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분이 만든 기근: 식량이 있어도 명단 밖에서는 굶는다
아일랜드·벵골·대약진운동기의 기근에서는 식량의 절대량만큼 가격, 징발, 배급 자격과 정치적 우선순위가 생사를 갈랐다. 누가 명단에 들어가고 누가 제외되는지가 굶주림의 지도를 만들었다.
식량이 있는 세계의 굶주림
기근은 흔히 식량이 완전히 사라진 자연재해로 기억된다. 그러나 19세기 아일랜드, 1943년 벵골, 대약진운동기의 중국을 함께 보면 세계나 국가 안에 식량이 있어도 특정 집단은 체계적으로 접근권을 잃을 수 있다.
1945년 벵골기근 조사위원회는 캘커타 주민 가운데 굶어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농촌의 수백만 명이 고통받았다고 썼다. 굶주린 것은 특히 농촌 빈곤층이었고, 부유층과 대도시의 산업노동자는 보호받았다. 같은 지역과 같은 해에도 배분선은 달랐다.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총량만이 아니다. 누가 현금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느 직업이 배급 대상이었는지, 식량이 어느 도시와 군대로 먼저 갔는지다. 기근은 창고의 빈칸이 아니라 권리 명단의 빈칸에서도 생긴다.
시장에 최소한으로 개입한다는 목표
1845년과 1846년 감자 역병은 아일랜드의 주식을 무너뜨렸다. 인구 약 3분의 1이 감자에 크게 의존했다는 물질적 충격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식품이 상품으로 계속 이동하고 누가 그것을 살 현금을 가졌는지가 이후의 사망을 갈랐다.
구호를 맡은 찰스 트리벨리언은 정부가 미국에서 옥수수를 들여온 목적을 민간무역과 시장가격을 최소한으로 교란하면서 부족분을 메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의 정상성을 지키는 일이 굶는 사람에게 즉시 먹이는 일보다 앞선 정책 목표가 됐다.
1847년 한 해에만 약 4천 척의 배가 아일랜드의 식품을 영국 주요 항구로 실어 갔고, 1846∼1850년에는 3백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수출됐다. 곡물의 순수출입만 따지면 버터·생선·달걀과 가축이 빠져나간 현실을 놓친다. 먹을 것은 있었으나 그것을 멈춰 세울 권리가 달랐다.
벵골의 배와 쌀과 공표
1942년 버마 함락으로 쌀 수입이 끊겼고 벵골에는 태풍, 해일, 홍수와 병충해가 겹쳤다. 동시에 식민당국의 일본군 상륙 대비 ‘거부 정책’은 선박을 징발·파괴하고 일부 지역의 쌀 비축을 제한했다. 운송수단 통제는 1943년 여름까지 식량 이동을 방해했다.
전시수요와 도시 우선 배급, 성급한 낙관과 가격 폭등은 농촌 빈곤층의 구매권을 무너뜨렸다. 관리가 식량 상황을 어떻게 발표하는지도 중립적 설명이 아니었다. 공표는 사재기와 공포, 가격에 들어가 현실을 다시 바꿨다.
책임을 누구에게 얼마나 물을지, 총공급 감소와 분배 실패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중시할지는 논쟁적이다. 그러나 세계에 식량이 있는데 특정 계층이 조직적으로 접근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양쪽이 부정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학술 논쟁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셈이다.
대약진의 숫자와 징발
1958년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화가 함께 시작됐다. 공공식당, 과장된 생산보고, 국가 징발, 도시 배급과 수출 목표가 하나의 행정 사슬을 이뤘다. 시장을 없앤다고 계산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격 대신 계획지표와 정치적 실적이 더 강한 숫자가 됐다.
상부는 부풀려진 생산량을 바탕으로 징발량을 정했고, 하부는 나쁜 소식을 올릴 유인을 잃었다. 곡물을 더 많이 생산한 지역이 오히려 더 많이 징발당해 사망이 커지는 역설도 나타났다. 식량 생산과 식량 접근은 같은 변수가 아니었다.
도시 주민은 배급표와 조직을 통해 보호받았지만 농촌 주민은 생산자이면서도 명단의 아래쪽에 놓였다. 기계는 훗날 징발을 줄이고 정책을 되돌렸다. 멈출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결정이 너무 늦게 도착했다.
명단 밖의 사람과 관계의 구호망
세 기근에서 공식 배분이 놓친 사람을 살린 것은 종종 관계를 가진 비공식 통로였다. 아일랜드의 퀘이커 구호망과 민간위원회는 자산이나 지불능력보다 눈앞의 굶주림을 기준으로 수프를 나눴다. 벵골과 중국에서도 가족관계, 지역 간 연결, 간부와의 거리 같은 요소가 생존 가능성을 바꿨다.
관계망의 구호는 빠르지만 평등하지 않다. 아는 사람이 있고 소식을 전할 통로가 있는 사람을 먼저 구한다. 익명의 시장과 행정명부가 만든 구멍을 인격적 신뢰가 메웠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다리를 놓지는 못했다.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에서 세 기근은 서로 다른 구(構)가 사람을 명단 밖으로 내보낸 사건이다. 자연의 충격이 착(鑿)을 열었지만 사망의 규모는 인간이 만든 배분선 위에서 커졌다. 여항(餘項)은 통계 밖에 서 있던 사람이었고, 기계가 멈출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 역사를 도덕적으로 이름 붙일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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