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소중히 여기는 데서 자란다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天下皆谓我大,大而不肖,夫唯不肖故能大。若肖久矣,其细也,夫我恒有三宝,持而保之:一曰慈;二曰俭;三曰不敢为天下先。慈故能勇,俭故能广,不敢为天下先故能成事长。今舍其慈且勇,舍其俭且广,舍其后且先,则必死矣。夫慈,以战则胜,以守则固,天将健之如以慈垣之。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주석은 을본의 ‘不宵’를 ‘不肖’로 읽고 ‘夫唯不肖故能大’를 채택합니다. 갑본에는 결락이 있고 남아 있는 글의 순서도 다르므로, 갑본과 을본의 문장이 같다고 묶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1. 두려운 채로 목소리를 낸다
평소에는 발언하기까지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 어느 회의에서 입을 연다. 목소리는 조금 떨린다. 그래도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채 이야기가 끝나는 것을 지나칠 수 없었다. 갑자기 두려움을 잃은 것이 아니다. 두려운 채로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평소에는 못 하던 일을 해내는 예도 같은 방향을 보여 준다. 다만 이를 어머니는 언제나 영웅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피로와 위험 속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 안전하게 말할 조건이 없는 사람도 있다. 행동하지 못했다고 사랑이 부족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제67장은 용기의 뿌리를 자(慈)에서 찾는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강함이 아니라 어떤 생명과 일을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행동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2. 세 가지 보물을 놓지 않고 지닌다
‘我恒有三宝,持而保之。一曰慈,二曰儉,三曰不敢為天下先.’ 자애, 절약, 감히 천하의 앞에 나서려 하지 않음. 셋 모두 바깥으로 향하는 힘에 한 번 절도를 준다.
자애는 이기기 위해 생명을 소모품으로 삼지 않는다. 절약은 쓸 수 있는 것을 지금 전부 써 버리지 않는다. 앞을 다투지 않는 태도는 모든 장면을 내가 맨 앞에 서야 하는 경쟁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노자는 자애로 용감할 수 있고 절약으로 넓어질 수 있으며 먼저 나서지 않아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면 나중에 이익을 얻는다는 교환의 장치는 아니다. 자애로운 자세로 충성을 사려는 순간 자애는 이미 도구가 된다. 세 보물은 겉의 훌륭함보다 행동이 무엇을 지키는지 계속 묻게 하는 것이다.
3. 자애가 용기를 받칠 때
보여 주기 위한 용기에는 관객이 필요하다. 강한 말을 한 번 하면 물러날 수 없어진다. 무엇을 지키려고 시작했는지보다 겁먹은 것을 들키지 않는 일이 중요해진다. 그래서 필요한 범위를 넘어 세게 행동한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용기는 다른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지금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덜 다치게 하는 방법은 없는가. 물러나는 편이 사람을 보호한다면 물러날 수 있는가. 회의에서 진실을 말할 때에도 내가 용감함을 보이기 위한 발언과 모두가 잘못에 끌려가지 않게 하려는 발언은 말의 선택부터 달라진다.
어려움에 빠진 창업자가 지속하는 힘에도 사업과 동료를 향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있으면 한계까지 버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 지속하면 안 된다고 인정하고 동료들이 안전하게 떠나도록 마련하는 편이 더 큰 용기를 요구할 때도 있다.
장의 끝은 ‘夫慈,以戰則勝,以守則固,天將健之如以慈垣之’라 하며 전투와 방어와 하늘의 보호에까지 자애의 힘을 넓힌다. 채택 본문의 자애를 담장으로 삼는 이미지와 달리 통행본에는 ‘天將救之,以慈衛之’가 있다. 모두 고대의 윤리와 천도에 관한 표현이지, 선량하면 반드시 이기고 구조된다는 경험 법칙은 아니다.
오늘 남겨 둘 것은 서로의 생명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힘든 때에도 함께 버틸 이유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애는 내 편만 감싸는 담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 바깥의 사람을 얼마든지 해쳐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 용기는 다른 것이 된다.
4. 절약은 계속할 조건을 남기는 일이다
‘儉故能廣.’ 검소함은 필요한 것까지 참는 일도, 부족한 사람에게 식사와 휴식을 더 줄이라고 하는 일도 아니다. 선택할 여지가 있는 쪽이 자원을 무엇을 위해 쓰고 있는지 살피는 말이다.
조금 형편이 좋아지면 일을 넓히고 싶어진다. 기운이 돌아오면 일정을 가득 채운다. 하나씩에는 이유가 있어도 모두 합치면 변화를 받아들일 공간이 없어진다. 정말 중요한 일이 왔을 때에는 이미 손을 너무 멀리 뻗어 받아들일 수 없다.
제59장의 길러 두는 태도처럼 절제는 쓰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쓰고 살아갈 토대를 망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교육과 유지 보수, 휴식과 돌봄에 쓰는 돈은 그 토대를 두껍게 만들기도 한다.
주의력에도 절약이 필요하다. 화제와 기회와 소식이 모두 놓치지 말라고 부른다. 하루는 가득 찼는데 정작 중요한 일에는 한 시간도 주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몇 가지를 거절하는 것은 다음에 더 많이 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저녁 식사와 대화를 도중에 계속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넓어짐을 소유 범위의 넓이로만 생각하지 말자. 오래 지속하고 예상과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폭도 있다. 아낀 것을 전부 다음 확장에 다시 넣는다면 같은 고갈의 고리로 돌아갈 수 있다.
5. 앞자리를 빼앗지 않고 먼저 책임질 수 있다
‘不敢為天下先故能成事長.’ 제66장의 낮게 서고 몸을 뒤에 두는 태도가 여기서는 보물 하나가 된다.
채택 본문은 ‘成事長’, 통행본은 ‘成器長’이다. 뒤의 표현을 그릇들의 머리라고만 옮겨 얕은 판본으로 판정하면 안 된다. 왕필도 만물의 우두머리가 되어 천하를 이롭게 하는 방향에서 설명한다. 이문을 아는 것과 한쪽의 가치를 단순히 낮추는 것은 다르다.
삶에서 구분할 것은 먼저 나서는 것과 앞을 빼앗는 것이다. 누군가 위험하다면 먼저 도우러 움직여도 된다. 아무도 맡지 않는 책임을 자원할 수도 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이 시작하기만 기다리라는 명령이 아니다.
내가 처음이어야 가치가 있다고 여기면 주위가 모두 경쟁자가 된다. 상대가 방안을 끝까지 말하게 하고 실제로 일한 사람을 앞에 세울 수 있다면 그 자리는 한 사람의 능력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이끄는 힘은 그런 곳에서도 생긴다.
6. 열매를 원한다면 뿌리를 자르지 않는다
‘舍其慈且勇,舍其儉且廣,舍其後且先,則必死矣.’ 자애를 버리고 용기만, 절약을 버리고 넓이만, 뒤로 설 분별을 버리고 앞자리만 구한다. 노자는 그 위험을 반드시 죽는다는 강한 말로 경고한다.
열매만 원해서 뿌리를 잘라 버리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설명을 위한 비유이지, 뿌리를 버리고 열매를 구한다는 문장이 고문에 그대로 적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을 아끼지 않는 용기는 그저 해치는 대담함이 된다. 절제 없는 확장은 유지하지 못할 범위를 늘린다. 자리를 내주지 못하는 사람이 선두를 차지해도 함께 일할 사람을 잃을 수 있다. 위압만 쓰는 상사, 넓히는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회사, 협력하면서도 승패를 세는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현실이 냉혹한 사람을 반드시 빨리 벌하는 것은 아니다. 선하게 살려는 사람도 실패한다. ‘必死’는 엄한 경고이지 성패에서 인격을 거꾸로 계산하는 공식은 아니다.
그래도 경고가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그 결과가 소중했던 이유까지 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지켜야 했던 사람들이 모두 다치고 나면 그 승리에 무엇이 남는가.
7. 자신을 한 가지 틀로 끝내지 않는다
여기서 장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天下皆謂我大,大而不肖.’ 초(肖)는 보통 닮음이나 어떤 모습과 비슷함을 가리킨다. 자신을 고정된 상으로 새긴다는 읽기는 이 연재가 넓힌 비유이지 글자의 뜻을 조각이라고 확정하는 풀이가 아니다.
그 비유는 여전히 쓸모가 있다. 나는 이 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너무 일찍 정하면 직함은 행동을 돕는 도구에서 가능한 행동을 좁히는 틀로 바뀐다. 기술이 달라지고 자리를 잃었을 때 능력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 전체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틀에 갇히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익히지 않고 모든 것을 얕게 지나간다는 뜻이 아니다. 전문성을 성실히 키우면서도 사람 전체를 그 전문성에 맡기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바뀌어도 아직 배울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다.
『논어』의 ‘君子不器’도 여기서 하나의 울림을 더한다. 사람은 단일한 용도만 가진 도구가 아니다. 두 고전의 생각이 동일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능력을 살아 있는 사람의 마지막 주형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질문은 함께 생각할 수 있다.
아직 반듯한 모양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단점만은 아닐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자리가 남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
8. 오늘 무엇을 지킬 것인가
용기가 필요한 자리에서는 충분히 강한지 묻기보다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구체화해 보자. 누가 무엇을 잃을지 보이면 행동은 허세 말고도 지지할 근거를 얻는다. 움직일 수 없을 때에도 그 마음까지 가짜라고 판단하지 않고 도움을 찾을 수 있다.
최근의 소모도 살펴볼 수 있다. 모두가 좇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쯤 있지 않은가. 주의를 되찾는 것은 오늘 밤 누군가와 끊기지 않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여도 된다.
필요하면 앞에 선다. 필요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올 자리를 남긴다. 다른 사람이 잘했다고 내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만 빛을 받을 수 있는 협력은 너무 좁다.
익숙한 자기 모습에서 조금 벗어나는 일도 허용한다. 강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고 숙련자가 초보자로 돌아간다. 세 보물은 성인 역할을 잘 연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모습을 유지하느라 생기는 상처를 조금 줄이기 위해 지닐 수 있다.
9. 힘이 사람을 잊지 않도록
제65장은 지식이 다른 사람의 자리를 남기는지 물었고 제66장은 지위가 짐이 되는지 물었다. 여기서는 용기와 자원이 있고 앞에 설 수 있을 때에도 그 힘을 쓰는 이유를 기억하는지 묻는다.
다음 장은 무력을 뽐내지 않고 분노에 맡기지 않으며 다툼을 중심에 두지 않고 다른 사람 아래에 서는 태도를 읽는다. 거기에 더 교묘하게 이기는 방법만 남으면 자애는 다시 장식이 된다.
절약은 부족함을 남에게 떠넘기는 일이 아니다. 뒤에 서는 것은 위험만 남에게 먼저 지우는 일이 아니다. 용기도 내 대담함의 비용을 다른 사람에게 내게 하는 일이 아니다.
때로 그 용기의 목소리는 작다. 못 본 척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보려고 한다. 이기는 것만 생각해도 되는 순간에도 아플 사람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 부드러운 뿌리를 놓지 않고 지니는 것이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제8논고와 Zenodo 판을 참고할 수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제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