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부기의 발명: 묻지 않기에 맞아떨어지는 장부
모든 거래를 차변과 대변에 함께 적는 복식부기는 스스로 오류를 찾아내는 강력한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합계의 일치는 사실과 정의를 보증하지 않으며, 빠진 항목은 장부를 흔들지도 않는다.
이 글의 목차
1. 한 번의 거래를 두 번 적다
먼저 이 방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살펴보자. 원리는 뜻밖에 간단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천 한 필을 팔고 금화 열 닢을 받았다. 이 일을 어떻게 적어야 할까.
예전 방식이라면 한 줄이면 된다. 천을 팔아 열 닢을 받았다고 쓴다. 새로운 방식에서는 두 군데에 적는다. 돈궤 쪽에는 금화 열 닢이 늘었다고 쓰고, 천 쪽에는 한 필이 줄었다고 쓴다. 왼쪽에 하나를 적으면 오른쪽에도 하나를 적는다. 양쪽에 쓰인 금액은 같다.
값으로 치면 100에 해당하는 생강을 밑천으로 넣는 경우도 보자. 생강 항목에 100을 넣고, 자본 항목에도 100을 넣는다. 돈이 어디선가 새로 솟아난 것이 아니다.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갔을 뿐이다. 다만 장부에는 그 두 자리 모두에 흔적이 남는다.
원리는 이 한마디로 모인다. 모든 일을 양쪽에서 본다. 돈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 두 쪽을 모두 적되 같은 액수로 적는다.
양쪽에서 본다는 것이 이 방법 전체를 살려놓는 핵심이다. 예전의 단순한 출납장은 한 사건의 한 면만 기록했다. 오늘 얼마를 받았고 오늘 얼마를 내주었는지 적었다. 하지만 거래에는 언제나 다른 면이 있다. 금화 열 닢을 받은 순간 천 한 필은 없어져 있다. 물건이 한 무더기 들어왔다면 돈이 그만큼 나갔거나, 아니면 갚아야 할 빚이 늘어 있다. 옛 장부는 눈앞에 보이는 한쪽만 적었다. 새 장부는 다른 쪽까지 써넣으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 다른 쪽을 적는 자리는 바로 그 돈이 들어온 곳, 혹은 흘러간 곳이다.
그래서 차변과 대변이라는 말에 처음부터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두 말이지만, 여기서는 결국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킨다. 돈을 빌렸다는 뜻도, 빌려주었다는 뜻도 아니며, 좋고 나쁨을 나누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한 거래의 양쪽 끝이 서로 다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 방식에 익숙해지고 나면 장부에서 읽히는 것도 달라진다. 따로따로 떨어진 숫자들의 행렬 대신, 사건마다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이어졌는지가 보인다. 이 돈은 어디에서 들어와 무엇으로 바뀌었고, 다시 어디로 흘러갔는가. 1458년 라구사의 한 상인은 상업을 다룬 자기 책에서 이 규칙을 단호하게 적었다. 분개장에 한 건으로 쓴 것은 원장에 두 건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30여 년 뒤 파치올리도 인쇄된 책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분개장에서 원장으로 옮기는 분개는 언제나 두 건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느 쪽에 무엇을 쓰는지에 관해서도, 나중에는 누구나 외우게 될 한 문장을 남겼다. 차변에 속하는 것은 왼손 쪽에, 대변에 속하는 것은 오른손 쪽에 놓으라.
아름다움은 그다음 한 걸음에서 드러난다. 매번 양쪽에 같은 금액을 적었다면 왼쪽에 적힌 것을 모두 더한 값과 오른쪽에 적힌 것을 모두 더한 값은 반드시 같아야 한다. 파치올리는 분개가 1만 건 넘게 들어 있는 장부를 떠올렸다. 차변을 전부 더하고 대변도 전부 더하면 두 합계는 같아야 한다고 했다. 같지 않다면 장부를 옮겨 적는 전기 과정에 오류가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대단한 일이 가능해진다. 장부가 스스로를 검사할 수 있다.
앞선 글들에서 세계를 남김없이 셈하려던 시도들은 늘 바깥의 무엇인가를 보증으로 삼아야 했다. 점토판에는 인장과 증인이 필요했다. 주화에는 발행자의 명성과, 뒤에 동전을 받아든 이들이 새긴 검인 자국이 필요했다. 공정한 가격은 법정과 길드, 도시 사람들의 판단에 기대야 했다. 이제 처음으로 장부는 바깥사람을 부르지 않고도, 제 구조만으로 제 안에 오류가 없음을 증명할 수 있게 된다.
구축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변화의 무게는 앞선 몇 편을 곁에 놓아야 보인다. 점토판에 잘못 적힌 것은 없는지, 증인과 인장에 물어야 했다. 주화가 진짜인지, 순도는 충분한지, 감정하는 사람이 한 닢씩 들여다보아야 했다. 가격이 공정한지는 도시 전체의 판단과 법정의 판결을 구해야 했다. 그 보증들은 모두 장부 바깥에 있었고, 모두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복식부기는 처음으로 그 보증을 장부 자체의 뼈대 안으로 옮겨놓았다. 양쪽이 같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누구에게도 물을 필요가 없다.
2. 어느 날 발명된 것이 아니라 자라난 것
다만 발명이라는 말을 어느 천재가 어느 날 갑자기 제도 하나를 통째로 떠올렸다는 뜻으로 쓴다면, 사료는 그런 이야기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이 방법은 중세 이탈리아의 상인과 은행가들 사이에서 조금씩 자라났다. 처음에는 받을 돈과 갚을 빚을 적었다. 그러다가 무역 거래와 동업, 환거래와 재고, 이익과 연말 이월로 기록의 범위가 넓어졌다. 도시가 달랐고 장사가 달랐으므로 자라난 모양도 저마다 달랐다.
그렇게 자라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구체적이다. 먼 곳과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물건이 바다 위에 있었고, 일꾼은 외국에 있었으며, 동업자는 다른 도시에 있었다. 빌려준 돈은 몇 달 뒤에야 돌아왔다. 이렇게 갈래 많은 일을 머릿속 기억과 출납장 한 권으로 다스릴 수는 없었다. 더구나 현금은 부족했고 외상은 어디에나 있었다. 다툼이 생기면 법정으로 가야 했으며, 장부와 증빙 문서는 그 자체가 증거였다. 이 방법은 상인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복잡한 일 속에서 물건을 놓치지 않고, 약속을 잊지 않고, 소송이 났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말할 수 있게 하려고 생겨났다.
그러니 누가 처음 발명했느냐는 논쟁은 그보다 앞선 질문에서부터 걸린다. 어디까지 갖추어야 복식부기라고 할 수 있는가.
회계의 역사를 연구한 한 학자가 제시한 유명한 기준이 있다. 장부가 좌우로 나뉘어 있는지, 차변과 대변이라는 글자가 있는지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자산과 부채, 소유주의 지분을 모두 나타내는 온전한 대차대조표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 기준은 결국 셈을 맞출 수 있는지, 자본과 잔액을 산출할 수 있는지를 중시한다. 뒤의 연구자들은 그 기준을 이어받으면서도 계속 이의를 제기했다. 현대 재무제표의 눈에 너무 가까운 기준이기 때문이다. 더 이르고 더 거친 장부라 해도 이미 이중의 논리를 쓰고 있었을 수 있는데, 그 기준은 그런 장부를 모조리 문밖에 세워버릴 수 있다.
논쟁 자체가 흥미롭다. 하나의 구축이 닫힌 체계를 이루었는지 판단하는 기준을 후대의 사람들이 정한다. 오늘의 자를 들고 옛것을 재면, 언제나 그 눈금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 나온다.
다른 곳에서도 만나는 어려움이다. 어떤 것이 완성되었는지를 판단하려면 먼저 완성된 모습이 무엇인지 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은 흔히 훗날 가장 성숙해진 형태를 보고 그린다. 그러면 초창기의 덜 여문 것들은 난처해진다. 이미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후대의 눈에 그것으로 알아보일 만큼까지는 자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름을 얻지 못한다.
이 기준 다툼은 학자들끼리만 따지는 세목이 아니다. 정의를 엄격히 잡으면 복식부기는 근대에야 생겨난 것이 된다. 조금 넓게 잡으면 13세기 초 은행의 장부 쓰는 방에 벌써 태어나 있다. 흙덩이처럼 남은 똑같은 장부 조각을 놓고도, 어떤 자를 대느냐에 따라 결론이 200년, 300년씩 달라질 수 있다. 사료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무엇을 이미 완성된 것으로 칠지가 달라졌다. 그것도 복식부기라고 하면 기준이 느슨해진다. 아니라고 하면 그 장부가 실제로 하고 있던 일을 지워버리게 된다.
이전 세대의 서술에서는 흔히 두 장부가 출발점에 놓였다. 하나는 1296년부터 1305년까지 샹파뉴 정기시에서 활동한 상사의 장부다. 다른 하나는 어느 회사의 프로방스 지점이 1299년부터 1300년까지 쓴 총계정원장이다. 두 번째 장부를 연구한 이들은 모든 항목에 차변과 대변의 대응이 있을 뿐 아니라, 연말 결산도 진지하게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현재 알려진 상업 복식부기의 가장 이른 사례로 보았다.
최근에는 흔적을 훨씬 더 앞에서 찾는 연구도 나왔다. 1211년 피렌체 은행가의 장부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을 근거로, 당시 이미 이중으로 분개하는 방식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그 판단이 맞다면 기원은 1290년대가 아니라 그보다 거의 90년 앞이 된다. 다만 새로 나온 이 해석에는 논쟁이 있으며, 기존의 설명을 대체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두 설명이 나란히 있다. 하나는 남아 있는 온전한 사례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이른 싹을 말한다.
그 뒤의 흔적을 따라가보자. 1382년 페루자에서 일하던 피렌체 상인 한 사람이 양쪽으로 나누어 쓰는 원장을 ‘베네치아식’이라고 불렀다. 14세기 후반에는 이미 베네치아식이 어떤 장부인지 알아보고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어느 베네치아 상인이 1418년부터 1449년까지 남긴 장부는 분개장과 원장이 짝을 이루어 전해지는 가장 이른 베네치아식 사례 가운데 하나다. 1458년에는 앞서 말한 라구사의 상인이,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이른 서술 가운데 하나를 글로 남겼다. 1475년에는 베네치아에서 복식부기를 가르치는 교본이 쓰였다. 파치올리보다 앞선 같은 종류의 교본으로는, 오늘날 유일하게 알려져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갖출 것은 다 갖추어졌다. 한 가지만 없었다.
이 날짜들을 차례로 놓으면 단 한 번의 발명 대신 200년 넘게 이어진 오르막이 보인다. 먼저 빚을 적고, 이어 물건을 적고, 동업과 환거래를 적는다. 한 해가 끝나면 장부를 한 번 마감하는 법을 익힌다. 누군가 그 방식을 글로 쓰고, 또 누군가 가르칠 책으로 만든다. 한 걸음씩 떼어놓으면 놀라운 일은 없다. 그러나 모두 합치면 전혀 새로운 것이 생겨 있다. 수많은 제도가 실제로 태어난 길도 이와 같다. 한 사람의 머리에 번개가 친 것이 아니다. 숱한 사람들이 제 앞의 곤란을 풀었고, 그렇게 풀고 또 푸는 사이에 해결책들이 스스로 하나의 체계로 자라났다.
3. 활자로 찍히다
없었던 한 가지는 인쇄였다.
1494년 11월 파치올리가 쓴 수학 총서가 베네치아에서 인쇄되었다. 그 가운데 계정과 기록을 다룬 부분은 처음으로 베네치아식 장부 쓰기를 인쇄된 글로 체계 있게 설명했다. 파치올리는 자기가 무엇을 쓰는지 분명히 밝혔다. 베네치아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적는다고 했다. 자신이 발명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를 복식부기의 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그 뜻을 정확히 잡아야 한다. 이미 있던 방법을 처음으로 인쇄하고, 표준화하고, 널리 공개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혼자 만들어낸 발명자라는 뜻은 아니다.
이 차이가 중요한 것은 그전까지 이런 지식이 주로 비싼 개인 교사와 손으로 베낀 책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사슬이었다. 스승이 죽거나 필사본이 사라지면 한 지역의 장부 쓰는 법이 통째로 끊길 수도 있었다. 어떤 연구자는 1494년의 그 인쇄가 없었다면 근대 회계의 역사에서 파치올리가 차지하는 자리는 전혀 다르게 쓰였을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한다.
달리 말하면, 이 역사에서 그가 가장 유명한 이름이 된 까닭의 절반은 명료하게 썼다는 데 있고, 나머지 절반은 마침 그 몇십 년 사이에 인쇄술이 널리 퍼졌다는 데 있다. 같은 시대에 그보다 먼저, 더 전문적인 교본을 쓴 사람도 있었다. 다만 인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대에는 거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느냐는 흔히 얼마나 훌륭하게 했느냐에 절반쯤 달려 있다. 다른 절반은 무엇을 만났느냐에 달려 있다.
더 서늘한 우연도 있다. 1458년에 쓰인 그 책은 완성되고 1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처음 인쇄되었다. 그런데 그 인쇄본에는 누군가 손을 대고 내용을 덜어내거나 고쳤으며, 기술적 세부를 약화시켰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더 이른 시기에 글로 남은 설명이 100여 년 늦게 도착했을 뿐 아니라,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도착한 셈이다. 후대가 누구를 기억하며 그 사람의 어느 부분을 기억하는지는, 종종 중간의 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달려 있다.
인쇄된 뒤에는 지식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깊은 변화가 일어났다. 파치올리는 베네치아의 이 방식을 특히 권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 방식을 쓰면 한 상인이 다른 상인의 장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부는 이제 한 사람의 기억을 담는 데 머물지 않았다.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상업의 언어가 되기 시작했다.
이 한 걸음은 겉보기보다 깊다. 그전까지 상사마다 장부는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이었다. 적는 법도 제각각이라 바깥사람은 펼쳐보아도 알 수 없었다. 장부를 확인하려면 쓴 사람이 설명해주어야 했다. 이제 함께 인정하는 규칙이 생겼다. 다른 상인도 읽을 수 있고, 동업자도 대조할 수 있으며, 법정도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고, 뒤에 일을 넘겨받은 사람도 이어 쓸 수 있었다. 개인의 비망록이 남들도 읽을 수 있는 기록이 된 것이다. 남들도 읽을 수 있어야 천 리 밖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서로의 셈을 정리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더 앞선 기술이었으므로 저절로 널리 퍼져 이긴 것은 아니다. 전파를 연구하는 이들이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세 가지다. 상인들의 이동, 환어음과 청산이 이어지는 망, 그리고 배울 수 있는 자료다. 이탈리아의 국제 상인과 은행가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무역·금융 중심지로 이 방법을 가져갔다. 정기시에서 거래를 청산하는 과정에서는 환어음과 한데 묶였고, 어떤 정기시에서는 거의 필수가 되었다. 나중에 상업학교와 교본, 상업교육이 퍼지면서 배울 수 있고 베낄 수 있고 인쇄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졌다. 그제야 이 방법은 유럽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16세기 중반 안트베르펜이 전파의 중요한 길목이 된 것도 그래서다. 1543년 그곳에서는 네덜란드어 책과 프랑스어 책이 함께 나왔고, 1547년에는 영어판도 나왔다. 인쇄업이 발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안트베르펜은 이미 상당 부분 베네치아의 자리를 대신하며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었다. 복식부기가 옮겨간 길은 무역의 중심축이 이동한 길과 거의 겹친다.
그 뒤 1549년에는 뉘른베르크에서 독일어 책이 나왔다. 1565년 바르셀로나에서는 스페인어 번역본이, 1590년 마드리드에서는 스페인 저자가 쓴 책이 나왔다. 잉글랜드의 출발도 사실은 빨랐다. 1543년에 이미 한 권이 있었다. 다만 그 책은 사라졌고, 오늘날에는 다른 저자가 1588년에 되살려낸 책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거슬러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는 우연이 유난히 눈에 띈다. 어떤 책은 상관에서 여러 해 닳도록 넘겨본 탓에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어떤 책은 우연히 다른 필사본 뒤에 묶여 들어간 덕분에 몇백 년을 살아남았다. 나중에 어느 책을 원조로 받들게 되는지는, 그것이 맨 처음이었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우연히 보존되었고 다시 찍혔고 재발견되었다는 사정이 이름을 정하기도 한다.
이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남아 있는 것이 그 시대에 가장 좋았던 것이리라는, 입에 붙기 쉬운 해석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흔히 덜 쓰인 것, 귀하게 간직한 것, 엉뚱한 데 우연히 끼어 있던 것이다. 날마다 펼쳐보던 진짜 현장의 책은 오히려 먼저 너덜너덜해지고 버려져 폐지가 되었다. 역사가 후대에 건네주는 표본은 한 번도 무작위로 뽑힌 적이 없다.
책 한 권이 온 세상의 장부를 바꾸어놓은 것도 아니다. 파치올리 뒤에도 베네치아에서는 교본을 쓰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왔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교본의 인쇄량이 크게 늘었다. 한 집계에 따르면 1601년부터 1800년까지 유럽에서 나온 부기 교본은 판본 수로 모두 781종이었다. 특히 네덜란드와 독일어권, 영국에서 많이 나왔다. 널리 쓰이게 되었다는 말 안에는 몇 세기에 걸친 교본 출판, 상업학교의 교육, 업계 안에서 서로 따라 한 실천이 쌓여 있다.
퍼졌다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이 된 것도 아니다. 가장 성숙한 변형은 아마 여전히 베네치아에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그중 일부만 받아들이는 일이 흔했다. 16세기 베네치아의 자선기관을 조사한 연구자는 복식부기가 비영리 부문에 들어가면 관리의 목적에 맞추어 모양도 바뀐다는 점을 발견했다. 때로는 차변에 금액을 적고 대변에는 수량을 적었다. 널리 퍼진 것은 차변과 대변을 짝짓는 논리였다. 어떤 곳에 가져가도 휘지 않는 표준 틀 하나가 아니었다.
4. 손에 쥘 수 없는 돈
서로 다른 온갖 것을 장부 한 권에 담으려면 먼저 공통의 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장이 저절로 그런 자를 내어주는 것은 아니다.
파치올리가 쓴 계산화폐는 베네치아의 도매와 국제무역에서 쓰던 일종의 금 리라였다. 이 리라로 1리라는 금 두카트 열 닢에 해당했다. 소매시장에서 쓰는 것은 값이 훨씬 낮은 다른 리라였다. 그쪽에서는 6리라 4솔도가 있어야 금 두카트 한 닢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앞의 계산화폐가 실제로 돌아다니는 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장부 위에서만 존재하는 돈, 유령 같은 화폐였다. 주화가 모자라고, 순도가 제각각이며, 도시를 건너 거래하면 금액을 비교하기 어렵다는 곤란을 풀기 위해 따로 마련한 것이었다.
이 한 걸음은 멀리 나아간다. 지난 글에서 자는 막 몸을 얻었다. 손에 쥘 수 있는 동전 한 닢이 되었다. 이제 장부를 편리하게 쓰기 위해 자는 스스로 그 몸을 벗는다. 다시 순수한 수가 된다. 누구도 만질 수 없지만 어떤 동전보다도 안정적인 것으로 돌아간다.
여기에는 잠시 멈추어볼 만한 뒤집힘이 있다. 지난 글에서 서로 다른 것들을 같은 자로 재는 일이 크게 진전된 것은 자가 몸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몸이 생겼기에 가지고 갈 수 있었고, 개수를 셀 수 있었고, 모르는 사람의 손에 건넬 수 있었다. 이제 그 일이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거꾸로 몸을 벗어야 한다. 까닭은 어렵지 않다. 몸이 있어야 돌아다닐 수 있지만, 몸이 있으면 구체적인 골칫거리도 묻어난다. 닳고, 순도가 다르고, 어디서는 받아주지만 어디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수십 개의 도시와 수십 종류의 화폐 사이에서 셈을 깨끗하게 마치려면, 애초에 누구의 손에도 나타나지 않는 돈 하나를 만드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 주화는 닳고 테두리를 잘리고 순도가 달라진다. 이 도시에서는 통하면서 저 도시에서는 통하지 않기도 한다. 장부 위의 돈에는 그런 일이 없다. 실제 물건으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의 척도로 바꾸는 일은 여기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부터 바라던 것은 금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하는 순수한 숫자였다. 금속은 잠시 빌린 몸일 뿐이다. 방해가 되면 벗어버릴 수 있다.
코트룰리도 환어음 거래를 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당부했다. 옆의 칸에 두 가지 금액을 적으라는 것이었다. 하나는 거래가 이루어진 곳의 화폐로, 다른 하나는 자기 장부에서 평소 쓰는 계산화폐로 적어야 손익이 보인다. 통일된 척도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상인과 은행가들이 서로의 셈을 마치기 위해 한 부분씩 공들여 놓은 다리였다.
그러므로 이 기술의 첫 쓰임새는 작은 가게의 출납을 적는 데 있지 않았다. 거래가 빽빽하게 오가고, 여러 지역을 가로지르며, 신용이 촘촘히 얽힌 도매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기술이었다. 파치올리는 세율이 2퍼센트인지 3퍼센트인지 4퍼센트인지에 따라 물건을 따로 적으라고까지 당부했다. 재산 목록에는 채무자와 채권자, 부동산과 귀금속, 상품과 증서를 항목별로 빠짐없이 쓰라고 했다.
세계를 셈하여 청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기술 한 벌이었던 것이다.
이 기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는 세부에서 드러난다. 같은 무더기의 물건이라도 세율이 다르면 따로 적는다. 같은 거래도 거래가 일어난 곳의 화폐와 자기 장부의 화폐로 각각 적는다. 채무자와 채권자는 이름만 써두어서는 안 된다. 사는 곳과 관할 조세 구역, 보증인까지 적어야 한다. 부동산, 귀금속, 상품, 증서는 저마다의 항목으로 간다. 세계가 한 칸 한 칸 잘린다. 각 칸에는 숫자를 채울 수 있고, 모든 칸은 마지막에 같은 하나의 총액으로 모일 수 있다.
이쯤에서 뒤의 몇백 년이 향할 방향도 보인다. 무엇이든 칸으로 나누고 숫자를 넣을 수 있으면 관리할 수 있다. 비교하고 추적할 수 있으며, 왜 그런지 설명을 요구할 수도 있다. 칸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은 이 체계 안에 자리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 근대의 관리사는 새로운 대상을 끊임없이 칸으로 나누어온 역사다. 처음에는 물건과 돈이었다. 뒤에는 노동시간과 생산량과 재고가 들어왔다. 더 뒤에는 사람의 성과와 주의력과 신용이 들어왔다. 나누는 방식은 계속 달라졌다. 그 동작 자체는 한 번도 달라지지 않았다.
5. 양쪽의 합계가 같아질 때
이제 이 꿈이 가장 온전하게 모습을 갖춘 자리를 볼 수 있다.
원장은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뉜다. 차변은 왼쪽, 대변은 오른쪽이다. 분개장에 있던 한 건을 원장에 옮기면 두 건이 된다. 대변에 한 건이 있으면 반드시 대응하는 차변 한 건이 있어야 한다. 예외는 허용되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계정마다 차변 잔액과 대변 잔액을 따로 종이 한 장에 옮겨 적고, 양쪽의 합계를 낸다. 두 합계가 같다면 장부는 질서 있게 정돈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훗날 시산표라고 부르게 되는 종이가 바로 이것이다.
시산표를 만드는 일 자체는 소박하다. 장부에 올라 있는 사람마다, 물건마다, 돈의 항목마다 남은 잔액을 옮겨 적어 두 열로 나누고 더하면 된다. 하지만 효과는 크다. 옮겨 적기 전에는 오류가 수천, 수만 건의 분개 사이에 숨어 있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다. 다 옮긴 뒤에는 두 합계를 나란히 놓기만 하면 잘못된 곳이 있는지 한눈에 드러난다. 너무 두꺼워 누구도 첫 장부터 다시 넘기고 싶어 하지 않는 장부에, 언제든 상태를 검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은 늘 바깥의 힘을 빌려야 서 있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장부가 자기 구조 안에 검산을 집어넣었다. 한 건씩 양쪽에 적기만 하면 마지막의 두 합계는 반드시 같아진다. 같지 않다면 어딘가 잘못되었다. 누가 보증을 서줄 필요가 없다. 장부 자신이 자신의 증거다.
남는 것 없이, 나간 것과 들어온 것이 맞물려, 한 푼의 차이도 없다.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자로 재려던 길에서 가장 완벽하게 성공한 순간이다.
더구나 그 완벽함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니다. 그렇게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거래마다 두 번 적는다. 한 번은 어디로 갔는지를, 또 한 번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쓴다. 그러면 장부가 아무리 두꺼워지고 장사가 아무리 복잡해져도 양쪽의 합계는 같아질 수밖에 없다. 이 설계의 아름다움은 실수하지 말라는 요구를 사람에게서 거두어 구조 자체의 성질로 바꾸어놓았다는 데 있다. 규칙대로 쓰면 장부는 스스로 맞아떨어진다. 맞지 않으면 규칙대로 쓰지 않은 곳이 반드시 있다.
물론 스스로 증명하는 능력에도 경계가 있다. 그 경계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 이 방법이 보장하는 것은 장부 안에서 앞뒤가 맞는다는 사실이지, 장부가 바깥세상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물건 한 묶음의 가치를 두 배로 높게 잡더라도, 차변과 대변에 모두 그 높인 값으로 적으면 장부는 여전히 아름답게 맞는다. 어느 종류의 지출을 통째로 빠뜨려도 장부는 맞는다. 검사하는 것은 적는 법이 올바른지이지, 적은 것이 참인지가 아니다. 가느다란 차이 같지만, 훗날 거대한 장부들이 사고를 낸 뿌리에는 이 차이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장부가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사실뿐이다. 세계에 충실하다는 것까지 증명하지는 못한다. 문과 창을 모두 닫아놓은 방과 같다. 안에서는 물건마다 가지런히 놓여 있고 서로 빈틈없이 들어맞는다. 그러나 방 바깥이 어떤 모습인지는 방 안의 규칙이 한마디도 다스리지 못한다. 사람은 그 가지런한 모양에 한 번 설득되고 나면 벽이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방 안의 질서를 세계의 질서로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부터 어떤 생각이 서서히 모양을 얻는다. 어떤 일을 분명하게 계산할 수 있다면 그 일을 이해한 셈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양쪽을 맞출 수 있는 장부 한 권이야말로 한 시기의 장사를 가장 완전하게 설명해준다는 생각이다.
훗날 자본주의 정신을 말하기 좋아한 이들도 흔히 이 형식적인 완결에 마음을 빼앗겼다.
6. 무엇을 내주고 균형을 얻었는가
그런데 바로 그 책 안에서 파치올리 자신이 이 방법의 경계를 거듭 드러낸다.
처음 얼마를 들여 얻었는지 알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가. 현재의 시장가격이나 다른 가치 기준으로 추산해도 된다고 한다.
자잘한 물건들은 어떻게 하는가. 적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개인이 입는 옷과 침구는 어떤가. 사생활에 관계되므로 비망록에도 넣지 않는다.
설탕과 생강이 뒤섞여 따로 나누기 어렵다면 어떻게 하는가. 먼저 전체 값을 적고, 자세한 내역은 나중에 보충한다.
이 대목들을 한데 놓으면, 그 완벽한 균형이 어디서 오는지 드러난다.
장부의 양쪽을 맞추어주는 것은 절반쯤은 정확한 계산이고, 절반쯤은 묻지 않는 일이다. 숫자 하나를 어림잡는다. 자잘한 물건 한 무리는 건너뛴다. 사적인 일은 문밖에 둔다. 가르기 어려운 것은 우선 전체 금액으로 적는다. 그러고 나면 양쪽이 같아진다. 균형은 형식적으로 완결되었다는 뜻이다. 현실을 남김없이 붙잡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균형 안에서는 추산할 수 있고, 판단을 남겨둘 수 있고, 뒤로 미룰 수 있고, 덜어낼 수 있다.
여기서 앞선 글들에서는 만나지 못한 잔여항이 나타난다.
첫째 글부터 셋째 글까지의 잔여항은 잴 수 없는 것이었다. 관계, 명성, 사람들이 팔기를 거부하는 것들이었다. 넷째 글에서 잔여항은 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더는 갈 곳 없이 몰린 사정은 잴 수는 있었지만, 일부러 자의 바깥에 놓였다. 복식부기에 오면 세 번째 종류가 생긴다. 잴 수 없는 것도, 재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적을 필요 없다는 한마디, 나중에 보충하자는 한마디, 사생활이니까라는 한마디로 장부가 조용히 지나쳐버린 것이다.
장부는 그것과 힘겨루기를 하지 않았다. 양보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묻지 않았다.
묻지 않기만 하면 장부는 언제까지나 맞출 수 있다.
마음속에 조금 오래 놓아두어야 할 말이다. 우리는 대개 장부가 맞지 않는 것은 안에 계산을 잘못한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정반대다. 셈에 넣지 않은 곳이 있기에 셈이 맞는다. 묻지 않은 부분은 장부에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오지 않으면 양쪽을 어긋나게 하지 않는다. 어긋나게 하지 않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영원히 드러나지 않는다. 구축이 스스로 증명하는 범위에는 자신이 묻지 않은 것이 들어 있지 않다. 묻지 않은 것은 장부 위에서는 아예 없는 것과 똑같다.
이 말은 앞선 글들에서 움직이던 기계를 더 차가운 방식으로 다시 설명한다. 전에는 구축이 잔여항에 닿지 못해 장부를 닫을 수 없었다. 이제 구축은 잔여항을 돌아가는 법을 익혔고, 그래서 장부가 닫힌다. 닫혔다고 해서 잔여항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데서 치웠을 뿐이다. 눈앞에서 치운 것은 그렇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검사할 수 있는 어떤 문서에도 더는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장부 바깥의 세계는 줄곧 있었다. 칸 안에 없을 뿐이다. 코트룰리는 비망록에 계약과 약속, 환어음과 갖가지 거래를 반드시 적어두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많은 거래는 먼저 계약으로 성립하며 곧바로 원장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적어두지 않으면 사람은 잊는다. 파치올리도 오가는 편지를 보관하고, 답장 사본을 남기고, 영수증과 보험증서를 간직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문서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적어두어야 했다. 채무자와 채권자의 명단에는 이름과 거처, 관할 조세 구역과 보증인을 분명히 써야 했다.
그렇게 조금 뜻밖인 풍경이 생긴다. 장부가 점점 더 익명적이 되고 순수한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주변의 것들은 오히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 짙게 드러낸다. 누가 서명했는가. 누가 보증했는가. 누가 물건을 보냈는가. 누구의 신용을 믿을 수 있는가. 그 종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공통의 화폐로 값을 매기고 좌우를 맞출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상인이 사는 세계의 일부뿐이었다. 다른 일부는 여전히 계약과 약속, 증서와 대리인, 기억에 매달려 있었다.
두 체계는 저마다 다른 일을 하며 서로를 대신하지 못한다. 장부는 숫자를 다스릴 수 있어도 신뢰를 다스리지는 못한다. 당신이 내게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는 계산할 수 있지만, 실제로 갚을지는 계산할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당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사는지, 누가 보증을 서주려 하는지, 전에도 빚을 떼먹은 적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상사는 장부를 정밀하게 만들수록 다른 한 벌의 일을 함께 가꾸어야 했다. 편지를 주고받고, 인맥을 잇고, 보증을 구하고, 명성을 쌓아야 했다. 숫자 쪽이 세밀해질수록 사람 쪽을 느슨하게 놓아둘 수 없었다. 숫자 자체가 약속을 지키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얽히는 일은 첫째 글부터 여기까지 이어져왔다. 글마다 그 비중이 달랐을 뿐이다. 증여의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명성과 관계에 기대었고 숫자가 차지하는 몫은 작았다. 점토판에 이르면 숫자가 단단해지지만, 여전히 인장과 증인이 필요했다. 주화에 이르면 숫자가 제 발로 걸어갈 수 있게 되지만, 검인 자국과 도시국가의 신용이 뒤를 받쳐야 했다. 이제 스스로를 증명하는 이 장부에서는 숫자가 자기를 검사할 만큼 정밀해진다. 그래도 편지와 영수증과 보험증서가 가득 찬 문서함, 그리고 보증인들이 받쳐주어야 한다. 숫자 쪽은 걸음마다 커졌다. 사람 쪽은 단 한 번도 무대에서 내려간 적이 없다.
7. 이 방법은 무엇을 했는가
이 방법이 실제로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두고는 100년 넘게 논쟁이 이어졌다.
가장 눈에 띄며 가장 멀리 나아간 주장은 독일의 경제사학자 좀바르트가 내놓았다. 그는 복식부기와 자본주의를 거의 같은 것으로 말했다. 둘은 절대로 떼어놓을 수 없으며 그 관계는 형식과 내용의 관계와 같다고 했다. 더 유명한 말도 남겼다. 자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세상을 보는 이 방식에서 나왔으며, 복식부기 이전에는 자본이라는 범주가 존재하지 않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서 복식부기는 상인이 쓰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으로 생각하는 마음 자체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아주 강하게 밀어붙인 말이지만 단순한 과장으로 치울 수는 없다. 오늘날 자본이라는 말은 원래 세상에 있던 무엇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개념이 성립하려면 먼저 방법 하나가 있어야 한다. 여기저기 흩어진 집과 물건과 채권과 현금을 모두 하나의 숫자로 바꾸고, 그 숫자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장부가 없으면 한 사람의 재산은 서로 다른 것들을 모아놓은 더미다. 그런 장부가 생기면 비로소 비교할 수 있고, 축적할 수 있고, 해마다 얼마나 불어났는지 볼 수 있는 숫자가 된다. 좀바르트가 말하려던 것은 이 층위였다.
사회학자 베버의 자리는 더 복잡하다. 그 역시 합리적인 장부 쓰기를 매우 중요하게 보았다. 화폐라는 형식은 형식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복식부기는 당시까지 수익 계산을 위해 발전해온 부기 가운데 기술적으로 가장 고도화된 형식이라고도 했다. 기업 내부의 각 부문 사이에 가상의 교환을 설정함으로써, 거래 하나하나의 수익성을 기술적으로 가장 완전하게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버는 이 연결 고리에 두 번 제동을 걸었다. 둘 다 무거운 제동이었다.
첫 번째 제동을 풀어보면 이렇다. 장부 속 숫자 하나하나는 객관적인 사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숫자는 거래가 성사된 결과다. 거래 뒤에는 양쪽 당사자가 처한 사정과 각자가 가진 힘이 있다. 똑같은 물건도 급하게 팔아야 하는 사람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흥정해 얻는 값은 다르다. 파는 사람은 여럿인데 사는 사람이 하나뿐이라면 또 다른 값이 나온다. 이런 차이는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 모두 사라진다. 말끔한 숫자 하나만 장부 안으로 들어간다. 장부는 결과를 적지만, 그 결과에 어떻게 이르렀는지까지 적지는 못한다.
첫째, 화폐가격은 본래부터 투명하고 중립적인 척도가 아니다. 경쟁과 타협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권력관계가 낳은 결과다.
둘째, 형식적 합리성과 실질적 합리성은 서로 다르다. 숫자로는 아무리 잘 계산되는 일이라 해도 윤리와 정치, 평등의 기준으로 보면 불합리할 수 있다.
그는 듣기에 더 거친 말도 했다. 형식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자본 계산 속에도 사람과 사람의 투쟁은 남아 있다. 그리고 생산이 응답하는 것은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뿐이다. 다른 필요는 채워지지 않는다.
이 말은 장부의 가장 깊은 침묵을 건드린다. 어떤 사람이 굶고 있다. 그의 굶주림은 숫자 한 항목이 아니다. 손에 돈이 있어야만 그 굶주림은 수요가 되고, 어느 장부의 어느 칸에 모습을 드러낸다. 구매력 없는 필요는 장부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느 장부의 균형도 깨뜨리지 않는다. 장부는 그것에 대해 의견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애초에 그것을 보지 못한다.
이 시리즈의 뒤쪽 글들은 거의 내내 이 대목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장부에 오류가 나려면 어느 한 건을 잘못 적어야 한다. 한 사람의 필요가 한 번도 어떤 항목으로 바뀐 적 없다면, 그 필요는 장부에 오류를 낼 수 없다. 그러니 장부가 얼마나 완벽한지와 세상에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서로 무관한 일이다. 장부가 이 문제에 관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위한 칸을 처음부터 마련하지 않았을 뿐이다.
반대 방향의 끝에는 야메이의 반론이 있다. 그는 1949년 이후 줄곧 주장했다. 초기 복식부기가 현대적 의미의 지속적인 이윤 계산이나 의사결정의 최적화에 널리 쓰였다는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말하면 현대 경영의 시선을 과거에 덮어씌우게 된다고 했다. 1964년에는 복식의, 체계적인, 혹은 과학적인 회계가 자본주의 정신의 개화에 결코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가 덧붙인 사실도 있다. 1500년부터 1850년 사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복식 장부 가운데 세밀하게 검토된 것은 스무 벌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문제가 아니다. 표본이 그토록 드문데, 살아남은 몇 권의 잘 쓴 장부에서 거대한 인과 법칙을 끌어내기는 어렵다.
야메이의 의심에는 한 층이 더 있다. 대신 분명하게 말해둘 만한 대목이다. 아름답게 정리된 장부가 있다고 해서 그 장부를 가진 사람이 그것을 보고 결정했다고 할 수는 없다. 장부와 결정이 따로 움직였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주인은 경험과 소식과 직감으로 결정을 내리고, 장부 담당자는 일이 끝난 뒤 결과를 가지런히 적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복식부기는 자본주의의 동력이 아니라 기록자다.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은 장부가 적힌 내용만 남기기 때문이다. 그 순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남기지 않는다.
이런 논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기술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었다고 증명하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남은 것은 무엇을 적었는지뿐이다. 장부는 훌륭한 증거지만, 제 안에 적힌 것에 대해서만 증언한다. 이 상인이 이런 계산을 해보았다는 사실은 입증할 수 있다. 그 계산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까지 입증하지는 못한다.
뒤의 연구들은 시선을 다시 옮겼다. 어떤 연구자는 복식부기의 수사적 기능을 강조한다. 당사자와 일을 조직하는 사람, 채권자, 심지어 지켜보는 사람까지도 어떤 관행을 더 합리적이고 더 믿을 만하며 더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때로 중요한 것은 실제로 결정을 얼마나 바꾸었느냐가 아니다. 장부가 있고, 양쪽의 합계가 맞고, 서로 찾아볼 수 있게 색인이 연결되어 있고, 결산이 이루어지는 장사라면 더 이치에 맞게 하는 장사일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힘이다.
또 다른 연구자는 지식사의 관점에서 물었다. 어째서 숫자가 사실을 담는 첫 번째 그릇으로 여겨지게 되었는가. 그녀가 내린 결론 가운데 이 글에 특히 맞닿는 부분이 있다. 믿는다는 일은 그것을 신용이라고 부르든, 신빙성이라고 부르든, 혹은 쉽게 믿어버리는 성향이라고 부르든, 지식을 생산하는 데 언제나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었다. 숫자의 체계가 사람의 개별성을 지우고 익명적이고 통일된 것이 될수록, 남들이 그것을 믿어주려 하는가라는 밑바탕에서 더욱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매정한 관찰이지만 반박하기는 어렵다. 장부가 쓸모 있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인정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쓸모 있다. 그런데 왜 인정하는가. 대개는 누가 정말 안의 항목을 하나하나 확인했기 때문이 아니다. 충분히 규칙을 지킨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양식이 맞고, 숫자가 가지런하고, 양쪽이 같으며, 이름 있는 상사나 면허를 가진 장부 담당자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숫자는 믿을 만해 보이는 모습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지막에 다시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내려앉는다.
그렇다면 복식부기가 실제로 세상에 내놓은 것은 계산법 한 벌만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설득하는 힘도 함께 내놓았다. 정갈한 장부 한 권을 채권자 앞에, 동업자 앞에, 판사 앞에 펼치면, 말보다 먼저 상대를 사로잡는 것은 조리정연한 생김새다. 그 모양을 보면 사람은 그 뒤의 장사도 마찬가지로 조리정연하리라고 믿고 싶어진다. 둘이 정말 연결되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더욱이 그 문제는 흔히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최근에는 논쟁의 갈래가 더 많아졌다. 어떤 이들은 야메이의 정의가 현대 재무제표의 관점에 지나치게 매여 있다고 본다. 그래서 당시 장부들이 위험을 통제하고 시장의 거래를 청산하며 법적 증거를 남기는 데 했던 일을 낮게 평가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복식부기를 시장 경쟁 속에서 선택된 더 나은 기록 기술로 본다. 또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 전체에서 구체적인 시장의 형성으로 시선을 옮긴다. 리옹의 한 은행에서 이루어진 7,239건의 거래를 통해, 그 장부가 209개 거래처의 장부와 어떻게 서로 비추고 대조되었는지 살펴본다. 그 상호 대응이 외환시장과 예금시장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갔는지를 설명한다.
이 설명들 가운데 어느 것도 입증되지 않았고, 어느 것도 반증되지 않았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이 방법이 좀바르트가 말하듯 혼자서 한 시대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야메이의 말처럼 그저 옆에서 따라간 것만도 아니었다.
8. 장부에는 사람이 있다
1475년의 그 베네치아 교본에는 당시 상인들이 무엇을 사고팔며 어떤 일을 했는지 분명하게 적혀 있다. 수출입이 있고, 비단을 짜는 일이 있고, 건축이 있고, 환어음이 있다.
노예무역도 있다.
이 사람들은 장부 속에서 상품으로 나타나고, 자본으로 나타나고, 채무나 수익으로 나타난다. 차변과 대변이 같다고 해서 그들이 겪은 고통이 한 치라도 줄어들지는 않는다. 팔렸다는 사실도, 다른 사람에게 소유되었다는 사실도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여기서 장부의 차가움은 섬뜩해진다. 사람의 목숨을 실어 나르고, 소유하고, 되파는 데서 얻은 수익을 가지런히 적을 수 있다. 왼쪽과 오른쪽은 한 푼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균형에서 도덕적인 판단 한마디가 저절로 솟아나지는 않는다.
이 대목에서는 말을 똑바로 해야 한다. 사람을 상품으로 장부에 넣는 것은 사람을 철저히 수단으로 삼는 행위다. 더구나 조직을 갖추고 제도가 되었으며 교과서에까지 쓰인 행위다. 장부가 반듯하다는 이유로 그 잘못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뒤에서 한 편을 온전히 써서 이 일을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한 가지만 분명히 보아두면 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기술적 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방법이었다. 무엇이든 숫자로 바꾸되, 더없이 명확하게 바꾸어놓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여기가 그 꿈의 가장 깊은 곳이다. 그래서 가장 분명하게 보아야 할 곳이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이 실패한 곳은 언제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였다. 잴 수 없거나, 재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닿았다. 한 사람을 통째로 장부 안에 적어넣었다. 기록은 명확하고 차변과 대변은 대응한다. 전기에는 오류가 없고 시산표의 양쪽 합계도 같다. 성공했다.
바로 그 성공 때문에, 성공이 아무것도 증명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장부가 맞는다고 일이 옳은 것은 아니다. 형식적으로 완전하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은 서로 다르다. 둘 사이에는 저절로 놓이는 다리가 없다. 흠잡을 데 없는 장부에 도저히 변호할 수 없는 장사가 적혀 있을 수 있다. 장부 자신은 그 때문에 단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와서, 복식부기 안에서 구축은 분명 한 번 진정으로 닫힌 체계를 이루었다. 다만 기묘한 완결이었다. 모든 것을 셈에 넣었기에 맞아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묻지 않았기에, 추산했기에, 적지 않아도 되었기에, 나중으로 보충을 미루었기에 맞았다. 그리고 실제로 셈 안에 넣은 것들조차 셈할 수 있는 한 면만 계산했다.
체계를 닫는 것은 가능하다. 조건은 묻지 않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면 한 가지 오독을 경계해야 한다. 장부를 쓰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이 일을 분명하게 계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명료하게 셈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분명한 장부 한 권이 얼마나 많은 엉터리 셈을 막고, 얼마나 많은 사적 착복을 막고, 끝없이 얽히는 소송을 얼마나 막아주는지, 그 효용은 실재한다. 말하려는 것은 다른 한 가지다. 분명하게 계산하는 것은 능력이지 판단이 아니다. 들어온 것과 나간 것이 맞는지는 말해줄 수 있다. 그 장사를 해야 하는지는 말해줄 수 없다. 앞의 능력을 뒤의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뒤 몇백 년 동안 가장 자주 되풀이되었고, 가장 비싼 값을 치르게 한 오류 가운데 하나다.
구매력이 없는 필요는 불균형이라고 불릴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차변에도 없고 대변에도 없으며 어느 칸에도 없다. 어떤 장부에도 오류를 내지 않으므로 어떤 장부도 그것을 거들떠볼 필요가 없다. 그 필요들은 장부 바깥에 머문다. 소리 없이 머문다.
반대로 장부 위의 그 사람은 셈에 들어왔다. 한 푼의 오차도 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에 관해 중요한 것은 단 하나도 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장부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장부 밖에 있다.
이것이 복식부기가 후대에 남긴 가장 깊은 질문이다. 스스로 오류가 없음을 증명하는 장부는, 도대체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가.
동시에 더 긴 그림자도 남겼다. 장부가 스스로 오류 없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장부에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든든하고, 믿을 만하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흐릿하고, 주관적이고, 제대로 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 일이 중요한지 아닌지도 차츰 장부에 넣을 수 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이 그림자는 그 뒤 몇백 년에 걸쳐 뻗어나간다. 계산할 수 있는 것은 갈수록 중히 여겨지고, 계산할 수 없는 것은 갈수록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누군가 알아차린다.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은 줄곧 있었으며, 한 번도 빚을 갚으라는 요구를 멈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 대목이 남긴 것은 나쁜 도구가 아니다. 너무나 잘 드는 도구다. 너무 잘 들어서 사람들이 차츰 그것을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삼게 된 도구다. 장부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 셈에 치고, 양쪽의 합계를 맞출 수 있으면 제대로 된 일로 여긴다. 구축은 여기서 실수하지 않았다. 성공했다. 성공 뒤에 생겨난 곤란은 바로 그 성공 때문에 생겨났다. 뒤에 이어질 글들에서 사람들은 이처럼 셈이 맞는 장부를 들고, 본래 장부 위에 없던 것들을 점점 더 많이 재러 나서게 된다.
셈은 아직 맞지 않는다. 장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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