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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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탈 다른 사람이 없었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이 판본에 관하여

이 판본에 대하여: 중국어 원작의 논의를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독립 한국어판이다. 원문은 같은 웹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로 바꾸어 읽을 수 있다.

사이드 7의 한 콜로니.

열다섯 살 소년이 이곳에 산다. 기계 만지기를 좋아하고, 성격은 까다로우며, 아버지와도 썩 가깝지 않다. 지구연방군의 기술자인 아버지는 여기서 어떤 개발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

어느 날 지온의 모빌슈트가 쳐들어온다.

주위 어른들은 죽거나 달아났다. 소년은 혼란 속에서 조작 설명서 한 권을 주워 들고, 아직 인도되지도 않은 기계에 올라탄다.

그리고 기계를 움직인다.

그의 이름은 아무로 레이다.

왜 올라탔는가

이유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이번 세 번째 글 전체가 이 이유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애국심 때문에 올라탄 것이 아니다. 그는 연방에 별다른 애정이 없다.

증오 때문도 아니다. 그때까지 아직 자기 주변의 누군가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책임감 때문도 아니다. 누구도 그 책임을 맡기지 않았고, 그는 어떤 부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용기가 넘쳐서도 아니다. 작품은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이후에도 거듭 보여 준다. 그는 도망갔고, 울었고, 숨었다.

그가 올라탄 것은 주변에 올라탈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계는 그 자리에 있다.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죽었거나 자리에 없다. 바깥에는 적이 있고, 마침 그는 그 설명서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전부다.

그 배에 탄 사람들

같은 일이 그 한 사람에게만 일어난 것도 아니다.

화이트 베이스는 군함이다. 그 습격으로 정규 장교들이 거의 모두 죽었다.

남은 사람들은 사이드 7의 민간인 피란민들이다. 콜로니에서 겨우 빠져나온,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배를 지휘하는 브라이트 노아는 열아홉 살 소위다. 원래는 견습이었다. 윗사람들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함장 자리에 떠밀려 앉았다.

항해를 맡는 사람도, 사격 통제 장치를 조작하는 사람도, 통신을 담당하고 모빌슈트를 조종하는 사람도 모두 이들이다.

아이들도 있다. 열 살 안팎의 아이 몇 명이 군함 안을 뛰어다닌다. 어른들이 쫓아내면 다시 달려온다.

작품은 이 아이들에게 적지 않은 시간을 쓴다. 배에서 밥을 먹고, 다투고, 놀고, 겁을 낸다. 그리고 그 배는 몇 회 걸러 한 번씩 전투를 치른다.

계속 보고 있으면 깨닫게 된다. 배 안에서 이어지는 일상과 그 배가 만들어진 용도는 전혀 별개의 일이다. 그런데 그 둘이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다.

이것은 군대가 아니다. 군함 한 척 안에 밀어 넣어진 민간인 무리다.

그 배는 미끼가 된다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전쟁 내내 화이트 베이스가 놓인 처지는 ‘용맹한 전함’이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연방군은 이 배를 몇 번이고 미끼로 쓴다.

위험한 곳으로 보내고, 감당할 능력을 넘어서는 임무를 맡긴다. 다른 부대가 시간을 벌도록 적의 시선을 끌라고 한다. 보급은 자주 늦고, 요청에는 좀처럼 답이 없으며, 사상자가 나도 데려갈 사람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잦다.

연방 수뇌부는 이런 지시를 내릴 때 그 배에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는지 알고 있다.

작품에는 수뇌부의 회의가 여러 차례 나온다. 그 자리에서 화이트 베이스는 기호이고 위치이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다. 한 번도 ‘민간인으로 가득한 배’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 장교들이 특별히 냉혹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휘 체계는 그 규모에서 그렇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다루는 단위는 함선, 부대, 진격 방향이지 사람이 아니다.

전쟁을 치르는 한 진영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작전을 성립시키는 조건으로 쓰인다.

이 글에서 그 사람들은 화이트 베이스의 민간인들이다. 더 위를 올려다보면 연방이 이 전쟁을 이기는 데 쓰는 것들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공처럼 생긴 기계들

연방이 결국 전쟁에서 이긴 것은 양산 덕분이다.

국력과 공업 생산력은 애초부터 지온보다 높았다. 전쟁 후반, 연방은 모빌슈트를 대량생산해 수로 밀어붙였다.

그중 따로 볼 만한 것이 있다. 원래 우주에서 일할 때 쓰던, 공처럼 둥근 작업용 기계다. 거기에 포 하나를 달고 사람을 태워 전장으로 밀어 넣는다. 이른바 ‘볼’이다.

장갑은 거의 없고, 기동성과 방호력도 제대로 된 모빌슈트에 크게 못 미친다. 화면에서는 떼 지어 격파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연방은 그것을 많이 만들었고, 그 안에 많은 사람을 태웠다.

작업용 기계에 포를 달고 사람을 태운다. 생산 계획서에 들어갈 수 있는 문장이다.

그 문장의 이면에서, 안에 앉은 사람들은 수량으로 계산된다.

작품은 볼이 전장에서 무더기로 파괴되는 광경을 보여 준다. 어느 하나에도 클로즈업을 주지 않고, 그 안에 탄 누구에게도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화면이 그들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바로 그 일의 모양이다.

그 뒤의 아무로

아무로에게 돌아가 보자.

그 몇 달 동안 그는 달라졌다.

그는 대단히 잘 싸우게 됐다. 반응 속도와 판단력, 기체를 다루는 솜씨가 갈수록 좋아졌다. 전쟁 후반에는 가장 뛰어난 조종사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작품은 이 변화를 조금도 성장담처럼 다루지 않는다.

한번은 더 버틸 수 없어 기체를 몰고 부대를 이탈했다가 돌아온다. 그보다 앞서 브라이트는 출격을 강요하다가 그를 때린 적도 있다. 군기의 압박과 갈등은 계속 쌓이지만, 이것이 ‘맞고 나서 성장했다’는 반듯한 한 차례의 교훈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배 안의 사람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카이와 다투고, 브라이트와 다투고, 모두와 다툰다.

많은 사람을 죽인다. 작품은 그 자신도 그 사실을 알게 한다.

작품은 단 한 번의 맹세로 그의 전투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말 속에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후회 때문에 더는 싸울 수 없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싸우게 한다. 갈수록 잘 싸우고, 그러는 사이 처음 배에 올랐을 때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진다.

미하루

등장하는 회차는 많지 않지만, 이 글이 마지막에 닿으려는 인물이 있다.

미하루 라토키다.

부모를 잃고 어린 남동생과 여동생을 돌보는 소녀다. 돈도, 일자리도, 기댈 곳도 없다.

그녀는 지온에 정보를 넘겨 돈을 받고, 그 돈으로 동생들을 먹여 살린다.

그러다 한 전투에서 죽는다.

벌어진 일을 그대로 놓으면 이렇다. 십 대 소녀 하나가 두 아이에게 밥을 먹이려고 두 나라의 전쟁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일을 맡았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 내세우는 입장도 없다. 그녀가 한 일은 이 전쟁의 어느 목표와도 관계가 없다.

이 전쟁에서 죽은 수십억 명 가운데 대부분은 어느 진영의 거대한 명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작품은 43화에 걸친 이야기 속에서 그 수십억 분의 1을 화면에 담았다. 이름을 주고 몇 장면을 주었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살아갈 두 동생을 주었다.

그녀의 죽음은 카이를 바꾼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느 나라의 정책을 바꾸거나, 그녀의 죽음을 이 전쟁이 정당했다는 증거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저 그 일이 한 번은 보이게 했다.

미하루는 전쟁의 방향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죽음 때문에 어느 나라가 노선을 바꾸지도 않는다. 다만 몇몇 사람이 한 사람을 잃는다. 작품이 그녀에게 이름과 가족을 준 것은, ‘수십억’이라는 말이 마지막 묘사가 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다.

전쟁이 끝나 갈 무렵, 마침내 구체적인 인물들이 떠맡는 강화 협상의 기회가 양측 사이에 생긴다. 뒤이어 발사되는 한 발은 막대한 군사적 성과를 거두는 동시에, 그 출구를 열려던 사람들과 함께 출구 자체를 지워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