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라
소개: 도핑 방지의 엄격책임 원칙은 주관적 고의를 위반 성립의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위반의 성립과 제재의 무게는 여전히 서로 다른 층위에 있다. 제도는 속마음을 묻지 않으면서도,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척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의 목차
1 마음을 묻지 않는 규칙
도핑 방지 제도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그 핵심은 묻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계도핑방지규약 제2.1조는 선수의 시료에 금지약물이나 그 대사물질 또는 표지자가 존재하는 것을 위반으로 규정한다. 바로 다음 제2.1.1조는 자신의 몸에 어떤 금지약물도 들어오지 않게 할 책임이 선수 본인에게 있다고 명시한다.
두 조항은 엄격책임 원칙을 세운다. 적용되는 금지 범위와 검출·판정 기준에 따라 제2.1조의 ‘존재’가 성립하면, 원칙적으로 고의나 과실, 부주의 또는 알고 사용했다는 사실을 별도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어떤 미량이라도 검출되면 무조건 위반이라는 뜻은 아니다. 판정 한계, 특별 보고·평가 기준, 유효한 치료목적사용면책(TUE)을 고려해야 한다. 유효한 TUE의 조건에 부합하는 존재나 사용은 위반 자체를 구성하지 않으며, 단지 처벌을 나중에 줄여 주는 것이 아니다. 이 글에서 ‘존재하면 위반’이라고 줄여 말할 때는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전제를 둔다. 묻지 않는 것은 의도이지, 규칙의 적용 조건까지가 아니다.
이 ‘묻지 않음’에서 이번 글은 출발한다.
앞선 글들에서 구축은 내면의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판단하느라 애를 썼다. 제13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몸이 얼마나 빨리 달릴지를 판단해야 했다. 제14편에서는 연속된 생리적 선을 어디서 잘라야 할지를 판단해야 했다. 손이 닿지 않는 것에 닿으려는 판단이었기에 하나같이 몹시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글에서 구축은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고, 마찬가지로 입증하기 어려운 선수의 내면 상태를 아예 묻지 않기로 한다. 대신 순전히 외부에 있는, 객관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사실 위에 위반의 성립을 세운다. 시료에 그 물질이 있는가, 없는가.
다만 이 묻지 않음에는 대단히 중요한 경계가 있다. 그 경계를 놓치는 순간 규칙 전체를 잘못 이해하게 된다.
2 마음을 묻지 않는다고 무조건 중징계하는 것은 아니다
엄격책임이란 곧 자동으로 4년간 출전 정지를 받는다는 뜻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법적으로 틀린 말이다.
규약은 두 질문을 의도적으로 나눈다. 첫째, 위반이 발생했는가. 둘째, 그 위반에 어떤 결과가 따라야 하는가. 엄격책임은 첫 번째 질문에만 답한다. 물질이 존재하면 위반이 성립한다. 이 층위에서는 내면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따른 결과는 별개의 문제다. 규약 제10조가 다루는 문제이며, 이 층위에서는 과실과 고의가 매우 중요해진다.
이 두 단계의 구조를 똑바로 보자. 첫 단계인 위반의 성립에는 엄격책임이 적용된다. 내면을 보지 않는다. 두 번째 단계인 결과의 결정에서는 바로 그 내면을 보아야 한다. 제10.5조에 따르면 선수가 자신에게 과실도 부주의도 없었음을 입증할 경우, 원래 적용될 출전 정지 기간을 전부 없앨 수 있다. 제10.6조에 따르면 과실이 있더라도 그 정도가 중대하지 않으면 출전 정지 기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러니 엄격책임이 선수의 결백에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위반과 과실을 두 층위로 나누어 처리한다는 뜻이다. 엄격한 것은 위반이 성립하는 층위뿐이다. 결백한가 아닌가는 그 결과를 정하는 층위에서 진지하게 묻는다. 엄격책임이 곧 자동적인 4년 정지라고 말하는 것은 두 층위를 하나로 뭉개는 일이다. 틀린 말이다.
이 원칙이 느닷없이 발명된 것도 아니다. 세계도핑방지규약이 나오기 전부터 스포츠중재재판소는 엄격책임의 논리를 사용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1995년 퀴글리 사건이다. 2003년 규약은 이 원칙을 국제적으로 통일했을 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여기서 구축의 정교한 설계 하나가 드러난다. 구축은 딜레마 앞에 서 있다. 모든 양성 반응에서 고의를 입증하라고 요구한다면, 일부러 약물을 쓴 사람도 고의를 그럴듯하게 부인하기만 하면 빠져나갈 수 있다. 고의는 내면에 있어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질의 존재만 보고 한결같이 중징계하면, 오염된 보충제를 모르고 먹은 선수처럼 정말 잘못이 없는 사람까지 억울하게 만든다. 구축은 두 문제를 떼어 놓는 방식으로 이를 푼다. 위반을 확정할 때는 고의를 묻지 않는다. 그러면 누구도 고의를 부인하는 것만으로 위반을 피할 수 없다. 그 결과를 정할 때는 과실을 면밀히 묻는다. 그러면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제재를 면할 기회가 남는다. 한쪽에서는 묻지 않고, 다른 쪽에서는 묻는다. 두 층위로 나누어서.
3 두 층위 사이에서 비판은 어디를 향하는가
엄격책임이 옳으냐는 논쟁에는 양쪽 모두 탄탄한 논거가 있다. 이 글은 양쪽을 펼쳐 놓을 뿐,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지하는 쪽의 논거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입증의 가능성이다. 고의는 내면에 있어 입증이 몹시 어려울 때가 많다. 도핑 방지 기구가 양성 사례마다 의식적인 부정행위를 증명해야 한다면, 일부러 약물을 써도 고의였다는 점을 그럴듯하게 부인하는 것만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다음은 기관이 실제로 운용할 수 있느냐다. 퀴글리 사건에서 중재재판소는 고의 여부를 다투는 소송이 스포츠 기관에 안기는 비용과 복잡성을 강조했다. 물질의 존재를 기준으로 책임 성립을 통일하면 판단 절차가 크게 단순해진다.
경기의 공정성도 있다. 섭취가 고의였든 우연이었든 다른 참가자들이 입는 손해는 똑같이 존재한다. 따라서 성적을 무효로 하는 것은 개인을 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기장 전체를 보호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단계에서 확보하는 비례성이다. 지지자들은 불공정할 가능성을 제2.1조의 위반 판단을 약화하는 방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제10.5조와 제10.6조를 통해, 과실이 없거나 아주 적을 때 출전 정지를 없애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반대하는 쪽의 논거도 단순하지 않다. 언제나 고의를 입증해야 한다고 뭉뚱그려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론은 경기 결과의 시정과 개인에 대한 비난을 구별한다. 상대 선수들이 객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였으니 성적을 취소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선수가 규정을 위반했다고 선언하는 일은, 결국 출전 정지 처분을 전혀 받지 않더라도 평판과 후원, 심리와 경력에 오래 영향을 남길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감경을 받으려면 선수가 뜻하지 않게 들어온 물질의 출처를 재구성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염 사건에서는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자원의 불평등도 중요하다. 전문 변호사와 과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출처와 과실의 정도를 입증할 능력이 달라진다. 나아가 비대칭적인 규제 제도 안에서 엄중한 징계 결과를 부과하려 할 때, 행정의 효율성만으로는 충분한 정당화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양쪽 모두 성립하는 주장이다. 성립하는 방식 또한 이 연재에서 익숙하게 보아 온 모습이다. 서로 다른 가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한쪽은 경기의 공정성과 제도의 운용 가능성을 앞세우고, 다른 쪽은 잘못 없는 개인이 비난받지 않을 권리를 앞세운다. 그리고 두 가치 모두 진짜다.
4 같은 사건에 내려진 상반된 두 판단
엄격책임의 두 단계 구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오염 사건이다. 이 대목에서는 혐의 제기와 판정을 엄밀하게 구별해야 한다.
로슨의 시료에서 특정 동화작용제 노출과 관련된 양성 소견이 나왔다. 1심 징계재판부는 제2조 위반이 성립한다고 판단했고, 물질의 출처와 자신에게 과실이 없다는 로슨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아 4년간 출전을 정지했다.
여기서 쓰는 말에 주목하자. 1심은 위반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의 항변을 기각했다. 오염 때문이었다는 설명은 그 단계에서는 그의 항변이었다. 이미 확정된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스포츠중재재판소에 항소했다. 중재재판소는 출처와 과실에 관한 증거를 두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적용되는 증명 기준인 개연성의 우월에 따라 오염된 쇠고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받아들였고, 과실도 부주의도 없었다고 인정해 출전 정지 기간을 없앴다.
이 뒤집힘은 엄격책임이 부정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제2.1조의 위반과 제10조의 과실에 따른 결과를 분리해서 다루는 교과서적인 사례다. 두 심급 모두에서 위반은 성립했다. 물질은 실제로 존재했다. 달라진 것은 과실의 층위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1심은 그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았고, 항소심은 없다고 보았다. 같은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두 심급 모두에서 위반이었다. 같은 출처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반대되는 결론이 나왔다.
심프슨과 파월 사건은 같은 원리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다. 두 자메이카 단거리 선수의 양성 반응은 모두 한 보충제로 거슬러 올라갔다. 1심에서는 18개월 출전 정지가 내려졌다. 두 선수가 중재재판소에 항소하자 재판소는 보충제가 출처라는 관련 증거를 받아들여 각각의 출전 정지 기간을 6개월로 줄였다.
이 두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오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오염은 양성 소견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선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한 번도 뒤집히지 않았다. 오염이 바꾼 것은 제재의 수위를 정하는 판단이었다. 로슨에게서는 4년이던 출전 정지가 아예 없어졌고, 심프슨과 파월에게서는 18개월이 6개월로 줄었다. 위반은 여전히 위반이다. 바뀌는 것은 과실의 판단이며, 그에 따른 결과다.
여기서 지나치게 강한 주장 하나를 더 경계해야 한다. 오염이면 자동으로 선수가 면책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다. 보충제 오염이든 육류 오염이든 그 자체로 자동 성립하는 항변은 아니다. 출처와 신빙성, 선수의 과실 정도는 모두 다투고 판단해야 할 문제다. 로슨 사건은 서로 다른 재판부가 같은 사건의 증거를 놓고 반대 결론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보충제 오염에는 실증적 근거가 있다. 2001~2002년에 실시한 분석은 비호르몬성 영양 보충제 634종을 검사했고, 약 14.8%에서 표시되지 않은 동화작용 스테로이드나 호르몬 전구체에 의한 오염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14.8%를 오늘날 전 세계 보충제 시장의 유효한 추정치로 삼을 수는 없다. 이후 연구에서 나타난 더 넓은 수치 범위도 하나의 모집단에 대한 단일한 유병률은 아니다.
5 매일 신고해야 하는 한 시간
엄격책임은 시료를 채취한 뒤의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시료를 채취하려면 먼저 선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제도가 등장한다. 소재지정보 제출 제도다.
검사대상자등록명부에 올라 소재지정보 제도의 모든 의무를 적용받는 선수는 매일 특정 장소에서 연속된 60분을 지정해야 한다. 그 시간에는 해당 장소에서 선수를 찾을 수 있어야 하며, 선수는 검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현행 규칙상 이 시간대는 허용된 하루 시간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현재는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 사이다.
흔히 하는 오해를 하나 짚고 넘어가자. 규약 제2.4조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검사를 세 번 놓치는 일이 아니다. 12개월 안에 정보제출불이행과 검사불이행이 어떤 조합으로든 세 번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보제출불이행 한 번에 검사불이행 두 번도, 요건을 충족하는 검사불이행 세 번과 마찬가지로 위반이 된다. 또한 검사관이 아무 때나 선수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검사불이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식 검사불이행이 되려면 지정된 60분 시간대 안에 검사를 시도했고 그 시도가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소재지가 한 번 어긋났거나 문을 한 번 두드렸는데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제2.4조에서 말하는 세 차례의 불이행 중 하나가 자동으로 되지 않는다.
이 제도는 사생활에 실제적인 부담을 준다. 그 문제는 정식으로 법정에도 제기되었다. 프랑스의 선수 단체들과 개별 선수들은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소재지정보 제도를 다투었다.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검사관이 자신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하는 이 고도로 침투적인 의무가 사생활과 가족생활에 개입한다고 주장했다.
재판소는 2018년 1월 18일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의 내용은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재판소는 소재지정보 의무가 사생활에 상당히 개입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개입 자체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동시에 개인의 사생활과 유럽인권협약 제8조의 관점에서, 이 개입은 정당하고 비례성에 맞으며 건강과 타인의 보호를 비롯한 정당한 목적에 기여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제8조 위반이 없다는 것이었다.
위반이 없다는 것과 개입이 없다는 것을 혼동하면 이 판결을 왜곡하게 된다. 재판소는 개입이 존재함을 분명히 인정했다. 다만 그 개입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말이다. 구축은 소재지정보 제출이 사생활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오는 일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례성의 문제는 판결 뒤에도 논쟁거리로 남았다. 찬성하는 쪽은 실효성 있는 경기 기간 외 검사를 하려면 정말로 예고 없이 선수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제도를 더 좁히면 예측 가능한 검사 공백이 생긴다고 강조한다. 비판하는 쪽은 감시의 부담, 가정이라는 공간에 대한 개입, 데이터의 기밀성, 그리고 선수가 규제기관이 자신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생활을 짜 맞춰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증 연구에서는 중요한 중간 지점이 발견되었다. 많은 엘리트 선수가 원칙적으로 도핑 방지를 강하게 지지하면서도, 실제 소재지정보 제도가 지우는 부담에는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6 10년 뒤의 시료
엄격책임과 소재지정보 제출은 현재를 다룬다. 그런데 구축의 손을 과거까지 뻗게 하는 또 다른 제도가 있다. 시료의 장기 보관과 소급 검사다.
관련 기한은 2015년 개정 때 기존 8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다. 현행 체계에서는 시료를 보관해 두었다가 채취 후 최대 10년까지 유효하게 재분석할 수 있다.
재분석은 표적을 정해 이루어진다. 자동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 보관이 열어 주는 것은 법적 기회다. 분석 능력이 발전했을 때, 새로운 첩보나 수사 정보가 생겼을 때, 또는 전략적인 검사 이유 때문에 보관 중인 시료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생겼을 때, 구축은 추가 분석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올림픽 재검사 프로그램은 보관 시료 가운데 일부를 골라 검사한다. 한 대회의 모든 시료관을 무차별적으로 다시 검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규모를 보자.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16년에 진행한 주요 재분석 과정에서 2008년 베이징과 2012년 런던 대회의 시료를 합쳐 1,243개 선별했다고 발표했다. 2020년 12월까지 두 대회와 관련된 추가 분석을 통해 확인된 위반은 130건을 넘었다. 이 두 숫자는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선별 시료의 수는 검사 단계의 숫자다. 위반 건수는 결과 관리 절차를 거쳐 법적으로 성립한 결과다. 두 수치는 같은 분모를 쓰는 것이 아니며, 서로 바꾸어 쓸 수 없다.
이 소급 제도는 메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실제로 바꾸었다. 동료 심사를 거친 한 분석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2004년, 2008년, 2012년 대회를 재검사하면서 확인한 위반에 메달 성적 76건이 연관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는 그 연구의 역사 자료에 포함된, 도핑의 영향을 받은 전체 메달 성적 가운데 57%였다.
그 분석은 시간에 관한 수치도 제시했다. 대회가 끝난 때부터 소급해서 적발한 위반이 발표될 때까지 평균 6.8년, 편차는 위아래로 약 2년이었다.
이 6.8년은 잘못 인용되기 아주 쉬우므로 무엇을 측정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대회 종료부터 재검사 위반 발표까지의 평균 간격을 측정한 것이다. 대회부터 선수가 재배정된 메달을 손에 넣기까지의 간격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항소가 있고, 경기연맹의 성적 수정이 있고, 국제올림픽위원회 집행위원회의 조치가 있다. 원래 메달의 반환 여부도, 선수 본인이 선택하는 수여식도 그 사이에 놓인다. 따라서 재배정된 메달을 받기까지 선수가 평균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말해 주는 신뢰할 만한 전 세계 수치는 없다.
실제 지연은 대단히 길어지기도 한다. 2024년 파리에서는 올림픽 선수 열 명을 위한 특별 수여식이 열려, 2000년 시드니와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대회의 메달을 뒤늦게 전달했다. 대회부터 수여식까지 약 12~24년이 걸린 사례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7 십수 년 늦게 도착한 메달
십수 년 늦게 도착한 메달은 이 연재가 줄곧 부딪쳐 온 질문을 다시 불러낸다. 뒤늦은 시정으로 애초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대답이 있다. 이 글은 어느 쪽이 옳은지 판정하지 않는다.
한쪽은 가능하다고 답한다. 메달을 재배정하면 공식 기록을 바로잡고 메달을 되돌려 주며, 마땅히 그 자리에 섰어야 할 선수를 의식을 통해 인정할 수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제 메달을 우편으로 보내거나 행정 절차에 따라 넘기는 데 그치지 않고 재배정 메달을 위한 정식 수여식을 마련한다. 메달 하나에는 그에 걸맞은 의식이 필요하다는 인정이다.
다른 쪽은 불가능하다고, 적어도 완전히는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대신 마련한 수여식과 수정된 데이터베이스로는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되살릴 수 없다. 놓친 후원, 놓친 상금의 기회, 놓친 언론의 조명, 놓친 온 나라의 축하,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올림픽 시상대에 섰어야 할 바로 그 순간을 되살릴 수 없다. 그 순간은 십수 년 전, 선수 경력의 절정에, 온 세계가 지켜보던 그 밤에 있었다. 뒤늦은 수여식이 아무리 성대하고 엄숙해도 그 밤은 아니다.
두 대답은 실은 이 연재에서 거듭 나타나는 한 가지를 가리킨다. 구축은 장부를 고칠 수 있지만 장부 밖의 것은 고칠 수 없다. 메달을 재배정하고, 기록에 이름을 다시 적어 넣고, 뒤늦게 수여식을 열 수 있다. 모두 장부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정이다. 그러나 마땅히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그 밤에 선수가 잃은 모든 것, 장부 밖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구축은 되찾아 줄 수 없다. 기록을 옳게 만들 수는 있어도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스스로 정식 수여식을 마련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 한계를 알고 있음을 보여 준다. 뒤늦게 건네는 메달 하나로 처음의 잘못을 온전히 바로잡을 수 있다면 우편으로 보내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우편으로는 부족하기에, 메달 뒤에 놓인 그 잃어버린 순간을 완전히 보상할 수 없기에, 위원회는 의식을 마련해 적어도 상징적으로나마 뒤늦은 인정에 무게를 실으려 한다. 그 의식은 온전히 복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인정이지, 그것의 복구가 아니다.
8 묻지 않음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예외
이 글은 구축이 내면을 묻지 않는 방식으로 도핑 방지 제도를 어떻게 운용하는지 다룬다. 그런데 역사에는 묻지 않음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이 제도의 일부가 아니다. 이 제도가 막으려 하는 것의 극단이다. 여기서는 그 구조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앞서 나온 모든 묻지 않음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의 묻지 않음은 절차의 설계였다. 도핑 방지 제도가 선수의 내면 상태를 묻지 않는 까닭은 일부러 약물을 쓴 사람이 고의를 부인하며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두 번째 단계에서는 과실을 진지하게 물어, 잘못 없는 사람에게 출구를 남긴다. 그 묻지 않음은 선수의 행위를 다룬다. 그리고 과실을 묻는 두 번째 단계가 그 균형을 잡는다. 목적은 깨끗한 경기를 지키고, 약물을 쓰지 않은 선수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반면 동독에는 국가가 지휘하는 사업이 존재했다. 기록상의 번호는 국가계획 14.25였다.
여기서는 서술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독일 연방기록보관소의 슈타지 기록은 국가계획 과제 14.25가 1974년부터 시행된 국가 주도 도핑 사업이었으며, 더 넓은 스포츠 연구 체계에 편입되어 있었음을 확인해 준다. 메달 수를 보고 추론한 이야기가 아니다. 기록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문서들은 이 약물 사업을 ‘지원 수단’ 같은 용어로 불렀다. 완곡하게 암호화한 행정 언어였다. 이 공식 용어와 개별 선수에게 실제로 들려준 설명은 구별해야 한다.
기록에는 은밀한 약물 투여가 남아 있다. 미성년자에게 투여한 기록도 있다. 선수들, 특히 일부 상황에서는 미성년자들에게 물질의 정체를 다른 것으로 위장해 주기도 했다. 비타민이라고 설명한 알약이 그 예다. 원자료를 분석한 한 기록 연구도 국가 재정으로 지원한 안드로겐 투여가 남녀 미성년자에게 이루어졌음을 독립적으로 기록했으며, 특히 여성 선수와 청소년 선수들을 강조했다.
전체 인원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쟁이 있다. 그 기록 연구는 복원된 기밀 자료를 바탕으로 미성년자를 포함한 수천 명의 선수가 해마다 안드로겐을 투여받았다고 보았다. 이는 기록에 근거해 실태를 재구성한 중요한 성과로, 보도의 추측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러나 영향을 받은 모든 선수의 완전한 명부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후에 제시된 단일 숫자들은 어디까지나 추정치라고 해야 한다. 그 값은 어느 시기를 잡는지, 약물 사용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어떤 종류의 약물을 포함하는지, 남아 있는 기록이 얼마나 완전한지에 따라 달라진다. 베를린 형사법원이 확정한 숫자가 아니다. 정확한 연령 분포도 현재 남은 기록만으로는 신뢰할 만하게 계산할 수 없다. 미성년자가 포함되었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특정 연령대가 몇 퍼센트였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베를린 재판은 기소 당시 142건을 다루었다. 이는 기소된 사건의 수이지, 최종 판결에서 유죄로 인정한 범죄 건수가 아니다. 2000년 7월 18일 베를린 지방법원은 정상급 여성 선수 20명에게 몰래 약물을 투여해 상해를 입히는 일을 방조한 전 동독 스포츠 책임자 에발트에게 징역 22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스포츠 의사 회프너에게는 징역 18개월에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2001년 9월 5일 연방대법원이 에발트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연방대법원의 사법 기록은 이를 중앙 국가기관의 지휘 아래, 사정을 모르는 선수들에게 유해한 도핑 물질을 투여한 현상으로 기술했다.
베를린 판결이 확정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정확한 전체 인원을 사법적으로 확정하지 않았다. 투여받은 사람 모두가 미성년자였다고 인정하지도 않았고, 모두에게 똑같이 비타민이라는 설명을 했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형사 판단의 대상은 법정에서 입증된 사건들이었다. 더 넓은 체계의 존재는 기록 자료가 독립적으로 확인해 준다. 그렇더라도 형사판결을 전수조사인 양 부풀릴 수는 없다.
이제 구조에 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여기서 내리는 이 판단은 앞서의 절차 논의와 문장 자체부터 끊어져 있다.
도핑 방지 제도의 묻지 않음은 선수가 무엇을 했는지를 다루면서, 과실은 두 번째 단계에서 묻도록 남겨 둔다. 국가계획 14.25의 ‘묻지 마라’는 선수가 무엇을 했는지를 묻는 말이 아니다. 자신에게 무엇을 주는지 선수가 묻지 말라는 명령이다. 전자가 잠시 유보하는 것은 법적으로 내면 상태를 다루는 하나의 범주다. 후자가 빼앗는 것은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자격이다. 미성년자를 포함해 아무것도 모르는 선수에게 유해한 물질을 투여했다. ‘지원 수단’이라는 말은 그 일을 행정 절차로 포장했다. 여기서는 한 인간이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었다. 이 사실을 중립적으로 서술하며 지나칠 수는 없다. 한쪽이 이미 인간을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원칙마저 저버렸다면, 중립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9 크리거 자신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국가계획 14.25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개인의 삶이 있다. 안드레아스 크리거의 삶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삶이 가장 쉽게 잘못 전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가 직접 공개적으로 한 말만 사용한다.
독일 국가도핑방지기구의 기록 프로젝트에 따르면 크리거는 1979년, 열네 살에 엘리트 아동·청소년 체육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베를린 디나모에서 훈련했다. 1981년, 그가 대략 열다섯에서 열여섯 살이었을 때 파란 알약을 받기 시작했다. 나중에 동화작용 스테로이드로 확인된 약이었다. 약은 정상적인 제조사 포장에 담겨 있지 않았고, 코치는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리거는 자신이 받는 것이 무슨 약물인지 알지 못했다. 이 사실들을 확정하는 데 투여량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
이후 자신이 직접 경험을 말한 인터뷰에서 크리거는 그 제도 안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동독 시절에는 코치를 믿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기에 자신들은 그 알약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기만의 규모를 알게 되었을 때, 관계자들이 자신에게 제대로 알리고 동의받지도 않은 채 자신을 실험실의 쥐처럼 다루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는 크리거 본인의 증언으로 제시하는 말이다. 모든 동독 선수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추론하는 말이 아니다.
크리거는 스테로이드를 투여받던 수년 동안 안드로겐의 작용으로 몸이 실질적으로 남성화한 변화를 공개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원치 않았던 호르몬 노출을 한 가지 감각과 연결했다. 자기 몸이 어떻게 발달하고, 그 몸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스스로 통제할 권한을 빼앗겼다는 감각이다. 증거에 맞는 표현은 이렇다. 그가 이런 변화들을 진술했다. 스테로이드를 투여한 사실 자체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크리거 자신도 성별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도핑 이전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본래 명확했던 성별 정체성이 어느 날 약물 때문에 갑자기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도핑을 당하기 전에도 자기 몸과 정체성을 두고 불편함이나 불확실성을 경험했다. 훗날 그가 제기한 문제는, 비자발적인 호르몬 개입이 자기 방식으로 정체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능력을 빼앗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동독의 약물이 크리거를 트랜스젠더로 만들었다’는, 기사 제목으로 널리 쓰이는 식의 설명은 본인의 말을 넘어선다. 중요한 한 지점에서는 본인의 말과 충돌하기도 한다. 정체성의 불확실성이 도핑보다 앞섰음을 그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관계자들은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 없이 안드로겐 약물을 투여했다. 그는 실질적인 신체 영향을 겪었다. 그는 이 개입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 가는 자율성을 훼손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약물이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초래했다는 결정론적 주장을 그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이는 제15편에서 결정론적 서사를 해체할 때 지켰던 것과 같은 원칙이다. 그곳에서는 신체의 한 특징을 어떤 결과의 원인으로 서술하면서, 그 사이의 인과 사슬은 한 번도 측정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약물 노출을 정체성의 원인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크리거 자신의 이야기는 그 결정론적 단언을 뒷받침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인과의 문제는 슈타지 기록이나 베를린의 유죄판결, 크리거가 과거를 돌아보며 한 증언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구축은 약물 투여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몸의 변화를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노출이 없었다면 한 사람의 정체성이 어떠했을지라는 반사실을 확정할 수는 없다. 그 반사실은 제13편의 존재하지 않는 몸처럼 관찰할 수 없다.
10 체계, 그리고 개인
국가계획 14.25 이후 가장 뚜렷한 비교 대상 중 하나는 러시아다. 다만 비교는 신중해야 한다.
세계도핑방지기구의 독립 조사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독립 위원회는 모두 러시아에 국가와 연결된 제도적 체계가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도핑 방지 절차를 조작하고 약물을 쓴 선수를 보호하는 체계였다. 핵심 증거에는 실험실 기록, 문서 자료, 증언과 법과학적 조사가 포함되었다.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입증하는 문턱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법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구별이 있다. 체계가 있었다는 판단과 개인이 위반했다는 판단은 별개의 명제다.
스포츠중재재판소는 러시아 조사에서 비롯된 사건들을 심리하며 이 구별을 거듭 분명히 했다. 중재 패널이 전체적인 조작 계획의 존재를 확신하더라도, 국제올림픽위원회나 그 밖의 제소 당사자는 여전히 특정 선수와 위반 행위 사이의 연결을 보여 주는 충분히 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더 넓은 체계에 관한 증거가 있었음에도 일부 러시아 선수들은 개인 항소에서 승소했다. 계획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집단적 죄책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러시아의 체계와 동독의 체계가 제도적으로 같았다고 서술해서도 안 된다. 동독의 증거에는 이름이 붙은 국가 연구·사업 조직이 등장한다. 약물 연구와 투여, 기밀 유지까지 그 안에 들어 있다. 러시아에 관한 가장 강력한 조사 결과는 국가와 연결된 도핑 관리 절차, 실험실 결과, 시료 처리 과정의 조작과 선수 보호에 관한 것이다. 양쪽 모두 국가의 체계적 역할이 기록으로 입증되었다는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문서로 확인된 조직 구조와 행위는 서로 다르다.
이 구별은 글의 끝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로 이어진다. 기록으로 입증된 국가 도핑 체계가 있다고 해서 그 나라의 모든 선수가 약물을 썼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국가가 은폐했다고 해서 보호받거나 이름이 거론된 모든 선수가 그 은폐를 알고 있었다는 뜻도 아니다. 반대로 과거의 시료 하나가 깨끗하고 음성이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선수가 금지약물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중재재판소가 개인과의 연결을 고집하는 것은 체계에 관한 증거가 국적에 따른 죄책으로 바뀌는 것을 막는 바로 그 방벽이다.
다른 어떤 나라를 이 최고 수준의 증거 범주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나라에서는 체계적인 도핑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자료로는 필요한 증거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래된 의혹이 있다고 해서 체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이는 이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온 원칙과 같다. 혐의 제기는 판정이 아니다. 체계에 관한 증거는 개인의 죄책이 아니다. 물질의 존재는 첫 번째 층위에서 위반을 성립시키지만, 한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는 두 번째 층위에 이르러서야 결정된다.
다시 그 묻지 않음으로 돌아가자.
이 글에서 다룬 구축은 내면을 묻지 않고 위반을 성립시킨 뒤, 과실을 물어 그 결과를 정한다. 고의를 입증할 수 없는 세계에서 일부러 한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면서도, 잘못 없는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설계다. 정교하고, 정당화할 수 있으며,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는 균형이다. 그 설계가 필요한 이유, 묻지 않음과 물음 사이에 그토록 조심스럽게 선을 그어야 하는 이유 뒤에는 지키려는 무언가가 있다. 선수는 약물을 썼든 쓰지 않았든, 깨끗하고, 자신이 사정을 알고 있으며, 자기 몸에 책임질 수 있는 조건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계획 14.25는 바로 그것이 송두리째 사라졌을 때의 모습이다. 구축이 실패한 사례가 아니다. 구축이 존재하는 이유를 거꾸로 보여 주는 모습이다. 구축이 묻지 않음의 선을 긋는 까닭은, ‘묻지 마라’며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 구축은 시료 안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를 극미량의 농도까지 정확하게 검출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몸에 그 물질을 넣은 체계가 그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검출할 수 없다. 그것은 시료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있다. 자기 몸에 대해 알 권리를 빼앗기고, 훗날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데 평생을 쓴 사람들 곁에 있다. 구축이 검사할 수 있는 것은 물질이다. 검사해 낼 수 없는 것은 그 사람들이 잃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장부 밖에서 잃어버린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자가 닿아 잴 수 없는 곳에 영원히 남는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