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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행동론 · 02

다들 그렇게 한다고 했다

입사 첫해, 팀장은 계산법을 바꾸라며 다들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는 바꾸었다. 여러 해 뒤 젊은 동료가 같은 말을 한다. 자신을 넘겨주지 않는 일과 타인을 대신 정하지 않는 일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Han Qin ·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1편의 그날, 상사는 지표 하나를 다른 산정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라고 했다. 그는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기준을 바꾸라는 말을 들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 회사에 막 들어온 첫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월말 보고서의 수치가 좋지 않자 팀장이 계산법을 바꾸라고 했다. ‘다들 그렇게 해.’ 그는 별생각 없이 바꾸었다. 그 무렵에는 평가에서 1등급을 받아야 좋은 직원이라는 말도 믿었다. 자신을 평가할 때 쓰는 자가 바로 그 평가표였다.

나중에는 자기 방식이 생겼다. 보고서는 정확해야 하고 산정 기준은 일관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누가 함부로 기준을 바꾸라고 하면 반박했다. 그런데 그 몇 년 동안 그는 그 방식을 신입 직원들을 재는 데도 썼다. 기준이 앞뒤로 맞지 않으면 상사 앞에서 저 사람은 일을 못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를 서둘러야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주말까지 일정에 넣었다. 그들이 자기 규칙을 실행하는 손인 것처럼 대했다.

그보다 더 뒤가 1편의 그날이다. 그는 산정 기준을 바꾸지 않았고, 다른 팀에 알렸으며, 젊은 동료도 보호했다. 이번 글은 그 길을 돌아본다. 누구나 끝까지 걷는 길은 아니다.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무는 사람도 많다. 사람의 높낮이를 나누는 길로 쓰지도 않는다. 그가 남의 규칙에 휘둘렸고 자기 규칙으로 남을 휘두르기도 했다는 사실은 감출 일이 아니다. 한 일은 한 대로 말한다.

그때 바깥의 규칙은 왜 거의 아무 저항 없이 들어왔을까. 이 체계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 법이 아직 자라지 않았을 때 외부 규칙이 들어오면, 안에서 부딪히는 것이 없어 꼭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그 규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직 선택에 쓸 자기 것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좋은 직원이란 무엇인지 생각하면 그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그 평가표뿐이었다.

먼저 하지 않는다

1편의 그날 그가 처음 한 일은 ‘하지 않음’이었다.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행동에서 식민화에 맞서는 일은 여기서 시작한다.

이 체계가 말하는 식민화의 정의는 간단하다. 자기 목적으로 타인 자신의 법을 대신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 형태로 다가온다. 하나는 시키는 일이다. 남이 자신을 식민화하는 데 쓰는 일을 시키고, 그 일을 하면 남의 목적이 자기 법을 대신한다. 다른 하나는 받아들이라고 하는 생각이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인정하면 남의 척도가 자신에게 법을 세우게 된다. 따라서 맞서는 부정도 둘이다. 남이 자신을 식민화하는 데 쓰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자기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 법이 무엇인지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산정 기준을 바꾸지 않을 때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미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했을 수 있다. 다만 이번에 바꾸면 연말 평가표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를 대신 정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먼저 그것을 지우고, 그다음을 본다.

생각에 대해서도 그렇게 선을 그었다. 그해 연말 그는 그 보고서 때문에 3등급을 받았다. 평가표는 여전히 보았고 그것이 상여금을 정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다만 ‘1등급을 받아야 좋은 직원이다’라는 말로 자신을 재지는 않았다. 평가표는 남아 있고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그 말을 했다. 그가 지운 것은 그 말이 자신을 대신해 법을 세우던 자리였다.

식민화를 알아보기 쉬울 때도, 어려울 때도 있다. 두 갈래가 있기 때문이다. 한 갈래는 바깥에서 누르는 것이다. 어떤 주장이 그에게 강요되고, 그가 부인해도 그 부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와 타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다른 사람도 읽어 낼 수 있다. 다른 갈래는 그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그에게 통하지만 그것을 받치는 근거가 사실은 외부의 보증이라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갈래는 자신만이 찾아낼 수 있다. 첫해에 기준을 바꾼 일은 앞의 갈래로 눈에 보였다. 좋은 직원은 1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데 마음에 몇 년씩 남아 있었던 것은 뒤의 갈래다.

그렇다고 외부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남의 평가를 듣고 활용하며 그 때문에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부정하는 것은 그 평가가 자신을 대신해 법을 세우는 자리뿐이다. 생각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식민화의 증거가 되지도 않는다. 바뀔 수 있다는 것은 그 자리가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 않은 뒤에야 알아보기도 한다

산정 기준을 바꾸지 않은 뒤 그는 다른 일을 했다. 다른 팀에 알리러 갔다. 나중에 그는 그 일은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순서이지 도출 관계가 아니다. 1편에서 하지 않음과 하지 않을 수 없음은 서로에게서 도출되지 않는 두 행동이라고 했다. 그가 걸어온 길에서는 먼저 하지 않았고, 그 뒤에 자신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알아보았다. 첫 행동에서 두 번째가 나온 것이 아니다. 자신을 누르던 것을 먼저 지우자 자리가 비었고, 그제야 자기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서서히 보였다. 다른 사람의 길은 다를 수 있다.

알아본다고 해서 잃었던 자신을 되찾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묻혀 있어 파내기만 하면 되는 자기가 아니라, 그때 처음 자기 자리를 얻는 것일 수 있다. 누가 가르쳐 준 결과도 아니다. 이 체계에서 ‘나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정보 전달만으로 옮겨 줄 수 없고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가 알아본 자기 법은 보고서를 읽는 사람들이 숫자 때문에 잘못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 법이 생겼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첫 절에서 보았듯 그는 자기 방식이 있으면서도 그것으로 남을 평가하던 시절을 보냈다. 자신이 더는 식민화되지 않는 것과 남을 식민화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녀도 말했다. ‘다들 그렇게 해요’

그날 그는 젊은 동료도 생각했다. 상사의 지시대로 초안을 만든 사람은 그녀였고, 문제가 드러나면 가장 쉽게 책임을 뒤집어쓸 사람도 그녀였다. 그는 그녀를 보호했다.

며칠 뒤 그녀가 말했다. ‘상사가 고치라고 해서 고쳤어요.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그가 회사에 들어온 첫해에 했던 말과 같았다.

그는 그녀에게 ‘당신은 식민화되었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상사를 찾아가 초안은 상사의 지시대로 만든 것이므로 그녀 혼자 책임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자신이 첫해에 기준을 바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마친 뒤에도 그녀를 대신해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자신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알아보면서 그는 이것도 알았다. 타인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은 자신이 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스스로 세워야 한다. 여기에는 여전히 타인도 목적으로 본다는 전제가 있다. 그 전제는 자기 법을 알아보았다는 데서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타인도 자기 가치를 가질 수 있으며 남이 대신 주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때, 그것이 자신의 몫이 된다. 그가 알아본 것은 그녀의 몫이 생겨날 자리가 그녀에게 있다는 사실이지, 그 안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지는 아니었다.

따라서 식민화에 맞서는 일은 자신이 당하지 않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체계의 기초편은 하나의 도덕률을 세웠다. ‘어떤 주체의 여항이든 억압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자신에게 세운 법이지 남에게 주는 법이 아니라고 밝혔다. 향하는 방향은 보편적이지만 구속은 그 법을 가진 사람 자신에게만 미친다. 자기 목적으로 남의 법을 정하면 그가 스스로 법을 세울 몫을 억누른다. 그래서 자기 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그 몫을 누르는 식민화의 행동에도 반대한다.

타인이 식민화되는 것에 반대할 때는 세 가지 경계가 있다. 첫째, 반대하는 것은 식민화하는 행동이지 그녀가 속으로 무엇을 인정하는지 대신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 바깥에서 누르는 갈래는 다른 사람도 알아보고 반대할 수 있다. 그녀 자신이 믿고 있는 갈래는 그녀만 찾아낼 수 있으므로, 남은 한 가지 관점을 건넬 수 있을 뿐이다. 상사를 찾아간 것은 행동에 반대한 것이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관점을 건넨 것이다. 둘째, 보호했다고 그녀의 법을 대신 세우는 것은 아니다. 누르는 것을 치워 준 뒤 그녀가 어디로 갈지는 그녀의 일이다. 셋째, 이 기회에 자기 규칙으로 사람을 재지 않는다. 그가 중간의 몇 년 동안 서 있던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식민화에 맞서다가 자기 법으로 남의 옳고 그름을 정한다면, 상대를 이기려다 자신도 같은 쪽이 되는 셈이다.

두 갈래의 선

안으로는 식민화에 맞서고, 밖으로는 타인이 스스로 자라도록 돕는다. 이것이 연작을 이끄는 줄기다.

안쪽에서는 계속 맞선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식민화에 맞서는 일에는 끝나는 날이 없다. 외부 규칙은 늘 있고, 이름이나 통로를 바꾸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마음 안에 들어왔다고 벌써 자기 법이 된 것도 아니다. 습관은 어떤 거부는 쉽게 하고 다른 거부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안으로는 계속 지켜 나간다고 말한다.

바깥에서는 도우려고 힘쓴다고 말한다. 남을 식민화하지 않는다는 선은 취소할 수 없다. 그가 스스로 자라도록 돕는 것은 하나의 방향이다. 상대가 받아들이기를 원하는지, 받아들이기에 맞는지, 때가 되었는지는 그를 대신해 답할 수 없다. 그래서 힘쓴다고 하지 보장한다고 하지 않는다. 남이 식민화되는 데 반대하는 것도 그 방향의 일부다. 그를 누르는 것이 먼저 비켜야 자기 법이 자랄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연작의 배치도 보여 준다. 3편부터 5편은 주로 자기 쪽에서 이 문제를 펼친다. 자기 것인지 구별하는 문제, 할 수 있음과 없음, 자기 가치의 발전이다. 6편부터 9편은 주로 타인 및 공동생활로 이어 간다. 타인의 법을 대신 세우지 않기, 뒤섞인 현실에서 자기 법대로 행동하기, 서로를 찾기, 함께 지키기다. 글의 배치일 뿐 연작을 두 절반으로 자르는 것은 아니다. 보호·저항·지키기에서도 식민화에 맞서는 일은 계속된다. 다른 사람이 자라도록 돕다가 자기 법이 정말 자기 것인지 다시 묻게 되기도 한다.

안팎에 서로 다른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 식민화에 맞서고 밖으로 타인이 자라도록 돕는 일은 같은 인정에서 나온다. 나 자신은 목적이며, 타인도 목적이라는 인정이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Qin, Han (2026), 《식민화에 맞서기》, SAE 행동론 2편을 바탕으로 한 중국어 산문의 한국어 독립 재서술이다. 원논문 · DOI: 10.5281/zenodo.22970758. 이야기는 허구다. 이 사람의 경로를 보편적인 단계로 규정하거나 사람의 높낮이를 나누는 기준으로 쓰지 않는다. 타인을 누르는 행동에 반대하는 것과 그가 속으로 무엇을 인정하는지 대신 판단하는 것을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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