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변수가 한자리에 모이다
비먼의 8.90미터는 선수에게도, 고도와 바람에도, 측정 장치에도 속한다. 기록은 숫자 하나를 요구하지만,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원인들을 하나씩 떼어 낼 수는 없다.
이 글의 목차
1. 잴 수 없었던 측정
1968년 10월 18일, 멕시코시티. 남자 멀리뛰기 결승.
비먼이 그 도약을 했을 때 풍속계는 정확히 초속 2미터를 가리켰다. 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한선이었다. 거리는 8미터 90.
그 도약은 당시 사용하던 측정 장치의 범위를 훌쩍 벗어났다. 광학 거리 측정 장치의 레일이 짧아서 착지 지점까지 닿지 않았다. 심판들은 결국 구식 강철 줄자를 꺼냈고, 약 20분이 지나서야 공식 거리를 확정했다.
이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이 글에서 하려는 말을 하나의 장면으로 먼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정확히 재려고 만든 장치가 너무 큰 일을 만나자 재지 못했다. 결국 줄자로 돌아가야 했다. 그 장치는 이렇게 구축된 체계가 1968년에 도달할 수 있었던 정밀도의 정점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제 몫을 하지 못했다.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그 도약이 설계 범위를 넘어섰을 뿐이다.
여기에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아이러니가 있다. 측정 장치가 어디까지 잴 수 있을지는 설계자가 과거의 성적 범위를 보고 정한다. 다시 말해 그 레일의 길이에는 지금껏 사람들이 뛴 가장 먼 거리와, 거기에 더한 합리적인 여유분이 새겨져 있었다. 비먼은 그 여유분 바깥으로 뛰었다. 과거의 역사 전체가 가능성에 그어 놓은 경계 바깥으로 뛴 셈이다. 장치가 재지 못한 것은 못 만들어서가 아니었다. 과거에 맞추어 만들었는데, 그 도약은 과거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자로는 8미터 90을 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도약을 둘러싸고 나중에 벌어진 일에도 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이번에 잴 수 없었던 것은 거리가 아니라 원인이었다.
그날 네 변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고도, 바람, 새로운 도움닫기 주로, 그리고 선수 자신의 상태. 넷은 동시에 그 자리에 있었고 함께 그 도약에 작용했다. 사후에 각자의 몫을 떼어 내는 방법은 없었다. 기록을 세세하게 남기지 않아서가 아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그것들은 물리적으로 처음부터 얽혀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멕시코시티가 비먼을 얼마나 도왔는지에 관한 글이 아니다. 그 질문에는 답이 없다. 이 글이 묻는 것은 왜 아직도 그 질문에 답이 없는가, 그리고 정확한 측정을 업으로 삼는 체계가 원인을 나누어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무엇을 하는가다.
먼저 그 네 변수를 보자.
2. 한쪽에서는 손실, 다른 쪽에서는 이득
멕시코시티 올림픽 육상 경기장은 해발 약 2,240미터에 있었다.
표준대기 관계식으로 환산하면 그곳의 공기 밀도는 세제곱미터당 약 0.98킬로그램이었다. 해수면 높이에서의 밀도의 약 80퍼센트다. 기압은 해수면 표준기압의 76퍼센트에 가까웠다.
이 두 숫자 안에 그 대회 전체를 가른 차이가 숨어 있다.
공기가 희박해지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나는데, 방향이 서로 반대다. 하나는 공기 저항이 줄어드는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에 가해지는 저항은 공기 밀도가 낮아지면 함께 줄어든다. 그래서 단거리 달리기와 도약 종목에서는 희박한 공기가 도움이 된다. 다른 하나는 산소가 줄어드는 것이다. 사람의 최대산소섭취량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떨어진다. 그래서 지구력 종목에서는 희박한 공기가 발목을 잡는다.
똑같은 일이 한 부류의 종목에는 이득이고, 다른 부류에는 손실이다.
눈여겨볼 것은 같은 공기 분자들이 빚어내는 두 결과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공기에 요구하는 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저항은 움직이는 물체가 공기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의 문제이고, 산소는 몸이 공기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얻느냐의 문제다. 희박한 공기는 앞의 것에는 길을 내주고, 뒤의 것에는 부족을 안긴다. 한 대회가 100미터를 뛰는 사람과 1만 미터를 뛰는 사람을 같은 하늘 아래 세웠다. 그런데 그 하늘이 두 사람에게 뜻하는 바는 전혀 달랐다. 하늘이 편을 든 것이 아니다. 두 종목이 하늘에 바라는 것이 달랐다.
이 차이는 경기 전에 이미 계산돼 있었다. 퓨가 1965년에 발표한 연구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최대산소섭취량이 떨어지므로 유산소 운동 능력이 낮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공기 밀도가 낮아지면 공기 저항도 줄어든다. 그러니까 개막하기도 전에 누군가는 결과가 종목군에 따라 갈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단거리와 도약은 빨라지고, 지구력 종목은 느려질 것이라고.
그 대회의 성적은 이 예측을 현실로 보여 주었다.
단거리 쪽을 보자. 스미스의 200미터, 19초 83. 세계기록이었다. 에번스의 400미터, 43초 86. 세계기록이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44초 벽을 깼다. 헤머리의 400미터 허들, 48초 12. 역시 세계기록이었다. 대회 전 세계기록은 48초 8이었다. 멀리뛰기에서는 비먼이 종전 기록을 한참 멀리 밀어냈다.
지구력 쪽을 보자. 케이노의 1,500미터는 3분 34초 91이었다. 올림픽 기록이지만, 대회 전 세계기록인 3분 33초 1보다 느렸다. 1만 미터 경기에 관한 공식 서술에는 5,000미터 통과 시간이 15분 00초 6이었다고 적혀 있다. 1924년 올림픽 결승의 페이스보다도 느렸다.
던지기는 그 중간에 있었다. 맷슨의 포환던지기는 20미터 54로, 대회 전 세계기록 21미터 78에 못 미쳤다. 루시스의 창던지기는 90미터 10, 올림픽 기록이었다. 대단히 멀리 던졌지만, 단거리와 도약에서처럼 폭발적으로 한계를 넘어선 성적은 아니었다.
대회 전체의 성적을 종목별로 펼쳐 놓으면 분명한 경계가 보인다. 희박한 공기가 모든 성적을 고르게 끌어올린 것은 아니다. 일부는 올리고, 일부는 내렸다. 그리고 그 경계는 퓨가 경기 전에 계산해 놓은 바로 그 자리에 놓였다.
이 체계로서는 난처한 일이다. 기록 제도 전체는 같은 종목의 성적이라면 장소를 가로질러 비교할 수 있다는 가정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멕시코시티가 보여 준 것은 고도가 바뀌면 종목에 따라 성적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 폭마저 제각각이라는 사실이었다. 경기장은 무시해도 되는 배경이 아니었다. 성적을 체계적으로 다시 쓰는 변수였으며, 다시 쓰는 방식은 종목마다 달랐다. 비교 가능성 위에 구축된 체계가 이 대회에서 비교 가능성의 물리적 한계를 만났다.
고도에 관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이득이 한 방향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날이 양쪽에 서 있다. 어느 쪽 날에 닿느냐는 그 종목에서 관건이 되는 것이 공기 저항을 뚫는 일인지, 산소를 소비하는 일인지에 달려 있다.
3. 논쟁은 개최지를 정한 날 시작됐다
이 물리적 관계를 1968년에야 떠올린 것은 아니다. 1963년 멕시코시티를 개최지로 선정한 날부터 논쟁이 일었다.
당시 보도를 보면 저지대 국가의 코치와 스포츠 의학 전문가들이 특히 지구력 종목과 고지 적응 문제를 걱정했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개최지를 바꾸지 않았다.
대회 전에 경기를 해수면 높이로 옮기자는 구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영향력이 상당했던 한 보도에 따르면 영국과 벨기에의 일부 체육계 인사들은 지구력 종목을 해수면 높이에서 치르자고 제안했다. 그들이 생각한 대체 장소의 예로 해안 도시 베라크루스를 명시하기도 했다. 경기 전에 장소 이전 논의가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다. 다만 그것이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정책이 된 적은 없다.
각국의 올림픽 관련 기관과 스포츠 의학 연구기관들도 실제로 움직였다.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던 자료에서 가장 분명한 예는 영국올림픽협회의 1965년 멕시코 고도 연구 사업이다. 올림픽 및 영국올림픽협회의 문서 목록에 남아 있다. 고도 문제가 당시 이미 제도 차원에서 다루어졌다는 강한 증거다. 신문에서만 오간 이야기가 아니었다.
여기서는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어야 한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영국올림픽협회의 연구 사업이 존재했다는 사실, 대회 전에 불안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 장소 이전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확인할 수 없는 것은 각국이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제출한 의학적 의견을 모두 모으면 어떤 완전한 문서군이 되는지, 장소 이전을 요구한 각각의 공식 제안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원자료의 흔적을 남겼는지다. 이런 우려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하지만 각국의 제출 내용을 빠짐없이 비교할 수 있는 장부는 이번 자료 조사에서 내놓을 수 없었다.
이 빈틈에는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대회 전 반대 목소리는 주로 저지대 국가에서 나왔다. 예정대로 열자는 쪽에는 고지대에 자리한 개최국이 있었다. 고지대에서 대회를 치를 것인지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자국의 고도와 관계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네 번째 글에서 종목 삭제 표결을 할 때, 그 종목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얻는 나라만 유일하게 반대했던 것과 닮았다. 입장이 손익을 따라 움직인다는 말은 여기에도 아마 들어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확정하려면 바로 그 빠진 전체 장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을 뿐, 단정할 수 없다.
대회 전에 과학이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얼마나 안심시켰는지를 두고는 연구자들의 해석이 갈린다. 한쪽에서는 생리학 연구가 축적되면서 적응과 계획으로 이 대회를 감당할 수 있다는 전망이 생겼다고 본다. 다른 쪽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과학적 지식을 정치적으로 흡수했을 뿐, 지구력 선수들의 공정성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한 적은 없다고 본다. 두 해석 모두 2차 문헌에 등장한다.
이 차이 앞에서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이 글 전체를 작게 압축해 놓은 대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과학이 한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학 자체가 체계 안에 흡수되었다. 고도가 지구력 종목에 불리하다는 것은 계산할 수 있는 물리적 사실이었다. 퓨가 이미 계산해 두었다. 그 사실은 반박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예정대로 열린 대회가 그 위를 덮었을 뿐이다. 구축된 체계는 자신에게 불편한 사실이 계산까지 끝난 상태로 눈앞에 놓였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논박할 필요는 없다. 사실은 그 자리에 두고, 평소대로 돌아가면 된다.
이 점은 글 후반부에 다시 나온다. 그때는 형태가 더 선명하다.
4. 네 변수 가운데 하나도 떼어 낼 수 없다
이제 그 네 변수를 비먼의 도약 위에 올려놓자.
첫 번째는 고도다. 고도는 공기 저항을 줄인다. 공기 저항은 도움닫기에서 속도를 높일 때도 작용하고, 발을 뗀 뒤 공중을 날아갈 때도 작용한다. 따라서 고도는 도움닫기와 공중 동작 두 구간에 함께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는 바람이다. 그날 규정에 맞는 뒷바람은 초속 2미터였다. 바람 역시 도움닫기에 작용하고 공중 동작에도 작용한다. 따라서 바람도 두 구간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고도와 바람 사이에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둘은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모두 공기 저항을 바꾸어 속도와 거리에 영향을 미친다. 데이터에서는 두 효과가 공선성을 띤다는 뜻이다. 초속 2미터의 뒷바람이 주는 이점과 고지대의 희박한 공기가 주는 이점은 물리적으로 같은 종류의 이점이다. 둘이 겹치고 나면 어느 부분이 바람의 몫이고 어느 부분이 고도의 몫인지 말할 수 없다. 한 연구는 해발 약 2,250미터에서 100미터 달리기가 얻는 고도의 이점이, 규정에 맞는 초속 2미터 뒷바람의 이점과 대략 맞먹는다고 추정했다. 비먼은 그날 크기가 거의 같고 성질도 같은 도움을 두 몫 동시에 받은 셈이다.
공선성은 이 일에서 원인의 몫을 나눌 수 없는 기술적 핵심이다. 한 겹 더 풀어 볼 필요가 있다. 두 변수가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면 원칙적으로는 분리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곳에 서로 다른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도와 바람은 같은 길을 간다. 데이터에 남기는 흔적도 같다. 두 흔적이 포개지고 나면 어느 부분이 어느 쪽에서 왔는지 알려 주는 표지가 없다. 측정 정밀도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정밀하게 재도 합쳐진 흔적만 잴 수 있을 뿐, 이미 합류한 두 근원을 따로 잴 수는 없다.
세 번째는 주로다. 예전의 석탄재 주로를 대신한 폴리우레탄 소재의 전천후 주로였다. 도움닫기와 발구름을 바꾸었지만, 공기역학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합성 소재 주로는 발이 땅을 더 안정적으로 딛게 하고, 지지 국면에서 잃는 속도를 줄였으며, 석탄재 주로에 따르던 여러 불확실성을 없앴다. 작용하는 방식이 앞의 둘과 다르다. 사람과 공기 사이가 아니라 사람과 지면 사이에 작용한다.
네 번째는 선수 자신의 상태다. 경기력 상태, 각성 수준, 당일 현장에서의 컨디션. 이런 것들은 모든 부분에 작용한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관측할 수 없다.
이 네 변수 가운데 어느 하나도 그 도약에서 따로 꺼내 저울에 올릴 수 없다.
기록을 세밀하게 남기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무리 세밀하게 기록했어도 꺼낼 수 없다. 구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고도와 바람은 한 메커니즘을 공유하므로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주로는 도움닫기에 작용하고, 도움닫기의 효과는 발구름을 거쳐 공중 동작에 전달되어 공기의 작용과 섞인다. 선수의 상태는 네 구간 전체에 작용한다. 정밀도의 문제가 아니라 식별 가능성의 문제다.
정밀도가 부족한 것과 식별 가능성이 부족한 것은 서로 다른 결핍이다. 이 구별은 글 전체에 중요하다. 정밀도가 부족하다는 것은 측정은 했지만 거칠게 했다는 뜻이다. 원칙적으로 더 좋은 기기로 바꾸면 나아질 수 있다. 식별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 양들을 구조상 따로 나누어 잴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떤 기기로 바꾸어도 소용없다. 문제는 기기에 있지 않고, 그 양들 사이의 관계에 있다. 멕시코시티의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후자다. 그러므로 더 좋은 데이터로 각 원인의 몫을 밝혀내리라는 기대는 방향부터 잘못되어 있다.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이미 단단히 얽힌 네 변수를 식별해 내지는 못한다.
여기서 한 가지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 글의 핵심이다.
모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곧 식별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모형을 만든다는 것은 몇 가지 가정을 주고 숫자 하나를 계산하는 일이다. 식별한다는 것은 그런 가정에 기대지 않고 관측 데이터에서 각 요인이 실제로 얼마나 기여했는지 따로 확정하는 일이다. 비먼의 도약은 모형으로 만들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가정으로 서로 다른 숫자를 계산해 왔다. 그러나 식별할 수는 없다. 가정을 미리 정해 놓지 않고 네 변수 각각의 기여를 떼어 낼 만큼 풍부한 관측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관측은 1968년에 남겨지지 않았다. 오늘날 비먼의 발구름 동작에 관한 완전한 운동학 데이터를 구할 수 없다. 그 도약 순간 도움닫기 주로 전체에 걸친 정확한 바람의 분포도, 신발과 지면의 상호작용 변수도, 발구름판과 모래 구덩이 위에 순간적으로 형성된 국지적 돌풍의 구조도 구할 수 없다. 현대의 인과 모형이 가장 원할 만한 자료가 바로 이것들이다. 이 자료들이 없다는 것은 네 변수의 분해가 아직도 풀리지 않는 핵심 이유다.
5. 얼마나 대단한 도약인지는 무엇을 묻느냐에 달려 있다
비먼의 도약을 분해해 보려는 시도들은 있었다. 그 결과 나온 것은 합의된 값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추정치들이었다.
자주 인용되는 워드스미스의 1986년 분석은 비먼의 도약을 대상으로 고도와 바람의 효과를 직접 모형화했다. 이후의 공기역학 연구들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규정에 맞는 뒷바람과 고도가 합쳐서 늘려 준 거리는 약 31센티미터로 추정되었다. 대중적인 글이나 어느 정도 기술적인 설명을 곁들인 글에서는 이른바 ‘해수면 무풍 조건의 환산 거리’를 더 넓은 범위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형이 내놓은 값이지 측정 결과가 아니다.
대중이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는 이 차이가 거의 늘 사라진다. 31센티미터처럼 구체적인 숫자는 측정의 결론처럼 읽힌다. 누군가 고도와 바람의 도움이 합쳐서 그만큼이라는 것을 실제로 잰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모형이 일련의 가정 아래 계산한 값이다. 가정을 바꾸면 숫자도 바뀐다. 모형의 출력을 측정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런 논쟁에서 가장 흔한 오해다. 그 결과 본질적으로 확정할 수 없는 것이 이미 확정된 것처럼 보인다. 숫자의 확실함이 가정의 불확실함을 가린다.
추정치들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값의 크기에 대한 이견만이 아니다. 더 깊은 차이는 무엇을 비교의 단위로 삼느냐에 있다.
한쪽은 이렇게 묻는다. 선수의 상태도 같고 도약도 같되, 해수면 높이에 바람이 없는 조건이었다면 얼마나 멀리 뛰었을까.
다른 쪽은 이렇게 묻는다. 멕시코시티는 선수가 그런 상태에 도달할 확률을 얼마나 높였을까.
둘은 다른 인과적 질문이다. 첫 번째부터 이미 상당한 가정을 짊어진다. 실제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해수면에서의 그 도약을 상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지금 남은 데이터로는 거의 답할 수 없다. 조건 전체가 한 사람이 그날 그런 상태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고 묻기 때문이다.
이 두 질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 주는 것이 있다. 성적의 원인을 깔끔하게 나누어 귀속시킬 수 없으면, 그 귀속을 어떻게 물을지부터 갈라진다. 분명한 질문 하나를 갖고 답만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 자체가 하나가 아니며, 묻는 방식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어느 방향이든 검증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잠깐 짚어야 할 것은, 이 모든 질문이 이미 공식적으로 인정된 성적을 두고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비먼의 도약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효했다. 그것은 언제나 진짜 성적이었다. 풍속은 규정에 맞았고, 규칙대로 측정되어 승인을 받았으며, 기록표에 들어갔다. 코치와 통계학자와 물리학자들이 그 가운데 얼마가 멕시코시티의 조건에서 왔느냐고 물었지만, 그 질문 때문에 장부 속 지위가 흔들린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
이것은 앞선 글들에서 거듭 보았던, 이 체계의 기본 특성이다. 장부가 적는 것은 숫자 하나이지 그 숫자의 원인이 아니다. 8미터 90이 기록표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풍속계의 수치, 거리 측정, 그리고 서명이었다. 그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원인은 장부 바깥의 일이다. 그 논쟁은 끝없이 이어져도 장부 안은 꿈쩍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이 체계의 결함이 아니라 체계가 계속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다. 성적을 인정하기 전에 원인을 하나하나 분해해야 한다면, 인정할 수 있는 성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성적 뒤에는 바람과 경기장과 그날의 상태를 비롯해 분해할 수 없는 것들이 수없이 있다. 장부는 원인을 적지 않고 결과만 적는다. 거칠어 보이는 이 방식이야말로 원인들이 영원히 얽혀 있는 세상에서 장부를 계속 쓸 수 있게 하는 이유다. 설명을 포기한 대가로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먼의 도약은 1991년까지 세계기록으로 남았다. 파월이 규정에 맞는 8미터 95를 뛰고서야 그 자리를 내주었다. 23년. 원인의 몫을 묻는 질문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 이어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도약은 기록표의 맨 위에 23년 동안 걸려 있었다. 그동안 누구도 얼마가 그 사람의 몫이고 얼마가 그날 멕시코시티의 몫인지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
6. 주관 기관은 다른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 대회를 치른 뒤 이 체계가 무엇을 했는지는, 이 글에서 가장 많은 것을 드러내는 대목 중 하나다.
고도 문제를 처리하지는 않았다.
세계육상연맹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정책은 고지대 성적도 기록 자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연맹의 공식 기록집에는 국제육상경기연맹이 고지대에서 나온 성적과 저지대 경기장에서 나온 성적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고도가 단거리와 도약 성적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통계학자들이 비공식 저지대 목록을 따로 관리해 왔는데도 그렇다.
여기에 장부가 두 권 나타난다. 하나는 고도를 구별하지 않는 공식 기록표다. 다른 하나는 고지대 성적을 제외하고 통계학자들이 따로 관리하는 저지대 목록이다. 두 장부가 함께 존재하지만, 공식 장부는 다른 장부를 공식적인 장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네 번째 글에서 나란히 놓인 장부를 보았는데, 여기도 또 하나의 사례다. 구축된 체계의 공식 장부 밖에서, 그 체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림자 장부로 빈 곳을 메운다. 그리고 그림자 장부가 적는 것은 바로 공식 장부가 적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림자 장부가 존재하는 방식은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하다. 통계학자들이 따로 관리하며 공식적인 지위는 조금도 없다. 그런데도 계속 관리된다는 것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공식 장부는 실제로 있는 사실 하나를 빠뜨렸다. 고도가 분명히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공식 장부의 빠진 부분을 옆에서 별도의 장부를 쓰는 사람들이 채워 주는 셈이다. 한 체계가 자기 장부의 순수함을 고집할수록 그 주위에는 이런 그림자 장부가 더 많이 자라난다. 체계가 인정하기를 거부한 현실의 일부를 맡아 두기 위해서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별도의 고지대 기록표를 정식으로 만드는 데 가까이 갔던 적이 있는지는, 후대의 여러 설명이 암시하는 것보다 불분명하다. 확실한 것은 비공식 저지대 기록 변천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공식 정책이 고지대 성적을 계속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던 원자료로 확증하기 어려운 것은, 연맹이 별도의 고지대 기록집을 정식 채택할 단계까지 갔다는 조목조목의 기록과, 그것을 부결시킨 논쟁의 정확한 경과다. 정책의 결과는 확실하다. 하지만 그 제안의 전체 역사는 여러 개요가 암시하는 것보다 공개 자료 속에서 훨씬 조각나 있다.
그리고 이 체계가 실제로 손을 댄 곳은 따로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이 되자 국제육상경기연맹은 다른 경계선을 골랐다. 별도의 고지대 기록표가 아니라 더 엄격한 계시 규칙이었다. 세계육상연맹의 주요 연혁에는 1976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이 단거리 세계기록에 자동 계시만 인정하기로 합의했다고 적혀 있다.
결정적인 문서상의 단서다.
그런 대회가 드러낸 여러 문제 가운데, 이 체계가 끝내 규칙을 만들어 처리한 것은 가장 통제하기 쉬운 것이었다. 고도는 규칙으로 바꿀 수 없다. 지리이기 때문이다. 바람에는 문턱 하나를 정할 수 있을 뿐이고, 정하고 나면 거기까지다. 합성 주로는 이미 표준이 되어 되돌릴 수도 없다. 철저히 규범화할 수 있는 것은 계시뿐이었다. 계시는 이 체계가 마련한 장치이며, 자기 장치에는 완전한 통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시를 규범화했다.
이 일의 생김새를 끝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체계는 다룰 수 없는 여러 문제를 만나면 그중 다룰 수 있는 하나로 방향을 돌리고 거기에 힘을 쏟는다. 계시가 가장 중요한 변수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비먼의 도약에서 계시는 아무 작용도 하지 않았다. 멀리뛰기였기 때문이다. 이 체계가 계시를 규범화한 이유는 계시가 가장 중요해서가 아니라 가장 잘 통제할 수 있어서였다.
여기에는 육상만의 일이 아닌 일반적인 행동 방식이 드러난다. 한 기관이 여러 문제를 마주했을 때, 다룰 수 없는 것들과 다룰 수 있는 것들이 섞여 있으면 거의 반드시 다룰 수 있는 쪽에 관심과 자원을 쏟는다. 그리고 그쪽을 점점 더 정교하게 다룬다. 시간이 흐르면 능력 자체가 한쪽으로 치우쳐 자란다.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는 대단히 발달하고, 통제할 수 없는 방향에는 거의 빈 곳만 남는다. 밖에서 보면 기관이 통제 가능한 쪽에 그렇게 힘을 쓰니 그쪽이 가장 중요한 줄 알기 쉽다. 사실은 가장 힘을 쓰기 쉬운 쪽일 뿐이다.
통제할 수 있다는 것과 중요하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체계가 처리할 문제를 고를 때 따라가는 것은 중요성이 아니라 통제 가능성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고도다. 성적을 실질적으로 바꾸면서도 그 몫을 따로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계시는 성적을 바꾸지 않는다. 그 성적을 얼마나 정밀하게 적어 놓는지만 바꾼다. 이 체계는 성적을 바꾸는 중요하지만 다룰 수 없는 문제를 놓아두고, 성적을 바꾸지 않는 덜 중요하지만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문제를 처리했다.
다음 글에서는 그렇게 계시를 처리한 방법과, 그 방법이 다시 무엇을 남겼는지를 다룬다.
7. 실제로 인정된 선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고지대 성적에도 기록 자격이 있다는 것은 종이에만 적힌 빈 규정이 아니다. 실제 선례가 있다.
공식 기록사나 널리 인정받는 남자 100미터 기록 변천사에는 하인스가 멕시코시티에서 세운 9초 95와, 이후 캘빈 스미스가 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 세운 9초 93이 들어 있다. 두 곳 모두 고지대 경기장이다. 통계학자들이 나중에 비공식 저지대 목록을 따로 관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인스의 9초 95에는 또 한 가지 뜻이 있다. 남자 100미터 역사에서 거듭 인용되는 이정표이며, 공식 조건에서 10초 벽을 깬 초창기의 돌파를 보여 주는 공인된 표지 중 하나다. 그런데 바로 그 기념비적인 성적이 희박한 공기 속에서 나왔다. 이 체계가 가장 아끼는 돌파의 순간들 가운데 일부는, 체계 자신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조건에서 일어났다. 체계는 그것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기 장부의 가장 빛나는 대목에 별표를 붙이지 않았다. 별표를 붙이면 그 빛이 더는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선례가 뜻하는 바는 고지대 성적이 마지못해 용인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여진 공식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하인스의 9초 95는 어엿한 세계기록이었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달렸는데도, 그 공기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는데도 그랬다.
다른 고지대 경기장들, 요하네스버그와 나이로비, 엘패소, 덴버의 경우에는 이번 조사에서 도시마다 똑같이 강한 승인 기록을 찾지는 못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원칙이다. 고지대 성적에는 기록 자격이 있고, 그 원칙은 실제로 적용되었다. 다만 이번에 모을 수 있었던 원자료만으로는 경기장별 선례를 담은 문서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여기서 앞선 글들과 이어지는 점 하나를 짚어 두자.
두 번째 글에서 본 1914년 최초의 기록표는, 20년에 걸쳐 서로 다른 장소와 조건에서 나온 옛 성적들을 소급 승인해 모은 것이었다. 태어난 날부터 안이 고르지 않았다. 하인스의 9초 95와 해수면 높이에서의 9초 95가 같은 100미터 기록 변천표에 나란히 놓인다. 모두가 둘이 같은 종류의 성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그 표는 구별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가는 표에서 서로 이웃한 어느 두 성적도 비교 가능하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네 번째 글 끝의 10종경기와 7종경기 사례와 정반대 방향이다. 거기서는 각 표 안의 비교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두 표를 합치지 않기로 했다. 하나의 척도로 견줄 수 없다는 대가로 각 표의 온전함을 얻었다. 여기서는 한 표의 온전함을 지키기 위해 표 안의 비교 가능성을 포기한다. 서로 비교할 수 없다는 대가로 갈라지지 않는 하나의 명단을 얻는다.
두 방식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체계가 다른 상황에서 한 서로 다른 선택이다. 비교 가능성과 온전함을 동시에 최대화할 수는 없다. 종목을 나눌 때는 비교 가능성을 골랐고, 고지대 성적에서는 온전함을 골랐다. 무엇을 고르느냐는 나누는 대가와 합치는 대가 중 어느 쪽이 더 큰지에 달려 있다. 고지대에서 구별하려면 세계의 모든 해발고도마다 환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구별하지 않기를 택했다.
8. 모두 작용했으나 나눌 수 없다
이제 이야기를 한데 모아 보자.
비먼의 도약에 관해서는 널리 퍼진 설명이 두 가지 있다. 증거는 어느 쪽도 뒷받침하지 않는다.
하나는 멕시코시티가 그 도약을 만들어 냈다는 말이다. 너무 강한 주장이다. 같은 결승에서 베어는 8미터 19로 은메달을, 보스턴은 8미터 16으로 동메달을 땄다. 같은 주로, 같은 고도였고 바람도 모두 규정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런데 8미터 90에 가까운 거리를 뛴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멕시코시티가 그 도약을 만들어 냈다면, 왜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조건은 모두에게 있었지만, 그 도약은 하나뿐이었다.
이 반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조건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 조건들이 없었다면 그 도약은 아마 그렇게 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건들이 있어도 그 도약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조건에서 나머지 두 사람이 그렇게 뛰지 못한 것이 증거다.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조건과 그 사람 가운데 어느 하나도 빠질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하나도 빠질 수 없다는 말은 몫을 나눌 수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 도약에서 얼마가 조건의 몫이고 얼마가 사람의 몫인지 말할 수 없다. 둘 다 그 일이 일어나기 위한 전제이며, 전제 사이에는 백분율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모두 같은 주로와 같은 고도를 썼으니 조건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것도 너무 강하다. 앞에서 줄곧 살펴보았듯 데이터상 고도의 효과는 초속 2미터 뒷바람에 맞먹는다. 비먼은 그날 고도에 더해 실제로 초속 2미터인 뒷바람까지 얻었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물리를 외면하는 일이다.
오래 견딜 역사적 진실은 이런 두 가지 단순화보다 범위가 좁고, 또한 더 단단하다. 네 변수는 모두 작용했다. 그러나 데이터는 그 몫들을 깔끔하게 떼어 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이 말은 미완의 결론처럼 읽힌다. 기록이 부족해 답을 미뤄 둔 문제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이것은 그 일 자체의 생김새다.
앞선 글들에서 잔여항은 흔히 이 체계가 바깥에 흘려놓은 것들이었다. 명단에 들어가지 못한 이름, 버려진 계시 수치, 소급 승인을 받지 못한 성적. 그것들은 장부 밖에 있었지만 각각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이름은 이름이고, 수치는 수치였다.
비먼의 도약에 있는 잔여항은 다르다. 장부 밖에 있지 않다. 그 도약은 당당히 기록표 맨 위에 자리했다. 여기서 잔여항은 그 숫자가 나온 원인인데, 그 원인을 나눌 수가 없다. 고도의 몫, 바람의 몫, 주로의 몫, 그 사람 자신의 몫. 그것들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네 몫으로 나뉘어 존재한 적이 없다. 그 도약 안에서 하나의 8미터 90으로 합쳐졌고, 합쳐진 뒤에는 되돌려 분해할 수 없다.
이 잔여항을 앞선 글들의 잔여항과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특별한지 보인다. 이전의 잔여항은 체계와 체계가 놓친 것들 사이의 관계였다. 놓친 것들은 체계 바깥에 있었고 경계도 분명했다. 여기서 잔여항은 체계 안에 있다. 그것도 체계가 가장 자랑하는 항목 안에 있다. 배제된 타자가 아니라, 소중히 간직한 성적 자체에서 설명해 낼 수 없는 부분이다. 체계는 무언가를 장부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장부에 적은 성적 안에서 얽힌 원인들을 말끔히 정리할 수는 없다. 더 엄숙하게 기록할수록, 그 덩어리를 더 단단히 끌어안게 된다.
새로운 형태의 잔여항이다. 앞에서는 체계가 받아내지 못한 것들이 바깥에서 기다렸다. 여기서는 체계가 받아내고, 적고, 승인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적은 숫자 안에 다시는 떼어 낼 수 없는 네 가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체계는 그 성적을 가질 수 있다. 그 성적의 설명까지 가질 수는 없다.
착지 지점에 닿지 못했던 측정 장치로 돌아가 보자.
그 장치는 1968년에 이 체계가 이룬 정밀도의 정점이었다. 그런데 그 도약 앞에서는 줄자로 돌아갔다. 줄자는 8미터 90을 재어 냈다. 그 숫자는 정확하다. 하지만 줄자도, 제 몫을 못 한 광학 장치도, 그 뒤 이 체계가 큰 힘을 들여 정교하게 만든 모든 계시 장치와 거리 측정 기기도 잴 수 있는 것은 결과뿐이다. 얼마나 멀리 뛰었는지는 잴 수 있다. 왜 그만큼 멀리 뛰었는지는 어떤 기기도 잴 수 없다. 재려는 네 가지가 이미 공기 속에서 하나로 합쳐졌기 때문이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한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