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기 전에, 여기를 깊이 본다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不出于户,以知天下。不窥于牖,以知天道。其出也弥远,其知也弥少,是以圣人不行而知,不见而明,弗为而成。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1. 다음 답을 찾는 동안
읽다 만 책 옆에 새로운 강좌 안내가 열려 있다. 그 수업을 들으면 지금 모르는 것이 풀릴 것 같다. 자격증을 따고 만나고 싶던 사람을 만나고 가 보지 않은 곳에 다녀오면 한 단계 넓은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일정을 채우다 보면 전에 배운 것을 써 볼 시간이 없어진다.
바깥으로 향하는 일에는 분명한 매력이 있다. 몰랐던 사정을 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내 생각이 깨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애써야만 얻는 학문과 기술도 있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얻는데도 부족하다는 느낌만은 줄지 않을 때가 있다. 다음 것을 찾는 속도를 이미 만난 것을 이해하는 시간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47장의 ‘其出也弥远,其知也弥少’는 그 발을 멈춘다. 멀리 나갈수록 아는 것은 적어진다. 여행과 공부의 양을 줄이면 더 똑똑해진다는 계산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이 늘어나는 일과 그것들이 내 안에서 연결되는 일의 차이를 읽는다.
뉴스를 잇달아 읽은 밤, 사건 이름은 많이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만 골라 왜 일어났고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려면 갑자기 말이 끊긴다. 부족했던 것이 기사 수뿐일까? 읽는 속도 안에 질문을 키울 시간이 없었던 것일 수 있다. 이 장은 세계를 닫으라기보다 세계를 만진 손을 다음으로 뻗기 전에 한 번 들여다보게 한다.
2. 문과 창이 여는 질문
‘不出于户,以知天下。不窥于牖,以知天道.’ 문을 나서지 않고 천하를 알고 창을 내다보지 않고 하늘의 도를 안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세계를 안다는 대담한 이미지다.
문과 창을 외부의 정보 처리 같은 다른 뜻으로 직역할 필요는 없다. 움직이지 않고 안다는 이미지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생각하면 된다. 옛 주석에도 다양한 현상에 통하는 근본의 결을 안다는 풀이가 있다. 우리 역시 세상의 모든 사례를 직접 보아야만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한된 경험을 비교하고 관계를 찾아 그것으로 다른 장면을 생각한다. 왕필 주석
자기가 일하는 곳에서 약속이 지켜지고 무너지는 이유를 자세히 본 사람은 다른 조직에서도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부담하는가? 나쁜 소식이 위까지 전달되는가? 멀리 가지 않아도 눈앞의 일에는 권한과 신뢰, 두려움과 협력이라는 넓은 세계의 문제가 있다.
공통의 질문이 있다는 것과 어디나 같다고 정해도 된다는 것은 다르다. 다른 지역에는 다른 역사가 있고 옆 사람에게도 나와 다른 사정이 있다. 경험에서 얻은 무늬는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분류하는 딱지가 아니라 무엇을 물을지 찾는 실마리여야 한다.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아직 알지 못하는 사실까지 드러나지는 않는다.
진짜 답은 아직 사지 않은 책, 아직 만나지 않은 선생, 아직 가 보지 않은 곳에 있다고 믿다 보면 오늘의 일과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를 이해할 가치가 없는 작은 재료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보지 못한다면 먼 곳에서도 표면만 스칠 수 있다.
문을 나서지 않는다는 말에서 이 글이 받는 것은 은둔의 허락보다 이미 서 있는 자리의 깊이다. 여기를 본 뒤 바깥으로 나가면 시선도 질문도 달라진다. 거리가 깊이를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3. 모으는 속도가 생각하는 속도를 앞지를 때
‘其出也弥远,其知也弥少.’ 지식이 늘어날 때마다 이해가 줄어든다는 법칙은 아니다. 더 좋은 자료가 필요한 때도, 현장에 가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문제는 모으는 일이 이해했다는 느낌을 대신하기 시작할 때다.
기사 하나를 읽다가 궁금한 용어가 나오면 다른 기사로 간다. 거기 소개된 전문가를 찾아보고 그 사람이 권하는 책을 산다. 열린 창이 늘고 나중에 읽을 목록도 풍성해진다. 그러나 최초의 질문에는 무엇이 답했고 무엇이 남았는지 정리되지 않는다. 오래 찾았는데 질문은 오히려 처음보다 흐려져 있다.
여행과 인맥 만들기에서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백 곳에 서 본 기억과 한곳의 생활을 이해한 경험은 서로 다른 풍요를 갖는다. 명함 숫자만으로는 그 사람과 무엇을 이야기했고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넓어진 자리에서 관계가 자랄 시간도 세어 보자는 것이다.
정보를 끄면 통찰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읽은 것을 자기 말로 설명하고 서로 어긋나는 서술을 비교하며 어떤 근거가 부족한지 적어 본다. 빈틈이 보이면 다시 자료와 현장으로 돌아간다. 이 왕복을 통해 모은 것이 생각의 재료가 된다. 고요함은 증거에서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에 어떤 증거가 필요한지 보기 위해서도 유용하다.
48장은 배움으로 늘어나는 것과 도를 들으며 줄어드는 것을 대조한다. 공부는 실제 능력을 늘린다. 한편 이만큼 안다는 모습을 지키느라 바쁜 마음이나 다음 지식으로 불안을 없애려는 버릇은 줄여야 할 수 있다. 지식을 버리기보다 지식이 작용할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47장의 고요함은 그 준비가 된다.
4. 알고, 밝히고, 이룬다
‘是以圣人不行而知,不见而明,弗为而成.’ 가지 않고 알며, 보지 않고 밝히며, 억지로 하지 않고 이룬다. 이 세 움직임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특권보다 불필요한 분주함을 덜었을 때 남는 작용으로 읽어 볼 수 있다.
불행이지(不行而知), 가지 않고 안다는 말이다. 한 일을 오래 해 온 사람은 짧은 보고에서 문제의 결을 짚기도 한다. 회의나 교류 행사에 가장 많이 참석해서가 아니다. 자기 일을 자세히 보고 성공만 아니라 실패도 비교하며 관계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 앎은 경험과 떨어진 직감이 아니라 경험이 지금 쓸 수 있는 모양을 얻은 것이다. 물론 경험이 낡았다면 다시 확인해야 한다. 같은 자리에 깊이 서 있다는 말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불견이명. 이 연재는 명(明)을 채택하지만 통행본의 명(名)에도 주석의 전통이 있다. 한 글자가 다르다고 다른 독법을 단순한 오류로 처리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견문의 양을 자랑하기보다 관계를 분별하는 밝음으로 읽는다. 16장의 지상왈명, 33장의 자지자명, 22장의 불자견고명이 한 질문으로 모인다. 눈앞의 것을 본다고 하면서 자신의 기대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조용히 생각하면 아직 설명하지 못한 부분도 보인다. 이 결론이 마음에 들어서 받아들이는가, 근거가 있어서 받아들이는가? 구별하면 필요한 확인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보지 않고 밝힌다는 말을 확인하지 않아도 나는 안다는 허가증으로 만들면 밝음에서 오히려 멀어질 것이다.
불위이성. 책임자가 모든 일을 서두르게 하고 일일이 끼어드는 직장을 떠올려 보자. 독촉에 답하는 보고가 늘고 실제 일할 시간은 줄어든다. 요구를 정리하고 판단을 맡기며 필요한 정보를 주면 책임자가 덜 움직여도 일이 나아갈 수 있다. 37장의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받치는 태도가 가까운 일이 된다.
완성에 필요한 노동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일하고 조건이 맞아야 성과가 난다. 덜어 낼 것은 그 일을 가로막는 강제적인 분주함이다. 가장 많이 뛰어다니는 사람이 언제나 가장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5. 발밑의 한 가지로 돌아온다
세 가지 실천을 가져가 보자. 먼저 알기 위해 오늘 접한 정보에서 한 가지를 고르고 조금 깊이 생각한다. 무엇이 일어났는가? 왜 그렇게 설명되는가? 내게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답하지 못하면 거기가 다음에 조사할 자리다. 백 가지를 지나쳤다는 만족보다 한 가지에 좋은 질문을 갖는 일을 소중히 해 본다.
다음으로 밝히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곧바로 다른 강좌나 남의 의견에 넘기기 전에 내 말로 적어 본다. 사실과 추측과 바람이 한 문장에 섞여 있지는 않은가? 여기까지 정리한 뒤 의논하면 상담도 구체적이 된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과 밖에서 배우는 일은 경쟁하지 않는다. 고요함은 무엇을 묻고 싶은지 정돈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루기 위해 지금 더하고 있는 개입을 하나 살핀다. 진행 상황을 반복해서 묻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가? 더 열심히 하라고 하기 전에 상대가 막힌 조건을 바꿀 수는 없는가? 줄일 독촉이 있고 대신 내가 맡아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손을 떼면 저절로 완성된다는 말이 아니라 완성을 돕는 손으로 바꾸자는 뜻이다.
책과 수업과 여행, 사람과의 만남은 계속해도 된다. 오히려 자기 질문을 가지고 만나면 각각을 더 깊이 받을 수 있다. 다만 새 장소로 가는 일이 지금 있는 자리를 보지 않기 위한 도피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기억하고 싶다.
문과 창 앞으로 돌아오자. 세계는 먼 곳에도 있지만 오늘의 일과 옆 사람, 끝내지 못한 질문 속에도 있다. 어디에도 가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니다. 어디로 가든 이미 만난 세계를 아직 자세히 보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장의 물음이다.
자세한 주석과 이 연재의 채택 본문 비교는 여섯 번째 논고와 Zenodo판에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