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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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69장 · 총 81장

이제 질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用兵有言曰:吾不敢为主而为客,吾不进寸而退尺。是谓行无行,攘无臂,执无兵,乃无敌矣。祸莫大于无敌,无敌近亡吾,葆矣。故乘兵相若,则哀者胜矣。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이겼던 경험이 듣지 않을 이유가 된다

회사가 순조롭게 성장한다. 고객의 불만은 사용법을 몰라서이고 신입의 질문은 경험이 부족해서라고 정리된다. 성공은 처음에 그 회사에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차츰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증거로 쓰이기 시작한다.

개인에게도 같은 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을 확인하던 사람이 여러 번 성공하며 신중함을 군더더기로 느끼기 시작한다. 전에 옳았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틀릴 수 없다는 결론으로 어느새 바뀐다.

‘禍莫大於無敵.’ 여기서는 제69장을 그 확신에 대한 경계로 읽는다. 눈앞에 강한 상대가 있다는 것만 위험은 아니다. 아직 보지 못한 것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일도 위험을 키운다.

이 장은 용병의 말을 빌린다. 제31장이 승전을 장례와 연결했듯 노자는 전쟁을 깊이 경계한다. 다만 불가피한 무력까지 전혀 인정하지 않는 단순한 주장과는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쓰더라도 즐길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2. 먼저 거는 손을 잠시 멈춘다

‘吾不敢為主而為客,吾不進寸而退尺.’ 주와 객은 먼저 일으키는 쪽과 그에 응하는 쪽으로 읽을 수 있다. 한 치 나아가기보다 한 자 물러난다는 강한 대조가 놓인다.

아직 상의할 수 있던 일이 상대보다 세게 나가야 한다는 기분 속에서 싸움이 된다. 요구를 조금 높이고 거친 말을 하나 되돌린다. 양쪽 모두 대응했을 뿐이라고 여기지만 그 대응이 다음 대립을 더한다. 나중에는 멈추려 해도 체면이라는 관문을 지나야 한다.

물러남은 그 관성에 반대 방향의 동작을 준다. 더 밀어붙이는 일이 정말 필요한가. 한 걸음 물러날 때 잃는 것은 필요한 보호인가, 먼저 물러설 수 없다는 자기 모습인가. 제67장의 앞을 다투지 않는 태도와 제68장의 정면 대결에 무작정 끌려들어가지 않는 태도가 겹친다.

그러나 객으로 있으면 싸울지 말지를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도발하지 않아도 침략과 괴롭힘은 일어난다. 피해자가 충분히 양보한다고 상대의 악의를 취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어하고 도움을 청하며 저항할 필요도 있다.

이 구절은 내가 시작하거나 격화시키는 손을 경계하는 데 쓰고 싶다. 공격받은 사람에게 왜 조금 더 물러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도구로 쓰지 않는다. 절제는 해칠 힘을 가진 쪽에 더 무겁게 요구되어야 한다.

3. 자세를 거두어도 위험은 있다

‘行無行,攘無臂,執無兵,乃無敵矣.’ 행군하되 펼친 대열이 없는 듯하고, 팔을 휘두르되 내민 팔이 없는 듯하며, 무기를 들되 무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역설적인 표현이 무력의 눈에 띄는 모습을 차례로 뒤에 놓는다.

장구와 주석에는 서로 다른 이해가 있다. 이 연재는 여기서 힘이 있어도 온 세상을 적과의 대결로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읽는다. 만나는 사람을 아군과 적군으로만 나누면 다르게 생각하면서도 대화할 사람, 함께 도울 사람이라는 가능성을 먼저 지워 버린다.

이 독해의 ‘乃無敵矣’는 모두를 쓰러뜨린 무적이 아니라 사람을 적으로 삼는 것을 중심에 두지 않는 태도를 향한다. 실제로 적대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으리라는 약속은 아니다. 위세를 거둔 사람도 다칠 수 있다.

불필요한 적의를 되도록 만들지 않는 것과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앞의 일은 내 선택과 관계되지만 뒤의 일은 혼자 결정할 수 없다. 둘을 섞으면 절제의 권유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말로 바뀐다.

제66장의 부쟁과 연결하면 연습할 수 있는 것은 대립을 유일한 시선으로 삼지 않는 일이다. 보호가 필요하면 보호하고 거절할 필요가 있으면 거절한다. 그러면서도 적이 아닌 사람까지 적으로 취급하지 않을 여지를 남긴다.

4. 두 무적을 대조해서 읽는다

이어 ‘禍莫大於無敵’이라 한다. 같은 말이 바람직한 것과 위험한 것 양쪽에 놓인 듯하다. 이 글은 앞을 불필요한 적대를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뒤를 내 상대가 될 사람은 없다는 믿음으로 대조한다. 문맥의 긴장을 읽는 한 해석이지 유일한 훈고는 아니다.

통행본의 ‘禍莫大於輕敵’에도 교만을 경계하는 깊이가 있다. 상대를 가볍게 보는 일과 나를 무적이라 여기는 일은 같은 태도의 두 면이 될 수 있다. 이문만으로 후대 사람이 고의로 사상을 얕게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원문 패널의 문장 부호는 ‘无敌近亡吾,葆矣’다. 이 글의 설명에서는 이어진 글자를 ‘无敌近亡吾葆矣’처럼 붙여 이해하며 통행본의 ‘幾喪吾寶’도 참조한다. 오늘의 문장 부호까지 고대 필사본이 하나로 확정해 준 것은 아니다.

잃어 가는 보물을 제67장의 세 보물에 연결하면 교만의 작용이 보인다. 자애는 약함, 절약은 소극적 보수성, 앞을 다투지 않는 태도는 의욕 없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힘을 받쳐 주던 절도가 성공하기 전까지만 필요했던 것으로 버려진다.

교만은 늘 거만한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결단력과 효율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위험을 알리는 사람은 발목 잡는 사람이 되고, 다른 필요를 말하는 사람은 큰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밖의 어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순조로울수록 듣기 싫은 말이 들어올 입구를 지켜야 한다. 과거의 성공이 행동할 능력을 늘릴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이 문제를 지적할 자격을 빼앗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5. 이겨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

‘乘兵相若,則哀者勝矣.’ 힘이 비슷한 군대가 마주할 때 노자는 애(哀)를 승리하는 쪽에 놓는다. 애에는 슬픔과 서로 아끼는 마음, 해치기를 주저함 등이 들어갈 수 있다. 전쟁 자체의 비애에 주목하더라도 적군의 평범한 사람을 향한 연민까지 제외할 필요는 없다.

남겨 두고 싶은 것은 공격할 수 있어 기뻐하지 않고, 이겼다고 모든 대가를 정당화하지 않는 태도다. 적과 아군이라는 이름 뒤에도 아프고 잃는 사람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 슬픔이 판단에 절도를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연민이 있는 군대는 반드시 이긴다는 역사 법칙은 아니다. 전쟁의 결과에는 많은 조건이 작용하고 동정받아야 할 쪽도 패배할 수 있다. 애가 중요한 것은 승리에 도움 되어서만이 아니라 이겨도 사라지지 않는 손실이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 제90회에는 제갈량이 등나무 갑옷을 입은 군대에 화공을 쓰고 참상을 보며 눈물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소설의 한 장면이지 확인된 전기적 사건은 아니다.

승자의 눈물은 화공을 면책하지도 않는다. 후회가 있다는 것은 피해가 갚아졌다는 뜻이 아니고, 불가피했다고 느끼는 것도 누가 그 불을 준비했느냐는 질문을 없애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오히려 승리 뒤에도 책임이 남음을 보여 준다.

여기에 제31장의 비애와 장례가 이어진다. 이겼다고 사건이 좋은 일로 씻기는 것은 아니다. 경쟁을 전쟁과 동일시해서는 안 되지만 일상에도 작은 물음은 있다. 문제가 해결된 뒤 다시 상대를 모욕할 필요가 있는가. 물러난 사람을 계속 밟는 즐거움까지 필요한가.

6. 잘될 때 세 보물을 다시 만져 본다

다툼이 커지고 있다면 다음 말은 필요한 말인지, 앞의 말로 성이 차지 않았을 뿐인지 살펴본다. 요구를 지킨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만 늘릴 때도 있다.

순조롭다면 다른 질문을 할 수 있다. 지금 누구의 말이라면 들을 수 있을까. 동의만 닿고 이견은 모두 무지로 판정된다면 무적이라는 착각이 작동하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세 보물을 다시 살핀다. 앞에 소중히 여길 사람이 있는가, 이겨야 할 대상만 있는가. 자원을 무한한 듯 쓰고 있지는 않은가. 매번 앞자리를 확보해야만 안심하게 된 것은 아닌가.

지금 저항할 수밖에 없는 곳에 있다면 조용히 물러서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지키는 것과 해치는 일에 취하지 않는 것은 함께할 수 있다. 분노가 있다고 요구가 무효가 되지도 않고, 선의가 있다고 안전이 불필요해지지도 않는다.

강함은 아무에게도 다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만은 아니다. 해칠 힘이 있을 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고, 한 일에 대해 이겼다는 말 말고도 답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7. 이기려던 이유를 승리 속에서 잃지 않기

제67장의 자애, 제68장의 분노에 행동을 맡기지 않는 태도가 여기서는 싸움 뒤 어떤 자신이 남는가라는 무거운 물음이 된다.

주가 되려 하지 않는 말은 먼저 거는 손을 멈추고, 무적의 경고는 과신을 끊으며, 애는 다친 사람을 승리가 삼키지 못하게 한다. 셋을 함께 읽어야 노자를 효율적으로 이기는 방법만 알려 주는 조언자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말은 이해하기 쉬운데 실제로 이해하고 행하는 사람은 적다는 목소리로 옮겨 간다. 그전에 질문 하나를 남기고 싶다. 나는 처음에 왜 이기려 했는가.

이기려고 지키고 싶었던 것을 전부 내주었다면, 아무에게도 지지 않을 듯했던 순간이 가장 많이 잃은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제8논고와 Zenodo 판을 참고할 수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제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