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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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68장 · 총 81장

힘을 과시하는 데 다 쓰지 않기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善为士者不武,善战者不怒,善胜敌者弗与,善用人者为之下,是谓不争之德,是谓用人,是谓配天,古之极也。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대화가 승부로 바뀌는 순간

이야기 도중 누군가 목소리를 높인다. 의견의 차이가 도발이라 불리고 의제는 조금씩 누가 먼저 물러나느냐는 승부로 바뀐다.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보다 졌다고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방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런 자리에서 곧장 같은 강도로 되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조건에 대한 말과 상대에 대한 평가를 나누고 아직 확인하지 않은 점을 묻는다. 분위기가 한 번에 좋아지지는 않을 수 있다. 그래도 모두가 더 세게 나와야 하는 흐름에 작은 틈이 생긴다.

조용한 사람이 반드시 옳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반드시 미숙한 것은 아니다. 제68장에서 생각하려는 것은 누가 문제를 다루고 있고 누가 지지 않겠다는 증명만 다루기 시작했느냐는 차이다.

2. 네 가지 능력은 무엇을 덜어 내는가

‘善為士者不武,善戰者不怒,善勝敵者弗與,善用人者為之下.’ 군사를 잘 이끄는 사람은 무력을 뽐내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분노에 맡기지 않는다. 적을 이기는 데 능한 사람은 정면 대결에 무작정 끌려들어가지 않으며,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그 아래에 선다.

군사와 지휘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니 모든 생활 장면에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능력을 가장 과장된 겉모습으로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네 문장은 이어진다. 강하다고 계속 말하는 것과 실제로 감당하는 것은 다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과 모두의 능력이 살아나는 것도 같지 않다.

‘不武’, ‘不怒’, ‘弗與’, ‘為之下’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러서는 구실이 아니다. 자극을 받아도 무엇이 필요한지 분별하고 가장 쉽게 나오는 반응을 가장 좋은 행동으로 착각하지 않는 절도다.

힘은 가져도 되고 필요하면 써도 된다. 언제나 굴복시킬 상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그 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3. 분노에 이유가 있듯 행동에도 이유가 필요하다

옛 실적과 아는 사람의 이름을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일하면 믿을 수 있음을 알게 되는 사람. 익숙한 대비다. 그러나 말을 잘하면 속이 비고 과묵하면 유능하다는 판별법으로 만들 수는 없다. 능력은 결국 실제 일에서 확인해야 한다.

‘不武’가 묻는 것은 일로 해결해야 할 것을 위압으로 대신하지 않느냐는 문제다. 설명이 모자라면 목소리를 높이고 근거가 약한 지시일수록 따르라고 강하게 요구한다. 자리는 조용해져도 이해가 깊어진 것은 아니다.

‘不怒’ 역시 화내지 말라는 명령은 아니다. 분노는 부당함을 알아차리게 하며, 상처 입은 사람은 남에게 평온한 표정을 보여 줄 의무가 없다. 다만 화낼 이유가 있다는 것과 그 순간 하고 싶은 행동이 모두 옳다는 것은 다르다.

협상에서 상대가 일부러 아픈 곳을 찌르는 경우도 있다. 내가 기세에 말려 더 말하거나 더 양보하기를 기다린다. 웃으며 참을 필요는 없다. 대화를 멈추고 부적절한 방식을 지적하며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떠날 수도 있다. 중요한 판단까지 그 자극에 맡기지 않는 것이다.

일상에는 다 쓴 메시지를 보내기 전의 짧은 순간이 있다. 문제를 전하려는 문장인가, 끝에 상대를 아프게 하려는 문장인가. 찌르는 한 줄을 지워도 정당한 요구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지내며 나는 중요한 순간에 판단을 지킬 수 있는지에 점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감정이 적은 사람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감정이 있을 때에도 사실과 결과와 다른 사람의 사정이 들어올 자리를 남길 수 있는가. 냉정함을 더 정확하게 해치는 데에만 쓴다면 격노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4. 상대가 마련한 경기장에 꼭 들어갈 필요는 없다

‘善勝敵者弗與’는 상대와 강함을 겨루며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을 피하는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돌을 만난 물이 돌아가는 모습은 상대가 바라는 반응 말고도 움직일 방법이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두 회사가 낮은 가격과 많은 기능만 겨루면 이익률은 낮아지고 유지·관리 부담은 커진다. 다른 질문은 없을까. 기능 비교표에는 실리지 않지만 실제로 불편을 겪는 이용자는 없는가. 그동안 외면되어 온 불편을 해결하면 같은 경쟁을 끝없이 따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

경쟁을 피하면 성공한다는 사업 비결은 아니다. 새 방향도 실패할 수 있고 자원 경쟁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상대가 만든 잣대를 일을 평가할 유일한 잣대로 삼지 않는 데에는 의미가 있다.

제66장의 부쟁과 연결하면 종착점은 상대를 더 솜씨 있게 모욕하는 데 있지 않다. 충돌할 필요가 없어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결과도 가능하다.

물론 피할 수 없는 대립도 있다. 권리가 침해되고 사람이 다치고 있다면 정면으로 멈추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딪침 자체를 용기의 증거로 삼지 않고, 내가 떠나고 싶지 않은 다툼을 전부 불가피하다고 바꾸어 부르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판단을 돕는다.

5. 능력을 쓰는 것과 사람을 다 써 버리는 것

‘善用人者為之下.’ 위에서 지시하면 성과가 누구의 이름으로 돌아가는지 잘 보인다. 조금 아래로 가면 실제로 일을 막는 것이 더 잘 보인다.

한 사람에게 일을 몇 개 더 넣을 수 있는지 묻는 관리가 있다. 반대로 어떤 정보가 모자란지, 어떤 판단이 막혀 있는지, 왜 재작업이 잦은지 묻는 관리도 있다. 같은 인원이라도 그 안에서 보내는 하루는 크게 다르다.

채택 본문의 결구는 ‘是謂用人’이고 통행본에는 ‘之力’이 더 있다. 이 차이에서 사람을 온전히 보자는 윤리적 질문을 넓힐 수는 있다. 하지만 ‘用人之力’은 사람의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는 뜻일 수도 있어 두 글자만으로 착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돕는지 소진시키는지는 실제 관계에서 구분해야 한다.

좋은 관리자는 길의 장애물을 치우는 사람과 비슷할 때가 있다. 외부 압력을 다루고 자원을 확보하며 서로 충돌하는 요구를 정리한다. 일하는 사람은 매일 아침 같은 장애물을 넘는 데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그 작업은 더 빨리 하라는 독촉보다 도움이 될 수 있다.

성과가 나오면 실제로 한 사람에게 공을 돌려준다. 다음에 목숨 걸고 일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일을 한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판단할 공간과 정보, 적절한 보수와 인정은 산출을 높이는 도구로만 주는 것이 아니다.

제65장과 제66장을 겹쳐 보면 검증할 질문은 간단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자기 판단을 더 갖게 되는가. 아니면 내 의도를 실현하는 데만 능숙해지는가.

6. 하늘과 짝한다는 오래된 이상

‘是謂不爭之德,是謂用人,是謂配天,古之極也.’ 이 일련의 태도를 다투지 않는 덕이라고 부른다.

덕은 좋은 성격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힘을 쓰는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위세를 부리고 분노를 부추기며 부딪치고 높은 자리를 계속 차지하지 않아도 작용할 수 있다.

‘配天’은 이를 고대의 하늘 질서와 어울리는 것으로 놓는 말이다.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이상을 읽을 수 있지만 계절과 흐르는 물로 자연에는 경쟁도 폭력도 없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자연은 인간이 바라는 온화한 장면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古之極也’는 이 태도를 오래되고 높은 기준에 잇는다. 모든 것을 자기 발명이라고 자랑하지 않는 목소리를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노자라는 개인이 이 네 글자로 자기 사상의 저자 자격을 포기했다는 고증이 되지는 않는다.

오늘의 삶에서는 조금 가까운 질문을 놓을 수 있다. 계속 누르고 밀고 겨뤄야만 일이 움직이는가. 불필요한 힘을 거두면 오히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가. 우주가 대신 이겨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이미 있는 조건을 보는 것이다.

7. 다음에 화가 날 때

무감정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아도 된다. 화가 난 사실을 인정한 뒤 어떻게 응답할지 선택한다. 감정과 행동 사이에 조금 공간이 있으면 판단이 돌아올 길도 남는다.

물러나는 선택을 언제나 현명한 선택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다. 분명히 중단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의 개입을 부탁해야 할 때가 있다. 밖에서 보기에 물러났는지 나아갔는지보다 무엇을 지키며 어떤 결과를 낳는지 생각한다.

함께 일할 때에는 더 잘 따르게 할 방법을 한 번 찾는 대신 무엇이 그 사람의 일을 가로막는지 물어보자. 관리 기술처럼 보이지 않아도 실제 벽 하나가 없어질 수 있다.

이김의 뜻도 조금 넓혀도 된다. 대화 뒤 문제가 해결되고 사람들이 사실대로 말할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을 지키려고 침묵할 필요가 없다. 그것도 승패의 쾌감과 별개로 값진 결과다.

8. 고요함 속에도 사람이 있다

앞 장의 자애와 용기가 여기서는 싸움과 승리, 사람을 이끄는 일처럼 강함을 뽐내기 쉬운 자리로 들어왔다. 힘을 가질수록 책임지는 것인지 사람들이 움츠러드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

제69장은 자신이 무적이라 여기는 위험과 싸움 속에서도 슬픔을 지니는 의미를 묻는다. 슬픔과 절도를 확실히 이기기 위한 도구로만 만들면 중요한 부분을 잃는다.

배울 만한 숙련은 조용한 겉모습만이 아니다. 힘을 쓸 때마다 사람을 낮게 눌러 놓고 끝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풀 수 있는 문제는 풀고 필요한 저항은 한다. 그러면서 더하지 않아도 되는 모욕은 더하지 않는다. 과시에 다 쓰지 않은 힘으로 비로소 본래의 일을 마칠 수도 있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제8논고와 Zenodo 판을 참고할 수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제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