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째 글. 대공황과 케인스: 청산은 결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고전파 경제학은 가격과 임금이 움직이면 시장이 다시 균형을 찾는다고 믿었다. 대공황은 일하고 싶어도 고용되지 못한 수백만 명을 통해 유효수요와 비자발적 실업이라는 빈칸을 드러냈다.
이 글의 목차
1. 열다섯 달
1930년 가을이 되자 미국 경제는 이제 기운을 되찾을 채비가 된 듯 보였다.
후대 사람들이 낙관적으로 돌아본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의 자료로도 뒷받침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그전 몇 차례의 경기 수축은 평균 열다섯 달 동안 이어졌다. 1929년 8월의 정점부터 세면, 이번에도 1930년 가을로 꼭 열다섯 달이었다. 곡선이 방향을 바꿀 때가 되었다.
이 작은 사실은 기억해둘 만하다. 뒤이어 벌어질 모든 논쟁의 모양을 정했기 때문이다. 1930년 가을에 그 선이 정말 위로 꺾였다면,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케인스는 아마도 영리한 소책자 몇 권을 쓴 영국 관리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기억으로는 열다섯 달이나 이어진 수축도 이미 긴 편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 수축이 지난 몇 차례와 같은 종류의 일인지 아닌지 판단할 도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1월, 은행 공황이 시작되었다.
먼저 내슈빌의 한 금융그룹과 그 계열 기관들이 잇따라 무너졌다. 12월 11일에는 뉴욕에서 네 번째로 큰 은행이 문을 닫았다. 예금 인출 사태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번졌다. 몇 주 사이에 은행 수백 곳이 영업을 멈췄다.
이 몇 줄은 금세 읽힌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은행 하나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한 마을의 통장들이 같은 날 휴지가 된다는 뜻이었다. 이미 합의한 대출이 나오지 않고, 다음 달에 주어야 할 임금을 줄 수 없게 된다는 뜻이었다. 은행은 돈을 넣어두는 시설이 아니다. 한 지역의 모든 지급 관계가 이어지는 접점이다. 그 접점이 망가지면 망가지는 것은 저축이 아니다. 그곳 사람들이 서로 일을 이루어낼 수 있느냐 하는 가능성 자체다.
위로 꺾였어야 할 그 선은 3년 반 동안 줄곧 아래로 내려갔다.
훗날 정리한 경기순환 연대기에서 이 수축의 바닥은 1933년 3월이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의 실질 산출은 약 29퍼센트 줄었고, 소비자물가는 약 4분의 1 떨어졌다. 1933년 실업률은 약 4분의 1에 이르렀다.
이 세 수는 함께 놓고 보아야 한다. 산출은 30퍼센트 가까이 줄고, 가격도 4분의 1 가까이 떨어졌으며, 실업은 4분의 1에 이르렀다. 고전학파의 설명대로라면 가격이 내려간 뒤에는 사람들이 다시 물건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장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다시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가격은 실제로 떨어졌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떨어졌다. 사람들은 돌아가지 못했다.
이른바 회복이 곧 사람들을 다시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다.
뒤에 이어질 모든 이야기의 핵심이 이 한 문장에 있다. 곡선은 예전 높이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아래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저절로 함께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생산량은 되돌릴 수 있는 양이다. 한 사람이 잃어버린 그 8년은 그렇지 않다.
1933년 실업률은 약 24.9퍼센트였고, 실업자는 약 1,283만 명이었다. 1935년에도 노동력의 약 5분의 1은 일할 곳이 없었다. 1937년에는 산업생산이 이미 1929년 수준을 넘어섰는데도 여전히 770만 명이 실업 상태였다. 같은 해 정책은 긴축으로 돌아섰다.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다시 한 차례 경기침체가 찾아왔고, 실업률은 도로 20퍼센트 가까이 올라갔다.
이 숫자들 가운데 생산량도, 가격도, 통화량도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람은 돌아갈 수 없다.
이 말은 감상이 아니다. 아주 기술적인 뜻을 담고 있다. 생산량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 장부에는 한 번 나가고 한 번 들어온 셈이니 순액은 0이다. 하지만 마흔 살 기계공이 4년 동안 실직했다가 작업장으로 돌아오면 어떨까. 잃어버린 솜씨, 끊긴 근속연수, 다 써버린 저축, 그 4년 동안 집 안에서 일어난 일들. 생산량이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 가운데 어느 한 칸이 상계되는 것은 아니다. 총량의 회복과 한 사람의 회복은 장부에서는 같은 일이다. 세상에서는 같은 일이 아니다.
앞선 열네 편에서 구축은 제 안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을 거듭 만났다. 대처하는 방법은 일곱 가지로 바뀌어왔다. 더 큰 구축이 바깥에서 풀어주게 하기, 이름을 바꾸어 계속하기, 정확히 재되 묻지는 않기, 비용에 나누어 넣을 수 있는 금액으로 고쳐 적기, 학문의 경계를 한 칸 안으로 당기기, 장부 둘레를 도는 궤도를 내주기, 그리고 증빙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였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사람이다. 그것도 몇백만 명이다. 거리에 서 있고, 구호소 문 앞에 줄을 서고, 도시 변두리 판자촌에 산다. 누구에게나 보인다. 구축에는 그들을 옮겨놓을 곳이 없다.
2. 당신이 원한 일이다
케인스가 무엇을 무너뜨렸는지 똑똑히 보려면, 먼저 무너진 쪽이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보아야 한다.
고전학파의 전통이 한 덩어리로 굳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대체로 하나의 핵심 믿음은 공유했다. 일반적인 수요 부족은 이론상 근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생산 과정 자체가 그 생산물을 사기에 충분한 소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가격이 조정되고, 임금이 조정되고, 금리가 조정되면 자원은 결국 물건을 팔 수 있고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곳으로 다시 배분된다. 이 생각에는 끊임없이 인용된 표어 하나가 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밀은 더 단단한 문장 하나를 남겼다. 훗날 케인스가 정면으로 겨눈 문장이었다. 상품에 대한 수요는 노동에 대한 수요와 같지 않다.
제 맥락 안에서는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다. 밀의 뜻은 이렇다. 기성복 한 벌을 사면 그 돈은 이미 만들어진 옷의 재고에 지급된다. 실제로 사람을 고용해 일하게 하는 것은 생산 과정에 투입한 자본이다. 이 구별에는 이치가 있다. 어떤 문제를 논할 때는 지금도 쓸모가 있다. 곤란은 이 말이 넓혀 적용된 방식에서 생겼다. 물건을 사는 일로는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 순간, 수요와 고용의 관계를 묻는 탐구 전체가 출발점에서 닫혀버린다.
이 틀 안에서는 대규모 실업이 오래 지속되는 일이 이론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1932년 거리에 서 있던 1천만 명 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수사적인 물음이 아니다. 분류의 문제다. 분류의 문제는 앞에서도 여러 번 나타났다. 여덟째 글에서 말했듯 분류는 추론보다 먼저 온다. 무엇을 어느 칸에 넣느냐가 그 뒤의 모든 추론을 정한다. 거리에 선 사람들을 어느 칸에 넣느냐에 따라 정부가 해야 할 일도, 학계가 연구해야 할 일도 정해진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도 정해진다.
고전학파 쪽에는 준비된 답이 있었다. 빈틈없이 갖추어진 답이었다. 마찰 때문에 잠시 생기는 수급 불일치를 빼고, 노동조합의 제약을 빼면, 한 사람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까닭은 결국 자기 한계생산성에 걸맞은 보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너무 비싸게 부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축이 잔여항을 다루는 여덟 번째 방법이 등장한다. 그중 힘이 가장 덜 드는 방법이다.
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측정에서 빠졌다고 말하지도 않고, 문밖으로 분류해 치우지도 않는다. 하는 일은 재분류다. 잔여항을 그 잔여항 자신의 선택이라는 칸에 넣는다. 당신에게 일이 없는 것은 장부의 셈이 맞지 않아서가 아니다. 당신이 스스로 일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수법은 앞선 일곱 가지보다 맞서기 어렵다. 이유는 둘이다. 첫째, 논리적으로 완결되어 있어 안에서는 반박할 수 없다. 임금을 조금만 더 낮출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 있고, 그 가능성은 아직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을 설명하는 데 언제든 쓸 수 있다. 둘째, 입증의 짐을 잔여항 자신에게 모두 넘긴다. 자기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일이 없는 바로 그 사람이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손에 쥔 도구가 하나도 없다.
케인스의 반격은 매서웠다. 더구나 방법 자체를 겨눈 반격이었다.
그는 먼저 공정한 말 한마디를 했다. 고전이론은 제 전제 안에서 논리적으로 일관되어 있다. 고전학파 사람들이 어리석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이론이 하나의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데 있다. 그것을 대량실업의 시대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방법의 자리를 잘못 잡는 일이다.
이어 기하학의 비유를 들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비유클리드 공간에서 맞지 않을 때, 거꾸로 직선들이 충분히 곧지 않다고 탓할 수는 없다.
기억해둘 만한 비유다. 구축이 으레 하는 일을 정확히 가리키기 때문이다. 모형과 대상이 맞지 않으면 모형을 고칠 수도 있고, 대상이 부적격이라고 선언할 수도 있다. 모형을 고치려면 추론 전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대상을 부적격으로 만들려면 형용사 하나만 붙이면 된다.
게다가 이 형용사는 점잖기까지 하다. ‘자발적’이라는 말은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듯 들린다. 자유의 기운마저 조금 묻어 있다. 열셋째 글의 ‘증빙을 제시하십시오’도 그랬다. 그저 절차를 엄밀히 하자는 말처럼 들렸다. 이런 자리에서 구축은 모진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이치에 맞는 듯 들리는 말 하나로, 해결해야 할 일을 해결된 일로 고쳐 적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고쳐 적힌 사람의 처지는 기묘해진다. 날마다 일거리를 찾아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 자신에게는 더없이 분명한 실패다. 그런데 그 장부에는 그가 선택을 한 것으로 등록된다. 두 기록 사이에는 이의를 제기할 통로가 없다. 장부는 당사자의 진술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장부가 받는 것은 모형에 들어갈 수 있는 변수뿐이다.
3. 만약 사람들이 정말로…
케인스는 그 사람들이 정말로 일하고 싶어 하는지를 놓고 고전학파와 다투지 않았다.
다른 일을 했다. 정의 하나를 만들었다. 고전학파의 모형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정의였다.
이 방법 자체도 한번 들여다볼 만하다. 어떤 이론을 반박할 때는 대개 추론이 틀린 곳을 찾는다. 케인스는 다른 자리를 골랐다. 그 이론의 분류표에 없는 칸을 찾아간 것이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비자발적 실업은 이렇게 정의된다. 지금의 화폐임금 수준을 보자. 임금재의 가격이 조금 올라, 다시 말해 실질임금이 조금 내려갔을 때, 나와서 일하려는 사람도 기업이 고용하려는 사람도 지금보다 많아진다면, 현재 일자리가 없는 이 사람들은 비자발적 실업 상태에 있는 것이다.
여러 겹으로 얽힌 정의여서 한 번 읽고는 그 무게를 알아채기 어렵다. 핵심은 ‘양쪽 모두 많아진다’에 있다.
고전학파의 설명은 이렇다. 정말 노동자들이 너무 비싸게 불러서 거래가 막힌 것이라면, 실질임금이 조금 내려갈 때 일하려는 사람은 줄고 기업이 고용하려는 사람은 늘어야 한다. 양쪽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마침내 만난다. 그러면 시장이 청산된다.
그런데 케인스가 찾는 경우에는 양쪽이 동시에 늘어난다.
일하려는 사람이 더 많고, 기업이 고용하려는 사람도 더 많은데, 그 사람들은 지금 일자리가 없다. 막힌 곳이 애초에 이 둘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가격에 합의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아예 가격을 이야기할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좀 더 땅에 발을 붙인 이야기로 바꾸어보자. 한 마을의 공장이 문을 닫아 1천 명이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그때 새 사장이 와서 품삯을 20퍼센트 적게 줄 수 있다고 한다. 고전학파의 그림대로라면 일부는 너무 적다며 오지 않고, 나머지는 받아들여 공장이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흔히 일어나는 일은 이렇다. 1천 명 모두가 오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장은 공장을 열 생각이 없다. 물건을 만들어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하려는 사람들의 줄은 길 어귀까지 이어지는데, 고용하려는 사람은 한 명도 자리에 없다. 이때 임금을 더 누르면 눌리는 것은 줄을 선 1천 명이다. 자리에 없는 그 한 사람이 그것 때문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것은 검증할 수 있는 조건이지 하소연이 아니다. 관찰할 수 있는 일을 정의로 적어놓았다. 그 조건이 성립하는 순간 고전학파의 설명은 더는 쓸 수 없게 된다.
이 한 걸음은 따로 한 줄 적어둘 만하다.
앞선 글들에서 잔여항은 누군가 짚어주고, 서술하고, 역사가들이 하나하나 수량으로 환산해 보여주던 것이었다. 실제로 있었지만, 그것이 실제로 있음을 뒷받침하려면 이야기가 필요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누군가 잔여항을 판정 기준으로 적었다. 이 조건들을 충족하면 있다. 충족하지 않으면 없다. 잔여항은 처음으로 자기만의 검증 조건을 갖게 되었다.
잔여항에 판정 기준을 주는 것과 잔여항을 대신해 말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대신 말해주면 동정심을 엉뚱한 곳에 쓴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판정 기준을 내놓으면 반대하는 쪽은 그 조건이 경험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 케인스는 사람의 마음을 둘러싼 논쟁을 검증할 수 있는 탁자로 옮겼다. 마음이 약해서 한 일이 아니다. 어느 탁자에서 말해야 그 말이 셈에 들어가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뒤집힌 것은 인과의 방향이다.
고전학파 쪽의 순서는 이렇다. 실질임금이 고용량을 정한다. 임금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고용할 사람 수도 정해진다.
케인스의 순서는 거꾸로다. 소비성향과 투자유인이 주어져 있을 때, 고용량은 유효수요가 정한다. 실질임금은 그 고용량에 대응하는 결과일 뿐이다.
일상적인 말로 바꾸면 이렇다. 먼저 노동시장을 청산시킬 수 있는 임금이 있고, 그 뒤에 고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기업이 얼마나 팔 수 있을지 예상하고, 그다음에 몇 사람을 고용할지 정한다.
임금은 입구가 아니다. 판매에 대한 기대가 입구다. 한 사람이 제값을 아무리 낮추어도, 남의 상품 수요를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한 겹이 더 나온다. 기업의 판매 기대는 다른 사람들이 돈을 쓸지에 대한 판단이다. 다른 사람들이 돈을 쓸지는 다시 그들에게 일자리가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모든 기업이 다른 기업부터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누구도 잘못한 것이 없다. 누구나 자기 처지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그 합리적인 판단을 모두 합치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 열셋째 글에 나왔던 말, 이치에 맞는 처리를 모두 더하고 나면 그 자리는 사라진다는 말이 여기서 무대를 바꾸어 다시 나타난다.
4. 특수한 경우
『일반이론』은 정부가 돈을 더 써야 한다고 외치는 구호집이 아니다. 인과의 순서를 새로 배치한 기계에 더 가깝다. 그 기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제3장에 있다.
케인스는 먼저 두 가지를 나눈다. 총공급가격과 총수요가격이다. 앞의 것은 기업이 어떤 고용량을 제공하려면 반드시 회수해야 하는 돈이다. 뒤의 것은 그 고용량에서 기업이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돈이다. 기업의 결정은 두 수를 견주는 일이다. 사람들을 더 고용했을 때 예상 수입이 반드시 회수해야 할 금액보다 크면 늘린다. 반대면 줄인다.
이제 고용은 노동시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판매 전망을 앞에 놓은 기업이 사람을 쓸 만하다고 여기는지에 달려 있다. 이 자리의 핵심 용어가 유효수요다.
여기서 ‘유효’는 정해진 일을 하는 말이지 꾸밈말이 아니다. 실제 주문으로 바뀔 수 있는 수요를 뜻한다. 원하기는 해도 돈을 내놓을 수 없는 필요를 뜻하지 않는다. 다섯째 글에 이와 이어지는 말이 있었다. 구매력 없는 필요 때문에 장부의 셈이 어긋나지는 않는다. 그때는 장부를 쓰는 사람의 자기변호였다. 여기서는 같은 사실이 기계 전체의 핵심 부품이 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굶주려도 장부의 셈은 맞을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음은 소비가 지닌 한 가지 성질이다.
케인스의 뜻은 소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소비에는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소득이 늘면 소비도 늘지만, 대개 소득이 늘어난 만큼 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고용이 확대될수록 총산출과 소비지출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그 틈은 투자로 채워야 한다. 투자가 모자라면 기업은 계속해서 더 많은 고용을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밀고 나가면 가장 중요한 문장이 나온다.
소비성향이 주어져 있을 때 균형 고용 수준은 현재의 투자량에 달려 있다. 완전고용에 대응하는 유효수요는 하나의 특수한 경우일 뿐이다.
이 문장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완전고용은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정상 상태가 아니다. 어떤 매개변수들이 마침 맞아떨어졌을 때 우연히 나타나는 결과다.
여기서 처음으로 누군가 구축의 안쪽에서 구축 자신의 언어를 써서, 닫히지 않는 것을 기본 상태로 적었다. 앞선 열네 편에서 구축은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늘 예외로, 오차로, 아직 말끔히 처리하지 못한 부분으로 여겼다. 여기서는 그 관계가 통째로 뒤집힌다. 안에 들어가는 쪽이 오히려 예외다.
이 뒤집기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 눈여겨보아야 한다. 바깥의 비판자가 한 일이 아니고, 피해자가 한 일도 아니며, 혁명이 한 일도 아니다.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치고, 재무부 고문으로 일하고, 영란은행을 옹호하기도 반대하기도 했던 사람이 이 학문 자신의 추론 방식으로 해낸 일이다. 구축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도전은 흔히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에게서 온다. 아홉째 글의 스미스는 구축 안에 있었다. 열한째 글의 마르크스는 밖에 있었다. 케인스는 안에 있었고, 줄곧 안에 머물렀다.
동시에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절이 선고문으로 읽힐 것이다.
이 결론은 철학적 명제가 아니다. 소비성향과 투자유인에 관한 일련의 가정에서 도출한 기술적 결론이다. 그 가정들은 처음 쓰인 날부터 오늘까지 계속 의문에 부쳐졌다. 케인스 자신도 시장이 영원히 청산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청산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당연한 것으로 전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쉬운 말로 하면 그의 돌파구는 한 문장에 담긴다. 일하고 싶은 모든 사람이 제값을 낮추어 자신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력은 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임금도 물건에 따로 붙어 있는 가격표가 아니다. 임금을 낮추면 가격이 바뀌고, 빚의 실질 부담이 바뀌고, 기대가 바뀌고, 소비가 바뀐다. 기업의 현금흐름과 은행의 대차대조표도 바뀐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다시 돌아와, 이 사람을 고용해 만든 물건이 팔릴지에 대한 기업의 판단을 바꾼다.
그러므로 노동시장만 떼어내 따로 셈할 수는 없다. 화폐경제 전체 안에 다시 놓고 보아야 한다.
이 말은 구축에 가해진 무거운 일격이다. 구축이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이 바로 쪼개기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것을 조각조각 나눈다. 각 조각에는 따로 가격이 있고, 따로 청산할 수 있다. 그것을 합치면 총장부가 된다. 쪼개기는 통약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다. 그런데 케인스는 이 일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잘라낸 조각을 따로 계산해 얻은 결과와, 그 조각이 전체 속에서 실제로 보이는 움직임은 같은 것이 아니다. 때로는 방향마저 반대다.
5. 은행과 함께 사라진 것
1930년 11월에 시작된 그 공황은 작동 구조를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부실한 은행이 도태되었을 뿐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는 연방준비제도 회원 은행이 8천 곳 넘게 있었다. 그 밖에 비회원 은행이 거의 1만 6천 곳 있었다. 이 수많은 비회원 은행은 자기 준비금을 보관하는 데 환거래은행망을 크게 의지했다.
수표 결제가 끝나지 않아 아직 오가는 중인 돈이 두 은행의 장부에 동시에 적혔다. 양쪽에서 모두 준비금으로 셌다. 이른바 가공의 준비금이다. 평소에는 모두가 한꺼번에 현금을 찾으러 오지 않으므로 돌아갔다.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면 모자랐다.
그러자 시골 은행들이 환거래은행에 현금을 요구했다. 환거래은행에도 이미 예금 인출이 몰리고 있었다. 그 사슬 전체에서 현금과 어음과 예금 사이의 전환이 일제히 경련을 일으켰다.
이 구조 앞에서는 잠시 멈출 만하다. 가공의 준비금은 누군가 장부를 조작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결제에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돈이 아직 가는 중이라면 양쪽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장부는 돈이 어느 한쪽에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제도가 택한 방법은 양쪽에서 모두 셈에 넣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효율이고, 인출 사태 때는 구멍이다. 구축은 날마다 장부를 맞추기 위해 작은 중복 하나를 허용했다. 그리고 그 작은 중복은, 하필 그것이 진짜여야 할 가장 절박한 날 텅 빈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까지는 손실을 여전히 잴 수 있다. 몇 개 은행이 문을 닫았는지, 통화량이 얼마나 줄었는지, 예금 손실이 얼마인지를 셀 수 있다.
정말 재기 어려운 것은 따로 있다.
은행 파산이 지운 것은 장부 위의 숫자만이 아니다. 한 지역에 쌓여 있던 신용에 관한 앎 전체도 지웠다. 이 마을의 어느 상사는 믿을 만한지, 어느 농가는 올해 빚을 갚을 수 있는지, 어느 창고증권은 담보로 받을 수 있는지, 어느 집은 겉으로 번듯하지만 실제로는 새 빚으로 묵은 빚을 돌려막고 있는지. 이런 판단은 어느 가격표에도 적혀 있지 않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 서로 거래하면서 쌓아온 관계 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 관계를 담고 있는 곳이 바로 그 은행이다.
은행이 문을 닫자 그 앎도 함께 사라졌다.
훗날 한 연구자는 이 일을 좀 더 기술적인 말로 적었다. 은행 파산은 신용 배분 과정 전체의 효율을 낮추고, 신용 비용을 높이며, 신용을 구할 가능성을 줄인다. 그리하여 총수요에 다시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잔여항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앞선 글들에서 만난 것들과도 다르다.
그 앎은 애초에 어느 대차대조표에도 없었다. 그러니 사라져도 어느 표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통화량이 줄어드는 일은 달마다 집계할 수 있다. 한 마을이 갑자기 누구에게 돈을 빌려주어야 할지 모르게 된 일에는 쓸 단위가 없다. 장부에서는 어떤 숫자로 나타나지만, 현실에서는 온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 걸음 더 밀고 나갈 수 있다. 그 앎이 표에 없었던 것은 적으려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적을 수 없어서다. 누가 믿을 만한가는 칸 안에 채워 넣을 수 있는 속성이 아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작은 일들이 쌓여 만들어진 판단이다. 게다가 수시로 바뀐다. 글로 적으려면 먼저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몇 가지 지표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지표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는 원래의 그 앎이 아니다.
열넷째 글의 결론은 제도가 비인격적인 것 위에 자신을 세울수록 신뢰에 더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같은 일의 다른 절반이 드러난다. 그 신뢰는 태도인 것만이 아니다. 구체적인 사람에게 자라난 구체적인 앎의 묶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파괴될 수 있다.
1933년 3월 12일, 루스벨트는 라디오로 온 나라 사람들에게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설명했다.
은행은 여러분의 돈을 금고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채권과 기업어음과 담보대출에 투자한다고 했다. 공황이 닥치면 자산이 건전한 은행이라 해도 그것들을 하룻밤 사이에 현금으로 바꿀 수는 없다. 실제 가치보다 훨씬 낮은 공황기의 가격으로 헐값에 내다 팔지 않는 한 그렇다.
이어서 오래도록 기억될 말 두 가지를 했다. 첫째, 다시 문을 연 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편이 매트리스 밑에 숨겨두는 것보다 안전하다. 둘째, 화폐보다 중요하고 금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믿음이다.
3월 9일 긴급은행법에 서명이 이루어졌다. 3월 13일부터 연방준비은행이 있는 도시의 건전한 은행들이 먼저 문을 열었다. 그다음 다른 도시와 마을로 차츰 확대해갔다.
3월 말까지 대중은 3월 8일 이전 네 주 동안 찾아갔던 현금의 약 3분의 2를 다시 은행에 맡겼다.
한 나라의 원수가 라디오로 온 국민에게 은행의 자산 구조를 설명한 뒤, 돈을 도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 일이 정말 통했다.
6. 20.67이 35가 되다
미국은 오랫동안 하나의 법정 금 가격을 유지했다. 1온스에 20.67달러였다.
1933년 4월 5일, 행정명령 하나가 민간에서 금화와 금괴와 금증서를 쌓아두는 일을 금지하고 개인과 기관에 그것들을 내놓도록 요구했다.
1934년 금 가격은 1온스에 35달러로 다시 정해졌다. 달러 한 단위에 해당하는 금의 양은 그에 따라 이전의 약 59퍼센트로 낮아졌다.
이 59퍼센트는 계산해서 얻은 수다. 원래 20.67달러이던 금 1온스가 이제는 35달러가 되었다. 똑같은 1달러로 바꿀 수 있는 금이 40퍼센트 넘게 줄어든 것이다.
순서대로 놓고 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먼저 민간이 가진 금을 옛 가격으로 거두어들였다. 그다음에 가격을 바꾸었다.
여기서는 평가를 보태지 않는다. 밝혀둘 것은 하나뿐이다. 이 일련의 조치는 법적으로 완전히 성립했다. 행정명령에는 권한을 부여한 근거가 있었고, 금을 거두어 바꾸어주는 데에는 보상이 있었으며, 가격 변경에는 법률이 있었다. 열셋째 글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쓸 수 있다. 네 번째 등장이다. 과정 전체가 완전히 합법적일 수 있다. 그래도 결과는 극도로 비대칭적인 이전일 수 있다.
열넷째 글에서 구축은 가장 성공했을 때 자신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고 했다. 여기서는 그 말이 뒤집힌다. 아주 단호하게 뒤집힌다.
자연스럽고 객관적이며 정치 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던 자가 명령 한 장으로 다시 쓰였다. 다시 쓴 사람들은 바로 같은 나라, 같은 정부의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전 60년 동안 이 자의 모든 권위는 누구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 점은 다시 한번 펼쳐볼 만하다. 이 절의 무게가 모두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금본위제가 사람들을 설득한 것은 더 편리해서도, 더 정밀해서도 아니다. 설득한 방식은 이랬다. 이것은 누가 정한 것이 아니다. 금의 무게다. 금은 땅속에 있고, 어느 정부의 말도 듣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에 돈을 빌리는 사람은 훗날 갚을 것 또한 같은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 대양을 사이에 둔 두 상사는 종이 한 장으로 거래를 맺을 수 있었다. 금본위제의 모든 신용은 사람이 바꾸지 못한다는 그 한마디에 걸려 있었다.
자를 고쳐 쓸 수 있다는 사실은 한 번 실현되고 나면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다. 그 뒤 공통의 척도에 관한 모든 말은 새로운 물음 하나를 마주해야 한다. 이 자는 누가 정했는가. 그 사람은 언제 바꿀 것인가.
물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뒤의 글들에서 다룰 모든 것이 같은 물음을 뒤쫓는다. 전쟁 뒤 다시 세워진 국제적 약속들, 몇십 년 뒤 말 한마디로 그것이 해제되는 일, 아예 어떤 공식적인 자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들이 그렇다. 구축은 자를 만들 수 있고, 그 자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고 선언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뒤의 일을 한 번 보고 나면, 앞의 일에는 영원히 꼬리가 달린다.
그 뒤 금이 어디로 갔는지도 덧붙여두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른 자리로 물러났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고로, 민간이 가진 가치 보존 수단으로, 위기 때의 피난처로 갔다. 더는 그 자가 아니었다. 측정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다른 것을 재던 것이 남에게 재이는 것으로 바뀌는 일은 앞에서도 몇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논박당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돌아서 지나간 것이다.
금을 떠난 효과에 관해서는 경험적 증거가 상당히 일치한다. 하지만 해석의 차이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치하는 부분은 이렇다. 금본위제를 더 일찍 떠난 나라가 대체로 더 빨리 회복했다. 영국이 1931년 9월 금태환을 중단하자 파운드 가치가 내려갔고, 통화정책에 움직일 공간이 생겼다. 뒤이은 여러 국제 비교 연구도 금본위제 이탈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높이고, 실질금리를 낮추며, 회복을 도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갈리는 부분은 이렇다. 작용한 것은 금본위제를 떠난 일 자체였는가. 아니면 그 뒤에 따라온 통화 팽창, 수출 개선, 실질임금의 변화, 정책에 대한 기대의 전환이었는가. 이 여러 경로를 놓고 학계는 하나의 설명에 합의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절은 단순한 교훈으로 읽힐 것이다. 금본위제를 떠난 것이 효과를 낸 까닭은 금 자체에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그 몇 해 동안 금평가를 지키는 데 드는 대가가 국내 고용에 전부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 금평가를 포기하는 것은 실업자들의 몸에서 그 대가 일부를 옮겨 내리는 일이었다. 잘못은 자에 있지 않다. 누군가는 자 아래에 계속 서서 움직이지 말아야 했다는 데 있다.
7. 무엇이 더 깊이 밀어 넣었는가
대공황은 왜 그토록 깊고 오래갔는가. 그 논쟁은 지금까지도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답 하나를 내놓는 것보다 이 논쟁들을 펼쳐놓는 편이 훨씬 쓸모 있다.
한 줄기는 화폐 쪽에서 설명한다. 핵심 명제는 분명하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의 대수축이 그토록 컸던 첫째 이유는 통화량이 3분의 1 넘게 줄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상업은행이 문을 닫았고, 통화승수가 무너졌으며, 연방준비제도는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 설명에서 특히 중요한 정책 오류는 1931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떠난 뒤, 미국이 금 보유고를 지키려고 10월에 할인율을 올린 일이다. 대외적으로는 금을 지켰지만, 국내에서는 통화와 신용을 한층 더 줄였다.
이 설명 안에도 반론이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화폐를 통한 설명에 오래도록 구멍이 하나 있었다고 지적한다. 통화 수축이 정확히 어떤 경로로 실물경제를 때리는지, 처음 몇십 년 동안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930년대 초 명목금리가 줄곧 가파르게 오른 것은 아니었다. 금리가 높아서 불황이 왔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나중에 보태진 것은 디플레이션 기대를 거치는 사슬이다. 통화가 줄면 디플레이션 기대가 생긴다. 그 기대는 실질금리를 높이고, 높아진 실질금리는 지출과 고용을 누른다.
다른 줄기는 지출이 무너진 일에 무게를 둔다. 이쪽의 연구자들은 공황의 시작을 주로 통화 긴축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주가 폭락 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한때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였고, 1929년 말부터 1930년 초까지 명목금리와 실질금리가 모두 뚜렷이 내려갔다. 진짜 문제는 주가 폭락과 그 뒤에도 계속된 격심한 가격 변동이 미래 소득에 대한 막대한 불확실성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내구재 소비부터 무너졌다. 이 설명에서도 화폐 요인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처음 밀어 넘어뜨린 발은 아니다. 나중에 상황을 더 깊이 밀어 넣은 증폭기에 가깝다.
세 번째 줄기는 열넷째 글에서 살펴본 금본위제다. 대공황을 양차 대전 사이의 국제통화제도 안에 다시 놓고 본다. 수축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환율에 관한 약속, 금의 이동, 각국 중앙은행의 금을 지킬 의무를 따라 전 세계로 퍼졌다. 이 견해 안에서도 의견은 갈린다.
네 번째 줄기는 신용중개를 살핀다. 통화 붕괴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은행 파산에는 또 다른 층위의 작용이 있다고 강조한다. 신용 배분의 효율을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이 층위는 통화량의 변화로 다 담을 수 없다.
은행이 왜 무너졌는가라는 더 좁은 문제조차 결론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지 않다. 한쪽 연구는 많은 은행의 파산이 근거 없는 공황보다 기초 여건의 악화와 자산보다 많은 부채를 더 크게 반영했다고 강조한다. 다른 쪽은 원자료를 다시 정리한 뒤 유동성 위기와 채무초과가 모두 실제 원인이었다고 본다. 특히 처음 몇 차례의 공황에서는 환거래은행망과 예금 인출 사태의 전염 효과가 뚜렷했다. 공황이 더 깊어지고 자산 가격이 더 나빠진 뒤에야 자산으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갈수록 주된 위협이 되었다는 것이다. 공황과 기초 여건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시기와 지역과 기관에 따라 서로 얽혀 작용했다.
임금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교과서는 흔히 임금이 내려가지 않아서 노동시장 청산에 실패한 것으로 대공황을 설명한다. 뒤의 실증연구는 그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여러 나라를 비교하면 명목임금은 실제로 가격에 비해 상당히 느리게 조정되었고, 실질임금은 올랐다. 이것이 산출을 누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전간기 영국을 새로 측정한 연구는 당시 임금 삭감이 드문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1931년 한 해에만 300만 명 넘는 노동자의 임금이 깎였다.
그러므로 진짜 논쟁의 초점은 임금이 내려갈 수 있느냐에 있지 않다. 임금과 가격, 기대와 부채와 수요의 맞물림이 전체 차원에서 실업을 저절로 흡수할 수 있느냐에 있다.
대공황이 내놓은 경험적 답은 이렇다. 저절로 되지는 않았다.
이 설명들은 저마다 증거를 갖고 있다. 여기서는 판정하지 않는다. 다만 나란히 놓으면 공통점 하나가 보인다. 어느 사슬이 가장 굵은지를 두고 다투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슬도 그 사람들을 장부 안에 다시 집어넣을 수는 없다.
승자를 하나 가려내는 것보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언젠가 화폐의 사슬이 가장 굵었다고 입증된다면 할 일은 통화정책이다. 금본위제의 사슬이 가장 굵었다고 입증된다면 할 일은 환율제도의 정비다. 어느 쪽이 가장 굵었다고 입증되든 당시의 한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무려 1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기를 원하면서도 자리를 얻지 못했다. 공황을 설명하는 기제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왜 밖에 있는지 설명한다. 그들을 안으로 데려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 가지를 더 적어야 한다. 숙명론에 맞서는 가장 단단한 사례 하나이기 때문이다.
같은 위기 속에서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회원 은행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할인대출을 해주었다. 회원 은행들에 비회원 은행을 지원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반면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자기 역할을 더 좁게 해석했다. 비회원 은행을 지원할 목적의 재할인을 거부했다.
그 뒤의 결과는 뚜렷하게 갈렸다. 앞의 관할구에서는 수축이 누그러지고 회복이 시작되었다. 뒤의 관할구에서는 수백 개 은행이 파산하고, 대출이 줄고, 실업이 늘었다.
같은 나라, 같은 제도, 같은 해였다. 결정하는 방식이 둘이었고, 결과도 둘이었다. 거대한 역사의 필연이 아니다. 같은 규칙 아래서 서로 다른 판단이 만들어낸 갈림길이다.
8. 값을 찾을 수 없는 쪽
1932년 여름, 제1차 세계대전의 퇴역군인들이 워싱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1945년이 되어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상여금 증서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가난해져 13년을 기다릴 수 없었다.
6월 1일, 약 1,500명이 수도에 도착했다. 뒤이어 온 사람들을 합치면 총인원은 1만 명에서 2만 명 사이였다. 그들은 도시 가장자리에 판자촌을 세우고 자리를 잡았다. 의회와 대통령의 답을 기다렸다.
7월 28일, 정부는 군과 경찰을 동원해 그곳을 비웠다. 최루가스와 총검과 횃불을 썼다. 거리에는 기관총을 장착한 전차 다섯 대가 나타났다. 퇴역군인 한 명이 경찰의 총격으로 숨졌다.
여기에는 시장 청산의 우아한 도표가 없다. 값을 찾지 못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국가가 물리적으로 치워버린 일만 있다.
몇 가지는 정확히 말해야 한다. 그들은 폭도가 아니었다. 얼마 전 이 나라가 전쟁터로 내보냈다가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이미 써준 차용증을 현금으로 바꾸어달라고 했다. 누구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최루가스였다면, 이 일이 말해주는 것은 치안이 아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장에서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예산에서도 자리를 찾지 못하면, 그들을 보내둘 세 번째 장소가 있다는 뜻이다. 그 장소에는 어떤 장부도 필요 없다.
같은 시기에 더 흩어진 이동과 추락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갔다. 도착하고 보니 일자리는 광고에서 말한 것보다 훨씬 적었고, 임금과 주거 조건도 훨씬 나빴다. 그곳의 대기업 농장은 그들이 그려온 소농의 세계와 전혀 다른 곳이었다.
노동력이 추상적으로 값싼 곳에서 값비싼 곳으로 흘러가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들어가는 곳은 흔히 마찬가지로 노동력이 남아도는 또 하나의 시장이다. 게다가 떠날 때보다 약해진 교섭력을 안고 들어간다.
그 25퍼센트라는 수 자체에도 경계가 있다. 훗날 이 숫자를 설명한 기관은 일부러 주의를 주었다. 전일제로 일하고 싶지만 시간제 일밖에 얻지 못한 사람은 포함하지 않는다. 자기 숙련보다 낮은 일을 할 수밖에 없어진 사람도 포함하지 않는다. 기계공이던 사람이 야간 경비원이 되면 통계에서는 취업자다.
그 두 자리 사이에는 십수 년에 걸쳐 익힌 솜씨가 놓여 있다. 작업장에서만 쓸 수 있는 판단력 전체가 놓여 있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인식이 놓여 있다. 이런 차이는 실업률이라는 지표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지표는 있느냐 없느냐만 묻고, 무엇이냐는 묻지 않기 때문이다. 열두째 글에서 구축이 재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이 조직된 방식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한 겹 더 단순하다. 구축은 일자리 하나가 있는지를 잰다. 그 일자리가 한 사람을 어디에 놓았는지는 재지 않는다.
말하자면 가장 핵심적인 지표의 바깥에도 셈에 들어가지 않은 잔여항이 한 바퀴 빙 둘러서 있다.
가지 않은 길도 적어두어야 한다. 1932년 봄과 여름에 약 10억 달러 규모로 이루어진 공개시장 매입은 은행 파산의 물결을 한동안 멈추게 했다. 하지만 곧 끝났다. 그해 1월 의회는 은행과 철도에 긴급 자금을 대줄 공사 하나를 설립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돈을 빌리면 낙인이 찍혔다. 차입 기관의 명단이 공개되었고, 그 돈을 빌렸다는 사실 자체를 시장이 허약함의 신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은행이 차라리 빌리지 않는 쪽을 택했다. 영국은 1931년에 이미 금을 떠났고, 미국은 1933년까지 미루었다. 1937년에는 실업이 다 흡수되려면 한참 남았는데도 정책이 다시 긴축으로 돌아섰다. 그리하여 그 재침체가 왔다.
후대의 거시경제 관리 체계로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의 승리도 아니었다. 거듭된 망설임과 보수적인 되돌림, 제도의 분열과 정치적 다툼 속에서 밀려 나왔다.
그 체계가 밀려 나온 까닭은 이론이 모든 사람을 설득해서가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시장에서 제값을 찾을 수 없는 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에는 불편한 뜻이 하나 들어 있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이 체계가 받아들여진 것은 옳아서가 아니다. 그것이 옳았을 때 그쪽에 선 사람이 충분히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갈림길을 생각해보자. 그 은행 공황이 일어나지 않고 경기 수축이 열다섯째 달에 멈췄다면, 똑같은 추론을 똑같은 책에 적었어도 읽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구축이 다시 쓰이는 것은 대개 누군가 그것을 논박했기 때문이 아니다. 밖으로 빠져나간 것들이 너무 많아져 더는 예외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학파의 장부가 쓰는 셈법은 사실 소박하다. 모든 것에는 값이 있다. 값만 맞으면 팔린다. 팔리지 않는 것은 너무 비싸게 부르기 때문이다. 이 셈법은 감자에 쓰면 성립한다.
사람에게 쓰면 성립하지 않는 지점은 여기다. 사람은 제값을 얼마까지 낮추든 팔리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값을 낮추는 그 행동 자체가, 사려는 사람들을 더욱 살 수 없는 형편으로 몰아넣는다.
1932년 여름 워싱턴 변두리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값에라도 자신을 팔 뜻이 있었다. 장부에 그들의 자리가 없었던 까닭은 너무 비싸게 불러서가 아니다.
결국 케인스가 한 일은 하나뿐이다. 본래 ‘자발적’이라고 적혀 있던 한 칸을 ‘미결’로 고쳐 적었다.
고쳐 적고 나니 그 장부는 더 보기 흉해졌다. 진실에도 더 가까워졌다.
셈은 아직 맞지 않는다. 장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