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잣대로 잴 수 없는 것들을 한데 재다
10종경기 채점표는 서로 다른 열 가지 능력을 하나의 총점으로 압축한다. 표를 다시 쓸 때마다 어떤 몸과 어떤 기술에 더 높은 값을 매길지도 새로 정해진다.
이 글의 목차
1. 한 번의 경기에서 나온 다섯 개의 총점
짐 소프가 1912년 스톡홀름 10종경기에서 남긴 열 가지 성적은 이렇다. 100미터 11초 2, 멀리뛰기 6미터 79, 포환던지기 12미터 89, 높이뛰기 1미터 87, 400미터 52초 2, 110미터 허들 15초 6, 원반던지기 36미터 98, 장대높이뛰기 3미터 25, 창던지기 45미터 70, 1500미터 4분 40초 1.
이 열 개의 숫자는 100년 넘게 변하지 않았다. 그 이틀 동안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심판이 재고 장부에 적은 뒤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총점이다.
1912년 채점표로 계산하면 열 종목을 합쳐 8,412.955점이다.
1920년 채점표의 공식에 그대로 넣어 다시 계산하면 약 7,751점이다.
1934년 채점표에 인쇄된 점수를 찾아 더하면 약 6,972점이다.
1950년 채점표에서 찾아 계산하면 약 6,267점이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쓰는 채점표의 현행 공식으로 계산하면 6,564점이다.
같은 경기, 같은 사람,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열 가지 성적이다. 그런데 총점은 8,412점에서 6,267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6,564점으로 올라왔다. 2,000점 넘게 떨어진 뒤 조금을 되찾았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이 곡선이 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줄곧 내려가지도, 줄곧 올라가지도 않는다.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오른다. 채점표를 거듭 고치는 데 일관된 방향이 없었다는 뜻이다. 고칠수록 엄격해진 것도, 고칠수록 후해진 것도 아니다. 소프에게 가장 불리한 것은 1950년 표였고, 현행 표는 그에게 조금 더 친절해졌다. 표마다 기울어 있는 방향이 있지만, 그 방향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선은 없다. 이렇게 방향이 일정하지 않은 개정 속에서 한 선수의 역사적 점수는 오르내린다. 여러 사람이 번갈아 손가락으로 건드리는 곡선처럼.
정작 선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이고, 그 이틀도 오래전에 지나갔다. 그때의 열 번의 뛰기, 던지기, 달리기는 어느 것도 다시 할 수 없고, 다시 할 필요도 없다. 바뀐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총점을 계산하던 잣대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이 체계가 적는 숫자는 어느 것이든 그 일 자체가 아니다. 그 일이 어떤 장치를 거친 뒤 장부에 남긴 자국이다. 하인스의 달리기가 9초 9인지 9초 95인지는 어떤 천으로 재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번 글은 그보다 더 철저한 경우를 다룬다. 10종경기의 총점을 좌우하는 것은 한 종목의 성적을 어떤 천으로 재느냐가 아니다. 서로 관계없는 열 가지 성적을 어떤 표로 같은 숫자 단위에 환산한 뒤 더하느냐이다. 그리고 이 표는 다섯 번 고쳐졌다.
먼저 이 다섯 총점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 보자. 8,412점과 6,267점은 2,100점 넘게 벌어져 있다. 10종경기에서 올림픽 우승자와 최상위권 경쟁에서 한참 벗어난 선수를 가를 만한 격차다. 그런데 이것은 두 선수 사이의 차이가 아니다. 한 선수의 같은 경기를 두 개의 표로 계산했을 때 생기는 차이다. 어느 표를 쓰느냐가 가져오는 점수 변화가 많은 선수들 사이의 실제 격차보다 더 크다는 이야기다. 환율을 고르는 일이 성적 자체를 압도한다.
2. 표를 만든다는 것은 측정과 다르다
먼저 이 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 두자.
이것은 자연 속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던 측정법이 아니다. 관리 기구가 만든 장치다. 서로 다른 종목 사이에서 무엇을 동등한 것으로 볼지 이 장치가 정한다. 얼마나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이 몇 센티미터 더 멀리 뛰는 것과 같은 가치를 갖는가. 자연에는 이 질문의 답이 없다. 100미터와 멀리뛰기 사이에 환율은 없다. 그 환율을 정한 것이 이 표다.
공식 연혁을 보면 분명하다. 위원회가 여러 차례 작업하고 총회가 이를 채택하면서, 무엇을 동등한 성적으로 볼지에 관한 한 가지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왔다. 1983년 프라하의 작업반은 이 표를 정책 목표에 맞춰 다시 설계해야 할 대상으로 명시적으로 다뤘다. 서로 비교할 수 있어야 하고, 어느 수준에서나 쓸 수 있어야 하며,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목표였다.
만든 사람들부터 이 표를 진리로 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표는 도구였다. 도구는 목적을 위해 있다. 목적이 바뀌거나 목적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면 도구도 다시 만든다.
공식 기록에서 표를 고칠 수 있다는 말에는 적어도 네 가지 뜻이 들어 있다.
첫째, 점수의 기준으로 삼는 성적을 바꿀 수 있다. 어느 성적을 1,000점으로 볼 것인가는 바꿔 정할 수 있다.
둘째, 환산의 수학적 형식을 바꿀 수 있다. 성적을 점수로 바꾸는 함수는 선형일 수도, 누진형일 수도, 훨씬 강한 누진형일 수도 있다. 종목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휘어질 수도 있다.
셋째, 표의 쓰임을 바꿀 수 있다. 혼성경기에만 쓸 것인지, 일반적인 종목 간 비교에도 쓸 것인지가 달라질 수 있다.
넷째, 누진의 방향과 강도를 바꿀 수 있다. 성적이 같은 폭으로 조금 좋아졌을 때 낮은 수준에서는 몇 점을 더 주고, 높은 수준에서는 몇 점을 더 줄지 조절할 수 있다.
이 네 가지는 각각 표를 다시 쓸 기회다. 그리고 이 표는 그 네 가지 기회를 모두 써 보았다.
바꿀 수 있는 이 네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가 보인다. 이 표에는 손댈 수 없는 부분이 거의 없다. 기준 성적도 바꾸고, 수학적 모양도 바꾸고, 적용 범위도 바꾸고, 누진의 방향도 바꾼다. 그렇다면 바뀌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열 종목을 점수로 환산해 더한다는 틀, 그 빈 껍데기만 남는다. 틀 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같이 조절 가능한 매개변수다. 기준점과 모양, 범위와 방향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이 어떤 객관적 양을 측정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거듭 새로 짜 맞출 수 있는 약속에 더 가깝다.
10종경기의 점수는 1912년 어느 한 사람이 결단을 내려 한꺼번에 정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를 부른다. 공식 기록에 나오는 것은 기관이 끊임없이 표를 다시 쓴 역사다. 1920~1921년, 1934년, 1950~1952년, 1962년, 1984년에 개정이 있었고, 그 뒤에도 제한적인 표 조정이 몇 차례 이어졌다.
그렇다면 1912년 최초의 표는 정확히 누가 만들었는가. 확실한 답을 구할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1912년 공식표에는 방법과 기준이 설명되어 있지만, 한 명의 작성자를 확실히 지목하지는 않는다. 후대의 공식 연혁은 조직위원회가 안을 내고 전문가에게 자문한 끝에 선형 채점표가 채택되었다고 서술한다. 가장 신중하게 말하면 이렇다. 스톡홀름의 주최 측이 최초의 안을 만들고 전문가에게 자문했으며, 그 결과 선형 채점표가 채택되었다. 확인 가능한 1차 자료만으로는 이 수학적 체계의 저자를 어느 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저자가 비어 있다는 사실은 보기보다 곱씹을 만하다. 이 표는 이 종목의 가장 핵심적인 규칙이다. 100년이 넘도록 모든 10종경기 선수의 운명을 결정해 왔다. 그런데 처음 누가 정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반대로 이 표가 점수를 매긴 선수들은 이름도 성적도 순위도 하나하나 또렷이 남아 있다. 체계는 자기가 재는 대상을 더없이 정확하게 기록하면서, 무엇을 근거로 재는지에 대해서는 흐릿한 기록을 남겼다. 이 비대칭은 이 시리즈에서 거듭 나타난다. 여기서는 유난히 눈에 띈다. 이번에 출신이 불분명한 것은 바로 잣대 자체이기 때문이다.
앞선 글들에서 만난 빈자리와 같은 종류의 빈자리다. 모든 성적에 증거를 남기라고 요구하는 체계가, 자신의 가장 기초적인 표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다.
3. 표를 다시 쓸 때마다 종목별 몫이 바뀐다
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가장 명확하게 보려면 한 선수의 열 가지 성적을 고정하고 표만 바꾸면 된다. 소프의 다섯 총점이 그렇게 나왔다. 그런데 총점의 변화보다 더 눈여겨볼 것은 종목별 점수의 변화다.
1912년 표에서 소프의 높이뛰기 1미터 87은 958점, 110미터 허들 15초 6은 943점이었다. 그 표 안에서 이 두 종목의 몫은 막대했다.
높이뛰기 958점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환산해 보자. 1912년 표는 종목별 1908년 올림픽 기록을 1,000점으로 정했다. 소프의 1미터 87이 958점이라는 것은, 그 선형 채점표에서 이미 당시 올림픽 기록에 아주 가까운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똑같은 1미터 87이 현행 표에서는 687점밖에 되지 않는다. 1미터 87이라는 높이가 낮아져서가 아니다. 현행 표가 열 종목 전체에서 높이뛰기에 매기는 값을 낮췄기 때문이다. 기록에 그만큼 가까이 갔던 성적이 더 적은 점수로 바뀐다. 성적은 그대로인데 전체에서 차지하는 몫이 줄었다.
현행 표로 같은 두 성적을 계산하면 높이뛰기는 687점, 허들은 751점이다.
가장 크게 떨어진 것은 장대높이뛰기다. 3미터 25는 1912년 표에서 751.6점이었다. 현행 공식으로는 418점이다.
751점에서 418점으로. 똑같은 3미터 25다. 300점 넘게 줄었다. 거의 반 토막이다.
경기 성적이 바뀐 것이 아니라 환산 장치가 바뀌었다. 1912년 표는 장대높이뛰기 3미터 25가 750점만큼의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현행 표는 400점을 조금 넘는 정도로 본다. 같은 한 번의 도약에 두 표가 매기는 값은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
어느 쪽이 옳은가. 답이 없는 질문이다. 여기에는 측정하면 드러날 객관적인 정가가 없다. 장대높이뛰기 3미터 25에 몇 점을 주어야 하는지는, 이 표가 열 종목 전체에서 장대높이뛰기에 어느 정도의 몫을 주려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정책적 선택이지 사실이 아니다.
이 변화의 방향에 관해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소프의 총점은 1950년 표에서 최저인 6,267점까지 떨어졌다가 현행 표에서 6,564점으로 올랐다. 표를 다시 쓰는 일은 과거 성적의 점수를 낮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이기도 한다.
올라간 사례도 있다. 양촨광이 1960년 올림픽 은메달을 땄을 때의 성적은 후대의 채점 체계로 8,010점이다. 톰프슨의 1984년 우승 성적은 당시 적용하던 표에서 8,798점이었지만, 현행 통계에는 8,847점으로 제시된다. 똑같은 한 번의 10종경기인데 표가 바뀌자 수십 점이 붙었다.
그러므로 개정은 과거의 가치를 한결같이 깎아내리는 일도, 한결같이 높이는 일도 아니다. 재분배다. 매번 표를 다시 쓸 때마다 열 종목이 바꿔 받을 수 있는 점수를 새로 배분한다. 그 재분배를 특정한 과거 성적에 적용하면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 그 선수가 당시 어떤 종목에 강했는지에 달려 있다.
소프는 높이뛰기와 허들에 강했다. 현행 표는 공교롭게도 그 두 종목에 매기는 값을 낮췄다. 그래서 그의 총점은 전체적으로 떨어졌다. 포환던지기와 원반던지기에 강한 선수라면 현행 표에서 오를 수도 있다. 표를 다시 쓸 때마다 역사 속 어느 10종경기 선수가 더 높은 값을 받을지도 조용히 바뀐다.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결론 하나가 따라 나온다. 선수는 은퇴할 때 자신이 역사 속 어디쯤 서 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앞선 선수와 뒤에 올 선수에게 견줄 총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몇 년 뒤 표가 바뀌어 자기 점수와 다른 모든 선수의 점수가 함께 다시 계산되면, 역사 속 순위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 선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 평생의 노력을 압축한 그 숫자를 선수는 자기 손으로 묶어 둘 수 없다. 그것은 훗날 표를 고치는 사람들의 손에 있다.
4. 고칠수록 휘어지는 표
이 다섯 표는 수치만 다른 것이 아니다. 모양 자체가 근본적으로 몇 번 바뀌었다. 그 모양의 변화에는 공정을 이해하는 체계의 방식이 달라진 흔적이 남아 있다.
1912년 표는 선형이었다. 각 종목의 1908년 올림픽 기록을 1,000점으로 정하고, 그보다 좋거나 나쁜 성적은 일정한 기울기에 따라 이 기준에서 위나 아래로 움직였다.
선형이란 무엇인가. 어느 수준에 있든 같은 폭으로 성적이 좋아지면 같은 점수가 붙는다는 뜻이다. 아주 못하던 선수가 조금 덜 못하게 되어도, 이미 아주 잘하던 선수가 더 잘하게 되어도, 향상 폭이 같으면 추가 점수는 같다.
1920년 표도 여전히 선형이었다. 1908년 올림픽 기록을 1912년 올림픽 기록으로 바꾸고, 거기에 똑같이 1,000점을 매겼을 뿐이다. 기준점을 옮겼지 모양을 바꾸지는 않았다.
1934년 표는 선형에서 벗어났다. 핀란드에서 나온 작업으로, 올스가 1931년에 계산했고 1932년부터 핀란드에서 쓰이다가 1934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채택했다. 이 표는 누진형이었다. 종목이 달라도 동등하게 좋은 성적에는 같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추구했다.
누진형이란 무엇인가. 수준이 높아질수록 같은 폭의 향상에 더 많은 점수가 붙는다는 뜻이다. 최정상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이 낮은 수준에서 조금 나아가는 것보다 훨씬 높은 값을 받는다.
왜 선형에서 누진형으로 바꿨을까. 사람들은 수준이 높아질수록 기록을 더 끌어올리기가 어려워지되, 그 어려움이 커지는 속도는 종목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형은 그것을 반영하지 못했다. 누진형은 점수를 실제 어려움에 더 가깝게 맞추려는 시도였다.
1950~1952년 표는 누진이라는 철학을 유지하면서 그 강도를 훨씬 높였다. 1946년 채점표 위원회가 꾸려졌고, 스웨덴의 홀메르와 예르베크가 재설계를 맡았다. 각 표의 상한을 1,500점까지 올리고, 종목 간 동등성을 맞추는 핵심 기준 성적을 1,300점에 놓았다. 또한 종전에 전문가의 판단으로 정하던 부분을 일부 경험적 곡선으로 바꾸려 했다. 특히 달리기 종목의 세계기록 속도 곡선을 활용하려 했다.
여기서 잠시 멈춰 볼 만한 전환이 일어난다. 1962년 표는 1950~1952년 남자 채점표의 지나친 누진성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새 남자 표는 여자 표에 이미 쓰이던 원칙을 받아들였다. 트랙 종목은 완만한 누진형, 필드 종목은 완만한 체감형으로 정했다.
체감은 누진의 반대다. 필드 종목에 완만한 체감형을 쓴다는 것은, 수준이 높아질수록 같은 폭으로 기록을 끌어올려도 추가로 받는 점수는 오히려 적어진다는 뜻이다.
30년 남짓한 사이에 이 체계는 같은 질문에 세 가지 답을 내놓았다. 선형은 한 걸음의 값이 언제나 같다고 한다. 누진형은 더 높은 곳에서 내딛는 한 걸음일수록 더 값지다고 한다. 그리고 1962년 필드 종목에 도입한 체감형은 더 높은 곳의 한 걸음일수록 값이 떨어진다고 한다.
세 답 가운데 틀린 답은 없다. 애초에 사실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정책에 관한 질문에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종목은 무엇에 보상을 주려 하는가. 여러 종목을 고루 잘하는 능력인가, 어느 한 종목에서 인간의 한계 가까이 다가간 돌파인가.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표의 모양도 달라진다. 이 체계는 30년 남짓한 동안 세 가지 입장을 차례로 취했다. 입장이 바뀔 때마다 과거의 모든 성적을 총점으로 줄 세우는 순서도 함께 달라졌다.
여기에는 이 체계 전반에 관한 사실이 드러난다. 체계가 마주하는 문제들은 겉으로 보면 올바른 공식이 필요한 기술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은 어떤 입장을 택해야 하는 가치 문제다. 기술 문제와 가치 문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기술 문제에는 옳고 그름이 있지만, 가치 문제에는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의 선택만 있다. 체계가 가치 문제를 기술 문제로 다루면 올바른 공식을 찾아 나선다. 그 탐색은 끝나지 않는다. 애초에 어딘가에 기다리고 있는 올바른 공식이 없기 때문이다. 각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선택들이 있을 뿐이다. 10종경기 채점표가 거듭 고쳐진 데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정답을 찾으려 했다는 사정도 한몫했다.
5. 몇 점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하나가 아니다
오늘까지 이 채점 체계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1984년 개정이 남긴 표다. 그 표에 쏟아지는 비판은 이 문제의 가장 깊은 곳을 드러낸다. 무엇을 공정이라고 부를 것인지조차 모두가 인정하는 답이 없다.
1984년의 개정은 현대 채점 체계를 결정지은 개정이었다. 작업반은 새 표가 혼성경기에만 쓰여야 하며, 비교할 만한 성적에는 비교할 만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종목에서 약한 누진형이어야 하고,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총점은 대체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총회가 이 표를 채택했고, 1985년부터 적용했다.
여기서 작업반이 공정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보자. 엄밀한 통계적 의미에서 똑같이 드문 성적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다. 같은 훈련 투입량이나 같은 생리적 대가라고 정의하지도 않았다. 정의는 좀 더 절충적이었다. 비교할 만한 성적에는 비교할 만한 점수를 주고, 초보자부터 엘리트 선수까지 모두 쓸 수 있어야 한다. 종목별 전문 선수들의 자료를 설계에 활용하되, 어느 한 전문 종목이 혼성경기 전체를 집어삼키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절충안이 나중에는 균형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가장 강한 비판은 1984년 표가 단지 낡은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균형을 잃었다고 말한다. 일부 연구는 현행 체계가 내적으로 불안정하며, 특히 멀리뛰기, 110미터 허들, 100미터 같은 종목을 구조적으로 편애하는 반면 투척 종목과 1500미터는 낮게 평가한다고 주장한다. 이 비판의 더 깊은 층에는 철학적 요구가 있다. 같은 점수라면 진정으로 견줄 만한 어려움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진정으로 견줄 만한 어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설명이 여럿 있다는 데 있다.
문헌에서 경쟁하는 주요한 공정의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같은 어려움이다. 종목이 달라도 달성하기가 똑같이 어려운 성적이면 같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
하나는 같은 희소성이다. 종목이 달라도 똑같이 드문 성적이면 같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
하나는 고른 종합 능력이다. 어느 한 종목도 총점을 구조적으로 지배해서는 안 되고, 점수는 여러 종목을 고루 잘하는 데 보상을 주어야 한다.
더 오래된 견해로는 동일한 훈련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 훈련 부하가 늘어나는 누진적 관계를 일관되게 반영하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비판자들은 선형이나 준선형 환산이 이 원칙을 어긴다고 말한다.
문헌의 논의는 이 원칙들 가운데 어느 하나로도 모이지 않는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앞선 글들에서는 성적의 원인을 분리해 귀속할 수 없었고, 어떤 천으로 재느냐에 따라 수치가 달라졌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질문이 분명한데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는 경우였다.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질문 자체가 하나가 아니다. 같은 어려움과 같은 희소성은 서로 다른 기준이고, 서로 다른 표를 낳는다. 고른 종합 능력은 세 번째 기준이고, 동일한 훈련 법칙은 네 번째다. 무엇이 공정인지 먼저 하나의 뜻을 골라야 비로소 어떤 표가 공정한지 아닌지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뜻을 고를 것인가를 판정해 줄 더 높은 기준은 없다.
이 점을 더 풀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리즈 전체의 뿌리 하나에 닿기 때문이다. 측정하려면 무엇을 잴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가 길이를 잴 수 있는 것은 길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성경기에서 재려는 것, 이른바 종합 능력은 그 자체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열 종목의 평균적인 어려움인가, 열 성적을 종합한 희소성인가, 아니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인가. 서로 다른 후보들이다. 그중 어느 하나를 가리켜 이것이 진짜 종합 능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제는 측정이 충분히 정확하지 않다는 데 있지 않다. 측정하려는 대상 자체가 정의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체계는 정의가 불분명한 것에 정밀한 점수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정밀함이 정의의 빈자리를 가린다.
그러니 같은 점수가 진정으로 견줄 만한 어려움을 나타내야 한다는 말은 명료한 요구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답 없는 질문이 숨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 견줄 만하다는 것인가. 체계가 1984년에 절충적인 정의를 고른 것은 정답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다. 증명할 수 없는 기준들 사이에서 쓸 수 있는 것 하나를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쓸 수 있는 것 하나를 골라야 한다. 이 말이 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다. 체계는 공정의 기준이 여럿임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논증할 능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것을 골라도 다른 기준에서는 불공정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표를 내놓지 않을 수도 없었다. 10종경기는 총점을 계산할 수 있어야 성립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계가 한 일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것 하나 확고히 설 수 없는 선택지들 가운데 사람들이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계속 운영해 갈 수 있는 것을 골랐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답 없는 문제를 마주하고도 돌아가야 하는 체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6. 공식 계수이지만 그 출처는 설명되지 않는다
현행 남자 10종경기의 공식은 트랙 종목과 필드 종목이 서로 다른 형태다. 양쪽 모두 계수 한 묶음이 들어가고, 계산한 값은 소수점 이하를 버려 정수로 만든다.
그 계수들은 공개되어 있다. 각 종목에 쓰는 세 개의 계수가 모두 규정에 인쇄되어 있다.
하지만 그 계수들을 어떻게 얻었는지 보여 주는 공식적인 유도 과정은 없다.
현재 쓰는 1984년 표의 계수 하나하나를 처음부터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유도 과정을 찾을 수 없다. 후대 연구자들은 그런 투명한 유도 과정이 없다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계수는 공식적이다. 그러나 확인 가능한 문헌만으로는 그 계수가 만들어진 과정을 온전히 거슬러 재구성하기 어렵다.
분명히 할 점이 있다. 불투명하다고 해서 반드시 고의로 숨겼다는 뜻은 아니다. 작업반이 방대한 성적 자료와 전문가 의견, 몇 가지 원칙을 종합한 뒤 거듭 조정하면서 계수들을 얻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그 조정 과정 자체에는 공식으로 옮길 수 있는 깔끔한 논리가 없었을 수 있다. 그것은 공학적 작업이지 수학적 유도가 아니다. 공학의 결과는 정밀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똑같이 다시 밟을 수 있는 경로로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고의든 아니든 결과는 같다. 이 종목을 지배하는 규칙은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밑바탕의 제1원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따로 들여다볼 만한 기묘한 상태다.
이 종목을 지배하는 표는 숫자가 하나하나 공개되어 있다. 누구나 가져다 써서 한 점 단위까지 정확한 점수를 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숫자들을 무엇에 근거해 정했는지는 공개되어 있지 않다. 아니, 애초에 온전히 기록된 적이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체계는 이런 자리에 놓여 있다. 정밀한 규칙을 집행하면서, 정작 그 규칙이 어디서 왔는지는 스스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세 번째 글에서 본 일과 통한다. 아마추어 원칙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고대를 내세워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 고대가 허구라는 사실은 단 하루도 원칙의 효력을 약화하지 못했다. 여기서는 비슷하지만 더 미묘하다. 채점 계수에는 가짜 출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록된 출처 자체가 없다. 그런데도 정확하게 작동하고, 매번 10종경기의 승패를 결정하며, 소프의 장대높이뛰기를 750점에서 400점으로 바꾼다. 체계의 규칙은 반박할 여지 없이 정확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왜 다른 숫자가 아니라 하필 이 숫자들인지는 아무도 온전히 답하지 못할 수 있다.
정확하다는 것과 근거가 있다는 것은 별개다. 이 표는 극도로 정확하다. 어떤 두 성적을 가져와도 점수 차를 또렷하게 계산한다. 그렇다고 그 숫자들에 거슬러 확인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숫자들을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그 뒤의 계산에는 모호함이 끼어들 수 없다는 뜻일 뿐이다. 체계는 정밀함으로 근거 없음을 가린다. 쓰는 사람들은 흔히 정밀함을 근거가 있다는 뜻으로 잘못 받아들인다.
7. 다른 스포츠는 이 문제를 어떻게 비켜 가는가
서로 다른 종목을 한데 묶어 겨루는 스포츠가 10종경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스포츠의 처리 방식을 보면 10종경기가 택한 길이 얼마나 특이한지 선명해진다.
근대5종은 다르게 처리한다. 앞선 종목들에서는 여전히 점수를 쓰지만, 마지막 레이저 런에서는 점수 차를 출발 시각의 차로 바꾼다. 앞선 선수가 먼저 출발하고, 뒤쫓는 선수는 1점당 1초의 비율로 늦게 출발한다. 경기가 마지막 달리기로 끝나고, 그 달리기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순서가 곧 메달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노르딕 복합도 마찬가지다. 군데르센 방식으로 스키점프 점수를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출발 지연 시간으로 환산한다. 5~15킬로미터 개인전에서 공식 환산 비율은 1점당 4초다. 여기서도 서로 다른 종목의 부분 점수들을 마지막에 더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느냐로 경기가 끝난다.
트라이애슬론은 경기 결과 차원에서 10종경기의 가장 깊은 통약 문제를 대체로 피한다. 수영, 사이클, 달리기를 각각 별도의 점수 단위로 환산해 더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하나로 이어진 코스에서 걸린 시간과 결승선 통과 순서로 순위가 정해진다. 규정상 완주자는 코스를 마치고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이며, 성적은 결승선 통과 시간을 기준으로 정렬된다.
셋을 함께 놓으면 공통점이 보인다. 서로 다른 성질을 점수 형태로 영구히 남겨 두지 않는다. 근대5종과 노르딕 복합은 세부 종목의 차이를 마지막 추격전의 출발 시간 차로 바꾼 뒤 실제 경주로 결판낸다. 트라이애슬론은 누적 시간을 그대로 쓴다. 세 스포츠 모두 환산의 끝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한 가지가 있다. 누가 먼저 선을 넘었는가.
10종경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선택은 의도적이라기보다 역사의 우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0종경기는 전자 계시도, 정교한 추격전 운영 방식도 없던 시대에 생겨났다. 당시에는 각 성적을 점수로 바꾸어 더하는 것이 아마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훗날 다른 스포츠가 추격전이라는 더 깔끔한 해법을 발전시켰을 때, 10종경기의 점수 전통에는 이미 수십 년의 역사가 쌓여 있었다. 총점으로 남긴 역대 기록과 순위의 긴 계보도 있었다. 그때 추격전으로 바꾸려면 그 역사를 모두 버려야 했다. 그래서 점수를 남겼다. 점수가 더 좋아서가 아니라, 점수의 길을 이미 너무 멀리 걸어와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종경기는 서로 다른 성질을 그대로 남겨 둔 채, 지속적으로 쓰이는 추상적 점수 척도로 해결한다. 멀리뛰기와 포환던지기는 같은 경주 안의 초 단위로 바뀌지 않는다. 점수로 환산되어 더해진다. 그 합은 어느 실제 경주에도 대응하지 않는 숫자다.
이 차이는 근본적이다. 근대5종에서 환산표가 바뀌면 달라지는 것은 이번 추격전에서 누가 누구에게 몇 초를 내주느냐이다. 경기가 끝나면 그 표가 그 경기에서 할 일도 끝난다. 거꾸로 돌아가 지난 대회의 우승자를 바꾸지는 않는다. 지난 대회의 우승자는 그 추격전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넘은 사람이고, 그 사실은 이미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대비는 추상적인 점수에는 결코 없는 결승선의 장점 하나를 드러낸다. 결승선에서 일어난 일은 물리적 사실이다. 누구의 몸통이 그 수직 평면에 먼저 도달했는가는 한 번 일어나고 나면 바꿀 수 없다. 훗날의 환산에 기대지 않는다. 반면 추상적인 총점은 물리적 사실이 아니다. 계산의 결과이며, 계산은 다시 할 수 있다. 승패를 물리적 사실에 걸면 그 순간에 고정된다. 계산에 걸면 언제까지나 재계산의 가능성에 노출된다. 10종경기는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그 역사 속 모든 결론은 수정될 수 있다.
10종경기의 환산표가 바뀌면 과거의 모든 경기로 돌아가 점수를 바꿀 수 있다. 10종경기의 성적은 누가 먼저 결승선을 넘었는가가 아니라 총점이고, 그 총점은 표가 계산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표가 바뀌면 과거의 총점도 모두 함께 바뀐다. 소프의 다섯 총점이 그렇게 나왔다.
그러므로 10종경기의 특이함은 환산표 자체를 이 스포츠를 성립시키는 핵심 헌법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다른 스포츠는 환산을 일회용 도구로 쓴다. 쓰고 나면 내려놓고, 실제 승패는 결승선에 맡긴다. 10종경기는 환산을 영구 장부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장부의 기장 규칙은 다시 쓸 수 있다. 다시 쓰는 순간 장부 속 옛 항목들이 모두 한 번씩 재계산된다.
8. 과거까지 다시 쓸 수 있는 장부
이 글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보자.
체계가 마주한 것은 정말로 답이 없는 문제다. 100미터와 멀리뛰기 사이에는 환율이 없다. 잠시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빨리 달리는 것과 멀리 뛰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그 둘 사이의 객관적인 교환 비율이 자연 속에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10종경기는 이 두 일을 더해 하나의 총점을 내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환율을 발명해야 한다.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그렇게 발명한 환율이 바로 채점표다. 발명한 것이니 다시 발명할 수 있다. 다시 발명할 수 있으니 실제로 다섯 번 다시 발명했다. 그때마다 한 일은 오류 하나를 고친 것이 아니라 정책의 틀을 바꾼 것이었다. 이 판본은 고른 능력에 상을 주고 싶고, 저 판본은 돌파에 상을 주고 싶다. 이 판본은 장대높이뛰기에 무게를 두고, 저 판본은 가볍게 여긴다.
여기에는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 이 표가 하려는 일은 닫힘이다. 같은 척도로 잴 수 없는 열 종목을 통약해 서로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총점으로 묶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냈다. 어떤 두 경기를 가져와도 총점으로 우열을 가릴 수 있다. 닫힘 자체는 이루어졌다.
대가가 있다. 이 닫힘은 숨겨진 선택 위에 세워졌다. 누군가가 열 종목의 환율을 정해 주었기에 총점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환율은 객관적 근거가 없는 정책적 선택이다. 왜 환율이 하필 이래야 하는지 캐묻지 않는 것이 닫힘의 조건이다. 일단 캐묻기 시작하면 다른 환율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환율이 달라지면 모든 총점, 모든 순위, 모든 역사도 달라진다.
다섯 번째 글에서 한 가지 잔여항을 보았다. 체계가 성적을 받아 적었는데, 그 숫자 안에 서로 떼어 낼 수 없는 네 가지가 들어 있었다. 이번의 잔여항은 다른 종류다. 체계는 정밀한 총점을 계산해 냈지만, 그 총점은 체계 자신도 출처를 설명하지 못하는 환율에 의존한다. 총점은 정밀하고 환율은 임의적이다. 정밀한 총점이 임의적인 환율 위에 앉아 있다. 총점을 쓰는 사람은 정밀함만 보고 그 밑의 임의성은 보지 못한다.
장부의 성질을 다시 보자.
두 번째 글의 체계가 가장 먼저 배운 일은 안에 더해 넣는 것이었다. 빼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여기서는 사정이 더 복잡해진다. 10종경기의 장부에는 더해 넣을 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계산할 수도 있다. 표만 바꾸면 개별 성적은 하나도 건드릴 필요 없이 과거의 모든 총점이 저절로 새 숫자가 된다. 앞에서는 보지 못한 능력이다. 원래 기록은 하나도 고치지 않으면서 모든 결론을 바꾼다.
그러나 체계는 이 능력을 끝까지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역사 속 모든 10종경기를 새 표로 다시 계산하고, 법적으로 새 점수가 옛 점수를 대체하도록 하지는 않았다. 확인 가능한 자료에서는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논의한 총회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실제로는 1985년부터 새 표를 적용했다. 과거에 대해서는 원래 점수를 남겨 두면서, 역사 요약 자료에 현행 표로 조정한 점수를 함께 싣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나란히 제시하는 것이지, 법적 판정을 통째로 교체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날 소프의 그 경기는 장부에 두 개의 총점으로 나란히 남아 있다. 8,412.955점은 1912년 표에 따른 원래 점수다. 6,564점은 현행 표에 따른 점수다. 둘 다 지우지 않고 곁에 놓는다.
두 숫자는 나란히 놓여 있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8,412점은 1912년의 이해 방식에서 소프가 얼마나 뛰어난 만능 선수였는지를 말한다. 거의 모든 종목에서 당시 올림픽 수준에 바짝 다가갔다는 이야기다. 6,564점은 오늘의 평가 체계로 볼 때 그 똑같은 경기의 값이 얼마인지를 말한다. 어느 이야기도 거짓은 아니다. 서로 다른 환율 위에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두 숫자가 나란히 적힌 것만 보는 후대의 사람은 그 차이가 성적의 높고 낮음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환율의 변화에서 나왔다는 것을 숫자 자체로는 알 수 없다. 숫자는 환율을 숨기고,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두 결과만 남긴다.
이것은 네 번째 글에서 본 나란한 장부이자, 여섯 번째 글에서 본 수동 계시와 전자동 계시의 공존 구조다. 체계는 한 가지 일을 유일한 답으로 말할 수 없을 때 하나를 고르기보다 둘 다 남겨 곁에 놓곤 한다. 한 성적에 두 총점, 한 번의 달리기에 두 측정값, 한 종목에 두 표. 닫을 수 없는 자리를 나란한 두 칸으로 만든다.
사실 이 방법은 시리즈 전체에서 이 체계가 가장 즐겨 쓰는 수다. 닫아야 할 일 자체에 유일한 답이 없으니 진정한 닫힘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차선을 택한다. 억지로 유일한 답 하나를 뽑는 대신 여러 답을 나란히 적어 공존시킨다. 어느 하나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세울 수 없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정직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회피이기도 하다. 스스로 내려야 할 판단을 장부를 보는 사람에게 남기기 때문이다. 나란한 두 칸은 체계가 닫히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자리인 동시에, 닫히지 않음의 부담을 밖으로 떠넘기는 자리다. 8,412점과 6,564점이 함께 적힌 것을 보는 사람이 어느 쪽을 믿을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체계는 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그 열 개의 숫자로 돌아가자.
100미터 11초 2, 장대높이뛰기 3미터 25, 1500미터 4분 40초 1. 소프가 실제로 해낸 일들이다. 정확하고, 대조할 수 있고, 100년 넘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총점, 그 열 가지 일을 하나의 숫자로 더해 놓은 총점은 다섯 번 바뀌었고, 지금도 두 개가 걸려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데 그 일들에 매기는 값은 계속 달라졌다. 체계는 한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들 각각이 얼마만 한 가치가 있는지는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영원히 확정할 수 없다.
이 말을 지금까지 지나온 일곱 편 전체로 넓힐 수 있다. 이름만 적힌 고대의 명단에서 기록의 등록으로, 자격을 가르는 선으로, 측정의 정립으로, 수동 계시와 전자동 계시의 환산으로, 그리고 열 가지 일을 하나의 숫자로 통약하는 이 표로. 체계의 능력은 줄곧 커졌다.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갈수록 정밀하고 세밀해졌다. 그런데 끝내 얻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선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준이다. 어떤 일에 값을 매기려 할 때마다 체계는 먼저 증명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느 성적을 1,000점으로 볼 것인가. 얼마나 빨라야 다른 종목의 성적과 같은 가치를 갖는가. 어떤 공정이 공정인가. 그 선택들을 하고 나면 뒤따르는 모든 것은 한없이 정밀하다. 그러나 그 선택 자체에는 하나도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체계가 정밀해질수록 밑바탕의 선택은 더 깊이 숨는다. 쓰는 사람이 그 자리에 사실이 있다고 믿을 만큼 깊어진다. 하지만 거기에는 처음에 누군가 내린 결정 하나가 있을 뿐이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한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