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가격과 고리대금 금지: 자가 재기를 거부한 것
중세의 공정가격론과 고리대 금지는 가격이 인간의 절박함까지 포획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그었다. 신용을 막는 규범과 이름을 바꿔 돌아온 이자의 역사를 함께 본다.
이 글의 목차
1. 흉년에 들어온 곡물선
먼저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중세의 대학에서 여러 번 토론에 붙였던 장면이다.
어느 도시에 기근이 들었다. 곡물 값이 치솟는다. 상인 한 사람이 곡식을 가득 실은 배를 이끌고 항구로 들어온다. 그에게는 도시 사람들이 모르는 소식이 있다. 내일모레면 다른 곡물선들이 잇따라 도착한다. 곡물 값은 곧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인은 오늘, 자신이 아는 것을 밝히지 않은 채 지금의 비싼 값으로 곡식을 팔아도 되는가.
이 작은 물음 안에 그 뒤 몇백 년 동안 경제사상을 붙잡을 난점이 거의 다 들어 있다. 상인이 파는 곡식과 다른 사람의 손에 든 돈은 애초에 서로 전혀 다른 물건이다. 무엇을 근거로 둘을 같은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가. 그 숫자는 무엇에 따라 정해야 하는가. 지금 장터에서 부르는 값인가, 곡식 자체의 값어치인가, 아니면 이 도시 사람들이 살아남는 데 얼마나 절실한가. 상인만 아는 정보도 그가 파는 물건의 일부인가. 굶주린 사람이 내겠다고 나서는 금액을 곧 그 배에 실린 곡식의 공정한 가격이라고 해도 되는가.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자. 이 상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곡식이 모자란다고 말한 적도, 없는 소식을 꾸며낸 적도 없다. 그저 입을 다물었다. 어려움은 바로 그 침묵에 있다. 거래하는 두 사람이 아는 것은 언제나 똑같지 않다. 말하지 않는 것을 기만으로 보지 않는다면, 더 많이 아는 쪽은 그 앎의 차이에서 거듭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두 사람이 흥정해 정한 가격이다. 그러나 흥정에 나선 두 사람의 손에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패가 쥐어져 있다.
중세의 신학자와 법학자는 몇백 년에 걸쳐 이런 문제를 따졌다. 그것을 두고 그 시대 사람들은 장사를 싫어했다고 간단히 정리하면 정작 그들이 붙잡고 있던 질문이 사라진다. 화폐는 서로 다른 것을 함께 재기 위해 만든 자다. 그렇다면 이 자는 정말 모든 것을 자기 눈금 안에 넣을 수 있는가. 넣지 못하고 밖으로 넘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묻고 있던 것은 이런 일이었다.
밖으로 넘치는 것들은 이미 구체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는 사람의 다급함, 파는 사람이 입는 손해, 장소의 멀고 가까움, 시간의 길고 짧음, 위험, 명예, 인간관계, 그리고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도시 전체의 판단이었다. 어느 것도 막연한 장식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거래의 성사 여부를 실제로 좌우한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가격이라는 숫자 속으로 말끔히 접어 넣을 수는 없다. 거래에 없어서는 안 되면서도, 거래의 금액만으로 다 표현되지는 않는 것들이다.
앞선 세 편에서 구축은 늘 바깥으로 뻗어갔다. 더 많은 것을 가격으로 바꾸고, 더 많은 것을 재서 장부 안에 넣으려 했다. 이제 방향이 바뀐다. 이번에는 가치 쪽에서 세운 구축을 만나게 된다. 가격이 제멋대로 달아나지 않도록 공정함에 붙들어매려는 시도다. 그 물건의 값어치가 실제로 얼마인가, 공동체는 어디까지를 사람을 부당하게 몰아세우지 않는 거래로 인정하는가. 그 판단에 가격을 다시 묶어두려 한다.
그러나 이것도 구축이다. 이것 역시 빈틈없이 닫힌 체계가 되려 한다. 이것 역시 새어 나가는 것을 남긴다.
그리고 이 역사는 양쪽을 함께 보아야 한다. 가격을 공정함에 묶어두려던 질서는 사람을 지켜주기도 했고 억누르기도 했다. 그 질서를 밀어 벌린 시장의 자유 역시 사람을 풀어주기도 했고 짓밟기도 했다. 어느 한쪽을 역사가 마침내 도착하려던 곳으로 미리 정해놓을 수는 없다.
이 점을 먼저 세워두지 않으면 몇백 년의 굴곡이 한 줄로 펴져버린다. 인류가 어리석은 규제를 벗어나 마침내 자유로운 시장으로 나아갔다는 이야기로 읽히고 만다. 사료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규제에는 그것이 지켜낸 사람과 문밖에 세워둔 사람이 함께 있었다. 자유에는 그것이 풀어놓은 것과 도로 안으로 들여보낸 것이 함께 있었다. 양쪽은 저마다 다른 구축이었고, 저마다 다른 틈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편에 서느냐만으로 그 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2. 하나의 점으로는 찍을 수 없다
13세기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의 두 문항에서 이 문제들을 다루었다. 제77문은 매매의 기만과 공정한 가격을, 제78문은 고리대금을 논한다. 이 두 문항은 뒤에 이어진 스콜라 경제사상의 거의 출발점이 되었다. 스콜라 전통이란 중세 대학에서 이어져온 신학과 법학의 학문 전통을 가리킨다. 공정한 값과 정당한 이익을 묻는 일은 그들에게 장터 바깥의 한가한 논제가 아니었다.
매매와 대부를 바로 곁에 놓은 데는 까닭이 있다. 아퀴나스에게 둘은 같은 문제의 서로 다른 얼굴이었다. 한 물건의 값은 얼마여야 하는가. 일정한 시간의 값은 얼마여야 하는가. 앞의 질문은 물건과 돈 사이에서 서로 걸맞은 것을 찾고, 뒤의 질문은 오늘의 돈과 나중의 돈 사이에서 서로 걸맞은 것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국 묻는 것은 같다. 화폐라는 이 자로 정말 정확하게 잴 수 있는가.
출발점은 소박했다. 매매는 양쪽 모두에게 이로우라고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한쪽에만 지나치게 큰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의 가치를 헤아려주는 것이 가격이며, 화폐는 바로 그 일을 하도록 고안되었다. 가격이 물건의 값어치보다 높아도, 물건의 값어치가 치르는 가격보다 높아도 교환 안의 대등함은 깨진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어느 한쪽의 이익만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몫이 어긋나는 일이다.
여기서 아퀴나스는 공통의 자로서 화폐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물건들을 한데 놓고 청산할 수 있게 하는 장치로 화폐를 받아들인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속임수로 그 자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일이다. 자 자체를 버리자는 주장이 아니다. 누군가 자기 쪽에서만 눈금의 간격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 차이를 놓치면 뒤의 역사가 설명되지 않는다. 스콜라 학자들이 장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어째서 몇백 년이나 환전과 동업, 위험과 배상의 세목을 따졌겠는가. 그들은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자를 원했다. 동시에 그 자로 상대를 부당하게 몰아붙이지 못하게 하려 했다. 자를 인정하는 일과 자를 악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은 서로 다르다. 그들은 둘 다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바로 이 자리에서 아퀴나스는 후대에 무수히 인용될 말을 남긴다. 물건의 공정한 가격은 언제나 하나의 점처럼 정확하게 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일정한 추정 속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 말의 무게는 천천히 느껴볼 필요가 있다. 이 체계를 세운 사람 자신이, 자기가 세우는 자로는 단 하나의 점을 찍을 수 없다고 인정한다. 가격을 헤아릴 수는 있지만 움직일 틈이 전혀 없는 숫자로 계산해 고정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추정과 사정, 공동체의 판단이 따라붙는다. 후대의 한 스콜라 학자는 그 뜻을 끝까지 밀고 가, 수학적으로 정확한 공정 가격을 아는 이는 오직 신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실제로 정하는 값에는 언제나 판단의 여지가 남는다.
이것은 겸손을 표시하는 의례적인 말이 아니다. 구축이 가장 힘 있게 서는 순간, 자기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스스로 가리킨 말이다.
훗날 공정한 가격이 곧 시장가격이었는지를 둘러싼 논쟁은 대개 이 말 주위를 맴돈다. 한쪽은 기만도 강요도 독점도 없는 정상적인 거래라면 공정한 가격이 통상의 시장가격이라고 본다. 스콜라 학자들을 수요와 공급도 모르는 도덕 설교자로 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쪽은 공동의 평가를 인정했다고 해서 시장이 알아서 언제나 옳은 값을 낸다는 후대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 학자들은 관청이 정하는 가격도, 물자가 부족할 때의 상한선도 논했다. 거래가 드문 시장에서는 비용과 위험을 따져야 한다고 했으며, 공정한 값은 수학적인 한 점이 아니라 일정한 범위라고 거듭 말했다. 쟁점은 시장을 받아들이느냐 버리느냐에 있지 않다. 그 공동의 평가가 얼마나 시장에서 나오며, 얼마나 제도와 도덕 속에 묻어 있는가에 있다.
아퀴나스의 세심함은 또 다른 구별에서 드러난다. 어쩌면 이 글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파는 사람이 물건을 넘겨주면서 실제로 손해를 입는 경우를 따로 떼어놓았다. 이때는 물건 자체의 값어치를 웃도는 가격을 받아도 정당할 수 있다. 내놓는 것이 물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이 감당하는 손실도 있다. 그러나 사는 사람에게 그 물건이 유난히 절실하거나, 그것을 얻어 특별히 큰 이득을 본다는 사정은 다르다. 파는 사람은 물건을 내놓아도 별다른 손해가 없는데 사는 사람에게만 절실하다면, 그 절실함을 이유로 값을 올려서는 안 된다.
짧게 말하면 이렇다. 판매자가 설명할 수 있고 실제로 짊어지는 손실은 가격에 넣을 수 있다. 구매자가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은 넣을 수 없다.
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어디서 나온 청구인가에 따라 한쪽은 셈에 들어가고 다른 쪽은 들어가지 못한다. 그 구별 밑에는 하나의 판단이 놓여 있다. 어떤 사람이 벽 끝까지 몰렸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 값을 붙여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자신이 잃는 것의 대가를 요구할 수는 있다. 상대에게 달아날 길이 없다는 이유로 대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 비대칭은 이 규칙이 가진 분별을 가장 잘 보여준다. 판매자의 손실은 판매자에게 일어난 일이다. 무엇을 잃었는지 말할 수 있고, 그 손해를 자기 몸으로 떠안는다. 가격에 그 몫을 넣는 것은 그가 까닭 없이 손해 보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구매자의 막다른 처지는 판매자가 내놓은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구매자가 놓인 사정이다. 그 사정에 값을 매긴다는 것은, 남에게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사실을 자기 수입으로 바꾸는 일이다. 아퀴나스의 구별은 바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기근 속에서 굶주린 사람이 내겠다고 하는 돈은 그러므로 곡물선에 실린 곡식의 공정한 가격과 같지 않다. 그 액수가 재는 것은 곡식의 값어치가 아니라 그의 막막함이다. 다른 길이 없어서 내놓는 금액이다. 이 규칙은 바로 그 막막함을 자가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쪽으로 분명하게 옮겨놓았다.
그 선이 그어진 자리에 잔여항이 있다. 주의할 것은, 굶주린 사람이 내겠다는 액수를 실제로는 얼마든지 잴 수 있다는 점이다. 동전 한 닢 한 닢을 세면 된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규칙은 그 숫자를 알아낼 수 있더라도 공정한 가격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측정된다고 해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서 구축은 드문 행동을 한다. 자기 능력으로 잴 수 있는 영역 가운데, 재서 가격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은 잴 수 없는 것을 만나면 어떻게든 안으로 넣으려 했다. 담요로 바꾸고, 은으로 바꾸고, 동판 한 장의 값으로 환산했다. 이곳에서는 처음으로 반대 방향의 몸짓이 나타난다. 잴 수 있으나 일부러 재지 않는다. 계산하는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 부분을 장부에 수입으로 올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의 한계를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야 할 경계로 세운 것이다.
3. 존재하지 않는 것을 팔다
고리대금을 다루는 아퀴나스의 문항은 공정한 가격을 다루는 문항보다 더 날이 서 있다.
먼저 오늘날의 독자가 혼동하기 쉬운 말부터 풀어야 한다. 그 시대의 ‘고리대금’은 이자를 지나치게 높게 받는 일만을 뜻하지 않았다. 원금을 넘겨 받는 모든 금액이 여기에 해당했다. 100을 빌려주고 101을 돌려받아도 이미 금지 대상이었다. 높고 낮음을 나누기 전에, 원금 바깥의 몫을 받는 행위 자체가 문제였다.
그러니 금지의 범위는 지금 그 말을 들으며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이자율을 어느 정도로 제한할 것인지가 아니라, 시간 자체를 팔 수 있는지가 물음의 중심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돈에도 가격이 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은행에 맡기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낸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일이 정당하다는 주장부터 따로 입증해야 했다. 그 정당화에는 몇백 년이 걸렸다.
아퀴나스의 논증은 이렇게 출발한다. 빌려준 돈에 이자를 받는 일은 그 자체로 부정의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팔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설명은 더 유명하다. 어떤 물건은 쓰는 것과 소모하는 것이 같은 일이다. 포도주는 마셔 없애려고 쓰고, 밀은 먹어 없애려고 쓴다. 이런 물건에서는 물건 자체를 판 다음 그 사용을 별도로 팔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같은 것을 두 번 파는 셈이 된다. 아퀴나스가 이해한 돈은 무엇보다 교환의 매개다. 지출하면 손에서 없어지므로 포도주나 밀과 같은 부류에 속한다. 따라서 돈을 넘겨주면서 그 돈을 사용하는 몫에 다시 값을 붙이면, 이미 건넨 것을 한 번 더 파는 일이 된다. 이자는 그 두 번째 판매의 대금이다.
논증은 빈틈없이 맞물려 있다. 다만 한 가지 전제 위에 서 있다. 돈은 교환의 매개일 뿐이라는 전제다.
돈이 다른 것이 되는 순간, 가령 밑천이 되고 더 많은 돈을 낳는 수단이 되는 순간 이 전제는 더는 그대로 서 있지 못한다. 이후 실제로 벌어진 변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금지 체계의 가장 깊은 균열은 바깥에서 들이닥친 것이 아니었다. 체계를 떠받치고 있던 전제 속에 있었다. 구축을 가장 단단하게 지탱하는 들보가 동시에 가장 부러지기 쉬운 곳이기도 했다.
잠깐 멈춰볼 만하다. 이 논증이 엄밀한 것은 돈을 쓰면 없어지는 물건으로 정확하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훗날 논증이 버티기 어려워진 것도 돈이 그 정의 안에 얌전히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의를 단단히 고정할수록 대상 자체가 달라지는 일을 견디기 어렵다. 몇백 년 동안 금지가 느슨해진 과정을 누군가 아퀴나스를 논리로 논파한 역사로만 보면 부족하다. 그 논리의 발밑에 있던 물건이 어느새 다른 모습이 된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퀴나스 자신도 문에 가느다란 틈을 남겨두었다. 같은 문항에서 그는 대여자가 손해배상을 받기로 약정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인정한다. 본래 가지고 있어야 했지만 돈을 빌려주느라 빼앗긴 것에 대해 보상받는 경우다. 그것이 돈의 사용료를 따로 받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돈을 썼다는 이유와 실제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는 이 자리에서도 구별된다.
그 가느다란 틈은 훗날 밀리고 벌어져 문 하나가 된다.
4. 빵 한 덩이의 무게
공정한 가격은 대학 강의실 안에서만 살지 않았다. 도시의 조례에도, 장터를 도는 단속에도, 작업장에서 지키는 규칙에도 살아 있었다.
그 모습이 유난히 또렷한 것은 잉글랜드의 빵 규정이다. 원리는 투박할 만큼 단순했다. 빵을 등급별로 나누고, 종류마다 한 덩이의 값을 일정한 화폐 액면으로 정한다. 가령 1파딩짜리, 반 페니짜리, 1페니짜리 빵이 있다. 곡물 값이 오르면 어떻게 하는가. 빵값을 올리는 대신 같은 값에 파는 빵의 크기를 줄인다. 지방의 관리들이 해마다 곡물의 법정 가격을 정하면, 그 값을 바탕으로 각 종류의 빵이 갖추어야 할 법정 무게를 계산한다. 돈의 액면은 그대로이고 저울 위의 분량이 움직인다.
이것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공개 환산표였다. 품질, 무게, 화폐의 액면, 원료비, 공공질서를 하나의 계산식 안에 함께 묶어놓은 표였다.
그 뒤에는 아주 구체적인 생활의 사정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손에 남은 작은 동전 한 닢을 내고 빵 한 덩이를 사곤 했다. 빵값이 오르면 그 동전으로는 온전한 한 덩이를 살 수 없게 된다. 반면 빵을 작게 만들면, 조금 작아졌어도 적어도 한 덩이는 살 수 있다. 값은 고정하고 분량을 바꾸는 방식이 지키려던 것은 그 한 닢밖에 없는 사람의 자리였다. 같은 동전이면 어느 도시에서든 그에 걸맞은 분량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구축의 야심은 여기서 손에 잡힌다. 공정함을 측정할 수 있고, 점검할 수 있으며, 어기면 처벌할 수 있는 표로 쓰려는 야심이다.
그런데 그 표 자체가 자의 경계를 드러낸다. 제대로 된 표를 만들려면 곡물 값은 움직인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운송 거리도 다르고 도시와 농촌의 사정도 다르며, 원료는 풍작 때와 흉작 때가 다르다. 빵을 굽는 데 드는 비용도 있다. 심지어 제빵사와 그를 돕는 일꾼이 합법적으로 자기 몫으로 남겨도 되는 양까지 적어 넣어야 한다. 공정함을 계산식으로 만들자마자 계산에 앞서 헤아릴 사정들이 밀려든다.
공정함을 표로 옮길 때마다 표에 잘 들어가지 않는 것들을 다시 불러와야 했다. 노동과 손실, 계절과 위험이었다. 표를 정교하게 만들수록 그 밖에서 다시 가져와 넣어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하나를 정확히 적으면, 그 숫자가 성립하는 조건이 뒤따라 들어오기를 요구했다.
공정함을 끝까지 계산하려는 시도는 거의 모두 같은 곤경을 만난다. 규칙을 세세히 정할수록 예외가 늘어난다. 예외를 하나 인정하면 그 예외를 다룰 규칙이 다시 필요하다. 표가 바라는 것은 틈이 하나도 없는 상태다. 현실은 계속 틈에서 생겨나고, 틈을 메우는 일은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표 자체가 누군가 해석해주어야 하는 문서가 된다. 그러면 누가 해석할 권한을 가질 것인지가 또 하나의 힘겨루기로 남는다. 계산을 정확하게 했다고 권력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빵 규정에는 잘 거론되지 않는 세목도 있다. 무게를 속였을 때의 처벌을 함께 정해놓았다는 점이다. 얼마나 모자라면 어떤 벌을 받는지, 거듭 어기면 어떻게 하는지까지 적혀 있었다. 규칙을 만든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종이에 적힌 무게와 저울에 올라오는 무게는 늘 어긋날 수 있다. 그 차이는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 거듭 찾아가 점검하고, 거듭 달아보고, 거듭 처벌해야 겨우 눌러둘 수 있다. 구축은 세우고 나서 더 많은 힘을 요구한다. 유지하는 데 드는 힘이 세울 때보다 크고, 그 힘은 매일 써야 한다.
길드는 이 질서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었다. 은행과 신용 제도, 대기업이 아직 충분히 자라지 않은 시기에 길드는 상업과 수공업을 조직하는 거의 으뜸가는 제도였다. 누가 들어올 수 있는지 정하고, 일하는 방식을 감독하고, 기술을 관리했다. 공정한 가격, 안정된 생계, 기만의 금지, 품질의 보장도 그 안에서 서로 얽혔다. 물건값 하나만 따로 떼어놓고 움직이는 제도가 아니었다.
오늘날 길드를 바라보는 연구자들의 의견은 크게 갈린다. 한쪽은 길드가 오랜 기간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생산량을 제한했으며, 경쟁을 억누르고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았다고 본다. 품질을 보증하고 도제를 훈련하는 기능은 인정하지만, 전체적인 결과에는 깊은 의문을 품는다. 다른 쪽은 길드를 카르텔 하나로만 다룰 수 없다고 말한다. 길드는 훈련을 제공하고 신용과 정보를 나누었으며 기술을 퍼뜨렸다. 상인이나 지방 권력과 협상할 수 있는 틀도 마련했다. 문을 닫는 장치인 동시에, 안에 있는 사람들이 혼자서는 얻기 어려운 것을 얻는 장치였다.
이 논쟁을 공정한 가격의 역사 속에 돌려놓으면, 가격을 둘러싼 도덕경제가 구매자나 판매자 한쪽만 보호한 적은 없다는 사실이 보인다. 늘 두 요구 사이에서 흔들렸다. 도시는 물건이 풍부하고 값이 싸기를 바란다. 작업장은 체면을 지키며 질서 있게 먹고살기를 바란다. 길드의 정책이 풍부한 공급과 낮은 가격을 추구하는 도시 당국의 정책과 자주 부딪쳤다고 직접 적어놓은 자료도 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공정함이 가리키는 곳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길드의 가격 통제를 그저 낙후한 제도로 쓰면 많은 것을 놓친다. 공동체의 따뜻한 보호로만 써도 마찬가지다. 길드는 익명의 가격 경쟁을 제약했고, 힘이 약한 사람들이 극한의 조건에 내몰려 거래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했다. 동시에 외지인과 가난한 장인, 여성 노동자, 길드에 들지 않은 사람의 기회도 가로막았다. 시장의 자의성을 누르는 규칙이 진입하려는 사람까지 누를 수 있었다. 무엇을 풀어주고 무엇을 눌렀는지는 미리 답할 수 없다. 고장마다, 사건마다, 물건마다 살펴야 한다.
도제에게 몇 년을 채워 배워야 독립할 수 있다고 정한 규칙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솜씨의 수준을 지켜주고 이미 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밥벌이도 지켜준다. 그러나 빨리 배운 젊은이가 일찍 제 일을 시작하는 길은 막는다. 값을 깎아 손님을 빼앗지 못하게 하는 규칙도 비슷하다. 큰 가게가 작은 가게를 무너뜨리는 것을 막지만,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그 이익을 구매자에게 돌려주는 것도 막는다. 같은 규칙이 한쪽에서 보면 보호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억압이다. 더구나 보호받는 사람과 억눌리는 사람은 흔히 서로 다르다.
5. 금지는 어떤 모양이었는가
금지는 온화하게 착한 일을 권하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물어뜯을 이빨이 있었고, 그 이빨은 조금씩 자라났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주로 금한 것은 성직자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성직자의 규율이었지 사회 전체를 덮는 금융법은 아니었다. 12세기에 교회법의 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고리대금 금지는 지속적인 주제가 되었다. 부당하게 얻은 것을 돌려주도록 하고, 금지를 빠져나가려는 수법도 추궁했다. 1179년 제3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제재를 강화했다. 성사를 받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교 예법에 따른 장례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제 개인의 도덕적 흠결을 넘어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식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는 말은 오늘날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당시에는 무거운 현실이었다. 죽어서 교회 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부모나 자녀와 같은 곳에 누울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 세계가 품었던 믿음 속에서는 죽음 너머까지 이어지는 의미도 있었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그런 벌을 내린다는 것은, 그 일을 단순히 장사 규칙 하나를 어긴 행위로 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공동체 전체의 질서를 건드리는 행위로 보았던 것이다.
1311~1312년의 비엔 공의회에서는 금지가 가장 멀리 나아갔다. 일부 도시가 성문 규정과 맹세로 고리대금의 지급을 보장한다는 점을 문제 삼고, 지방 관리들에게 그런 조항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관련 계약이 은밀하고 교묘하게 작성되는 일이 많다며 혐의를 받는 대금업자에게 장부를 내놓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가장 무거운 대목은 따로 있었다. 고리대금이 죄가 아니라고 완고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이단 혐의를 받는 자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을 완고하게 고수하는 일은 신앙 질서의 심문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금지는 장부와 법정, 교회에서의 축출, 나아가 죽어서 어디에 묻힐 수 있는지와 모두 이어져 있다. 돈을 주고받는 한 건의 행위가 삶과 죽음의 소속 전체에 닿아 있었다.
그렇다고 금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곧 신용 거래의 부재를 뜻하지는 않는다.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는 유대인 대금업자가 그리스도인에게 지나치고 억압적인 이자를 받는 일을 다룬 별도의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은 오히려 두 가지를 보여준다. 사회에는 빌릴 돈을 구하는 수요가 매우 컸다. 그리고 금지는 대부를 없애지 못한 채, 그 일부를 법적 지위와 종교적 소속이 다른 사람들에게 밀어냈다.
이것은 구축이 빈틈없이 닫히려 할 때 거듭 나타나는 행동이다. 밖으로 넘치는 것을 없애는 대신 다른 곳으로 옮긴다. 별도의 표지가 붙은 집단이 있는 곳으로 옮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놓인 사람들은 훗날 대단히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앞선 글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았지만, 여기서는 유난히 선명하다. 체계는 자신이 담지 못하는 것을 가장자리로 밀어놓는다. 이미 바깥에 있다고 취급하던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사회 전체에 꼭 필요하면서도 수치스럽다고 판정한 일을 맡긴다. 옮겼다고 모순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제도 한가운데 있던 모순이 구체적인 사람들의 처지로 옮겨갈 뿐이다. 그 일을 떠맡은 이들은 사회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기능과 사회가 가장 싫어하는 평판을 함께 짊어진다. 법의 보호마저 취약하다. 정치의 바람이 바뀌어 재산을 빼앗고 사람을 쫓아내는 일이 벌어지면 바로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먼저 맞는다. 제도가 해결하지 않은 문제를 그들의 삶이 대신 감당하는 것이다.
금지가 실제로 얼마나 힘을 가졌는지를 놓고도 연구는 갈린다. 오래된 서술은 그것이 빈 껍데기였다고 말하곤 했다. 모두가 피해갈 방법을 찾아냈고 장사는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는 이 그림을 반박하는 견해가 있다. 많은 계약은 애초부터 금지의 범위 밖에 있었으며, 교회법정이 고리대금을 늘 못 본 척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는 합법적인 형식으로 자금 조달을 꾸려야 했기 때문에 거래비용이 커지고 자본시장이 갈라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복잡하면서도 합법적이고, 다툼이 생겨도 정당화할 수 있는 계약을 이용할 능력은 일부 상인에게만 있었다.
금지가 실제 제약이었다는 설명과, 그 제약이 신용의 문턱을 다시 배열했다는 설명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제약이 있다고 해서 신용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용은 남으면서도, 누가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는 달라질 수 있다. 이때 금지는 신용을 선별하는 규칙이기도 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누군가 돈을 빌렸느냐가 아니다. 돈을 빌리는 일이 무엇으로 쓰였느냐이다. 어떤 계약은 아예 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인정받았는가. 누가 자금 조달을 적법한 형식으로 작성할 수 있었는가. 누가 지인들의 관계망과 동네의 신용 안에서만 돈을 구해야 했는가. 교회법정은 어디에서, 어느 때에 엄격하게 책임을 물었는가. 바뀐 것은 빌리는 사람, 빌리는 명목, 작성하는 문서, 그리고 빌릴 때 기대는 평판이었다.
특히 문서와 평판에 주목해야 한다. 법률 전문가를 고용하고 복잡한 계약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말 한마디의 약속만으로 돈을 빌려야 하는 사람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도시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고 보증을 서줄 사람이 있는 사람은 그런 것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쉽게 문을 연다. 금지는 신용을 밖으로 몰아내지 않았다. 신용이 돌아갈 몫을 다시 나누었다. 그 재배분은 이미 약한 사람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했다. 같은 금지 아래 산다고 같은 조건으로 돈을 빌리는 것은 아니었다.
6. 돈이 들어오는 이름
금지가 실제로 느슨해진 자리는 정면으로 맞붙은 논쟁의 한가운데가 아니었다. 무엇을 어떤 이름으로 분류할 것인지, 그 명목의 틈에서였다.
스콜라 전통은 차츰 ‘외재적 권원’이라 부르는 근거들을 발전시켰다. 낯선 말이지만 뜻은 구체적이다. 대부 자체와는 별개로,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일의 둘레에서 실제로 생기는 사정들이 있다. 그런 사정에 근거해 원금보다 많은 돈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 말고도 청구를 뒷받침하는 이유가 있다는 설명이다.
자주 거론되는 것은 네 가지다.
네 가지에는 저마다의 근거가 있다. 어느 것이든 아퀴나스가 스스로 남긴 배상의 틈에서 출발할 수 있다. 모두가 입증하려는 것은 하나다. 내가 더 받는 이 돈은 돈의 임대료가 아니라 다른 무엇의 대가라는 것이다. 그 다른 무엇을 분명히 설명할 수 있으면 고리대금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외재적 권원이라는 장치가 하는 일은 바로 이 방향 전환에 있다. 같은 지급을 다른 근거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 방향 전환이 설득력을 얻은 것은 매번 실제 사정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느라 정말 손해를 볼 수 있다. 그 돈을 원래 자기 장사에 쓸 수도 있었다. 빌려준 원금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명목을 다루는 기술은 허공에 세운 궤변만은 아니었다. 거래 속에서 한 평면으로 눌려 있던 시간, 위험, 기회, 손실을 하나씩 다시 일으켜 세웠다. 첫째는 기한을 어긴 데 대한 벌금이다. 갚기로 한 날에 갚지 않았으므로 벌금을 내는 것이지 이자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둘째는 실제 손해의 배상이다. 돈을 빌려준 탓에 대여자가 정말 손실을 입었으니 그것을 메우는 돈이지 이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는 놓친 이익이다. 장사 밑천을 빌려주어 그만큼 벌지 못했으니 그 몫을 보전받을 뿐이며, 이자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넷째는 원금의 위험이다.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을 떠안는 대가를 조금 받는 것이며, 이것 역시 이자와는 다르다고 했다. 금지를 세우려고 납작하게 눌렀던 차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명목 사이의 틈으로 하나씩 고개를 들었다.
네 개의 통로는 한꺼번에 열린 것이 아니다. 초기에 비교적 쉽게 인정받은 것은 벌금과 실제 손해였다. 15세기에 이르면 놓친 이익의 보전도 차츰 널리 인정받기 시작한다. 원금이 돌아오지 않을 위험은 그보다 뒤에 안으로 들어왔다. 같은 네 가지를 한 줄로 나열할 수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네 가지 모두에 같은 폭의 허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 말의 내력이 있다. 라틴어에서 출발해 나중에 이자를 뜻하게 된 말은 본래 손해배상이나 보상에 더 가까운 뜻이었다. 오늘날 영어의 interest로 이어지는 그 말의 의미는 몇백 년 동안 조금씩 옮겨갔다. 손해를 메워달라는 요구에서 돈의 임대료를 가리키는 말로 움직였다. 말 자체가 변해온 길에 금지가 느슨해진 역사가 새겨져 있다. 이름은 남아 있는데 그 안에 담긴 것이 달라진다. 배상을 청구하던 말이, 돈을 맡긴 대가를 청구하는 말이 된다.
이 분류의 기술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었는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삼중계약’이다.
방법은 한 건의 투자를 각각 따로는 합법적인 세 계약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하나는 동업 계약이다. 함께 장사하고 이익을 나누는 일은 허용된다. 다음은 보험 계약이다. 원금을 잃을까 걱정되므로 보장을 사고, 불확실한 배당을 확실한 것으로 바꾸는 일도 허용된다. 마지막은 매매 계약이다. 액수가 오르내릴 수 있는 수익을 팔고 그 대신 고정된 금액을 받는 일 역시 허용된다. 합법적인 계약 세 개를 포개면 결과는 이렇다. 투자자는 원금이 보호되는 형태로 상업 활동에 돈을 넣고, 일정하게 정해진 연간 수익률을 얻는다. 각각 따로 보았을 때의 분류와 셋을 합쳤을 때의 기능이 달라지는 것이다.
형식으로 보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계약은 없다. 기능으로 보면 고정 수익을 받는 대출 한 건이 있다.
당시 많은 법학자와 신학자, 입법자는 이 방식을 반대했다. 다른 계약의 옷을 입혀놓았을 뿐, 이자를 받는 대출처럼 보인다는 이유였다. 반면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신학자도 있었다. 그들이 드는 이유는 현실적이었다. 이미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금지하기보다는, 어떤 조건에서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허용되는지를 분명하게 규정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하나의 거래를 보는 눈도 계약마다 나누어 볼 것인지, 합친 효과를 볼 것인지에 따라 갈렸다.
이 대목은 분명히 말해둘 필요가 있다. 오래된 금지가 공개적으로 폐지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 금지의 바깥을 돌아가는 문서를 점점 더 능숙하게 쓰게 되었다.
이것은 앞선 글들에서 아직 보지 못했던, 구축이 힘을 잃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반드시 쓰러뜨려져야만 무력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다시 붙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질 수 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액수의 돈을 내더라도, 다른 명목을 달고 다른 부류에 넣으면 금지는 그 지급에 닿지 못한다. 금지는 그대로 서 있다. 하지만 금지하려던 기능은 이미 다른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규칙을 부수지 않고도 규칙이 움켜쥐던 대상을 그 손아귀 밖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7. 광장에서는 누가 값을 매기는가
16세기에 이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금과 은이 대량으로 흘러들고 물가혁명이 일어난다. 먼 거리를 건너는 환거래가 늘고 신대륙과의 무역이 펼쳐진다. 제국의 넓은 영역에서는 여러 화폐가 뒤섞인다. 이 변화들은 스콜라 학자들에게 아퀴나스의 틀을 더 세밀하게 다듬으라고 요구했다. 한 도시의 거래를 설명하던 말로 더 큰 거리와 더 복잡한 교환을 다루어야 했다.
그 일을 가장 힘 있게 밀어붙인 이들은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의 학자들이었다. 아퀴나스를 이어받으면서 화폐와 환거래, 통화, 신용, 법정 가격의 새 문제를 다루었다. 그중 한 학자는 돈의 많고 적음과 물가 사이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도 특수한 상품의 하나이므로, 드물면 값어치가 달라지고 풍부해져도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값을 재는 돈이 스스로도 사정에 따라 값이 움직이는 물건이라는 사실이 틀 안으로 들어왔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전보다 시장을 더 지지하게 되었다는 한 가지 변화만이 아니다. 언제 시장의 판단에 맡길 수 있으며, 언제 그 판단에 다른 조건을 덧붙여야 하는지를 훨씬 세밀하게 나누었다는 점이다. 시장에 더 많은 말을 하게 하면서도, 그 말이 성립하는 조건을 따로 살폈다.
비토리아는 공동의 평가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사고파는 사람이 너무 적고 거래가 드문 곳에서는 그런 평가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럴 때는 비용과 노동, 위험과 희소성을 고려해야 한다. 몰리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자연가격은 주로 공동의 평가에서 나오지만, 단 하나의 점으로 정확하게 찍을 수는 없으며 일정한 범위 안에 놓인다고 보았다. 동시에 그는 공정한 가격을 무너뜨리는 독점에 반대했고, 관청이 정한 일부 경직된 가격 상한에도 반대했다. 공동으로 정한다는 이름만 붙어 있다고 해서 실제로 공동의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살라망카에서 마침내 자유시장을 발견했다는 멋진 한 문장으로 쓰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쓰면 사정이 흐려진다. 이들은 가격을 정하는 일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공동 평가에 더 많이 맡겼다. 그러면서도 거래하는 사람은 필요한 사정을 알고 있어야 하며, 속임이 없어야 하고, 거래가 도덕적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당시의 한 문헌이 정리한 뜻을 빌리면, 시장은 무엇보다 실제 사람들이 만나고 마주하는 자리였다. 양심이 없어도 저절로 올바른 결과를 내는 자동 과정은 아니었다.
따라서 공정한 가격을 둘러싼 논쟁도 더 복잡해졌다. 어떤 연구자는 거의 모든 스콜라 학자가 단순히 비용을 보전하는 금액보다 공동의 평가에서 공정한 가격을 찾았다고 정리한다. 당시의 한 학자는 더 분명하게 말했다. 값은 물건과 상인과 돈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에서 나오지, 비용과 노동과 위험을 항목별로 더한 결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다른 연구는 비용과 공동의 평가가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공동으로 매겨진 값이 너무 낮아 생산을 이어갈 수 없으면 비용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공동의 평가를 보완하고 제약하는 조건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가치 쪽의 구축이 가장 성숙했을 때의 모습이다. 누구인지를 가리지 않고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는 시장의 평가가 점점 힘을 얻는다. 그러나 가장자리에서는 거듭 다른 것들이 자라난다. 생산을 계속할 수 있는 조건, 감당해야 할 위험, 법정이 정하는 경계, 공동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다. 통일된 값으로 모으려는 힘과, 그 값만으로 버틸 수 없다는 사정이 함께 자란다.
살라망카의 이야기를 낡은 질서의 항복으로 읽어서도, 새로운 질서의 개선행진으로 읽어서도 곤란하다. 같은 구축이 더 세밀한 곳까지 밀려가며 자기 모습을 조정한 과정에 가깝다. 시장에 맡길 수 있는 곳은 넘기고, 지켜야 하는 곳은 계속 붙잡았다. 붙잡던 것의 상당 부분은 훗날 놓치게 된다. 그렇더라도 그때 실제로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켜야 한다고 들었던 이유 또한 몇백 년 뒤까지 살아남아 다시 쓰였다.
이 학자들이 가진 분별은 광장을 보는 시선에서도 드러난다. 광장에 값을 맡기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보지 않았다. 광장 자체를 누군가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상인 몇이 물건을 쌓아두고 내놓지 않으면 공동의 평가는 몇 사람의 평가로 바뀐다. 관청이 값을 못 움직이게 박아두면 공동의 평가는 종이 위의 말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여러 사람의 판단으로 값을 정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판단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들을 함께 지켜보았다. 훗날 독점과 정보의 비대칭을 논하게 되는 사고와도 멀지 않은 문제의식이다. 시장을 인정하는 일 안에, 시장의 판단을 훼손하는 힘을 경계하는 일이 들어 있었다.
8. 이름이 지키는 땅은 좁아졌다
1745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이 오랜 전통을 후대의 자리에서 한 번 정리하는 회칙을 내놓았다.
회칙은 처음에 오래된 원칙을 다시 확인한다. 대부 그 자체만을 근거로 빌려준 것보다 더 많이 돌려받으려 한다면, 원금을 넘는 그 이익은 모두 위법하며 고리대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익이 크냐 작으냐에 따라 그 잘못이 없어지지 않는다. 돈을 내는 사람이 가난하든 부유하든 마찬가지다. 빌린 돈으로 장사를 키우든 땅을 사든, 그 용도가 빌려준 돈 자체에서 추가 이익을 요구하는 행위를 깨끗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고 특별히 덧붙였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는 다른 가능성을 인정한다. 대부 계약에는 대부의 본성에서 나오지 않는 별개의 정당한 권원이 함께할 수 있다. 또는 대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계약에 돈을 넣어 합법적인 연간 수익과 상업 이윤을 얻을 수도 있다. 빌려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받는 것과, 다른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수익을 얻는 것은 여전히 나누어 다루었다.
회칙은 오래된 원칙을 거두지 않았다. 원칙과 예외 사이의 선을 전보다 더 잘게 새겼다. 전체를 허용하는 한마디 대신, 어느 이유에서 어떤 수입을 받을 수 있는지 구분하는 일을 계속한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면 변화가 실제 업무의 차원으로 들어온다. 이 역사를 돌아본 기록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이미 16세기부터 5퍼센트의 이자를 허용한 반면, 프랑스에서는 1789년 혁명기의 법령이 나오기 전까지 오래된 제한이 유지되었다. 또 1830년부터 1871년까지 로마에서 나온 일련의 답변은 현대의 조건에서 법률과 상관행에 따라 이자를 받는 것을 사실상 허용했다. 교회 자신의 재산도 이자를 낳는 방식으로 운용하도록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원칙의 문구를 둘러싼 변화와 일상 업무에서 돈을 다루는 변화가 이런 식으로 포개졌다.
그 밑에서는 개념의 깊은 이동이 일어났다. 돈은 더 이상 쓰면 없어지는 물건으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현대의 경제 조건에서는 돈을 보유하는 것 자체에 일반적이고 안정적인 쓸모와 기회의 가치가 있다고 보게 되었다. 가지고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남에게 넘기면 포기하는 일이 있다. 아퀴나스의 논증은 여전히 단단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것을 지탱하던 전제가 사라진 것이다.
‘고리대금’이라는 말은 없어지지 않았다. 대신 가리키는 범위가 좁아졌다. 원금을 조금이라도 넘겨 받는 모든 행위에서, 상대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지나친 이자 수취를 뜻하는 말로 물러났다.
이것은 말이 살아남는 한 가지 방식이다. 원래 다스리던 땅의 대부분을 내주고, 마지막 한 조각을 지킨다.
이 축소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현실에 밀려 물러나는 개념은 버티기 어려운 곳에 닿을 때마다 한 부분을 내준다. 마지막에는 훨씬 작은 핵심이 남는다. 그 핵심을 여전히 지킬 수 있는 까닭은, 종종 그것이야말로 처음부터 가장 중요했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리대금이라는 말은 모든 이자를 관할할 권한을 잃었다. 그러나 남이 궁지에 몰린 틈을 이용하는 행위에 대한 비난은 지켰다. 잃은 것은 구축의 넓은 경계였다. 남은 것은 잔여항이 애초에 그 구축으로 하여금 긋게 했던 선이었다.
따라서 이것을 말끔한 패배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금지는 멀리 물러났다. 처음 서 있던 자리의 거의 반대편까지 후퇴했다. 그런데 끝에 가서 지킨 작은 부분에는, 처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남아 있었다. 구축이 대부분 무너져도 마지막에 남는 한 조각은 그것을 처음 세웠던 이유인 경우가 많다. 오늘날 누군가를 고리대금업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단지 이자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가혹하게 받고 상대의 궁지를 이용했다는 뜻이다. 마지막에 남은 그 땅은 아퀴나스가 그었던 선과 맞닿아 있다. 다른 길이 없는 사람의 처지를 가격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선이다.
이제 두 가지가 함께 분명해진다.
가치 쪽에 세운 구축은 공정함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고 진지하게 애썼다. 공정한 가격, 법으로 정한 빵의 무게, 길드의 규칙, 금지 조항, 법정의 추궁이 모두 그 시도였다. 그런데 기초를 놓을 때부터 정확한 한 점을 잴 수는 없다고 인정했다. 담지 못한 것들은 가장자리로 하나씩 넘쳤다. 시간과 거리, 위험, 상인이 정당하게 이어가야 할 생계, 거래가 드문 시장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가 남았다. 결국 이것들은 구축을 정면에서 뒤엎기보다 자기에게 새 이름을 찾아주었다. 분류 사이의 틈으로 걸어나갔다.
그 구축을 밀어 벌린 쪽 역시 순수한 해방이었던 적은 없다. 시장의 자유는 신용을 흐르게 했다. 가난한 사람도 적어도 빌릴 돈을 구할 수 있게 했고, 장사하는 사람이 자금을 마련할 때마다 다른 계약으로 꾸며 쓰지 않아도 되게 했다. 동시에 아퀴나스가 분명히 문밖에 세워두었던 것도 다시 들여보냈다. 구매자가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가격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급히 돈이 필요한 사람이 더 높은 이자율로 빌리는 일은 당연한 위험의 가격으로 여겨진다. 옛 규칙에서는 바로 그 다급함이야말로 가격에 넣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위험에 가격을 매긴다는 말은 중립적이고 기술적으로 들린다. 갚을 능력이 낮을수록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이 커지고, 그러니 이자율도 높아져야 한다. 그 설명은 자기 틀 안에서 앞뒤가 맞는다. 하지만 아퀴나스의 구별 옆에 놓으면 두 논리가 같은 자리에서 갈라지는 것이 보인다. 한쪽에서는 다른 길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른 쪽에서는 바로 그런 사람일수록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값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 시리즈는 어느 쪽이 더 옳은지 판결하려 하지 않는다.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한때 그곳에 선이 그어졌고, 나중에 그 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선을 옮긴 데도 이유는 있다. 위험에 따라 값을 매기지 못하게 하면 가난한 사람이 싼 이자로 돈을 빌리는 결과가 나오기보다, 아무도 그에게 빌려주려 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기 쉽다. 이자율을 못 움직이게 누르면 신용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을 비켜 다른 곳으로 흐른다. 이것은 자유롭게 두자는 쪽의 가장 강한 논거이며 실제 사정을 짚는다. 그러나 맞은편의 현실도 똑같이 단단하다. 막다른 데 몰린 사람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계약서를 마주하고 있을 때, 서명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르는 일은 진정한 선택이라 하기 어렵다. 빌리지 못하는 현실과 갚을 수 없는 조건에 동의해야 하는 현실은 둘 다 실제다. 양쪽 요구를 한꺼번에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이 힘겨루기는 몇백 년째 끝나지 않는다.
양쪽 모두 사람을 지켜주었고, 양쪽 모두 사람을 억눌렀다. 어느 쪽도 진보가 향하는 하나의 화살표는 아니다.
몇백 년을 한데 놓으면 위로 올라가는 선보다 양쪽에서 번갈아 당기는 줄이 보인다. 가격을 공정함에 너무 단단히 묶으면 신용이 흐르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없어진다. 장사를 할 수 없는 곳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더 살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줄을 조금씩 푼다. 어느 지점까지 풀리면 남의 다급함을 이용하는 일이 다시 합법적인 수입이 된다. 그러면 누군가는 다시 묶어야 한다고 외친다. 이 당김은 지금도 이어진다. 금융위기 뒤마다, 고리대금과 소비자대출의 이자율 상한을 논할 때마다 같은 힘겨루기가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그 몇백 년을 가로질러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15세기 말까지도 잉글랜드 교회법정의 채무 소송에서 초점은 종종 얼마를 빚졌느냐보다 약속 하나가 깨졌다는 사실에 있었다. 한 사람의 신용은 사회적 지위와 단단히 묶여 있었고, 맹세 자체가 신용 수단이었다. 금전적인 빚과 종교적·도덕적 의무, 인간관계에서 진 빚은 실제로 분리되지 않았다. 화폐와 표준화된 가격은 분명 교환을 더 계산하기 쉽게 만들었다. 그러나 교환을 명예와 맹세, 신분에서 떼어내지는 못했다. 두 체계는 앞의 것이 사라지고 뒤의 것이 오는 식으로 바뀌지 않았다. 오래 공존하면서 서로를 이용하고, 서로의 일부를 제 안으로 삼켰다.
돈을 빌릴 때 그 사실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빌릴 수 있는지, 얼마나 빌릴 수 있는지, 이자는 얼마인지를 정하는 것은 담보의 값어치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중요하다. 말한 것은 지키는가. 전에 빚을 떼먹은 적은 없는가. 집안은 성실하게 사는 집안인가. 이름 있는 사람이 보증을 서줄 것인가. 이런 것들을 계약서의 금액란에 숫자로 옮겨 적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바로 그것들이 금액란에 들어갈 숫자를 정한다. 돈으로 거래를 깔끔한 산술로 만들려 할수록, 그 산술로 계산되지 않는 것들이 밑에서 받쳐주어야 한다.
모든 가격표 밖으로 넘치는 것은 여전히 같다. 공정한 가격도, 빵 규정도, 금지의 조항과 네 개의 통로도 그것을 남김없이 재지 못한다. 그것은 벽 끝까지 몰린 사람이다. 그가 내겠다고 하는 돈은 어떤 물건의 공정한 가격도 아니다. 달리 갈 곳이 없다는 사실 자체에 붙은 값이다. 구축은 공정함을 끝까지 셈하려고 거듭 나서지만, 그 사람 앞에서는 거듭 셈을 마치지 못한다. 액수를 알아내는 일과 그 액수가 공정한지를 판정하는 일 사이에 그가 남아 있다.
순서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먼저 자가 생기고, 그 뒤에 자로 다 잴 수 없는 사람이 생긴 것이 아니다. 그는 줄곧 그곳에 있었다. 자가 조금 더 정밀해질 때마다 그의 윤곽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공정한 가격을 세우자 다급하다는 이유로 값을 올려 받아서는 안 되는 구매자로 나타났다. 금지를 세우자 감당할 수 없는 차용 문서에 서명하도록 내몰린 사람으로 나타났다. 명목을 다루는 기술이 자라자 법률 전문가를 고용하지 못하고 말 한마디로만 돈을 빌리는 사람으로 나타났다. 구축은 몇 번이고 달라졌다. 그는 달라진 구축 안의 새로운 자리에서 몇 번이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몇백 년의 노력을 함께 놓으면, 사람들이 줄곧 같은 일을 해왔다는 것이 보인다. 어떤 것에 값을 정하려 한다. 그런데 그 어떤 것이 하필 다른 사람이 놓인 처지다. 곡물 값을 정하려면 도시 사람들이 얼마나 굶주렸는지를 보게 된다. 이자를 정하려면 빌리는 사람이 얼마나 다급한지를 보게 된다. 이 둘을 더 정확하게 계산하려 할수록 그 사람의 곤궁을 더 자세히 재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이를 때마다 누군가는 앞으로 나와 말한다. 이 부분을 그렇게 재서는 안 된다고. 때로는 신학자가, 때로는 길드가, 때로는 법정이, 때로는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이 말한다. 말하는 입은 달라도 그들이 붙잡는 문장은 같다.
셈은 아직 맞지 않는다. 장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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