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14장 · 총 81장
오늘의 도를 붙들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
視之而弗見,名之曰微;聽之而弗聞,名之曰希;捪之而弗得,名之曰夷。
도는 눈으로 색을 떼어 낼 수 없고, 귀로 소리를 붙잡을 수 없으며, 손으로 형태를 고정할 수도 없다. 감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각 자체가 경계를 만드는 칼이기 때문이다. 도는 그 칼로 잘라 낸 대상 하나가 아니다.
잡히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형태 없는 형태, 사물 없는 모습”이라는 역설은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생기고 사라지는 경계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앞도 뒤도 붙잡을 수 없는 흐름
다가오는 것을 맞이해도 머리를 볼 수 없고, 따라가도 꼬리를 볼 수 없다. 도를 시간선 위의 첫 원인으로 놓으면 또 하나의 사물을 만드는 셈이다. 그것은 모든 순간에서 작동하지만 어느 한 순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백서의 감탄사 ‘呵’는 후대에 ‘兮’로 바뀌어 엄숙한 경문처럼 읽혔다. 원래의 말투를 되살리면 노자는 구름 위에서 선언하기보다 눈앞의 잡히지 않는 것을 가리키며 “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에 가깝다.
옛것이 아니라 지금을 붙든다
통행본은 “옛 도를 붙들어 오늘을 다스린다”고 하지만 백서는 “지금의 도를 붙들어 옛 시작을 안다”고 쓴다. 전자는 과거의 권위를 현재에 적용하고, 후자는 현재 일어나는 생성에서 고대와 같은 구조를 발견한다.
도는 박물관의 정답이 아니다. 지금 관계가 생기고 이름이 붙으며 무엇인가 빠져나오는 바로 이 순간에 있다. 오늘의 흐름을 정밀하게 볼 수 있을 때 옛사람이 본 시작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