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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미학 · 미학의 갈래 · 05 / 13 · 인과의 아름다움

나무에는 그해의 가뭄이 남아 있다

나이테와 돌계단, 수리의 흔적은 과거를 눈앞에 남긴다. 읽어 냈다고 그 원인이 된 모든 일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Han Qin ·

나무 한 토막을 단면이 보이도록 탁자에 놓는다. 누군가는 먼저 색을 보고, 누군가는 만지고, 누군가는 짙고 옅은 동심원을 세기 시작한다.

세던 손가락이 아주 좁은 데서 멈춘다.

성장이 순조롭지 않았던 시기의 모습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좁은 테 하나만 보고 그해 가뭄 이야기를 나무에게 지어 주어서는 안 된다. 수종과 자란 곳, 온도와 수분, 어떤 방해를 받았는지 보아야 한다. 테가 빠지거나 한 해에 하나 생긴 것으로 잘못 보기 쉬운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나이테 읽기는 선마다 그럴듯한 옛일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정말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지난 일을 때로는 진지하게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해가 줄곧 거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분이 부족해 성장이 제한되는 곳에서는 가뭄이 좁은 목질 생장층을 남길 수 있다. 나무가 그 뒤로 여러 해 더 자라면 새로운 층이 겉에 겹친다. 그해 날씨는 지나갔지만 안쪽의 테가 나중에 비가 많이 왔다고 다시 넓게 자라지는 않는다.

영상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나무는 그 여름을 그대로 저장했다가 열면 다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성장이 영향을 받은 결과를 남겼다. 우리는 그 결과로 무엇이 일어났는지 묻는다.

그래서 나무 한 그루의 단서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연구자는 여러 나무나 목재에서 테의 폭이 어떤 순서로 놓이는지 비교해 믿을 만한 대응을 찾는다. 단서가 이어지는 것은 대강 닮아서가 아니라 순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과거는 사람의 감상 때문에 돌아온 것이 아니다. 뒤에 남은 것이 실제로 그 영향을 받았다.

이미 지난 일이라는 말에는 두 뜻이 있다. 하나는 지금은 일어나지 않으며 가뭄이 들었던 그해가 끝났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끝났으니 이제 다시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몰래 더한다. 나무는 그 뒤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의 모양 안에도 그해가 있다.

들보 하나가 연도를 이었다

1929년 애리조나주 쇼로의 유적에서 들보 하나가 나왔다. 연구번호는 HH-39다. 이후 나이테 연구사에서 중요한 목재가 되었다.

그전에도 더글러스와 동료들에게는 서로 다른 나이테 계열이 있었다. 하나는 살아 있는 나무에서 거슬러 올라가 어느 해인지 알았다. 다른 하나는 옛 건물의 목재에서 온 것으로 서로 앞뒤를 정할 수는 있었지만 달력의 연도와는 확실히 연결하지 못했다. 읽을 수 있는 두 문장이 있는데 그 사이를 어떻게 잇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HH-39는 두 계열을 잇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 덕분에 여러 유적 목재의 연대를 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계는 남겨야 한다. 목재가 형성되거나 베어진 해가 건물이 완성된 해와 항상 같지는 않다. 오래된 목재는 재사용할 수 있고 바깥층이 없어졌을 수도 있다. 재료와 맥락을 함께 보고 판단할 일이지 아름다운 이야기로 연구자의 일을 대신 끝낼 수는 없다.

한 번에 수수께끼를 푼 전설 같은 느낌을 걷어 내도 이 나무는 볼 만하다.

나무는 고고학을 모르고 미래 사람에게 역사를 남기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랐고 건물에 들어갔으며 나중에도 거기에 남았다. 연구자는 나뭇결에서 서로 다른 시간 사이에 확인할 수 있는 관계를 읽었다.

과거의 일이 다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더는 오래전이라는 한마디만도 아니었다. 오늘 만질 수 있는 물건 속에 자리를 얻었다.

돌계단에 유명한 주인이 없어도 된다

그런 알아봄은 낡은 돌계단 앞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가운데는 낮고 양쪽은 높다. 지나간 사람들은 저마다 갈 곳이 있었고, 급히 들어가거나 문 앞에서 기다렸다. 누가 돌을 오늘의 모양으로 닳게 하는 일을 맡은 것은 아니다. 마모에는 비바람이나 재료 같은 원인도 있으니 모든 패임을 발걸음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오래 오간 흔적이 보이는 데서는 각기 다른 사람이 지나간 자취가 한데 눈앞에 남는다.

그들 대부분의 이름조차 우리는 모른다. 유명인이 걸었다는 증명이 있어야 돌계단 앞에 멈출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 비싼 안내판이 오히려 돌을 가린다. 어떤 거장이 여기 살았는지 얼마짜리인지 확인하느라 돌이 어떻게 패었는지 보지 못한다. 명성도 역사의 일부지만 모양 자체를 보는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옛것이 언제나 새것보다 좋다고 정할 필요도 없다. 새 의자의 선이 훌륭할 수 있고, 오래된 의자는 익숙한 향수로 빛나 보일 뿐일 수 있다. 세월이 길다고 아름다움이 자동으로 성립하지는 않는다.

내력을 알아보는 것과 낡은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흔적이 가해의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폐허나 고난의 유적 앞에서는 이 구분이 더 중요해진다.

벽이 왜 여기서 끊어지고 물건에 어떻게 자국이 남았는지 자세히 볼 만한 모양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본다고 그것을 만든 폭력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이것이 오늘의 당신을 만들었다고 말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남았다고 일어날 만했던 것은 아니다. 오늘의 일부가 되었다고 당시 감당해야 했던 것도 아니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더욱 사람을 대신해 결정할 수 없다. 고칠지, 어떻게 보존할지, 누가 이야기할지는 삶과 권리에 관련된다. 불완전한 채로 두어야 아름답다는 말로 정할 수 없다. 상처의 내력을 읽으면서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랄 수 있다. 증언을 진지하게 보존하면서도 남의 고통을 내 감상 재료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유적 앞에서 애도만 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선을 감상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을 덜 본 것은 아니다. 모두 제출해야 하는 미학 답안은 여기에 없다.

평범한 오래된 물건에서도 수리를 반드시 과거를 지우는 일로 볼 필요는 없다. 덧댄 부분이 그 물건이 이후에 겪은 또 다른 일을 또렷이 남길 수 있다. 망가졌고 누군가는 버리기 아까워했다는 것이다. 수리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내력을 보는지, 상상을 억지로 넣지는 않았는지가 문제다.

탁자 위의 나무

그 나무 한 토막을 다시 보면 눈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질지도 모른다.

놀랄 만한 나이를 서둘러 세거나 나이테마다 비바람과 눈서리 이야기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무엇이 자라면서 남았고 무엇이 뒤에 톱질하며 생겼는지 먼저 나누어 보아도 된다. 어디에 충분한 근거가 있고 어디는 다른 목재와 비교해야 하는지 보자.

적게 알면 적게 말해도 된다. 진지하게 본다고 나무의 일생을 끝까지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시간이 끝내 흘러간다는 슬픔이 아니다. 모든 것은 지난다고만 하면 나이테와 돌계단, 오래된 편지가 같은 말의 장식이 된다. 볼 만한 것은 저마다 다르게 남는 방식이다. 그해가 성장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고 발걸음이 마모에 어떻게 참여했고 편지가 접힌 자국과 소인을 지닌 채 오늘까지 어떻게 왔는지 말이다.

그래서 물건은 지금 순간의 윤곽만이 아니게 된다. 그 물건에도 내력이 있으며, 그 내력은 우리가 대신 들려주는 이야기만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탁자 곁의 사람이 손을 거둔다. 좁은 테는 여전히 있다. 바깥에는 넓은 테도 좁은 테도 더 많다.

나중에 좋은 해가 찾아와도 그 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테도 나무 전체의 나중 일을 다 말하지는 않았다.

원논문과 참고 자료

공개된 중국어 에세이 전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썼습니다. 기존 영어판도 독립 집필되었으며 중국어 간체·번체판에는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기술적인 원논문 전체의 번역은 아닙니다. 각 글의 집필 설명에는 논의를 위해 만든 장면과 실제 연구·사료로 확인한 내용의 구분을 남겼습니다. 이론 논문은 영어·중국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미술 작품 소개는 한국어판이 있지만, ‘일상의 발견’과 예전 장문 ‘예술가는 죽었다’는 기존 영어·간체 중국어판으로 이어집니다. 그 본문까지 이번에 한국어로 다시 쓴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쓴 바탕과 범위

『인과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썼다. 탁자와 돌계단의 장면은 논의용으로 만든 것이지 필자의 실제 경험 기록이 아니다. 나이테의 기후 해석은 NOAA, HH-39의 연대 연구 이야기는 애리조나대학교 나이테연구소를 참고했다. 좁은 테가 자동으로 가뭄을 뜻하지 않고 목재의 연대가 곧 건물의 연대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