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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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경제
제11편 · 총 23편

마르크스와 노동가치: 여항을 기록한 장부도 스스로 닫히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해 등가교환 안에서 생기는 잉여를 추적했다. 사회적 평균시간의 힘과 임금계약의 숨은 신용, 이론 안에 남은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함께 읽는다.

Han Qin (秦汉)

하루의 길이를 법으로 자르다

1833년 영국 공장법은 9세 미만 아동의 공장 노동을 금지하고 9~13세는 하루 8시간, 주 48시간, 13~18세는 하루 12시간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약 4천 개 공장을 감독한 검사관은 네 명뿐이었고 법은 널리 회피되었다. 숫자를 법전에 넣는 일과 현실의 하루를 줄이는 일 사이에는 긴 거리가 있었다.

1844년 법은 여성과 청년의 하루를 12시간으로 줄이고 기계 울타리 같은 초기 안전조항을 넣었으며, 1847년 10시간법은 섬유공장 여성과 청년의 시간을 더 줄였다. 투쟁은 하루를 몇 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가를 두고 벌어졌고 결과는 반드시 검사가 가능한 숫자로 굳어야 했다.

마르크스는 공장감독 보고서와 의회 자료를 이론의 주변 삽화가 아니라 핵심 증거로 썼다. 앞선 장부들이 남긴 여항을 이번에는 노동자의 시간과 몸 쪽에서 다시 기록하려 했다. 구가 생산일을 숫자로 늘렸다면 반대편의 장부는 그 숫자가 생명에서 무엇을 잘라 내는지 묻기 시작했다.

어제의 한 시간이 오늘 반 시간이 될 때

자본론은 마직물, 외투, 금, 철, 빵처럼 다른 상품을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공통 척도에 놓는다. 중요한 말은 사회적이라는 수식어다. 개인이 실제로 얼마나 오래 애썼는지가 아니라 평균적 기술과 강도, 정상적 조건에서 필요한 시간이 가치를 결정한다.

새 기계가 사회적 생산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면 옛 방식으로 12시간 일한 직조공의 산출물은 6시간만 인정받을 수 있다. 그는 게을러지지도 기술을 잃지도 않았지만 바깥의 척도가 그의 한 시간을 반 시간으로 다시 쓴다. 척도는 개인에게 사정을 묻지 않기에 강력하고 동시에 가혹하다.

구체적 노동의 피로와 숙련, 위험과 돌봄 조건은 평균으로 압축되어야 계산에 들어간다. 마르크스가 상품물신성이라 부른 것은 인간 사이의 사회관계가 사물 사이의 관계처럼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격은 거짓말하지 않지만, 그 가격을 가능하게 한 관계를 사물의 속성처럼 보이게 한다.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을 팔다

마르크스의 결정적 구분은 노동과 노동력 사이에 있다. 노동자가 노동 자체를 판다고 보면 모든 상품이 제값에 교환되는 상황에서 지속적 이윤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판매되는 상품을 일정 시간 일할 능력으로 바꿨다. 착취를 나쁜 고용주의 사기보다 규칙을 지킨 거래의 구조 안에서 설명하려는 선택이었다.

하루 생계수단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6시간이 필요하고 그 가치가 3실링이라고 하자. 자본가가 3실링으로 하루 노동력을 사면 제값을 냈다. 그러나 노동자는 6시간 뒤 자신의 임금 가치를 재생산한 뒤에도 나머지 시간을 일한다. 계약은 위반되지 않았지만 뒤의 시간이 만든 가치는 임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잉여가 등가교환의 틈에서 생긴다.

노동력의 사용권과 사람 전체를 소유하는 것은 기간이라는 경계로 갈린다. 마르크스는 능력을 무기한 팔게 하면 노예제가 즉시 되살아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하루 16시간, 주 7일, 끝나지 않는 채무처럼 기간은 늘어날 수 있다. 계약서에는 능력이 적혀도 피로와 질병, 거부와 파업은 그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일어난다.

임금 아래의 도덕과 신용

노동력의 가치를 생계수단 묶음으로 계산하려 하면 무엇이 필수인가에서 막힌다. 창문 있는 방, 교육, 고기와 휴식, 아플 때 쉴 권리는 생물학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여기에 역사적·도덕적 요소가 들어간다고 명시했다. 한 사회가 어떤 삶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으로 인정하는지가 임금 밑에 놓인다.

그 요소는 이론이 스스로 연역할 수 없고 시대와 투쟁, 관습과 가족의 무급 노동에 따라 달라진다. 그는 이를 감추지 않고 정의 안에 남겼지만 이후 계산에서는 고정된 생계 바구니처럼 다룰 수밖에 없었다. 존엄은 정문으로 들어온 원리가 아니라 지울 수 없는 여항의 이름으로 이론에 머물렀다.

임금은 가장 익명적이고 계약화된 거래처럼 보이지만 보통 노동 뒤에 지급된다. 노동자는 주말이나 월말까지 이미 사용된 노동력을 고용주에게 외상으로 제공한다. 공장이 무너지면 상품과 설비는 청산되지만 소모된 힘은 되찾을 수 없다. 계약의 공백을 담보하는 것은 자산이 아니라 노동자의 계속 살아 있는 몸이다.

두 개의 펜과 닫히지 않는 열

자본론 3권의 가치·생산가격 전형 문제는 마르크스의 장부도 쉽게 닫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총잉여와 총이윤의 관계를 중시하는 해석, 가치와 가격을 두 체계로 나누지 않는 해석, 역사적 시간 속 전환을 보는 해석이 맞선다. 노동가치론과 한계주의는 같은 답을 두고 싸우기보다 무엇이 비교 가능성을 만들었는지와 주어진 선호에서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각각 물었다.

1844년 파리 노트의 소외 개념은 1932년에야 널리 공개되었다. 젊은 마르크스와 자본론 사이를 단절로 볼지 연속으로 볼지를 두고 다시 논쟁이 벌어졌다. 또 1859년의 단계적 역사 문장과 달리, 그는 1877년과 1881년 러시아 관련 편지에서 서유럽의 길을 모든 민족의 운명으로 바꾸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큰 화살표를 그리는 펜과 구체적 사료 앞에서 그것을 구부리는 펜이 함께 있었다.

착구주기율에서 마르크스는 구의 바깥에 남은 노동자의 몫을 기록하는 새 장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장부도 인간다운 생활의 역사적·도덕적 기준을 방정식으로 닫지 못했다. 시간은 실링과 이윤율로 차례로 환산되지만 기계 앞의 사람은 한 열이 아니다. 그는 지치고 함께 멈추며 기준을 다시 협상하고, 그때마다 비어 있던 열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