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화: 장부가 다른 장부를 기록하기 시작하다
표준화된 계약과 수학적 가격, 여러 단계로 쪼개진 중개 사슬은 위험을 거래 가능한 증권으로 만들었다. 위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장부와 장부 사이의 연결선으로 이동했다.
911건의 표준화된 약속
1973년 4월 시카고옵션거래소가 문을 연 첫날 16개 종목을 기초로 911건의 계약이 거래됐다. 이전 장외 옵션은 당사자가 만기와 행사가격, 결제방식을 하나씩 협상했다. 표준화는 구체적인 관계를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동일한 단위로 바꿨다.
같은 시기 수학적 옵션가격 모형은 현재가격, 변동성, 시간과 금리를 공통식에 넣었다. 모형은 시장을 관찰하는 카메라에 머물지 않았다. 거래자와 위험관리자가 같은 공식을 쓰면서 호가와 헤지 방식 자체가 모형을 닮아 갔다.
1975년 미국 증권시장은 고정 중개수수료를 폐지했다. 거래 실행과 조사 서비스를 하나의 관행적 수수료에 묶던 체제가 풀렸다. ‘거의 평가할 수 없던’ 묶음이 분해되고 각 기능에 별도 가격을 붙이는 시대가 열렸다.
위험을 잘라 다시 조립하다
통화·금리 스와프와 각종 파생상품은 한 계약의 통화, 만기, 이자 흐름을 떼어 다른 필요와 맞바꿀 수 있게 했다. 부채는 두 사람 사이의 고정된 약속이 아니라 다시 조립할 원재료가 됐다.
이 기술에는 실제 기능이 있다. 환율과 금리 위험을 더 잘 감당할 주체에게 넘기고, 서로 다른 투자자의 위험 선호를 맞출 수 있다. 금융이 정보를 만들고 자본을 배분하며 성장에 기여한다는 효율론은 이 지점을 본다.
문제는 잘라 낸 조각들의 합이 언제나 원래 위험과 같다는 가정이다. 평온할 때 조각들은 따로 거래되지만 모두가 같은 날 팔려고 하면 연결이 다시 나타난다. 위험은 분산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접합부에 남을 수 있다.
기업 안으로 들어간 금융의 잣대
금융화는 월스트리트의 상품에 그치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비금융기업의 이자·증권 수입이 커졌고 금융이익과 비금융이익의 비율도 상승했다. 기업은 생산뿐 아니라 자산가격과 금융수익을 중심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1997년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기업의 주된 목적을 소유자에게 경제적 수익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주주가치라는 잣대가 공장, 연구, 고용과 지역사회를 하나의 수익률로 비교했다.
공통척도에 잘 잡히지 않는 기능은 비용센터나 할인요인으로 보였다. 외주화, 감원, 자산매각은 누군가의 악의보다 숫자를 개선하는 합리적 결정으로 등장했다. 각 결정이 타당해도 모두 합친 뒤 기업이 잃는 능력은 장부에 별도 항목이 없었다.
주택대출을 일곱 단계로 나눈 사슬
전통적 은행에서는 대출 심사, 자금 제공, 상환 관리와 부실 처리까지 한 대차대조표 안에 있었다. 은행이 자기 돈을 오래 들고 있었기 때문에 차주의 상환능력을 확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조정할 유인이 있었다.
증권화는 모집, 중개, 대출 실행, 풀 구성, 신용평가, 증권 인수, 자산관리로 역할을 나눴다. 각 단계는 자기 수수료와 기준을 따랐고 대출은 다음 단계로 팔렸다. 책임의 연속성이 거래의 속도와 맞바뀌었다.
대출 풀은 손실 순서가 다른 트랜치로 잘렸고, 중간층은 다시 부채담보부증권에 들어가 또 등급을 받았다. 일부 시장에서는 그런 중간층의 약 80퍼센트를 같은 종류의 상품을 만드는 운용사가 사 갔다. 장부가 실물대출보다 다른 장부를 더 많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97센트와 연결선의 귀환
2007∼2008년 공포는 전통적 예금인출보다 환매조건부채권 시장의 조달 거부로 나타났다. 투자자는 담보가치를 더 깎고 만기를 줄이며 거래 연장을 거부했다. 거의 현금처럼 취급되던 자산도 1달러가 아닌 97센트에 거래되자 전체 계산이 흔들렸다.
금융이 너무 커졌다는 비판과 금융 기능이 잘못 작동했다는 반론은 모두 근거가 있다. 파생상품은 실제 위험관리를 가능하게 했고 동시에 복잡한 사슬이 이익과 통제력을 금융채권자와 자산운용자 쪽으로 옮겼다.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에서 금융화의 구(構)는 모든 위험을 가격과 계약으로 분할했다. 하지만 복식부기는 항목을 기록해도 항목 사이의 연결을 한 줄로 쓰지 못한다. 위기라는 착(鑿)이 오자 여항(餘項)은 사라진 관계가 아니라 숨겨진 관계였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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