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 글. 대서양 노예무역: 성공할수록 더 또렷한 자백서가 된다
선박 적재량에서 보험금과 노예주 보상금까지, 대서양 노예제는 사람을 극도로 정밀하게 가격화했다. 바로 그 성공이 제도가 끝내 측정할 수 없던 인간의 자유와 저항을 증거로 드러냈다.
이 글의 목차
1. 가득 싣기
1788년, 노예무역선의 선장을 지낸 영국인 한 사람이 문장 하나를 적었다.
우리 배의 가장 큰 목표는 가득 싣는 것이다.
곧이어 그 기준도 밝혔다. 보통 100톤 안팎의 배라면 220명에서 250명을 살 수 있는 것으로 미리 잡아둔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서 가장 불안한 것은 잔혹함이 아니다. 조금도 격앙되어 있지 않고, 이를 악물지도 않으며, 뽐내려는 기색도 없다. 그저 업무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배가 몇 톤인가에서 사람을 몇 명 살 수 있는가로 곧장 넘어간다. 그 사이에 다른 무엇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이 말투에 가장 가까운 말은 잔혹함이 아니라 적재다.
이 문장을 쓸 무렵, 그는 이미 그 장사를 그만둔 뒤였다. 과거를 돌이켜 쓰고 있었으며, 더구나 노예제 폐지를 지지하는 자리에서 쓰고 있었다. 나중에 반대편에 선 사람조차 자기가 예전에 한 일을 설명할 때는 여전히 이 언어를 썼다는 뜻이다. 애초에 그 업계가 쓰던 말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일상적인 업무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독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게 하는 일이다.
앞선 일곱 편에서 구축은 줄곧 같은 일을 해왔다. 여기저기 흩어진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의 자 위로 눌러 올렸다. 더하고 빼고 연말에 셈을 맞출 수 있도록 했다. 솜씨는 갈수록 좋아졌다. 빚에는 점토판을, 가격에는 주화를, 장부에는 차변과 대변 두 칸을, 국가에는 연간 잔액을 마련해주었다. 그때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잔여항이 머물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이 닿았다.
사람 하나를 통째로 가격의 평면 안에 눌러 넣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넣었다. 몸무게, 나이, 성별, 치아 상태, 힘, 손에 익은 기술이 있는지,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앞으로 몇 년쯤 쓸 수 있는지, 값은 얼마인지, 보험은 얼마를 들고 죽으면 얼마를 보상받는지까지.
하나씩 떼어보면 모두 잴 수 있는 것들이다. 정확하게 잴수록 거래도 순조롭다. 치아를 보면 나이를 짐작할 수 있고, 힘은 시험해볼 수 있으며, 기술은 물어볼 수 있고, 아이를 낳을 가능성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이 방법의 정교함은 전체를 묻는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는 데 있다. 부분에 관한 질문만 잇달아 던진다. 그 질문 하나하나에는 확인할 수 있는 답이 있다. 답들을 모두 더하면 숫자 하나가 나온다. 그 숫자가 나온 뒤에는 운송도 보험도 매매도 보상 청구도 모두 그것을 따라 처리할 수 있다.
이것은 구축이 한 번 실패한 일이 아니다. 구축이 한 번 성공한 일이다.
바로 그 성공 때문에, 이제부터 써야 할 것들이 더없이 또렷해진다.
2. 법조문에 적힌 밀도
1788년, 영국 의회가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200톤까지는 3톤마다 다섯 명으로 계산하고, 그보다 큰 배는 초과분 1톤마다 한 명씩 더할 수 있다는 규정이었다.
이 법이 무엇을 하는지 보자. 무엇을 하지 않는지도 보자.
사람을 화물처럼 실어 나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이미 화물처럼 실어 나르고 있으니, 싣는 밀도에 규칙을 정하자고 했다.
이 법이 어떤 효과를 냈는지는 지금도 학계의 논쟁거리다. 실제로 혼잡을 줄였고 그만큼 사망도 줄였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선주들이 금세 다른 길을 찾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선실을 개조하거나 아예 더 큰 배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은 계속해도 된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한 나라의 입법기관이 모여 앉아 진지하게 토론하고 거듭 표결한 끝에 통과시킨 규칙은, 3톤마다 사람을 몇 명 놓을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앞선 글들에서도 몇 번 보았던 구축의 전형적인 움직임이다. 근본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그 문제를 실행하는 세부 절차에 규범을 세운다. 고리대금이 금지되던 시대에는 명목을 만들어 이자를 보상금으로 고쳐 불렀다. 여기서는 사람을 톤수의 함수로 불렀다.
이 법을 둘러싸고, 끝까지 들여다볼 일이 하나 있다.
노예제 폐지 운동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 가운데 하나는 배의 단면도였다. 그 안에는 사람 모양이 빽빽이 그려져 있다. 하나 옆에 또 하나가 누워 있고, 몸을 일으켜 앉을 틈조차 거의 없다. 수천, 수만 장 인쇄되어 벽에 붙고 소책자에 끼워진 그림이다. 그 운동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였다.
그 힘은 새로운 도덕 원칙을 내놓은 데서 나오지 않았다. 적재의 기하학을 눈에 보이게 그려냈다는 데서 나왔다.
그림 속 인원은 법에 맞추어 계산한 수였다. 그 320톤짜리 배에는 법에 따라 454명을 실을 수 있었다.
454는 합법적인 숫자였다. 수많은 사람이 차마 다시 쳐다보지 못했던 그 그림은 유난히 잔혹한 어느 선장이 저지른 일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법이 허용하는 상한선을 그렸다. 바로 거기에 치명적인 힘이 있었다. 악인 한 명을 고발하지 않았다. 규칙 그 자체를 그려 보였을 뿐이다.
노예제에 반대하는 가장 유명한 이미지가, 법정 규격대로 그린 적재 배치도였던 것이다.
폐지론자들이 쥔 가장 날카로운 무기는 구축 자신의 산수였다. 따로 언어를 발명하지 않았다. 구축이 계산해낸 숫자를 그림으로 옮겨, 그 숫자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게 했을 뿐이다.
앞선 글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잔여항이 솟아 나온다. 장부 밖에서가 아니라 장부 안에서 나온다. 구축은 일을 더 가지런히 처리하려고 사람과 톤수의 관계를 공식으로 적었다. 그런데 바로 그 공식이 반대자들에게 이전에는 없던 것을 건네주었다. 정확하고, 발뺌할 수 없으며, 구축 스스로 발급한 숫자였다. 셈을 더 분명하게 할수록, 구축은 자신을 겨눌 증거를 더 많이 내주었다.
3. 도착지에서의 가격
배에 싣는 것은 첫걸음에 불과했다. 건너편에 닿으면 팔아야 했다.
연구자들은 카리브해로 팔려 온 23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가격 자료로 1674년부터 1807년까지의 도착지 가격 시계열을 만든 바 있다. 다른 시장 연구들은 나이, 성별, 기술, 가족 구성, 지역의 수요에 따라 가격이 일정한 양상으로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이 말을 풀어쓰면 이렇다. 사는 쪽과 파는 쪽은 끊임없이 사람의 건장함, 아이를 낳을 가능성, 현지 말을 알아듣는지, 손재주가 있는지, 병들 위험과 달아날 위험, 어디에 부릴 수 있는지를 모두 한 사람 몫의 가격으로 바꾸려 했다.
더 뒤의 미국 국내 시장에서는 경매 명세에 이름, 나이, 피부색, 직업, 이른바 기예를 항목별로 적어놓는 일이 흔했다.
사람 하나가 서로 견줄 수 있는 속성들의 목록으로 쪼개졌다.
쪼개는 방법에는 공이 들어갔다. 나이는 구간을 나누어야 했다. 너무 어리면 아직 일을 못 하고, 너무 늙으면 몇 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별도 나누어야 했다. 부릴 용도가 다르고, 여성에게는 출산에 관한 셈이 한 겹 더 붙었기 때문이다. 기술도 자세히 물어야 했다. 쇠를 다루는 사람, 목공을 하는 사람, 설탕을 끓이는 사람의 값은 밭일하는 사람과 달랐다. 어느 지방 출신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 가격에 들어갔다. 같은 고향 사람들과 짜고 움직일 수 있는지, 다루기 쉬운지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항목마다 따로 값을 매긴 다음 모두 더했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의 척도로 바꾸는 길은 여기서 가장 멀리까지 나아갔다.
유독 서늘한 항목 하나는 따로 짚어야 한다. 가격표에는 가족 구성이라는 항목이 있다. 한 가족을 흩어서 파는지 함께 파는지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어머니와 성인 여성 한 사람의 값이 다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혈연 자체가 가격을 정하는 변수가 된 것이다. 구축은 한 사람에게만 값을 매기지 않았다. 두 사람을 잇는 끈에도 값을 매겼다. 그 목적은 흔히 그 끈을 끊으면 얼마나 더 받을 수 있는지 알아내는 데 있었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이 재던 것은 곡식, 은, 지대, 화물, 항해, 위험이었다. 이제는 한 사람에게 있는 모든 것을 잰다. 세밀하고 전문적이며, 경험도 풍부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그 경계가 처음으로 이토록 선명해진다.
가격표에 적을 수 있는 것은 성별, 나이, 기술, 건강, 산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이다.
끊임없이 넘쳐나는 것은 두려움, 기억,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걱정, 절망, 궁리, 기다림, 분노, 언어,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마음이다.
가격은 그 무엇도 없애지 못했다. 다만 표에 들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들이 표에 없다는 사실은, 뒤에서 가장 격렬한 방식으로 입증된다.
전체 그림의 비율과 관계되므로, 지나치기 쉬운 사실 하나도 덧붙여야 한다. 노예제 하면 흔히 미국 남부의 목화밭을 떠올린다. 그러나 숫자로 보면 무게중심은 그곳에 있지 않다. 아메리카로 팔려 온 사람들 가운데 약 95퍼센트가 카리브해와 남아메리카로 갔다. 브라질 한 곳이 대서양을 살아서 건넌 사람의 약 40퍼센트를 받아들였다. 대서양 세계 전체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 것은 줄곧 목화가 아니라 설탕이었다.
4. 보험증권에 근거해 제기된 소송
1781년, 영국 노예무역선 한 척이 아프리카 해안을 떠나 자메이카로 향했다.
항해 도중 적어도 130명이 넘는 사람이 몇 차례에 나뉘어 바다에 던져졌다.
그 뒤 선주는 보험자에게 보상을 청구했다.
왜 보상을 청구했는지, 그 셈법을 분명히 밝혀두어야 한다. 붙들려 실려 가던 사람이 배 안에서 병으로 죽으면 자연적인 손실에 해당했다. 보험금이 나오지 않으니 선주가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배와 나머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버렸다면 다른 분류에 들어가고, 보험자가 보상해야 했다. 같은 목숨도 죽는 방식에 따라 장부에서 속하는 자리가 달라졌다. 바다에 던지는 행위는 장부 위에서 손실을 발생시키는 일이 아니라 손실을 옮겨놓는 일이 되었다.
1783년, 이 사건이 런던의 법정에 들어갔다. 그 법률 보고서의 첫 문장은 이랬다.
이것은 보험증권에 근거해 제기된 소송이다.
이어 보고서는 물 부족으로 바다에 던져진 노예들의 가액을 회수하는 것이 이 소송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문장을 조금 천천히 읽어보자. 살해된 사람이 아니다. 죽은 이들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가액이다.
청구액은 한 사람에 약 30파운드로 계산했다. 대체로 살아남은 사람들을 자메이카에서 팔았을 때의 평균 가격에서 나온 숫자였다.
이렇게 130명이 넘는 사람의 죽음이 수천 파운드짜리 미수금 한 건으로 바뀌었다.
법정에서는 무엇을 다투었을까. 사람을 바다에 던져도 되는지를 다투지 않았다. 이번 투하가 배와 나머지 화물을 보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해상에서 인정되는 필요 불가결한 투하에 해당하는지를 다투었다.
바다에는 오래된 규칙이 하나 있다. 위험에 처했을 때 배를 구하려고 화물 일부를 버릴 수 있으며, 그 손실은 관계자들이 나누어 부담한다는 규칙이다. 규칙 자체는 합리적이다. 다루는 것이 화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규칙이 130명이 넘는 사람을 처리하는 데 쓰였다.
그 규칙을 여기에 적용하려면 먼저 한 가지 분류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람들은 화물이라는 분류다. 그것만 성립하면 뒤의 추론은 막힘없이 이어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규정에 맞는다. 화물이므로 필요할 때 버릴 수 있다. 버렸으므로 공동해손으로 나누어 부담할 수 있다. 나누어 부담하므로 보험자에게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사슬에는 새로 만들어 넣은 고리가 하나도 없다. 모두 해상법에서 몇백 년 동안 쓰던 오래된 규칙이다. 정작 손을 댄 곳은 맨 처음의 한 걸음뿐이다.
판사는 첫 재판 결과를 돌아보며 배심원의 의견을 요약했다. 배심원들은 충격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노예의 사건은 말을 바다에 던지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오늘 읽어도 눈을 찌르는 말이다. 말이 노골적이어서가 아니다. 이 제도가 이루려던 효과를 정확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한 무리의 사람을 죽인 일을 화물 손해에 관한 분쟁으로 번역하는 것.
그 번역을 성공시킨 것은 모호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극도의 정확함이었다. 모호하면 의심이 생기지만, 정확하면 안심한다. 문서 전체에 감정을 부추기는 말은 한 자도 없다. 거짓말도 한 자 없다. 배에는 실제로 물이 모자랐고, 사람들은 실제로 바다에 던져졌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실제로 자메이카에서 그 값에 팔렸다. 사실 하나하나가 검증을 견딘다. 다만 그 사실들이 잘못된 평면 위에 놓였다. 그 평면 위에서 사실들을 맞추어 만든 그림은 보험 분쟁 한 건이었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의 가장 깊은 성공은 무엇이든 분명히 계산하는 데 있지 않고, 묻지 않는 법을 배운 데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물어야 할 문제를 통째로 다른 문제로 번역해버렸다.
문제가 그렇게 번역되고 나면, 본래의 평면에서는 답을 논할 길이 없어진다. 보험법 안에서 필요성을 다툴 수 있다. 공동해손, 보상 비율, 증거의 충분함을 다툴 수 있다. 소송을 지극히 전문적이고 엄밀하게, 단계마다 절차에 맞추어 진행할 수 있다.
그 전문적이고 엄밀한 논쟁 속에서, 130명이 넘는 그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사람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 사건에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 뒷일도 있다. 살인 사건으로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법의 분류가 이미 문을 닫아놓았기 때문이다. 그 분류 안에는 살해당한 사람이 없었다. 멸실된 재산만 있었다. 살인을 추궁하려면 먼저 그 분류를 뒤집어야 했다. 그것은 소송 한 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조를 분석하는 데서 그칠 수 없다.
사람을 세고, 값을 매기고, 보험에 들고, 잃으면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화물로 만드는 것은 인간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다. 조직이 있고 제도가 있으며, 법률 문서와 계정과목과 전문가가 갖추어진 부정이다. 셈이 반듯하다고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당시 합법이었다고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참여한 사람들이 업계의 관행대로 했을 뿐이라고 해도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앞선 글들에서 이 시리즈는 되도록 도덕적 판단을 삼갔다. 대부분 양쪽을 함께 볼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규제는 사람을 지켜주기도 억누르기도 했고, 시장은 사람을 해방하기도 짓밟기도 했다.
이 일은 양쪽을 함께 볼 수 없다.
여기에는 다른 쪽이 없다.
이 시리즈가 지켜온 원칙은 구조 분석을 앞세우고, 도덕적 판단은 신중히 하며, 가능한 한 양쪽을 오가며 보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글에서는 옳은 원칙이다. 역사 속 다툼의 대부분에는 양쪽 나름의 이유가 있고, 저마다 지켜낸 사람과 억누른 사람이 있다. 다만 이 원칙에는 전제가 있다. 양쪽 모두 같은 최소한의 선 위에 서 있어야 한다. 한쪽이 사람을 통째로 수단으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그 선은 뚫린다. 선을 뚫고 나간 일을 다시 저울에 올려 달 수는 없다. 여기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다. 마땅히 할 일을 저버리는 것이다.
5. 중간 항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그 구간은 나중에 중간 항로라고 불렸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는 세 구간 가운데 두 번째 구간이다.
여러 자료를 종합한 추산으로는 약 1,250만 명이 강제로 배에 실렸고, 약 1,070만 명이 살아서 도착했다. 대양을 건너는 구간에서만 약 180만 명이 죽었다.
이 숫자도 바다 위의 구간만 센 것이다. 내륙에서 붙잡히다가 죽은 사람, 해안까지 끌려오는 길에 죽은 사람, 해변의 수용 막사에서 배에 실리기를 기다리다 죽은 사람은 들어 있지 않다. 상륙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른바 적응기에 죽은 사람도 없다. 바다 위 구간에 숫자가 남은 것은 선주가 장부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구간에 숫자가 없는 것은 그것을 장부에 적어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퀴아노라는 사람은 훗날 처음 노예무역선을 보았던 광경을 글로 남겼다. 해안에 흑인들이 무리 지어 쇠사슬에 함께 묶여 있던 모습을 썼다. 두려움과 고통에 완전히 짓눌려 갑판 위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었던 일도 썼다.
노예무역선에서 외과의사로 일했던 또 다른 사람의 글은 기술 보고서에 더 가까웠지만, 그만큼이나 참혹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그보다 끔찍하고 구역질 나는 처지를 그려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또 붙들려 실려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감시자들의 빈틈을 살폈으므로, 배 안에서 봉기가 자주 일어났고 유혈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적었다.
이 말의 무게는 그 장사에 고용되었던 사람이 했다는 데서 더 커진다. 그는 폐지 운동의 선전가가 아니었다. 배의 의사였고, 되도록 많은 사람을 산 채로 도착시키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가 기록한 것은 이 사람들이 단 한 순간도 관찰과 기다림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글 속에서 화물로 등록된 사람들은 줄곧 깨어 있었고, 줄곧 셈을 하고 있었으며, 줄곧 그 빈틈을 찾고 있었다.
사망률에 관해서는 반드시 분명히 할 것이 하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잘못된 결론을 읽어내기 쉽다.
후기로 갈수록 사망률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더 이른 시기에는 높았고,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러 어느 정도 내려갔다. 그러나 이 하락을 문명이 나아진 이야기로 써서는 안 된다.
더 세밀해진 위험 관리, 더 잘 짜인 보험의 유인 구조, 더 큰 배, 나아진 식수와 식량 배급, 그리고 팔 수 있는 인원을 어떻게 보전하는지에 관한 경험의 축적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죽는 사람이 조금 줄어든 것은, 그저 죽은 사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냉혹하게 들리는 판단이다. 그러나 바로 이 판단이 너무 쉽게 입에 오르는 오독을 막는다. 숫자가 좋아졌다고 양심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한쪽에서는 보험회사가 지급액을 줄이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선주가 팔 수 있는 인원을 지키려 한다. 양쪽에서 조여오면 더 많은 사람을 살아서 도착시키는 방법을 연구할 사람이 생긴다. 그 연구의 결과로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잘 대우했다고 부를 수는 없다. 유지·보수한 것이다. 나아진 것은 산출량이지 사람의 처지가 아니다.
농장에서는 사람의 소모를 경영 계획에 곧장 써넣었다. 바베이도스의 한 농장주는 노예 100명을 소유하고 그들을 부려 사탕수수를 기르고 설탕을 만드는 농장이라면, 약 19년 동안 그들을 전부 소모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정확한 예언으로 받아들일 말은 아니다. 다만 사탕수수 농장의 교체 논리를 이보다 분명히 말할 수는 없다. 죽음과 소모는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라 계획의 일부였고, 끊임없이 새 사람을 수입해 채워야 했다.
1748년부터 1788년까지 자메이카로 들여온 사람만 33만 5,000명이 넘었다. 그러나 1788년에 인구를 셌을 때, 섬에서 노예로 살아 있던 사람들의 수는 그 40년 동안 들여온 총인원에 훨씬 못 미쳤다.
그 차이가 바로 그 기계가 40년 동안 먹어치운 사람들이다.
먹어치웠다는 것은 수사가 아니다. 사탕수수 농장의 셈법에서는 사람도 감가상각된다. 구리 솥이 닳아 얇아지고 가축이 늙듯, 사람도 다 소모된다. 구리 솥이 닳으면 고쳐야 하고, 가축이 늙으면 바꿔야 한다. 사람도 다 소모되면 바꿔야 한다. 바꾸는 방법은 바다 건너에서 한 무리를 더 실어오는 것이다. 그 항로가 40년 동안 멈추지 않은 것은 설탕을 갈수록 많이 생산해서가 아니라, 설탕을 만드는 사람들이 갈수록 빨리 죽었기 때문이다. 이 기계의 식욕은 기계 자신이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부드럽게 돌려 쓸 말이 하나도 없다. 젊은 몸을 소모성 부품으로 쓰는 제도였다.
6. 환어음
가격과 보험 금액과 장부만 보면, 이미 완전히 익명적인 시장이 이루어진 듯하기 쉽다. 사람이 숫자가 되고, 숫자가 어음이 되며, 어음이 몇몇 항구 사이에서 청산된다. 서로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어 보인다.
사료가 보여주는 것은 정반대다.
한 연구는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의 대금 회수 방식이 금속 화폐나 현물 상품에서 점차 환어음으로 옮겨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돌아다닌 것은 사람과 설탕만이 아니었다. 런던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종이 위의 약속도 유통되었다. 리버풀 상인 한 사람의 문서를 정리한 다른 연구도 그곳에서 가장 흔한 대금 회수 수단은 환어음이었다고 밝혔다. 리버풀의 기록 보관소 자체가 어음, 송장, 장부, 개인적인 편지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환어음이 쓰였다는 것이 인격적 관계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다.
어음을 할인할 수 있는지, 언제 인수되는지, 누가 보증하는지, 어느 상사를 거쳐 유통되는지는 모두 평판과 관계에 크게 의존했다. 한 종합 연구는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신용망이 점점 복잡해진 까닭을 상인들이 여러 법 관할권과 화폐 체계, 거래 관행과 계약 전통을 동시에 넘나들어야 했던 데서 찾는다. 이런 장거리 장사에 필요한 것은 계산 능력만이 아니었다. 유연함, 아는 사람들의 연결망, 믿고 맡길 수 있는 중개자가 더없이 중요했다.
시리즈 전체에서 몇 차례 되풀이되어온 일이다. 이번에는 대상만 달라졌다. 점토판에는 인장과 증인이 필요했고, 주화에는 검인 자국과 도시국가의 신용이 필요했다. 장부에는 서류장 하나를 채울 만큼의 편지와 보증인이 필요했고, 지폐는 관청이 기꺼이 받아주느냐에 기대야 했다. 여기서도 기대는 것은 같다. 평판, 인맥, 누가 누구의 보증을 서주는가다. 달라진 것은 그 신뢰가 무엇을 위해 일하느냐뿐이다.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사람을 옮겨다 파는 일을 위해 일했다.
아프리카 해안에서는 가격과 관계가 이렇게 얽히는 모습이 더 뚜렷했다.
해안의 한 항구를 다룬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선장이 항구에 오래 머물수록 포로를 사는 데 내놓아야 하는 상품 묶음의 가격이 올라갔다. 그러면 선장은 값비싼 특정 상품을 더 얹어 제시한 값을 조정했다. 오늘날 시장에서 상정하는 완전히 익명적이고 투명한 단일 가격이 아니었다. 협상으로 정해지고 시점마다 달라지며, 힘의 차이와 정보의 불균형이 뒤섞인 교환이었다.
다른 연구들은 아프리카 연안 무역이 신용에 폭넓게 기대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해안의 중개인들이 내륙으로 들어가 포로를 모아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유럽 상인들은 상품을 미리 내주거나 신용을 제공했다. 그러려면 결국 사람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했다. 저 사람은 다음번에도 돌아올 것이다. 저 상사는 빚을 떼먹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저 수장과 거래할 수 있다.
보험업도 마찬가지다. 한 회사의 역사 기록은 18세기 후반 영국 해상보험의 보험료 수입 가운데 노예제 관련 사업이 3분의 1에서 40퍼센트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인정한다. 노예무역 항해에 직접 보험을 들어준 몫은 전체 보험료의 약 5~10퍼센트였고, 더 큰 몫은 영국과 카리브해 사이에서 농장의 생산물과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차지했다.
첫 글부터 보이지 않게 이어져온 실이, 여기서 가장 참담한 자리에 닿는다.
가장 익명적인 보험증권 뒤에는 가장 인격적인 어음 인수의 질서가 서 있다. 가장 납작한 가격표 뒤에는 끝내 가격에 삼켜지지 않으려는, 가장 끈질긴 사람이 있다.
이 두 문장은 사실 같은 일의 양 끝을 말한다. 익명적인 체계가 돌아가는 것은 그 밑을 인격적인 관계가 한 겹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체계가 끝내 셈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그 위에 손이 닿지 않는 또 한 겹이 얹혀 있기 때문이다. 밑을 받치는 것 없이는 돌아갈 수 없고, 위를 누르는 것에는 손댈 수가 없다. 이 기계의 처지가 그렇다. 양 끝에는 모두 소화하지 못할 것이 있고, 가운데 구간만 제 영역이다.
또 하나는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서로 반대인 두 방식으로 자주 잘못 이야기되는 사실이다.
이 장사를 유럽인들만 한 것은 아니다. 유럽 상인들은 주로 아프리카 해안의 항구에서 거래했다. 팔려간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아프리카의 상인, 중개인, 무장 집단에 의해 내륙에서 해안으로 끌려왔고, 연안 시장을 거쳐 유럽과 아메리카의 배에 다시 팔렸다. 최근 한 항구를 다룬 연구는 선상 거래 일지에서 판매자가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중개인, 운송업자, 사람을 붙잡은 자, 연안의 알선자 등 여러 역할이 뒤섞여 있었다.
이 사실은 반드시 써야 한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 범죄에 참여자가 여럿이라는 것은 죄가 가벼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참여자가 더 많다는 뜻일 뿐이다. 이 사실로 책임을 묽게 만드는 것은 사실의 악용이다. 숨기고 쓰지 않는 것은 사료를 저버리는 일이다. 이 사실은 본래의 자리에 놓여야 한다. 여러 정치체와 여러 시장, 여러 무력 체계가 포개져 만들어진 거래의 장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거래된 것은 사람이었다.
또 한 가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장사가 그토록 커질 수 있었던 것은 팔겠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계속해서, 대규모로, 철마다, 무리 단위로 사들이겠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는 쪽은 아메리카의 사탕수수 농장과 광산이었고, 자금이 있는 쪽은 유럽의 항구와 보험시장이었다. 그 두 끝을 잇는 항로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상인들이 조직했다. 그들의 배, 그들의 어음, 그들의 보험과 그들의 법정이 떠받쳤다. 누가 얼마만큼 참여했는지는 사료로 셀 수 있다. 그러나 왜 이런 장사가 존재했는가의 답은 수요가 있는 쪽에 있다.
7. 선창 밑바닥에서 뚫고 나오다
저항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한 종합 연구에 따르면 노예무역선 열 척 중 약 한 척에서 어떤 형태로든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이 일어났다. 일부 해안에서 사람을 실은 항해에서는 봉기의 비율이 더 높았다.
때로 저항은 개인의 행동이었다. 먹기를 거부하고, 바다에 뛰어들고, 선원을 공격했다. 때로는 집단 봉기였다. 1729년에는 한 배에 붙들려 있던 사람들이 선원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고, 육지에 올라 스스로 자유를 얻었다.
이 비율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사람을 선창의 기하학 속에 집어넣었다고 해서 조용한 화물로 만들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봉기가 무엇을 뜻했는지도 보아야 한다. 그런 처지에서 맞서 싸우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살아남으리라는 보장이 거의 없다. 배는 바다 위에 있고, 사방이 물이다. 배를 빼앗더라도 대부분 돌아갈 길을 모른다. 봉기는 승산이 제법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는 남의 셈법대로 살지 않기로 한 사람의 선택이었다. 가격표는 그가 얼마나 일할 수 있는지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은 계산하지 못한다.
육지의 도망은 또 다른 지속적인 압력이 되었다.
자메이카에서 도망친 노예들이 이룬 공동체는 나중에 마룬이라 불렸다. 한 자료의 집계에 따르면 1730년대 이후 식민 당국은 이들을 진압하려고 약 40년 동안 법안 44개를 통과시키고 24만 파운드를 썼다. 당시 식민지의 저술가는 이 공동체들 때문에 주변 농장이 버려지고 땅을 경작할 수 없게 되어, 왕실 수입과 영국제 상품의 소비가 모두 타격을 입었다고 불평했다.
이 불평은 눈여겨볼 만하다. 장부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하지 않는다. 손실을 센다. 얼마나 많은 땅이 묵어 있고, 얼마나 많은 세금을 걷지 못하며, 얼마나 많은 영국 상품을 팔지 못하는가. 산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이 장부에서 음수들의 열로 나타난다. 바로 그 음수들에 그들의 무게가 있다. 이 체계 안에 들어오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체계 자신의 측정 방식으로 존재를 인정받은 것이다.
1739년, 영국 당국은 그들 가운데 지도자들과 조약을 맺고 자유를 인정했다.
이 조약은 똑바로 보아야 한다. 은혜가 아니었다. 더는 셈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40년, 법안 44개, 24만 파운드를 들인 끝에 상대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을 인정했다.
노예가 된 사람들이 도망과 폭력으로만 말한 것은 아니다. 다른 일도 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유독 중요한 일이다.
지배자의 보편적인 언어를 가져다가, 거꾸로 지배자를 쟀다.
1789년,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에서 노예가 된 사람들이 총독에게 편지를 썼다. 첫 문장은 이랬다.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다는 것을 안다.
다른 편지에서는 자신들의 소박한 소망은 독립이라고 했다. 노예 상태를 끔찍한 멍에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장 날카로운 것은 이 물음이다.
하느님이 단 한 사람이라도 노예로 태어나게 하셨는가?
이 편지들은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나온 해에 쓰였다.
그 선언의 첫 두 조항은 짧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줄곧 자유롭고, 권리에서 평등하다. 그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이다.
편지를 쓴 사람들이 선언을 조항마다 외웠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유, 독립, 인간애, 법, 천부의 질서처럼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말로 이미 자기 처지를 재고 있었으며, 그에 근거해 변화를 요구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언어를 만든 것은 그것을 선포한 사람들 자신이었다. 만들 때는 노예가 된 사람들에게까지 적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일단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다고 말하면, 그 문장은 더는 말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다. 누구나 집어 들어 잴 수 있는 공공의 자가 된다. 그 문장 바깥으로 밀려났던 사람도 집어 들 수 있다.
앞선 글들에서 실마리만 보였던, 구축이 효력을 잃는 특별한 방식이다. 구축은 제 몸을 세우려고 흔히 보편적인 말을 마련한다. 공정한 가격, 자연의 법,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다는 말이다. 그런데 보편적인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제 성미를 갖는다. 말한 사람이 그어놓은 예외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음속으로는 어느 한 부류만 셈할 작정일 수 있다. 하지만 써놓은 문장에는 그런 단서가 없다. 그러면 배제된 누구라도 그 문장을 들고 돌아와 물을 수 있다. 나는 어떤가.
1793년, 프랑스가 생도맹그에 파견한 관리는 노예였던 사람들에게 바로 그 선언의 언어로 해방을 선포했다. 그런데 같은 문서는 곧이어 농장에 남아 계속 일하며 공화국의 법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보편적인 언어가 열렸다. 그러나 여는 방식은 여전히 자유를 노동 규율 속에 도로 집어넣으려 했다.
1801년, 투생 루베르튀르의 헌법은 이 언어의 역이용을 제도의 문장으로 새겼다. 이 영토에는 노예가 존재할 수 없으며, 노예제는 이곳에서 영원히 폐지된다고 했다.
1804년 아이티 독립선언은 더 나아갔다. 프랑스가 우리를 다시 노예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모조리 빼앗아야 한다고 했다. 또 독립, 아니면 죽음이라고 했다.
이제는 선언을 자신에게도 적용해달라는 요청이 아니었다. 그 자를 빼앗아 와서, 한때 그 자가 배제했던 사람이 다시 선포하는 일이었다.
더없이 단호한 선포였다. 적용해달라고 요청하는 동안에는 판단할 권한이 상대에게 있음을 여전히 인정한다. 자신의 헌법에 써넣는 것은 그 권한을 가져오는 일이다. 앞의 것은 당신의 규칙에 나도 속하느냐고 묻는다. 뒤의 것은 이제부터 이 규칙은 내가 말한다고 선언한다. 그 사이에는 혁명 하나와 오랜 세월의 피가 놓여 있다.
한 기관은 이를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노예 봉기라고 요약한다.
다만 여기서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그 뒤의 일을 도덕의식이 저절로 진보한 이야기로 쓰지 않는 것이다.
1805년에도 영국에서는 폐지 법안이 한 차례 좌절되었다. 1807년에 통과된 것은 의회의 구도가 달라졌고, 전국적인 청원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의회를 설득하는 전략도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일의 뒤편에는 아이티 혁명이 불러온 공포, 카리브해의 전쟁, 프랑스혁명 이후 제국들 사이의 경쟁도 있었다.
조금만 달랐어도 1807년의 폐지는 얼마든지 다시 미뤄질 수 있었다.
폐지는 정해진 과녁에 마침내 꽂힌 화살이 아니었다. 여러 힘이 어느 특정한 해에 마침 한데 모인 일이었다.
8. 보상은 누구에게 갔는가
이 체계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두고 수십 년째 논쟁이 이어져왔다.
가장 유명한 것은 윌리엄스의 명제다. 보통 두 가지 뜻을 포함한다. 첫째, 노예무역과 노예제가 영국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팽창에 중요한 자금, 시장, 동력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둘째, 19세기 초 카리브해 노예제 경제의 중요성이 낮아진 뒤에야 영국의 엘리트들이 폐지에 더 마음을 열었으므로, 폐지의 주된 동기는 순수한 인도주의보다 경제에 있었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오래전부터 두 가지 문제를 강조해왔다. 하나는 규모다. 이익이 상당했더라도 영국의 전체 투자나 산업자본 형성에서 직접적인 이익이 차지한 비율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과관계다. 노예제가 영국의 상업, 해운, 항구, 소비시장과 긴밀히 얽혀 있었다고 해서, 폐지가 그저 경제적 합리성에 따른 축소의 결과였다고 곧장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종교, 인도주의, 정치적 동원, 전쟁, 식민 통치도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방법을 바꾸어, 어떤 의미에서는 윌리엄스로 돌아가는 연구도 나왔다. 선주의 순이익만 세는 대신 가치사슬 전체를 셈에 넣는다. 그런 추산에 따르면 19세기 초 삼각무역과 아메리카 농장 복합체에 직접 연결되거나 그 투입물과 산출물에 의존한 경제활동은 영국 국내총생산의 약 11퍼센트에 이를 수 있었다.
또 다른 논쟁은 노예제가 과연 돈이 되는 사업이었는가를 묻는다. 미국사 연구의 한 계량사적 전통은 남북전쟁 전 남부의 노예제가 경제적으로 죽어가던 체계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노예주에게 이익을 주었고, 심지어 효율적이었다는 것이다. 이후의 검토들은 효율과 수익성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어느 해의 가격과 생산량을 쓰는지, 노예 노동의 이른바 우월성을 과장하지 않았는지, 폭력과 사람들의 삶이 입은 손상을 무시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비판은 계속되었다.
이 두 갈래 논쟁을 함께 놓으면, 서로 다르면서도 자주 한데 뒤섞이는 질문이 적어도 네 개 보인다.
노예무역 항해 자체가 돈이 되었는가.
노예를 부리는 농장이 돈이 되었는가.
그것들이 영국이나 미국 전체의 경제성장에서 핵심이었는가.
폐지는 이 체계들이 더는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졌는가.
일부가 큰돈을 벌었다는 것을 입증해도, 그것이 전체 성장의 핵심이었다는 뜻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 전체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도, 폐지가 그저 이익 감소의 결과였다는 뜻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
이 논쟁들에는 아직 정해진 결론이 없다. 여기서 대신 결론을 내려줄 필요도 없다.
그래도 네 질문을 갈라놓는 일은 그 자체로 유용하다. 자주 뒤섞여 쓰이며, 쓰는 목적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일부가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로 이 제도가 경제적 합리성의 산물임을 입증하려 한다. 어떤 이는 전체에 깊이 얽혀 있었다는 사실로 훗날의 번영이 빚을 지고 있음을 입증하려 한다. 폐지될 무렵 이미 경제가 쇠퇴하고 있었다는 말로 폐지론자들의 동기를 낮추는 이가 있고, 그때도 여전히 번창했다는 말로 동기를 높이는 이도 있다. 이 논증들은 저마다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다. 다만 실제로 답하려는 질문이 서로 같지 않다.
어느 쪽에 서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제도가 돈을 버는가와 그 제도가 존재해도 되는가는 서로 다른 평면 위의 문제다. 복식부기를 다룬 글에서, 장부의 셈이 맞는다고 그 일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형식의 완결성과 실질의 정당성을 저절로 이어주는 다리는 없다. 여기서는 같은 말이 극단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 제도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인지와 그 제도를 철저히 폐지해야 하는지는 아무 관계가 없다.
폐지 자체도 가격의 평면을 끝내지는 않았다.
1833년에서 1834년에 걸쳐 영국은 식민지의 노예제를 폐지했다. 8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해방되었다.
동시에 2,000만 파운드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보상은 노예주에게 갔다.
이 말은 따로 한 줄에 놓여야 한다. 이 일의 셈법을 가장 철저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제도 하나를 폐지하면서 국가는 그 때문에 손실을 입은 사람이 있으며, 보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손실을 입었다고 인정된 사람은 재산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줄곧 그 재산으로 취급되어온 사람들은 이 셈법에서 피해 당사자가 아니었다. 애초에 당사자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상을 받은 쪽은 바로 가해자들이었다. 그 근거는 재산권이었다.
노예였던 사람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해방된 사람들은 도제제라는 과도기적 장치에 강제로 편입되어, 옛 주인을 위해 몇 년 동안 더 무보수로 일해야 했다.
그 보상금을 지급하는 일 자체가 런던의 은행가, 상인, 중개인에게 또 하나의 사업이 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므로 노예제 폐지조차 이 기계를 멈추는 일은 아니었다. 가격을 다시 매기고, 몫을 다시 나누고, 사람과 노동을 회계 질서에 다시 밀어 넣는 과정이었다.
보상의 셈법 안에서 그 사람들은 여전히 재산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값을 주고 풀어주는 재산이었다. 그 몸값은 그들을 소유했던 사람에게 지급되었다.
돈의 액수도 말해주는 것이 있다. 당시 2,000만 파운드는 국고의 연간 지출에서 아주 큰 몫이었으며, 그 시대 영국 정부의 가장 큰 지출 가운데 하나였다. 빚까지 내어 지급했고, 오랫동안 갚았다. 국가는 어떤 일을 끝내기 위해 이토록 큰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돈은 정작 대가를 치른 사람들에게 한 푼도 가지 않았다. 돈을 마련할 수 있는가와 그 돈을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가는 줄곧 다른 질문이었다. 앞의 것은 재정의 문제다. 뒤의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오면 이야기를 한데 거둘 수 있다.
앞선 일곱 편에서 구축은 거듭 세계를 남김없이 셈하려 했고, 거듭 다 셈하지 못했다. 관계와 평판에 닿지 못했고, 한 사람이 더는 갈 곳 없는 처지에 닿지 못했으며, 아예 묻지 않기로 한 것들에 닿지 못했다. 잔여항이 잔여항인 까닭은 구축이 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재어냈다.
사람 하나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쟀다. 나이와 치아 상태, 힘과 기술, 아이를 낳을 가능성과 앞으로 몇 년을 쓸 수 있는지까지 쟀다. 화물 명세에 적고, 보험증권에 적고, 화물 손해의 보상 청구서에 적었다. 40년간 들여온 총인원에 적고, 마지막에는 2,000만 파운드의 보상 명부에 적었다. 지극히 전문적이고 세밀했다. 앞뒤가 맞았고, 어디서나 절차를 따랐다.
성공했다.
바로 그 성공 때문에, 성공이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났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어진 그 사람에게서, 정작 아무것도 재어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한다. 바다 저편에 자기 집이 있음을 안다. 빈틈을 기다린다. 뛰어들 준비를 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산으로 도망갈 준비를 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다는 그 문장을 가져와, 그것을 말한 사람들 앞에서 그들 자신을 재어볼 준비를 한다.
배 열 척 중 한 척에서 저항이 일어났다. 어느 식민 권력은 40년 동안 법령과 군비를 쏟아붓고도 산 한 자락을 사들이지 못했다. 남의 선언에 쓰여 있던 그 문장은, 마침내 한때 그 문장에서 배제되었던 사람이 자기 헌법에 써넣었다.
이 가운데 어떤 장부에라도 들어간 것은 하나도 없다. 차변에도 없고, 대변에도 없다.
그저 장부를 뒤엎었다.
여기서야 이 시리즈가 줄곧 말해온 일의 진짜 무게가 보인다. 구축은 소름 끼칠 만큼 정확해질 수 있다. 한 사람의 모든 속성을 숫자로 바꿀 수 있다. 모든 단계를 합법적이고 규정과 절차에 맞게 만들 수 있다. 살인을 화물 손해로 적고, 가해자에게 보상금을 줄 수 있다.
완벽하게 해낼수록, 끝내 닿지 못한 그 하나가 더욱 또렷해진다.
그래서 이 대목은 시리즈 전체에서 다른 대목들과는 다른 자리에 놓인다. 앞선 글들에서 잔여항은 구축의 실패가 남긴 것이었다. 여기서는 구축의 성공이 비추어 드러낸 것이다. 잴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재고, 적어야 할 것은 빠짐없이 적었으며, 모든 고리를 절차에 맞게 처리했다. 바로 그 철저함 때문에, 끝내 장부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더는 모습을 감출 곳이 없어졌다. 빈틈없이 적은 장부일수록, 적지 않은 그 하나가 더욱 눈을 찌른다.
그 하나는 그 사람 자신이다. 그는 자 위의 눈금도, 화물 명세의 한 줄도, 보험증권의 금액도 아니다. 그는 목적이며, 누구의 수단도 아니다. 이 말은 이 시리즈가 그를 대신해 해주는 말이 아니다. 그가 1789년 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 한 말이다. 1804년 독립선언에 스스로 써넣은 말이기도 하다.
셈은 아직 맞지 않는다. 장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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