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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행동론 · 05

발코니의 작업대

목공을 한 지 7~8년 되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잘해도 연말 평가에 들어가지 않는다. 자기 법이 지키는 일만 남는다면 방어만 남는다. 남에게 쓸모 있음을 증명하지 않고 자기 가치가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쪽을 본다.

Han Qin ·

시킨 사람은 없었다

그가 목공을 한 지는 7~8년 되었다. 발코니의 작은 작업대, 대패와 끌 한 벌, 주말 아침의 시간. 처음에는 집에서 쓸 작은 걸상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책장과 낮은 탁자, 의자도 만들었다. 보고서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잘 만들어도 연말 평가에 들어가지 않았다.

앞의 네 글은 어떻게 선을 긋고 남의 규칙에서 벗어나는지, 그 선이 자기 것인지, 선은 분명한데 실행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지를 다루었다. 대부분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바깥에서 대신 정하게 하지 않고, 못 한 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기 법이 지키는 일만 남는다면 방어만 남는다. 이번에는 다른 쪽, 자기 가치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살핀다.

먼저 말뜻을 분명히 하자. 여기서 발전은 자신이 인정한 것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말한다. 같은 일에서도 새로운 자기 것이 떠오를 수 있고, 같은 관심이 구체적으로 다른 모습을 띨 수 있다. 한동안 삶의 무게중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도 있고, 전에는 없었던 관심이 자랄 수도 있다. 발전에는 눈에 보이는 능력·작품·성과라는 뜻도 있지만 그것은 다른 축에 놓인다. 다음 절에서 둘을 섞지 말아야 할 이유를 본다.

안 팔면 아깝겠는데

지난해 의자를 만들어 사진을 올렸더니 많은 사람이 좋아했다. 친구는 ‘이 솜씨로 안 팔면 아깝겠는데’라고 했다. 상사도 듣고 말했다. ‘그거 좋네. 인내심을 기르니 일에도 도움이 되겠어.’

둘 다 좋은 뜻으로 한 말이고 내용도 헛말은 아니다. 의자는 팔릴 만했고 목공을 하면서 실제로 인내심도 늘었다. 하지만 두 말 모두 다른 장부에 이 일을 올렸다. 하나는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지, 다른 하나는 다른 일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묻는다.

자기 가치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남에게 쓸모 있음을 입증하는 일이 아니다. 의자가 팔릴 만하다는 증명이나 더 좋은 직원이 되었다는 증명이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래에 기여하기 위해 자신을 더 좋은 도구로 가공하는 일도 아니다. 은퇴 뒤의 생계나 누군가에게 더 유용해지기 위해 목공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결과가 곁들여질 수는 있지만 이유는 아니다. 이유는 자기에게 있다. 자신도 목적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떤 쓸모에 맞춰 지금의 자신을 조금씩 깎아 내면 자신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다.

가치론은 이를 정확히 구별한다. 무엇을 이루고 배우고 남겼는지와, 그 자리를 누구의 목적이 차지하는지는 서로에게서 도출되지 않는 두 축이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은 평가 체계 안에서도 많은 것을 훌륭히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자기 것으로 인정한 일에서 오랫동안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 산출물이 있으니 식민화가 아니라는 추론은 상식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대신한다. 가치론이 먼저 반박하는 추론이다. 한 걸음 더 가야 한다. 식민화가 아니라고 곧 자기 것인 것도 아니다.

외부의 인정이 쓸모없지는 않다. 사진에 반응한 한 노목수는 장부를 너무 꼭 맞게 내어 습해지면 갈라질 수 있다고 댓글을 달았다. 그는 기억해 두었다가 만드는 법을 고쳤다. 재료이자 새로운 생각을 얻은 것이다. 다만 외부의 인정이 유일한 척도가 될 수는 없다. 그 척도는 연간 제작 수량, 공예 시장의 순위, 온라인의 인기일 수 있다. 덜 눈에 띄는 형태는 고정된 이미지다. 그가 ‘의자 만드는 사람’이 되어 친구들도 의자만 보고 싶어 하고 자신도 점차 의자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알고 신경 쓸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를 유일한 척도로 삼으면 발전은 그 수치를 키우는 일로 바뀐다.

이미 만든 것을 최종본으로 보지도 않는다. 모두가 칭찬한 의자는 앞으로 되풀이하기만 해야 하는 정점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완성점도, 언제든 꺼내 놓을 수 있는 완성된 자기 자신도 없다. 이미 한 것은 지나온 한 구간이지 앞으로의 자신을 찍어 낼 틀이 아니다.

깊어지고, 바뀌고, 쉬고, 옮겨 간다

처음 대패를 밀었을 때 얇은 나무오리가 말려 나오고 아래에서 결이 드러났다. 그는 한참 보았다. 잊었던 것이 떠오른다기보다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그것을 자기 것으로 인정했다. 어느 날 선언한 것은 아니다. 여유가 나면 발코니로 갔고, 남이 물으면 자기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할 때 마음이 분명했다.

인정한 뒤에도 움직임은 계속되었고 모습은 하나가 아니었다. 더 깊어지기도 했다. 못을 박아 걸상을 만들던 데서 못 없이 짜 맞추는 결구로 나아갔다. 같은 일에서 새로운 자기 것이 생겼다. 바뀌기도 했다. 처음에는 전문가처럼 대대로 물려줄 큰 가구를 만들고 싶었다. 나중에는 아는 사람에게 줄 연필꽂이나 도마 같은 작은 것을 만들었다. 인정한 관심은 끊어지지 않았고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졌다.

쉴 때도 있었다. 4편에서 앓던 해에는 몇 달 동안 공구를 잡지 않았다. 버린 것이 아니다. 오래 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것의 지위가 사라지지 않는다. 잠잠해진 것은 그동안 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으며 자리는 열려 있다. 무게중심이 옮겨 가기도 했다. 몇 달 동안 주말마다 집안 어른의 진료에 동행하여 목공이 중심이 아니었다. 이때 퇴보한 것 아니냐는 질문은 전제부터 맞지 않는다. 중심이 바뀐다고 가치의 손실이 생기지 않으며 중심으로 가치의 높낮이를 환산할 수도 없다. 안정된 중심이 하나 없다고 결함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발전은 같은 구체적 추구를 영원히 유지하는 일이 아니다. 더 바쁠수록 더 충실한 것도 아니다. 온라인에서 관심이 늘던 해에는 한 달에 네 개씩 만들며 사진을 서둘러 찍었다. 빨라질수록 자기가 원한 것과는 멀어졌다. 많이 만들고 지치고 많이 주목받는 것은 모두 산출의 축에 놓인다. 그것만으로 자기 것이 더 충분히 펼쳐졌다고 말할 수 없다.

어디에서 펼쳐지는가

그에게는 기술이지만 다른 사람의 일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그의 누나는 무언가를 쓰려고가 아니라 일이 왜 그렇게 벌어졌는지 알고 싶어 오랫동안 역사책을 읽었다. 아래층 이웃은 맑은 밤마다 옥상에 망원경을 세우고 본 것을 기록한다. 옛 친구는 20년에 소설 두 권을 썼다. 어머니가 평생 가장 마음에 둔 것은 곁의 사람들이었다. 누가 아프고 어느 집 아이가 입학하는지를 기억했다. 과학·기술·창작·이해·관계는 모두 자기 가치가 펼쳐질 자리가 될 수 있다.

직업을 추천하거나 순위를 매기려는 것이 아니다. 기술에서 펼쳐지는 삶이 이해에서 펼쳐지는 삶보다 낮지 않고, 주변을 돌보는 일이 소설 쓰기보다 높지도 않다. 자기에게서는 각각 충분하다. 어느 영역의 행동인지로 그 사람의 가치 지위가 정해지지 않는다.

또 하나의 오해도 막아 두자. 4편의 일이 있은 뒤 그는 주말에 발코니에서 나무를 미는 것이 한동안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남들은 자원봉사하고 사람을 돕는데 자기는 연필꽂이를 만든다며, 주말을 모두 의미 있는 일에 쓰려 했다. 돕는 일에서 진정 자기 것을 인정했다면 그것도 자기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남을 도와야만 의미 있다고 느껴서라면 삶을 도덕적 헌신 하나로 좁히는 것이다. 이 연작의 사람은 남도 목적이고 자신도 목적이라고 인정한다. 앞쪽만 남기면 뒤쪽은 취소된다.

아래층에 이사 온 청년

취직한 지 얼마 안 된 청년이 아래층에 이사 왔다. 어느 날 발코니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배워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좋다고 했다. 이 청년이 자라도록 돕는다는 것은 만들 것을 스스로 고르게 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게 하는 것이지, 두 번째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남을 돕는 일과 자기 일은 서로 도울 때도 있다. 왜 이 결구가 힘을 버티는지 설명하다가 자신도 방법만 알았지 이유는 잘 몰랐음을 깨달았다. 설명하면서 이해했다. 청년이 접히는 의자를 만들고 싶다고 하자 전에는 생각 못 했던 그도 나중에 하나 만들었다. 서로를 붙잡을 때도 있다. 주말은 이틀뿐이다. 청년은 매주 토요일 오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에게 드릴 탁자는 반년 동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몇몇 토요일에는 안 된다고 말했다.

몇 가지는 미리 정할 수 없다. 그의 목공은 청년에게 도움이 됨을 입증해야 의미를 얻는 일이 아니다. 가르치려고 생긴 것이 아니다. 청년이 자라도록 돕기 위해 자기 일을 취소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탁자를 계속 놓아둘 필요는 없다. 두 일은 서로 돕기도 하고 유한한 시간 안에서 서로 제약하기도 한다. 언제나 충돌한다고 선언할 수도, 언제나 둘 다 된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어느 토요일을 어떻게 쓸지는 그때 판단한다. 몇 번 거절했다고 돕는 방향 자체를 취소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그때의 판단에도 질문할 수 있다.

발전이 새로운 명령인 듯 읽는 것도 막아 두자. 모두 계속 전진해야 하고 쉬면 정체라는 뜻은 아니다. 새로운 관심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앞에 있어도 건너지 않을 수 있고,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 지금 가진 몇 가지 관심 안에서 계속 살아도 일관된 삶이다. 휴식은 정체가 아니다. 발전도 새로운 ‘하지 않을 수 없음’이 아니다. 취소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층위, 자기 자신도 목적이라는 인정이다. 어느 일에서 펼칠지, 얼마나 빨리 나아갈지, 언제 쉬고 바꿀지는 자신의 판단이며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올해 다시 어머니께 드릴 탁자를 만든다. 아주 천천히 만든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Qin, Han (2026), 《자기 가치의 발전》, SAE 행동론 5편을 바탕으로 한 중국어 산문의 한국어 독립 재서술이다. 원논문 · DOI: 10.5281/zenodo.22970771. 목공은 연작의 허구적 일상에 속한다. 관심이 펼쳐지는 영역으로 삶의 순위를 매기지 않으며,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명령을 만들지 않는다. 산출·쓸모·자기 목적을 서로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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