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초
수동 계시와 전자동 계시는 어떻게 0.24초짜리 이음매로 한 표에 꿰매졌을까. 그것은 자연스러운 환산이 아니라, 새로운 제도를 정식으로 세우는 과정에서 남겨진 역사적 땜질이었다.
이 글의 목차
1. 한 번의 달리기, 두 개의 숫자
하인스가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달린 그 100미터는 이후의 기록 변천사에 두 개의 숫자로 남았다.
하나는 수동 계시로 잰 9초 9. 다른 하나는 전자동 계시로 잰 9초 95.
같은 달리기다. 두 번의 경기도, 두 명의 선수도 아니다. 하인스가 그날 그 트랙에서 달린 단 한 번의 100미터다. 두 계시 시스템이 그것을 동시에 쟀다. 하나는 사람이 시계의 버튼을 눌렀고, 다른 하나는 기계가 작동시켰다. 그렇게 두 개의 숫자가 나왔다.
스미스의 200미터도 그랬다. 19초 8과 19초 83. 에번스의 400미터도 그랬다. 43초 8과 43초 86. 모두 한 번의 달리기에 두 개의 숫자였다.
사소한 일처럼 보인다. 하나는 10분의 1초까지, 다른 하나는 100분의 1초까지 적었으니 정밀도만 다른 듯하다. 하지만 정밀도의 차이가 아니다. 9초 9와 9초 95는 같은 숫자를 하나는 거칠게, 하나는 세밀하게 적은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측정 시스템이 같은 일을 재면서 내놓은 서로 다른 결과다.
이 점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뒤의 이야기가 모두 여기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숫자에 의미가 있으려면 먼저 무엇으로 잰 숫자인지 알아야 한다. 9초 9와 9초 95가 다른 것은 어느 한쪽이 틀려서가 아니다. 하나는 사람의 손가락이 눌러서, 다른 하나는 기계의 회로가 작동해서 나온 숫자이기 때문이다. 손가락과 회로가 같은 순간을 포착하는 방식은 애초에 다르다. 그러니 하인스가 대체 얼마나 빨리 달렸느냐는 질문에는 측정 방식에서 벗어난 답이 없다. 그의 달리기는 9초 9이기도, 9초 95이기도 하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달려 있다.
앞선 글은 두 장부에서 끝났다. 공식 기록표는 고도를 구분하지 않고, 통계학자들은 비공식적으로 저지대 기록 명단을 따로 관리한다. 두 장부가 나란히 있지만 공식 장부는 다른 장부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도를 둘러싼 두 장부였다. 이번 글은 계시를 둘러싼 두 장부 이야기다. 고도 문제보다 더 근본적이다. 차이가 성적을 나타내는 숫자 자체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인스의 그 달리기는 두 장부에 동시에 속하며, 각각 다른 숫자로 적혀 있다.
문제는 기록표에 들어갈 숫자가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장부를 이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하나의 상수, 0.24초였다.
2. 특정한 위치에서 나온 평균
0.24라는 숫자는 어디서 왔을까.
후대의 육상 문헌들은 한결같이 숙련된 수동 계시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1972년 뮌헨 올림픽, 그리고 기센대학교와 관련된 연구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충실한 개요에 따르면, 계시원이나 출발 담당자가 출발 신호총 가까이에 있을 때 수동 계시와 자동 계시의 평균 차이는 약 0.18초, 100미터 직선 주로에서는 약 0.24초, 200미터 곡선 주로에서는 약 0.26초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세 숫자 안에 숨어 있다.
0.24는 어디에나 들어맞는 상수가 아니다. 특정한 기하학적 배치에서 얻은 평균값이다. 계시원이 100미터 직선 주로의 결승선에 서 있으면 평균 차이가 0.24초, 200미터 곡선 주로 끝에 서 있으면 0.26초, 신호총 가까이에 있으면 0.18초다. 위치가 달라지면 숫자도 달라진다.
다시 말해 이 상수는 태어난 순간부터 상수가 아니었다.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양이 취하는 값들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은 나중에 그중 하나인 0.24를 꺼내 상수로 삼았다.
하필 그 가운데 있는 값을 골랐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0.18은 신호총 가까운 위치, 0.26은 곡선 주로에 해당하고, 0.24는 그 사이에 있다. 중간 값을 공통 상수로 고르는 일은 일종의 절충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는 절충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개별 경기는 절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직선 주로이거나 곡선 주로이고, 계시원이 총 가까이에 있거나 그렇지 않다. 직선 아니면 곡선인 경기에 중간 값을 들이대면 어느 쪽에도 완전히 맞지 않는다. 이 상수는 그것을 골라낸 방식에서부터 이미 어떤 개별 경기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것이 평균값이라는 사실에는 한층 더 중요한 뜻이 있다.
평균은 여러 숫자에서 구한다. 그중에는 0.24보다 큰 것도, 작은 것도 있다. 평균값 자체는 그 가운데 어느 특정한 숫자를 설명하지 않는다. 숫자 무리의 중심을 나타낼 뿐이다. 평균값을 상수로 쓴다는 것은 그 중심으로 무리 안의 숫자 하나하나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그 숫자들은 애초에 흩어져 있었는데도.
얼마나 넓게 흩어져 있었는가. 이것이 이 글의 핵심 질문인데, 이번에 살펴본 자료만으로는 직접적인 답을 얻을 수 없다. 직접 검토한 1970년대의 원논문들에서는 그 뮌헨·기센 연구의 표본 수, 전체 분포, 표준편차를 찾을 수 없었다. 후대의 설명들은 그 수치들을 평균값이라고 부르지만, 원래의 표도, 표본 수도, 표준편차도, 신뢰구간도 제시하지 않는다. 발표된 통계량이 전체 표본의 평균인지, 조건별로 묶어 산출한 평균인지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0.24가 특정한 위치에서 나온 평균값이라는 점이다.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평균을 낳은 숫자들이 원래 얼마나 넓게 흩어져 있었느냐는 점이다.
이 빈칸은 사소하지 않다. 평균이 쓸모 있는지는 그 뒤에 있는 숫자들이 얼마나 흩어져 있느냐에 달려 있다. 숫자들이 모두 0.24 근처에 바짝 모여 있다면, 하나하나를 0.24로 대신해도 오차가 작다. 넓게 흩어져 있다면 0.24는 그중 많은 숫자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정확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바로 그 자료를 지금은 구할 수 없다.
3. 흩어져 있는 숫자들
그 원논문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비슷한 대상을 측정한 후속 연구들은 있다. 그 연구들에서는 숫자들이 흩어진 정도가 드러났다.
남자 대학생 81명의 40야드 전력 질주를 조사한 연구가 있다. 경험 많은 계시원의 수동 계시와 전자 계시 사이의 평균 차이는 0.22초, 변동 폭은 위아래로 0.07초였다. 경험이 적은 계시원의 평균 차이는 0.26초, 변동 폭은 위아래로 0.08초였다.
먼저 두 평균값, 0.22와 0.26을 보자. 둘 다 0.24 근처에 있다. 0.24가 꽤 괜찮은 숫자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이제 두 변동 폭, 0.07과 0.08을 보자.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두 숫자다.
변동 폭이 위아래로 0.07초라는 말은, 평균이 0.22초여도 어느 한 번의 계시에서는 차이가 0.15초일 수도, 0.29초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범위의 너비는 거의 0.15초다. 100미터에서 0.15초는 어마어마한 차이다. 금메달과 입상권 밖의 성적을 가를 수 있다.
실제 역사에 대입하면 더 분명해진다. 100분의 1초를 기록해 온 시대 내내, 무수한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가 0.1초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개별 계시에 환산 상수를 적용할 때 생기는 불확실성만으로도 0.15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동 계시 성적 두 개를 이 상수로 환산해 비교한다면, 0.15초보다 작은 차이는 의미가 없다. 환산 자체가 그만큼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상수는 두 천을 꿰맬 수는 있어도, 그 정밀도 안에서 순위까지 꿰매 낼 수는 없다.
그러니 이 연구가 말해 주는 것은 이렇다. 이 상수는 평균으로서는 믿을 만하지만 개별 사례에는 믿을 만하지 않다. 수많은 계시의 전반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데에는 정확하다. 그러나 어느 한 번의 계시를 보정하는 데 쓰면 크게 빗나갈 수 있고, 그때 얼마나 빗나갔는지 알 방법도 없다.
여기에는 앞선 글과 통하는 구조가 나타난다. 잠깐 짚고 넘어갈 만하다.
앞선 글에서 비먼의 도약이 제기한 문제는 네 변수가 하나의 숫자로 합쳐진 뒤에는 되짚어 복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반대다. 하나의 평균을 개별 사례마다 씌운 뒤에는 이 사례에 제대로 들어맞았는지 알 수 없다. 앞의 경우에는 여러 원인이 하나의 결과로 합쳐져 분리할 수 없고, 뒤의 경우에는 하나의 평균이 여러 개별 사례를 대신해 검증할 수 없다. 둘 다 이렇게 구축된 체계가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두 경우 모두 검증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받아들여 장부를 계속 쓸 수 있게 한다.
조금 더 일반적으로 말해도 좋겠다. 이 시리즈 전체에서 되풀이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장부를 계속 써야 하는 체계는 언젠가 스스로 없앨 수 없는 불확실성과 부딪힌다.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다. 멈춰 서서 불확실한 것은 일절 적지 않는 길이 있다. 그러면 적을 수 있는 것이 얼마 남지 않는다. 검증할 수 없는 처리 방식을 받아들여 불확실성을 숫자 하나나 상수 하나에 눌러 담고 계속 적는 길도 있다. 오래 굴러가는 체계들은 거의 모두 후자를 택했다. 그 대가로 장부의 숫자 하나하나에는 체계 자신도 검증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조금씩 봉인되어 있다.
이 상수를 두고 널리 퍼진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수동 계시는 언제나 전자 계시보다 0.24초 빠르다는 것이다. 성립하지 않는 이야기다. 수동 계시는 빠를 수도 느릴 수도 있다. 계시원의 행동, 훈련, 예측, 그리고 주로의 기하학적 배치에 달려 있다. 역사 속의 그 상수는 평균적인 보정값이지, 모든 경기에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진리가 아니다. 이 분야에 오래 몸담은 한 통계 전문가는 어디서나 0.24초 빠르다는 이야기가 오해라고 명확히 지적했다. 동시에 잘 훈련된 계시원에게 0.24초를 평균적인 약속으로 적용하는 것은 대체로 쓸 만하다고 인정했다.
이 두 문장은 함께 말해야 한다. 이 상수는 약속으로서는 쓸 만하고, 개별 사례를 설명하는 데에는 믿을 만하지 않다. 두 가지가 동시에 참이다. 그것이 줄곧 쓰이면서도 줄곧 의심받아 온 이유다.
4. 수동 계시의 숫자는 왜 늘 올림으로 끝날까
수동 계시와 전자 계시의 차이를 더 크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있다. 흔히 놓치는 요소다.
수동 계시의 끝자리 처리 규칙은 올림이다. 가장 가까운 값으로 반올림하는 것이 아니다.
확인할 수 있는 국제육상경기연맹 규정에서 수동으로 잰 트랙 경기의 성적은 다음으로 큰 0.1초 단위로 읽는다. 100분의 1초까지 표시하는 시계나 손으로 작동시키는 디지털 계시기를 썼다면, 소수 둘째 자리의 숫자가 0이 아닌 모든 성적을 다음으로 큰 0.1초까지 올린다. 가령 10초 11은 10초 2가 된다.
즉, 수동 계시 성적은 언제나 느린 쪽으로 조정된다. 10초 11은 분명 10초 1에 더 가깝지만, 10초 2로 적힌다. 반올림이 아니다. 버리지는 않고 올리기만 한다.
이 규칙에는 놓치기 쉬운 결과가 따른다. 수동 계시 성적은 적히는 순간 이미 한 차례 느린 쪽으로 조정되었다는 뜻이다. 어떤 환산보다도 먼저 일어나는 조정이다. 그러니 수동 계시가 전자 계시보다 0.24초 빠르다고 말할 때, 비교에 쓰이는 수동 계시 성적은 사실 이미 느린 쪽으로 올려 놓은 숫자다. 손가락이 실제로 눌러 얻은 측정값과 최종 성적표에 적힌 숫자 사이에는 한 번의 올림이 더 끼어 있다. 이 단계를 흔히 놓친다. 그래서 수동 계시와 전자 계시의 실제 차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다.
왜 이렇게 할까. 수동 계시에는 원래 계통적인 편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시계를 누를 때에는 시작 버튼을 누르는 반응이 늦어지기 쉽고, 결승선에서는 도착을 미리 내다보고 정지 버튼을 일찍 누를 수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수동 계시 성적은 빠른 쪽으로 치우친다. 올림은 이 빠르게 나오는 경향을 거칠게 보상하는 방식이다. 수동 계시가 빠르게 나온다면, 읽을 때에는 느린 쪽으로만 맞추고 빠른 쪽으로는 맞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동 계시 성적에는 두 겹의 조정이 포개진다. 첫째는 올림으로 느린 쪽에 맞추는 것. 둘째는 0.24라는 상수를 더해 한 번 더 느린 쪽으로 보내는 것이다. 둘 다 같은 방향을 향한다. 수동 계시의 숫자를 전자 계시의 숫자에 가까이 가져가려는 것이다.
전자 계시도 올림을 하지만 단위가 더 작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10,000미터 이하 트랙 경기의 성적은 이미 정확히 해당 단위에 떨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 다음으로 큰 0.01초 단위로 읽고 환산하고 기록한다. 10,000미터를 넘는 트랙 경기는 다음으로 큰 0.1초 단위로, 도로 경기는 다음으로 큰 1초 단위로 기록한다.
이를 한데 놓으면 이 체계가 끝자리를 처리하는 일관된 방식을 볼 수 있다. 성적이 조금 느려 보이는 쪽을 택할지언정, 조금 빨라 보이게 하지는 않는다. 모든 올림은 위로, 곧 느린 쪽으로 간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기록이라는 체계의 성격과 관련된 이유다. 기록이 한 번 공인되면 뒤에 오는 모든 사람이 넘어야 할 기준이 된다. 끝자리를 처리한 탓에 기록이 실제보다 빨라 보인다면, 뒤의 선수들은 부풀려진 목표를 넘어야 한다. 그들에게 불공평하다. 반대로 실제보다 조금 느려 보인다면, 기껏해야 지금 이 선수 한 명이 조금 손해 볼 뿐 뒤에 오는 모두에게 피해가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체계는 끝자리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선택 앞에서, 오차를 뒤에 오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한 사람에게 지우기로 한다. 의도적인 편향이다. 그 편향이 향하는 것은 현재 성적의 정확성이 아니라 장부의 연속성이다.
사실 이 선택 뒤에는 공정성에 관한 판단이 있다. 비대칭적인 판단이다. 지금의 선수가 손해를 보면 한 사람이 한 번 손해를 본다. 뒤의 모든 선수가 부풀려진 기준을 마주하면 많은 사람이 여러 번 손해를 본다. 두 해악을 저울질한 체계는 지금의 한 사람에게 손해를 집중시켜 뒤의 많은 사람을 보호한다. 옹호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중립적이지는 않다. 현재의 선수와 미래의 선수 사이에서 체계적으로 미래의 편에 선다. 미래의 편에 선다는 것은 장부의 편에 선다는 뜻이다. 장부는 미래가 읽으라고 쓰는 것이니까.
5. 1000분의 1초는 안에 있지만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현대 계시 시스템은 내부적으로 1000분의 1초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것을 공식 기록의 정밀도로 삼지는 않는다.
확인할 수 있는 국제육상경기연맹 규정에 따르면 전자동 계시 시스템은 출발 신호총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해야 하며, 그 지연은 일정하고 1밀리초보다 작아야 한다. 시스템 내부에서는 밀리초 수준까지 시간을 포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표하는 성적은 여전히 경기 거리에 따라 0.01초나 0.1초까지 읽는다.
여기에 이상한 점이 있다. 이 체계는 1000분의 1초까지 잴 능력이 있는데도 100분의 1초까지만 발표하기로 한다. 자신이 가진 정밀도의 일부를 시스템 안에 붙들어 두고 내보내지 않는다.
왜 기록에는 1000분의 1초 단위를 쓰지 않을까. 확인할 수 있는 규정 원문에서는 이를 설명한 조항을 찾을 수 없다. 쓰지 않는다고만 정하고, 왜 쓰지 않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실제 이유는 표준화와 역사적 연속성 때문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확인 가능한 원문에 그 이유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일의 윤곽 자체는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앞선 글들과도 이어진다.
체계가 발표하는 정밀도는 도달 가능한 최고 정밀도가 아니다. 자신이 감당하기로 선택한 정밀도다. 1000분의 1초까지 재고 100분의 1초까지 발표한다면, 그 사이 한 자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포기하면 분명한 이점이 있다. 100분의 1초라는 정밀도는 이전 수십 년의 성적과 이어 붙일 수 있다.
여기서 일반적인 이치 하나가 드러난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측정 시스템에서는 정밀도가 높을수록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역사와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 따로 떨어진 한 번의 측정이라면 물론 정밀할수록 좋다. 하지만 수십 년치 과거 자료와 나란히 비교해야 하는 측정에서 정밀도를 갑자기 한 단계 높이면, 모든 옛 자료와의 사이에 메울 수 없는 틈이 생긴다. 그래서 이 체계의 정밀도는 자신의 과거에 묶여 있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발표하는 자릿수를 그때그때 늘릴 수는 없다. 한 자리를 늘릴 때마다 역사와의 비교 가능성을 한 번씩 무효로 만들기 때문이다. 1968년 하인스의 9초 95는 100분의 1초 단위다. 지금 1000분의 1초 단위로 바꾼다면, 그동안 100분의 1초까지 적힌 모든 기록이 난처해진다. 옛 기록의 다음 자리는 알 수 없는데 새 성적에는 다음 자리가 있다. 두 수치 사이에 다시 한번 비교 불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니 이 체계는 그 한 자리의 정밀도를 쓰지 않더라도 과거와의 비교 가능성을 지키려 한다. 여기서 내린 선택은 제5편에서 고지대 성적을 다룬 선택과 같다. 한 표의 앞뒤를 이어 두려고, 얻을 수 있었던 정확성 일부를 스스로 포기한다. 정밀도와 연속성을 동시에 최대화할 수 없어서 연속성을 택했다.
그렇다고 1000분의 1초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스템 안에 남아 순위를 판정해야 할 때 쓰인다. 순위를 정할 때는 도달 가능한 최고 정밀도를 쓰고, 기록에는 역사와 연결되는 조금 거친 정밀도를 쓴다는 뜻이다. 누가 이겼는지 정하는 데 한 가지, 장부에 적는 데 다른 한 가지를 쓴다. 두 정밀도가 공존한다. 여기도 두 장부다.
6. 환산한 것이 아니라 정식 지위를 준 것이다
1976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은 단거리 세계기록에 자동 계시만 인정하기로 했다. 1977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일에서 가장 쉽게 생기는 오해는 체계가 옛 수동 계시 기록을 가져와 0.24를 더한 뒤 전자 계시의 동등한 값으로 환산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환 이후 옛 성적을 처리하는 방식은 세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 그 경기에서 당시 전자동 계시값이 함께 존재했다면 그 전자 계시값을 남겨 전자 계시의 기준으로 삼았다. 둘째, 여전히 수동 계시 기록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종목이라면 수동 또는 전자 계시 기록으로 유지했다. 셋째, 종목 자체가 폐지되었다면 기록 인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첫째 경우를 보자. 상황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경우다.
하인스의 100미터는 옛 수동 계시 목록에서 1977년 이전의 9초 9를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별도의 전자 계시 목록에서는 하인스가 1968년 10월 14일 멕시코시티에서 달린 9초 95를 전자 계시 기록으로 적었다. 그리고 1977년 1월 1일부터 100분의 1초 단위 전자 계시가 의무라는 설명을 붙였다.
그러니까 이 체계가 한 일은 9초 9에 0.24초를 더해 9초 95로 환산한 것이 아니다. 같은 경기에서 이미 나와 있던 9초 95에 정식 지위를 준 것이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9초 95는 9초 9로 계산해 낸 숫자가 아니다. 원래 있었다. 하인스가 달릴 당시 두 시스템이 동시에 시간을 쟀다. 수동 계시 시스템은 9초 9를, 전자 계시 시스템은 9초 95를 내놓았다. 체계가 1977년에 한 일은 이제부터 전자 계시 쪽을 기준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렇게 줄곧 존재했지만 그전까지 공식 기준이 아니었던 9초 95가 공식이 되었다.
스미스의 200미터와 에번스의 400미터도 똑같이 처리했다. 19초 83은 원래 있었고, 43초 86도 원래 있었다. 체계는 옛 장부를 환산한 것이 아니다. 옛 장부 옆에 오래전부터 함께 있던 다른 숫자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옛 장부가 속한 열을 통째로 무효화했다.
제2편의 그 문장과 같은 구조다. 이 체계가 처음 배운 일은 안에 더하는 것이었고, 빼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옛 숫자를 새 숫자로 바꾼 것이 아니다. 그렇게 했다면 한 번 빼고 한 번 더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줄곧 존재한 숫자의 지위를 높이면서 옛 숫자가 들어 있는 열 전체를 효력 없게 만들었다. 여전히 이미 있는 무언가를 인정한 것이지, 하나를 지우고 다른 하나로 바꿔 넣은 것이 아니다.
이런 선호는 우연이 아니다. 이 체계의 근본적인 처지와 관련이 있다. 이미 장부에 적힌 숫자를 지우려면 권한이 필요하다. 과거에 잘못 적었다고 선언할 권한이다. 그런데 제2편에 나온 그 권한 부여 조항에서부터 체계가 받은 것은 줄곧 등록할 권한이었지, 말소할 권한이 아니었다. 그래서 장부를 바꿔야 할 때마다 그 변화를 말소가 아닌 등록으로 만들 길을 찾는다. 이미 있는 숫자에 정식 지위를 주는 것은 등록이다. 공식 기록으로 격상하는 것도 등록이다. 옛 열의 자격을 없애는 것은 한 범주가 자연스럽게 기한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니, 그것 역시 적극적인 말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없는 권한을 비켜 간 것이다.
여기서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자료도 밝혀 두어야 한다. 1977년 이전의 모든 단거리·허들·계주 기록과 그 각각에 취해진 정확한 규정상 처분을 빠짐없이 열거한 행정 목록을 만들려면, 당시 국제육상경기연맹의 기록집이나 총회 의사록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은 이 처리 방식의 틀을 분명히 보여 주고 대표적인 실례도 제공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통합된 처분표까지 제공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방식 자체는 분명하지만, 항목별 처분을 이번 검토에서 전부 확보할 수는 없었다.
미터법을 쓰지 않는 단거리와 허들 종목은 또 달랐다. 환산된 것이 아니라 기록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세계육상연맹의 역사 페이지에 따르면 마일을 제외한 영국식 거리 단위 종목은 1976년 결정으로 삭제되었다. 미터법의 동등한 값으로 환산되지 않았다. 장부에서 곧바로 사라졌다.
7. 한 가닥 실로 두 천을 꿰매다
이제 0.24라는 상수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것은 두 천을 잇는 실이다.
수동 계시가 한 장의 천이라면 전자 계시는 또 한 장의 천이다. 서로 다른 기계로 짠 두 천은 날실과 씨실의 짜임이 다르다. 하나의 가장 작은 격자는 0.1초이고, 다른 하나는 0.01초다. 그런데 이 체계에는 완전한 표 하나가 필요하다. 두 천을 붙여야 한다. 0.24는 바로 그 두 천을 꿰매는 실이다.
이 실에는 한 가지 성질이 있다. 전체로는 튼튼하지만 한 땀 한 땀은 느슨하다. 평균적으로 0.24초인 실은 두 천을 대략 맞춰서 그럴듯한 표 하나로 이어 줄 수 있다. 그러나 한 땀씩 들여다보면, 어느 특정한 수동 계시값이 전자 계시의 어느 지점에 맞아야 하는지 이 실은 정확히 알려 주지 못한다. 이쪽으로 0.05초 어긋날 수도, 저쪽으로 0.05초 어긋날 수도 있다. 전체는 맞고 부분은 어긋난다.
사실 평균으로 개별 사례를 다루는 모든 방식에 이런 성질이 있다. 평균 체격에 맞춰 만든 책상은 전체 집단에는 적당하지만, 키가 유달리 크거나 작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 평균 차이로 정한 환산 상수는 계시값 전체는 맞춰 주지만 어느 한 번의 계시에서는 어긋난다. 차이가 있다면 책상이 맞지 않는 것은 한눈에 보이지만 계시가 어긋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대조해 볼 그 선수의 실제 전자 계시값이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어긋남은 보이는 어긋남보다 위험하다. 어긋남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상수가 계속 쓰이면서도 계속 비판받는 이유다.
비판하는 쪽은 고정 상수 하나로 현실의 다양한 계시원을 다루기에는 너무 거칠 때가 많다고 말한다. 한 관찰자는 어느 지역 고교대회 결승의 전자 계시와 명목상 예비용이었던 수동 계시를 비교했는데, 평균 차이가 0.40~0.45초까지 벌어졌다. 0.24초보다 훨씬 컸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0.24를 쓰면 참가 기준 충족 여부와 조 편성이 실질적으로 왜곡된다고 지적했다. 동료 심사를 거친 육상 학술지 논문은 아니다. 오랫동안 통계와 해설에 종사해 온 직접 관찰자가 관측 자료를 근거로 제기한 비판이다.
옹호하는 쪽은 잘 훈련된 계시원에게, 그리고 수동 계시와 전자 계시를 여전히 나란히 놓아야 하는 시스템의 행정상 비교 가능성을 위해서는 고정 상수들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말한다. 순위 산정 시스템, 혼성경기 성적 환산, 오랫동안 쓰인 학계 지침에 깔린 논리다.
사실 양쪽 다 옳다. 서로 다른 것을 두고 옳은 것이다.
각각 어떤 점에서 옳은지 분명히 보는 것이 이 글이 도달하려는 곳이다. 어느 한편에 서는 것보다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측정을 둘러싼 많은 논쟁은 겉으로 보면 한쪽은 정확하다고, 다른 쪽은 부정확하다고 말한다. 실은 한쪽은 전체를, 다른 쪽은 개별 사례를 말하고 있으며 두 말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0.24는 전체에 쓸 만하고 개별 사례에는 믿을 만하지 않다. 해결을 기다리는 모순이 아니다. 평균을 개별 사례에 적용하면 으레 생기는 상태다. 반드시 믿을 만하거나 반드시 믿을 수 없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보다 이 상태를 인정하는 편이 훨씬 정직하다.
옹호하는 쪽이 옳은 점은 두 천을 꿰매는 방법으로서 0.24가 전체적으로 쓸 만하다는 것이다. 체계에는 실제로 그런 방법이 필요하다. 없으면 두 천으로 하나의 표를 만들 수 없다. 비판하는 쪽이 옳은 점은 한 땀씩 보면 이 실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계시원의 수준이 애초 그 평균을 만들어 낸 전문가 집단에서 벗어나면 크게 어긋날 수도 있다.
공정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이 상수는 여전히 제도적으로 쓸모가 있지만 개별 사례에 대한 정밀도는 매우 낮다. 전체적으로는 튼튼하고 부분적으로는 느슨한 봉합의 실이다. 두 성질 모두 사실이다.
그 뒤에 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주목할 만하다. 이 상수만을 따로 옹호하거나 수정하는 공식 문서를 내놓지는 않았다. 실제 대응은 다른 것이었다. 기록 인정에 전자동 계시를 더 많이 요구하고, 인증된 출발 정보 시스템을 요구했다. 환산 공식은 핵심인 세계기록 공인보다는 주로 국가별 기준, 학계, 순위 산정, 혼성경기 쪽에 남겨 두었다.
다시 말해 체계는 꿰매는 실을 개선하지 않았다. 핵심 기록표에서 되도록 꿰맬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핵심 기록은 전자 계시만 인정한다. 천이 한 장이니 꿰맬 일이 없다. 실은 여전히 두 천을 이어야 하는 주변부에 남아 있다. 앞선 글에서 본 방식이 다시 나온다.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체계는 그것을 해결하는 대신 주변부로 옮긴다. 핵심부에서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건드리지 않도록 한다.
8. 수동 계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더는 셈에 들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수동 계시는 세계육상연맹 규정에서 허용된다. 인정받는 공식 계시 방법 가운데 하나다.
현행 규정은 세 가지 공식 계시 방법을 인정한다. 수동 계시, 결승선 사진 판독 시스템에 의한 전자동 계시, 그리고 트랜스폰더 계시다. 그러니 공식 성적을 산출하는 방법으로서 수동 계시의 적법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자동 계시가 필수가 아닌 경기에서, 또는 전자동 계시가 있을 때 예비 수단으로 쓰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수동 계시가 잃은 것은 적법성이 아니라 짧은 거리 종목의 기록 공인에 동등하게 참여할 지위다. 현행 규정상 800미터 이하 종목의 기록에는 전자동 계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상태에서 잠깐 멈춰 볼 필요가 있다. 체계가 오래된 것을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수동 계시를 폐지하지 않았다. 폐지는 결정을 내려 조문에 적어야 하는 일이다. 여전히 수동 계시를 쓰는 모든 하위 수준 대회를 상대해야 한다. 대신 수동 계시를 규정상 허용한 채, 가장 중요한 일에 참여할 자격을 빼 버렸다. 수동 계시는 남아 있다. 공식 성적도 만들어 낸다. 다만 그 성적은 짧은 거리 종목의 기록표에 들어갈 수 없다.
제3편에서 ‘아마추어’라는 말이 맞은 결말과 같은 수법이다. 아마추어는 어느 날 폐지를 선언당하지 않았다. 새로운 정의 한 문장으로 속이 비워졌다. 아마추어란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정의였다. 그때부터 그 말은 규칙 바깥의 어떤 것도 가리키지 않게 되었다. 수동 계시 역시 폐지되지 않았다. 기록에 참여할 자격을 빼앗긴 뒤, 중요하지 않은 곳에서만 여전히 통하는 방법이 되었다. 체계는 버리고 싶은 것을 곧장 잘라 내는 일이 드물다. 대개는 속을 비워, 존재는 하되 힘은 쓰지 못하게 한다.
속을 비우는 방식이 직접 폐지하는 것보다 영리한 까닭은 반발을 거의 부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수동 계시를 곧바로 폐지하면 그것에 의존하는 모든 하위 수준 대회가 즉시 영향을 받고 반대할 이유가 생긴다. 기록 자격만 없애면 그 대회들은 평소처럼 수동 계시를 쓴다. 영향을 받지 않으니 반대할 이유도 없다. 기록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최고 수준의 대회들은 원래 전자 계시를 쓸 여력이 있으니 그쪽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체계는 어느 쪽의 강한 반발도 일으키지 않은 채 수동 계시의 지위를 조용히 바꾸었다. 무엇인가의 실권을 빼는 일은 그것을 폐지하는 일보다 저항을 훨씬 적게 받곤 한다. 개개인이 자신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 봉합의 실, 0.24는 오늘도 제도 안에서 쓰인다.
미국육상연맹은 혼성경기에서 400미터 미만 종목의 수동 계시 성적에는 0.24초, 400미터에는 0.14초를 더하라고 여전히 안내한다. 미국육상연맹의 청소년 참가 신청 안내에도 수동으로 잰 참가 기준 성적을 전자동 계시 기준에 맞추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거리에 따라 0.24초나 0.14초를 더하거나,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다. 미국 고교연맹도 수동 계시를 전자동 계시로 환산할 때 0.24초를 적용하는 규칙을 여전히 발표한다.
그러니 0.24와 0.14라는 두 숫자는 오늘도 꿰매고 있다. 이제 꿰매는 대상은 핵심인 세계기록표가 아니다. 참가 기준, 조 편성, 순위, 혼성경기처럼 수동 계시와 전자 계시를 나란히 놓아야 하는 주변부의 표들이다. 핵심의 표는 천 한 장이 되었지만, 주변부의 표들은 아직 두 천을 이어 만든 것이어서 그 실이 필요하다.
하인스의 그 달리기로 돌아가자.
9초 9와 9초 95. 한 번의 달리기에서 나온 두 숫자다. 체계는 마침내 9초 95를 택했다. 수동 계시의 9초 9는 옛 목록으로 물러났고, 그 목록과 함께 종목 규정이 달라지는 동안 차츰 자격을 잃었다. 9초 95를 고른 것은 그것이 하인스가 실제로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에 더 가까워서가 아니다. 그 진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1000분의 1초까지 재는 기계가 얻는 것조차 자기 시스템 안의 측정값 하나일 뿐이다. 체계가 9초 95를 고른 것은 어느 순간부터 기계가 짠 천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기 때문이다.
진실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하나의 기준을 선택한 것이다.
앞선 글에서는 한 성적을 낳은 원인들을 분리할 수 없었다. 이번 글에서는 한 성적의 수치가 어떤 천으로 재느냐에 달려 있다. 두 글을 합치면 같은 이야기가 된다. 이 체계가 적는 모든 숫자는 그 일 자체가 아니다. 그 일이 어떤 장치, 어떤 상수, 어떤 끝자리 처리, 어떤 선택된 기준을 거친 뒤 장부에 남긴 자국이다. 자국은 정확하다. 대조할 수도, 비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국과 그 일 사이에 끼어 있는 것들은 어느 하나도 장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여섯 편을 모두 여기서 모아 볼 수 있다. 이 체계는 이름만 있는 고대의 명단에서 출발해 점점 더 정밀한 측정 방식을 쌓아 왔다. 신문, 초시계, 전자 계시, 결승선 사진 판독.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적는 내용은 조금씩 더 정확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정확해져도 적는 것은 언제나 자국이지 그 일 자체가 아니다. 이름은 그 사람이 아니고, 9초 95는 하인스가 실제로 얼마나 빨리 달렸는가 자체가 아니며, 8미터 90은 비먼의 그 도약을 낳은 원인 전부가 아니다. 체계가 정밀해질수록 자국은 선명해진다. 그래도 자국과 사건 사이의 틈은 줄곧 남아 있다. 다만 점점 가늘어져 거의 보이지 않게 되고, 그러면 사람들은 틈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 틈은 늘 거기 있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한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