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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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육상 · 한국어 독립 재구성판
제 22 편 / 전23편

구축은 잔여항을 위한 범주를 발명한다

개인 중립 선수와 난민 올림픽 대표팀은 처음부터 주어진 정체성이 아니다. 국가별 출전 자격이라는 관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도가 발명한, 서로 다른 통로다.

Han Qin (秦汉)
이 글의 목차

1 관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올림픽에는 국적이라는 관문이 있다.

올림픽 헌장 제41조는 올림픽 출전자가 자신을 출전시키는 국가올림픽위원회가 속한 나라의 국민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출전 자격은 국적과 국가올림픽위원회에 묶여 있다. 선수는 한 나라를 대표해 나오고, 그 나라는 국가올림픽위원회를 통해 선수를 내보낸다. 이것이 올림픽의 통상적인 관문이다. 대다수 선수는 이곳을 통과한다.

하지만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 있다.

누군가는 자기 나라가 제재를 받거나 쫓겨났다. 아예 공인된 국가올림픽위원회가 없는 나라의 선수도 있다. 누군가의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자격이 정지되었다. 또 누군가는 고국에서 도망쳐 나와 더는 그 나라를 대표할 수도, 대표하고 싶지도 않다. 몸은 자격을 갖추었고 기록도 기준을 넘었다. 그런데 국적이라는 관문이 그들을 바깥에 세워 둔다. 올림픽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동안에도 그 안에 담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글은 그렇게 담기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 구축체가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한다.

앞선 스물한 편에서 이 구축체는 자신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여러 방식으로 처리했다. 담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장부 밖에 남겨 두기도 했다. 계산이 안 되면 결과만 기록하는 데로 물러났고, 손이 닿지 않으면 입증 책임을 나누는 데로 물러났다. 닫히지 않는 결과를 위해 규칙 안에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두기도 했다. 이번에는 새로운 일을 한다. 담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범주를 발명한다.

그들을 배제하지 않았다. 없는 사람인 척하지도 않았다. 기존 분류 체계 옆에 새 칸을 하나 따로 만들어, 국적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이들을 그 안에 넣었다. 독립 올림픽 선수, 중립 선수, 난민 올림픽 대표팀. 모두 이 구축체가 자신이 담아내지 못하던 사람들을 위해 새로 만든 범주의 이름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새 범주를 자세히 들여다보려 한다. 거기에는 두 얼굴이 있고, 두 얼굴은 서로 반대되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이 글은 그중 어느 쪽이 옳은지 판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 판정하지 않는지부터 밝혀 두자.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연작에는 의도적으로 답을 내놓지 않는 글이 몇 편 있다. 자료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판단하려는 문제 자체에 객관적인 정답과 오답이 없기 때문이다. 제12편에서 어떤 기록을 인정해야 하는가는 가치의 문제였다. 제14편에서 분류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 역시 가치의 문제였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구축체가 자신이 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범주를 만든다. 이것은 선의인가, 적당히 넘기려는 처사인가. 포용인가, 배제인가. 사실을 더 모은다고 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다. 똑같은 사실이 정반대의 답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의 할 일은 두 답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왜 둘 다 성립하는지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다.

2 중립이라고 국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기 전에 이 새 범주를 둘러싸고 널리 퍼진 오해 하나를 걷어 내야 한다.

중립 선수에게는 국적이 없다는 오해다.

규칙을 정확히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현재의 개인 중립 선수 제도를 보자. 러시아나 벨라루스 여권을 가진 선수가 중립 자격으로 출전하려 할 때, 바로 그 여권상의 신분 때문에 특별 자격 심사가 시작된다. 이 구축체는 선수의 국적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국적을 알기 때문에 특별 심사를 가동한다. 국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심사로 들어가는 입구로 쓰이고 있다.

없어진 것은 국적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한다는 연결이다.

이 차이를 똑똑히 보자. 세계육상연맹의 선수 데이터베이스는 한 선수의 인적 사항에 러시아 연방이라는 국적을 남겨 두면서도, 경기에서는 중립 코드를 달고 뛰게 할 수 있다. 국적은 기록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달라진 것은 그 경기에서 그 나라의 대표로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국기는 내려가고 국가(國歌)는 다른 음악으로 바뀌며, 메달은 국가올림픽위원회별 메달 집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구축체도 정확히 안다. 자기 자료에 직접 적어 놓고 있다.

그러므로 중립이란 구축체가 국적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훤히 알고 있다. 중립은 이 선수가 누구를 대표하도록 허용되는지에 관한 규칙이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른다는 선언이 아니다. 국기, 국가, 입장식의 대열, 메달 집계의 귀속처럼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몇몇 상징을 없애거나 바꾼다. 그렇다고 법적인 국적까지 기관의 기록에서 지우지는 않으며, 지울 필요도 없다.

이 구분은 이후 논의 전체의 토대다. 두 얼굴을 둘러싼 논쟁이 바로 여기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국적은 남겨 둔 채 대표 관계만 없앤다. 이것은 지켜 주는 일인가, 억누르는 일인가.

이 구분이 낳는 실제 효과도 먼저 짚어 둘 만하다. 국적 자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대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구축체는 사람을 무국적자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의 국적을 공개 무대에서 무대 뒤 자료실로 옮긴다. 국적은 여전히 있다. 다만 국기, 국가, 메달 집계처럼 눈에 보이는 자리를 떠나, 눈에 띄지 않는 선수 데이터베이스로 물러난다. 무대 앞에서 뒤로 옮긴다고 법적 사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그 사람은 여전히 그 나라의 국민이다. 달라지는 것은 그 사실을 이 경기에서 보여 줄 수 있느냐뿐이다. 그리고 보여 줄 수 있느냐 없느냐야말로 두 얼굴을 둘러싼 논쟁의 전부다. 한쪽은 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는 데 무게를 두고, 다른 쪽은 그 사람의 일부가 감춰졌다는 데 무게를 둔다.

3 배제에서 대체로 그리고 거듭 쓸 수 있는 조치로

구축체가 잔여항을 위해 범주를 발명하는 능력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능력은 더 오래되고 더 거친 역사에서 자라났다. 그 역사의 출발점은 범주의 발명이 아니었다. 배제였다.

먼저 배제를 보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분리 정책 때문에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제외되었다. 이때의 배제는 그 대회 출전에 관한 것이었다. 1970년에는 구축체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아공 올림픽위원회에 대한 승인을 철회하고 올림픽 운동에서 추방했다. 약 21년에 걸친 제도적 부재는 1991년에야 끝났다.

여기서는 법적으로 다른 두 행위를 곧바로 구별해야 한다. 1964년의 결정은 그해 올림픽 출전을 겨냥했다. 정식 추방은 1970년이었다. 1964년부터 1970년까지를 하나의 결정으로 뭉뚱그리면 그 사이의 여러 번복이 가려진다. 1967~1968년에 시도되었다가 무산된 조건부 재수용도 그중 하나다. 두 결정 모두 새 범주를 발명한 것은 아니었다. 나라 하나를 통째로 밖에 세워 둔 일이었다.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배제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패한 대체의 시도를 보자.

1972년 뮌헨에서 로디지아 문제를 다룰 때, 구축체는 처음으로 대체에 가까운 방법을 시도했다. 최초의 구제책은 오늘날 말하는 중립이 아니었다. 로디지아 대표단이 로디지아 자체의 정체성 대신 영국 식민지의 정체성을 띠고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정체성을 다른 정체성으로 바꾸려 한 셈이다.

하지만 이 대체는 실패했다. 아프리카 국가올림픽위원회들은 신분을 바꾸는 이런 우회책을 거부하고 집단 불참을 예고했다. 36 대 31의 표결 끝에 구축체는 개막을 앞두고 로디지아 초청을 철회했다. 처음 내놓은 해법은 정체성의 대체였지만, 그것으로 정치적 문제를 넘지 못하자 출전 자체가 사라졌다. 대체라는 방법의 초기 형태는 안정된 수용 방식으로 자리 잡기도 전에 더 강한 배제에 덮여 버렸다.

당시 로디지아 대표단이 정확히 어느 깃발을 쓸 예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2차 자료의 설명이 일치하지 않는다. 영국 국기였다는 기록도 있고, 독립 이전의 식민지 깃발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뮌헨의 해당 회의 의전 문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느 깃발이었는지 단정하지 않는 편이 옳다.

그 뒤 모스크바와 로스앤젤레스에서 국가 단위의 보이콧을 두 차례 겪고, 1990년대 이후에야 구축체는 그 조치를 안정된 방식으로 정착시켰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는 유엔 제재와 국가 해체로 독립 올림픽 참가자가 등장했다. 2000년 시드니에서는 동티모르에 아직 공인된 국가올림픽위원회가 없어 선수들이 독립 자격으로 나왔다. 2014년 소치에서는 인도 올림픽위원회의 자격 정지로 인도 선수들이 한동안 독립 자격으로 출전했다가, 정지가 풀린 뒤 다시 인도를 대표했다. 2016년 리우에서는 쿠웨이트 올림픽위원회가 자격 정지 상태여서 쿠웨이트 선수들이 독립 올림픽 선수로 참가했다. 그중 알디하니는 이 독립 범주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까지 땄다. 시상식에는 쿠웨이트의 상징이 아니라 올림픽의 의전 상징이 쓰였다.

이 사례들을 촉발한 법적 사유는 크게 다르다. 유엔 제재와 국가 해체, 공인된 국가올림픽위원회의 부재, 국가올림픽위원회의 자격 정지. 헌장에 정해 놓은 하나의 고정 범주가 아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매번 구축체의 집행위원회는 같은 기술을 썼다. 선수의 출전은 지키되, 통상적인 국가올림픽위원회를 통한 대표 관계는 억제하거나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계기는 그때마다 달랐지만 조치는 같았다.

이것이 구축체가 잔여항을 위해 발명한 것의 실체다. 발명한 것은 범주라기보다 거듭 쓸 수 있는 조치에 가깝다. 국적의 관문을 넘지 못하는 까닭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천차만별에 대처하는 방법은 하나다. 기록은 남기고 국가 대표라는 지위는 떼어 낸다. 서로 다른 계기가 나타날 때마다 같은 조치를 되풀이해 적용한다.

이 대목은 제14편을 거울에 비춘 듯하다. 그 글에서 구축체는 성별 분류라는 하나의 문제를 붙들고, 일곱 역사적 단계를 거치며 판정 기준을 바꾸어 갔다. 여기서는 출전을 지키면서 대표 관계를 없애는 하나의 조치를 붙들고, 서로 다른 계기들에 계속 적용한다. 그쪽에서는 하나의 문제에 일곱 단계가 이어졌다. 이쪽에서는 하나의 조치에 수없이 많은 계기가 붙는다.

이 대비는 한 겹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제14편의 그 일곱 단계 안에서 기준이 바뀔 때마다, 앞선 기준이 더는 버티지 못했다. 증거나 논쟁에 떠밀려 다음으로 갔다. 현실을 뒤쫓으며 어쩔 수 없이 바꾸는 일이었다. 여기서는 정반대다. 조치를 바꾸도록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조치를 안정적으로 거듭 쓴다. 새로운 계기, 새로운 제재, 또 한 번의 국가 해체, 새로운 전쟁이 닥쳐도 새 방법을 발명할 필요가 없다. 완성되어 있는 조치를 다시 적용하면 된다. 제14편이 확정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흔들리는 구축체를 보여 주었다면, 이 글은 이미 확정한 조치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구축체를 보여 준다. 하나는 답을 못 찾는 불안이고, 다른 하나는 도구를 손에 넣은 뒤의 익숙함이다. 이 글에서 경계하려는 것이 바로 그 익숙함이다. 조치를 익숙하게 반복할수록 그 안의 양면성은 능숙한 손놀림 뒤에 가려지기 쉽다.

4 신청하고 심사하고 걸러 내는 시스템

러시아 중립 선수의 사례로 오면 이 조치는 지극히 구체적인 모습을 띤다. 그 구체성이 또 하나의 흔한 오해를 깨뜨린다.

중립은 러시아 선수라면 자동으로 얻는 신분이라는 오해다.

그렇지 않다. 신청하고 심사하고 걸러 내는 시스템이다.

세계육상연맹의 공인 중립 선수 제도는 처음에 러시아육상연맹의 자격이 정지된 뒤, 개별 선수에게 신청을 받아 특별 자격 기준을 충족함을 입증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러시아 선수 모두를 자동으로 중립으로 바꿔 주는 제도가 아니었다.

숫자를 보면 분명해진다. 2018년에는 73명이 승인받았고, 68명이 거부되었으며, 6명은 승인이 취소되었다. 2019년 9월 10일까지는 누계 128명이 승인받고 58명이 거부되었으며 1명은 승인이 취소되었다. 2021년에는 151명이 승인받았고 6명이 거부되었다.

이 숫자는 개별 사안을 하나씩 심사했음을 보여 준다. 러시아 대표팀 전체를 자동으로 다른 이름으로 바꾼 게 아니다. 통과한 사람도 있고 못 한 사람도 있으며, 통과한 뒤 취소된 사람도 있다. 중립 신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문밖에 남았다.

검사 요건도 아주 구체적이었다. 2022년 지침은 15세 이상인 신청자 대부분에게 앞선 12개월 동안 최소 세 차례의 사전 통보 없는 경기 외 검사를 요구했다. 검사 사이의 간격은 적어도 3주여야 했다. 자격이 정지된 연맹에서 선수 한 사람을 따로 떼어 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증거의 대가였다.

그런데 2022년 3월, 제재가 한 겹 더 얹히면서 중립 신분의 실질적 의미가 달라졌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세계육상연맹은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을 자신이 관할하는 국제 경기에서 배제했다. 이제 중립 자격이 있어도 세계육상연맹 대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러시아육상연맹에 내려진 도핑 관련 자격 정지는 2023년 3월 마침내 풀렸다. 그러나 전쟁을 이유로 한 배제는 그와 별개로 남아 있었다.

이 한 겹의 차이를 이 글은 엄격하게 기억해야 한다. 중립이라는 말은 그것을 만들어 낸 구체적인 제재에 묶어 이해해야 한다. 영원히 유지되는 단일 범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도핑 때문에 생긴 중립과 전쟁 때문에 생긴 배제는 서로 다른 일이다. 해제되는지 계속 남는지도 각각 따로 결정된다.

2026년 8월 17일에 이르면 더 선명한 증거가 드러난다. 올림픽이라는 이 구축체와 세계육상연맹은 더는 러시아·벨라루스의 출전에 같은 정책을 적용하지 않았다. 세계육상연맹은 2026년에도 2022년의 배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재확인했다. 반면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26년 7월 러시아 올림픽위원회의 자격 정지를 잠정 해제하고, 러시아 선수의 출전에 관해 국제종목연맹들에 내렸던 이전 권고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같은 나라의 선수가 두 기관의 눈에는 서로 다른 지위에 놓여 있다. 중립 선수가 전 세계에서 통하는 하나의 법적 지위가 아니라는 증거다. 그것은 연맹마다 다르며, 구체적인 제재와 함께 생겨나고 달라지고 사라진다.

5 올림픽의 개인 중립 선수

파리 2024에 이르러 구축체는 앞선 사례들과 구성이 다른 새로운 범주를 내놓았다. 개인 중립 선수다.

앞서 본 독립 범주들과는 다르다. 러시아나 벨라루스 여권을 가진 적격 선수는 추가 자격 심사를 거친 뒤 개인으로만 출전할 수 있었다. 팀은 제외되었다.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선수는 자격이 없었다. 러시아나 벨라루스의 군 또는 국가안보기관과 계약한 선수도 자격이 없었다. 일반적인 반도핑 요건과 출전 자격 요건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신청만 하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당 국제종목연맹의 출전 자격을 갖추는 일은 필요조건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올림픽에 들어갈 권리가 생기지는 않았다. 구축체는 별도의 자격 심사단을 두어 최종 자격을 판단하고 선수 개인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선수는 다시 이 구축체의 참가 조건에 따라 그 초청을 수락해야 했다.

파리에서 실제로 출전한 개인 중립 선수는 소수였다. 모두 32명으로, 스포츠상 국적 배경이 러시아인 선수가 15명, 벨라루스인 선수가 17명이었다. 러시아나 벨라루스 올림픽 대표팀을 다른 이름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발표한 적격 선수 또는 초청 선수 명단과, 최종적으로 초청을 받아들여 출전한 선수 수를 주의 깊게 구별해야 한다. 서로 다른 숫자이므로 섞어 쓰면 안 된다.

이 범주가 임시적이라는 사실은 2026년에 더욱 뚜렷해졌다. 구축체는 대체로 같은 조건을 밀라노·코르티나 2026에도 이어 갔다. 중립 선수가 딴 메달은 여전히 국가올림픽위원회별 메달 집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특정 상황에 대응한 임시 장치였다. 올림픽 헌장에 새겨진 고정 신분이 아니었다. 헌장이 제공하는 것은 통상적인 국적과 국가올림픽위원회 규칙이다. 중립 범주는 집행위원회의 결정으로 만들어졌다. 2026년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앞서 러시아·벨라루스에 부과했던 제한을 철회하자, 이 범주가 상황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숨김없이 드러났다. 그것은 만들 수도, 거둘 수도 있다. 자신을 낳은 정치적 사실과 함께 움직인다.

6 난민 대표팀은 다른 이야기다

지금까지 살펴본 중립과 독립은 이미 있던 국가 대표 관계를 떼어 내는 방식이었다. 난민 올림픽 대표팀은 다르다. 이쪽이 마주한 것은 국가를 대표해 나설 통로조차 찾을 수 없는 처지다.

난민 제도는 2015년 강제 이주 위기에 대응하면서 시작되었다. 2016년 3월, 구축체는 리우 올림픽을 위한 난민 올림픽 대표팀을 정식으로 만들었다. 리우에서는 선수 열 명이 육상, 수영, 유도의 세 종목에 참가했다. 공인된 국가올림픽위원회를 대표해서도 아니었고,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중립 개인 열 명으로 나온 것도 아니었다. 최초의 난민 올림픽 대표팀으로 나왔다.

이 팀은 이후 계속 커졌다. 도쿄에서는 선수 29명이 12개 종목에 참가했다. 파리에서는 최종적으로 11개국 출신 선수 37명이 12개 종목에 나섰고, 15개 국가올림픽위원회가 이들을 받아들여 지원했다. 파리는 이 팀에 첫 올림픽 메달도 안겼다. 응감바가 딴 복싱 동메달로, 이 팀은 더는 의전이나 참가 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팀이 아니라 성과를 내며 경쟁하는 팀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육상연맹도 2016년에 자체 난민 선수단을 창설했다.

난민 대표팀이라는 범주에는 특히 눈여겨볼 변화가 있다. 그 변화는 무언가를 더 많이 지워 가는 방향만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처음에 구축체는 난민 선수에게 대체 상징을 주었다. 비어 있는 국가 대표의 자리를 올림픽기와 올림픽 찬가로 대신했다. 중립 선수와 같은 논리였다. 없는 국가 대표를 중립적인 것으로 채웠다.

하지만 나중에는 달라졌다. 파리 2024에서 구축체는 난민 올림픽 대표팀에 자체적인 시각적 정체성과 고유의 상징 표장을 부여했다. 누구나 함께 쓰는 올림픽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분석상 중요한 변화다. 처음에는 올림픽 상징으로 비어 있는 국가 대표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후에는 난민 자체를 고유한 내용을 가진 적극적인 집단 스포츠 정체성으로 점점 더 구축해 갔다.

이처럼 구축체가 잔여항을 위해 발명한 범주는 변할 수 있다. 순전히 대체용인 상징,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중립적 표지가 그 자체로 내용을 가진 적극적인 정체성이 될 수 있다. 처음에 난민이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 통상적인 국가 대표 관계가 없음을 알리는 빈칸의 표지일 뿐이었다. 이제는 그 사람이 스스로 나서서 대표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이 변화는 실제로 일어났고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이 변화 때문에 난민 대표팀과 중립 선수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두 방향의 차이를 분명히 해 두자. 중립 선수 범주의 내용은 비어 있다. 그것은 뺄셈이다. 국가 대표 관계를 빼면 중립적인 껍질이 남는다. 중립 선수는 무언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대표했을 나라를 잠시 대표하지 않을 뿐이다. 반면 난민 대표팀은 시간이 흐르며 덧셈이 되었다. 비어 있는 국가 대표의 자리를 메우는 데 그치지 않고, 범주 안에 적극적인 내용을 넣었다. 난민 그 자체를 스스로 대표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똑같이 구축체가 잔여항을 위해 만든 범주인데, 하나는 점점 더 비어 있는 과도적 상태에 가까워지고 다른 하나는 점점 더 실체 있는 정체성에 가까워진다. 구축체가 잔여항을 위해 발명하는 범주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비어 있는 쪽으로도, 내용이 차 있는 쪽으로도 갈 수 있다. 구축체가 그 안에 무엇을 넣느냐에 달렸다.

7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세웠는가

이 새 범주를 뜯어보고 무엇을 바꾸었으며 무엇을 남겼는지 살피는 것이 두 얼굴을 이해하는 열쇠다.

먼저 없앤 것부터 보자.

국기는 경기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차원에서 사라졌다. 중립 선수는 자격이 정지된 나라의 대표로 나올 수 없다. 국가도 사라지지만, 대개는 다른 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침묵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리우의 독립 범주에서 나온 금메달에는 쿠웨이트 국가가 아니라 올림픽 찬가가 연주되었다. 파리의 중립 선수에게는 러시아나 벨라루스 국가 대신 특별히 승인된 중립 음악이 쓰였다. 개인 중립 선수 제도 아래서는 개막식에 대표단으로 참여하는 것도 제한되거나 금지되었다. 경기에는 집단 대표팀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다. 메달 집계의 귀속도 제재받은 국가올림픽위원회에서 의도적으로 떼어 놓았다. 구축체는 중립 선수가 딴 메달이 국가올림픽위원회별 메달 집계에 나오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번에는 남긴 것을 보자.

경기 기록 자체는 삭제되지 않았다. 선수 이름, 순위, 시간, 거리, 높이, 경기 이력은 모두 남는다. 대체 코드는 경기에서의 소속을 표시할 뿐이다. 세계육상연맹 자료에는 인적 사항으로서의 국적 정보가 동시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없앤 것과 남긴 것의 목록을 똑똑히 보면 두 얼굴이 떠오른다. 구축체는 무엇을 남겼는가. 선수의 기록을 남겼고, 그에게 허용된 출전의 권리를 지켰으며,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남겼다. 무엇을 없앴는가. 그가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 일체를 없앴다.

이것이 이 글의 핵심이며, 판단을 유보하는 자리다. 기록을 남기고 대표 관계를 없애는 같은 조치가,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가지 일로 읽힐 수 있다.

8 두 얼굴

같은 규칙에서 출발한 두 설명이 사실에 비추어 모두 성립한다. 이 글은 둘을 나란히 놓고 어느 쪽도 고르지 않는다.

첫 번째 설명은 이렇다. 통상적인 국가 대표 출전이 불가능해졌을 때, 구축체는 개인이 출전할 길을 지켜 주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많다. 동티모르 선수들은 국가올림픽위원회가 아직 없을 때 이 범주 덕분에 출전했다. 자격이 정지된 국가올림픽위원회 아래의 선수들은 기관의 잘못 때문에 경기 기회까지 잃지는 않았다. 중립 선수에게 예외 자격을 부여하는 논리는 연맹 전체가 자격 정지 상태여도 개별 선수에게 길을 남겨 주었다. 마리알의 사례는 특히 강력하다. 그는 런던 2012에서 이 범주 덕분에 자신이 도망쳐 나온 나라, 수단을 대표하지 않고도 출전할 수 있었다. 그에게 올림픽기는 그저 자신의 정체성을 빼앗는 표지가 아니었다. 원치 않는 국가 대표 자격을 거부하면서도 경기에 나설 수 있게 하는 장치였다. 이 설명에서 새 범주는 포용적이다. 집단에 가해진 처벌과 원치 않는 대표 관계에서 개인을 풀어 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설명은 이렇다. 구축체는 통상적인 국가 대표 관계를 억제하고 나서야 그 개인을 받아들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똑같이 많다. 국기와 국가가 사라졌다. 메달은 국가올림픽위원회별 메달 집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개인 중립 선수에게는 팀 정체성이 허용되지 않는다. 올림픽의 상징이나 중립 상징으로 대신한다. 그런데 그 국가적 신분을 구축체는 분명히 알고 있으며, 그것은 법적으로도 여전히 중요하다. 심사를 시작하는 조건으로 쓰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통상적인 방식으로 공개하여 대표할 수는 없다. 이 설명에서 새 범주는 조건부다. 사람을 받아들이되, 그가 평소 대표하던 방식을 먼저 떼어 내라고 요구한다.

두 설명 가운데 하나가 참이고 다른 하나가 거짓인 것은 아니다. 같은 규칙을 서로 다른 분석 층위에서 읽으면 둘 다 성립한다. 첫 번째는 선수가 얻은 것을 본다. 출전할 길이다. 두 번째는 그 길의 대가를 본다. 통상적인 대표 관계의 제거다. 구축체가 한 일에는 두 측면이 함께 들어 있다. 그중 한쪽만 떼어 내어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 떼어 낼 수 없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억지로 한쪽만 남길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첫 번째 얼굴만 남겨, 오로지 개인의 길을 지켜 주는 일이라고 한다면 설명해야 할 것이 있다. 왜 그 길에는 반드시 국기와 국가를 떼어 내는 대가가 붙는가. 정말 무조건 지켜 주려 했다면 자신의 나라를 대표한 채 들어오게 할 수도 있었다. 반대로 두 번째 얼굴만 남겨, 오로지 통상적인 대표 관계를 억누르는 일이라고 한다면 역시 설명해야 한다. 왜 아예 그들을 문밖에 세워 두지 않았는가. 억압만을 원한 기관이라면 예전의 남아공처럼 곧바로 배제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는 국가를 대표한 채 들어오게 하지도 않았고, 바깥에 세워 두지도 않았다. 중간 길을 골랐다. 들어오되 나라를 대표하지는 말라는 길이다. 그 중간 길에는 바로 그 때문에 두 면이 동시에 있다. 무조건적인 수용보다는 조금 덜하고 완전한 배제보다는 조금 더한다. 이 조금 덜함과 조금 더함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 하나의 절충을 서로 다른 쪽에서 본 것이기 때문이다.

난민 대표팀에서도 같은 두 얼굴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지하는 쪽은 이것이 중립이 아니라 인정이라고 말한다. 구축체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선수들도 여전히 올림픽 공동체의 일부임을 보여 주는 증거로 난민 대표팀을 내세운다.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는 파리의 난민 대표팀을 등대에 비유했다. 강제로 고향을 떠난 재능 있는 이들에게 훈련하고 경기할 기회를 주면 무엇이 가능해지는지 보여 준다는 것이다.

비판하는 쪽은 가장 강한 형태의 반론을 제시한다. ‘포용의 환상’이다. 올림픽 시스템은 예외적인 소수의 난민을 무대에 내보이면서도, 국민국가와 부유한 스포츠 체계, 기업의 이해관계를 압도적인 중심축으로 삼는 세계 스포츠 구조는 그대로 둘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이 관점에서 예외 범주는 경계를 넘어서면서 동시에 그 경계를 전시한다. 이와 연결된 또 하나의 반론도 있다. 난민 올림픽 대표팀을 따로 만드는 일은 포용을 촉진하는 동시에 난민을 타자로 표시할 수 있다. 선수와 시민권과 국가가 맺는다는 이른바 정상적인 연결 바깥에 그들을 표시해 두는 것이다.

최근의 실증 연구는 단순한 찬사도 단순한 비난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난민 올림픽 대표팀은 의미 있는 소속감과 심리·사회적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동시에 선수들을 예외적인 모범 이주민으로 만들어 낸다. 수용은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며, 모범적인 성취와 끈기, 대중 앞에서 수행하는 상징적 역할을 조건으로 삼는다.

9 선수들은 스스로 무엇이라 말하는가

이 새 범주가 포용인지, 아니면 체계 안으로의 편입인지 판단하려 한다면, 그 안에 있는 선수들의 말을 듣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서로 갈린다. 바로 그 갈림이야말로 이 글이 판정할 수 없다는 가장 좋은 증거다.

마리알은 개인의 길을 지켜 준다는 쪽에 더없이 선명한 증언을 보탠다. 그에게 올림픽기는 원치 않는 국가 대표 관계를 거부하면서도 출전할 수 있게 하는 장치였다. 사용할 수 있었던 국적을 사용하지 않는 데는 그 자신의 이유가 있었다.

다후크는 난민 대표팀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말을 들려준다. 시리아 태생의 이 유도 선수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자신의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전 세계 난민을 대표하고, 난민도 선수나 학생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선택한 무엇이든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난민이라는 말을 벗어나고 싶은 꼬리표가 아니라 스스로 대표할 정체성으로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사용한다.

러시아 육상 선수 배제에 대한 라시츠케네의 반응은 더 복잡하다. 그는 중립 깃발 아래 계속 출전할 생각이라고 말하면서도, 러시아 스포츠 지도부가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을 외롭게 내버려 둔다고 비판했다. 그의 입장은 중립을 무조건 거부하는 쪽도, 국가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며 환영하는 쪽도 뒷받침하지 않는다. 중립 신분은 그에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을 만들어 낸 것은 그가 해롭고 잘못 다뤄지고 있다고 여긴 상황이었다.

마르디니의 사례는 난민 선수로 출전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도, 난민이라는 꼬리표가 선수라는 이름을 삼켜 버리길 바라는 것은 아닐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미디어는 그를 다룰 때 탈출 이야기와 영웅적인 면모를 앞세우고, 수영 성적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어놓곤 했다.

네 사람은 서로 다른 네 자리에 서 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정직하게 밝혀 두어야 한다. 이 증언들은 대단히 선택적으로 모인 것이다.

예외적인 초청을 받아들여 올림픽 경기장에 선 선수는, 그 신분을 거부했거나 얻지 못했거나 애초에 신청하지 않은 선수보다 훨씬 인터뷰하기 쉽다. 어떤 연맹이 개인 중립 선수 제도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고 해서, 그 연맹이 대표하는 모든 선수의 뜻이라고 자동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중립 선수나 난민 선수들 자신이 이런 조치를 지지하는지에 대해, 현재의 증언만으로 깔끔한 정량적 답을 뽑아낼 수는 없다. 반대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들, 또는 이 범주에 가로막혀 아예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야말로 목소리를 내기 가장 어렵다. 그들의 침묵을 동의로 읽어서는 안 된다.

10 문이면서 벽인 범주

이제 글을 마무리하자. 하지만 마무리하는 방식 역시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이 구축체에는 국적이라는 관문이 있다. 대다수 선수는 그곳으로 들어와 자기 나라를 대표한다. 그러나 늘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가 제재를 받은 사람, 국가올림픽위원회의 자격이 정지된 사람, 고국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다. 몸도 기록도 자격을 갖추었지만 관문은 그들을 바깥에 세워 둔다. 구축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동안에도 담아내지 못하는 잔여항이다.

이 잔여항들 앞에서 구축체는 이 연작의 앞선 글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일을 한다. 예전에 남아공 전체를 쫓아냈듯 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없는 존재인 척하지도 않는다. 그들을 위한 새 범주를 발명한다. 독립 올림픽 선수, 중립 선수, 난민 올림픽 대표팀은 모두 담기지 못하던 사람들을 위해 새로 만든 칸이다.

이것이 이 글의 잔여항이다. 그 모습은 앞서 본 어느 잔여항과도 다르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체는 잔여항을 이렇게 처리했다. 담을 수 없으면 장부 밖에 두고, 계산할 수 없으면 결과로 물러났으며, 손이 닿지 않으면 입증 책임으로 물러났다. 닫고 싶지 않으면 자리를 남겨 두고, 이름 붙이고 싶지 않으면 차이를 초 단위 기록 속에 남겼으며, 선 밖으로 밀어낸 것은 다른 장부에 넣었다. 이 글에서는 범주를 발명한다. 담을 수 없다고 인정하지도 않고 일부러 빈칸을 두지도 않는다. 분류 체계를 증축한다. 새 칸을 하나 따로 지어 관문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 안에 넣는다.

그 새 칸에는 두 얼굴이 있다. 문이면서 동시에 벽이다.

문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사람을 들여보냈기 때문이다. 이 범주가 아니었다면 나라가 제재를 받은 선수, 조국을 떠나 도망친 선수는 국적이라는 관문에 영영 가로막혔을 것이다. 새 범주는 그들에게 들어올 길을 주었다. 마리알이 들어왔고, 독립 올림픽 선수들이 들어왔으며, 난민 선수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올림픽 경기장에 섰고, 그들의 성적은 구축체의 기록에 올랐다. 실제로 열린 문이다.

벽이라고 하는 것은 들어오는 데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오려면 먼저 통상적인 대표 자격을 내놓아야 한다. 국기를 내리고 국가를 바꾸며, 메달은 국가별 집계에 넣지 않고 팀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국적은 구축체도 분명히 안다. 자료에도 여전히 적혀 있다. 그런데도 통상적인 방식으로 공개하여 대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문은 동시에 벽이다. 한 사람을 들여보내면서 그가 평소 지녔던 모습은 바깥에 세워 둔다.

문과 벽은 같은 것의 두 면이다. 구축체가 잔여항을 위해 만든 이 범주는 반은 문이고 반은 벽인 것이 아니다. 같은 조치가 한쪽에서 보면 문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벽이다. 선수를 들여보내는 수단이 바로 국가 대표 관계를 떼어 내는 일이다. 국가 대표 관계를 떼어 내는 목적이 바로 선수를 들여보내는 일이다. 지키는 것과 없애는 것은 한 일의 두 측면이어서 떼어 낼 수 없다.

따라서 이 글은 판정하지 않는다. 판정하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양면적이기 때문이다. 이 범주를 포용적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통상적인 대표 관계를 실제로 없앴다. 배타적이라고만 말할 수도 없다. 실제로 사람을 들여보냈다. 포용과 배제가 한데 꼬여 있다. 담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차마 내칠 수도 없을 때 구축체가 만들어 낸 절충이다. 그 절충이 좋은지 나쁜지, 옳은지 그른지, 공정한지 아닌지에는 하나의 답이 없다. 좋은 면과 그다지 좋지 않은 면이 동시에 있고, 포용하는 면과 조건을 거는 면이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구축체는 관문을 넘지 못하는 사람에게 새 칸을 만들어 줄 수 있다. 경기장에 서게 하고 기록을 장부에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칸을 통상적인 국적의 관문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 칸이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이미 한 가지를 표시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남들은 통상적인 관문으로 들어오지만,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위해 따로 만든, 문이면서 벽인 곳을 지나야 한다. 구축체는 칸을 만들고 그를 안에 넣었다. 그러나 넣는 바로 그 행위가 그와 통상적인 관문으로 들어온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는다. 그를 받아들이려고 어쩔 수 없이 그은 선이다. 그런데 바로 그 선이, 그를 특별히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으로 다시 표시한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