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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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경제
제18편 · 총 23편

열여덟째 글. 금융화: 장부가 다른 장부를 기록하기 시작하다

표준화된 계약과 수학적 가격, 여러 단계로 쪼개진 중개 사슬은 위험을 거래 가능한 증권으로 만들었다. 위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장부와 장부 사이의 연결선으로 이동했다.

Han Qin (秦汉)
이 글의 목차

1. 911건

1973년 4월, 시카고에 새로운 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주식옵션만을 거래하는 곳이었다.

개장 첫날 거래된 계약은 911건이었다. 상장된 주식은 열여섯 종목뿐이었다.

그전까지 미국의 주식옵션은 대부분 장외에서 거래되었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직접 짝을 찾고, 계약 조건도 건건이 협의했다. 만기, 행사가격, 결제 방식이 저마다 달랐다. 옵션 하나는 구체적인 두 사람이 의논해서 맺은 구체적인 약속이었다. 누가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거래하는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했고 알 필요도 없었다.

이 방식에는 나름의 이치가 있었다. 옵션은 내기다. 미래의 어느 날 어떤 물건의 값이 얼마일지를 놓고 하는 내기다. 상대가 당신과 그 내기를 할 생각이 있는지는 당신을 얼마나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지, 손에 반대 방향의 포지션을 쥐고 있는지, 이전에 당신과 거래해본 적이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조건을 하나하나 협의한다고 할 때, 실제로 오가는 것은 조건만이 아니었다.

새 거래소가 한 일은 이것을 표준화하는 것이었다. 행사가격을 일정한 눈금에 맞추고, 만기일을 월별로 배열하고, 계약 단위를 통일했다. 청산은 한곳에서 맡고, 호가는 공개해서 내걸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깊이 기대던 거래가 서로 비교할 수 있고, 계산할 수 있고, 끊임없이 값을 매길 수 있는 시장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표준화의 대가는 모든 계약이 같은 모양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하는 만기일이 눈금 위에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칸을 골라야 했다. 원하는 행사가격이 50센트 어긋나도 가까운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계약이 당신의 필요에 맞추어 자라지 않는다. 당신의 필요를 계약에 맞추어야 한다. 그 대신 얻은 것은 유동성이었다. 오늘 산 표준계약 한 건을 내일은 당신을 전혀 모르는 누구에게든 팔 수 있었다.

같은 해, 두 학자가 옵션 가격 결정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이 내놓은 것은 공식 하나만이 아니었다. 하나의 생각이었다. 기초자산과 무위험자산을 조합해 동적으로 헤지하는 포지션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옵션에는 계산할 수 있고 이론적으로도 일관된 가격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표준화된 계약과 계산할 수 있는 가격은 하나의 일을 이루는 두 반쪽이었다. 앞의 것은 옵션을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뒤의 것은 계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911건의 계약은 뒤이어 돌아갈 그 기계가 낸 첫 소리였다.

이 숫자는 기억해둘 만하다. 워낙 작아서 뒤의 숫자와 견주기 좋기 때문이다. 30여 년 뒤에는 전 세계 장외파생상품의 미결제 명목원금을 100조 달러 단위로 세게 된다. 그사이 어느 한 해에 갑자기 도약한 적은 없었다. 해마다 그저 전년보다 조금씩 더 했을 뿐이다.

이 일은 뒤의 모든 절에서 다시 나타난다. 구축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커지는 일은 거의 없다. 해마다 전년보다 조금씩 더 하는 것으로 커진다. 그때마다 조금 더한 몫은 따로 보면 모두 합리적이다. 누군가 뒤를 돌아보며 어느 해에 브레이크를 밟았어야 했는지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해마다 늘어난 몫이 그해의 합리적인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앞선 열일곱 편을 따라오는 동안 구축은 줄곧 같은 일을 했다. 같은 자로는 잴 수 없는 것들을 그 자 위에 눌러 넣어 장부의 셈을 맞추었다. 눌러 넣는 대상은 언제나 바깥세상이었다. 땅 한 조각, 한 무리의 사람, 얼마간의 시간, 한 종류의 금속, 한 나라의 대외 장부였다.

이제 이어질 몇십 년 동안 벌어진 일은 다르다.

장부는 갈수록 바깥을 덜 가리키기 시작했다. 다른 장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비유가 아니다. 뒤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보게 된다. 어떤 상품들의 중간층 가운데 거의 80퍼센트를 같은 종류의 다른 상품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사들여 다음번 포장 속에 다시 넣었다. 여기까지 오면 구축이 통약하려는 것은 더 이상 바깥세상이 아니다. 자신이 바로 전 차례에 만들어낸 것이다.

2. 가치를 매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1975년 5월 1일, 미국 증권시장에서 고정 중개수수료가 폐지되었다. 훗날 메이데이라고 불리게 된 날이다.

그전까지 수수료는 고정되어 있었고, 하나의 총액으로 매겨졌다. 당시 한 감독 당국자는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고정수수료 제도에서는 거래 체결과 조사·분석 서비스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총수수료 안에 묶여 있으며, 이 둘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가치를 매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말은 따로 적어둘 만하다.

이 말이 인정하는 사실은 소박하다. 중개회사가 고객을 위해 하는 일은 주문 하나를 거래소에 보내 체결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조사·분석 자료를 보여주고, 전화로 시장 이야기를 해주고, 사람을 소개하고, 기회를 눈여겨봐주며, 필요할 때 작은 편의를 봐준다. 이런 것들이 섞여 하나의 관계를 이룬다. 그 관계의 값이 얼마인지는 누구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분명하게 말할 수 없을 때의 방법은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는 총액 하나를 붙이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허술하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비용이 아주 적게 드는 처리 방식이다. 하나하나 분리해 정확히 셈하기보다 전체 묶음에 값 하나를 매기는 편이 모두에게 수고를 덜어준다. 첫째 글에서 보았듯, 장부가 나타나기 전의 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의 오고 감을 받쳐준 것도 이런 식의 통째로 묶인 약속이었다. 정밀하지는 않았지만, 유지할 수 있었다.

고정수수료의 폐지는 단순한 요금 인하가 아니었다. 한데 묶인 것들을 풀어, 각각 따로 값을 부르도록 강제하는 일이었다. 체결은 얼마인가. 조사·분석은 얼마인가. 조언은 얼마인가. 관계는 얼마인가.

이 동작은 앞선 글들에서도 여러 번 나왔다. 복식부기를 다룬 다섯째 글, 한계혁명을 다룬 열째 글, 가사노동을 다룬 열두째 글이 그랬다. 매번 같은 물음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관계 속에 섞여 있는 것을 떼어내 따로 값을 매길 것인가.

이번의 답은 떼어내는 것이었다.

다만 이번의 분리에는 앞선 경우들에 없던 특징이 있었다. 더 분명하게 알고 싶은 사람이 먼저 나선 일이 아니었다. 경쟁이 밀어붙인 일이었다. 고정수수료가 사라지자 체결 수수료부터 낮춰 부른 쪽이 먼저 주문을 받았다. 그러니 한번 떼어내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떼어내지 않는 회사는 떼어내는 회사에 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떼어내자마자 한 가지 일이 벌어졌다. 따로 값을 부를 수 있는 것은 모두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경쟁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로 값을 부를 수 없는 것은 처지가 곤란해졌다. 가격표는 없지만 공짜로 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다른 항목의 가격 속에 환산해서 넣거나, 아니면 서서히 사라져야 했다.

어떤 것에 따로 값을 매기라고 요구하는 순간, 그것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것의 가치는 바로 따로 계산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감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손실을 본 달에 중개인이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일, 분석가가 아직 다 쓰지 못한 판단을 당신에게 먼저 들려주는 일이 그렇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바로 값이 붙어 있지 않아 투입과 산출을 따로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가격표를 달고 나면, 하나하나가 같은 물음 앞에 서야 한다. 이것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가.

뒤이은 몇 해 동안 같은 방향의 조치가 잇따랐다. 1980년에는 한 법률이 예금취급기관에 대한 제약을 완화했다. 1981년에는 세계은행과 한 컴퓨터 회사가 훗날 거듭 인용되는 최초의 정식 통화스와프 거래를 성사시켰다. 통화도, 만기도, 자금조달 비용도 서로 다른 부채를 파생상품 계약 하나로 다시 자르고, 재조합하고, 새로 값을 매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거래를 기점으로 부채는 더 이상 부채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현금흐름과 다시 짜 맞출 수 있는 원재료가 되었다.

다시 짜 맞춘다. 뒤이은 몇십 년의 핵심 동작은 이 말에 담겨 있다. 부채란 본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갚아야 할 돈이다. 만기, 통화, 금리가 모두 그 관계에 붙어 자란다. 스와프가 하는 일은 이것들을 떼어내는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만기는 당신 몫으로, 내가 원하는 통화는 내 몫으로 돌리고, 이자는 다른 척도로 다시 계산한다. 다 떼어내고 나서도 빚은 그 빚이다. 다만 더는 처음의 그 관계에 속하지 않는다.

3. 사진기가 아니라 엔진

한 연구자는 1980년대를 거래의 10년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미국 자료에서 한 가지 사실을 찾아냈다. 비금융기업의 현금흐름 대비 증권 수입이 1970년대부터 뚜렷이 높아졌다. 금융부문 이익을 비금융부문 이익과 견준 비율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나, 1970년대에 오르기 시작해 1980년대에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표본의 마지막 시점에 이르면 1950~1960년대의 전형적인 수준의 대략 세 배에서 다섯 배에 이르렀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구성이다. 비금융기업에서 급증한 증권 수입은 주로 주식시장의 자본이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자 수입에서 나왔다.

말하자면 제조업, 공업, 소매업처럼 명목상 실물부문에 속하는 회사들이 채권·채무 관계 안으로 갈수록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물건도 여전히 팔렸다. 그런데 손익계산서에서 돈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몫이 점점 커졌다.

이 일은 기업 내부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쳤다. 어느 제조기업이 생산라인을 하나 더 여는 것보다 현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편이 더 안정적이고, 더 빠르며, 분기 보고서에도 더 쉽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다음에 그 생산라인을 열지 말지 결정할 때, 그 기업의 머릿속에는 이미 비교 대상이 하나 놓여 있다. 생산을 금지할 필요는 없다. 같은 표 위에서 돈을 쓰는 다른 방법들과 견주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 무렵 가격 모형도 서술을 넘어서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훗날 한 사회학자는 이런 모형을 사진기가 아니라 엔진이라고 불렀다. 시장 곁에서 시장을 찍어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 시장을 바꾼다.

먼저 표준화된 옵션이 만들어졌다. 그다음에는 헤지가, 그다음에는 시장조성이, 그다음에는 내재변동성이라는 곡선이 생겼다. 그러고 나자 변동성 자체도 거래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새로운 가격 공식은 저마다 새로운 거래 대상을 낳았고, 새로운 거래 대상에는 다시 새로운 공식이 필요했다.

1987년 10월의 주가 폭락은 이 일의 다른 면을 비추었다.

당시 포트폴리오 보험이라는 기법이 널리 쓰였다. 논리는 깔끔했다. 시장이 떨어지면 주가지수선물을 팔아 손실을 헤지한다. 보험 하나, 모형 하나, 자동으로 실행되는 규칙 하나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모형을 따르자, 하락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모형은 계속 팔라고 했다. 매도는 가격을 끌어내렸다. 가격이 내려가면 모형은 더 많이 팔라는 지시를 내렸다.

위험을 피하도록 설계한 장치가 하락장에서는 하락을 가속하는 장치로 바뀌었다.

훗날의 공식 회고와 관련 연구들은 이런 동적 헤지가 하락장에서 경기순응적인 매도 압력을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후 거듭 재현될 모습이 여기 나타난다. 모형은 시장 곁에 서서 시장을 묘사하지 않는다. 시장 안에서 거래를 밀어 움직인다.

이 점은 구축의 성질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낸다. 앞선 글들에서 자는 잔여항을 비추고, 한 사람의 한 시간을 다시 평가하고, 폭이 있는 구간을 점 하나로 눌러 담았다. 그래도 자가 하는 일은 줄곧 재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자가 직접 손을 대기 시작한다. 수 하나를 재어 내놓으면 그 수가 거래를 일으킨다. 그 거래가 측정 대상을 바꾼다. 그러면 다음번에 자가 내놓는 수는 또 달라진다.

측정 대상은 더 이상 가만히 서 있지 않는다. 자가 내놓은 측정값에 따라 움직인다.

이것은 지금까지 따라온 길에서 구축이 겪은 가장 중요한 형태 변화다. 앞선 열일곱 편에서는 구축과 측정 대상 사이에 그래도 얼마간의 거리가 있었다. 장부는 이미 일어난 일을 기록했고, 자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을 쟀다. 부정확하게 재더라도 측정 대상이 측정된다는 이유로 바뀌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그 거리가 사라졌다. 가격은 자신이 묘사하는 일 속으로 들어가 그 일의 일부가 되었다.

1990년대가 되자 이 언어는 전면적으로 퍼져나갔다. 1999년, 미국 중앙은행의 의장은 한 연설에서 지난 10년 동안 금융 분야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금융파생상품의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말했다. 이듬해 의회 증언에서는 장외파생상품 덕분에 위험을 분리해, 그것을 가장 기꺼이 감당하고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투자자들에게 배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효율론을 아주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이 말에는 이치가 있다.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잘 감당할 수 있는 곳으로 다시 배분되었다는 것이다. 농장주는 수확물의 가격 위험을 기꺼이 떠맡을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 기업은 환율 위험을 밖으로 넘기고 자기 사업에 전념할 수 있다.

이런 이점은 실제로 있다. 사소하지도 않다. 가격 위험을 넘길 수 있는 농장주는 시세를 짐작하는 데 마음의 절반을 쓰지 않고, 더 잘 기를 수 있는 작물을 안심하고 기를 수 있다. 날마다 환율을 살필 필요가 없는 기업은 물건을 잘 만드는 데 힘을 쏟을 수 있다. 분업이 더 깊어질 수 있는 까닭은 누군가가 남이 쥐고 싶어 하지 않는 불확실성의 한 몫을 기꺼이 받아들여주기 때문이다.

이 설명은 금융혁신을 분업의 심화로 그린다. 위험을 부품처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고, 가장 적합한 보유자에게 판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성립하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하다. 떼어낸 부품들을 합치면 여전히 처음의 그것이어야 한다.

이 전제는 오랫동안 진지한 검증을 받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평온한 날에는 성립했기 때문이다. 위험 하나를 세 조각으로 나누어 세 사람에게 팔면, 평소에는 각자가 자기 조각을 처리하며 서로 상관없이 지낸다. 그러다 어느 날 셋이 동시에 처분하려 들 때에야, 그 세 조각이 사실은 내내 붙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4. 최우선 목표

금융화는 월스트리트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기업 내부로 들어왔다.

1997년, 미국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한 기업지배구조 성명은 아주 분명하게 적었다. 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소유자에게 경제적 수익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같은 문서는 경영진과 이사회의 가장 높은 의무가 주주에 대한 책임이며,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은 그 주주에 대한 의무에서 파생될 뿐이라고도 했다.

일상의 말로 옮기면 이렇다. 기업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고용도, 기술의 축적도, 이 도시의 흥망도 아니다. 주주에게 수익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이 언어가 하려는 일은 분명하다. 기업 안에는 본래 서로 통약할 수 없는 목표들이 한데 모여 있다.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야 하고, 장기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하고, 공급업체와의 관계를 길러야 한다. 지역에서의 평판을 살피고, 기술의 밑천도 쌓아야 한다. 여기에는 공통 단위가 없다. 어디에 얼마를 더하고 덜할지는 사람이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저울질하는 데에는 결함이 있다. 느리고, 불투명하고, 그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경영진이 제멋대로 이유를 붙일 여지도 크다. 주주가치라는 언어가 힘을 얻은 것은 바로 그 결함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공통의 수 하나가 생기면,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는지 더는 해명을 들을 필요가 없다.

주주가치는 이 목표들에게 공통 단위를 주었다.

2001년, 한 학자는 이 생각을 더 체계적으로 썼다. 모든 상품에 가격이 매겨져 있다는 조건 아래서는, 기업이 장기적인 총시장가치를 극대화함으로써 사회적 후생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총가치는 주식, 부채, 우선주, 신주인수권증권 등 모든 금융청구권의 시장가치를 합한 것이다.

이 설명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극히 복잡한 조직의 문제를 시장가격 하나로 통일해 나타낼 수 있을 듯한 목적함수로 바꾸어놓는다.

그런데 넘쳐나온 것들은 바로 그 문서 안에서도 보인다.

주주가치를 높이 내세운 그 지배구조 성명은 기업의 목표를 주주 수익으로 향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정했다. 지배구조에서 정말 중요한 요인들, 이사의 자질, 최고경영자와 이사의 성품, 최고경영자에게 감히 맞설 사람이 있는지는 정성적이고 주관적이며 표에 올려 비교하기 어렵다고.

기업의 목표를 수 하나로 환원하는 데 가장 열심인 문서가, 기업이 돌아가려면 측정할 수 없는 사람의 성품과 관계에 기대는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법과 재무 실무도 같은 방향으로 밀었다. 1982년의 한 규칙은 발행회사가 공개시장에서 자사주를 매입할 때 적용되는 세이프하버를 마련했다. 이후 미국 기업이 현금을 나누는 방식은 뚜렷하게 자사주 매입 쪽으로 옮겨갔다. S&P 500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1980년에는 배당금의 약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1997년과 1998년에는 이미 배당금을 넘어섰다.

그 뒤 한 연구자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그 지수에 계속 남아 있던 449개 기업을 집계했다. 이 기업들은 이익의 54퍼센트를 자사주 매입에 썼고, 37퍼센트를 배당에 썼다.

어떤 연구자는 이 역사를 선명하게 요약했다. 미국 대기업의 전략적 중심은 1970년대 이전에는 이익을 남겨두고 재투자하는 쪽에 더 가까웠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감축과 분배, 이른바 주주가치를 중심으로 갈수록 더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경영자들이 더 탐욕스러워졌다는 것이 아니다. 기업 내부에서 눈에 보이는 척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장기 연구개발이나 노동자의 숙련 축적은 곧바로 현재가치로 환산하기 어렵다. 반면 주가, 주당순이익,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 프리미엄, 부문별 수익률은 날마다 순위를 매길 수 있고, 그에 따라 책임을 묻거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러니 생산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필요를 금융의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공장, 소매망, 특허, 브랜드, 고객 관계는 모두 그대로 있었다. 다만 할인현금흐름, 자본비용, 주주 수익, 시장 배수라는 몇 겹의 환산을 거쳐야 비로소 정당성을 얻었다.

이 공통 척도로 쉽게 환산되지 않는 것은 기업 내부에서는 비용센터로, 자본시장에서는 할인 요인으로 취급되었다. 그런 다음 외주화되거나, 잘려나가거나, 증권화되거나, 팔렸다.

여기서는 순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누군가 이것들을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먼저 자 하나가 생겼다. 그것들을 자에 대어보니 수치가 보기 흉했다. 그제야 줄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 되었다. 결정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언가를 희생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숫자 하나를 개선하고 있다고 느낀다. 열셋째 글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부품 하나하나를 따로 처리할 때에는 모두 이치에 맞게 처리한다. 그런데 이치에 맞는 처리를 전부 더하고 나면, 그 자리는 사라져 있다.

5. 일곱 고리

같은 분리의 논리는 주택대출에서 끝까지 밀고 나아갔다.

전통적인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한 건은 하나로 이어진 일이었다. 은행이 소득을 심사해 빌려줄지 결정했다. 은행이 자기 돈을 내주었다. 은행이 갚는지 지켜보았다. 갚지 못하면 은행이 집을 처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일이 하나의 대차대조표 안에서 얽혀 있었다.

얽혀 있는 데에는 쓸모가 있었다. 돈이 자기 것이므로 은행에는 차입자를 꼼꼼하게 심사할 이유가 있었다. 만기까지 쥐고 있어야 하므로 계속 살필 이유가 있었다. 집이 자기 손에 남게 되므로, 차입자가 갚지 못하면 곧바로 집을 가져가기보다 먼저 의논해볼 이유가 있었다. 이 일들이 붙어 있었던 것은 떼어낼 생각을 아무도 못 해서가 아니다. 붙어 있을 때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잘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증권화는 이것을 분리해 하나의 생산라인으로 만들었다.

한 연구자는 서브프라임 대출 증권화의 사슬을 자세히 풀어, 적어도 일곱 종류의 중요한 정보 마찰을 짚어냈다. 담보대출 차입자, 대출 취급기관, 주관사, 증권화 전 대출채권의 보유자금을 대는 곳, 신용평가사, 대출관리업체, 자산운용사, 투자자 사이에 걸쳐 있는 마찰이었다. 이론상 해법도 저마다 마련되어 있었다. 실사, 환매 약정, 대출채권 보유자금에 대한 담보 할인, 신용등급, 신용보강, 대출관리 계약이었다.

이 모든 해법이 하려는 일은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예전에는 적을 필요가 없던 이유를, 적어둘 수 있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예전에 은행이 당신을 살핀 이유는 돈이 자기 것이어서였다. 이제 대출관리업체가 당신을 살피는 이유는 살펴야 한다고 계약서에 적혀 있어서다. 앞의 이유는 이해관계에서 자라고, 뒤의 이유는 종이 위에서 자란다. 종이도 효력이 있다. 다만 종이는 사람이 실행해주어야 하고, 실행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계산이 있다.

그림자금융 전체도 이런 모양이었다. 한 연구자는 그 신용중개를 일곱 단계로 나누었다. 대출 실행, 대출채권의 임시 보유, 증권 발행, 증권의 임시 보유, 재포장 상품 발행, 증권 중개, 도매자금 조달이었다.

전통적인 은행은 예금, 대출, 만기 변환, 유동성 지원, 자본 완충을 한 지붕 아래 두었다. 그림자금융은 이 기능들을 수직으로 잘라 주택담보대출 회사, 특수목적기구, 증권사, 머니마켓펀드, 환매조건부채권 시장 같은 서로 다른 접점에 맡겼다.

규모도 작지 않았다. 2007년 6월, 한 자금흐름 통계 기준으로 추산한 그림자금융의 총부채는 22조 달러에 가까웠다. 같은 시기 전통적인 은행의 총부채는 약 14조 달러였다. 당시 미국의 환매조건부채권 시장은 약 12조 달러 안팎으로, 미국 은행체계의 총자산 10조 달러와 대체로 맞먹었다.

말하자면 가장 핵심적인 신용 활동의 상당 부분이 이제 보통 사람들이 익숙하게 아는 예금 수취와 대출 실행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높은 등급의 증권을 담보로 삼아, 하루짜리 또는 초단기 자금조달을 끊임없이 갱신해야 살아갈 수 있는 도매시장에서 이루어졌다.

뜨거운 자금도 이 사슬로 흘러들었다. 2006년 미국의 비기관계 주택담보대출 실행액은 1조 4,800억 달러에 이르렀다. 기관계 대출보다 45퍼센트 넘게 많았다. 비기관계 주택저당증권 발행액도 1조 330억 달러로, 기관계 발행액 9,050억 달러보다 컸다.

가장 뜨거운 주택금융은 비교적 통일된 대출심사 기준을 가진 기관 체계 밖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증권화 사슬, 신용등급, 인수, 증권화 전 자산 보유를 위한 금융, 환매조건부채권을 통한 자금조달에 더 많이 기대는 민간의 기계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 체계는 겉으로 보면 철저하게 익명적이었다.

저축자가 보유한 것은 은행 예금이 아니라 머니마켓펀드 지분이었다. 자금은 기업어음이나 환매조건부채권을 통해 들어왔고, 창구를 거치지 않았다. 담보물은 등급이 붙은 증권이었다. 위험은 신용부도스와프, 보험, 유동성 지원 조항으로 관리했다. 거래 상대방들 사이에서 통하는 것은 친분이 아니라 표준 기본계약과 담보 관리였다.

여섯째 글에서 교자를 다루며 말했다. 돈에서 금속을 벗겨내는 것은 그 무게 전부를 인격 위에 올려놓는 것과 같다고. 여기서는 반대 방향으로 힘을 썼다. 모든 고리에서 인격을 벗겨내고, 그 자리를 서류, 등급, 담보 할인율, 표준 조항으로 바꾸려 했다.

하지만 벗겨낼 수 없었다.

주관사는 여전히 상류에서 대출채권 보유자금을 대는 곳에 자신을 입증해야 했다. 여전히 자기 평판을 걸고 신용평가사와 투자자 앞에서 보증해야 했고, 진술 및 보장 조항에 서명해야 했다. 대출관리업체 역시 연체 자산을 유인합치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리라는 신뢰를 받아야 했다.

익명의 가격 아래에서도 관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흩어져 사슬의 이음매마다 숨어들었을 뿐이다.

숨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차이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슬에 이음매가 일곱 개 있고, 각 이음매마다 신뢰에 기대어야만 건널 수 있는 곳이 조금씩 있다고 하자. 평온한 날에는 그 일곱 군데에 걸린 신뢰의 몫이 저마다 아주 작다. 굳이 말할 가치도 없을 만큼 작다. 같은 날 일곱 군데가 한꺼번에 추궁받을 때에야, 그 총량이 드러난다.

6. 장부가 장부를 기록하다

이제 가장 중요한 현상을 볼 차례다.

주택담보대출은 증권화되고 나면 온전한 증권 하나로 남지 않는다. 서로 다른 층으로 잘린다. 가장 높은 층의 증권은 상환금을 가장 먼저 받고 손실은 가장 나중에 떠안는다. 한 층씩 내려갈수록 더 많은 손실을 감당하며, 맨 아래 몇 층이 가장 먼저 잃는다. 층마다 자기 등급, 자기 스프레드, 자기 가격이 있다.

이렇게 자르는 데에도 이치는 있다. 투자자마다 위험을 선호하는 정도가 다르다. 대출을 잘라 보수적인 사람은 위쪽을 사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은 아래쪽을 사게 하는 것은 위험을 가장 기꺼이 감당할 사람에게 배분하는 바로 그 일이다.

게다가 이 방식은 실제 어려움 하나를 해결했다. 만기는 30년, 금액은 수십만 달러, 차입자는 구체적인 한 사람인 주택담보대출을 그대로 시장에 내다 팔 방법은 거의 없다. 그런 대출 수천 건을 한 묶음으로 만들고, 손실을 감당하는 순서에 따라 몇 층으로 자르면 팔리지 않던 것에 살 사람이 생긴다. 그러면 오래 보유할 뜻이 있는 사람에게서 집을 사야 하는 사람에게로 자금이 흐를 수 있다. 통약이 실제로 이루어낸 일이다.

문제는 중간의 몇 층이 어디로 갔느냐에 있었다.

금융위기 조사위원회의 2006년과 2007년 재포장 상품 시장 조사에는 유난히 충격적인 세부 사실이 담겨 있었다. 일부 표본에서는 중간층의 거의 80퍼센트, 심지어 88퍼센트를 같은 종류의 다른 상품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사들여 다음번 포장에 넣었다. 극단적인 사례에서는 어떤 상품을 산 사람들이 전부 같은 종류의 다른 상품 운용자들이었다.

이 문장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본래 주택대출의 위험을 밖으로 분산해야 할 기계 안에서, 자기 상품들이 서로를 삼키고 서로를 불리는 일이 갈수록 늘어났다.

첫 번째 포장의 중간층이 팔리지 않자 두 번째 포장 속에 넣었다. 두 번째 포장에서는 다시 위·가운데·아래의 세 부분으로 잘랐고, 위쪽 부분은 다시 최고 등급을 받았다. 같은 위험이 한 바퀴 돌아 이름을 바꾸더니 등급은 더 높아졌다.

여기서 거짓으로 꾸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단계에는 모형의 뒷받침이 있었다. 모든 등급은 당시의 방법에 따라 계산되었고, 모든 단계는 문서에 적혀 있었다. 더 높은 등급이 나올 수 있었던 근거는 구체적인 가정 하나였다. 같은 묶음에 넣은 것들이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가정이었다. 그 가정은 방법 설명서에 적혀 있었고,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다만 보러 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장부는 더 이상 주택대출의 현금흐름만을 기록하지 않았다. 다른 장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앞선 열일곱 편에서 구축이 하는 일에는 언제나 바깥의 대상이 있었다. 땅 한 조각, 한 무리의 사람, 얼마간의 노동, 한 종류의 금속, 한 나라의 수입과 지출이었다. 구축과 그 대상 사이에는 긴장이 있었고, 넘쳐나오는 것이 있었고, 셈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대상은 언제나 바깥에 서 있었다.

여기서 구축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자기 산물에 값을 매기고, 그 가격에 다시 값을 매기고, 그 가격을 매기는 계약에 다시 값을 매겼다. 층마다 계산은 명료했고, 층마다 시장 호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사슬 전체의 맨 아래에는 수십만 건의 구체적인 주택담보대출 계약과, 매달 돈을 갚아야 하는 수십만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과 이 사슬 사이에 몇 겹이 끼어 있는지, 사슬 맨 위의 사람들은 더 이상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 호황일 때는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이 글 전체의 뼈대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다르다. 헤아릴 수 없더라도 가격 하나가 있으면 사람은 더 묻지 않아도 된다. 가격이 물음을 대신한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대신한다. 가격은 물음보다 더 객관적이고, 더 즉각적이며, 남에게 설명하기도 더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2006년 1월, 서브프라임 증권 한 바구니를 추적하는 지수가 거래되기 시작했다. 여러 신용부도스와프의 가격을 이용해, 이전까지 극히 불투명했던 서브프라임 위험을 끊임없이 관찰할 수 있는 온도계를 제공했다.

그때부터 수천, 수만 건의 담보대출이 맞을 미래는 연체율이나 담보권 실행률로만 나타나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접혀 지수의 한 수치 속에 들어갔다.

통약이 또 한 번 거둔 승리다. 실제 승리이기도 했다. 그 많은 대출의 값이 도대체 얼마인지 전에는 누구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다. 이제 날마다 수 하나가 있었다.

가격이 투명해질수록, 눈에 보이는 가격이 곧 알 수 있는 가치라고 여기기 쉬워진다.

그런데 이 통일된 측정 체계 바깥에는 줄곧 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차입자는 자기가 서명한 계약을 이해했는가. 집은 제대로 관리될 것인가. 대출관리업체의 유인은 왜곡되어 있지 않은가. 한 지역의 집값이 함께 떨어지지는 않을까. 새 빚으로 묵은 빚을 갚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시장조성자는 사정이 험해진 날에도 물량을 받아줄 뜻이 있을까.

이것들은 알아챌 수 없는 것들이 아니었다. 다만 적을 칸이 없었다.

칸이 없는 것들은 처지가 같다. 표에 0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보고서를 보는 사람은 여기에 항목 하나가 빠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빠졌다고 일깨워줄 빈칸이 표에 없기 때문이다. 열두째 글에서 말했다. 자가 비추지 못하는 곳을 보면 사람들은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여기서는 한 겹 더 나아간다. 자가 너무 밝게 비추어, 비추지 못하는 곳에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의 이름은 상관관계다.

대출 한 건씩 따로 보면 채무불이행 확률을 추정할 수 있다. 층별 증권을 따로 보면 손실의 분포를 계산할 수 있다. 가격 하나씩 따로 보면 모두 시장과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그것들이 동시에 문제를 일으킬지는 어느 한 자산의 속성에도 들어 있지 않다.

그것은 자산과 자산 사이에 있다.

훗날 연구자들은 간명하게 정리했다. 위기 이전에는 신용평가사, 위험관리자, 투자자, 감독 당국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구조화증권의 가격이 얼마나 함께 움직일지를 대체로 과소평가했다고.

여기서 잔여항은 자리를 옮긴다. 앞선 글들에서 잔여항은 배제된 쪽에 있었다. 장부 밖에, 관계 속에, 중앙은행의 금고 안에 있었다. 이번에는 어느 개별 항목 안에도 없다. 항목과 항목 사이를 잇는 선 위에 있다. 그런데 장부는 바로 그 항목을 단위로 기록한다.

한 줄씩 적어 내려가는 장부에는 줄과 줄 사이의 관계를 적을 칸을 둘 수가 없다.

이것은 복식부기가 남겨놓은 구조적인 한계다. 500년 넘게 바뀌지 않은 한계이기도 하다. 다섯째 글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장부를 이야기했다. 한 건을 적으면 대응하는 한 건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차변과 대변이 같아지면 장부는 닫힌다. 이 방법의 힘은 모든 항목을 단단히 고정하는 데 있다. 하지만 두 항목을 잇는 선에도 계정 하나를 내주는 일은 해내지 못한다. 이 몇십 년 동안 진짜 위험은 하필 그 선들 위에서 자랐다.

7. 97센트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그 기계가 멈추었다. 멈추는 방식은 많은 것을 드러냈다.

한 연구자는 그 두 해의 공황을 환매조건부채권 시장에서 벌어진 인출 사태로 요약했다.

이 인출 사태는 전통적인 예금 인출 사태와 달랐다. 투자자들은 은행 창구 앞에 줄을 서지 않았다. 그 대신 담보 할인율을 높이고,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더 많은 양질의 담보를 요구하고, 만기를 줄이고, 스프레드를 높였다.

겉으로는 증권 가격이 출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거래 상대방, 시장조성자가 쥔 재고, 등급의 신뢰성, 담보의 질, 마지막에 누가 받아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전면적인 의심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더 분명해진다. 평온한 날에는 이런 물음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가격이 있었고, 등급이 있었고, 표준계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출 사태란 모두가 갑자기 돈이 부족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모두가 갑자기 이 물음들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번 묻기 시작하자 하나도 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이 체계 전체를 세운 목적이 바로 그런 물음을 묻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전에 한 차례 예행연습이 있었다. 상당히 완전한 예행연습이었다. 1998년, 한 헤지펀드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 뒤이은 조사에는 아주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자본 48억 달러 위에 명목원금 1조 달러가 넘는 장외파생상품 포지션과 1,250억 달러의 증권 포지션을 쌓아 올렸다. 그런데 주요 거래 상대방들과 감독 당국은 그 실제 규모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

그 일이 10년 뒤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 전체를 이미 한 번 보여주었다. 높은 레버리지, 장외 계약의 그물망, 거래 상대방의 불투명성, 시장이 스스로를 규율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한 번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뒤 10년 동안 그 체계는 수십 배로 자랐다.

이 일은 따로 적어둘 만하다. 구축의 성질을 한 겹 더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축이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일 뒤에는 실제로 반성이 있었고, 조사가 있었고, 거래 상대방의 투명성에 관한 논의도 있었다. 다만 반성 끝에 나오는 결론은 대개 기술적인 것이었다. 데이터를 몇 항목 더 보고해야 한다. 증거금을 조금 더 남겨두어야 한다. 이 방식 전체가 같은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는 결론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 결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일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16일, 한 머니마켓펀드가 순자산가치가 97센트로 떨어져 액면가를 밑돌았다고 발표했다.

그전까지 머니마켓펀드 지분은 줄곧 현금에 가까운 것으로 취급되었다. 사람들은 돈을 넣으며 예금처럼 여겼다. 언제든 찾을 수 있고, 손실은 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액면가를 밑돌았다는 말이 공황을 부른 까닭은 가격 하나가 무너져서가 아니었다. 가정 하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가정을 정식으로 약속한 사람은 한 번도 없었다. 펀드 설명서에는 순자산가치가 변동할 수 있고, 원금이 보장되지 않으며, 투자에는 위험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모두가 읽었고, 모두가 상투적인 문구로 여겼다. 실제로 사람들이 돈을 넣게 한 것은 20여 년 동안 액면가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 번도 글로 적히지 않은 약속은 한 번 깨지고 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며칠 뒤 미국 재무부는 머니마켓펀드에 대한 한시적 보증 계획을 내놓았다. 9월 19일 현재 보유한, 요건을 충족하는 펀드 잔액을 보증하는 계획이었다.

현금 대용물과 가장 닮은 것, 인격을 가장 철저하게 벗겨낸 지분도 결국 국가가 나서서 뒤를 받쳐주어야 했다.

금융화에서 가장 역설적인 대목이다.

처음에 그것은 인격을 철저히 걷어내는 일을 뜻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네 은행 지점장이 당신을 아는지에 기대지 않고, 오래된 관계에도 기대지 않는다. 통일된 가격 결정, 통일된 등급, 통일된 담보, 표준화된 계약에 기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시장이 가장 먼저 캐물은 것은 여전히 인격에 관한 질문이었다. 누가 아직 당신에게 자금을 대줄 것인가. 누가 아직 당신의 증권에 감히 보증을 설 것인가. 누가 마지막 호가를 내줄 것인가. 누가 당신이 내세우는 최고 등급이 얇은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것인가. 마지막에 누가 나서서 뒤를 받쳐줄 것인가.

익명의 교환수단은 인격에 기대는 신용을 한 번도 죽이지 못했다.

다만 그 신용을 상류로 숨겼다. 소수의 핵심 기관 안으로 숨겼다. 마지막에는 국가 뒤로 숨겼다.

열일곱째 글의 끝에서 말했다. 1971년에 잘라낸 것은 가림막이었고, 줄곧 작용하던 것들이 처음으로 정면에 놓였다고. 여기는 그 말의 다음 장이다. 가림막을 잘라낸 뒤, 인격에 기대는 것들은 모든 사람 앞에 돌아오지 않았다. 더 적은 수의 접점으로 모였다.

인격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인격에 기대는 어떤 보증들은 더 적은 수의, 더 큰 권력을 가진 곳으로 집중시켜야 한다.

8. 너무 큰가, 너무 비싼가

이 몇십 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두고 연구자들의 견해는 깊이 갈린다. 취향의 차이가 아니다.

한 갈래는 효율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금융부문이 크게 불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중 상당 부분이 실제 경제적 필요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강조한다. 파생상품은 위험을 나누어 가장 적합한 보유자에게 다시 배분한다. 발달한 금융체계는 정보의 생성, 위험의 분담, 자본의 배분을 돕는다. 금융과 성장에 관한 문헌들은 주식시장과 은행의 발전이 대체로 성장과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2013년, 한 학자는 아예 질문을 규모에서 기능으로 바꾸었다. 금융이 너무 큰지를 판정하는 것 자체는 가장 쓸모 있는 질문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금융의 기능이 잘 작동하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갈래는 추출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쪽이 붙드는 것은 이익의 구조다. 이익은 갈수록 금융 경로를 통해 얻어지고, 비금융기업도 이자와 증권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어떤 학자는 더 넓은 정의를 내놓았다. 금융화란 금융의 동기, 시장, 기관, 행위자들이 경제 전체의 작동 방식에 가하는 압력이 커지는 것이라는 정의다. 또 다른 연구들은 기업지배구조의 관점에서, 주주가치가 오래된 상식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에야 지배 원리로 올라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견해들에 따르면 금융의 팽창은 중개가 중립적으로 깊어지는 일이 아니다. 사회적 잉여의 배분과 기업 통제권이 금융 채권자, 기관투자자, 경영진의 인센티브, 자산운용자 쪽으로 다시 기우는 일이다.

두 견해 사이에는 특히 중요한 실증적 논쟁 하나가 끼어 있다. 금융이 커진 까닭은 중개할 자산이 늘어 중개부문도 자연히 커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같거나 심지어 더 적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더 비싼 요금을 받았기 때문인가.

한 학자의 연구를 양쪽이 모두 자주 인용하는 까닭은 그가 내놓은 답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는 금융업이 전체 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20년대에는 높고, 1960년대에는 낮았으며, 1980년대 이후 다시 높아졌음을 인정한다. 미국 금융중개의 장기 비용은 대체로 중개 대상 자산의 1.5~2퍼센트 사이를 유지해왔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동시에, 자신이 사용한 기준으로 보면 금융중개의 단위비용이 지난 30년 동안 오히려 올랐다는 사실도 찾아낸다.

효율을 강조하는 쪽은 앞의 절반을 붙들고, 비판하는 쪽은 뒤의 절반을 붙든다. 하지만 이 발견의 진짜 무게는 여기에 있다. 가장 격한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정보기술 덕분에 금융이 갈수록 저렴해진다는 상식 하나조차 쉽게 성립하지는 않는다.

또 한 갈래는 불안정성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1992년, 한 경제학자는 금융체계의 자금조달 관계를 헤지형, 투기형, 폰지형의 세 가지로 나누었다. 그는 분명히 썼다. 헤지형 자금조달이 우세하면 경제는 스스로를 규율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투기형과 폰지형의 비중이 커질수록, 경제는 이탈이 스스로를 증폭하는 체계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는 한마디를 더 직설적으로 했다. 은행가와 금융중개자는 부채를 파는 상인이며, 혁신은 이익을 보장한다고.

이 설명과 효율론이 갈리는 지점은 금융이 위험을 이전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다른 데 있다. 호황기의 성공이야말로 체계 전체를 유혹해 안전 여유를 점점 더 얇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침내 가장 유동적이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잘 측정할 수 있어 보이는 자산마저 가장 취약해질 때까지.

기원에 대한 이해도 갈린다. 훗날 어떤 연구자는 미국의 금융화가 정책결정자들이 처음부터 의도한 목표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의 성장 둔화 이후, 국가가 분배 갈등과 재정 압력, 정당성에 대한 압력을 피하려고 내놓은 일련의 응급 대응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값이 쌌지만, 경제적으로는 오랫동안 광범위한 영향을 남긴 대응들이었다.

이 설명을 따르면 금융화는 음모도 아니고 천재적인 설계도 아니다. 논쟁과 시험, 지연, 대안들의 실패 속에서 생겨난 길이다.

공식적인 위기 조사조차 한 줄기의 서사를 이루지 못했다. 다수 의견은 감독의 실패, 레버리지, 그림자금융, 증권화, 파생상품을 강조했다. 반대 의견들은 세계적 신용 거품, 개발도상국의 자본 흑자, 위험의 과소평가, 스프레드 축소를 더 핵심적인 자리에 놓았다.

여기서는 판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설명들을 함께 놓으면, 실제로 다투는 것이 아주 구체적인 세 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격은 정말 가치에 더 가까워졌는가. 금융의 채권은 정말 기초자산에 더 밀착했는가. 익명 시장은 정말 관계에 기대는 신용보다 더 믿을 만한가.

세 개의 질문에 세 갈래의 증거가 있다. 어느 것도 깔끔한 답 하나를 주지 않는다.

여기서는 판정하지 않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이 세 질문의 답이 서로 같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의 채권이 기초자산에서 더 멀어졌다는 점은 자료상 비교적 분명하다. 하지만 가격이 가치에 더 가까워졌는지는 어느 시기의 어떤 자산을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 익명 시장과 관계적 신용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믿을 만한지에 관해서는, 이 몇십 년이 내놓은 답이 있다. 둘 다 고장 날 수 있다. 다만 고장 나는 모습이 다르다.

그런데 이 세 질문 밑에는 더 소박한 사실 하나가 눌려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맨 아래에는 매달 돈을 갚아야 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에게는 일자리가 있다. 아니면 있었던 적이 있다. 그는 자기가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집 한 채에 산다. 그 집이 제대로 관리될지는 그에게 마음과 힘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달려 있다.

이 중 어느 것도 그 기계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기계가 요구하는 것은 그의 신용점수, 주택가치 대비 대출비율, 소득 대비 월 상환액 비율이다. 그 숫자들은 그가 갚을 수 있는지와 실제로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가 아니다. 구축은 한 번도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 적이 없다. 한 사람에게서 수로 내놓을 수 있는 부분 몇 가지를 취하고, 그 부분들로 그 사람을 대표하게 한다. 평소에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사람에서 기계의 꼭대기까지 가는 사이에는 일곱 고리, 여러 층의 증권, 몇 차례의 재포장, 지수 하나, 모형 한 무더기, 기본계약서들이 놓여 있다.

층마다 바로 아래층에 값을 매긴다. 그런데 각 층이 보는 것은 바로 아래층의 가격뿐이다. 그 아래층의 아래층은 보지 못한다.

호황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층마다 가격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위기가 오면 모든 사람이 동시에 아래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이미 일곱 토막으로 나뉘어 있고, 토막마다 다른 사람이 맡고 있다.

그 기계를 마지막에 멈춰 세운 것은 국가의 개입이었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도 결국 한마디를 선언하는 것뿐이었다. 이 지분들은 내가 인정한다.

인정한다는 것은 지금껏 따라온 길에서 가장 오래된 동작이다. 둘째 글의 점토판에 적힌 빚은 신전의 위계가 인정해주어야 했다. 여섯째 글의 교자는 관청이 인정해주어야 했다. 열일곱째 글의 달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계속 그 빚을 인정할 뜻이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이토록 여러 층을 돌고, 이토록 많은 고리로 나누고, 이토록 많은 표준계약서를 쓰고도, 마지막에는 여전히 누군가 나와서 말해야 한다. 내가 인정한다.

장부 하나는 세상을 아주 잘게 나눌 수 있다. 조각마다 값이 있고, 그 값을 계산할 수 있고, 조각마다 따로 사고팔 수 있을 만큼 잘게 나눌 수 있다.

나누어낼 수 없는 것은 그 조각과 조각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 평온한 날에는 그것들이 없는 듯 보인다. 가격도 없고, 칸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조각이 동시에 떨어지기 시작할 때에야 사람들은 알아차린다. 그것들이 내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셈은 아직 맞지 않는다. 장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