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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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경제
제07편 · 총 23편

대항해와 중상주의: 값을 매기기 전에 먼저 세다

무역수지와 은의 흐름을 국가의 장부로 만든 중상주의는 광산, 회사, 플랜테이션과 노동을 계산 가능한 단위로 재편했다. 세계를 측정하는 척도는 측정 대상 자체를 바꾸었다.

Han Qin (秦汉)

나라를 한 권의 장부로

토머스 먼은 사후 출간된 1664년 저서에서 대외무역을 국부의 보물을 늘리는 규칙으로 제시했다. 수출이 수입을 웃돌면 차액만큼 귀금속이 들어온다는 설명은 국가를 연말 결산하는 상인처럼 상상하게 했다. 은은 이동과 저장, 비교가 쉽고 전쟁과 채무에 바로 쓸 수 있어 특히 매력적인 항목이었다.

그렇다고 중상주의자 모두가 부를 금은과 동일시한 것은 아니다. 안토니오 세라는 광산 없는 나라가 제조업과 무역으로 귀금속을 끌어올 수 있다고 보았고, 스페인의 한 논자는 산업 없는 보물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후대에 스미스가 비판적으로 붙인 상업체계, 그리고 중상주의라는 명칭은 서로 다른 처방을 하나의 교리처럼 압축한다.

논쟁의 핵심은 그들이 어리석게 돈만 숭배했는지가 아니다. 나라 전체의 수출입, 선박, 인구, 세수를 한 표에 올려 비교하려는 시선이 생겼다는 데 있다. 척도는 이미 있는 세계를 재기만 하지 않았다. 계산하기 쉬운 활동을 장려하고 어려운 활동을 주변으로 보내며 세계를 자기 모양에 맞게 바꾸었다.

선을 긋고 은을 끌어오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제대로 측량되지도 않은 지구에 선을 그어 두 제국의 몫을 나누었다. 1503년 세비야의 통상원은 항해 허가와 항로, 화물, 세금을 기록했다. 지도와 장부가 제국의 시야를 만들었고, 시야에 들어온 땅은 수익과 통치의 대상으로 재분류되었다.

1545년 발견된 포토시는 고품위 광석이 줄자 1570년대 수은 아말감법과 행정 개편으로 생산을 유지했다. 톨레도 부왕은 미타 부역을 재조직해 납세 대상 성인 남성의 약 13~16퍼센트, 해마다 약 1만 3천 명을 광산으로 보냈다. 가족까지 합치면 4만 명이 넘는 이동이었다.

장부에는 노동자 한 명이 찍혔지만 현실에서는 아내와 아이, 식량과 돌봄, 수백 킬로미터의 이동이 함께 따라갔다. 광산의 공급을 유지한 코카와 물물교환, 친족망, 도주와 대리 노동은 공식 할당표 바깥에 있었다. 최근의 성씨 연구는 미타의 인구학적 흔적이 식민 시대를 훨씬 넘어 지속되었음을 시사한다.

마닐라에서 이어진 은의 길

1571년 마닐라가 태평양 교역의 거점이 되면서 아메리카의 은은 중국의 수요와 연결되었다. 은의 세계적 흐름은 유럽 한 나라의 금고 안에 머물지 않았다. 무역수지로 붙잡으려 한 금속이 오히려 대륙을 가로지르며 서로 다른 가격과 조세 제도를 한 망으로 묶었다.

동인도회사는 이 흐름을 조직하는 새로운 형식이었다. 1600년의 영국 회사는 국왕의 독점 특허 아래 총재와 위원회, 선박과 선원을 움직였다. 1602년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무역뿐 아니라 조약, 요새, 재판, 징병과 전쟁까지 수행해 주권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했다.

네덜란드 회사의 약 640만 길더 자본, 양도 가능한 지분, 장기 존속과 책임 제한은 한 번에 완성된 설계가 아니라 실무 속에서 굳어졌다. 투자자의 위험을 잘게 나누는 동안 현지의 전쟁 포로와 노예화, 영토 지배의 위험은 다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금융적 분산과 인간적 집중이 같은 회사 구조에서 자랐다.

설탕 공장의 시간

포르투갈의 대서양 섬에서 브라질로 이어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17세기 바베이도스에서 더욱 통합된 공정이 되었다. 수확한 사탕수수는 곧바로 압착해야 했고 끓임과 정제가 연속으로 이어졌다. 밭과 제당소, 선박의 시간이 하나의 생산 일정에 맞춰졌다.

1640~1660년대의 이른바 설탕 혁명이 얼마나 빠르고 어느 자본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논쟁적이다. 분명한 변화는 유럽계 계약 노동의 비중이 줄고 노예화된 아프리카인의 노동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생산 공정의 효율화가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더 잔혹한 방향으로 고정했다.

1690년 무렵 바베이도스의 100에이커 농장 모형에서는 노예 50명과 계약 노동자 7명이 토지와 건물, 구리 솥과 함께 총 3,620파운드의 자본으로 평가되었다. 사람과 설비가 같은 행에 놓였다. 정확한 회계는 무엇이 자본이어도 되는지를 질문하지 않았다.

계수에서 가격으로

국가의 총계를 맞추려면 먼저 은을 확보해야 했고, 은을 확보하려면 광산의 노동자를 할당해야 했으며, 플랜테이션의 수익을 계산하려면 사람의 몸을 자본 항목으로 넣어야 했다. 각 단계는 앞 단계의 합리적 요구에서 나왔다. 하나의 악인이 전체를 설계하지 않아도 정합적인 연쇄가 거대한 폭력을 만들 수 있었다.

착구주기율에서 중상주의의 구는 국가와 제국을 하나의 계산면으로 넓혔다. 그 과정에서 착은 땅을 경계선으로, 사람을 할당량으로, 시간을 공정으로 잘라 냈다. 가족과 강제, 도주와 생존망이라는 여항은 비용표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제도의 실제 운행을 떠받쳤다.

먼저 세고 나중에 값을 매긴다는 순서는 중립적이지 않다. 셀 수 있도록 대상을 다시 배열한 순간 이미 가치판단이 시작된다. 한 사람을 인구와 노동 쿼터로 세는 일은 그를 가격으로 옮길 길을 열었다. 다음 단계에서 대서양 노예무역은 이 통약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