과정에서 정신을 내면화하는 일로부터 형식을 지키는 일로 필연적으로 퇴화했다. 첫 세대는 왜 그렇게 예를 행하는지 알았다. 셋째 세대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다. 다섯째 세대는 그저 늘 그렇게 해 왔으니 그렇게 했다. 정신적 내용은 빠져나가고 형식의 껍데기만 남았다.
예가 빈 껍데기가 되면 혈연의 희석에 맞설 힘도 잃는다. 형식만 있고 정신이 없는 예는 진정한 문화적 동질감을 낳지 못한다. 연기만 낳는다. 연기로 혈연을 대신할 수는 없다.
훗날 공자가 평생 예의 정신을 되살리려 한 것도 예가 껍데기만 남은 상태로 변하면서 체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라, 예라 하는 것이 어찌 옥과 비단만을 말하겠는가?” 예가 옥과 비단 같은 물질적 형식에 불과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공자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정신이 한 번 형식을 떠나면 다시 불어넣기는 처음 세우기보다 훨씬 어렵다.
가정 셋: 분봉되어 나간 일족이 지위 하락을 받아들인다.
종법제의 설계는 적장자가 대종을 지키고 나머지 아들들은 한 등급 낮은 소종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첫 세대에는 문제가 없다. 분가한 사람에게는 새로 개척할 영토가 있으니, 등급이 내려가는 고통은 새로운 기회에 대한 들뜸에 가려진다. 그러나 셋째, 넷째 세대가 되면 개척할 새 땅은 줄어든다. 좋은 땅은 이미 다 나눠 주었다. 반면 지위 하락의 누적 효과는 갈수록 뚜렷해진다. 천자 집안의 서자는 제후, 제후 집안의 서자는 대부, 대부 집안의 서자는 사, 사 집안의 서자는 평민이 된다. 단 네 세대면 천자의 직계 후손도 평민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 하향 통로는 수많은 ‘몰락 귀족’을 낳았다. 혈통으로는 왕실이나 제후 가문의 일원이지만 실제 지위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들이었다. 귀족의 교육과 자신에 대한 기대는 있지만 귀족의 자원과 자리는 없었다. 체계가 조직적으로 만들어 낸 불만층이었다.
공자 자신도 이 하향 통로의 산물이었다. 송나라 공실의 후예였지만, 그의 대에 이르면 바닥까지 몰락한 사였다. 예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얼마나 제도적 이상에서 나왔고, 얼마나 몰락 귀족 한 사람의 옛 영광에 대한 집념에서 나왔을까. 둘을 완전히 가르기는 어렵다.
이 몰락 귀족들이 종법제의 잔여항이었다. 설계자는 그들을 안전하게 배출된 폐가스로 여겼다. 하지만 폐가스도 일정 농도 이상 쌓이면 폭발한다. 춘추전국 시대의 수많은 유세객, 책사, 참모 가운데 상당수가 이 계층에서 나왔다. 그들에게는 영토가 없었다. 체계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력과 지식은 있었다. 귀족 교육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울분도 있었다. 신분이 떨어지는 고통이 쌓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옛 구축 체계를 허무는 가장 활발한 세력이 되었다.
체계의 가장 큰 위협은 흔히 그 체계가 스스로 만들어 낸 폐기물에서 나온다.
8. 유왕 — 구축 체계가 처음으로 전면 작동을 멈추다
서주가 끝난 방식은 무척 상징적이다.
주 유왕은 신후와 태자 의구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포사의 아들 백복을 태자로 세웠다. 종법제의 핵심 규칙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웠다.
종법제가 생긴 지 200여 년, 유왕은 이 규칙에 정면으로 부딪친 최초의 천자였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전통적인 이야기는 유왕이 포사를 총애한 나머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희롱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진위에는 의문이 있다. 칭화대 소장 죽간의 기록은 《사기》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다. 다만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운 일 자체는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왕은 어떻게 감히 이 규칙에 손을 댈 수 있었을까? 가능한 설명 하나는 이렇다. 유왕의 시대, 곧 서주 말기에 이르면 종법제는 이미 마음을 붙잡는 규범에서 형식적인 구속으로 퇴화해 있었다. 유왕은 규칙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그 규칙이 마음을 붙잡는 힘은 개인의 욕망에 밀릴 만큼 약해져 있었다. 혹은 정치적 판단에 밀렸을 수도 있다. 그가 백복이 의구보다 왕위를 잇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면 말이다.
이 역시 세대에 따른 쇠퇴다. 주공이 종법제를 세울 때 이 규칙은 최고의 도덕적 권위를 지녔다. 제도를 만든 기억이 아직 생생했기 때문이다. 유왕에 이르러서는 십수 세대가 사이에 끼어 있었고, 창설의 기억도 완전히 사라졌다. 규칙은 더 이상 ‘조상의 지혜’가 아니었다. 그저 ‘줄곧 해 오던 방식’이었다. ‘조상의 지혜’가 ‘줄곧 해 오던 방식’이 되는 동안 권위는 엄청나게 추락했다. 앞의 것은 거스를 수 없지만, 뒤의 것은 고칠 수 있다.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운 결과는 이랬다. 신후의 친정인 신나라, 지금의 허난성 남부에 있던 나라가 견융과 손잡고 호경에 쳐들어가 유왕을 죽였다. 태자 의구는 제후들의 지지를 받아 즉위했다. 평왕이다. 평왕은 동쪽 낙읍으로 도읍을 옮겼다. 서주가 끝나고 동주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공의 체계가 지닌 근본적인 약점 하나가 드러났다. 천자 자신이 규칙을 어겼을 때 체계 안에는 이를 바로잡을 장치가 없었다.
주공의 설계에서 천자는 규칙의 정점이다. 모든 위계질서는 천자에게서 출발해 아래로 뻗어 나간다. 천자가 규칙을 지키면 제후도 지켜야 한다. 천자가 그들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천자가 규칙을 깨면 제후도 깰 이유를 얻는다. 천자도 안 지키는데 내가 왜 지켜야 하는가?
그런데 이 체계에는 ‘누가 천자를 바로잡는가’에 대한 장치가 없었다. 천자 위에는 더 높은 권위가 없다. 천명론은 하늘이 천명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하늘은 통지서를 보내지 않는다. 천명이 옮겨 갔다는 사실은 일이 끝난 뒤에야 확인된다. 아, 그가 죽임을 당했구나. 그러면 천명이 더는 그에게 있지 않았나 보다. 사후 판단은 있고 사전 제약은 없는 체계였다.
주공은 규칙이 스스로 실행될 힘을 너무 믿었다. 충분히 정교하게 설계해 놓으면 규칙이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최고 권력자가 규칙을 깨뜨리는 경우’에 대비한 방안을 만들지 않았다. 그의 틀에서는 최고 권력자 자체가 규칙의 인격적 화신이었고, 지위와 규칙이 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지위와 규칙이 하나라면 교정 장치가 필요 없다. 자기 자신을 바로잡을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지위와 규칙은 갈라질 수 있다. 유왕이 행동으로 증명했다.
모든 구축은 운영자가 설계 의도대로 그것을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모든 운영자는 결국 그 가정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9. 총평: 주공의 유산
주공의 체계는 중국 정치사에서 가장 위대한 제도 설계였다. ‘가장 위대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단연 가장 위대했다.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다. 앞에서 그 균열을 분석하는 데 이미 많은 지면을 썼다. 체계 전체의 차원에서 정치 문제를 생각한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주공 이전의 정치는 응급 처치였다.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공 이후의 정치는 설계가 될 수 있었다.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공은 이후 중국 정치사상의 기본 의제를 정했다. 질서는 어떻게 가능한가? 질서의 토대는 무엇인가? 혈연인가, 폭력인가, 윤리인가, 제도인가? 이 물음들을 던지는 방식과 생각의 틀은 거의 모두 주공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가는 주공의 직계 후손이다. 공자는 평생 “나는 주를 따르겠다”고 했다. 그의 모든 작업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주공의 체계가 이미 무너진 시대에 그 체계를 고치려 했다는 것. 맹자, 순자, 동중서, 주희는 저마다 다른 차원에서 이 보수 공사를 이어 갔다. 2천 년의 유학사는 달리 말하면 2천 년에 걸친 주공 체계의 수리 역사다.
법가는 주공에게 반기를 든 사람들이다. 상앙과 한비가 주공 체계의 실패를 보고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이 체계는 뿌리부터 잘못되었다. 혈연과 윤리로 권력을 조직해서는 안 된다. 법과 폭력으로 조직해야 한다. 법가의 해법은 주공의 해법을 철저히 부정했다. 하지만 그 부정조차 주공이 정한 문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부정한 것은 그의 답이지 그의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여전히 주공이었다.
도가는 주공에게서 벗어나려 한 사람들이다. 노자와 장자의 태도는 이랬다. 너희가 다투는 예, 법, 위계, 질서는 모두 가짜 문제다. 진짜 문제는 인간이 왜 조직을 이루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구축 자체가 문제다. 가장 좋은 구축은 구축하지 않는 것이다. 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이라는 관점에서 도가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깎아내기가 멈추지 않는 것이 과연 나쁜 일인가? 구축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구축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닌가?
깊은 물음이지만 실행 가능한 방안을 주지는 않는다. 인구가 이미 일정 규모에 이른 사회에서 ‘구축 없음’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도가의 가치는 해법에 있지 않다. 중국 정치사상 안에서 줄곧 하나의 잔여항으로 존재했다는 데 있다. 구축된 틀이 너무 조이고, 너무 촘촘하고, 너무 숨 막힐 때마다 사람들은 도가를 꺼내 한숨 돌렸다. 도가는 구축의 잔여항을 대변하는 사상이었다.
법가, 유가, 도가. 주공 이후 중국 정치사상의 세 주류는 모두 주공이 그은 좌표계 안에서 펼쳐졌다. 그의 답에 찬성한 유가, 그의 답을 부정한 법가, 그의 질문을 부정한 도가. 하지만 그가 세운 틀을 벗어난 사람은 없었다. 구축의 설계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평가는 이것이다. 당신의 체계가 영원히 유효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뒤에 올 모든 이의 논의 범위를 정했다는 것.
주공의 체계는 성왕에서 유왕까지 약 250년 동안 작동했다. 구축의 수명으로 보면 결코 짧지 않다. 하지만 끝내 자기 잔여항에 뚫렸다. 혈연의 희석, 껍데기만 남은 예, 몰락 귀족의 누적, 계승 규칙의 취약함. 이 잔여항들은 밖에서 들이닥친 타격이 아니었다. 모두 체계가 작동하면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구축은 완결되지 않는다. 주공은 누구보다 완결에 가까이 갔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가 충분히 똑똑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잔여항 보존이 누구에게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편: 동주와 춘추 시대 — 천자는 남아 있는데, 구축된 틀은 이미 비어 있다. 주공의 체계가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과정을 살펴본다. 폭력으로 깨부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서히 속이 비어 가는 이야기다. ‘예괴악붕(禮壞樂崩)’, 예가 무너지고 악이 허물어졌다는 네 글자가 가리키는 것은 파괴가 아니라 증발이다. 고체가 기체가 되어 형태는 사라졌지만 물질은 남아 있다. 기체가 된 것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각 제후국 안으로 흘러들어 가, 그 나라들이 저마다 새로 구축하는 데 쓸 원료가 되었다.
한국어 독자의 맥락과 호흡에 맞춰 독립적으로 다시 쓴 판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