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은 권모술수를 가르치지 않는다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将欲歙之,必固张之。将欲弱之,必固强之。将欲去之,必固兴之。将欲夺之,必固与之。是谓微明:柔弱胜刚强,鱼不脱于渊,邦利器不可以示人。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1. 후흑학의 교본으로 읽혀 온 장
『도덕경』 36장은 권모술수의 가르침으로 읽혀 왔다. 여기서는 다른 길로 들어가 보고 싶다.
장차 오므리려 하면 반드시 먼저 펴 주고, 장차 약하게 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 주고, 장차 없애려 하면 반드시 먼저 일으켜 주고, 장차 빼앗으려 하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將欲歙之,必固張之。將欲弱之,必固強之。將欲去之,必固興之。將欲奪之,必固與之)
거두어들이고 싶으면 먼저 펼치게 하고, 약하게 만들고 싶으면 먼저 강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고 싶으면 먼저 일어서게 하고, 잃게 하고 싶으면 먼저 쥐여 주라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네 구절을 권모술수로 읽었다. 경쟁자를 무너뜨리고 싶은가? 먼저 치켜세워 주어라. 한껏 부풀어 붕 뜰 대로 뜨게 두었다가, 그때 단번에 거둬 가라. 잡고 싶으면 일부러 놓아준다는 욕금고종(欲擒故縱), 추어올려 제풀에 넘어지게 하는 수, 줄을 길게 늘여 큰 고기를 낚는 수를 떠올리게 하는 독법이다.
리쭝우(李宗吾)의 후흑학(厚黑學), 곧 낯가죽은 두껍게 속은 시커멓게 살라는 처세술의 눈으로 본 노자다. 네 구절을 음모가의 실무 지침서로 읽은 셈이다.
2. 네 쌍이 말하는 것은 구조의 동력이다
歙은 거두어들이는 움직임이고 張은 펼치는 움직임이다. 약함과 강함, 없앰과 일으킴, 빼앗음과 줌도 서로 반대되는 방향을 나란히 놓는다. 29장의 앞서감과 뒤따름, 강함과 쇠약함 역시 눈에 띄는 한쪽만 보지 않도록 한다.
이 글은 여기서 행동의 역효과를 살핀다. 확장을 위해 빚을 너무 많이 내면 성장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아이를 잘 따르게 하려고 모든 일을 대신 결정하면 판단을 배우는 기회를 줄일 수 있다. 강함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 힘을 쓰는 방식이 힘을 지탱할 조건을 해치고 있는지가 문제다.
예외 없는 자연법칙은 아니다. 활은 되돌아올 수도, 부러질 수도 있다. 커지는 기업은 쇠퇴할 수도, 제때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결과마다 조건이 다르다. 위험을 알아본 뒤에도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3. 셈법에 나를 맡기지 않기
상대를 먼저 치켜세운 뒤 무너뜨린다는 독법은 오래되었다. 『한비자』 「유로」도 전쟁과 선물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이 구절들을 풀이한다. 현대인이 멋대로 만들어 낸 오독만은 아니다. 옛 주석 읽기
나는 이 장을 그런 교본으로 쓰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조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증명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조종한 쪽이 이익을 얻고 무고한 사람이 먼저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29장과 함께 읽으면 다른 질문을 할 수 있다. 상대를 내 각본대로 넘어뜨리려고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원을 쓰고 있는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더 쏟아부어야 하는가? 어느새 내 생활까지 상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경계할 것은 이 얽매임이다. 남을 배치할 수 있는 물건처럼 다루다가 나까지 결말을 통제해야 한다는 집착에 묶인다. 위험이 커지는 것이지, 누가 먼저 망할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덫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에 복수를 대신 맡기는 일이 아니라, 복수가 내 방향을 정하게 두지 않는 일이다.
4. 이를 일러 은미한 밝음이라 한다
‘이를 미명이라 한다.’ 작은 변화는 눈에 띄는 승패에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다. 33장의 자신을 안다는 말과 함께, 자기 위치와 맹점까지 알아보는 밝음으로 읽고 싶다.
팀은 계속 성공을 보고하지만 자원은 줄어든다. 협력은 이어지지만 상대가 솔직히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미명은 누가 반드시 패할지 아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성공을 지탱할 조건이 달라지는지 살피는 일이다.
살펴보니 내 짐작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 묻고 들으면 된다. 처음부터 꿰뚫어 본 나를 또 하나의 간판으로 만들지 않는다. 알아보는 목적은 행동을 사정에 맞추는 것이지 예언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다.
5.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바람에 휘어지는 살아 있는 가지를 먼저 떠올려 보자. 휘어질 수 있어서 돌아올 수도 있다. 휘어지지 못하는 것은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여기서 부드러움은 힘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약함도 상처받는 사람에게 계속 양보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변화에 응답할 여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비이지, 강자는 늘 지고 약자는 늘 이긴다는 예측은 아니다.
경쟁자가 무리하게 확장하더라도 더 부추기려고 나까지 돈을 태울 필요는 없다. 내 자금과 제품,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살핀다. 상대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내 계획은 한 가지 결말만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동료를 지키고,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피해를 기록하고, 위험한 협력에서 벗어나는 데는 단호한 행동이 필요할 수 있다. 내려놓는 것은 남을 조종하려는 계획이지, 판단과 준비와 자기 보호의 책임이 아니다.
6. 물고기는 깊은 못을 벗어나지 않는다
‘물고기는 깊은 물을 떠나지 않는다.’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하다는 소박한 장면은 뛰어난 능력에서 그 능력을 지탱할 환경으로 시선을 옮긴다. 33장의 제자리를 잃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다.
쓸모 있는 기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관계, 안정된 수입, 잠과 혼자 있을 시간일 수 있다. 눈에 띄는 직함을 얻으려고 그것들을 다 써 버리면 직함을 얻어도 삶은 더 나빠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물고기가 아니며 깊은 물도 누가 정해 준 신분이 아니다. 직장을 바꾸고 해로운 관계를 떠나며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지킬 것은 옛자리 자체가 아니라 살고 판단하고 돌아설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떠남이 그것을 되찾는 길일 때도 있다.
7. 나라의 날카로운 도구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나라의 이로운 기물은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이로운 기물에서는 무기, 권력, 통치 수단 등 여러 논의가 나올 수 있다. 옛 문장이 오직 간판을 내세우지 말라는 뜻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글은 힘을 드러내는 데 절제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읽는다. 관리자는 결정권이 있어도 이견이 생길 때마다 서열을 확인시킬 필요는 없다. 누군가를 징계할 수 있다고 두려움으로 일터를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고기에게 깊은 물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보면, 힘을 과시하기보다 힘이 성립하는 조건을 돌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공적인 책임까지 감추어서는 안 된다. 누가 결정했고 자원을 어떻게 썼으며 잘못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는지는 분명해야 한다. 책임을 공개하는 것은 자랑이 아니며 비밀도 그 자체로 지혜는 아니다.
8. 독자에게 건네는 것
이 장은 ‘영리함’의 뜻을 다시 묻게 한다. 남의 다음 수를 전부 읽는 능력보다, 압박 속에서도 내 방향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확장하는 상대를 보면 내가 지속할 수 있는 일을 살핀다. 도발에는 응답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한다. 침묵은 선택이지, 피해를 입어도 말하지 말라는 의무가 아니다. 힘을 드러내고 싶을 때는 공개적으로 책임지는 것과 위협하는 것을 구별한다.
물고기의 깊은 못은 삶을 지탱하는 조건을 돌보라는 비유로 읽을 수 있다. 익숙한 직장이나 관계를 떠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나라의 힘을 과시하지 말자는 해석도 공적 권력을 감시에서 숨길 구실이 될 수 없다.
방향을 바꿀 여지를 남기자. 할 일을 하면서도 결말을 전부 정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자. 남이 끝내 무너져야 내 삶이 옳았다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