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읽기
Non Dubito

행동론 · 03

그 마음도 자기 것이었을까

새 동료가 그때 왜 알리러 갔느냐고 묻는다. 그는 알리지 않을 수 없었던 마음도, 평가가 두려워 잠 못 잤던 밤도 기억한다. 당장 가리지 못한 것은 정말 가리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 돌아보더라도 지난 일을 꾸며 내지는 않는다.

Han Qin ·

그때 왜 알리러 갔어요?

몇 년이 지났다. 보고서는 오래전에 제출했고 다른 팀도 나중에 문제를 알았다. 일은 나름의 결말을 맞았다. 그는 팀을 옮겼지만 여전히 보고서를 만든다. 어느 날 새로 온 동료가 묻는다. ‘그때는 왜 알리러 갔어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해 연말 평가를 몹시 신경 썼던 것도 기억한다. 며칠 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 팀 사람들을 속여 넘겨도 되는 사람들로 볼 수 없어서 알렸다는 것은 지금도 인정한다. 그런데 평가는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 그렇게 신경 쓴 마음도 자기 것이었을까?

2편에서 식민화는 알아보기 쉬운 갈래도, 어려운 갈래도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어려운 쪽을 묻는다. 자기가 그은 선이 정말 자기 것인가. 선을 긋는 당일에는 답하지 못하고 나중에 돌아보아야 할 때가 많다.

외부의 척도가 할 수 있는 일

당시 연말 평가는 다섯 등급이었다. 상사는 1등급을 받아야 이 분야에서 좋은 직원이라고 했다. 그는 그 보고서 때문에 3등급을 받았다. 평가는 실제로 영향을 미쳤다. 그해 상여금, 다음 해 원하는 팀으로 옮길 가능성,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거기에 달려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판단에 들어올 수 있다. 알리면 얼마를 덜 받는지, 먼저 상사와 이야기할 만한지 저울질해도 된다. 자기 법에 따라 행동한다고 이런 사실이 없는 척하지는 않는다.

밖에서 온 것은 판단의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상사는 그해 그가 ‘일을 너무 꼬치꼬치 따진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반은 맞았다.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될 일을 따진 적도 있었다. 밖에서 온 것이 새로운 생각을 열어 주기도 한다. 한 선배가 보고서는 사람이 읽는 것이고, 누가 읽는지가 숫자 자체보다 중요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외부의 척도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다. 무엇이 그의 가치인지 대신 정할 수 없다. 1등급을 받아야 좋은 직원이라는 말은 그 회사가 실제로 그렇게 계산한다는 점에서 참인 서술일 수 있다. 그가 고려할 재료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이 ‘1등급 받기’를 그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자기 가치인지 아닌지는 남의 표에 올라 있는지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근거를 얻는지에 달렸다. 이 체계는 남들이 가치 있다고 여긴다는 것을 아는 일과 자신에게 그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다르다고 말한다. ‘차이를 만드는 말은 자기 자신이다.’

외부의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식민화가 된다. 두 갈래를 다시 생각해 보자. 하나는 바깥에서 누르는 경우다. 남이 어떤 것을 그의 것이라고 정해 놓고 부정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경우는 남도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믿는 경우다. 자기 것으로 통하지만 그 근거를 실제로 받치는 것은 상사의 말, 제도의 등급, 어른의 한마디 같은 외부의 보증인데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것이 자기 식민화다. 자기 자신이 받아들이는 데서 유지되므로 남은 볼 수 없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 악의를 가져야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식민화라는 말은 도덕적 비난이 아니다.

이를 ‘남의 말은 듣지 말라’고 읽으면 틀린다. 평가는 듣고 활용하며 그 때문에 바뀔 수도 있다. 부정하는 것은 외부가 자신을 대신해 정하는 자리뿐이다. 갈등도 이유와 재료, 압력과 새 사실을 주어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정말 내 것이다’라는 확인을 대신 끝낼 수 없다. 남의 평가도 같다. 자기가 바꾼다면 자신이 바꾸는 것이다. 남이 대신 바꾸었는데 자기가 바꾼 줄 아는 경우가 여기서 살피는 문제다.

들어왔다고 해서 남이 대신 정한 것은 아니다

그 선배의 말을 그는 받아들였다. 지금도 보고서를 보면 먼저 누가 읽을 것인지 생각한다. 맨 처음에는 남에게서 얻은 생각이다. 그러면 남이 대신 정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처음에 남이 주었다고 나중에도 자기 안에서 자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판단하는 것은 출처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근거로 자기 것이 되는가다. 그 생각은 자기 일에서 거듭 근거를 얻었다. 선배가 말했다는 이유로만 믿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서 영감을 받으면서도 남이 대신 정하게 하지는 않을 수 있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 그는 몇 년 동안 보고서를 받으면 먼저 숫자가 보기 좋은지 살피는 습관을 들였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다. 오래 하다 보니 눈이 먼저 그곳으로 간다. 마음 안에 있고, 자동으로 작동하며, 힘들지도 않고, 늘 지속되는 습관이다. 그러면 자기 법인가?

그렇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외부의 보증도 기억되고 습관이 되면, 이후에는 밖에서 무엇을 더 넣어 주지 않아도 스스로 되풀이될 수 있다. ‘근거의 출처는 여전히 바깥에 있어도 작동까지 바깥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자동적이라는 것, 수고가 들지 않는다는 것, 오래간다는 것은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인정할 근거가 최종적으로 어디에 놓이는지를 바꾸지 않는다.’ 습관이 되었다고 소유가 생기지는 않는다. 숫자가 보기 좋은지부터 살피는 것도 회사의 논리가 그에게서 저절로 돌아가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습관을 의심하라는 뜻은 아니다. 꼼꼼함이나 시간 약속을 지키는 태도는 오래된 습관이면서 자기 안에서 근거를 얻은 것일 수도 있다. 마음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 것임이 증명되지 않으며, 자기 것이 아니라는 증거도 되지 않는다.

되찾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나중에 그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숫자가 그들을 잘못 이끌지는 않는지, 다음 분기에 산정 기준 하나 때문에 누군가 손해 보지는 않는지가 마음에 걸렸다. 무언가를 떠올려 낸다기보다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회사 때문에 눌려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듣기에는 좋지만 이 연작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발견은 어떤 것이 그 사람 자신에게서 자리를 얻었다는 뜻이지, 원래부터 있던 물건을 찾아냈다는 뜻이 아니다. 되찾는다고 하면 미리 있던 것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돌아갈 이전의 것이 없는 사람도 있다. 처음 자기 행동에서 떠오른 것은 새로 얻은 것이지 무엇이 돌아온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 몇 년 동안 신경 쓴 마음을 걷어 내면 진짜 자신이 남는다고 할 수도 없다. 외부 근거로 서 있던 것을 없애면 자리가 비는 것이지, 완성되어 있던 참된 자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자기 것이 생겨날지, 생긴 것을 인정할지는 이후의 일이다. 자기 가치를 발견한다고 오래 묻혀 있던 자신을 되찾는 것은 아니다. 그때 처음 자기 자리를 얻는 것일 수 있다.

당장은 가릴 수 없을 때

그해로 돌아가 보자. 그 마음이 자기 것인지 당시에는 알 수 있었을까. 알 수 없었다. 주의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식민화라면 어떤 것이 벌써 자기 것인 양 작동하며, 외부 근거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은 보이지 않는 상태다. ‘자기 것인 양 받아들인다’는 말 자체에 지금은 외부의 것임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 자리에서 자기 것이 아님을 알아보았다면 이미 자기 것인 양 받아들이는 상태는 끝난다. 이 종류의 문제를 지금 간파했다면 그것은 더는 바로 그 종류의 상태가 아니다. 당시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로 구별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말의 범위는 좁다. ‘이것이 내 것인가’라는 질문에 관한 말일 뿐이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지금 확인한다. 다른 팀이 이미 알았는지는 조사하면 되므로 나중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잠깐 의심이 들었다고 아무것도 판정되지는 않는다. 지금 망설인다고 외부의 보증에 기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인정한 것이 해제되는 것도 아니다.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 구별 자체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그래서 자기 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도 구별하지 못하는 가운데 행동한다. 그날 오후 그는 마음속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는지 밝힌 뒤에 알리러 간 것이 아니다. 전부 밝혀야 움직일 수 있다면 그날은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쓸 수 있는 판단으로 행동했고 가리지 못한 것은 나중에 돌아보기로 남겼다.

시간 자체가 대신 가려 주지도 않는다. 외부의 보증으로 유지되는 것을 오래 지녀도 근거가 저절로 자기 쪽으로 옮겨 오지는 않는다. 다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일은 생긴다. 세 사람을 보자. 한 사람은 가족이 정해 준 대로 의학을 공부했다. 20년 뒤에는 그것이 자기 일이 되었다고 분명히 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수술하고 환자를 만나며 서서히 자기 것으로 인정했다. 시간은 형성될 시간을 준 것이다. 한 사람은 평생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거의 그리지 않는다. 그릴 수 있을 때도 그리지 않았다는 단서는 시간이 보여 준다. 그래도 그 단서가 그녀를 대신해 읽지는 않는다. 여건이 없었을 수도 있고, 재능이 있다는 말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믿음을 떠받쳤을 수도 있다. 직접 돌아보아야 읽힌다. 한 사람은 어려서 부모의 절약을 싫어했는데 자신도 평생 절약했다. 스스로 인정한 절약도, 길들여진 절약도 똑같이 익숙해진다. 익숙하다는 것은 자기 것이라는 뜻도, 아니라는 뜻도 아니다.

돌아보되 꾸며 내지 않는다

새 동료의 질문을 받고 며칠 동안 그가 한 일을 여기서는 돌아보기라고 부른다. 지난 행동을 다시 살펴 자기 법에서 나온 것인지, 주인이 바뀐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다. 세 가지를 확인한다. 첫째는 근거를 따라 거슬러 가는 것이다. 왜 그해 평가가 그토록 중요했는가. 1등급이어야 좋은 직원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상사가 그렇게 말하고 회사가 그렇게 계산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는 갈 수 없다. 근거가 남의 평가표에 멈춘다. 왜 그 팀에 알렸는가. 속여 넘겨도 되는 사람들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거슬러 가면 자신에게 멈춘다. 사람은 목적이라고 인정하며 지금도 그 인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정직을 맨 처음 가르친 사람이 아버지였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라 지금 어디에서 근거가 끝나는지를 보는 것이다.

둘째는 사실이다. 망설였는지, 상사와 다른 팀 중 누구를 먼저 찾았는지, 다른 팀에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해 얼마나 덜 받았는지를 살핀다. 당시 이메일을 찾고 동료에게 물을 수 있다. 셋째는 그것이 오늘 자신의 이유에 어떤 지위로 들어오는가다. 평가를 중히 여긴 근거가 외부에 있었음을 알았다면 이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지위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적게 받은 상여금은 사실로 남는다. 사람을 속여 넘겨도 된다고 보지 않았다는 인정은 오늘도 자신이 인정한 것으로 들어온다. 몇 년 동안 쓸 일이 없었다고 무효가 되지 않는다. 바꾸거나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돌아보기를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틀릴 수 있고 다시 돌아볼 수 있다. 몇 년 뒤에는 당시 마음에도 일을 잘하고 싶은 자기 몫이 있었다고 알아볼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일도 고쳐 쓰지 못한다. 그해 일과 잠 못 이룬 밤들은 그대로 있었다. 돌아보기는 그은 선을 보는 것이지 지금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다. 당시 설명을 시간을 두고 따라가며, 근거는 설명과 사실이지 지금의 느낌이 아니다.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새 동료의 질문은 유익하지만, 그가 ‘그 마음은 처음부터 당신 것이 아니었어요’라고 한다고 판정이 끝나지 않는다. 남이 할 수 있는 것은 질문이나 그 설명 안에서는 떠올리지 못했던 관점을 건네는 일이다.

가려 보기는 남이 내주는 숙제가 아니다. 하지 않았다고 실패로 기록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된다. 자신을 목적으로 인정하고 타인도 목적으로 보면서 다른 사람이 자라도록 돕는 데 이르면, 무엇이 자기 것인지 세심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외부의 보증으로 서 있는 것을 자기 것인 줄 알고 남에게 ‘내 법’으로 건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뜻이어도 상대를 대신해 그것을 받아들여 주기까지 하면 이 체계에서는 온화한 식민화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기 것인지 살피려 하지 않으면서 남이 스스로 자라도록 돕는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살피는 일이지 이미 다 가려 낸 상태가 아니다. 여전히 구별하지 못하는 가운데 행동한다.

새 동료가 대답을 기다린다. 가장 편한 답은 생각도 하지 않고 알리러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생각했고 망설였고 잠도 못 잤다. 돌아보기에는 시험지가 없다. 자기 설명을 따라 거슬러 가는데 설명이 꾸며 낸 것이라면 읽히는 것도 꾸며 낸 것뿐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경계를 하나 둔다. 꾸며 내지 않는다. 한 것은 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세 면이 있다. 끝나지 않은 것을 끝났다고 하지 않고, 주인이 바뀐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으며, 자기 것을 주인이 바뀐 것처럼 말하지도 않는다. 겸손해 보이려고 알리러 간 일까지 ‘아버지께 배운 대로 했을 뿐’이라고 떠넘기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 사람들을 속여 넘겨도 상관없는 사람들로 볼 수 없어서 알리러 갔어요. 그해 평가가 떨어질까 봐 무척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둘 다 있었어요. 다만 오늘도 내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앞의 마음이에요.’

원논문과 읽는 범위

Qin, Han (2026), 《자기 것인가》, SAE 행동론 3편을 바탕으로 한 중국어 산문의 한국어 독립 재서술이다. 원논문 · DOI: 10.5281/zenodo.22970762. 돌아보기는 틀릴 수 있으며 심리 검사나 타인에 대한 인증이 아니다. 처음 외부에서 얻었다는 사실과 지금도 근거가 외부에 멈추어 있다는 것은 구별한다.

원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