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혜와 증여: 결산하지 않기에 계속되는 관계
쿨라와 포틀래치에서 일상의 품앗이에 이르기까지, 증여경제는 미완의 의무를 통해 관계와 안전망을 만드는 질서였다. 화폐 이전의 교환을 물물교환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이유를 살핀다.
빚을 갚는 것이 무례할 때
가까운 사람이 이사를 도와준 다음 날, 정확한 시급을 계산해 송금한다면 상대는 고마움보다 거리감을 먼저 느낄 수 있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즉시 결산한다는 행위가 이제 서로에게 아무 의무도 남기지 말자는 선언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갚지 않은 몫이 결함이 아니라 다음 만남을 여는 장치가 된다.
증여경제를 계산 없는 순진한 세계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누가 많이 베풀었고 누가 받기만 했는지, 어느 집안이 어려울 때 손을 내밀었는지를 공동체는 오래 기억했다. 다만 그 계산에는 단일 단위도 즉시 결제일도 없었다. 가치 판단은 엄격했지만 관계와 사정을 떼어 낸 숫자로 환산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르셀 모스가 포착한 핵심은 주고, 받고, 되돌려주는 세 의무였다. 선물을 거절하면 관계를 거절하는 일이 되고, 받은 뒤 끝내 돌려주지 않으면 신뢰를 잃었다. 그렇다고 같은 물건을 곧장 돌려주면 거래를 닫아 버린다. 증여의 시간은 일부러 열려 있었고, 그 미완성 속에서 동맹과 체면이 자랐다.
두 방향으로 도는 쿨라
트로브리안드 제도와 그 주변에서 붉은 조개 목걸이는 한 방향으로, 흰 조개 팔찌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쿨라의 귀중품에는 이름과 전력이 붙었고, 유명한 물건을 잠시 보유했다가 알맞은 상대에게 넘기는 일은 지위를 만들었다. 쌓아 두는 능력보다 흐름을 이어 갈 자격이 더 중요했다.
쿨라는 물물교환이 아니었다. 상대가 내놓을 답례품을 두고 흥정하지 않았고, 돌아오는 물건은 시간도 모양도 달랐다. 위험한 항해와 환대, 보호, 장기적 협력의 망이 먼저 있었기에 그 곁에서 실용적인 거래도 가능했다. 낯선 사람과의 교환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익명의 가격이 아니라 반복해서 확인된 인격적 신용이었다.
칼 폴라니가 말한 호혜·재분배·교환은 문명의 순서대로 교대하는 단계가 아니다. 한 사회 안에서도 가족은 넓은 호혜로, 권력 중심은 재분배로, 시장은 교환으로 움직일 수 있다. 경제는 친족·의례·정치에 박혀 있었고, 그것들을 떼어 낸 별도 영역이라는 관념이 오히려 역사적으로 늦다.
부를 태워 권리를 세우다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의 포틀래치는 잔치이면서 상속과 작위, 경쟁과 채무를 공적으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담요와 구리판은 수량으로 세어지고 빌려줄 때 이자까지 붙었지만, 승부의 대상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누가 어느 이름과 자리를 정당하게 잇는지가 배분과 파괴의 장면을 통해 선언되었다.
때로는 자신의 이름을 담보로 담요 서른 장을 빌리고 훨씬 많은 수량을 돌려준 뒤에야 이름을 되찾기도 했다. 숫자와 신용이 정교하게 작동했지만, 그 숫자는 인격과 분리되지 않았다. 가격표 하나로 물건을 익명의 상품으로 바꾸는 시장과 달리 포틀래치의 물건은 출처와 관계를 계속 몸에 지니고 다녔다.
캐나다 정부는 1884년부터 포틀래치를 금지했고, 1921년의 큰 의례 뒤에는 참가자를 체포하고 물품을 압수했다. 금지는 1951년에야 풀렸다. 식민 권력의 눈에는 낭비로 보였지만, 압수된 것은 공동체의 기록이자 권리의 증거였다. 장부 모양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부가 아닌 것으로 취급된 셈이다.
호혜의 거리는 사람 사이의 거리
마셜 살린스는 호혜를 일반적·균형적·부정적 형태의 연속선으로 설명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언제 무엇으로 갚을지를 묻지 않는 일반적 호혜가 가능하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비슷한 가치의 빠른 반환을 기대한다. 완전히 낯선 상대에게서는 내 몫을 극대화하려는 부정적 호혜가 나타난다. 계산의 방식은 인간관계의 거리와 함께 달라진다.
이로쿼이의 롱하우스 공동 저장이나 주호안시의 흐사로 교환도 다른 얼굴의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흐사로의 물건은 최대 약 200킬로미터에 걸친 관계망을 천천히 돌며 가뭄과 사냥 실패의 위험을 분산했다. 당장 쓸모가 크지 않은 물건도 훗날 도움을 청할 길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보험처럼 기능했다.
캐럴라인 험프리가 지적했듯, 순수한 물물교환 경제가 자연스럽게 화폐로 진화했다는 민족지적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물물교환은 오히려 화폐 질서가 무너지거나 신뢰가 없는 집단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화폐 이전에도 사람들은 빚과 신용을 알았고, 다만 그것을 관계 밖으로 떼어 내지 않았을 뿐이다.
열린 장부의 여항
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의 언어로 보면, 착(鑿)은 누가 주고 누가 받았는지를 구별하고 구(構)는 의례와 기억으로 그 의무를 지속시킨다. 그러나 여항(餘項)은 언제나 남는다. 같은 담요라도 누가 어떤 때에 건넸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선물이 되며, 그 차이는 물건의 양만으로 옮길 수 없다.
보편적 가격의 등장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도 거래를 끝낼 자유를 준다. 누군가의 호의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신분과 혈연 밖으로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다. 동시에 결제가 끝난 뒤에도 남아 있던 책임과 기억을 지우기 쉬워진다. 자유와 단절은 같은 문을 통해 들어온다.
증여의 질서는 청산하지 못해서 실패한 체제가 아니다. 청산하지 않는 것이 작동 방식이었다. 미완의 의무는 사람을 얽어매기도 했지만 재난 때 돌아갈 길도 만들었다. 이후 경제의 역사는 이 열린 관계를 숫자로 닫아 가는 과정이고, 닫힌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몫이 다음 장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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