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몸이 측정될 수 있는가
1928년 여자 800미터는 여성이 ‘달릴 수 없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도가 관람과 자격과 기록을 어떻게 서로 다른 방에 나누어 넣는지 보여 주는 사례였다.
이 글의 목차
1. 아홉 명 모두 완주했다
1928년 암스테르담. 여자 800미터 결승.
아홉 명이 출발했고, 아홉 명 모두 완주자로 기록됐다. 상위 여섯 명은 경기 전까지의 세계기록보다 빨랐다. 우승한 라트케는 2분 16초 8, 2위 히토미 기누에는 2분 17초 6, 3위 젠첼은 2분 17초 8이었다. 그 뒤로 톰프슨, 로젠펠드, 맥도널드, 돌링거, 킬로수브나가 들어왔다.
9위의 이름은 베버였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정리된 성적표에는 그의 정확한 시간이 나와 있지 않다.
이 사실에 지나친 무게를 실을 필요는 없다. 초기 성적표의 마지막 자리에 숫자 하나가 빠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기록할 때 놓쳤거나, 옮겨 적다가 빠뜨렸거나, 애초에 시간을 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눈여겨볼 것은 그 빈칸의 위치뿐이다. 여섯 명이 세계기록보다 빨리 달린 경기에서 숫자가 없는 사람은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선수 하나다. 이렇게 구축된 체계가 한 경기에 쏟는 관심은 순위가 내려갈수록 줄어든다. 명단 맨 아래 칸은 그 손길이 가장 쉽게 풀리는 자리다.
어느 모로 보나 성공한 경기였다. 처음 올림픽에 들어온 종목에서 아홉 명이 완주하고 여섯 명이 종전 세계기록을 넘어섰다. 측정이 이 체계의 목적이라면, 이 경기에서 일어난 일은 체계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결과였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을 수 있다. 여섯 명이 한꺼번에 종전 세계기록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일은 종목이 막 시작될 때 흔히 일어난다. 이전 기록은 훨씬 좁은 참가 범위 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 성적표는 두 가지를 동시에 적어 놓은 셈이다. 아홉 명이 아주 빨리 달렸다는 것, 그리고 이 종목이 그전까지 쌓아 온 장부는 아직 얇았다는 것. 앞의 것은 경기의 문제이고 뒤의 것은 제도의 문제다. 그런데 제도 쪽의 그 사실이야말로 이 종목이 이제 자기 역사를 쌓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체계로서는 가장 반가워해야 할 징후였다.
당시의 필름은 지금도 볼 수 있다. 결승선을 지난 뒤 몇몇 선수가 잠시 주저앉거나 잔디에 눕고, 혹은 눈에 띄게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담겨 있다. 800미터를 달린 뒤에 드문 일은 아니다.
경기가 끝난 뒤 여자 선수들을 진찰한 의사는 베르크만이었다. 베르크만은 몇 분 뒤 선수들의 맥박과 혈압, 전반적인 상태를 살폈다. 모두 정상이었다고 했다.
따라서 이 일의 증거는 처음부터 명료했다. 공식 성적표가 있고, 영상이 있고, 현장에서 진찰한 의사의 증언이 있다. 셋은 서로를 뒷받침하며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아홉 명이 800미터를 아주 빨리 달렸고, 그러고 나서 지쳤다.
이 세 가지는 성격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서로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에 더 무게가 실린다. 성적표는 제도적인 산물이다. 절차가 만들어 내며, 판단을 담지 않는다. 영상은 기계적인 산물이다. 자신이 무엇을 찍는지 모른다. 증언은 전문적인 판단이다. 판단할 자격을 가진 사람이 현장에서 내렸다. 출처가 서로 독립된 셋이 같은 일을 가리킨다. 증거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일이 확인될 수 있는 상태로서는 이미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다음 일어난 일은 이 셋과 관계가 없었다.
2. 신문은 다섯 명이라고 했다, 혹은 여섯 명이라고
1928년 8월 3일을 전후해 몇몇 주요 신문이 이 경기의 기사를 실었다.
《타임스》는 경기가 끝난 뒤의 모습을, 쓰러진 채 뚜렷한 고통을 드러내는 몸들이 널린 광경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그 광경에서 여자 800미터는 위험하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뉴욕 타임스》의 윌리엄스는 이 종목이 여성의 체력에 지나치게 큰 부담을 준다고 썼다. 아홉 명 가운데 여섯 명이 결승선을 지난 뒤 쓰러졌고 몇 명은 부축을 받아 나갔다고도 썼다.
《시카고 트리뷴》에 실린 샤이러의 기사 제목은 여자 육상 스타 다섯 명이 올림픽 경기에서 기진해 쓰러졌다는 내용이었다.
캐나다의 《토론토 스타》에서 마시는 8월 3일 자 1면에 톰프슨과 로젠펠드를 다뤘다. 피로를 부풀려 독자의 눈길을 끌 소재로 삼았다.
이제 이 기사들을 앞 절의 세 가지 증거와 나란히 놓아 보자.
공식 성적표에서는 아홉 명이 완주했다. 《뉴욕 타임스》에서는 여섯 명이 쓰러졌다. 《시카고 트리뷴》에서는 다섯 명이 기진해 쓰러졌다.
이것은 해석의 차이가 아니다. 몇 명이 쓰러졌는지는 셀 수 있는 수다. 몇 명이 완주했는지와 마찬가지로 셀 수 있다. 양쪽이 내놓은 수는 다르다. 같은 날 오후, 같은 결승선에 관해 내놓은 수가 다르다.
여기서는 말을 지나치게 밀어붙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잠깐 주저앉은 것과 완전히 기진해 쓰러진 것 사이에는 분명 묘사의 여지가 있다. 똑같은 동작을 쉬는 중이라고 쓸 수도, 더 버티지 못했다고 쓸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숫자들이 반드시 지어낸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눈앞의 모습을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했을 수 있고, 그 기준이 성적표의 기준보다 훨씬 느슨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니다. 묘사와 집계가 부딪혔을 때, 효력을 발휘한 쪽이 묘사였다는 것이다.
하나 더 밝혀 둘 일이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네 기자 가운데 당시 결승선 곁에 있었다고 확증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늘날의 연구로 확인되는 것은 기사에 실린 그들의 이름과 소속 신문, 기사가 지면에 실린 날짜다. 직접 본 것을 썼는지, 경기장 안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썼는지는 남아 있는 자료로 판단할 수 없다. 기사 네 편, 기자 네 명의 위치. 모두 미결이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주요 신문의 원문도 이번 조사에서는 직접 인용할 수 있는 영인본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 재난 서사가 영미권만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퍼졌다는 데에는 오늘날 연구자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다만 그것을 직접 확인하려면 각국 국립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과 영인 원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얼마나 넓은 범위에서 어떤 표현으로 이야기가 되풀이됐는지, 지금은 그 정도까지 세밀하게 말할 수 없다.
이 빈자리가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도 짚어 둘 필요가 있다. 영어권의 기사 네 편만 볼 수 있다면, 당시의 서술이 몇몇 신문이 같은 소재를 제각기 풀어 쓴 결과인지, 언어를 가로지르는 보편적인 틀이었는지 가리기 어렵다. 전자는 언론계에서 생긴 우발적인 일에 가깝고, 후자는 한 시대가 공유한 선입견에 가깝다. 오늘날 연구는 후자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그 판단을 직접 뒷받침할 본문을 이번 조사에서는 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아래의 분석은 볼 수 있는 네 편 위에만 세울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의 결론까지 대신 내릴 수는 없다.
앞선 글의 한 문장이 여기서 아주 직접적으로 들어맞는다. 구축된 체계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는, 일이 어떤 형태로 종이 위에 남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에는 같은 일이 두 가지 형태로 종이에 남았고, 그 두 형태가 서로 다른 수를 내놓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하나는 성적표다. 계시원과 심판, 대회의 기록 절차가 만들어 낸다. 벌어진 일을 정확히 적는 것, 그것이 기능의 전부다. 다른 하나는 신문 기사다. 팔려야 하는 지면이 만들어 낸다. 읽을 만하다고 독자가 느끼게 하는 것이 그 기능이다.
효력을 발휘한 것은 후자였다.
이 대목은 끝까지 밝혀 말할 필요가 있다. 자칫 언론에 대한 불평 한마디로 읽힐 수 있지만,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글에서 보았듯 현대 기록 제도의 첫 장부는 상업 신문이었다. 윌킨슨이 그것을 고른 까닭은 당시 충분히 방대하면서도 충분히 오랫동안 이어진 자료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은 한때 이 체계를 성립시킨 기반이었다. 같은 매체가 한쪽에서는 체계에 몸을 주고, 다른 쪽에서는 그 측정을 뒤집었다. 서로 다른 두 사건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의 양면이다. 소식을 모든 사람 앞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것은 잘못된 숫자도 모든 사람 앞에 가져다 놓을 수 있다. 그것도 똑같이 빠르게.
3. 표결은 남지 않았다
암스테르담 이후 국제육상연맹은 여자 800미터를 1932년 올림픽 종목에서 빼기로 결정했다.
당시의 이유를 전하는 일차 증언 가운데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베르크만의 말이다. 베르크만의 요약에 따르면, 대표들은 ‘쓰러진 소녀들’이라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고 인도주의를 이유로 표를 던졌다. 독일 대표들이 종목을 유지하려 했다는 말도 남겼다.
독일 대표들이 유지하려 했다는 사실은 따로 들여다볼 만하다. 그 대회의 우승과 새 세계기록은 모두 독일의 것이었다. 이 표결에서 종목을 옹호할 이유가 있었던 유일한 쪽은, 마침 그 종목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쪽이었다. 이것으로 누구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표결에서 입장이 나뉘는 방식은 흔히 이해득실을 따르며, 당시 이 종목에서 무언가를 얻은 나라는 하나뿐이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이 낳는 결과는 구조적이다. 막 시작한 종목은 오래된 종목보다 지지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여러 나라에 기득권을 뿌리내릴 시간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목을 줄일 때마다 새 종목들은 가장 먼저 잘려 나가는 무리에 든다. 종목 자체가 얼마나 좋은지와는 관계가 없다. 종목을 없앨 때 이 체계는 사실상 각국의 이해관계가 분포한 모양대로 표를 던진다. 그 분포는 종목의 나이를 따라간다.
다음은 더 널리 퍼진 이야기다. 그 직후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표결을 통해 여자 경기의 최대 거리를 200미터로 낮췄다는 것이다.
공개된 회의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 가운데 이 이야기에 해당하는 것은 없다.
확인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1931년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여성의 육상 참가 자체를 놓고 총괄적인 표결을 한 바 있었다. 찬성 16표, 반대 3표로 여자 육상 전체를 1932년 대회에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회의록에는 논쟁의 세부 내용이 남아 있지 않다. 여자 800미터만을 놓고 별도로 표결한 득표수도 직접 확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앞의 이야기는 미결로 남겨 두어야 한다. 반드시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을 뒷받침할 원기록을 지금은 내놓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벌써 세 번째로 되풀이되는 모양이 나타난다. 한 번 짚어 보자.
두 번째 글에서는 최초의 기록 신청서 원본을 찾을 수 없었다. 세 번째 글에서 다룬 소프의 사실 인정 편지와 코치의 내부 서신, 두 위원회 사이에 오간 서신 전체는 지금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이번 글에서는 32년 동안 효력을 발휘한 결정의 세부 이유가 기록되지 않았다.
세 경우 모두 누가 자료를 없앤 것은 아니었다. 남은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계속 돌아가는 어떤 기계의 일상적인 산물이라는 점이다. 성적 연감은 해마다 인쇄되고, 학생 서류는 항목별로 보관되며, 총괄 표결의 표수는 회의록에 들어간다. 이런 일은 체계가 대신 해 준다. 남지 않은 것에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일회성이었다. 한 번의 논의, 편지 한 통, 한 차례의 논쟁. 일이 끝나면 흩어졌다.
그 결과 구축된 체계가 후세에 남기는 것은 대개 추론이 아니라 결론이다.
이것이 판단에 미치는 영향은 구체적이다. 1928년의 종목 삭제가 대체 어떤 생각에서 나왔는지 오늘날 알아보려 할 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표결 결과 하나, 의사 한 사람의 회고, 그리고 후대의 전언이다.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얻을 수 없다. 그러니 동기에 관한 모든 결론은 결과와 맥락을 합쳐 추론한 것일 수밖에 없다. 추론은 회의록이 줄 수 있는 확실성에 끝내 닿지 못한다. 이것은 받아들여야 하는 한계다. 더 힘주어 해석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다.
4. 내부의 이유들
이제 양쪽 방향을 모두 달려 봐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양쪽 모두 확실한 자료가 있으니,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가 없다.
한쪽 방향은 종목 삭제가 주로 여성의 능력을 잘못 판단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앞에서 이미 보았다. 공식 성적표에는 아홉 명 모두 완주했고 상위 여섯 명은 종전 세계기록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고 적혀 있다. 남아 있는 필름은 여러 명이 실신했다는 통설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현장의 의사는 금지가 성급하고 감정적이었으며, 진찰한 선수들의 생리적 상태는 정상이었다고 말했다. 베르크만뿐이 아니다. 메세를리도 훗날 자신이 현장에 있었다면서, 이른바 ‘쓰러짐’은 병리적인 이상이라기보다 패배 뒤의 울음과 감정적 반응에 가까웠다고 했다. 테일러는 일부 선수가 경기를 마친 뒤 잠시 쓰러진 것을 긴장과 경기에서 겪는 감정의 동요로 설명했다. 거리 자체를 감당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베르크만은 더 중요한 말도 했다. 단거리 달리기에서 오는 신경의 긴장이 장거리보다 해로울 수도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말의 무게는 당시 이용할 수 있던 의학적 견해가 그 결정을 뒷받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장의 의사가 검사 결과를 보고 내린 판단은 반대 방향이었다.
물론 이 말 자체도 의사 한 사람의 의견일 뿐, 입증된 결론은 아니다. 이를 그 결정이 틀렸다는 증거로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 검증하지 않은 전문적 판단 하나로 검증하지 않은 다른 전문적 판단을 부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말의 무게는 다른 곳에 있다. 당시 의학계의 견해가 하나로 모여 있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종목 삭제를 주장한 쪽은 훗날 당시의 의학적 합의를 따른 것으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합의라는 말을 쓸 수 없다. 당시에는 합의가 없었다.
다른 방향은 이 결정에도 당시의 의학적·조직적 맥락 안에서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들이 당시의 지식 틀 안에서는 앞뒤가 맞았다는 것이다.
그 틀은 대략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는 여성의 몸을 우선 생식과 양육을 위한 몸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적당한 운동은 이롭지만, 지나치거나 경쟁적인 지구력 운동은 건강과 출산에 해로울 수 있다고 보았다. 둘째는 경기가 끝난 뒤 대중에게 드러나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관리의 문제로 보는 것이었다. 문제는 선수가 손상을 입었느냐가 아니라 관중이 무엇을 보았느냐였다. 셋째는 여자 올림픽 종목이 이른바 미적인 종목 쪽으로 기울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1930년 국제올림픽위원장 바예라투르의 주장이 이 방향을 향했다.
이 가운데 둘째 층이 가장 눈여겨볼 만하다. 선수의 몸 상태와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관심을 두는 것은 장면이다. 바로 앞에서 본 신문들이 제공한 것이 그 장면이었다.
이 대목을 따로 떼어 보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첫째 층은 선수의 몸이 손상되는지를 다룬다. 증거로 검증할 수 있는 주장이며, 훗날 실제로 검증되어 뒤집혔다. 하지만 둘째 층의 대중적 인상과 셋째 층의 미적 선호는 몸의 손상에 관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건강에 관한 증거만으로는 그것들을 뒤집을 수 없다. 이처럼 세 층의 이유가 떠받치는 결정은 건강상의 이유가 무너진 뒤에도 나머지 두 이유 위에 서 있을 수 있다. 증거가 쌓인다고 언제나 결정이 바뀌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 두 방향은 서로 대립하는 해석이 아니다. 같은 사건 안에서 맞물린다. 신문이 장면을 부풀렸고, 그 장면이 대표들의 판단에 들어갔다. 당시의 지식 틀에는 원래부터 대중에게 주는 인상을 정당한 이유로 받아들이는 통로가 있었다. 셋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종목 삭제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셋이 합쳐지자 충분했다.
분명히 밝혀 둘 것이 있다. 1928년 전후의 의학 논문을 한 편씩, 교과서를 판본별로 망라한 목록은 이번 공개자료 조사에서 만들지 못했다. 복원할 수 있는 것은 제한을 지지한 쪽의 지식 구조와 제한에 반대한 현장 의료진의 증언이다. 항목마다 대조할 수 있는 문헌 목록까지 복원하지는 못했다. 그런 목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에 볼 수 있었던 범위 안에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짚을 것은 두 방향 사이의 시간차다.
잘못된 판단은 훗날 증거에 의해 체계적으로 설득력을 잃었다. 하지만 종목을 관리하던 그 논리는 규칙의 역사에 오래 남았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 다시 보게 된다. 1978년 여자 5000미터와 1만 미터를 거부한 이유는 더 이상 여성이 감당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참가의 폭이 충분하지 않아서였다. 이유는 바뀌었다. 문은 제자리에 있었다.
5. 또 하나의 기록부
암스테르담 대회 훨씬 전부터 이미 다른 체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밀리아는 1920년대에 독자적인 국제 여자 대회를 조직하며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국제육상연맹을 압박했다. 국제여성스포츠연맹이 개최한 핵심 대회는 네 차례였다. 1922년 파리, 1926년 예테보리, 1930년 프라하, 1934년 런던 순이었다.
이 연맹은 대회만 연 것이 아니었다. 1922년부터 여자 세계기록을 공인했다.
이것이 이 절의 핵심이다. 기록을 공인하는 일은 대회 개최에 딸린 부수 업무가 아니다. 국제 종목별 연맹이 맡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 가운데 하나다. 규정을 만들고, 기록을 인정하고, 공표하는 일. 이 일을 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이 숫자는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관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누구도 그 권한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제여성스포츠연맹은 상위 기관에서 기록 공인의 권한을 받아 온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그 일을 시작했고, 사람들이 참가하고 보도하고 그 숫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사실상 그 기능을 갖게 됐다. 두 번째 글에서 보았듯 어떤 성적표든 출처가 필요하며, 출처의 자격을 성적표가 스스로 부여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같은 일의 다른 면이 드러난다. 한 기관은 어떤 일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것으로 자신을 바로 그 출처로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1922년부터 1936년까지 여자 육상의 성적을 적는 장부는 두 권이었다.
1926년에 타협이 이루어졌다. 밀리아는 원래의 ‘여자 올림픽’이라는 이름을 ‘여자 세계대회’로 바꾸는 데 동의했다. 그 대가로 1928년 올림픽에 여자 육상 종목이 들어갔다. 이 거래에서 밀리아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병행하는 그 체계를 영구히 유지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협상의 지렛대로 쓰려 했다.
하지만 타협의 약속은 온전히 이행되지 않았다. 1928년 올림픽에 실제로 들어간 여자 육상은 종목 전체가 아니라 제한된 몇 종목뿐이었다. 영국여자육상협회는 이 때문에 선수단 파견을 거부했다. 약속은 열 종목이었는데 실제로 내준 것은 다섯 종목뿐이라는 이유였다.
이는 근대 올림픽 역사에서 여성이 종목의 평등을 위해 단행한 아주 드문 보이콧이었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흔히 승리로 서술되는 바로 그 수용이었다.
1936년 국제여성스포츠연맹은 국제육상연맹에 흡수됐다.
흡수라는 행위는 앞선 글들에서 본 여러 처리 방식과 다르다. 상대의 장부를 통째로 지워 버리는 것도, 두 장부를 나란히 보존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세계육상연맹의 여자 세계기록 변천 설명에는 초기의 몇몇 기록을 그 연맹이 1922년에 공인했다는 내용이 여전히 적혀 있다. 흡수된 장부의 일부 항목이 지금도 공식 기록의 계보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어떤 항목이 그대로 넘어왔고 어떤 항목이 나중에 조용히 무효 처리됐는지, 이를 하나하나 보여 주는 목록은 지금 없다. 공개자료로 권한이 넘어갔다는 사실은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항목별 인계 목록까지 만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금의 장부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관에서 온 항목들이 섞여 있다. 겉으로 보아서는 어느 항목인지 알 수 없다. 체계는 경쟁자를 삼킨 뒤 자기 장부의 어느 줄을 삼켜 온 것인지 표시하지 않는다.
견주어 볼 만한 점이 있다. 이 병행 장부는 존재하는 동안 한 번도 무효로 판정된 적이 없었다. 내내 진짜였다. 실제로 운영되는 국제기관이 공인했고, 실제 선수들이 그 기록을 좇았다. 사라진 것은 반박되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봉사하던 목적이 일부 이루어졌고, 운영자들도 처음부터 그것을 오래 존속시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구축된 체계는 패배해서 끝나는 대신, 할 일을 이루어서 끝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말을 너무 말끔하게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이루어진 것은 밀리아가 추구하던 차원의 목적뿐이기 때문이다. 네 차례 여자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낸 선수들에게는 그 장부가 목적을 이루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도 자기 이름이 장부에 남아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항목별 인계 목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끝나는지는 그것을 설계한 사람과 거기에 기록된 사람에게 같은 일이 아니다.
6. 배번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
여자 800미터는 1960년 로마에서 복귀했다.
1928년부터 1960년까지, 32년.
그런데 이 복귀에는 특정할 수 있는 하루가 없다. 1960년 로마에서 이미 이 종목이 열렸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나 누가, 어느 해의 어떤 회의에서 복귀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행동을 했는지는 공개자료로 못 박을 수 없다. 어느 한 번의 회의에서 억울함을 풀어 준 사건이라기보다, 1950년대에 여자 종목이 꾸준히 늘어나고 국제육상연맹과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종목 범위를 재평가한 결과라고 말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
여기서 잠시 멈춰 볼 필요가 있다.
이 문을 닫을 때는 구체적인 행위가 있었다. 한 번의 표결, 이유를 말할 수 있었던 자리, 회의록에 적을 수 있는 결론. 열 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문을 여는 과정은 십수 년에 흩어져 있었다.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여러 행동이 쌓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정확히 어느 순간에 완료됐는지 짚을 수가 없다.
체계가 문을 닫는 방식과 여는 방식은 비대칭적이다. 문을 닫으려면 한 차례의 결정이 필요하다. 현 상태를 거슬러야 하기 때문이다. 문을 열 때는 현 상태가 서서히 바뀌어 그 문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기만 하면 된다. 후자는 기록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이것으로 이런 사건을 기념할 때 왜 늘 문을 닫은 순간으로 돌아가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1928년에는 특정할 대상이 있고, 표결과 이유가 있으며, 인용할 문장이 있다. 1960년에는 없다. 그러니 후대의 서사는 문이 닫힌 순간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문을 여는 데 걸린 십수 년은 인용할 만한 지점이 없어서 이야기 속에서 거의 빈칸이 된다. 체계가 기록하는 방식이 후세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한다. 그런데 체계가 적어 둔 것은 하필 자신이 내린 최악의 결정들이다.
이후 여자 종목이 채워지는 시간표는 공식 성적 페이지를 따라 배열할 수 있다. 1500미터는 1972년 뮌헨, 3000미터와 마라톤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1만 미터는 1988년 서울, 세단뛰기는 1996년 애틀랜타, 장대높이뛰기와 해머던지기는 2000년 시드니, 3000미터 장애물달리기는 2008년 베이징이었다.
1928년부터 2008년까지, 80년.
그 시간표 한가운데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두 사건이 있다. 둘의 대비는 선명하다.
1966년 깁은 출발점 옆 덤불 속에서 나와 보스턴 마라톤에 합류했고, 3시간 21분 40초로 달렸다. 배번은 없었다.
1967년 스위처는 이름을 이니셜로 적어 배번을 받았다. 그리고 배번을 달고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첫 여성이 됐다.
이 두 사람에게 체계가 보인 반응은 전혀 달랐다.
깁의 경우, 당시 논란은 주최 측이 깁이 정말 전 구간을 달렸는지 의심한 데서 나왔다. 일어난 일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명단에 없으니 취소할 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 성적이 성립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반증할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계시와 출전 확인의 체계 밖에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위처에게는 현장에서 직접 손을 대어 코스 밖으로 쫓아내려 했다. 배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부에 올라 있었고, 누구인지 짚어 낼 수 있는 항목이었다.
앞선 글의 소프 사건이 여기서 같은 모양으로 반복된다. 본명을 쓴 사람은 처분을 받았고 가명을 쓴 사람들은 무사했다. 이번에는 더 직접적이다. 장부에 들어간 사람이라야 붙잡을 수 있었다. 장부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에게 체계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선수가 완주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두 대응 방식이 치르는 대가도 달랐다. 스위처에게 손을 댄 행동은 연속 사진으로 남았다. 그 사진들은 훗날 이 사건의 가장 널리 알려진 증거가 되었고, 거꾸로 주최 측에 몹시 불리하게 작용했다. 깁에 대한 의심은 영상으로 남지 않았다. 의심은 말이지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체계가 눈에 보이는 항목을 처리할 때는 체계 자신의 행동도 눈에 보이게 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처리할 때는 그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가시성은 양방향이다. 당시 체계가 거기까지 생각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여자부는 1972년에 정식으로 생겼다. 주최 측은 훗날 깁이 개척기에 거둔 우승도 인정했다.
7. 기록을 먼저 주고, 자격은 나중에
1978년 국제육상연맹 여자위원회는 여자 5000미터와 1만 미터의 세계기록을 공인하고 두 종목에 국제경기 지위를 부여하라고 요구했다.
국제육상연맹은 거부했다. 세계적인 참가 수준이 아직 충분히 높지 않다는 이유였다.
1980년 연맹은 두 종목의 세계기록을 공인했다. 하지만 당시의 세계선수권대회와 국제경기 체계에는 여전히 포함하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의 신규 종목 규정에 따르면 두 종목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맞춰 채택되기에는 늦었다.
이 과정에서는 두 가지를 나누어 보아야 한다.
첫째는 순서다. 기록을 먼저 인정하고, 종목의 자격은 나중에 주었다. 공식적으로 공인된 세계기록은 존재하는데, 정작 그것을 공인한 기관은 자기 주요 대회에 그 종목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해들이 있었다. 측정은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 진입의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세 번째 글에서는 순서가 반대였다. 먼저 진입의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어야 측정될 자격을 얻었다. 여기서는 측정이 먼저다. 한참 측정한 뒤에야 진입을 논한다. 장부는 여전히 그 두 권이다. 이번에는 앞뒤 자리만 바뀌었다. 어느 순서든, 두 장부 사이에 끼이는 사람들은 늘 있다.
둘째는 거부의 이유 자체다.
참가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거부의 근거로 삼으면 구조적인 문제가 생긴다. 한 종목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널리 행해지는지는 상당 부분 올림픽 종목 자격에 달려 있다. 올림픽 종목이 아니면 각국은 그 종목의 국가대표 자리를 만들지 않고, 훈련 자원을 투입하지 않으며, 젊은 선수들은 그 길을 택하지 않는다. 참가 수준이 올라가지 않으니, 계속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 문은 문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을 신청자에게 미리 갖추라고 요구한다.
누군가 일부러 설계한 덫은 아니다. 자기 규모를 조절하려는 기관이라면 무엇을 정식 종목으로 삼을 만한지 가리는 기준이 필요하다. 보급 정도는 가능한 모든 기준 가운데 가장 중립적이고 측정하기도 가장 쉽다. 문제는 기준의 의도에 있지 않다. 그 수학적 형식에 있다. 결과를 조건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런 형식은 다른 곳에서도 드물지 않다. 기술은 널리 보급돼야 가격이 내려가고, 가격이 내려가야 널리 보급된다. 언어는 쓰는 사람이 있어야 배울 만하고, 배우는 사람이 있어야 쓰는 사람이 생긴다. 차이가 있다면 그런 경우에는 대개 스위치를 쥔 기관이 없는데, 여기에는 있다는 것이다. 순환 안에 예외를 허용할지 결정할 수 있는 기관이 있으면, 그 순환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지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판단에서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누구의 악의를 지목하는 것은 아니다.
1984년 여자 장거리 선수 몇 명이 캘리포니아에서 소송을 냈다. 그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여자 5000미터와 1만 미터를 포함하도록 항소법원이 명령해 달라는 요구였다. 그들의 주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신규 종목 규정이 역사적으로 여성을 열등한 지위에 가두어 왔고, 여자 선수들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이어 간다는 것이었다.
제9연방항소법원은 예비적 금지명령을 발령하지 않은 결정을 유지했다. 다수의견은 규정이 문면상 남녀에게 똑같이 적용되므로, 자신들이 해석하는 법적 의미의 성별 분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여기서는 차별이라는 주장과 법원의 판단을 나누어 읽어야 한다.
판결문의 반대의견은 근대 올림픽 초기 역사가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로 얼룩진 것이 사실이라고 명시했다. 캘리포니아의 해당 차별금지법도 원고에게 더 유리하게 적용했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사건은 법원이 국제올림픽위원회는 한 번도 차별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사건이 아니다. 이 소송의 구체적 구조 안에서는 현행 규정만으로 법원이 즉시 종목 추가를 강제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다수의견이 판단한 사건이다. 두 문장은 전혀 다르다. 후대의 전언은 흔히 둘을 한 문장으로 합쳐 버린다.
다수의견의 추론 자체도 살펴볼 만하다. 이 시리즈 전체에서 거듭 만나게 될 형식이기 때문이다. 규정은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한다. 하지만 규정이 작용하는 현재의 상태는 모두를 똑같이 대하지 않았던 역사가 만들어 놓았다. 규정은 이미 만들어진 분포를 넘겨받아 중립적으로 다룬다. 여기서 중립은 위장이 아니다. 실제로 중립이다. 중요한 것은 비대칭적인 출발점에 중립을 지킨다고 결과가 대칭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다수의견에도 제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법원이 마주한 질문은 이 규정이 공정한가가 아니라, 한 소송 안에서 국제기구에 두 종목을 즉시 추가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가였다. 두 질문의 답은 다를 수 있다. 법원이 스스로를 뒤의 질문에 한정하는 것도 회피가 아니다. 반대의견은 역사를 말하고, 다수의견은 이번에 사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한다. 서로 같은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 둘이 함께 존재한다고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법적 의미의 차별에 해당하는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1984년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은 그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다.
8. 두 개의 방
오늘날, 1928년에 닫혔던 그 문은 열려 있다.
파리 올림픽은 참가 정원의 의미에서 성평등을 이루었다. 한편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직접 제시한 종목 수는 남자 157개, 여자 152개, 혼성 20개였다.
육상에 남은 비대칭은 이제 주로 여자에게 어떤 종목이 없다는 데 있지 않다. 같은 종목을 서로 다른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남자는 110미터 허들을, 여자는 100미터 허들을 달린다. 허들 사이의 간격도 높이도 다르다. 여러 종목을 합산하는 경기에서는 남자가 10종경기를, 여자가 7종경기를 치른다.
이 변화 자체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능력을 이유로 한 배제에서 규칙의 차이로 바뀌었다.
1928년의 이유는 여성이 그 거리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이유는 역사적 전통, 경기 성적의 비교 가능성, 규칙의 연속성이다. 첫 번째 이유는 증거로 뒤집을 수 있고, 이미 뒤집혔다.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뒤집을 수 없다. 몸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단언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말한다. 이 종목들은 줄곧 이러했으며, 바꾸면 바꾸기 전과 후의 성적을 비교할 수 없다고.
이 변화는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몸에 대한 잘못된 단언을 장부의 연속성에 대한 옳은 단언으로 바꾼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진보다. 앞선 수십 년의 증거가 밀어붙여 얻은 진보이기도 하다. 체계는 버틸 수 없는 이유를 버리고 버틸 수 있는 이유로 바꾸었다. 다만 분명히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문은 거의 제자리다. 달라진 것은 문에 적힌 글자다. 체계는 자신의 형태를 바꾸지 않으면서 근거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근거를 바꾸는 일 자체가 흔히 비판에 떠밀려 이루어진다.
그리고 성적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10종경기와 7종경기는 서로 다른 두 종목 묶음, 두 채점표, 두 기록 명단이다. 두 경기의 성적은 서로 환산할 수 없다. 언제까지나 그렇다. 실수가 아니라 설계다. 각 묶음 안의 성적을 시대를 건너 비교할 수 있게 하려면, 두 묶음 사이의 비교 불가능성은 영구히 유지해야 한다.
다섯 번째 글 이후에 거듭 보게 될 구조가 여기서 처음으로 이렇게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두 장부가 나란히 존재하는 것은 어느 쪽이 이겼기 때문도, 어느 한 장부가 무효가 됐기 때문도 아니다. 비교 가능성은 한 장부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 한 줄을 계속 이어 가려면 다른 줄과 합치기를 거부해야 한다. 각 장부의 온전함은 다른 장부와 하나의 척도로 견줄 수 없다는 대가를 치르고 얻는다.
이 지점에서 이 글은 첫 번째 글과 이어진다. 고대의 승자 명단은 이름만 만들어 냈지 비교 가능성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그래서 길이가 서로 다른 네 경주로는 누구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후 구축된 체계는 비교 가능성을 택했다. 일단 그것이 목적이 되면 끊임없이 경계를 그어야 한다. 어떤 성적끼리 나란히 놓을 수 있고, 어떤 성적은 그럴 수 없는가. 경계를 하나 그을 때마다 그 밖에 놓이는 것들이 한 무리씩 늘어난다. 80년 동안 경계의 근거는 몸에서 참가 수준으로, 다시 전통과 연속성으로 바뀌었다. 경계의 수는 줄지 않았다.
1928년 그날 오후로 돌아가 보자.
아홉 명이 아주 빠른 800미터 경기를 완주했다. 성적표에는 아홉 명의 이름과 여덟 개의 시간 기록이 적혔다. 9위 베버의 시간은 흔히 접하는 정리된 표에 남아 있지 않다. 영상은 남았다. 현장에서 진찰한 의사도 증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뒤에 일어난 일과 관계가 없었다.
실제로 효력을 발휘한 것은 몇 편의 기사였다. 그것을 쓴 사람들이 결승선 곁에 있었는지는 지금도 판단할 수 없다.
이 체계에는 자신의 측정이 있었다. 그 성적표를 만들어 내려고 장치 전체를 갖추었다. 계시원을 두고, 심판을 두고, 기록 절차를 마련했다. 그러고는 잔디 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번 쳐다본 뒤, 자신의 측정을 옆으로 밀어 두었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한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