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독립 한국어판이다. 원문 페이지에서는 중국어 간체와 번체를 전환해 읽을 수 있다.
코나츠는 라쿠고를 사랑한다.
이 한 문장이 이 글의 전부다.
그녀는 스케로쿠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라쿠고를 들으며 자랐다. 뼛속까지 배도록 들었다. 그래서 안다. 밖에서 좋아하기만 하는 애호가가 아니다. 잘하고 못하는 것을 가려듣고, 어느 대목을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알고, 오늘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도 들어서 안다.
야쿠모의 집에서 자랐다는 것은 이 예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자랐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녀는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없었다.
여자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 사정을 분명히 밝힌다. 그녀가 사는 시대와 문파의 구조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기존의 사제 계보를 따라 라쿠고 예인이 되는 길이 없다.
어디엔가 적혀 있는 금지 조항은 아니다. 여자는 라쿠고 무대에 올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문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시 이 업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그렇다. 누구의 문하에서 배우는지, 견습 예인인 젠자의 순번을 어떻게 정하는지, 라쿠고 공연장인 요세에서 누구에게 공연을 맡기는지, 업계가 누구를 어떻게 보는지. 이 모든 방식 안에 그녀 같은 여성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런 자리가 없게 만들려고 누군가 어느 날 결정을 내릴 필요도 없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다.
이 문은 야쿠모가 닫은 것이 아니다.
이 글에서 분명히 해 두려는 것은 이 한 문장이다.
두 개의 문
작품 속 두 개의 문을 나란히 놓아 보자.
첫 번째 문. 야쿠모는 하나의 예술을 손에 쥐고 있으며, 다음 사람에게 전하지 않기로 한다. 이 문은 열려 있었다. 그가 닫으려 한다. 그의 결정이고, 그럴 권리가 있다. 작품은 두 시즌에 걸쳐 그 결정을 묻는다.
두 번째 문은 코나츠 앞에 있다. 그녀는 들어가고 싶다. 자격도 있고 능력도 있고 사랑도 있다. 그런데 그 문은 그녀를 향해 열린 적이 없다.
누군가 한 사람이 닫은 문이 아니다. 야쿠모가 닫은 것도, 그녀의 아버지가 닫은 것도 아니다. 업계의 다른 사람 중 누구도 어느 날 그런 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
그냥 그렇게 닫혀 있다.
이렇게 닫힌 문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닫힌 채로 두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지킬 사람도 필요 없다. 문에 몸을 부딪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는 어느 나이가 되면 그 길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된다. 누구에게 들어서가 아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놓인 방식을 보며 읽어 낸다.
누군가 닫은 문에는 적어도 찾아가 물을 상대가 있다.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문에는 물어볼 사람조차 없다.
그래도 그녀는 연습한다
그녀는 연습한다.
숨어서 한다. 여러 해 동안,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해 연습한다.
작품에 이런 장면이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 여자가 혼자 아버지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준다.
관객도 없다. 평가도 없다. 이 솜씨를 내놓고 무언가를 얻을 곳도 없다. 연습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음 날에도 그녀는 무대에 설 수 없다.
그녀가 하는 일은 이 업계에 아무 쓸모가 없다.
그것으로 돈을 벌 수도, 문하에 들 수도, 어떤 자리를 얻을 수도 없다. 업계의 수많은 칸 어디에도 그녀의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연습한다.
이야기 하나를 익히려면 수도 없이 되풀이해야 한다. 숨을 넣을 자리, 멈출 자리, 혼자 여러 인물을 연기할 때의 전환을 연습해야 한다. 연습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것들이다. 한 번 연습했다고 저절로 몸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다. 계속해야 한다.
그녀가 하는 것은 그런 일이다.
이 글은 여기에 평가를 붙이려 하지 않는다. 귀하다고도, 안타깝다고도, 무엇을 증명한다고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여러 해 동안 해 온 일이다.
그녀의 미움과 사랑
그런데 여기에는 견디기 괴로운 결이 하나 더 있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의 라쿠고다. 당시의 생활에서 그 기예에 가까이 가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기억과 살아서 가르쳐 줄 수 있는 야쿠모에게 기대야 했다. 나중에 옛 영상이 발견된다고 해서 그때의 의존 관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라고 믿는 사람의 손에 있다.
두 가지 일이 한 지붕 아래서 수십 년을 이어진다.
그녀는 그를 미워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도 한다. 말로 찌르다가도 그가 쓰러지면 돌본다. 이 예술을 망가뜨리겠다고 한 적도 있고,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 가게 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작품은 어느 한 화에서 그녀가 모든 것을 납득하게 만들지 않는다.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지도, 용서한다는 말을 시키지도 않는다.
어느 한 화에서 야쿠모에게 사과를 시키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그대로 수십 년을 산다. 한 사람은 노인이 되고, 한 사람은 중년이 된다. 그러다 한 사람이 죽는다.
작품은 마지막까지 그녀 안에 두 가지가 함께 있게 둔다.
신노스케
코나츠는 나중에 아들을 낳는다. 이름은 신노스케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확정되지 않는다.
요타로는 여러 사람을 의심한다. 한 번은 야쿠자 두목에게 찾아가 물었다가 다다미방에서 연못으로 내던져진다.
작품은 이 문제를 미결인 채로 둔다. 풀기를 기다리는 수수께끼라서가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다룬다.
코나츠에게 이 아이는 자기 아이다. 요타로는 코나츠와 결혼했다. 아이는 그의 성을 따르고, 그가 돌본다.
이 작품에서는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와 누구에게 속하는지가 서로 다른 문제로 놓인다.
이후 코나츠와 요타로 사이에서 딸이 태어난다. 마지막 화에서 작품은 신노스케가 그 딸과 아버지가 다른 오빠임을 밝힌다.
그러니까 그 질문에는 끝까지 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모두 하던 대로 살아간다.
그녀의 소망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코나츠는 라쿠고 예인이 되고 싶었다. 그 소망은 오랜 세월 가로막혀 있었다.
이야기 후반에 이르러 그 문에도 마침내 변화가 생긴다.
유치원에서 한 공연은 정식으로 직업의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그 뒤 그녀는 야쿠모에게 제자로 받아 달라고 청하고, 야쿠모는 받아들인다. 결말에서는 그녀도 이 업계에 들어선다.
그 문이 마침내 그녀에게도 열렸다. 그러나 뒤늦게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이미 지나간 세월을 돌려받을 수는 없다.
아들과 딸은 별개의 일이다. 딸은 마지막 화에 모습을 드러낸다. 할아버지 세대의 라쿠고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좋아하는 것은 아버지의 라쿠고다. 자신이 라쿠고 예인이 될 생각도 없다. 그냥 듣는 것이 좋다.
뼛속까지 사랑하면서도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이, 들어갈 수 있으면서도 들어가고 싶지 않은 아이를 낳았다.
작품은 두 일을 같은 이야기 안에 놓는다. 하나로 다른 하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코나츠는 나중에 들어설 기회를 얻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녀가 받은 보상이 아니다. 뒤에 태어난 누군가가 라쿠고에 가까이 갈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해서, 예전에 그녀를 밀어낸 데 아무 손실이 없었다고 거꾸로 증명할 수는 없다.
정작 스케로쿠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은 출소하자마자 제자가 되겠다며 찾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10년을 들여 빈자리로 들어갔다. 그와 함께 야쿠모가 문을 닫겠다는 생각도, 처음으로 야쿠모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