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N | 中文 | 日本語 | Français | Deutsch | Español | 한국어
← 경제 시리즈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경제
제02편 · 총 23편

신전의 장부와 최초의 채무 면제: 문자는 빚을 위해 태어났다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은 곡물과 은, 세금과 노동을 지속되는 채무로 만들었다. 왕의 채무 면제는 정확한 장부가 사회의 토대를 무너뜨릴 때 더 높은 문서가 개입한 오래된 교정 장치였다.

Han Qin (秦汉)
이 글의 목차

1. 최초의 문자는 한 줄의 장부였다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글은 시가 아니었다. 기도문도,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장부에 적힌 한 건의 셈이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오늘날에는 대부분 이라크에 속하는 땅을 메소포타미아라고 부른다. 그곳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점토판은 기원전 3300년 무렵 우루크 일대의 것이다. 그 위에 새겨진 것은 신화가 아니라 물건과 숫자였다. 신전에서 나누어준 곡식, 창고에 남아 있는 재고, 물품을 주고받은 내역, 아직 갚지 않은 액수였다. 후대 사람들이 이 땅에서 파낸 쐐기문자 점토판, 곧 갈대 줄기로 젖은 진흙을 눌러 쐐기 모양의 획을 남긴 기록 가운데 70~80퍼센트는 장부와 행정·법률 문서였다. 대출, 이자, 채무의 취소, 소작, 벌금에 관한 기록이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문자를 만든 다음, 나중에 장부에도 써보자고 한 것이 아니다. 문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 가지 문제에 깊숙이 끼어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빚졌으며, 언제 갚고, 어떤 기준으로 환산할 것인가.

인간은 먼저 장부 쓰는 법을 배웠다. 같은 기호로 시를 쓰는 법은 한참 뒤에 배웠다. 문학보다 회계가 먼저였다는 말이다. 하필 장부가 문자를 불러낸 까닭은 무엇일까. 기억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누가 자기에게 잘해주었는지, 누가 자기에게 한 번 신세를 졌는지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신전 하나가 수백 명의 식량을 관리하고, 갚을 날이 제각각인 곡물 빚 수십 건을 챙기고, 철마다 바뀌는 소작 관계까지 다루려면 머리와 입만으로는 언젠가 뒤엉키고 만다. 빚진 것이 어느 한도를 넘어서면, 그것은 사람의 머릿속을 떠나야 한다. 바깥에 있는 어떤 표면, 잊어버리지도 마음이 약해지지도 않는 표면 위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문자가 처음 맡은 일은 바로 그 표면에 장부를 쓰는 일이었다. 머릿속에서 더는 감당하지 못하는 빚을 밖으로 옮겨, 잊히지 않는 자리에 붙잡아두는 일이었다.

가장 오래된 점토판에는 흔히 물품을 그린 그림이 나란히 있고 그 뒤에 수량 하나가 붙어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창고 재고표나 차용증과 놀랍도록 닮았다. 문장도 문법도 없다. 아직 언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운 자국으로,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빚졌는지를 진흙 위에 남겼다. 사람이 처음 갈대 줄기를 집어 든 까닭은 속마음을 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한 건의 셈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이 소박한 출발이 그 뒤의 거의 모든 일을 예고한다. 쓰기라는 기술은 세상에 발을 디딘 처음부터 빚진 것을 위해 일했다.

그 이전의 세계를 움직인 것은 적어두지 않은 기억이었다. 증인의 말, 사람의 평판, 물건이 누구의 손을 거쳐왔는지에 관한 내력이었다. 이제 빚진 것이 처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표면 위에 눌려 새겨졌다. 잴 수 있고, 비교할 수 있고, 근거를 내세워 받아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줄곧 오는 중이던 총장부가 마침내 몸을 얻은 것이다. 그 몸은 점토판이었다. 기억과 증언을 타고 떠돌던 셈이, 이제 눈앞에 놓을 수 있는 물질이 되었다.

몸을 얻자 성미도 생겼다. 마음속에 적어둔 빚은 인정에 따라 느슨해진다. 집안에 초상이 나서, 급한 형편을 보아주다가, 좋은 말 한마디에 슬며시 없던 셈이 되기도 한다. 점토판에 새긴 빚은 훨씬 단단하고 차갑다. 올해 네 밭에 재앙이 닥쳤다는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네가 채권자의 아버지와 오래된 친구라는 사실에도 관심이 없다. 새겨진 숫자와 갚기로 한 날짜만 알아본다. 앞선 세계에서 빚은 관계의 일부였으며, 얼마나 조이고 풀지는 관계 안에서 정했다. 점토판이 생기면서 빚은 처음으로 관계 바깥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거꾸로 관계를 짓누를 수도 있게 되었다.

몸 하나가 세상에 놓이자 새로운 무엇이 함께 나타났다. 그것은 제 그림자까지 끌고 왔다.

새로 나타난 것은 세상 모든 것을 남김없이 셈하려는 총장부였다. 그림자는 아무리 계산해도 끝내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 잔여항이었다. 이 둘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장부는 빚을 한 건씩 점토판 안으로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가장 단단히 움켜쥔 자리에서, 오히려 자기 안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을 밀어 올렸다. 장부가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이 장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왕은 몇 번이고 되돌아와 장부 전체를 뒤엎고 다시 써야 했다.

2. 모든 것을 하나의 자 위에 올려놓다

신전과 궁정이 중요했던 까닭은 저마다 다른 것들을 하나의 자 위에 억지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은과 보리, 그리고 그보다 적은 양의 구리와 주석과 금은 교환을 매개하고, 장부의 단위가 되고, 재산을 저장하는 구실을 동시에 했다. 은을 빌리든 보리를 빌리든 법으로 정한 이자율이 있었다. 가격 체계에는 오랫동안 쓰인 환산의 기준도 있었다. 흔한 기준으로 보리 1구르는 은 1셰켈에 해당했다. 1구르는 약 300리터, 은 1셰켈은 약 8.5그램이었다. 곡식, 은, 지대, 품삯, 벌금을 가능한 한 같은 장부의 평면으로 끌어와 서로 바꿔 셀 수 있게 한다. 빚진 것들을 공통의 척도로 비교할 수 있게 만든 결정적인 걸음이었다. 총장부가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자리도 바로 여기다. 어느 물건을 빚졌든 같은 단위로 바꾸어 적을 수 있어야 하나의 장부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공통의 자는 총장부의 기초다. 그것이 없으면 곡식은 곡식이고 은은 은이다. 지대는 지대이고 부역은 부역이다. 어느 것도 다른 것으로 바꾸어 셀 수 없으니 장부를 한데 모을 길도 없다. 보리를 은으로, 은을 품삯으로, 품삯을 벌금으로 환산하는 규칙이 생기고 나서야, 서로 무관해 보이던 빚들이 같은 책 안에 나란히 놓였다. 더하고 빼고 상계해, 마지막 항목까지 셈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자를 쥔 신전과 궁정은 사회 전체의 주고받음을 숫자로 바꾸는 권력도 쥐었다.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척도로 재는 능력은 저절로 자라난 것이 아니다. 충분히 큰 중심이 환산 규칙을 하나씩 세우며 강제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 자는 추상적인 법전 속에만 있지 않았다. 지극히 자잘한 일상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이른 배급 점토판 하나에는 신전이 약 200명의 노동자와 그 자녀들에게 보리를 나누어준 내역이 적혀 있다. 어른에게는 한 달에 30~40실라, 아이에게는 20실라를 지급했다. 실라는 당시 쓰던 부피 단위다. 신전은 그 시대의 가장 큰 고용주였다. 농사를 짓고 베를 짜는 노동자 수백 명을 일 년 내내 거느렸다. 가장 이른 품삯, 가장 이른 대규모 배급, 가장 이른 행정 장부는 아직 재정과 기업과 복지라는 세 갈래로 나뉘어 따로 관리되지 않았다. 신전이 지급하는 품삯도, 사람들이 받아 가는 배급도, 그것을 관리하는 행정 기록도 같은 종류의 점토판 위에 한 건씩 나란히 적혔다.

품삯과 배급, 부역과 세금을 같은 점토판에 적는 일은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결과를 낳았다. 한 사람이 신전을 위해 들인 힘, 받아 간 곡식, 밀린 지대, 이행해야 할 부역이 하나의 계정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서로 맞바꾸어 제할 수 있고, 정산할 수 있고, 미지급분을 받아낼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 하나가 그의 노동과 빚을 통째로 안고 장부의 한 칸에 들어갔다. 먼 훗날에는 너무도 익숙해질 원리가 그 안에서 자라났다. 장부에 적을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장부의 항목처럼 관리된다. 사람이 장부 안에 들어가면, 그 사람에게서 장부에 적을 수 없는 부분은 점차 자리를 잃는다. 수치로 남지 않는다는 까닭만으로 마치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바로 그 점토판 위에서, 장부는 모든 것을 추상적인 수치로 밀어붙이는 동시에 그 추상화의 한계도 끊임없이 드러냈다. 수치로 바꾸어놓았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 수치에 맞게 움직인다는 사실 사이에는 틈이 있었다. 공통의 자로 사람과 땅과 물건을 하나의 액수로 환산할 수는 있다. 하지만 흉작, 홍수, 질병과 죽음, 도망, 장례, 노인 부양은 장부에 올라갔다고 순순히 장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자의 눈금 안으로 눌려 들어간 것은 애초부터 은과 보리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 가구, 부역, 땅도 들어갔다. 그리고 몸과 가구와 부역과 땅이야말로 장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장부가 어떻게든 셈을 맞추려 할수록 맞출 수 없는 곳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장부에 적힌 한 뙈기의 땅은 숫자 하나다. 그러나 올해는 물에 잠기고 내년에는 가뭄이 든다. 숫자는 그대로인데 수확이 들어맞지 않는다. 노동자 한 사람은 매달 식량 몇십 실라를 받는 항목으로 적힌다. 그런데 그가 앓아눕고, 늙고, 죽고, 달아나면 그 식량 계정의 흐름도 끊어진다. 사람과 땅은 은과 다르다. 은은 놓아둔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사람과 땅은 날씨와 병과 생사의 한가운데를 산다. 쉼 없이 장부의 수치에서 어긋난다. 장부가 그들을 안으로 불러들인 까닭은 분명하게 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불러들이는 바로 그 순간, 그들에게 붙어 있는 셀 수 없는 것들까지 함께 들어왔다.

3. 장부가 계약서가 될 때

빚이 창고의 배급표에 적힌 항목을 넘어, 법정에 들고 갈 수 있는 사적인 채권이 되면서 점토판의 모습도 달라졌다. 단단한 증거물에 한층 가까워졌다.

계약을 적은 점토판 가운데 상당수는 진흙으로 만든 봉투에 넣어 보관했다. 그 겉면에는 당사자와 증인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고아시리아 시대의 은 대출 점토판 하나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문서에 증인의 이름을 적고, 봉투에는 그들의 인장을 눌러놓았다. 은 빚을 다 갚았다는 또 다른 영수증에는 채무가 전액 상환되었으므로 앞으로 어떤 청구도 효력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런 문서들은 뚜렷한 성미를 공유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다툼에 미리 서식을 부여한다. 누가 빌렸는지, 얼마나 빌렸는지, 언제 갚을지, 늦어지면 어떻게 계산할지, 다 갚고 나면 옛 빚은 무효가 되는지까지 처음부터 글로 못 박아둔다.

여기에는 작아 보이지만 결정적인 대목이 있다. 다 갚은 뒤에도 옛 빚이 유효한가 하는 문제다. 어떤 영수증은 이 채무를 모두 갚았으며 앞으로의 청구는 일절 효력이 없다고 굳이 덧붙인다. 왜 그런 한 줄이 더 필요했을까. 적어놓은 장부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정의 빚은 갚으면 그만이다. 따로 널리 알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장이 찍힌 채무 문서가 세상에 남아 있는 한, 누군가는 언제든 그것을 다시 꺼내 같은 빚을 한 번 더 요구할 수 있다. 그러니 빚 한 건을 정말 끝내려면 돈만 갚아서는 부족하다. 앞선 문서가 무효라고 정식으로 선언하는 새 문서를 써야 한다. 써놓은 것은 지울 때조차 한 번 더 써야 했다. 이 작은 번거로움을 수천수만 배로 키우면, 뒤에 왕명이 맞닥뜨릴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빚은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관계에서 하나의 문서상 대상으로 바뀌었다. 상환을 미루고, 나누어 갚고, 연체 이자를 붙이고, 법관에게 설명해 판정을 맡길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이 걸음의 무게는 크다. 빚이 손에 쥐고 다른 곳으로 가져갈 수 있으며 제삼자에게 판단을 맡길 수도 있는 기록물이 되면, 더 이상 두 사람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사정으로 남지 않는다. 그 두 사람을 떠나서도 홀로 존재하는 무엇이 된다. 누군가에게 진 인정의 빚은 본래 나와 그 사람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글로 쓰고 인장을 찍었으니, 두 사람이 등을 돌려도 그 빚은 성립한다. 법관이 사이에 들어와도 여전히 받아낼 수 있다. 빚을 관계에서 떼어내 혼자 돌아다닐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든 것이다. 혼자 유통될 수 있는 물건이 매매되고 양도되며 다른 빚을 갚는 데 쓰이기까지는 이제 한 걸음밖에 남지 않는다.

작은 조항들 속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가득하다. 어떤 기록에서는 두 사람이 한 상인에게 은 6미나, 약 3킬로그램을 빚지고 있다. 3분의 1은 다음 수확 때 갚고, 나머지는 더 뒤로 미루었다. 그때도 갚지 못하면 매달 이자를 계산하기로 했다. 기원전 1800년 무렵의 또 다른 은 대출 계약에서는 아무리툼이라는 여성이 돈을 빌린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드문 일이다. 대출 기간은 연말의 열두 번째 달부터 이듬해 세 번째 달까지 석 달이었다. 수확철을 걸치는 기간이었다. 이 문서의 주석은 그해 윤달에 보리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추정하기도 한다. 이른바 공통의 자는 매끈한 수학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농사철과 달력, 수확을 기다리는 시간, 어느 가구에 속해 있는가라는 구체적인 신분 속에 박혀 있었다. 장부는 익명의 계산법이지만,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이름과 성별, 소속된 집안의 배경이 있다. 굶주림이 닥치는 특정한 때가 있다.

아무리툼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바로 그 한 사람이 있다. 계약서는 그녀를 채무자 한 명, 만기일 하나, 20퍼센트의 이자로 적는다. 그러나 그녀는 여성이었다. 은을 빌리고 문서까지 남기는 여성이 드물던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빌린 석 달은 다음 수확을 앞두고 묵은 곡식마저 떨어지는, 가장 버티기 어려운 고비에 걸쳐 있었다. 하필 그해에는 윤달에 곡물 가격이 오르는 일까지 겹쳤다. 장부 위에서 이런 사정은 말끔한 숫자 몇 개로 눌려 들어간다. 그 숫자 뒤에는 구체적인 궁지에 몰린 구체적인 사람이 서 있다. 끝내 갚지 못할 수도 있는 문서에 자기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다. 장부가 그녀를 표준적인 채무자로 빈틈없이 계산할수록, 그녀를 바로 그 사람으로 만드는 사정들은 더욱 철저하게 장부 밖으로 밀려난다.

오늘날 우리는 화폐화가 진행되면 인정과 사람됨에 기댄 신용이 물러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점토판들은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졌음을 말한다. 한편에서는 은과 보리, 표준 이자율, 약속한 만기일이 빚을 규격에 맞춰 처리할 수 있게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증인과 인장, 가구의 기록, 어느 상인의 명망이 그 표준화가 끝까지 구체적인 사람의 신용을 떠날 수 없게 했다. 계산의 규칙이 같아졌다고 해서, 누가 보증하며 누구를 믿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연구는 이 관계를 짧게 ‘은과 신뢰’라고 묶어 부른다. 은은 누구에게나 같은 익명의 자를 건넸다. 하지만 그 자가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여전히 평판과 봉인, 친족 관계와 법정이었다. 익명의 계산법과 사람을 보고 서는 보증은 최초의 빚이 글로 적힌 때부터 한데 꼬여 있었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삼키지 못했다.

둘이 서로를 떨쳐내지 못하는 까닭은 어렵지 않다. 액수와 날짜가 적힌 점토판이 스스로 걸어가 빚을 받아내지는 못한다. 갚을 날을 넘기면 증인이 나와 증언해야 한다. 인장이 있어야 당사자가 실제로 작성한 문서임을 입증한다. 법정이 그 고장의 규칙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 상인이 오랜 세월 쌓아온 명망이 있어야 사람들이 함부로 빚을 떼먹지 못한다. 익명의 자가 현실에 닿으려면 사람됨과 신용, 가깝고 먼 사이를 따지는 체계 전체가 밑에서 받쳐주어야 한다. 은이 누구와 누구의 거래든 똑같게 만들려 할수록, 바로 그 사람들을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들이 마지막 보증을 서주어야 했다.

4. 이자가 점토판을 자라게 한다

적어놓은 장부가 어떻게 혼자 몸집을 불리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이자다.

고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는 유명한 법전을 남겼다. 그 가운데 한 조항은 곡물 대출의 연이자를 약 3분의 1, 은 대출의 연이자를 약 5분의 1로 정한다. 더 넓게 법률 자료를 살펴보면 은 대출에서는 20퍼센트, 보리 대출에서는 약 30퍼센트가 법정 이자율로 흔히 나타난다. 동시에 점토판들은 실제 거래의 이자율이 공식 수치보다 훨씬 높기도, 낮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복잡한 산술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다. 흉년과 연체한 해, 빚을 다음 해로 넘긴 해를 차곡차곡 포개보면 된다. 언뜻 높지 않아 보이는 법정 이율이 어떻게 작은 점토판 하나를 순식간에 한 집안의 재앙으로 바꾸는지 알 수 있다.

대강 셈해보자. 연 20퍼센트라는 말만 들으면 아주 사납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자는 위로 쌓인다. 올해 빚이 1이라면 내년에는 원금과 이자를 합해 1.2, 그다음 해에는 1.44가 된다. 몇 해 지나지 않아 두 배로 불어난다. 농작물은 그렇게 자라지 않는다. 한 해의 수확은 그해 거둘 수 있는 양만큼이다. 가뭄이나 홍수를 만나면 그마저 줄어든다. 이자가 두 배가 된다고 수확도 함께 두 배가 되지는 않는다. 한쪽에서는 빚이 계산에 따라 위로 굴러 올라간다. 다른 쪽에서는 하늘을 보며 짓는 농사가 잘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두 선은 갈수록 멀어진다. 그 사이에 흉년이 한두 번 끼고, 채권자가 갚지 못한 이자까지 원금에 넣어 다시 이자를 붙이도록 한다면, 한 가구는 다시는 제 빚을 따라잡지 못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초기 메소포타미아의 빚은 오늘날의 은행 대출 같은 것만을 뜻하지 않았다. 고대 경제를 연구한 학자 허드슨은 빚으로 기록된 많은 거래가 돈을 먼저 빌려주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다고 거듭 지적한다. 지금 건네고 나중에 갚는 온갖 약속이 빚이 될 수 있었다. 장인이 원료를 받는 일, 소작인의 지대가 밀리는 일, 납세자가 부담금을 내지 못하는 일, 술집에 외상값을 달아놓는 일, 궁정의 속민이 공납을 체납하는 일이 모두 채무로 적혔다. 이자는 대출금에만 붙지 않았다. 밀린 지대와 다른 미납분에도 붙었다. 따라서 빚이 불어나는 까닭은 반드시 누군가 제 발로 돈을 빌리러 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삶 자체가 나중으로 미뤄둔 의무들의 긴 사슬로 짜여 있고, 그 고리마다 이자를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빚의 성격이 달라진다. 돈이 모자라 빌린 것만 빚이라면, 갚으라는 말은 적어도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얼마를 빌렸으니 그만큼 갚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금, 지대, 각종 부담금, 외상값, 밀린 공납이 모두 이자를 낳는 채무로 적히면 사정이 달라진다. 제 뜻으로 돈 한 푼 빌린 적 없는 사람도, 그저 살아간다는 이유로 빚을 짊어질 수 있다. 남의 땅에 농사를 지었다는 이유로, 올해 세금을 다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갈수록 불어나는 채무가 등에 올라탄다. 빚은 어쩌다 한 번 하는 선택을 넘어 일상 자체의 바탕색이 된다. 사회 전체가 서로의 미납분으로 이어진 그물로 펼쳐지고, 그 그물의 매듭 하나하나가 정해진 이율에 따라 조용히 조여든다.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미뤄둔 의무들이, 생활을 더 옥죄는 빚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특히 눈여겨볼 조항이 있다. 장부는 자꾸 커지는데 자연은 그 속도를 따라주지 않는다는 모순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조항이다. 뜻을 풀면 이렇다. 빚진 사람의 밭이 폭풍으로 망가지거나, 홍수에 쓸리거나, 물이 부족해 그해 아무것도 거두지 못했다면, 그해에는 채권자에게 곡식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는 자신의 점토판을 적셔야 하며, 그해의 이자도 내지 않는다. 점토판을 적신다는 것은 문학적인 비유가 아니다. 기록의 재료에 직접 가하는 제도적 행위다. 빚은 젖은 진흙에 적히고, 그 진흙을 열로 말려 굳히면 단단한 장부가 된다. 성장을 잠시라도 멈추려면 다시 그 점토판으로 돌아가 부드럽게 불려야 한다. 장부는 쓰인 바로 그 재료 위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점토판에 물을 적시는 장면에는 이 모든 사정이 축소되어 들어 있다. 빚을 진흙에 새겨 단단하게 구우면, 그것은 누구도 고칠 수 없는 죽은 물건이 된다. 그 위의 수치대로 하루하루 이자만 낳는다. 멈추게 하려면 진흙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 더는 돌이킬 수 없게 굳기 전에 다시 물에 불려 부드럽게 만들고, 새겨진 자국을 문질러 없애야 한다. 장부는 일단 형태를 얻으면 되돌아가려 하지 않는 자기 관성을 갖는다. 그것을 움직이려면 그 몸에 직접 손을 대야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정을 달리 헤아리는 것으로는 이미 굳은 기록을 바꿀 수 없다. 나중에 왕명으로 빚을 한꺼번에 지우는 일도 실은 같은 행동이다. 다만 물에 불릴 대상이 점토판 하나에서 수천수만 개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조항이 드러내는 것은 기계 전체의 구조다. 총장부의 꿈은 한 건도 남기지 않고 또렷하게 셈해 마지막에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이자는 빚을 농작물보다 빠르게 키운다. 어느 한 해의 수확으로 갚아낼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불린다. 장부를 닫으려면 모든 것이 차변과 대변 두 칸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자가 계속 달리는 한 빚은 수확보다 앞서 있다. 마지막 한 항목은 언제나 모자라고, 장부는 끝내 닫히지 않는다. 닫히지 않는 장부에는 언젠가 바깥에서 손을 대는 사람이 필요하다. 셈을 더 오래 계속하는 것만으로는 맞아떨어질 수 없으니, 셈 자체를 멈추고 바꾸는 힘이 들어와야 한다.

바깥에서 손을 댄다는 말이 이 이야기의 회전축이다. 장부에는 스스로를 멈출 브레이크가 없다. 이자는 계속 위로 붙고 채무자는 계속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 장치 내부의 힘만으로는 빚이 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멈추는 힘은 장부 바깥에서 와야 한다. 그 빚에 매이지 않으면서 모든 채권자보다 강한 무엇이어야 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그것은 왕이었다. 왕의 시대 뒤로 이어지는 긴 역사 속에서 그 힘은 여러 얼굴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맡는 역할만큼은 같다. 장부 밖에서 손을 뻗어, 이미 글로 굳어버린 셈을 다시 벌려놓는 힘이다.

5. 빚이 사람의 몸까지 자라올 때

흉년에 이자를 면해주는 조항보다 더 매서운 현실이 있었다. 장부가 자라 사람의 몸에까지 달라붙는 일이었다.

법전의 또 다른 조항은 사람이 치르는 대가를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궁핍에 붙잡힌 사람이 빚을 갚으려고 아내나 아들이나 딸을 팔았거나 자기 몸을 팔았다면, 그들은 산 사람 또는 채권자의 집에서 3년 동안 일한다. 그리고 4년째에는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채무 때문에 예속되어 일하는 제도 자체를 없앤 조항은 아니다. 그 기간에 끝을 정한 조항이다. 글로 적힌 빚이 어느 선을 넘어 자라나면 사람 자체가 상환 장치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다. 먼저 한 사람을 액수로 환산한다. 그 액수를 갚지 못하면 그와 그의 가족을 노동력으로 환산해 채권자의 집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 문장에 담긴 말들은 모두 실제로 누군가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몇 해 흉작을 겪은 농사꾼이 있다. 빚이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나면 먼저 집안의 땅을 판다. 다음에는 아내와 자식을 맡긴다. 마지막에는 자신까지 들어가 채권자의 집에서 몇 년이고 삯 없이 일한다. 장부에서는 미수금 하나에 변제 수단이 생긴 것뿐이다. 사람에게서는 한 집이 해체되는 일이다. 한 사람이 자기 삶에서 뽑혀 나와 남의 집 마당에 도구로 놓이는 일이다. 법전이 채무 예속에 3년이라는 상한을 둔 사실은, 오히려 그런 일이 법으로 가로막아야 할 만큼 흔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람에게 값을 매겨 빚 갚는 수단으로 쓰는 일은 어쩌다 터진 예외적인 잔혹 행위가 아니었다. 이 장부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였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다음 단계였다.

그렇기에 사람을 구해내는 말의 뜻이 더욱 깊다. 수메르어에는 자유를 나타내는 ‘아마기’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어머니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자유란 먼저 추상적인 정치적 권리가 아니었다. 채무 예속에서 풀려나 본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은은 익명의 자를 주었다. 그런데 그 자 안에서 사람을 구해내는 말에는 집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어머니에게 돌아간다는 말이다. 뒤에 등장하는 채무 탕감이 단순히 장부의 숫자 한 줄을 긋는 데서 끝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을 놓아주고, 빚에 잡혀 넘어간 땅을 돌려주는 일이 언제나 함께 따라야 했다.

여기서 두 방향이 정면으로 만난다. 장부가 알아보는 것은 수량이다. 얼마를 빚졌는지, 얼마를 변제하는지, 몇 년이면 갚는지다.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말이 알아보는 것은 관계다. 누구의 아들인지, 어느 어머니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어떤 친족 집단에 속하는지다. 앞의 것은 바깥을 향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할 숫자를 찾는다. 뒤의 것은 안을 향한다. 바로 이 사람과 이 사람만의 내력을 알아본다. 빚을 지울 때 반드시 사람과 땅을 돌려주어야 하는 까닭은 숫자만 없애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숫자는 지워도 사람은 남의 집에 매여 있을 수 있다. 땅은 여전히 다른 사람 손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사람을 자기 관계 속으로 돌려보내고 땅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그 빚은 비로소 실제로 풀린다.

장부는 사람을 숫자로 환산한다. 그러나 사람은 제 전부가 그 숫자 속으로 녹아들기를 거부한다. 3년 동안 팔려갈 수는 있어도 영원히 팔려 없어질 수는 없다. 채권자의 집으로 끌려갈 수는 있어도, 그에게는 돌아오는 4년째가 있다. 어머니에게 돌아가라는 말 한마디가 있다. 그 말은 액수 바깥에 그의 자리를 남겨둔다. 장부에는 노동력과 상환 기간으로만 적힌 사람을, 여전히 돌아갈 곳이 있는 한 사람으로 남겨두는 자리다. 액수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지울 수 없는 것, 그것이 잔여항이다. 이 글에서 그 잔여항은 가장 또렷한 형체를 얻는다. 값으로 매겨졌으나 끝내 그 값에 꺾여 없어지지 않는 사람이다.

아마기라는 말이 자유와 귀향을 묶어놓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세계에서 어느 가구에도 속하지 않고 어떤 혈연에도 이어져 있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정말 갈 곳 없는 사람이었다. 채무 예속이 무서운 까닭도 여기 있었다. 자기 집에서 뽑혀 나와 남의 장부에 적힌 수치 하나가 되고 도구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그를 구한다는 것은 실체 없는 자유를 종이 한 장으로 내주는 일이 아니다. 그를 알아보고 그를 필요로 하는 관계의 그물 안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남의 장부에 들어가기 전에 그의 삶을 이루고 있던 연결들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여기서 자유란 무엇보다 다시 그의 어머니가 있고, 그가 속한 친족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숫자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않는 까닭은 결국 그의 몸에 이런 인연들이 매여 있기 때문이다. 어느 액수로도 남김없이 셀 수 없는 연결들이다.

6. 빚을 지우는 오래된 전통

빚을 글로 적는 일은 오래되었다. 빚을 한꺼번에 지우는 일도 그만큼 오래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장부를 지우는 행동이 거듭 나타난다. 기원전 2350년 무렵 라가시를 다스린 우루카기나의 개혁 비문에는 빚 때문에 갇힌 아이들의 감옥을 비우고 그들을 해방했다는 말이 나온다. 고아와 과부를 강자의 손에 넘기지 않겠다고 신과 약속했다는 말도 있다. 해방과 채무, 약자 보호를 한데 묶은 가장 이른 정치적 언어 가운데 하나다. 비슷한 표현을 한 세대 더 거슬러 올라가 앞선 라가시 통치자에게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를 어머니에게, 어머니를 아이에게 돌아가게 하고 이자를 없앤다는 선언이 그때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대중적인 글에서는 이 연결을 확신에 차서 서술하는 일이 흔한 반면, 엄밀한 학술 연구에서는 훨씬 조심스럽게 다룬다.

세부적인 논란이 어떻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장부를 지우는 일은 어느 왕 한 사람이 처음 고안한 일이 아니었다.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여러 왕의 즉위 비문과 칙령 곳곳에서 되풀이된 행동이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작동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되풀이된다는 사실 자체가 사정을 말해준다. 한 차례의 탕감으로 빚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다시 탕감해야 했다. 장부가 어김없이 다시 불어났기에 지우는 일도 거듭해야 했다. 반복은 바로 그것이 한 번의 조치로 영구히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조금 더 내려오면 기원전 1900년 전후 고아시리아 시대의 왕실 비문에 해방을 뜻하는 또 다른 말, ‘안두라루’가 등장한다. 한 아시리아 왕은 아카드인들과 그 후손들에게 자유를 세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장거리 교역이 이루어지던 고아시리아의 맥락에서 안두라루는 때로 세금을 줄이거나 관문에서 걷는 통행세와 관세를 면제하는 일까지 가리켰다. 좁은 뜻의 사적 채무 취소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기원전 1792년부터 1750년까지 재위한 함무라비에 이르면, 법전 자체가 별도의 탕감령은 아니어도 흉년에 이자를 면제하고 채무 예속 기간을 정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 몇몇 연구의 정리에 따르면 그의 왕조에서는 빚을 지우는 성격의 조치가 한 번 넘게 시행되었다. 그 뒤의 한 왕은 즉위하자마자 탕감령을 내렸다. 궁정을 위해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고 말을 돌보는 사람들이 궁정에 진 미납분을 없앴으며, 일부 군인과 평민의 채무도 면해주었다.

가장 온전하게 전해지는 고바빌로니아의 채무 탕감령은 기원전 1640년 무렵 한 왕이 내린 것이다. 채무를 취소하고, 빚 때문에 예속되어 일하던 사람들을 풀어주는 명령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조항의 뜻은 이렇다. 보리나 은을 빌려주어 이자를 받으며 문서까지 작성한 경우라도, 이제 왕이 온 나라에 공정을 세웠으므로 그 문서는 무효다. 그것을 근거로 다시 보리나 은을 받아내서는 안 된다. 핵심은 가난한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만 있지 않다. 문서를 내세워 청구할 수 있는 채권자의 권리를 빼앗는 데 있다. 왕명으로 질서 전체를 바로잡고 공정을 다시 세우는 이런 조치에는 당시 ‘미샤루’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 가운데 빚에 매인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해방의 측면에 무게를 둔 말이 앞서 본 안두라루다. 두 말은 흔히 같은 왕명 안에서 함께 쓰였지만 초점은 같지 않았다.

이처럼 가장 온전히 남은 탕감령을 읽다 보면 묘한 무게가 느껴진다.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겠다는 추상적인 말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채무가 무효인지, 어떤 것은 해당하지 않는지, 누가 풀려나야 하는지, 어떤 문서는 이제 다시 꺼내 청구할 수 없는지를 조목조목 밝힌다. 이미 작성된 장부 안으로 수술칼처럼 들어가 정해진 항목을 하나씩 도려낸다. 장부가 정밀한 만큼 그것을 지우는 명령도 정밀해야 한다. 촘촘한 청구 체계에 맞서려면 두루뭉술한 은혜 한마디로는 부족하다. 똑같이 촘촘하면서도 더 높은 효력을 가진 글이 필요하다. 빚을 지우는 일은 장부의 반대편에 있지 않았다. 장부 자신의 언어를 썼다. 청구할 권리가 어느 문서에서 나왔다면, 그 권리를 거두는 일도 문서로 정확하게 명시되어야 했다.

여기서 중요한 작동 방식이 드러난다. 채무 탕감은 빚을 잊어버리는 일이 아니다. 기존의 청구 구조를 강제로 다시 쓰는 일이다. 적혀 있는 장부 전체를 지우려면 더 높은 위계를 가진 다른 글, 곧 왕명이 필요하다. 점토판 하나가 한 가족을 누르고 있다면, 그 점토판을 누를 만큼 더 큰 점토판이 있어야 풀어줄 수 있다. 그리고 위에 올라선 그 글 또한 ‘구축’이다. 장부를 끝낸 것이 아니라, 장부의 위에서 장부를 덮어쓴 것이다.

그 뜻을 한 겹 더 살펴야 한다. 빚을 지우는 명령 자체도 하나의 장부다. 더 크고 위계가 더 높은 장부다. 수천수만 개의 점토판에 적힌 미지급분을 없애는 힘은 그 내용을 다 잊어버리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그런 문서들이 모두 무효라고 선언하는 새로운 기록에서 나온다. 글로 글을 풀고, 더 큰 구축으로 작은 구축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빚을 지우는 일을 왜 늘 왕이 맡아야 했는지도 여기서 설명된다. 모든 채권자 위에 선 권력만이 모든 차용 문서를 누를 문서를 쓸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을 짓누르는 점토판을 제 손으로 찢어 없애지 못한다. 충분히 큰 힘을 지닌 누군가가 대신 그것을 물에 불려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탕감이 언제나 한 줄을 그으면 끝나는 말끔한 일이었던 것도 아니다. 빚을 없앤다는 결정과, 어느 빚에 그 결정을 적용할지 가리는 일 사이에는 또 다른 문제가 남았다. 한 연구는 어떤 탕감 조치 뒤에 재산 문서들이 폐기되었지만, 선포 당일로 모든 일이 끝나지는 않았다고 전한다. 뒤이어 사법 심사와 이의 제기가 이어졌다. 빚을 지우면 새로운 다툼이 생겼다. 누구의 채무가 취소할 범주에 속하는가. 누구의 집문서와 채권 증서와 보증서를 없애야 하는가. 무엇이 합법적인 보유이고 무엇이 이 기회를 틈탄 가로채기인가. 궁정이 특히 신경 쓴 것은 조세와 병력, 부역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채무였다. 왕실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 군인, 목자, 궁정의 속민, 빚에 몰려 예속된 집안이 그 관심의 대상이었다. 상단의 교역을 위한 상업 신용까지 함께 없앨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따라서 중요한 점이 하나 더 드러난다. 탕감은 모든 채무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궁정의 머릿속에는 더 치밀한 장부가 있었다. 가장 먼저 풀고 싶었던 것은 자기 기반을 비워버리는 채무였다. 농사지을 사람들이 전부 채권자의 종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군인이 될 사람들이 빚 때문에 신분을 잃어서도 안 된다. 부역을 맡길 사람들이 모두 도망가 있어도 곤란하다. 상인들끼리 서로 원해서 주고받은 거래의 빚은 왕이 대개 굳이 손대지 않았다. 그러니 같은 탕감령에서도 어떤 사람은 구제되고 어떤 채무는 그대로 남았다. 그 안에는 하나의 계산 전체가 숨어 있었다. 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구하지 않을지. 언제 구하고, 어디까지 구할지.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정해지지 않았다. 빚을 지우는 범위 자체가 권력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를 드러냈다. 어진 정치의 얼굴 아래에는 냉철한 저울질이 있었다.

7. 누가 장부를 지울 권리를 갖는가

이런 채무 탕감령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두고 학계의 논쟁은 거세다.

허드슨은 수메르와 고바빌로니아, 그리고 『레위기』 25장의 희년을 하나의 긴 전통 안에 놓는다. 그의 판단은 크게 세 갈래다. 첫째, 이런 왕명은 어쩌다 마음이 동해 베푼 선의가 아니었다. 청동기 시대 근동 국가가 사회의 양극화를 막고, 채무 예속의 확산을 막고, 직접 농사짓던 가구의 땅이 채권자 집단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갖춘 구조적인 제도였다. 둘째, 주된 대상은 농업 사회에서 계속 불어나는 비상업적 채무였다. 세금과 지대, 부담금, 집에서 먹고살려고 빌린 곡식과 은이었다. 상단 교역의 상업 신용이 아니었다. 셋째, 이 전통이 훗날 히브리 경전에 흡수되었다. 『레위기』의 자유를 선포하라는 말은 언어에서도 내용에서도 메소포타미아의 선례와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채무 총량의 문제도 거듭 강조한다. 20~30퍼센트의 이자율에 불안정한 수확, 이월되는 지대와 세금, 문서가 오랫동안 보장하는 청구권이 겹치면 많은 가구의 빚은 스스로 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람들을 채무 예속과 토지 상실, 도망으로 계속 내몰 뿐이다. 그러므로 왕권이 주기적으로 한꺼번에 지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중요하게 보는 대비는 전제적인 고대와 자유로운 현대의 대비가 아니다. 사회가 스스로를 지키는 두 방식의 대비다. 근동은 반복적인 탕감으로 자유롭게 땅을 보유한 사람들의 기반을 가능한 한 지키려 했다. 뒤이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채권이 끝까지 쌓이도록 두었다가 내전과 폭동, 또는 극히 제한된 개혁으로 수습하는 일이 더 흔했다.

허드슨의 비교가 묵직한 것은 장부 지우기를 고대의 별난 일화에서 끌어내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가 피할 수 없는 난제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 바꾸어놓는다. 이자가 붙고 문서에 기대어 오랫동안 청구할 수 있는 한, 채무 총량은 실물 부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르게 몸집을 불린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위에서 한꺼번에 지우든가, 빚이 사회를 찢어놓아 폭력으로 끝나도록 두든가 해야 한다. 근동은 앞의 길을 택했다. 왕이 되풀이해서 나서 장부를 지우고 판을 다시 고르게 폈다. 고전 고대의 세계에서는 뒤의 길이 더 흔했다. 무너질 때까지 빚을 쌓아두었다가 피 속에서 다시 시작했다. 어느 쪽도 채무라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각자 그것을 반복해서 처리하는 방식을 찾았을 뿐이다. 바로 그 점이 결정적이다. 장부가 닫히지 않는 것은 어느 한 시대에만 생긴 병이 아니다. 장부 자체가 지니고 있는 병이다.

좀 더 신중한 아시리아학 연구자들은 탕감령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거래와 채권, 사람의 신분을 실제로 바꾸었다는 점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경계하는 것은 자료를 너무 반듯하게, 너무 끊김 없이, 후대의 희년과 너무 닮은 모습으로 읽는 일이다. 자료들 사이의 닮은 점이 보인다고 해서, 그 사이를 잇는 제도까지 이미 확인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순환논증의 위험을 특히 지적한다. 한쪽에서는 『구약』의 안식년과 희년으로 메소포타미아를 설명한다. 다른 쪽에서는 메소포타미아 자료를 들어 『구약』의 희년이 반드시 고대 서아시아 제도의 잔존물이라고 입증한다. 이런 식으로 서로를 끼워 맞추면 본래 같지 않았던 제도들이 갈수록 닮아 보이게 된다. 또 다른 연구는 간명하게 짚는다. 이 면제 조치들은 달력의 알람처럼 고정된 주기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시행되었고, 흔히 새 왕이 즉위한 뒤 선포되었다는 것이다. 대중적인 서술이 가장 쉽게 지나치는 지점을 찌르는 말이다. 흔하고 반복된다는 사실을 엄격한 주기, 정례적인 업무, 모든 문명에 반드시 있는 장치로 바꾸어 적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경고는 말꼬리를 잡는 일이 아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며 간헐적으로 시행된 조치를, 달력에 맞춰 자동으로 작동하는 헌법처럼 읽으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지워진다. 미리 정해지지 않았던 여지가 사라진다. 실제로는 누군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만 일어났던 일이, 때가 오면 저절로 일어난 일처럼 보이게 된다. 똑같은 탕감이라도 이번에는 즉위 뒤 민심을 달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다음번에는 흉작이나 패전을 수습하려는 것일 수 있다. 또 어떤 때는 채권자 집단에서 권력을 조금 되찾으려는 목적이 앞설 수 있다. 동기와 범위, 강도와 결과가 모두 달랐다. 신중한 연구자들이 지키려는 것은 잘 다듬어진 모형 하나가 살아 있는 차이들을 한 줄로 지워버리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허드슨처럼 긴 시간을 가로질러 보려는 야심은 멀리 본다는 장점이 있지만 위험도 바로 거기 있다. 너무 멀리 보면 가까이에 있는 주름이 다려져 없어지기 쉽다. 낱말의 뜻을 따져 묻는 연구자들도 있다. 미샤루와 안두라루가 자주 관련되더라도 완전히 같은 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 왕명이 주로 밀린 세금과 지대를 면제하는지, 채무에 예속된 사람을 풀어주는지, 이미 넘어간 특정 토지를 되돌리는지는 문서 하나하나를 따로 살펴야 한다.

논쟁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이 칙령들은 평소에 쓰던 통치 기술이었는가, 아니면 즉위와 흉작, 전쟁과 재정 불균형 같은 위기마다 꺼내 든 수단이었는가. 허드슨은 구조적이고 정례적인 성격에 무게를 둔다. 신중한 쪽은 후대의 희년에서 출발해 초기 근동을 거꾸로 그리지 말라고 요구한다. 띄엄띄엄 남은 문서를 조립해 지나치게 완결된 주기 제도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편에 표를 던지는 일이 아니다. 그 논쟁이 드러내는 우연과 선택의 여지를 보는 일이다. 이 사회들이 거듭 장부를 지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나 지웠는지, 누구를 위해 지웠는지, 어떤 정치적 시점에 지웠는지, 개인 사이의 빚도 함께 취소했는지, 옛 문서를 정말 파기했는지, 법관이 어떻게 집행하고 채권자가 어떻게 피해 갔는지에는 자동으로 나오는 답이 없었다.

『레위기』 25장에 이르면 분명히 달라지는 것이 하나 있다. 해방이 고정된 달력 안에 적힌다. 안식년을 일곱 번 채우고 50년째가 되면 그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각자 자기 소유지로, 각자 자기 친족에게 돌아간다. 중요한 것은 뒤의 말이다. 단순히 미지급금을 없애는 데 그치지 않고 소유지로 돌아가고 친족에게 돌아간다. 메소포타미아 문서에서 흔히 보이는 사람의 해방과 원래 보유 상태의 회복에 구조적으로 매우 가깝다. 어떤 학자들은 자유를 뜻하는 히브리어와 해방을 뜻하는 아카드어를 같은 계보 안에서 논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바뀐 점이 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왕이 어느 시점에 나서야 주로 해방이 이루어졌다. 『레위기』에서는 해방이 군주의 은혜에 기대는 일에서 달력의 주기와 공동체의 의무에 기대는 일로 다시 쓰인다. 장부를 지울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가 바뀐 것이다. 지상의 왕에게서, 때가 되면 돌아오는 그해로 넘어갔다. 바로 그렇기에 후대 사람들은 이것을 유토피아로, 이상적인 법으로, 한 번도 엄격하게 집행되지 않은 강령으로 읽기가 더 쉬워졌다.

엄격하게 시행된 적이 있든 없든, 이 변화는 깊다. 장부를 지우는 권리를 왕의 손에서 때가 되면 돌아오는 해로 넘긴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인정하는 일과 같다. 빚을 반드시 지워야 하는 까닭은 어느 왕이 잠깐 자비로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빚 자체가 끝내 지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만큼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은혜를 베풀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아예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법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탕감은 우연히 베푸는 선정에서 반드시 작동해야 할 제도로 격상된다. 이 장부는 주기적으로 뒤엎고 다시 써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명문화된 법 안에 들어간다. 실제 인간 사회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는 또 다른 오래된 문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그 논쟁은 오늘까지 이어진다.

8. 적는 일과 지우는 일

여기까지 오면 화폐가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돌아가던 그 기계가 처음으로 몸을 얻는다. 처음으로 제 역사를 갖는다.

글로 남긴 장부는 구축이 처음으로 제대로 얻은 몸이다. 빚진 것이 점토판 위에 눌려 새겨진다. 잴 수 있고 비교할 수 있으며, 청구의 근거로 삼을 수 있고, 구워 말려 기록으로 보관할 수 있는 몸이다. 마음속에 적어둔 것보다 더 단단하고 더 차가우며, 강제로 집행하기도 더 쉽다. 모든 것을 공통의 척도로 바꾸는 일이 완전한 마감을 향해 내디딘 가장 실질적인 걸음이다. 만물을 하나의 단위로 환산한 다음, 누구나 문서 한 장에 기대어 누구에게나 끝까지 청구할 수 있게 한다. 마음속의 기억에 머물던 빚이 관계를 넘어 집행되는 힘을 갖춘 것이다.

그런데 장부는 영원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이자는 어느 철의 농작물보다 빠르게 빚을 불린다. 사람의 몸은 끝내 그 액수 속으로 온전히 녹아들지 않는다. 이래서는 장부를 덮을 수가 없다. 그래서 빚을 지우는 일이 등장한다. 빚을 잊어버리는 대신 더 큰 글 한 장으로 청구의 구조 전체를 다시 쓴다. 숫자 속에 갇힌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탕감은 치료약이 아니다. 왕명이 내려오면 빚을 영에서부터 다시 적는다. 적다 보면 이자가 다시 불어나고, 사람은 다시 채무 예속 쪽으로 밀려간다. 그러니 다음 탕감령이 언젠가는 또 와야 한다. 적고, 불어나고, 지우고, 다시 적는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기계가 처음 완성한 한 바퀴다. 기계가 계속 도는 것은 누군가 멈추기 싫어해서가 아니다. 모든 것을 남김없이 셈하려는 총장부에 언제나 한 항목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몇 번이고 다시 적을 수밖에 없다.

탕감이 일상적인 제도였는지 비상시의 수단이었는지는 계속 다툴 수 있다. 어느 해석을 택하든 그것이 거듭 돌아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거듭 돌아온 까닭은 장부가 거듭 닫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번 탕감으로 풀려났다가 매번 다시 빚에 감기는 것은 언제나 같은 존재다. 값으로 매겨지고 3년 동안 붙잡혀 있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꺾여 없어지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는 장부에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지울 수 없는 잔여항이다. 탕감이 지우는 것은 숫자다. 그 사람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한 번의 탕감 뒤에도 사람이 남기에, 다음 장부 안에서도 다시 숫자로 다 담을 수 없는 부분이 남는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돌아간 이 한 바퀴를 보고 나면, 두 선이 처음부터 줄곧 나란히 갔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장부다. 모든 것을 숫자로 바꾸려는 익명의 자다.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적힐수록 단단해진다. 다른 하나는 신뢰다. 인장과 증언, 명망과 친족이다. 그 자가 현실에 닿도록 받쳐주고, 숫자 바깥에서도 사람이 사람으로 남도록 해주는 것들이다. 장부는 신뢰를 옆으로 밀어내려 하지만 끝내 밀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곳곳에서 그것에 기대어야 한다. 빚이 불어나 사람을 예속으로 몰아넣을 때마다, 집의 냄새가 밴 말 한마디에 기대어 그를 숫자 속에서 데리고 나와야 한다. 두 갈래는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한 채 얽혀 있다. 오늘날까지도 그렇다.

은은 익명의 자를 주었다. 그러나 그 자 안에서 사람을 구해내는 말에는 언제나 어머니에게 돌아간다는 집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장부를 더 분명하게 쓸수록, 주기적으로 장부 전체를 지워야 할 필요도 더 커졌다. 빚을 적는 일과 빚을 지우는 일은 똑같이 오래되었다. 그 두 오래된 일이 함께 가리키는 것은 더욱 오래된 사실 하나다. 구축은 형태를 얻는 순간부터 끝내 다 거둘 수 없는 잔여항을 뒤쫓는다. 다 거두지 못하니 뒤엎고 다시 시작한다. 셈은 아직 맞지 않는다. 장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