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문의 논지와 세부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글이다. 작품 전체의 결말을 다룬다.
공원 안의 광장.
기생 생물을 소탕하러 온 경찰 정예 부대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한가운데 여자가 서 있다. 품에는 아기가 있다.
그녀의 전투력이라면 포위를 뚫기는 어렵지 않다. 부대를 전멸시키는 일도 어렵지 않다. 작품에는 명확한 평가가 나온다. 오른쪽이는 정면으로 붙으면 거의 승산이 없다고 했고, 고토는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싸워 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한 번도 반격하지 않는다.
아이를 안은 채 쏟아지는 총탄을 고스란히 받아 낸다.
이름은 타무라 레이코. 기생 생물이다.
그녀가 줄곧 묻던 질문
시간을 되돌려 보자.
처음 사용한 신분은 타미야 료코다. 신이치의 학교에서 일하는 여교사였다. 그 사람의 뇌를 빼앗고 신분을 차지한 뒤, 계속 수업하고 회의에 나가고 동료들과 어울렸다.
역할을 아주 잘 해냈다. 날마다 수백 명이 오가는 곳에서 오랫동안 별일 없이 지낼 만큼.
하지만 꿰뚫어 본 사람이 하나 있었다. 원래 타미야 료코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앞에 선 존재가 자기 딸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그 어머니를 죽였다.
그 일은 그녀에게 새로운 질문을 남겼다. 모든 세부가 맞아떨어지는데, 무엇을 근거로 한눈에 자기 딸이 아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이후 그녀는 그 질문을 놓지 않았다.
모든 기생 생물 가운데 지능이 가장 높다. 그녀는 그 지능을 동족들이 전혀 하지 않는 일에 쓴다.
자신이 무엇인지, 왜 태어났는지 알고 싶어 한다.
직접 한 말도 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는지 계속 생각한다는 뜻의 말이다. 의문 하나를 풀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고.
동족들이 사람을 먹는 동안 그녀는 연구한다.
그 명령
연구의 첫 번째 발견은 이 시리즈의 첫 글에서 언급했던 일이다.
인간의 뇌를 빼앗는 순간 명령이 내려왔다.
이 종을 모조리 먹어 치워라.
그 일을 신이치에게 말한 뒤 묻는다. 인간에게는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느냐고.
그녀는 이미 쓰인 명령 하나를 품고 태어나, 작품 내내 그 명령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다.
동족 가운데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녀뿐이다. 다른 기생 생물들은 명령을 받으면 실행한다. 명령의 출처는 묻지 않는다. ‘명령이 어디서 왔는지 묻기’라는 행동 자체가 명령에 들어 있지 않으니까.
자신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
그녀는 몇 가지 일을 한다. 하나하나가 실험이고, 하나같이 자신이 실험 대상이다.
첫째는 먹는 방식을 살피는 일이다. 사람을 먹는 양을 줄이고 인간의 평범한 음식으로 식사를 보충한다.
이것만으로 사람을 전혀 먹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일부러 굶어 죽을 위험을 감수한 실험으로 그리는 것도 지나치다.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그녀는 자기 안에 쓰인 명령을 아무 질문 없이 실행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다. 충동과 실행 사이에 어떤 여지가 있는지 자기 생활로 확인하려 한다.
둘째, 자신이 죽인 사람의 수를 기억한다.
작품은 가볍게 지나가지만, 무게는 가볍지 않다. 사람을 먹이로만 여기는 존재라면 수를 세지 않는다. 세었고 기억했다는 것은, 그녀에게 그들이 온전히 먹이인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셋째, 가장 큰 실험이다. 임신을 하고 인간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는 연구 대상이었다
정확히 말해야 한다. 미리부터 그녀에게 후한 점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낳은 목적은 연구라고 분명히 밝힌다.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하나를 만들어 처음부터 관찰하는 것이다.
출산과 양육의 전 과정에서 쓰는 것은 연구자의 언어다. 기록하고, 비교하고, 판단한다. 아이 앞에서도 관찰 대상을 서술하듯 말한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처음부터 계획해 마련한 실험 재료였다.
그런데 그 뒤 다른 일이 일어난다. 다른 기생 생물들이 아이를 노린다. 그녀는 아이를 지키려고 연구와 전혀 관계없는 조치들을 취한다.
이 대목에서 작품은 그녀에게 자기 행동을 설명하게 하지 않는다. 그냥 한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이런 형상을 보았다. 어떤 목적에 맞춰 만들어지고, 정해진 결과를 내는 데 쓰이는 존재.
그런데 이번에 그런 존재를 만들어 낸 쪽도, 명령 하나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다.
그녀가 얻은 답
작품은 그녀가 마지막에 내놓는 답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네 문장이다.
기생 생물과 인간은 한 가족이다.
우리는 인간의 자식이다.
우리는 약하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포 덩어리일 뿐이다.
넷을 함께 놓으면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가 된다. 오랜 연구 끝에 그녀는 자기 종이 인간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자라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숙주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네 문장 중 어느 것도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는 점을 보자. 사람을 먹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지 않는다. 인간이 선하다고도, 동족들이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전부 구조에 관한 말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 얼마나 강한가.
그날 광장에서 일어난 일
첫 장면으로 돌아가자.
사정은 이렇다. 그녀는 인간 탐정에게 조사를 맡긴 적이 있다. 그 일로 탐정이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린다. 동족들이 죽이러 찾아갔지만 그는 집에 없고, 아내가 살해된다.
복수하려는 탐정은 경찰과 협력한다. 그녀의 아이를 납치한 뒤, 시간을 정해 공원으로 나오라고 한다.
공원에 가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그녀는 신이치의 집으로 간다. 아무도 없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공원으로 간다.
싸워서 벗어날 힘은 충분하다. 그녀는 한 번도 반격하지 않는다.
아이를 품고 자기 몸으로 감싼다. 총탄은 자신이 받아 낸다.
총에 맞은 뒤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아이를 넘겨주는 것이다. 곁에 서 있던 신이치에게.
그전까지 그녀와 신이치의 관계는 전부 연구였다. 관찰했고, 사람을 시켜 뒤를 밟게 했고, 몇 번이나 그를 죽일 뻔했다.
그런 그녀가 죽는 순간 아이를 그의 손에 맡긴다.
오른쪽이가 읽지 못한 신호
이 글이 닿으려는 곳은 여기다.
오른쪽이는 기생 생물의 뇌파를 읽는다. 기본 능력 중 하나다. 동족을 감지하고, 거리를 가늠하고, 상대의 상태를 구별한다. 작품 내내 이 능력으로 여러 번 목숨을 구한다.
그런데 타무라 레이코가 마지막에 내보내는 뇌파는 판별하지 못한다.
무엇인지 모른다.
그 신호를 재는 기계가 정작 그 신호를 읽지 못한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다. 그러니 분명히 짚고 가자.
오른쪽이는 동족이다. 그녀와 같은 종이고,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녀를 읽을 수 있어야 하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오른쪽이 자신이다.
그런데 읽지 못한다.
그녀 안에 종의 규격에 없는 것이 생겨났다는 뜻이다. 명령에도, 구조에도, 다른 어느 동족을 대조해 보아도 찾아낼 수 없는 것이.
더 강한 신호도, 더 복잡한 신호도 아니다. 애초에 목록에 없는 신호다.
그녀 자신도 설명하지 않았다
끝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 본인도 이 일에 설명을 남기지 않았다.
그토록 오래 연구해서 네 문장의 답을 얻었다. 하지만 그 답들은 그날 왜 반격하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자기 결론대로라면 그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살아남는 것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포 덩어리이고, 아직 풀지 못한 문제가 많다. 죽고 나면 그 문제를 물을 사람도 사라진다.
그녀는 ‘이제 모성애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식의 말을 남기지 않는다.
그 일을 하고, 죽는다.
그 일을 가장 온전하게 기록하는 것은 곁에 선 동족이다. 그녀가 무엇을 내보내고 있는지 읽지 못하는 동족.
작품의 마지막에 신이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또 하나의 답이다.
그 답은 신이치와 오른쪽이의 관계와 정확히 반대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