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그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天下有道,却走马以粪。天下无道,戎马生于郊。罪莫大于可欲,祸莫大于不知足,咎莫憯于欲得。故知足之足,恒足矣。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1. 없던 부족함이 생긴 저녁
휴대전화로 아는 사람의 근황을 본다. 새로운 일, 넓어진 집, 잘 풀리는 듯한 생활. 조금 전까지 별문제 없던 저녁인데 화면을 닫을 무렵에는 내게 무언가 모자란 것 같다. 저것도 좋겠다는 마음이 나도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고, 어느새 갖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가까워진다.
46장을 세 장면에서 읽어 보려 한다. 마음을 끄는 대상을 만나는 순간, 이미 얻은 것에 더 많은 것을 붙이려는 순간, 대가를 묻지 않고 반드시 가지려는 순간이다. ‘罪莫大于可欲,祸莫大于不知足,咎莫憯于欲得.’ 이 세 구절을 그 변화를 알아보는 실마리로 삼는다.
노자가 욕망의 진행 단계를 시간순으로 확정한 심리학을 썼다는 뜻은 아니다. 세 장면은 겹치고 서로 오가기도 한다. 다만 이렇게 놓아 보면 욕망을 통째로 나쁘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쥔 손의 힘이 어디서 달라졌는지 볼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이 있고 기회를 발견하면 마음이 움직인다. 그것도 살아가는 힘이다. 문제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잃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다.
원하는지 아닌지만 아니라 어떻게 원하는지를 살펴보자. 이 시선을 들고 장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우리처럼 화면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전혀 다른 두 자리에 놓인 말들이 보인다.
2. 말이 밭으로 돌아오는 세상
‘天下有道,却走马以粪。天下无道,戎马生于郊.’ 천하에 도가 있으면 달리던 말을 물려 밭에 거름을 주게 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전쟁의 말이 성 밖에서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같은 말의 힘이 생활을 기르는 데 쓰이는가, 전쟁을 계속하는 데 묶이는가? 도가 있다는 큰 말이 말과 밭의 모습으로 땅에 내려온다. 평화는 훌륭한 선언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경작하고 먹고 다음 계절을 준비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뒤의 교(郊)는 성이나 도시 바깥을 가리키며 그 자체로 국경이라고 정해지지는 않는다. 전쟁 속에 말의 번식까지 들어가 있는 장면으로 읽으면 된다. 모든 말이 징발되고 마지막에는 임신한 말까지 끌려갔다는 일률적인 군수 사정을 이 한 문장에서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현재의 생활만 아니라 다음에 태어날 생명도 전쟁 속에 놓였다는 이미지 자체가 무겁다.
다스리는 사람이 영토와 공적을 더 원하면 값을 치르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다. 30장이 무력으로 힘을 과시하는 일을 경계했다면, 여기서는 그 대가가 밭에 돌아가지 못하는 말로 보인다. 더 갖겠다고 결정하는 사람과 그 결정 때문에 삶을 바꿔야 하는 사람이 다를 때, 욕망은 정치의 문제가 된다.
37장의 불필요한 간섭을 덜라는 태도와 45장의 청정도 무책임한 구경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을 보호할 제도와 필요한 방어, 공적인 생활을 받치는 일은 있어야 한다. 줄일 것은 통치자의 명예를 위해 늘어나는 싸움이다. 말을 밭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힘의 방향을 생활로 되돌리는 일이다.
3. 저것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곳
‘罪莫大于可欲.’ 욕심낼 만한 것보다 큰 죄가 없다는 강한 말이다. 가욕을 마음을 끄는 대상이라고 읽으면 매력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죄를 지은 듯 들릴 수도 있다. 여기서는 욕망의 싹을 처벌하기보다 그것을 자라게 하는 조건을 보려 한다.
좋은 일에 지원하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물건을 생활에 들이고 싶어진다. 더 배울 기회가 있다면 도전하고 싶어진다. 그런 바람을 모두 닫으면 삶의 가능성도 좁아진다. 잠깐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실제로 내 생활에 무엇을 가져올지다. 어제까지 필요 없던 것이 남의 성취를 보는 순간 필수품이 된다면 그 변화는 살필 만하다.
누군가의 승진 소식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 일 자체에 끌리는가, 같은 높이에 있지 않으면 내가 낮아 보일까 싫은가? 여행 사진이라면 그곳에 가고 싶은가,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 답이 하나일 필요는 없다. 동경과 비교가 섞여 있음을 알기만 해도 즉시 결정하지 않을 여지가 생긴다.
3장의 가욕도 여기와 연결된다. 사회가 명예와 사치를 끊임없이 순위로 전시하면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보다 승패를 표시하는 것을 원하기 쉽다. 그렇다고 아름답고 바람직한 것을 모두 감추자는 정책이 답은 아니다. 사람을 경쟁으로 몰아가는 과시를 덜고 가치의 자를 하나로 만들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아직 떠맡지 않은 바람에는 다시 고를 공간이 있다. 멋지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움직였다는 사실과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는 의무는 나눠 볼 수 있다. 동경은 아직 명령이 아니다.
4. 이루는 날마다 결승선이 멀어진다
‘祸莫大于不知足.’ 충분함을 모르면 얻은 것이 만족이 되기도 전에 새로운 부족함으로 바뀐다. 목표를 이룬 다음 날에는 다음 목표를 못 이룬 내가 나타난다. 바람은 이루어졌는데 쫓기는 느낌은 그대로 남는다.
어느 자리에 오르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거기서 보이는 윗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했던 수입이 어느새 또래 누군가를 따라잡을 숫자로 변한다. 관계에서는 함께할 시간을 얻고도 더 빠른 답장, 더 많은 확인, 나를 우선한다는 증거를 요구한다. 더 달라는 말에 응해도 다음 요구가 바로 나온다면 상대도 나도 쉴 자리가 없다.
이때 충분함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쓸 만한 멈춤이 된다. 가계에 필요한 여유, 계속하고 싶은 일, 서로 무리하지 않는 관계의 조건으로 돌아가면 남과의 비교와 다른 기준을 세울 수 있다. 44장의 지족과 지지, 9장의 가득 찬 그릇을 계속 채우려는 손이 겹쳐 보인다.
목표를 높이는 것 자체가 불지족은 아니다. 가족이 늘면 필요한 돈도 달라지고 부당한 대우를 고쳐 달라는 요구는 정당하다. 실제로 모자란 생활을 마음가짐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물을 것은 현실의 필요가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충분하다고 인정할 기준을 계속 앞으로 옮기는 것인지다.
여기가 돌아설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은 아니다. 그래도 얻은 것을 누리기도 전에 다음 것을 더하는 버릇을 알면 아직 늘리지 않은 부담을 늘리지 않을 수 있다.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은 발전을 포기한다는 선언보다 지금의 삶을 끝없는 임시 거처로 만들지 않는 말에 가깝다.
5. 대가를 세지 않게 되었을 때
‘咎莫憯于欲得.’ 앞의 두 구절이 크다(大)고 했다면 여기서는 아프고 참혹한 느낌을 주는 참(憯)이 나온다. 나는 여기서 얻겠다는 목적이 다른 모든 것을 밀어낼 때 생기는 상처를 읽는다. 이 글자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심리적 경계선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약속을 깨도 된다. 이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면 자유를 빼앗아도 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몸과 생활을 다 써도 된다. 어떤 대가도 아끼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때, 그 대가를 치를 사람의 얼굴까지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가?
손에 넣어도 문제가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무리해서 얻은 자리를 지키느라 더 무리할 수 있다. 상대를 가둔 관계에는 바라던 친밀함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얻지 못하면 여기까지 바쳤는데라는 생각이 또 다른 위험한 약속으로 이끌기도 한다. 아픈 것은 원하는 대상만 아니라 그 바람을 받치던 생활까지 잃어 간다는 점이다.
그래도 알아차린 지금 멈출 수 있는 행동이 있다. 새 약속을 더하지 않고 결정을 잠시 미루며 믿을 만한 사람에게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다. 혼자서는 충동을 다루기 어렵다면 적절한 전문가의 지원을 구해도 된다. 이미 잃은 기회나 다친 관계가 모두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추가 피해를 멈추는 일과 전부 회복하는 일은 다르다.
너무 늦었다는 말은 힘든 사람을 더 몰아붙일 수 있다. 이 장을 그렇게 쓰고 싶지는 않다. 일찍 알수록 고를 수 있는 길이 많다. 그러나 늦게 안 사람에게도 다음 행동을 다르게 할 의미는 남아 있다.
6. 충분함을 다시 알아 가는 일
‘故知足之足,恒足矣.’ 충분함을 아는 그 충분함이 오래가는 충분함이라고 한다. 가진 것의 총량보다 충분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작용으로 시선을 돌린다.
숫자가 늘어도 기준이 같은 속도로 멀어지면 안심은 오지 않는다. 반대로 지금의 생활에서 무엇이 지탱되고 있는지 알아보면 가진 것이 비로소 삶에 닿는다. 일한 성과를 기뻐하고 누군가와 있는 시간을 그대로 받고 다음 것을 요구하지 않는 저녁을 갖는다. 충분함은 아무 바람도 없는 무풍 상태가 아니라, 바라는 것이 있어도 현재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일 것이다.
33장의 지족자부도 이렇게 읽을 수 있다. 돈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필요한 것을 마련하면서도 풍요를 느낄 능력까지 무한한 비교에 맡기지 않는 것이다. 충분함의 기준은 나이와 가족, 건강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바뀐다. 그러니 항족을 한 번 정한 작은 생활을 영원히 벗어나지 말라는 명령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무엇이 비교에서 생긴 요구인지 가려 보는 판단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 거기에 지속의 뜻이 있다. 만족을 얻으면 불행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다는 느낌 하나가 생활 전체를 지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7. 세 가지 질문을 가져간다
다음에 무언가 갖고 싶어지면 먼저 그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묻자. 내 생활에서 왔는가, 누군가의 눈부신 근황에서 왔는가? 둘 다여도 된다. 매력을 알아본 순간과 곧바로 뒤쫓는 행동 사이에 한 번 숨 쉴 수 있는지가 첫 질문이다.
이미 얻은 것이라면 무엇이 충분한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지금의 일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수입은 무엇을 받쳐 주는가? 이 관계에서 소중한 것은 횟수와 증거인가, 서로 안심하고 지내는 시간인가? 필요한 개선을 하면서도 비교할 때마다 결승선을 옮기는 버릇은 별도로 다룰 수 있다.
어떤 대가든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 대가를 다시 세어 본다. 누구의 시간, 누구의 자유, 누구의 안전을 쓰려 하는가? 혼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면 이야기해 보자. 지금 결정하지 않는 일과 지금 해를 멈추는 일은 패배가 아니라 중요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세 질문 가운데 특히 기억하고 싶은 것은 두 번째다. 생활의 여유를 가져가는 것은 단 한 번의 격렬한 욕망만이 아니다. 조금만 더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대가를 뒤로 미루다 어느새 쉴 곳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미 얻은 것이 있을 때 다음 것을 더하기 전에 살펴보는 것. 거기에는 매일 여러 번 돌아오는 다시 고를 기회가 있다.
모든 사람이 세 질문에 같은 순서로 답할 필요는 없다. 핵심은 욕망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방식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데 있다. 처음에 나온 말을 떠올려 보자. 힘은 같아도 향하는 곳이 바뀌면 전쟁을 지속하는 힘이 생활을 기르는 힘이 된다.
우리의 조금만 더도 여러 곳으로 간다. 그 행선지를 살피고 때로는 여기까지면 좋다고 말해 보자. 충분하다는 말은 인생을 닫는 뚜껑이 아니다. 어렵게 얻은 생활 안으로 마침내 돌아오는 문일 수 있다.
자세한 주석과 이 연재의 채택 본문 비교는 여섯 번째 논고와 Zenodo판에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