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것을 지키되, 나를 지키는 짐은 던다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为学者日益,闻道者日损,损之又损,以至于无为。无为而无不为,将欲取天下也恒无事,及其有事也又不足以取天下矣。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1. 길어진 이력서
이력서를 고치면 전보다 길어져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늘고 자격이 늘고 맡았던 사업도 늘었다. 노력이 모양을 얻었으니 기뻐해도 된다. 그런데 한 줄 한 줄이 앞으로도 이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주문이 되면, 종이 위에서는 풍부해졌는데 움직일 자리는 좁아진다.
전문가이니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책임자이니 망설여 보여서는 안 된다. 성공했으니 전보다 작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얻은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얻은 것에 어울리는 나를 연기하는 일까지 데려오는 것이다.
48장은 늘어나는 방향 옆에 다른 방향을 놓는다. ‘为学者日益,闻道者日损.’ 배우는 사람은 날마다 더하고 도를 듣는 사람은 날마다 던다. 공부를 그만두라는 신호보다, 능력을 더하면서 무엇을 덜어야 그 능력을 잘 쓸 수 있는지 묻는 말로 읽어 보려 한다.
우리는 성장을 새로운 것을 몸에 붙이는 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새 역할을 늘리지 않고 어제까지 꼭 필요하다고 여긴 방어 하나를 내려놓는 것도 깊은 변화가 될 수 있다. 이 장은 그 잘 드러나지 않는 일에 빛을 비춘다.
2. 배우는 일과 들을 수 있는 일
위학은 실제로 학문을 배우는 일을 포함한다. 옛 주석에도 능력과 실천을 쌓는 쪽으로 읽는 풀이가 있다. 지식을 더하는 일을 처음부터 허영을 위한 간판 모으기로 바꾸어 읽으면 너무 좁아진다. 언어를 익히고 계산을 배우고 기술을 연습해야 가능한 일이 있으며 그 배움도 결코 쉽지 않다. 왕필 주석
그래도 익힌 것이 눈앞의 사실을 가릴 때가 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안다고 생각한 순간 상대의 설명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자격이 있으니 다시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지식의 내용보다 알고 있는 나를 지키는 일이 앞으로 나왔을 때에는 더하기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이 연재는 문도(闻道)를 채택해 듣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앞에 놓는다. 통행본의 위도(为道)를 읽으면 반드시 도를 소유하려는 야심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는 들을 문을 실마리로 삼아, 내 설명부터 내세우지 않고 현실에서 배울 여지를 남긴다.
덜어 낼 것은 지식 자체보다 그것을 방패로 쓰는 불필요한 태세다. 47장에서 수집한 정보를 이해하는 시간으로 돌아갔다면, 이번에는 익힌 것이 실제로 작용하는 데 무엇이 방해되는지 본다. 배우며 더하는 일과 들으며 덜어 내는 일은 같은 사람의 하루에도 놓일 수 있다. 새로운 방법을 배우면서 옛 방법으로 뛰어났던 나를 영원히 보존할 필요는 없어지는 것이다.
3. 덜어 내려면 구별할 힘이 필요하다
받아들이는 태도는 조용해 보이지만 덜어 내는 일은 수동적이지 않다. 이 일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온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한마디는 쉽지 않다. 물으면 된다는 걸 알아도 입을 열기 직전에 자기 가치까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을 보면서도 필요한 질문을 꺼내는 데 힘이 필요하다.
수술의 비유를 빌린다면 중요한 것은 과감하게 자르는 용맹함보다 남길 것과 손볼 것을 가려내는 정밀함이다. 쓸모 있는 조직까지 떼면 나아지지 않는다. 사람에게도 경험과 가치, 인격과 책임, 자신을 보호하는 경계를 함께 깎아 낼 필요는 없다. 줄일 것은 그것들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현실에 대한 응답을 방해하는 습관이다.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남긴다. 지키기 어려워졌을 때 숨기고 유능한 척하는 버릇은 던다. 전문지식은 남긴다. 그 분야 사람이 아닌 이의 질문을 가볍게 대하는 버릇은 던다. 자기 판단은 갖되 의견을 바꾸는 일을 패배로 여기는 규칙은 다시 본다.
더하는 공부에도 노력이 들고 덜어 내는 공부에도 노력이 든다. 뒤의 일이 어려운 까닭은 내려놓으려는 것이 한때 나를 도왔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자신감이 있었기에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같은 형태로 필요하지는 않을 수 있다. 33장의 자기와 마주하는 강함을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힘이 아니라 그다음을 고르는 힘으로 받고 싶다.
4. 덜어 낸 뒤에도 다시 보이는 것
‘损之又损,以至于无为.’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른다. 한 번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분의 집착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은 사람이 이번에는 나는 전문가인 척하지 않는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평판을 지키느라 실제로는 반대하면서도 이해한 척할 수 있다. 겸손과 자유로움마저 보존해야 할 새 모습이 된다. 그러므로 덜기는 지닌 것을 한 번에 모두 버리는 의식보다 지금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반복해서 살피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무위를 자기 모습을 유지하려고 여분의 일을 보태지 않고 그 자리에 필요한 것에 응답하는 태도로 읽는다. 모르면 묻고, 할 수 있으면 맡고, 어렵다면 의논한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훌륭해 보이려고 판단을 비트는 일이 조금 줄어드는 것이다.
마지막 한 겹을 벗기면 경험과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진짜 자아가 나타난다고 약속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배우고 다치고 도움받으며 달라진다. 그 도중에 지금의 모습을 지키는 일과 잘 사는 일이 같지 않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무위는 그 자유를 실제 행동에서 찾아보는 말이 된다.
5. 일로 돌아오는 주의력
‘无为而无不为.’ 무위이면서 하지 않는 일이 없다. 이 큰 표현을 불필요한 자기 연출을 버리면 무엇이든 성공한다는 만능 기술로 만들면 무위도 또 하나 갖고 싶은 능력이 된다. 여기서 읽고 싶은 것은 상황에 응답할 폭이 넓어진다는 점이다.
설명하는 중에 질문을 받았는데 답을 모른다고 하자. 잘 아는 사람이라는 모습을 지켜야 하면 말을 돌리고 어려운 용어를 늘리고 질문에 문제가 있는 듯 대하게 된다. 그동안 주의력은 문제에서 떠나 있다. 모르니 확인하겠다고 말할 수 있으면 무엇을 알아볼지로 돌아온다.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다운 얼굴만으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가처럼 보이는지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면 필요한 확인, 소박한 수정, 남에게 묻는 일을 하기 쉬워진다. 힘을 뺀다고 능력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능력과 받을 수 있는 도움을 일에 쓰기 쉬워지는 것이다.
승패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 승리한 자신을 상상하느라 바쁘면 지금 벌어지는 것을 놓친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되 결과 하나로 자기 가치를 전부 정하지 않는 편이 눈앞의 과제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 37장으로 돌아가면, 내가 움직였다는 증거를 만들기보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돕는 방향이다.
그래도 실패는 있다. 실력과 시간, 자원과 상대의 의지가 결과를 좌우한다. 무불위는 그 한계를 없애는 마법보다 체면 때문에 스스로 좁혀 놓은 행동의 폭을 다시 여는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싶다.
6. 천하를 내 소유물로 만들지 않는다
‘将欲取天下也恒无事,及其有事也又不足以取天下矣.’ 천하를 취하는 데까지 이야기가 나아간다. 취천하라는 권력의 언어 속에서 이 장은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세상에 자기 모양을 강요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29장의 천하를 억지로 다루려는 위험과도 이어진다.
무사를 해야 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읽고 싶지는 않다. 다스리는 데는 제도와 자원과 보호가 필요하다. 문제는 생활을 받치는 일보다 내가 다스리고 있음을 보이기 위한 소란이 많아지는 것이다. 내 공으로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살 조건을 마련하는 일은 화려한 사업보다 깊은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
관계에 옮겨 보자. 잃기 싫어서 연락 횟수를 정하고 행동을 확인하고 마음을 반복해서 묻는다. 붙잡으려 할수록 함께 있는 시간은 검사의 시간이 된다. 손을 푼다는 것은 더 교묘하게 소유하는 기술이 아니다. 상대가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떠날 수도 있는 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제품에서도 해지를 어렵게 하고 알림을 거듭 보내며 계속 쓰게 몰아붙이는 것과 도움이 되기에 계속 쓰는 것은 다르다. 뒤의 관계를 만들려면 소박한 개선과 지원의 노동이 필요하다. 사용자가 남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선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써 주는 관계를 지향할 수는 있다. 평판도 평판을 위한 연출만 늘리기보다 기대받은 일을 실제로 하는 데 관심을 돌리고 싶다.
쥐지 않으면 반드시 얻는다는 뜻은 아니다. 쥐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게 되면 지탱하고 만들고 관계 맺는 일을 각자의 상대와 현실에 맞게 할 수 있다. 거기에 이 장의 적극적인 제안이 있다.
7. 여분의 일 하나를 내려놓는다
배움에서는 지금 더하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어디에 쓰고 싶은지 살펴보자. 필요한 자격이라면 계속 공부하면 된다. 그 옆에서 이 자격이 없으면 나는 가치 없다는 불필요한 조건은 느슨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더할 것과 덜 것을 따로 고를 수 있다.
일에서는 오늘 남에게 보이는 모습만을 위해 쓴 힘을 하나 찾는다. 모르는 것을 숨기려는 긴 설명, 바쁨을 보이기만 하는 회의,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으려고 맡은 역할. 그 하나를 고치면 무엇을 할 시간이 돌아올까? 필요한 책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기 어렵게 하는 움직임을 줄이는 것이다.
얻고 싶은 것에서는 쥔 힘을 조금 풀었을 때 상대의 자유가 실제로 늘어나는지 생각해 보자. 겉으로만 조용해지고 마음속으로는 보답을 계속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도 살필 수 있다. 도를 듣는 것은 세상에서 원하는 대답만 받아 내는 일이 아니다.
‘为学者日益,闻道者日损.’ 늘어난 능력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것을 입증하려는 짐은 내려놓아도 된다. 전부 벗어 버린 완벽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오늘 하나의 실제 일로 관심이 돌아온다면 이미 변화다.
이력서가 길어져도 된다. 그 한 줄 한 줄을 매일 연기할 필요는 없다. 익힌 것은 나를 묶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잘 쓰기 위해 다시 쥘 수 있다.
자세한 주석과 이 연재의 채택 본문 비교는 여섯 번째 논고와 Zenodo판에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