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 미학의 갈래 · 09 / 13 · 인지의 아름다움
그 음은 아직 울리지 않았는데, 이미 기다린다
옆집의 틀린 음과 모퉁이의 약국. 기억은 뒤만 보지 않고 아직 내딛지 않은 반 걸음에도 있다.
옆집에서 누군가 피아노를 연습하고 당신은 탁자에서 물건을 정리한다.
처음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익숙한 곡이다. 어릴 때 자주 누가 쳤지만 그 뒤로 여러 해 떠올리지 않았다. 벽 너머로 한 구절씩 들어오는 소리가 손의 일을 방해하지 않았다.
문득 손이 멈췄다.
거기는 이 음이 아니어야 했다.
흥미롭게도 기다리던 음은 울리지 않았다. 방 안에서는 다른 음이 울린다. 연주되지 않은 무언가가 이미 울린 것을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할 만큼 또렷했다.
옆집이 잠깐 멈추고 앞 구절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는 기억하던 곳을 짚는다. 손에 든 종이도 다시 정리한다.
작은 일이다. 하지만 그 멈춤 속에서 오래전과 아직 오지 않은 다음 순간이 만났다.
벽에 걸어 둔 옛 사진은 아니다
그 곡을 휴대폰에 저장하면 파일은 거기에 있다. 재생하지 않아도 혼자 다음 음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녹음은 한 번의 연주를 보존하지만 틀린 음이 들린다고 돌아보며 놀라지는 않는다.
당신에게 생긴 일은 다르다. 예전에 들은 것이 오늘도 작용하고 있다.
그 남아 있음도 옛 녹음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머릿속에 보관한 것과 다르다. 지금 바로 전곡을 흥얼거리라고 하면 잊은 곳이 있고 예전과 빠르기가 다른 구절도 있을 수 있다. 가장 확신하는 음조차 악보를 찾아보면 다른 판본을 기억한 것일 수 있다.
기억한다고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러면 아까 멈춘 것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들은 모습을 오늘 이 순간에 가져온 것은 진짜다. 떠올림은 변한 적 없는 물건을 창고에서 꺼내 주는 일이 아니다. 새로 집어 들고 알아보고 기다리는 데 쓰며, 필요하면 다시 자리를 정하는 일이다.
반대 극단으로 가서 기억은 달라지니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고 할 필요도 없다. 곡에는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익숙한 선율은 정말 이어 부를 수 있다. 원래 그대로가 아닌 것과 근거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모퉁이를 돌기 전에, 걸음이 느려진다
장소를 옮겨 보면 이 선이 앞으로 어떻게 뻗는지 더 알기 쉽다.
오랜 뒤 전에 살던 거리로 돌아온다. 모퉁이까지 몇 걸음 남았는데 발이 느려진다. 돌아가면 아침밥을 파는 가게가 있고 입구가 좁아 아침에는 그릇 든 사람을 비켜 주곤 했다. 오늘은 문도 안 보았는데 몸이 벌써 그 자리를 비웠다.
돌아가니 약국이다.
서운할 수도 있고, 바뀐 지 오래인데 몰랐다며 좀 우스울 수도 있다. 기분은 잠깐 옆에 놓자. 아주 구체적인 다른 일이 생겼다. 기억하던 거리가 눈이 아직 닿지 않은 곳으로 뻗었고, 그 뻗은 부분이 오늘의 거리와 부딪쳤다.
앞으로 이 모퉁이를 떠올려도 아침밥 가게를 지울 필요는 없다. 옛날 거기 있었다는 자리에 둘 수 있다. 약국은 현재로 들어오고 옛 가게는 과거로 들어간다. 바꾸는 것은 그림 한 장을 삭제하는 일만이 아니라 두 가지를 다시 놓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에 오면 습관적으로 잠시 발이 느려질 수 있다. 그래도 지금 거리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약국이 다시 아침밥 가게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로써 예상이 꼭 진지하게 내놓은 예언만은 아니라는 것도 보인다. 발이 먼저 느려지고 손이 익숙한 스위치로 뻗으며, 선율 반 구절에 다음을 아는 것일 수도 있다.
과거는 줄곧 과거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리가 다음 순간을 맞는 방식에도 참여했다.
맞지 않을 때, 어느 쪽을 고칠까
길모퉁이와 틀린 음은 다른 점이 있다.
약국이 거기 있고 확인해도 가게가 정말 바뀌었다면 눈앞 거리의 예상을 고쳐야 한다. 옆집 피아노에서는 악보를 확인할 수 있고 연주자도 돌아가 바로잡았다면 기억한 음을 전부 바꿀 필요는 없다.
안 맞는 것은 잘못 기억했거나 연주자가 실수했거나 아예 다른 판본이어서일 수 있다. 익숙하게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세계가 틀렸다고 정할 수 없다. 다른 것을 만나자마자 지난 것을 모두 버려서도 안 된다.
돌아가 확인하고 제대로 듣고 비교해야 한다.
이 왕복이 여기서 볼 만한 것이다. 기억한 것이 앞으로 뻗으며 그 예상은 빗나갈 수 있다. 빗나가면 다시 기억하던 데로 돌아가 무엇을 남기고 바꿀지 결정한다.
어떤 말은 잘 예측하는 듯하지만 무슨 일이 생겨도 예언대로라고 설명한다. 결국 변화는 온다는 말은 틀리지 않지만 어떤 음을 기다리는지 알려 주지는 않는다.
정말로 어떤 것을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 기다림에는 빗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대목이 있다. 놀라는 순간 그전에 있던 모양이 드러난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맞힌 데 주는 상도 아니다. 약국 앞에서 예상은 맞지 않았지만 왕복은 또렷하다. 인간의 기억은 대단하다는 말만 남기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잃는다. 앞으로 뻗고 부딪치고 돌아와 다시 놓는 부분이다.
익숙해져도, 다 쓴 것은 아니다
익숙한 노래를 들을 때 전곡을 마음속에 한 음씩 펼칠 필요는 없을 때가 많다. 시작하면 이어갈 수 있고 어디서 멈췄는지도 안다. 익숙한 것은 통하는 길이지 매초 마음을 소리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익숙함에는 궁금한 결말이 없지만 꼭 지루한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수 있고 풀어 가는 난관도 지난번보다 나아진 것도 없어도 된다. 완전한 한 번 자체에 들을 것이 있다.
다른 때에는 곡이 끝맺을 듯한 데서 끝맺지 않고 돌아 조금 더 나아간다. 기다리던 도착점은 걸린 채 남고 눈앞의 음이 움직이면서 기다림도 바뀐다.
반드시 잘못 친 것은 아니다. 작품은 앞에서 만들어 놓은 예상을 일부러 곧장 충족시키지 않을 수 있다. 좋은 음악인지는 따로 판단해야 하고 놀라게 했다고 저절로 잘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제 마무리되겠구나’ 하고 들리는 것은 오랫동안 특정 음악을 들은 경험에서 왔을 수 있다. 다른 음악에서 자란 청자는 같은 데서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 내 귀의 습관을 곧 세계 전체의 규칙이라고 이름 바꿀 수는 없다.
그래도 같은 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같은 음을 기다려야만 기다림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기다리기 시작했는지 들려주면 왜 그 구절이 당신에게 긴장을 만드는지 나도 처음 듣게 될 수 있다.
똑같은 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지나온 길을 보여 주어 다른 사람이 조금 따라 걸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벽 너머가 조용해졌다
연습하던 사람이 건반 덮개를 닫는다. 당신은 계속 탁자를 정리한다. 인생의 깨달음을 얻은 것도, 곧장 어린 시절을 떠올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노래로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절을 싫어하면서도 곡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기억할 수 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과거가 계속 작용하는 것은 다르다.
조금 뒤 두 구절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옆집이 이끌지 않는다. 지난 소리가 다시 다음 구절을 갖고, 아직 부르지 않았는데 입은 벌써 기다린다.
기억은 뒤만 보는 것이 아니다. 때로 우리가 아직 내딛지 않은 반 걸음에 있다.
그러면 그동안 듣고 기다려 온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그것은 다음에 물을 수 있다.
지금은 먼저 이 구절을 들어 보자. 아직 오지 않았는데 당신은 이미 자리를 남겨 두었다.
원논문과 참고 자료
공개된 중국어 에세이 전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썼습니다. 기존 영어판도 독립 집필되었으며 중국어 간체·번체판에는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기술적인 원논문 전체의 번역은 아닙니다. 각 글의 집필 설명에는 논의를 위해 만든 장면과 실제 연구·사료로 확인한 내용의 구분을 남겼습니다. 이론 논문은 영어·중국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미술 작품 소개는 한국어판이 있지만, ‘일상의 발견’과 예전 장문 ‘예술가는 죽었다’는 기존 영어·간체 중국어판으로 이어집니다. 그 본문까지 이번에 한국어로 다시 쓴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쓴 바탕과 범위
『인지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원논문의 피아노 연습과 길모퉁이 장면을 넓혀 썼다. 인물과 행동은 설명을 위한 예시이며 실제 곡이나 연주자를 지정하지 않는다. 기억의 재구성이 모든 기억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며 음악적 예상이 보편적인 음악 법칙도 아니다. 예상이 어긋나면 기억을 고칠 수도, 확인한 뒤 유지할 수도 있다. 원논문의 실험사와 아우구스티누스 논의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자세한 논증은 원문에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