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읽기
Non Dubito

행동론 · 04

보내지 못한 이메일

비슷한 문제가 다시 생겼다. 이번에는 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았다. 하지만 2주를 앓았고 두려웠다. 이메일을 써 놓고도 보내지 않았다. 몸과 감정과 습관은 어떻게 행동에 들어오되 자기 법을 대신 정하지는 않는가.

Han Qin ·

이번에는 가지 못했다

또 한 해가 지나 비슷한 일이 생겼다. 보고서도 다른 팀도 바뀌었지만 사정은 지난번과 비슷했다. 이번에는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 팀 사람들을 속여 넘겨도 되는 사람들로 보지 않는다는 선은 지난번에 인정했고 지금도 남아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

그달 그는 2주 동안 앓았다. 돌아오니 일이 책상 위에 쌓여 있었고 몸도 회복되지 않았다. 두렵기도 했다. 지난번에는 알리러 갔다가 연말에 3등급을 받고 상여금도 줄었으며 원하는 팀으로 옮기지도 못했다. 올해 상사는 여러 번 ‘다들 좀 안정적으로 갑시다’라고 했다.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들었다. 월요일에 문제를 발견하고 수요일에 알리기로 정했다. 이메일을 써 놓았지만 보내지 않았다. 그 뒤로 며칠 더 열이 났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보고서가 이미 제출되었다. 다음 분기에는 그 팀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

나중까지 분명히 알 수 없었던 것은 이것이다. 그때는 너무 두려워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실은 하고 싶지 않은데 인정하지 않았던 것일까.

앞의 세 글은 사람이 어떻게 선을 긋고, 남의 규칙에서 나오며, 그 선이 자기 것인지 살피는지를 다루었다. 아직 다루지 않은 일이 있다. 선은 분명한데 그 선대로 행동하지 못한 경우다. 이번에는 몸·감정·능력·습관·망설임이 행동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살핀다. 그것들이 자기 법을 대신 정하지는 않는다. 실행하지 못했을 때 그 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말할지도 살핀다. 일상에 가장 가까운 글이지만 실행력을 높이는 법을 가르치거나 일과 휴식의 적정량을 정하지는 않는다.

지쳤다고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두렵다고 인정을 거둔 것은 아니다

목요일 아침, 열이 39도까지 올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날은 알리러 가지 않았다. 이 경우는 단순하다.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날 판단에 들어온 이유다. 핑계는 아니다. 핑계는 말로 다른 것을 가리는 것인데 그 아침에는 가릴 다른 것이 없었다. 자기 법을 고친 것도 아니다. 열이 난다고 그 팀을 속여 넘겨도 되는 사람들로 다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일상에서는 이 셋을 자주 섞어 말한다. 아팠으니 그 문제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하면 이유를 자기 법의 수정으로 바꾼다. 아파도 전화는 할 수 있었으니 하기 싫었던 것이라고 하면 사실을 유죄의 증거로 바꾼다.

몸과 감정과 능력은 사실로도 이유로도 판단에 들어온다. 오늘 열이 있는지, 힘을 낼 수 있는지, 처음 보는 책임자에게 복잡한 사정을 설명할 수 있는지가 그렇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가치판단은 아니다. 몸이 달라졌다고 무언가를 새로 인정하거나, 고치거나, 그 자리에서 떠난 것은 아니다. 지쳤다는 것은 지쳤다는 뜻이지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렵다는 것은 두렵다는 뜻이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상사 앞에서 말하기 두렵다고 정직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설명을 잘 못한다고 그 팀에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감정에는 한 겹이 더 있다. 그의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난번의 대가도 상사의 말도 실제였다. 두려움 안에 있는 사실은 판단에 들어올 수 있다. 두려움은 사실보다 커질 수도 있다. 가능한 대가를 부풀리고 다른 것을 밀어낸다. 그 감정을 판단에 넣더라도 판단은 여전히 자신이 한다. 두려움이 대신하지는 않는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오늘 감당할 수 없다고 그 법이 더는 자기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일시적인 기능 상실, 표현의 중단, 행사할 힘의 감소만으로 그 사람이 자기 입장에서 인정하던 자리를 떠났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오래 작동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것의 지위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며칠 동안 갈 수 없었지만 그 법은 남아 있었다.

습관이 바꾸는 것은 하지 않을 때의 비용이다

이번 일에는 두 습관이 함께 있었다. 하나는 선배에게서 배운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먼저 누가 읽는지 생각한다. 이 습관 덕분에 월요일에 바로 문제를 보았다. 그런 습관이 없는 사람은 그냥 지나쳤을 것이고 알리지 않아도 힘들지 않았을 수 있다. 그는 달랐다. 본 다음 못 본 척하는 데에는 큰 비용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회사에서 몸에 밴 것이다. 보고서를 받으면 먼저 숫자가 보기 좋은지 확인한다. 이 습관은 반대쪽으로 작용했다. 숫자를 좋게 만들고 제때 제출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했다. 알리러 가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사람을 찾아 설명해야 했다. 한 단계씩 힘이 들었다. 그래서 알리지 않는 쪽이 쉬워졌다.

습관이 바꾸는 것은 하지 않을 때 드는 비용이다. 무엇을 인정했는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어떤 거부는 쉽게, 다른 거부는 어렵게 만든다. 선을 대신 긋지 않고 어느 쪽에 선을 그을 때 힘이 덜 드는지를 바꾼다.

여기에는 양면이 있다. 습관이 자기 법을 지탱하기도 한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생각할 수는 없다.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날에는 습관이 지켜 준다. 병을 앓고 돌아와 정신없던 날에도 선배에게서 배운 습관이 문제를 알아보게 했다. 반대로 습관 속에서 법이 바꿔치기되기도 한다. 숫자부터 보는 습관은 외부에서 왔지만 오래 하자 저절로 돌아갔다. 잘 돌아갈수록 자기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맞아떨어지는 느낌은 실마리일 뿐, 습관이 잘못 길들일 수도 있다. 그 주에는 쉬운 쪽이 이겼다. 그렇다고 법을 바꾸었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습관이 자기를 지키고 어느 습관이 남을 위해 돌아가는지 가릴 여유도 없었다.

망설임과 행동의 네 지점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사흘을 망설였지만 같은 망설임은 아니었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 정말 문제인지, 얼마나 큰지, 그 팀이 벌써 아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자료와 지난 분기 산정 기준을 살피고 동료에게 물었다. 이때는 판단이 진행 중이었다. 망설이지 않는 편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수요일 오전에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 문제이며 그 팀은 모르니 알리러 가겠다고 정했다. 그 순간부터는 다른 망설임이었다. 판단은 했지만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이 둘을 한 종류로 여기고 모두 나약함이라고 부르면 틀린다. 판단한 뒤 움직이지 않는 데에도 여러 사정이 있다. 더 좋은 때를 기다릴 수 있다. 언제 말하는 편이 좋은지는 원래 비교할 문제다. 힘을 모으고 있을 수도, 두려울 수도 있다. 밖에서는 똑같이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망설였다는 사실만으로 나약함을 판정할 수 없다. 망설임은 판단 자체도 아니다. 둘을 혼동하면 미루는 것이 곧 하지 않겠다는 결정인 줄 알거나, 결정했으니 이미 움직인 줄 알게 된다.

망설이는 시간은 그 사람의 시간이다. 무슨 요일까지 판단하고 몇 시간 안에 출발해야 하는지 남이 대신 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에도 시간이 있다. 보고서는 금요일에 제출되며 그 뒤에는 알리는 일의 성격도 달라진다. 시간은 그의 것이지만 기회의 창은 그의 것이 아니다. 창이 닫히면 다음 판단에 들어올 사실이 된다. 그렇다고 앞의 사흘을 가지 않기로 한 결정으로 고쳐 쓰지는 않는다.

그 수요일을 따라가 보자. 오전 10시, 그는 판단을 내리고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이다. 정오 주간 회의에서 상사는 다시 안정적으로 가자고 했다. 자리로 돌아와 열린 이메일을 계속 썼다. 지속이다. 한번 시작한 일도 한 구간씩 이어 가며 어느 구간에서든 끊길 수 있다. 오후 3시, 다시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임시 보관함에 저장하고 조퇴했다. 중단이다. 밤, 누워서 이메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우니 열이 내리면 그 팀 책임자를 직접 만나자고 생각했다. 변경이다.

시간 속의 행동에는 적어도 시작·지속·중단·변경이라는 네 지점이 있다. 멈추어도 어디에서 멈추었는지 봐야 한다. 중단은 포기가 아니다. 오후 3시에는 열 때문에 멈췄다. 법은 바뀌지 않았고 그 일도 지우지 않았다. 오래 멈췄다고 인정을 취소한 것도 아니다. 변경도 배신이 아니다. 밤에는 방법과 때와 만날 사람을 바꿨다. 계획을 바꾸어도 법은 하나도 바뀌지 않을 수 있다. 이 네 지점이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며칠 더 앓고 돌아왔을 때는 보고서가 이미 제출되었고 그는 만나러 가지 않았다. 계속 중단된 것인지, 포기한 것인지, 처음부터 진심이 아니었는지는 이 절에서 답할 수 없다. 돌아볼 문제로 남긴다.

자신을 지키는 일

그날 오후 조퇴한 것을 병을 핑계로 피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기 전에 자기 보호는 우선 자기 자신도 목적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점을 세워 두자. 자신이 목적임을 인정하면 자신도 보전되어야 함을 인정한다. 동시에 타인도 목적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자기 보호는 이기심도 아니고 자신과 타인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도 아니다. 열이 나서 돌아가 누우려면 나중에 일을 더 잘할 수 있음을 먼저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을 위한 일에서도 자기 보호가 필요하다. 타인도 목적으로 보면 그 사람 자신의 법이 자라도록 도우려 한다. 그러나 돕는 사람도 소진될 수 있다. 이 체계의 경제학은 감각이 무뎌지고 인내가 줄어드는 소진을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한계’라고 썼다. 따라서 자기 보호에는 두 가지가 들어간다. 상대가 자라도록 돕다가 지나치게 자신을 쓰지 않는 것, 그리고 그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관계에서 자신을 다 소모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범위를 넓혀서는 안 된다. 소진된 사람이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몹시 지친 그 주에도 수요일 오전 판단을 내리고 이메일을 썼다. 피로가 바꾼 것은 이번에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이지 모든 일에서 면제한 것이 아니다. 지쳤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는 말과 지쳐도 고려할 필요 없다는 말은 같은 오류의 양끝이다. 하나는 사실을 면제로 바꾸고 다른 하나는 사실을 없는 것으로 만든다.

자기 보호가 다른 것을 가리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날 오후에는 열 때문에 돌아갔다. 그러나 이후 며칠 동안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것은 계속 열이 나서였을까, 아니면 마음이 놓여서였을까. 자기 보호는 실제 이유이기에 다른 것을 가리는 데에도 쓰기 쉽다. 당시 구별되지 않는다면 돌아볼 문제로 남긴다. 안전 때문에 먼저 벗어나는 것은 회피가 아니다. 정면으로 보지 않은 채 이름만 바꾸어 떠나는 것이 회피다.

이번에 감당하지 못한 것과 끝내 할 수 없는 것

보고서는 제출되었다. 다음 분기에 문제가 드러났고 일찍 알았을 때보다 수습이 훨씬 어려웠다. 그 뒤 그는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사실대로 문제를 보았고 알리려 했지만 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여 당시 알렸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메일은 계속 임시 보관함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또는 그 법은 원래 자기 것이 아니었고, 그 팀은 자기 소관도 아니며 꼭 말해야 한다고 느낀 적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가 가장 단순하다. 그 팀을 속여 넘겨도 되는 사람들로 보지 않는다는 인정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번에 가지 못했다고 그 인정을 고쳐 쓰지 않는다. 실행하지 못함은 수정도 이탈도 아니다. 결과를 지우지도 않는다. 그 팀이 한 분기를 더 잃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 못한 일과 실제 결과가 함께 당시의 인정 아래 남는다.

두 번째는 거짓말이다. 알리지 않았는데 알렸다고 하면 3편의 ‘꾸며 내지 않음’을 어긴다. 한 일은 한 대로 말해야 한다. 거짓말을 했다고 새 종류의 행동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가지 않았다는 일은 그대로이고, 했다는 말이 거짓일 뿐이다. 세 번째는 가장 알아보기 어렵다. 돌아보니 외부의 보증에 기대고 있었음을 알 수도 있고, 이미 인정한 것에서 실제로 떠날 수도 있으므로 원래 자기 법이 아니었다는 말이 참일 수 있다. 그러나 감당하기 싫어서 그렇게 말한다면 거꾸로 꾸며 내는 일이다. 자기에게서 자랐던 것을 사후에 외부의 것이라고 고치는 것이다. 말을 했다고 이탈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처음의 인정이 어디에 있는지는 그 말만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너무 두려워서 못 했는가, 아니면 하기 싫으면서 인정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없는 척하는 것은 당시 안에서 같은 모습으로 느껴질 수 있고, 자신도 구별하지 못한다. 이 종류의 불분명함은 정말 불분명한 것이며 돌아볼 문제로 남긴다. 결과를 누가 감당할지는 별개다. 직무, 과실, 인과적 결과, 수습과 보완은 각각의 근거에 따라 따로 확인할 일이다. 이 글이 대신 결산하지 않는다.

정말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열이 39도여서 일어나지 못한 아침이 그랬다. 실제로 할 수 없을 때는 멈출 자리가 있으며, 멈춤이 곧 자기 자리를 저버림은 아니다. 그날 멈췄다고 법이 틀렸다거나 인정을 거두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날 그 일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멈출 자리를 남기지 않으면 두 설명밖에 남지 않는다. 정말 못 하는 것도 하기 싫은 것이라 하여 환자를 탈영병으로 만들거나, 못 한 적이 있으니 그 법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든다. 하나는 사실을 유죄의 증거로, 다른 하나는 수정으로 바꾼다.

어느 하루가 아니라 끝내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유한하고 할 일은 다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다시 할 수 없는 일이 남는다. 여기서 제시할 자세는 부정적인 경계 하나다. 꾸며 내지 않는다. 유한함을 핑계로 쓰지 않는다. 언젠가 아무것도 못 하게 될 텐데 보고서와 팀이 무슨 상관이냐며 이번에 알리지 않은 일을 덮지 않는다. 유한함을 동원령으로 쓰지도 않는다. 인생이 짧으니 이제 어떤 것도 미루지 말고 즉시 끝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둘 다 유한함이 하지 않은 말을 대신 시키는 것이다.

그 경계는 타인을 만날 때도 나타난다. 보고서를 읽는 사람부터 생각하라고 했던 선배는 그해 입원했고, 이후 오래 말도 글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몇 번 찾아가 침대 곁에서 이번 보고서 이야기를 했다. 선배가 듣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분은 이미 없어요’라고도, ‘사실 다 듣고 계세요’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오래 말하지 않고 쓰지 않는다고 그 자리를 떠났다고 결론 낼 수 없으며, 여전히 있다고 결론 낼 수도 없다. 판단할 수 없다면 기록할 것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누가 읽는지 먼저 생각하라는 말은 나중에 자신이 인정한 자기 것이 되었다. 선배를 대신해 무엇을 떠맡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Qin, Han (2026),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SAE 행동론 4편을 바탕으로 한 중국어 산문의 한국어 독립 재서술이다. 원논문 · DOI: 10.5281/zenodo.22970769. 병·두려움·기능 상실을 진단하거나 일과 휴식의 양을 정하지 않는다. 직무상 책임, 과실, 인과적 결과와 수습은 별도로 검토할 문제로 남긴다. 실행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 인정을 철회했다고 판정하지 않는다.

원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