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N | 中文 | 日本語 | Français | Deutsch | Español | 한국어
← 경제 시리즈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경제
제15편 · 총 23편

대공황과 케인스: 시장은 저절로 청산되지 않았다

고전파 경제학은 가격과 임금이 움직이면 시장이 다시 균형을 찾는다고 믿었다. 대공황은 일하고 싶어도 고용되지 못한 수백만 명을 통해 유효수요와 비자발적 실업이라는 빈칸을 드러냈다.

Han Qin (秦汉)

15개월이 지나도 곡선은 돌아서지 않았다

1930년 가을 미국에는 경기가 곧 반등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과거의 경기수축은 평균 15개월쯤 이어졌고, 1929년 8월 정점에서 그때까지의 시간도 비슷했다. 기존 경험에 따르면 하강선은 이제 방향을 바꿔야 했다.

하지만 은행이 무너지고 통화와 신용이 줄어들면서 침체는 더 깊어졌다. 과거의 평균은 이번 위기가 과거와 같은 종류일 때만 쓸 수 있는 자였다. 가장 필요할 때 그 전제가 틀렸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모델 바깥에는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있었다. 줄을 서고 구호소를 찾고 도시 외곽 판잣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눈에 보였다. 이들은 통계의 잡음이 아니라 기존 이론의 분류표에 없던 현실이었다.

일하지 못한 사람을 자발적 실업자로 부르기

고전파 전통은 생산이 그 생산물을 살 소득을 만들고, 가격·임금·이자율이 조정되면 자원이 다시 고용된다고 보았다. 일반적인 수요 부족은 오래 지속될 근본 문제가 아니었다. 일자리가 없으면 임금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 쉬웠다.

그 논리에서 현재 임금에 일할 자리가 없는 사람은 사실상 더 낮은 임금을 거부한 사람으로 처리된다. ‘자발적’이라는 단어는 선택을 존중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해결해야 할 실패를 개인의 선택으로 바꿔 적었다.

당사자는 매일 일자리를 찾고도 빈손으로 돌아오는데 장부에는 그가 선택했다고 기록됐다. 착(鑿)은 이 언어에 금을 냈다. 일할 의사와 시장 전체의 고용 능력을 같은 것으로 놓아서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었다.

유효수요가 원인의 순서를 바꾸다

케인스는 임금이 아니라 기업의 판매 전망을 출발점에 놓았다. 기업은 사람을 더 고용해 얻을 것으로 예상하는 수입이 그 고용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클 때 생산을 늘린다. 이 교차점이 유효수요다.

개별 노동자가 임금을 낮춰도 다른 사람의 소비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모든 기업이 수요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면 누구도 먼저 고용하지 않고, 소득이 줄어 다시 수요가 약해진다. 각자의 합리적 판단이 집단적인 불황을 강화한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 뒤집은 것은 단순히 정부지출의 크기가 아니다. 노동시장을 경제 전체에서 떼어 내 별도로 청산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전체 안에서 소득과 기대가 연결돼 있다면 부분의 가격만 움직여도 균형은 돌아오지 않는다.

은행 공황과 금의 가격

1930년 말 시작된 은행 공황은 부실은행 몇 곳의 정리에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비회원 은행이 대리은행 네트워크에 준비금을 맡겼고, 평소에는 안전해 보이던 중복과 신용의 사슬이 동시 인출 앞에서 끊어졌다. 은행과 함께 예금·대출·지역의 결제 능력이 사라졌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은행 휴업 뒤 라디오로 은행의 자산 구조를 설명하고 예금을 다시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 휴업 전 4주 동안 빠져나간 현금의 약 3분의 2가 3월 말까지 돌아왔다. 신뢰는 이론 밖의 감정이 아니라 금융시스템을 다시 움직인 투입물이었다.

미국은 금 보유를 제한한 뒤 1934년 공식 금 가격을 온스당 20.67달러에서 35달러로 바꿨다. 달러의 금 함량은 이전의 약 59퍼센트가 됐다. 금을 떠난 효과, 통화 확대, 수출과 기대 변화의 비중은 논쟁적이지만 국내 고용을 희생해 옛 평가를 지켜야 한다는 제약은 약해졌다.

원인은 여러 갈래였고 사람은 한 번만 무너졌다

대공황의 깊이를 설명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통화량이 3분의 1 이상 줄고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설명, 금본위가 긴축을 국제적으로 전달했다는 설명, 부채디플레이션과 수요 붕괴, 정책 판단의 차이를 강조하는 설명이 경쟁한다.

1932년에는 1차대전 참전군인들이 1945년에나 받을 수 있는 보너스를 조기 지급해 달라며 워싱턴에 모였다. 기다릴 돈이 없는 사람에게 13년 뒤의 채권은 현재의 생계가 아니었다. 장부의 자산과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 사이의 거리가 거리의 천막촌으로 나타났다.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에서 케인스가 세운 새 구(構)는 실업을 개인의 가격 문제가 아니라 화폐경제 전체의 조정 실패로 다시 적었다. 여항(餘項)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름을 얻었다. 시장이 저절로 청산된다는 믿음보다, 청산되지 않은 쪽에 사람이 서 있다는 사실이 경제학의 출발점이 됐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