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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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39장 · 총 81장

가득 움켜쥘수록 잃는다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昔之得一者:天得一以清,地得一以宁,神得一以灵,谷得一以盈,侯王得一以为天下正。其致之也,谓天毋已清将恐裂,谓地毋已宁将恐发,谓神毋已灵将恐歇,谓谷毋已盈将恐竭,谓侯王毋已贵以高将恐蹶。故必贵而以贱为本,必高矣而以下为基。夫是以侯王自谓孤、寡、不谷。此其贱之本与?非也?故致数舆无舆。是故不欲禄禄若玉,珞珞若石。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목록이 다 말하지 못하는 것

“끝까지 수레를 헤아리면 수레가 없다.” 이 구절에는 서로 다른 해석이 있다. 모든 수레를 차지하려던 사람이 세다 보니 수레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하상공 주석은 다른 길을 간다. 수레를 바퀴와 바퀴통 같은 부품으로 나누어 이름 붙여도, 그 이름 하나가 수레 전체를 다 말하지는 못한다. 譽, 곧 명예와 연결하는 독법도 있다. 이런 차이가 있는 만큼 새로 만든 장면을 확정된 옛 우화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하상공 장구

수레와 부품의 관계에서 일상적인 질문을 꺼낼 수 있다. 항목을 모두 나열하면 그것들이 함께 이루는 삶도 이해한 것일까? 이력서의 성취가 전부 사실이어도 그 사람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팀의 지표가 빠짐없어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관계는 남는다.

이 글은 그 틈에서 ‘전부 쥐고 싶다’는 충동을 생각한다. 세는 것이 잘못이라거나 장부를 만들면 재산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완전한 목록과 완전한 이해는 다를 수 있다.

2. ‘하나’를 얻어야 제 모습이 된다

아래의 하나에 대한 설명은 이 연재의 철학적 독법이다. 사물은 고립되어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전체 안에서 지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39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에 하나를 얻은 것들이 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 편안하고, 신은 하나를 얻어 신령하고,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 가득 차고, 제후와 왕은 하나를 얻어 천하의 바른 자리가 된다. (昔之得一者:天得一以淸,地得一以寧,神得一以靈,谷得一以盈,侯王得一以爲天下正)

아득한 옛날 ‘하나’를 얻은 것들이 있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야 맑을 수 있고, 땅은 하나를 얻어야 편안할 수 있고, 신은 하나를 얻어야 신령할 수 있고,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야 가득 찰 수 있고, 제후와 왕은 하나를 얻어야 천하의 바른 자리가 될 수 있다.

먼저 ‘하나(一)’가 무엇인지 보자. 하나는 숫자 1이 아니고, 어떤 단일한 물건도 아니다. 하나는 도가 만물에게서 드러내는 그 온전한 전체성이다. 만물이 한 덩어리의 전체로서 도에게서 얻는 근본의 자리다. 37장의 ‘도는 늘 이름이 없다(道恒無名)’와 이어진다. 도 자체는 구(構)를 세우지 않지만, 도는 만물에게서 ‘하나’로 드러난다.


열쇠는 여기에 있다. 다섯 가지의 본성은 어느 것도 스스로 세워 낸 것이 아니라, ‘하나를 얻어서’ 비로소 있는 것이다. 하늘의 맑음은 하늘이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하늘이 하나를 얻어서, 곧 도의 전체성을 이어받아서 생긴 것이다. 땅의 편안함도 땅이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땅이 하나를 얻어서 생긴 것이다. 신의 신령함도, 골짜기의 가득 참도, 제후와 왕의 바름도 모두 그렇다.

하나를 얻는다는 것은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받는 것이다. 하늘이 ‘나는 하나를 얻었다’는 간판을 세운 것이 아니라, 도가 자기에게서 펼쳐지는 것을 이어받았을 뿐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이 층은 무척 중요하다. 나의 능력, 나의 상태, 내가 이룬 일은 온전히 나 혼자 ‘지어낸’ 것이 아니다. 나보다 더 큰 무언가, 곧 흐름과 시대와 남들의 도움과 운과 체계 전체의 움직임을 이어받아, 그것이 내게서 드러난 것이다.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나의 ‘맑음’, ‘편안함’, ‘신령함’은 이어받은 것이지, 나 혼자 세워 올린 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을 똑똑히 보는 데서 이 장이 시작된다.

3. 좋은 상태가 변하면 안 된다는 명령이 될 때

이어지는 문장에는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무너지며 골짜기가 마를 위험이 나온다. 이 연재는 채택한 毋已를 멈추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읽어 한 상태를 극단으로 고정하는 일을 경계한다. 無以에 가깝게 읽어 지탱할 바탕의 상실을 강조하는 풀이도 있다. 여기의 독법만이 유일한 글자 뜻은 아니다.

생활에서는 좋은 상태가 어느새 변하면 안 된다는 명령이 되지 않았는지 물을 수 있다. 집안의 평온은 좋다. 하지만 이견이 전혀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면 어려운 일도 말하지 못한다. 일의 진전은 좋다. 그러나 계속 상승하기만 해야 한다면 그 대가를 숨기게 될 수 있다.

맑음이나 안정이나 발전이 어느 강도에 이르면 반드시 무너진다는 뜻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상태를 유지하는 수단이 그것을 지탱할 조건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문의 將恐, 곧 위험을 말하는 어조를 남겨 둘 필요가 있다.

하늘이 갈라진다는 비유로 현대의 모든 결과를 예측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이래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누가 이 상태를 지탱하며 무엇을 감당하는지 보자는 것이다.

4. 나를 지탱하는 사람을 본다

귀함은 낮음을 뿌리로 삼고 높음은 아래를 토대로 삼는다. 높은 자리는 공중에 홀로 떠서 성립하지 않는다. 높고 낮음은 지탱하는 관계를 보라는 것이지 누군가 영원히 낮은 곳에 있으라는 명령은 아니다.

경문에는 군주가 고·과·불곡처럼 자신을 낮추는 호칭을 쓴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겸손한 호칭도 말버릇뿐이면 연기가 된다. 자신을 받쳐 주는 사람들이 이견을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의 기여가 보이는가? 이것을 물을 필요가 있다.

자신을 무가치하게 말하거나 성과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해냈다는 말과 혼자 해낸 것은 아니라는 말은 함께 참일 수 있다. 계속 배우려고 이미 이룬 진전을 영원히 부정할 필요는 없다.

5. 수레와 부품, 책과 목록

수레로 돌아가자. 부품 이름을 모두 알아도 수레는 부품들의 관계를 통해 움직인다. 그렇다고 전체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는 증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성 요소를 아는 것과 작동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뜻이다.

현대의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노자가 들려준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 정교한 독서 목록을 만들고 읽고 싶은 책을 전부 등록한다. 어느새 그 완전한 목록을 관리하는 일이 실제로 앉아서 책을 읽는 시간을 대신한다.

목록이 적은 아니다. 독서를 돕는 동안에는 유용하다. 독서를 대체하기 시작하면 고치면 된다. 전부 읽겠다고 맹세하기보다 눈앞의 한 권을 읽고, 목록은 계속 바뀔 수 있게 두는 편이 정직할 수 있다.

회계에는 집계가 필요하고 일에는 측정이 필요할 수 있다. 높은 기준을 추구해도 된다. 문제는 수량화가 아니라 그것만을 현실로 여기는 데 있다. 일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더는 듣고 보고 고칠 것이 없다고 닫는 데 있다.

6. 번드르르하지도, 투박하지도 않게

마지막에는 옥과 돌이 마주 놓인다. 옥처럼 번드르르하기도, 돌처럼 투박하기도 바라지 않는다. 이 글은 어느 끝에도 자신을 묶지 않는 쪽으로 읽는다. 유일하게 가능한 풀이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비싸 보이는 외양을 좇지 않게 된 사람이 이번에는 자신이 그런 것을 좇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알아주길 바랄 수 있다. 수수함도 관리할 간판이 된다. 한 걸음 더 물어볼 대목이다.

일부러 초라하게 입을 필요도, 아름다운 물건이 좋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귀하게 보이면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요구와 귀함에 무심한 모습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요구를 함께 느슨하게 해 보자. 선택은 생활에 맞으면 된다. 매번 내 사람값을 매길 의무까지 질 필요는 없다.

7. 독자에게 건네는 것

이 장은 충분하다는 말을 패배와 조금 떼어 놓는다. 일을 하다 말고 놓으라는 뜻은 아니다. 지금 나는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완전한 목록을 완전한 삶으로 착각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프로젝트에서는 책임을 명확히 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 방법을 찾을 자리를 남긴다. 재정을 정리할 때는 정확히 세면서 장부 밖의 시간과 건강과 관계도 기억한다. 성과를 기뻐하면서 내 노력과 도와준 사람을 함께 인정한다.

모든 목표를 반대하려고 하늘이 갈라질 거라고 겁줄 필요는 없다. 그 목표에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거절할 여지가 있는지를 보는 편이 실제적이다.

수레와 부품으로 돌아가자. 목록을 진지하게 정리하면서도 그것이 전부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책 한 권이나 일 하나를 끝낸 것은 진짜 완성이어도 된다. 여지를 남긴다는 것은 완성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실이 다시 문을 두드리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