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말을 한 번 살아 보기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吾言甚易知也,甚易行也,而人莫之能知也,而莫之能行也。言有君,事有宗,其唯无知也,是以不我知。知者希,则我贵矣,是以圣人被褐而怀玉。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1. 저장해 둔 말은 많다
끝까지 듣기. 자신을 다 써 버리지 않기. 언제나 옳음을 증명하려 하지 않기.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글을 저장한다. 언젠가 다시 읽겠다고 생각한 문장이 화면 안에 조금씩 쌓인다.
그래도 다음 다툼에서는 상대의 말에 끼어든다. 쉬려던 밤에 일을 하나 더 넣는다. 가르침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다. 기억하면서도 늘 하던 동작을 하는 자신을 보고 있을 때도 있다.
제70장은 오랫동안 말해 온 사람이 잠시 멈추는 듯한 장이다. ‘吾言甚易知也,甚易行也,而人莫之能知也,而莫之能行也.’ 말은 알기 쉽고 행하기 쉽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알지도 행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세상에 이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정확한 통계로 읽을 필요는 없다. 듣는 것과 삶으로 옮기는 것 사이에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거리를 강하게 표현한다.
2. 되풀이할 수 있는 것과 그때 할 수 있는 것
‘易知’와 ‘易行’은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기술을 알아야만 다가갈 수 있는 가르침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한편 사람은 습관과 욕망과 상황에 움직여 알기도 행하기도 어렵다. 앞의 앎은 모방만, 뒤의 앎은 참된 이해만 뜻한다고 글자의 의미를 두 단계로 고정하지 않아도 이 대비를 생각할 수 있다.
집중이 왜 중요한지 설명할 수 있어도 작업 도중 휴대전화로 향하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마음에 작은 빈틈이 생겼을 때에는 설명을 떠올리기 전에 화면이 켜져 있다.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이해만으로는 아직 달라지지 않는 움직임이 있다.
한 번 했다고 영원히 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도 아니다. 오늘 잘 들어도 내일 나에게 아픈 말을 만나면 서둘러 반박할 수 있다. 실천은 시험에 합격하면 끝나는 증명서보다 그때마다 작동시켜야 할 능력에 가깝다.
그래서 다 아는 자신과 아무 쓸모 없는 자신 사이를 오갈 필요가 없다. 이해한 부분이 있다. 아직 못 하는 부분도 있다. 둘을 함께 인정하면 다음에 연습할 것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이 장의 탄식은 더 좋은 문장을 계속 찾는 손을 잠시 멈춘다. 모자란 것은 다음 명언 한 줄이 아닐지도 모른다.
3. 평범한 것일수록 지나치기 쉽다
잘 들으라는 가르침은 새롭지 않다. 그래서 이미 안다고 지나치며 더 복잡하고 신선한 방법에 눈을 돌린다. 하지만 자주 듣는 말이라는 사실과 내가 자주 실천한다는 사실은 다르다.
실천이 어려운 까닭이 개인의 마음에만 있지도 않다. 회의에서 먼저 말한 사람이 평가받고 오래 생각하는 사람은 기회를 잃는다. 조직은 솔직함을 요구하면서 나쁜 소식을 내놓지 않는 사람만 칭찬한다. 그런 곳에서는 이해하더라도 그대로 행동할 조건이 충분하지 않다.
자신의 습관도 있다. 인정받고 싶고 창피하고 싶지 않으며 의심받으면 빨리 방어하고 싶다. 흔한 움직임이지만 인간에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능으로 정해졌다고 선언할 필요는 없다. 습관도 환경도 바꿀 수 있다. 다만 한 번의 결심으로 전부 바뀌지는 않는다.
간단한 문장은 쉬운 실천과 같지 않다. 짧은 한 줄을 삶에 넣으면 시간과 피로, 옛 경험과 주변의 반응을 만난다. 건너편이 보여도 건널 발판은 따로 필요하다.
피곤할 때 인내를 잃는다면 자신을 꾸짖는 것보다 휴식을 늘리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일이 상시 응답을 요구한다면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탓하기 전에 응답의 범위를 상의해야 할 수 있다. 가르침에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가르침이 얕다는 뜻은 아니다.
4. 방법의 수보다 그 뿌리를 본다
‘言有君,事有宗.’ 채택 본문은 이 순서이고 통행본에는 ‘言有宗,事有君’이 있다. 군과 종은 통솔하는 것과 근본이라는 이미지를 빌려 말과 행동에 의지하는 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까지 앎을 뽐내지 않고 앞을 빼앗지 않으며 상대에게 판단할 자리를 남기고 승리에도 절도를 갖는 태도를 읽었다. 각각 다른 방법이지만 내 행동을 다른 사람의 자리를 전부 채우는 것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물음이 밑에 있다.
방법만 모으면 말은 충돌한다. 한 책은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하고 다른 책은 물러나라고 한다. 어제는 지속이 중요했고 오늘은 놓는 것이 중요하다. 상황에 어떤 격언을 붙일지 제비뽑기하듯 판단하게 된다.
왜 그 방법이 필요한지 생각하면 조금 더 보인다. 지금 보호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놓기 싫을 뿐인 자세는 무엇인가. 답에는 여전히 상황 판단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문장의 수만큼 헤매지는 않을 수 있다.
숙련되어도 규칙과 전문 지식이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왜 규칙이 있고 무엇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지 알아 조정할 부분을 더 잘 가린다. 공통의 뿌리는 모든 지식을 없애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 지식이 서로를 비출 수 있게 하는 근거다.
5. 배울 수 있지만 이해를 대신할 수는 없다
‘其唯無知也,是以不我知.’ 앞의 문장에 이으면 말과 일의 근본을 모르기에 말하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읽기가 가능하다. 글자에서 곧바로 이해는 사람 사이에 전달될 수 없다는 교육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연재는 거기서 배움에 필요한 자신의 참여를 생각한다. 설명은 전달되고 시범과 연습도 실제로 도움이 된다.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다. 그러면서 의미를 자신의 상황과 잇는 작업은 듣는 쪽에도 필요하다.
여러 번 들은 말이 어느 날 구체적으로 이해되는 일이 있다. 돌아가는 길을 겪은 뒤일 수도 있고, 좋은 예를 보거나 누군가와 차분히 이야기한 뒤일 수도 있다. 고통만이 참된 이해의 대가는 아니다. 교사가 일부러 학생을 고생시킬 근거도 되지 않는다.
좋은 교사는 상대에게 보이도록 설명하고 의문을 말할 시간을 만든다. 문을 미는 사람이 본인이어도 열쇠를 찾거나 무거운 문을 받쳐 주거나 위험한 길을 알려 줄 수 있다. 스스로 걷는 것과 도움을 받는 것은 반대가 아니다.
이 연재도 몇 개의 입구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모든 설명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자신의 경험으로 살피고 이견을 가져도 된다. 다른 사람을 누르지 않는 일을 말하면서 저자와 같은 방식으로만 이해하라고 요구한다면 그 글이 먼저 문을 닫는 셈이다.
6. 거친 옷 안의 옥은 희소함으로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
‘知者希,則我貴矣,是以聖人被褐而懷玉.’ 통행본에는 ‘知我者希,則我者貴’라는 형태도 있다. 이해하는 사람이 적음과 진정으로 받아 이어 가는 일의 귀함 등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즉(則)이 오직 따른다는 뜻이므로 실천을 권하는 말로만 읽어야 한다고 한정하지 않는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내 옳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깊어서 전달하기 어려운 생각도 있지만 설명이 부족하거나 틀린 생각도 있다. 자기 판단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비판을 듣는 것은 함께할 수 있다.
그 위에서 거친 옷 안에 옥을 품는 모습은 아름답다. 겉으로 평범해 보인다고 속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포장만으로 재면 훌륭한 자기소개를 하지 않는 이를 계속 놓친다.
그렇다고 눈에 띄지 않을수록 지혜롭고 표현을 잘할수록 속이 비었다고 뒤집는 것도 외모 판단이다. 수수한 옷은 도덕의 증명서가 아니며 일을 분명히 설명하는 것이 반드시 허영인 것도 아니다.
자신에게 옥을 품는다는 것은 남이 보고 있는지 확인하기보다 실제 능력과 품성을 기르는 일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일을 설명하고 적절한 인정을 요구하며 도움을 청해도 된다. 가치 전부를 박수에 맡기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응답이 하나도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제67장의 한 가지 모습에 갇히지 않는 태도와도 이어진다. 무게가 있어도 그것을 보이는 데만 삶을 쓰지 않아도 된다. 아직 배우고 있다면 속에 이미 완벽한 옥이 있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7. 한 문장을 한 행동으로 옮긴다
이미 동의하는 가르침 하나를 고른다. 가장 거창한 말보다 오늘 만날 법한 말이 좋다. 끝까지 듣고 답한다는 문장이라면 다음에 상대가 생각하며 말할 때 대신 문장을 완성해 주지 않고 기다려 본다.
못 했다면 자신을 판정하기 전에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본다. 오해받을까 두려웠는가. 시간이 모자랐는가. 그 말이 옛 상처를 건드렸는가. 나는 수양이 없다는 총평으로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 보이지 않는다.
행동의 조건도 마련할 수 있다. 집중하려면 방해를 잠시 줄인다. 솔직히 말하고 싶다면 비교적 안전한 관계에서 진심 하나를 말한다. 지나치게 약속하지 않으려면 이미 맡은 일을 세어 본 뒤 대답한다.
어느 것도 깨달음의 순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기에 쓸 만큼 화려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오래 들어 온 말이 그런 움직임 속에서 남의 문장으로만 남지 않게 된다.
한 번 했다면 그 한 번을 인정한다. 아직 못 하는 것을 알았다면 더 구체적으로 배울 기회로 삼는다. 실천 자체를 매일 성공을 전시해야 하는 경쟁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8. 아직 모른다는 말로 나아간다
제70장은 힘을 쓰고 사람을 키우며 다툼을 대하는 법을 읽은 뒤, 그것들이 실제 생활에 들어왔는지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기 위한 문장이 한 묶음 더 생겼을 뿐은 아닌가.
제10장과 제51장의 낳고 기르되 소유하지 않는 현덕에서 세 보물과 다투지 않는 덕으로, 마지막에는 거친 옷과 그 안의 옥이 남는다. 겉이 요란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안의 실제 작업까지 생략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장은 모르는 것을 안다는 물음으로 나아간다. 실천을 시작하면 생각보다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읽은 일이 헛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저장해 두었던 말이 비로소 화면에서 나와 지금의 나를 만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제8논고와 Zenodo 판을 참고할 수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제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