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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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경제
제03편 · 총 23편

리디아의 주화: 주화는 가치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자에 몸을 주었다

기원전 7세기 서아나톨리아의 호박금 주화는 매번 금속을 달고 시험하던 일을 하나의 표식으로 압축했다. 낯선 이와의 거래를 넓힌 주화는 익명성 아래 발행자의 권위를 새겨 넣었다.

Han Qin (秦汉)
이 글의 목차

1. 더는 무게를 달지 않아도 된다

먼저 거래 한 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상상해보자.

두 사람이 물건 한 묶음의 값을 합의했다. 이제 은을 치를 차례다. 값을 내는 사람이 주머니에서 은 막대 하나를 꺼내 가위로 한 토막을 잘라낸다. 너무 많이 잘랐는지 적게 잘랐는지 알려면 저울에 올려야 한다. 저울에는 추가 있어야 하고, 그 추를 양쪽 다 믿어야 한다. 무게를 달았다고 끝도 아니다. 순도가 얼마나 되는지, 은에 다른 것을 섞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눈으로 보고 손에 얹어보고, 한쪽에 칼집을 내어 속의 단면까지 들여다본다.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으면 은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불러 감정을 맡긴다. 작은 거래 하나에서 물건값을 다 치르는 데만 이만한 절차가 필요했다.

이 절차에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둘 다 인정하는 추가 필요하고, 중간에서 기꺼이 보증을 서줄 사람이 필요하다. 은에 무엇을 섞었는지 알아볼 줄 아는 전문가도 있어야 한다. 잘라낸 이 토막을 얼마로 쳐줄 것인지 모두가 암묵적으로 따르는 규칙도 있어야 한다. 돈을 치르는 일은 혼자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레에 선 여러 사람이 받쳐주어야 비로소 끝나는 일이다.

이런 방식은 리디아인들이 주화를 만들기 전부터 이미 수천 년 동안 이어져왔다. 메소포타미아에는 일찍부터 무게로 헤아리는 은이 있었고, 보리를 기준으로 삼은 가격과 대출·세금의 장부가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 이르면 은은 품삯과 지대, 항구세와 성문세를 내는 수단이었다. 흔히 보이는 물가는 1~4셰켈 사이였으며, 고용된 일꾼의 월급 중간값은 약 2.5셰켈이었다. 그리스도 비슷했다. 솔론의 법으로 전해지는 규정은 이미 벌금을 은의 액수로 정했다. 집정관이 직무를 소홀히 하면 100드라크마를 물었고, 제물로 바치는 짐승 가운데도 은으로 값이 정해진 것들이 있었다. 더 먼 곳에서는 다른 길이 열리고 있었다. 몰디브 일대 바다에서 나는 개오지조개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으로 옮겨갔다. 작고 오래가며 개수를 세기 쉬운 이 조개는 서로 다른 사회에서 차츰 돈이 되었다.

그러니 돈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누군가가 갑자기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리디아인들이 손을 대기 전에 인류는 이미 곡물과 가축, 구리와 주석, 천과 조개껍데기로 서로에게 빚진 것을 헤아려왔다. 저울과 장부를 써서 식량과 부역, 지대와 세금을 같은 단위로 환산해왔다. 앞선 글에서 보았던 점토판의 장부가 바로 그 일을 했다. 없었던 것은 자가 아니다. 그 자를 몸에 지니고 다닐 방법이었다.

리디아인들이 발명한 것이 교환도, 가격도, 서로 다른 것을 하나의 자 위에 올려놓는 일도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 자는 벌써 있었다. 그들이 한 일은 따로 있다. 이미 있던 자에 몸을 준 것이다.

이 차이를 흐릿하게 넘겨서는 안 된다. 가격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때까지는 저울 위에 살았다. 장부의 어느 한 줄에, 거래하는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벌이는 실랑이에 살았다. 모양이 없으니 집어 들 수 없었고 가지고 떠날 수도 없었다. 주화는 이 추상적인 것을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빚었다. 주먹 안에 쥘 수 있고, 서로 부딪치면 짤랑거리며, 땅에 떨어지면 다른 사람이 주워갈 수도 있는 물건이 되게 했다. 추상적인 것에 몸이 생기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진다. 할 수 있는 일도 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중에 이 걸음을 정확하게 짚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금속은 처음에는 크기와 무게로만 정해졌다. 그 뒤 사람들은 다시 무게를 달지 않아도 되도록 금속에 표식을 찍었다. 그 표식이 얼마만큼인지를 나타내는 표시로 붙여졌기 때문이다.

담담해 보이는 설명이지만, 그 안에서는 하나의 교체가 일어난다. 전에는 이 금속 덩이가 얼마짜리인지 판단하려면 현장에서 두 가지 일을 해야 했다. 무게를 달고 순도를 확인해야 했다. 이제 표식 하나가 그 두 일을 대신한다. 표식은 그 안에 무엇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낱낱이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이것을 얼마로 치면 된다고 말한다. 손으로 바로 붙잡을 수 없는 사실을 눈에 보이는 기호가 대신한 것이다. 그 기호를 믿는 까닭도 자신이 속까지 확인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기호를 찍은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더는 무게를 달지 않아도 된다. 이 짧은 말 속에 깊은 변화가 들어 있다. 그전까지 공통의 자는 저울과 장부에, 은을 볼 줄 아는 사람의 눈과 손끝에 깃들어 있었다. 신전과 궁정, 큰 상단이 가진 것이었다. 보통 사람은 거래할 때마다 그 체계의 힘을 한 번씩 빌려야 했다. 주화가 생기자 자는 작은 금속 조각 안에 눌려 들어갔다. 주머니에 넣을 수 있고, 몇 개인지 세면 되고, 그대로 상대의 손에 건네면 되었다. 헤아리는 권한이 처음으로 저울과 장부를 맡는 방을 떠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앞선 글에서는 장부가 처음으로 몸을 얻었다. 그 몸은 점토판이었다. 이번에는 자의 차례다. 자가 얻은 몸은 동전 한 닢이다.

두 몸은 성미가 다르다. 점토판은 움직이지 않는다. 창고와 문서 보관실에 누워 누가 누구에게 빚졌는지를 기록한다. 기관의 소유이며 서기가 지킨다. 보통 사람은 평생 몇 장 만져보지도 못할 수 있다. 동전은 돌아다닌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간다. 누가 쥐든 그 사람을 대신해 말한다. 장부는 빚을 한자리에 붙잡지만, 동전은 가치를 풀어놓고 뛰게 한다. 그리고 돌아다닐 수 있기에, 이 자는 처음으로 모든 것을 재볼 가능성을 얻는다. 골목마다 들어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에까지 닿을 가능성이다.

2. 한 번의 타격으로

고고학 자료와 문헌은 대체로 최초의 주화를 기원전 7세기 소아시아 서부에 놓는다. 리디아와 이오니아가 맞닿은 일대, 오늘날 튀르키예의 서쪽 가장자리다. 처음 만들어진 주화들은 일렉트럼으로 찍었다. 금과 은이 자연 상태에서 섞인 합금이다. 때로는 사람이 그 비율을 손보기도 했다.

만드는 법 자체는 간단했다. 작은 금속 덩이의 무게를 정확히 맞추고, 주화가 될 바탕 조각을 만든다. 그것을 아래쪽 틀에 얹은 다음 위에서 펀치를 대고 한 번 내려치면, 앞면에 그림이나 무늬가 찍힌다. 가장 이른 주화들은 흔히 한쪽 면에만 그림이 있고, 반대쪽에는 찍어 누를 때 생긴 움푹한 자국이 남아 있다. 미리 무게를 맞춘 금속 조각 하나, 그리고 한 번의 타격. 이 두 가지가 공정의 전부를 떠받친다.

눈여겨볼 것은 순서다. 먼저 무게를 맞추고, 나중에 표식을 찍는다. 이 돈을 정해진 액수로 쳐줄 수 있는 까닭은 절반쯤은 실제로 그만한 무게가 나가기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쯤은 표식이 보증을 서주기 때문이다. 가장 이른 돈은 그런 의미에서 혼합물이었다. 한쪽에는 손에 잡히는 금속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누군가의 약속이 있었다.

약속이라는 그 절반이 이후 모든 논쟁의 씨앗이다. 금속 쪽은 다루기 쉽다. 무게를 달고 성분을 검사하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약속 쪽은 그렇게 확인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돈 한 닢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는 결국 그 약속을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에 달렸다. 많이 인정하면 돈이 되고, 적게 인정하면 금속 덩이에 머문다. 그런 뜻에서 이후 화폐의 역사 전체는 이 두 절반의 무게중심이 끊임없이 옮겨가는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금속 쪽은 점점 가벼워지고 약속 쪽은 점점 무거워지는 이동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복잡한 것은 액면이었다. 가장 큰 단위는 후대에 스타테르라고 불렸다. 그 아래로 3분의 1, 6분의 1, 12분의 1이 있었고, 더 내려가면 48분의 1과 96분의 1, 어쩌면 192분의 1짜리까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넓은 범위는 적잖은 것을 말해준다. 몇 건의 큰 거래에만 쓰려고 만든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192분의 1짜리 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주 자잘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작은 돈이 있어야 자가 생활의 맨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다. 밥 한 끼, 길 한 구간, 땔감 한 줌도 잴 수 있다. 큰 수량만 재는 자는 보편적인 자가 아니다. 보편적이려면 가장 작은 것까지 눈금 안에 들어와야 한다.

서로 다른 모든 것을 공통의 척도로 바꾸려는 야심도 여기서 처음 제 크기를 드러낸다. 무엇이든 같은 장부에 넣으려면 큰 거래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하루의 품삯, 한 끼의 밥값, 나루터를 한 번 건너는 삯도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액면을 거의 200분의 1까지 잘게 나눈다는 것은, 너무 작아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일상의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 이 자가 닿을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

그렇다고 그때 이미 하나의 표준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초기의 무게 체계만 해도 적어도 여러 갈래로 나뉘며, 서로 그대로 통하지 않았다. 더 까다로운 점도 있다. 가장 이른 돈들 가운데는 누구의 표식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많다.

여러 표준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의 형편을 말해준다. 주화가 하나의 통일된 권력이 위에서 아래로 밀어붙인 제도였다면 무게 체계가 이만큼 뒤섞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체계가 고르지 않은 것은 여러 곳의 여러 사람이 각자 시험해보며 만든 물건이었음을 드러낸다. 이때의 발명은 어느 한 사람이 어느 날 번쩍 떠올린 묘안보다는, 이곳저곳에서 거의 함께 솟아오른 실험들에 더 가깝다.

3. 신전의 기초에 묻힌 돈

최초의 주화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두고는 지금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 논쟁의 한가운데 놓인 증거는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밑에 묻혀 있었다.

그곳에서 나온 일렉트럼 주화를 모두 다시 검토한 연구자들은 108개를 헤아렸다. 그 가운데 73개는 신전의 특정 건축 단계에서 나왔고, 적어도 41개는 기초를 놓을 때 묻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근거로 주화의 시작을 기원전 7세기 중엽까지 거슬러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종합 연구는 그중 적어도 한 개가 기원전 630~615년의 제의 퇴적층에서 나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좀 더 오래된 복원안들은 관련 지층의 연대를 더 늦게 잡았다. 핵심이 되는 기초 부분을 기원전 600년 가까이까지 내리기도 했다. ‘최초’라는 두 글자를 떠받치는 고고학적 증거조차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다. 시기를 어떻게 구분하고 지층을 어떻게 읽는지, 신전이 세워진 과정을 어떻게 복원하는지에 따라 서로 경쟁하는 여러 안으로 나뉜다.

이런 다툼은 자질구레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사료에 정직하려면 바로 이런 모습이 된다. 동전은 자기가 태어난 해를 말해주지 않는다. 어느 흙층에 누워 있었는지를 보고 나이를 추정해야 한다. 그 흙층이 언제 쌓였는지는 다시 건물 전체의 내력을 복원해 판단해야 한다. 한 고리의 해석이 바뀌면 뒤의 판단도 줄줄이 달라진다. 최초의 주화가 정확히 어느 해에 나왔는지는 앞으로도 오래 결론이 나지 않을지 모른다. 확실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대략의 시기와, 그 무렵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불확실성은 한 가지를 일깨운다. 주화는 누군가 어느 날 공포한 제도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여러 지역의 실천 속에서 차츰 자라났다. 오늘 발굴되는 초기 주화 한 닢 한 닢은 긴 실험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파편이다. 누가 첫 번째였는지 정확히 짚어 묻기는 이미 어렵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수십 년 동안 소아시아 서부의 많은 사람이 거의 동시에 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누가 더 빨랐는가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다.

가장 이른 주화들은 신전의 기초 구덩이에서, 제사를 지내고 남은 뼈와 재 사이에서 무더기로 모습을 드러낸다. 어느 시장 좌판의 돈궤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막 나온 이 새 물건을 손에 넣은 뒤, 첫머리에 했던 일 가운데 하나로 그것을 신의 건물 밑에 묻었다.

이 행동 앞에서는 잠깐 멈출 필요가 있다. 동전의 가장 큰 재주는 유통이다.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건너가는 데 있다. 그런데 기초 밑에 묻는 것은 그 재주를 스스로 없애는 일이다. 영원히 한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다. 막 세상에 나와 무엇과든 바꿀 수 있는 귀한 물건을 손에 넣은 사람이, 그중 몇 개를 골라 더는 아무것과도 바꾸지 못하게 해버린 것이다.

기초 밑의 돈은 사람이 일부러 유통에서 빼낸 돈이다. 더는 무엇도 사지 않고, 무엇도 재지 않는다. 그 자리에 머물면서 한 가지만 표시한다. 여기에는 다른 것과 맞바꾸지 않을 무엇이 있다는 사실이다.

제사도 본래 일종의 지불이었다. 인간이 신에게 서원을 갚고 공물을 바치는 일이었다. 그런 층위는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갓 찍어낸 돈으로 그 일을 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무엇과도 공통의 값으로 환산하기 쉬운 물건을 써서, 바로 그렇게 환산하기 가장 어려운 관계를 표시하기 때문이다. 신에게 돈 한 닢을 바치는 손은 동시에 한 가지를 인정한다. 이 돈의 자로 잴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새롭고 가장 좋은 것을 신에게 바치는 관습 자체는 오래되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바쳐진 물건이 하필 차이를 지우고 같은 값으로 펴놓는 데 쓰이는 물건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그것으로 곡식을 사고 땅을 사고 가축을 사고 하루의 노동을 산다. 그러고는 몇 닢을 따로 골라 기초 밑에 묻는다. 아무것도 사지 않게 한다. 똑같은 물건이 한편에서는 만물을 같은 평면 위로 끌어내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끝내 그 평면에 놓이지 않으려는 자리를 표시한다.

이 보편적인 자가 막 세상에 내려앉는 순간, 미묘한 일이 함께 일어난다. 그전에도 바꾸지 않는 것은 있었다. 신의 것, 조상의 것, 자기 집안의 것들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무엇이든 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바꾸지 않는 것들이 따로 도드라지지 않았다. 다른 것들 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진다.

소박한 비유를 들어보자. 불이 꺼진 방에서는 가구와 구석이 어둠 속에 뒤섞여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등불 하나를 켜면 빛이 닿는 곳이 밝아진다. 그와 함께 빛이 닿지 않는 모퉁이도 처음으로 구석이라는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자는 그 등불과 같다. 등불이 구석을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이 켜지기 전에는 구석이 뚜렷한 구석으로 보이지 않았다. 무엇에나 값을 붙일 수 있는 동전이 생기자, 값을 붙이기를 거부하는 것들이 처음으로 선명한 윤곽을 얻는다. 그것들은 예외가 된다. 따로 가려놓은, 팔지 않는 것들이 된다.

자가 그것들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자는 다만 그것들을 비추었다. 그리고 빛에 드러난 그 부분은, 이 순간부터 제 고유한 모양을 갖게 되었다.

이 걸음은 이 이야기 전체에서 중요하다. 그전에도 셈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있었다. 신의 몫, 조상의 땅, 한 사람의 명예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마주 보고 맞서는 것이 없었기에 윤곽도 분명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잰다는 자가 나타난 뒤에야 그것들은 처음으로 앞에 놓인다. 설명하고 자리를 정해주며 일부러 선을 그어 따로 묶어야 하는 한 부류, ‘팔지 않는 것’이 된다. 잔여항은 그렇게 흐릿한 상태에서 또렷한 상태로 옮겨온다. 그때 새로 생겨서가 아니다. 마침내 그것을 도드라지게 할 상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뒤 되풀이될 일도 설명해준다. 자가 한층 날카로워질 때마다 경계 밖으로 밀려난 것이 한층 눈에 띈다. 눈에 더 잘 띌수록 그것마저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싶은 마음도 강해진다. 기초 밑에 묻힌 몇 닢의 돈은 이 줄다리기가 남긴 가장 이른 실물 증거다. 사람은 한 손으로 만물을 숫자로 환산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직접 한 자리를 그어놓고 말한다. 여기에는 그 셈을 들이대지 말라고.

4. 누구의 표식인가

돈의 재주가 상대가 누구인지 캐묻지 않아도 되게 하는 데 있다면, 가장 이른 돈은 거의 반대되는 일을 했다.

초기 주화의 한 계열에는 그리스어로, 자신이 파네스의 표식이라는 뜻의 글이 새겨져 있다. 같은 계열의 3분의 1스타테르 주화에는 파네스의 것이라는 뜻의 말이 적혀 있다. 파네스가 누구인지는 지금도 의견이 모이지 않는다. 실제 인물인지, 어떤 발행자인지, 지역의 유력자인지, 아르테미스와 관련된 칭호인지 여러 해석이 있다. 사자 머리가 찍힌 또 다른 계열에는 리디아어 명문이 남아 있다. 흔히 알리아테스 왕과 관계된 글로 읽히며, 그 때문에 왕실의 주화 계열로 여겨진다.

돈 위에 이름을 새기는 행동은 그 돈이 하려는 일과 어딘가 어긋난다. 돈은 내력을 묻지 않고 누가 들고 있든 똑같이 쓸 수 있어서 편리하다. 그런데 가장 이른 주화들은 굳이 누가 남긴 표식인지, 누구의 것인지 적어두려 한다. 발행하는 사람은 금속만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던 셈이다. 누군가 앞으로 나서서 이 금속을 보증해야 했다. 이름은 장식이 아니었다. 보증이었다.

하지만 이 두 계열이 전부는 아니다. 초기 일렉트럼 주화는 약 400개 계열로 나뉜다. 많은 계열은 어느 곳에서 찍었는지조차 확정할 수 없다. 어떤 사정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점은 서로 다른 계열이 한 매장 유물군 안에, 한 무더기로 뒤섞여 나오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주화를 찍는 권한이 하나의 권력에 독점되어 있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왕실과 도시국가, 상인과 신전, 지역의 관행 사이로 흩어져 있었을지 모른다. 서로 포개지며 진행된 실험 같은 모습이다.

뒤섞인 채 묻힌 주화들은 아주 구체적인 사정을 알려준다. 그때 사람들의 주머니에는 출처가 다른 여러 돈이 함께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 나라에 한 화폐가 있는 모습에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서로 다른 표식을 단 주화들을 앞에 놓고, 어느 것을 인정하고 얼마나 쳐줄지는 각 발행자에 대한 소지자의 판단에 달렸다. 돈 자체가 골라야 하고 비교해야 하며, 어디서 왔는지를 살펴야 하는 물건이었다.

유난히 생생한 세부도 있다. 리디아 주화 상당수에는 나중에 그것을 가진 사람들이 추가로 찍은 작은 각인이 남아 있다. 발행자의 표식이 이미 찍혀 있어도 받아든 사람은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뜻이다. 확인을 마치면 자기 표시까지 남겼다. 다음 사람에게 나도 살펴보았고, 이 돈을 인정한다고 알리는 표시였다.

이 작은 각인들은 동전의 얼굴 위에 한 가지 사실을 써놓았다. 처음의 표식이 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발행자가 이만큼으로 치면 된다고 해도, 받는 사람은 전부 믿지 않을 수 있다. 직접 한 번 들여다본다. 그런 뒤 자기 각인을 더한다는 것은 자기 신용까지 보증으로 건다는 뜻이다. 다음 사람이 확인할 절차를 하나 덜어주는 것이다. 오래 돌아다닌 주화에는 그런 표시가 여러 겹 쌓인다. 길을 따라 사람들이 차례로 서명해놓은 것 같다. 금속의 순도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보증해주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진다.

여기에는 적잖은 뒤집힘이 있다. 보통 돈의 장점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고를 덜어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각인들은 반대 이야기를 한다. 돈이 서로 모르는 사람 사이를 돌아다녀야 하기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보증을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다. 찍어낸 사람, 검사한 사람, 받아준 사람, 그 뒤에 서 있는 도시까지 필요하다. 눈앞의 상대를 알아보는 수고를 덜어내는 대신, 사람들로 이루어진 체계 전체를 믿어야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동전 하나 위에 여러 층이 포개진다. 발행자의 표식은 내가 내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감정자의 각인은 내가 확인했다고 말한다. 도시국가의 문양은 우리 것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익명의 매개물은 태어난 첫날부터 사람의 이름과 얼굴로 덮여 있었다. 신뢰를 밖으로 몰아낸 것이 아니다. 신뢰가 놓일 자리를 다시 나누었다. 전에는 거래 상대를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발행자를, 검사하는 사람을, 도시 전체의 명성을 바라보게 했다.

그러니 주화가 생긴 뒤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은 아니다. 보아야 할 사람이 눈앞의 이 사람에서 멀리 있는 저 사람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몰라도 된다. 하지만 아테네라는 도시는 알아야 하고, 그 도시의 부엉이를 알아보아야 한다. 은의 순도로 속이지 않으리라고 믿어야 한다. 신뢰는 줄지 않았다. 한 번 한 번의 왕래에서 뽑혀 나와 하나의 추상적인 이름으로 옮겨갔다. 이런 이동은 뒤에 수없이 되풀이된다. 국가로, 은행으로, 오늘날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기관으로 옮겨간다.

두 힘은 처음부터 이렇게 꼬여 있다. 한쪽에는 누구나 똑같고 누구도 서로를 알 필요가 없게 하려는 익명의 자가 있다. 다른 쪽에는 이름과 표식, 검사 각인과 도시의 문장이 있다.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 기어이 알아보려는 것들이다. 먼저 한쪽이 등장하고 나중에 다른 쪽이 물려받은 두 단계가 아니다.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더 익명으로 쓰이려 할수록, 이름이 분명한 것들의 보증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 이 얽힘은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까지 이어질 것이다.

최근에는 더 과감한 해석도 나왔다. 어떤 연구자들은 일렉트럼을 주화 발행의 차익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본다. 당시 일렉트럼은 사치품에도 흔히 쓰였기 때문이다. 왕실이 선물을 주며 정치를 하는 맥락으로 돌려놓고, 봉신들의 관계망과 종속 관계에 이어서 이해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무 의심 없이 동전이라고 부를 물건조차 아니었을지 모른다. 표식이 찍힌 왕실의 귀금속 선물에 가까웠을 수 있다. 이 해석은 아직 합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날카롭게 찌르는 지점은 있다. 가장 이른 돈은 낯선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몰라도 거래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어느 왕이 귀금속에 자기 얼굴을 남기려고 만든 것일 수 있다.

5. 정확한 무게, 들여다볼 수 없는 순도

막 세상에 나온 이 몸에는 처음부터 금이 가 있었다.

초기 일렉트럼 주화는 무게를 놀랄 만큼 정확하게 맞췄다. 그런데 순도는 크게 흔들렸다. 여러 차례의 분석에서 일부 표본의 금 함량은 45~85퍼센트 사이로 나타났다. 더 넓게 보면 은 함량은 30~85퍼센트까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변동 폭은 자연산 일렉트럼에서 보통 나타나는 차이를 이미 크게 벗어난다. 사람이 은을 더 섞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장 이른 주화는 오늘날 사람들이 상상하는, 국가가 순도를 보증한 규격품이 아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발행자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일정한 액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증한 규격품이었다. 그 규칙이 무엇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발행자가 다시 교환해주겠다는 약속이었는가. 법으로 받으라고 강제했는가. 세금은 그 돈으로만 냈는가. 아니면 순전히 정치적 권위에 기대었는가. 바로 이 물음이 뒤에 가장 거센 논쟁을 부른다.

그 균열은 이 몸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것이다. 돈 한 닢이 멀리까지 가려면, 누구의 보증 없이도 그 자체가 그만큼의 값을 지니는 편이 좋다. 그러나 쓰기 편하려면, 표식이 값을 정해주어서 매번 속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편이 좋다. 앞의 요구는 금속을 찾고, 뒤의 요구는 권위를 찾는다. 일렉트럼은 이 두 요구의 충돌을 눈앞에 드러냈다. 무게는 한 치의 오차도 없게 맞출 수 있는데, 속의 순도는 누구도 눈으로 꿰뚫어볼 수 없다. 그러니 이 돈을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액수로 쳐주어야 하는가는 태어난 첫날부터 풀리지 않은 채 매달려 있었다.

일렉트럼 주화의 표식이 보증한 것은 금속 함량이 아니라 가치였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발행자가 정해진 값으로 그 돈을 다시 받아주겠다는 약속이 각인에 담겼고, 그래서 사람들도 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국가의 폐쇄적인 화폐 체계와 주화 발행 이익을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리디아가 금 함량 약 55퍼센트의 일렉트럼을 그보다 순도 높은 금속에 해당하는 값으로 유통시켜 차액을 챙겼다는 설명이다. 일렉트럼을 아예 실패한 실험으로 보고, 결국 순금 주화와 순은 주화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설명을 미덥지 않게 보는 사람들은 물음의 방향을 돌린다. 정말 어려운 문제는 공급자가 왜 실제보다 비싸게 쳐주는 돈을 내놓고 싶었는지가 아니다. 수요자가 왜 그런 돈을 기꺼이 받았는지라는 것이다.

크로이소스 시대에 이르면 이 균열을 다시 다루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사르디스에는 일렉트럼을 순금과 순은으로 분리하던 금 정련 작업장이 있었다. 사용된 시기는 기원전 6세기 전반이다. 세계에서 가장 이른 순금 주화와 순은 주화가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뒤의 순금·순은 주화를 그리스인들은 크로이소스 주화라고 불렀다. 첫 금화는 무게가 약 10.9그램이었고 은화는 약 8그램이었다. 얼마 뒤 금화는 은화와 무게를 같게 한 가벼운 규격으로 바뀌었다.

헤로도토스가 남긴 한 대목은 그 시대의 질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크로이소스가 델포이의 신탁 성소에 제물을 바치면서 많은 금을 녹여 반쪽 벽돌 모양의 금괴를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그중 네 덩이는 순금이었고, 나머지는 흰 금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흰 금은 보통 금과 은의 합금으로 이해한다. 크로이소스의 세계에서 금은 언제나 순금인 것은 아니었다. 귀금속의 빛깔 자체가 뒤섞임을 품고 있었다.

이 개혁을 화폐가 마침내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한 사건으로 써서는 안 된다. 좀 더 신중히 말하면 이렇다. 리디아가 일렉트럼으로 벌인 첫 대규모 실험은 정확한 무게와 알 수 없는 순도 사이의 긴장을 드러냈다. 크로이소스는 그 긴장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짰다. 기술의 돌파구였을 수도 있고, 재정상의 계산이었을 수도 있다. 지배 체제를 새로 짜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가 함께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저 진보라고 적으면 한 가지를 놓친다. 순금·순은 주화가 해결한 것은 순도를 알 수 없다는 문제다. 사람들이 왜 돈을 받아들이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풀지 못했다. 순도가 분명해져도 사람은 여전히 물어야 한다. 이 돈을 어디서 쓸 수 있는가. 누가 받아주는가. 받을 때 얼마로 치는가. 금속을 기술적으로 깨끗하게 정제한다고 이 물음의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후 2천 년이 넘도록 같은 문제는 얼굴을 바꾸어 거듭 돌아올 것이다.

크로이소스의 개혁에는 더 곱씹어볼 세부가 남아 있다. 금과 은을 나누고 나면 두 주화 사이의 교환 비율을 정해야 한다. 그 비율은 자연이 정해주지 않는다. 사람이 정한다. 분리는 각 금속을 더 순수하게 만들었지만, 사람의 판단이 더 필요한 일을 앞으로 끌어냈다. 금화 한 닢을 은화 몇 닢으로 쳐야 하는가. 기술은 금속 안에서 뒤섞임을 몰아낸 다음, 두 금속 사이로 다시 불러들인 셈이다.

리디아가 걸은 길이 유일하게 가능한 길도 아니었다. 지중해와 근동에는 훨씬 일찍부터 성숙한 교역망이 있었다. 페니키아와 바빌로니아, 이집트는 장거리 장사를 한 경험이 그리스 고졸기 사회나 리디아보다 더 오래되었다. 하지만 어느 곳도 먼저 표식을 찍은 일렉트럼을 만들지는 않았다. 따라서 리디아가 중요한 까닭은 시장이 자연스럽게 주화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입증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변방의 땅, 특정한 정권, 특정한 금속에서 비롯된 난제가 나중에는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게 될 물건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이 점은 기억할 만하다. 시장이 어느 정도 발달하면 저절로 주화가 나온다는, 입에 붙기 쉬운 이야기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사료는 그런 필연을 지지하지 않는다. 교역이 더 오래되고 더 크고 더 성숙했던 곳이 먼저 만들지 않았다. 만들어낸 곳은 마침 일렉트럼이 나고, 마침 그 위에 제 표식을 찍고 싶어 하는 왕권이 있던 변방이었다. 조건은 가능한 길을 빚어주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대신해 결정을 내려주지는 않았다.

6. 부엉이, 바다거북, 날개 달린 말

주화는 사르디스에만 오래 머물지 않았다. 가장 먼저 뒤를 따른 곳은 아이기나, 코린토스, 아테네였다. 대략 기원전 570~500년 사이에 은화를 찍기 시작했고, 뒤이어 이 방식은 지중해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그토록 빨리 퍼지는 데는 앞서 쌓인 역사가 큰 힘이 되었다. 고졸기 그리스인들은 은화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은을 무게로 달아 쓰는 데 익숙했다. 가치를 금속 안에 넣는 법을 처음부터 새로 배운 것이 아니다. 이미 은을 달 줄 알았고, 은으로 벌금을 정했으며, 제물로 쓰는 짐승의 값도 매겼다. 주화가 바꾼 것은 절차였다. 전에는 거래할 때마다 무게를 다시 달고 순도를 다시 살펴야 했다. 이제는 동전으로 더 빠르게, 더 자주 값을 치를 수 있었다. 관에서 거두고 나누어주기에도 편해졌다.

거두고 나누어주기 편하다는 말을 작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라가 세금을 걷고 수천 명의 군인에게 급료를 주며 장인들에게 품삯을 치르려 할 때, 일일이 금속의 무게를 다는 방식은 몹시 더디다. 동전을 개수로 세면 그 일을 훨씬 큰 규모로 할 수 있다. 주화는 공적인 수입과 지출을 수량에 따라 처리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관에서 그 돈으로 세금을 걷고 급료를 주기 시작하면, 시장에서도 그 돈을 더욱 반긴다. 누구나 언젠가는 세금으로 낼 일이 있기 때문이다.

주화가 퍼진 까닭을 설명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가장 오래된 설명은 장사하기 편해서라는 것이다. 주화가 금속을 달아 쓰는 것보다 수고가 덜 든다는 설명이다. 다른 설명은 새로 성장한 도시국가의 산물로 보면서 법제와 공적인 지급에 연결한다. 군사비와 국가 지출에 무게를 두고, 주화가 군인과 관리에게 규격화된 급료를 주기에 특히 알맞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최근에는 작은 액면의 은화들이 대량으로 출토되면서, 고졸기 그리스의 동전은 값이 낮은 지역 내 거래에는 쓰이지 않았다는 옛 견해의 힘이 약해졌다. 시장과 국가, 군인 급료와 법제가 모두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다만 각각이 차지한 무게가 달랐을 뿐이다.

작은 은화의 출토는 특히 중요하다. 전에는 고졸기 주화가 주로 큰 거래와 공적인 지급에 쓰였으며, 보통 사람의 일상은 여전히 외상과 현물로 돌아갔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작은 액면의 은화가 무더기로 나온다. 주화가 일찍부터 날마다 하는 거래 안으로 내려와 있었다는 뜻이다. 이 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깊이 뻗어 있었다. 국고와 군인들의 급료만 재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하루 동안 하는 일도 재고 있었다.

자가 일상으로 들어오면 결과는 두 갈래로 나타난다. 한편으로 평범한 사람은 같은 돈을 써서 먹을거리를 사고 세금을 내고 품삯을 치를 수 있게 된다. 외상을 얻으려고 자신을 거느린 집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분명한 풀려남이다. 다른 한편으로 전에는 값을 따질 필요가 없던 왕래에도 비교할 가격이 생긴다. 이웃이 잠깐 손을 보태는 일, 친척끼리 형편을 보아주는 일에도 그 가격을 들이대게 된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무엇이든 돈으로 헤아리기 시작한다. 자가 한 층 더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전에는 잴 필요가 없던 삶의 한 층이 더 측정된다.

흥미로운 것은 표준이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저마다 무게 체계와 액면을 달리했다. 서로 돈을 바꾸는 일은 여전히 번거로웠다. 공통의 자에 몸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 몸은 서로 다른 여러 몸이었다. 아이기나의 바다거북, 코린토스의 날개 달린 말 페가소스, 아테네의 부엉이가 있었다. 주화 하나하나가 두 가지 말을 했다. 이것은 정해진 액수로 통한다는 말과, 이것은 우리 도시의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두 말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앞의 말은 누구나 쓰기를 원한다. 널리 통할수록 좋다. 뒤의 말은 어느 도시의 것인지 알아보기를 원한다. 뚜렷이 구별될수록 좋다. 동전 한 닢이 이렇게 반대 방향의 일을 동시에 한다. 누구나 함께 쓰는 자가 되고 싶으면서도 특정한 도시를 대신해 말하고 싶어 한다. 이 긴장은 이후에도 줄곧 화폐를 따라다닌다. 한편으로는 세상 어디서나 통하기를 바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권력의 얼굴이 그 위에 찍히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주화가 가져온 것은 하나로 통일된 자가 아니었다. 서로 경쟁하는 수많은 자였다. 어느 도시의 돈을 더 널리 인정하는가. 어디의 순도가 더 일정한가. 어느 도시의 신용이 더 좋은가. 이것 자체가 도시 사이의 겨룸이 되었다. 모든 것을 같은 척도로 바꾸는 일은 각 도시의 성벽 안에서 이루어졌다. 성벽을 넘으면 다시 협상해야 했다. 그 뒤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통의 척도가 미치는 범위를 넓힐 때마다 더 큰 무대에서 같은 줄다리기를 다시 벌인다.

여기까지 오면 공통의 척도라는 것은 훗날 거듭 드러낼 자기 모습을 한 번 보여준다. 도시 안에서는 성립한다. 아테네 시장에서는 부엉이 한 닢을 누구나 알아준다. 그러나 도시를 벗어나면 다시 갈라진다. 다른 곳에 가면 무게를 달고 순도를 확인하고 값을 흥정해야 한다. 보편적인 자는 늘 하나가 아니었다. 저마다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한 무더기로 있었고, 경계에 이를 때마다 서로 부딪치고 닳았다.

7. 돈은 어디에서 왔는가

돈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오랫동안 경쟁해온 세 갈래의 길이 있다. 서로 겹치기도 하고 상대의 설명을 빌려 쓰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마음을 두는 물음은 같지 않다.

한 갈래는 화폐를 시장에서 저절로 자라난 것으로 본다. 경제학자 멩거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그의 논지는 화폐가 법률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며, 기원으로 보면 국가 제도가 아니라 사회 제도라는 데 있다. 핵심은 상품마다 팔기 쉬운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팔기 쉬운 물건일수록 교환할 때 더 많은 사람이 받으려 한다. 마침내 모든 것의 값을 나타내고 교환할 수 있는 일반적인 등가물이 된다. 국가는 나중에 화폐의 규칙을 다듬을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국가가 화폐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른 갈래는 거의 정면에서 반박한다. 법학자 크나프는 화폐가 법의 창조물이므로 화폐 이론은 법의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상품이 더 잘 팔리는가가 아니다. 어떤 기호와 증서, 금속과 종이가 의무를 갚는 수단으로 권력에 의해 지정되는가다. 특히 세금을 낼 수 있는 수단인가가 중요하다. 후대의 논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국가는 세금을 걷고 의무를 청산하는 규칙을 정함으로써 자기 화폐에 대한 기초적인 수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세 번째 길은 초점을 더 앞선 시대로 옮긴다. 그레이버와 허드슨은 본격적인 주화와 현금이 생기기 전부터 훨씬 오래된 장부와 외상, 제의상의 의무와 제도적인 분배가 있었다고 본다. 그레이버는 화폐보다 빚이 먼저였다고 요약한다. 허드슨은 수메르 신전과 궁정의 회계 실무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최초의 은과 곡물은 우선 생산과 공납, 채무와 이자를 조직하는 제도상의 척도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물건과 물건을 맞바꾸다가 자연스럽게 화폐가 생겼다는 설명과는 다르다.

세 갈래가 다투는 것은 사실 같은 문제가 아니다. 첫 번째는 사람에게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왜 받아들이는지 묻는다. 두 번째는 권력이 무엇을 근거로 어떤 물건을 꼭 써야만 하게 만드는지 묻는다. 세 번째는 그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어떻게 장부를 쓰고, 어떻게 서로에게 빚진 채 살았는지 묻는다. 셋 다 실제로 있는 물음이다. 그러니 각자의 답을 뒷받침할 자료도 찾아낼 수 있다.

다시 리디아로 돌아오면, 이 세 설명은 모두 자기 증거를 찾아낸다. 그리고 곧바로 난관에도 부딪친다.

시장 쪽에 서면 헤로도토스의 말이 가장 쓰기 좋다. 우리가 아는 한 리디아인들이 금과 은으로 화폐를 찍어 쓴 최초의 사람들이며, 소매 장사도 처음 시작했다는 대목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무게를 다는 수고를 덜고 교환을 편리하게 하려고 주화가 생겼다고 설명한 것도 잘 들어맞는다. 문제는 페니키아와 근동의 장거리 교역이 더 발달했는데도 먼저 그 걸음을 내딛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가장 이른 주화가 하필 순도를 알아보기 힘든 일렉트럼이었다. 시장이 가장 자연스럽게 고를 만한 재료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국가와 재정 쪽에 서면 내세울 근거가 달라진다. 주화의 표식, 왕실 계열, 리디아의 순도 통제, 발행에서 생길 수 있는 차익이 앞에 놓인다. 그러나 뒤섞인 매장 주화, 함께 쓰인 서로 다른 무게 표준, 파네스 계열, 여러 발행자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고 나면 국가 독점이라는 그림은 지나치게 반듯하다.

빚과 신전, 군사비 쪽에 서면 공통의 자가 왜 언제나 권력과 징수, 부양과 품삯에 엮여 있는지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도 뚜렷하다. 초기 용병들에게 급료를 반드시 주화로 주어야 했던 것은 아닐 수 있다. 주화가 없으면 진정한 용병도 없다는 옛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 연구자도 있다. 신전에서 동전이 나왔다는 사실이 곧 신전이 화폐를 발명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 논쟁은 아마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묻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돈은 시장의 산물인가. 권력의 산물인가. 서로에게 빚진 것의 산물인가. 이 세 가지 답 뒤에는 서로 다른 세 사람이 서 있다. 셈에 능한 거래자, 관의 명부에 등록된 신민, 늘 남에게 신세를 지고 남도 자신에게 신세를 지는 이웃이다. 어느 답을 고르느냐는 단지 역사의 한 장면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세 사람이 실제로 서로를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사람이 시장에서는 거래자이고, 관청 앞에서는 신민이며, 이웃 사이에서는 인정의 빚을 진 사람이다. 돈의 출신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까닭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사람이 지닌 이 세 가지 신분에 동시에 쓰였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고판 값을 치러주고, 국고의 수입과 지출을 처리하며, 서로 빚진 것에 자국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디아 주화의 기원에 관해 가장 조심스럽고 사료에도 가장 가까운 말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시장과 왕권, 신전과 군사비, 선물과 세금이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각기 다른 증거는 각기 다른 면에 빛을 비춘다. 어느 한 줄기 빛도 물건 전체를 꿰뚫어 보여주지는 못한다. 가장 이른 주화들은 신전의 지층에서 나왔고, 사람 이름과 왕실의 상징을 달고 있었다. 무게는 정확했지만 순도는 속을 알 수 없었다. 지불 수단 같기도 하고 봉헌물 같기도 하며 정치적인 표식 같기도 했다. 그것들이 중요한 까닭은 처음부터 한 가지 일만 하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8. 자가 비추어낸 것

여기까지 돌아보고 나면 주화가 무엇을 바꾸었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주화가 가치를 생겨나게 한 것은 아니다. 가치는 이미 있었다. 계산을 생겨나게 한 것도 아니다. 계산은 더 오래되었다. 주화가 한 일은 그 공통의 단위를 복제할 수 있고, 지니고 다닐 수 있고, 개수로 셀 수 있는 물건 안에 눌러 넣은 것이다. 모든 것을 같은 척도로 바꾸는 일이 처음으로 일정한 형체의 몸을 얻었다. 이 몸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전의 저울과 장부로는 할 수 없던 일을 했다. 재는 능력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건넸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이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내력과 명성을 묻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한 건의 셈을 끝내 서로 빚진 것 없이 돌아설 수 있게 했다.

이것이 돈의 가장 대단한 재주이자 가장 차가운 재주다. 같은 능력이 한편으로는 사람을 인신적인 예속에서 풀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얽혀 있던 관계에서 그를 떼어낸다.

이 두 면은 한 번도 따로 떨어진 적이 없다. 손에 돈이 있는 사람은 더는 어느 집에 매달려 먹고살지 않아도 된다. 씨족의 우두머리나 지주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떠날 수 있고 자기 뜻으로 살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몸의 결박이 풀리는 일이다. 이후 무수한 사람이 돈에 힘입어 원래 놓였던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같은 돈 한 닢은 다른 일도 가능하게 한다. 거래 한 번을 끝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아무 미련도 의무도 없이 돌아서는 일이다. 누구도 누구에게 빚지지 않았으니 누구도 누구를 더 돌볼 필요가 없다. 자유를 얻는 것과 관계를 잃는 것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러니 주화를 판단할 때는 한쪽 면만 골라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분명 많은 사람을 묶고 있던 줄을 풀었다. 어느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평생 그 집의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를 덜었다. 그리고 분명 많은 연결을 걷어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한 번 값을 치르고 제 갈 길로 가는 일만 남기기도 했다. 어느 면이 더 무거운지는 구체적인 시대와 구체적인 사람에 따라 다르다. 다만 두 면은 언제나 함께 온다. 어느 누구도 한쪽만 남길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몸은 모든 것을 자기가 계산할 수 있는 평면 안으로 빨아들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가장 이른 자료에서, 끝내 납작해지지 않은 것들이 또렷하게 보인다. 에페소스의 초기 주화 상당수는 기초 구덩이와 제사의 잔해 사이에서 나왔다. 돈은 사고파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일도 하고 있었다. 그리스 세계에서는 주화가 나온 지 한참 뒤에도 무게를 달아 쓰는 은괴가 은화와 함께 있었다. 옛 은괴와 새 은화가 한 무더기로 묻히기도 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비슷했다. 기원전 6세기에 이르러 은은 품삯과 세금, 작은 거래의 지불 수단으로 점점 중요해졌지만, 외상과 수확 뒤의 결산, 기관의 분배와 곡물 배급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밖으로 넘친 것은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았다. 동전 옆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주화는 옛 세계를 싹 쓸어버리고 그 폐허에 전혀 새로운 질서를 세운 것이 아니다. 옛 세계에 이미 있던 여러 결산 관습과 인정의 빚, 신성한 봉헌과 제도적인 징수를 한 평면으로 힘껏 끌어왔다. 더 잘 헤아릴 수 있고, 더 쉽게 옮길 수 있으며, 같은 절차를 더 쉽게 되풀이할 수 있는 평면이다. 끌어올 수 있는 것은 장부에 들어갔다. 끌어오지 못한 것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장부 곁에 머물며 예전의 방식대로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자가 날카로워질수록 그 자에 잘리는 것은 추상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신바빌로니아의 문서는 국가에 진 여러 부담을 은으로 치러야 했음을 보여준다. 부역 의무가 있는 토지 보유자는 은을 마련해 자기 대신 일할 사람을 고용해야 했다. 그레이버는 주화와 군대, 노예 매매의 얽힘을 하나의 복합체로 불렀다. 허드슨은 곡물과 은을 처음 장부와 채무로 조직한 것이 신전과 궁정이었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런 큰 설명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래도 최소한 한 가지는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공통의 자가 갈수록 예리해질 때, 거기에 베이는 것은 수확물이며 부역이며 세금이고, 아이들이며 사람의 몸이라는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땅을 일구는 사람이 원래 나라에 진 것은 며칠치의 노동이었다. 이제 그 의무가 은의 액수로 환산된다. 그는 직접 은을 벌든가, 무엇을 팔아 은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은으로 자신을 대신해 부역할 사람을 고용한다. 환산이라는 한 걸음은 장부 쓰는 방식만 바꾼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시간과 힘을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은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살 수 있다. 살 수 있는 것은 모아 쌓을 수도 있다. 공통의 자가 한 걸음 앞으로 갈 때마다 사고팔 수 있는 것도 하나씩 늘어난다.

자주 인용되는 헤로도토스의 말에는 사람들이 대개 건너뛰는 다른 절반이 숨어 있다. 리디아인들이 처음 주화를 만들고 처음 소매 장사를 했다는 말을 한 다음, 같은 문장 안에서 그들이 자기 딸들에게 몸을 팔게 했다고 쓴다. 그리스인이 이방의 풍속을 적은 글이다. 그 자신의 시선과 편견이 들어 있으며, 믿을 만한 기록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고대에 남겨진 그 기억 자체는 최초의 시장 민족과 딸들의 몸에 대한 지배를 한 문장에 함께 써놓았다. 돈과 소매 장사, 집안 살림과 육신은 가장 이른 기록에서부터 서로 무관한 별개의 일이 아니었다.

그 말이 믿을 만한지와는 별개로, 그것은 이 자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리킨다. 무엇이든 잴 수 있다고 하는 자는 언젠가 사람과 맞닥뜨린다. 사람에 닿으면 길은 두 갈래다. 여기서는 잴 수 없다고 인정하고 사람을 장부 밖에 남겨두거나, 억지로 재어 사람을 숫자 하나로 바꾸거나. 이후 경제사 전체는 이 두 길을 거듭 걷게 된다. 억지로 재려는 시도는 매번 무언가와 충돌한다. 그 충돌에서 이 시리즈의 뒤쪽 글들이 다룰 일들이 생겨난다.

이제 일의 모양이 분명해진다. 리디아인들은 이 세계에 손에 쥘 수 있는 자를 주었다. 그러나 그 자가 맨 먼저 이룬 일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재는 일이 아니었다. 다 잴 수 없는 것들이 처음으로 자기 모양을 드러내게 한 일이었다. 그전까지 팔지 않는 것은 별다른 이름 없이 일상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 뒤로는 분명한 예외가 되었다. 사람이 일부러 기초 밑에 묻고, 따로 골라 이것은 바꾸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되었다. 잔여항은 줄곧 있었다. 이 자가 그것을 비추어 윤곽을 주었을 뿐이다.

빛에 드러난 것은 오히려 더 다루기 어려워진다. 보이지 않을 때는 그저 장부 바깥의 흐릿한 부분이었다. 눈에 보이고 나면 누구도 장부 안에 넣지 못하는 무엇으로 또렷이 앞에 버틴다. 셈을 한 번 마칠 때마다, 이 장부에는 여전히 마지막 한 항목이 부족하다고 일깨운다.

주화라는 이 대목이 지닌 무게도 여기서 드러난다. 주화는 장부를 완전한 청산에 더 가까이 데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끝내 셈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아프도록 또렷하게 드러냈다. 전에는 무엇인가 빠져 있다고 막연히 느꼈다. 이제는 어떤 것들이 일부러 따로 골라져 장부 바깥에 놓여 있음을 똑똑히 본다. 구축이 정밀해질수록 잔여항은 제 모습을 더 드러낸다. 잔여항이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은 더욱 그것을 안으로 거두고 싶어진다. 거두지 못하면 더 촘촘한 자로 바꾸어 다시 재본다. 그런데 끝내 장부에 가장 들어오려 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은화의 개수로 환산할 수는 있어도, 아무리 환산해도 남김없이 다 담을 수는 없는 바로 그 사람이다.

셈은 아직 맞지 않는다. 장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