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와 보이지 않는 손: 여항은 진열대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만으로 시장이 완성된다고 쓰지 않았다. 공감과 정의, 자제와 교육을 함께 놓은 저작에서 몇 문장만 떼어 낸 후대의 압축이 어떻게 또 다른 스미스를 만들었는지 되짚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고친 책
애덤 스미스는 세상을 떠난 1790년까지 도덕감정론을 다시 썼다. 1759년의 첫판 이후 여섯 번째 판이었고, 덕성과 양심, 자제가 어떻게 길러지고 부패하는지를 다룬 새 부를 통째로 보탰다. 국부론이 나온 지 14년 뒤의 일이다. 도덕철학을 버린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 그 책을 두껍게 만들었다는 통설은 설명력이 없다.
스미스는 1752년 글래스고대 도덕철학 교수가 되었다. 그의 강의는 자연신학, 윤리학, 정의에 관한 법학, 정치경제학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서로 다른 학과에 놓인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원래 한 강의의 두 부분이었다. 부의 증대는 정의와 도덕 판단을 세운 뒤에 다루는 마지막 문제였다.
1762~1763년 학생 노트에는 분업과 화폐, 가격에 관한 핵심 생각이 프랑스 여행 전에 이미 나타난다. 이 노트가 1896년 공개되면서 여행 뒤 도덕철학자에서 물질주의자로 돌변했다는 설명은 크게 약해졌다. 한 사람의 사상을 둘로 가른 것은 그의 생애가 아니라 후대의 읽기 방식이었다.
아무리 이기적이라 해도
도덕감정론은 인간을 아무리 이기적으로 상정하더라도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하는 원리가 있다고 시작한다. 스미스가 말한 공감은 불쌍히 여기는 선의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 자신을 상상으로 옮겨 그의 감정을 따라가 보는 중립적 능력이다. 도덕 판단은 하늘에서 내려오기보다 당사자와 관찰자 사이의 조정에서 생긴다.
그는 이 관찰자를 마음속으로 들여와 가슴속의 사람, 행동의 위대한 재판관이라고 불렀다. 자기 손실이 시야를 가득 채울 때도 공정한 관찰자의 눈을 빌리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본래 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자애는 악이 아니지만, 함께 살 수 있는 크기로 다듬어져야 한다.
더 날카로운 구분은 칭찬받는 것과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사이에 있다. 앞의 것은 평판과 돈, 권력으로 어느 정도 살 수 있지만 뒤의 것은 자기 안의 재판관에게 달려 있다. 스미스는 부자와 권력자를 숭배하고 가난한 이를 무시하는 경향을 도덕감정 부패의 가장 크고 보편적인 원인으로 보았다. 부의 수치와 존중받을 자격은 같은 척도가 아니다.
빵집과 보이지 않는 손의 실제 문맥
국부론의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빵집 주인 구절은 선의가 아니라 상대의 자애에 호소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핵심 동작은 타인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는 것이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설명에 움직일지 이해해 내 필요를 그의 이익으로 번역해야 한다. 시장은 호의를 구걸하지 않을 자유를 주지만, 상대를 목적을 가진 사람으로 읽는 능력까지 없애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국부론에서 한 번, 도덕감정론에서 한 번 등장한다. 국부론의 문맥은 상인이 멀리 있는 사업을 불안해해 감독하기 쉬운 국내 투자에 자본을 두고, 그 결과 사회의 생산도 늘어난다는 구체적 사례다. 작동 원인은 완벽한 시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을 믿지 못하는 위험 회피였다. 스미스는 이런 결과가 언제나 일어난다고 쓰지 않았다.
그는 같은 업종의 상인이 모이면 가격 담합을 꾀하기 쉽고, 상인이 제안하는 법은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를 체스판으로 보고 사람을 마음대로 옮기려는 체계의 인간도 비판했다. 각 말에는 자기 운동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교육·도로·사법 역할을 인정한 그가 거부한 것은 정부 일반이 아니라, 추상 모형이 사람의 뜻을 전부 먹어 치웠다는 오만이었다.
4만 8천 개의 핀 뒤에서
핀 공장의 열 사람이 약 열여덟 공정으로 일을 나누면 하루 4만 8천 개 이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례는 분업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개인의 만능보다 반복 가능한 동작과 도구의 연결이 생산성을 만든다. 스미스는 이 질서가 누군가의 청사진이 아니라 수많은 교환에서 서서히 자란 결과라고 보았다.
그러나 같은 국부론 제5권에서 그는 평생 몇 가지 단순 동작만 하는 사람은 인간이 될 수 있는 만큼 우둔하고 무지해진다고 썼다. 생산량 증가와 함께 판단력, 대화 능력, 고상한 감정이 마모된다. 이는 임금이나 산출량으로 상쇄할 수 없는 정신적 손실이며, 스미스는 국가가 교육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정의와 자혜도 분리했다. 자혜와 관대함은 강제할 수 없지만 타인에게 실제 피해를 주는 정의의 침해는 제재해야 한다. 자혜가 없으면 사회가 덜 행복하지만 정의가 없으면 사회 자체가 무너진다. 시장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할 필요는 없다는 말과, 해쳐서는 안 된다는 바닥 규칙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책장에 그대로 남은 절반
19세기의 애덤 스미스 문제는 두 책이 서로 모순되는지 물었다. 1896년 강의 노트와 1976년 글래스고 교정판 이후 학계는 두 책을 하나의 더 큰 체계 안에서 읽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교과서 밖에서는 자애, 핀 공장, 보이지 않는 손만 남고 공감과 정의, 분업의 정신적 비용은 계속 생략되었다.
착구주기율에서 이번 구는 세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저작을 압축한다. 수식의 가정으로 만들기 쉬운 자애는 중심에 남고, 양심과 수치, 칭찬받을 자격과 교육은 부록으로 밀려났다. 여항은 파괴된 사료가 아니다. 여섯 판을 거친 책 속에 온전히 인쇄되어 있어 누구든 첫 페이지를 펴기만 하면 다시 나타난다.
스미스는 공통 척도가 낯선 사람을 연결하고 생산을 늘리는 힘을 알았다. 동시에 돈으로 살 수 없는 내적 판단, 시장이 마모시키는 능력, 정의라는 바닥도 보았다. 후대는 앞의 절반을 취하고 나머지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보증을 덧붙였지만 그는 그런 보증을 쓰지 않았다. 읽히지 않은 절반은 진열대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