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론 · 01
그 수치는 바꾸지 않겠다
상사는 지표 하나를 다른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라고 한다. 그는 먼저 수치를 바꾸지 않겠다고 정한다. 하지 않는 일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은 각각 다른 선이다. 그 선을 긋는 판단은 규칙이 대신하지 못한다.
화면에 떠 있는 보고서
한 사람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화면에는 보고서가 떠 있다. 상사는 지표 하나를 다른 산정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수치가 좋아지고 연말 평가도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기준을 바꾸는 순간 다른 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가 가려진다. 보고서는 상부에만 올라가므로 그 팀은 볼 수 없다. 다음 분기가 되어야 문제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그는 이 사정을 안다. 산정 기준을 바꾸지 않은 채 보고서를 올리면 자기에게도 힘든 한 해가 되리라는 사실을 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연작은 바로 그런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을 다룬다. 저자가 그를 대신해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며 그곳에 선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서술한다. 이 글이 답하려는 질문도 하나뿐이다.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의 말하기 방식이 된다. 뒤의 글에서 다루는 일도 모두 그 방식으로 말할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세워 볼 만하다.
하지 않기로 한다
그가 먼저 분명히 한 것은 이것이다. 그 수치는 바꾸지 않겠다.
이것이 어떤 행동인지 알려면 우선 무엇이 아닌지 보자. 그는 먼저 ‘정직’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거기서 수치를 바꾸면 안 된다는 결론을 끌어낸 것이 아니다. 그런 추론을 하지 않았다. 이 일을 보았을 때 이것은 하지 않겠다고 알았을 뿐이다. 목표는 나중에야 말로 설명할 수도 있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정직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유를 말했다가 다음 날 자신도 그 이유는 아닌 것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유를 잘못 설명할 수는 있어도, 선을 그은 일 자체는 실제로 일어났다.
자기 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이것이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부정한다. 여기서는 그것을 ‘하지 않음’이라고 부른다. 지우는 대상이 꼭 행동인 것만은 아니다. ‘수치를 바꾸지 않겠다’보다 앞서 그은 선도 있다. 그는 그 팀을 속여 넘겨도 상관없는 사람들로 보지 않는다. 여기서 지운 것은 어떤 행동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두 선은 서로 다른 층위에 놓인다. 뒤에서 이 구별이 다시 필요해진다.
하지 않는다고 소극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은 평생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이 훨씬 많다. 그 대부분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여기서 말하는 ‘하지 않음’이 아니라 단지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하지 않음’은 생각해 본 뒤의 일이다. 어떤 일이 눈앞에 놓였을 때 그것을 지운다. 지우는 것도 하나의 행동이다. 아무도 보지 않고 보고서에도 기록되지 않지만, 이 일에서 그 사람이 처음으로 한 일이다.
하지 않음은 금지와도 다르다. 금지는 남이나 제도가 나에게 하는 말이고, 하지 않음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제도도 금지하고 나도 하지 않는다면 두 가지 일이 겹친 것이지 같은 일은 아니다. 제도가 그 규정을 없애도, 내가 하지 않겠다는 선은 남을 수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수치를 그대로 둔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일을 발견한다. 다른 팀은 여전히 보고서를 볼 수 없고, 문제도 다음 분기가 되어야 드러난다. 수치만 바꾸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보고서를 넘길 수도 있다. 남들이 알아차리든 말든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 앉아서 생각하던 그는 자기가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알아차린다. 그 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두 번째 일이다.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부정한다. 여기서는 ‘하지 않을 수 없음’이라고 부른다. 정확히 말해야 한다. 누가 그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상사가 원하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다. 양심을 그의 바깥에 서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면, 그 양심이 시키는 것도 아니다. 자기 법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 선 그는 ‘알리지 않음’을 지웠다. 말하지 않는 쪽을 지웠기에, 말하는 것이 그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 부분은 연작 전체에서 가장 오해하기 쉽다. 하면 안 될 것들을 모두 지우면 나머지가 저절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 사례에 대입해 보면 성립하지 않는다. ‘수치를 바꾸기’를 지워도 ‘그 팀에 알리기’만 남는 것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사직하기, 상사와 다시 이야기하기, 익명 편지를 쓰기 등 넓은 영역이 남는다. 하나를 지운다고 다른 하나가 저절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다시 한번 선을 그은 결과다. 두 번째 행동이지 첫 행동을 하고 남은 나머지가 아니다.
때로는 그 두 선이 충돌한다. 그 팀에 알리면 상사의 지시대로 초안을 작성한 젊은 동료가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고 해보자. 그는 그 동료가 남의 책임을 대신 지지 않도록 보호하지 않을 수도 없다. 둘 다 자기 법에 따른 선이지만, 이번에는 하나를 먼저 택할 수밖에 없다.
동료를 보호한다는 선은 어디서 오는가. 이미 인정해 둔 어떤 가치에서 끌어낸 결론이 아니다. 그는 ‘아랫사람이 손해 보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먼저 인정한 적이 없을 수도 있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함께 있다. 사실, 곧 그녀가 정말 남의 책임을 떠안을 상황이다. 그가 서 있는 자리, 곧 그녀를 남의 책임을 떠넘겨도 되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자리다. 다른 팀도 속여 넘겨도 되는 사람들로 보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층위다. 그리고 그가 이번에 내린 판단, 곧 자신이 그녀를 보호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세 가지가 모두 있는 한 그 선도 있다. 상사가 더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는 등 하나가 바뀌면 그 선도 달라진다.
그는 한쪽을 택했다. 그렇다고 택하지 않은 선이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그 선의 조건이 여전히 있고 젊은 동료가 책임을 뒤집어쓸 가능성도 남아 있다면, 그 일은 여전히 자기 몫으로 남는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말로 뒤늦게 정당화하며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일처럼 만들지도 않는다. 어느 쪽을 먼저 할지는 자신의 판단이다. 택하지 않은 선이 계속 남는지는 그 선 자체의 조건에 달린 별개의 문제다.
그 뒤에 남는 세 가지
두 번 선을 긋고 나면 그의 앞에는 이런 구도가 생긴다. 수치를 바꾸는 것은 지웠다. 다른 팀에 알리지 않는 것도 지웠다. 그 밖에는 무엇이 남는가. 애초에 이 일과 무관해 이번 판단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남은 것으로 세지 않는다. 남는 것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미 판단한 것들이다. 직접 찾아가 알릴지 이메일로 알릴지, 누구에게 먼저 말할지, 양쪽 사정을 모두 반영할 산정 기준을 상사에게 함께 제안할지 같은 일이다. 어느 것도 지우지 않았고 어느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로 정하지 않았다. 이 영역에 그의 자유가 있다. 똑같이 수치를 바꾸지 않고 알리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해도, 알리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영역에서 선택하는 것은 그 사람의 판단과 미감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저울질하고 있어서 당장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 알릴지, 보고서를 제출한 뒤에 알릴지가 그렇다. 너무 일찍 알리면 보고서가 반려되어 다시 작성되고 그 팀은 여전히 보지 못할 수 있다. 늦게 알리면 그 팀이 며칠을 더 잃는다. 이 문제는 이미 이번에 고려하는 범위 안에 있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여항이 아니라, 지금 진행 중인 판단 안에서 판단을 기다리는 문제다.
마지막은 이번 판단이 처리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면 앞으로도 이 회사에 계속 다닐지다. 보고서와 관련된 문제이고 보고서 때문에 그의 앞에 나타났지만, 이번 판단은 그것을 지우지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로 정하지도, 저울질할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이 체계에서는 이런 것을 여항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선을 그으려는 일과 관련은 있지만, 이번 선 긋기가 실제로 처리하는 범위에는 들어가지 않은 내용이다.
그래서 ‘남겨 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오늘 사직 여부를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그 문제가 없는 척하거나, 오늘 결정하지 않았으니 해결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 다시 눈앞에 나타나면 그때는 또 다른 판단이 된다. 이번 판단의 여항은 다음 판단의 출발점이 되곤 한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여항이 주는 것은 가능성이지 추진력이 아니다. ‘계속 다닐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아 있다고 저절로 사직하게 되지도, 계속 다니게 되지도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판단과 선택뿐이다. 이 체계에는 여항이라는 이름의 모터가 없다.
‘마땅히 해야 함’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인 이유
누군가 왜 그 팀에 알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여기서는 ‘마땅히 해야 하니까’라고 답하지 않는다. 그 말이 듣기 싫어서가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한다’는 문장 자체가 사람 바깥에서 내려오는 명령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명령하는 것이 자기 이성이라도 문장의 형태는 명령으로 남는다. ‘나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표현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외부에서 주입된 규율 역시 똑같이 말할 수 있으므로, 그 표현 자체로는 둘을 가릴 수 없다.
‘하지 않을 수 없음’은 명령이 아니라, 이 자리에 서 있는 한 어떤 일을 취소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기 법에 더 가까운 표현이다. 그렇다고 그 선이 반드시 자신에게서 나왔음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식민화를 어떻게 알아볼지는 다음 두 편에서 다룬다. 여기서 취소할 수 없는 것은 두 층위로 나뉜다.
한 층위는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다. 그 팀을 속여 넘겨도 상관없는 사람들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 부분을 취소할 수 없다. 모두 사람을 목적으로 인정한 자리이기에 공통될 수 있다. 판단에서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대개 사람에 관한 데서 생긴다.
다른 층위는 이번에 무엇을 하는가다. 그 팀에 알리는 것은 자기 법, 사실, 시기, 다른 방법의 유무를 고려한 이번 판단이다. 이 판단에는 질문할 수 있다. 왜 그러느냐는 물음에 ‘내 판단이니까’라는 말로 막아설 수는 없다. 수정할 수도 있다. 나중에 그 팀이 벌써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더는 알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실행이 막힐 수도 있다. 상사가 먼저 불러 이야기하거나 병이 날 수도 있다. 똑같이 사람을 목적으로 보는 두 사람이 이 층위에서는 전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그 팀보다 상사를 먼저 찾아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쪽이 그 자리를 떠났다는 뜻은 아니다.
그 자리를 떠나는 것도 가능하다. 바로 이 일에서 떠날 수 있다. 자기 연말 평가를 위해 그 팀을 속여 넘겨도 되는 사람들로 보고, 수치를 바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정말 그렇게 떠난다면 이 연작은 그를 판결하지 않는다. 다만 이 일에서 그 ‘하지 않을 수 없음’이 그에게 더는 성립하지 않을 뿐이다. 이 일에서 떠났다고 앞으로 영원히 사람을 목적으로 보는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은 ‘나는 사람을 목적으로 본다’면서 동시에 ‘저 팀은 속여 넘겨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일이다. 누가 금지해서가 아니라 같은 사람의 같은 자리에서 두 말이 함께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선을 긋는가
지금까지의 선은 모두 그 자신이 그었다. 선을 어디에 그으라고 누가 알려 주는가. 어떤 규칙도 대신 그어 줄 수 없다. 규칙을 눈앞의 일에 적용하는 단계까지 규칙이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판단을 대신하려는 규칙도 결국 누군가가 지금 이 상황에 적용되는지 판단해야 한다. 규칙·사실·이유·감정은 모두 들어올 수 있지만 모두 재료다. 어느 것을 쓸지 고르고, 판단을 내린 뒤 그것을 떠맡는 일은 판단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력이란 특별히 영리한 능력이 아니다. 일이 눈앞에 놓였을 때 하지 않을 선과 하지 않을 수 없는 선을 긋고, 그 밖의 것을 남겨 두는 능력이다.
그가 참고할 만한 감각은 있다. 무언가를 할 때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나 어딘가 어긋나는 느낌이다. 산정 기준을 바꾸려면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 바꾸지 않고 알리러 가는 쪽은 결과가 힘들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느낌이다. 그 감각은 다시 물어볼 방향을 준다. 이것은 내 법이 펼쳐지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척도가 나를 대신해 결정하는 것일까? 다만 실마리일 뿐이다. 익숙한 일도 편하고 새로운 일은 원래 어색하다. 감각 자체가 습관 때문에 잘못 길들여질 수 있다. 무엇이 자기 것인지 증명하지 못하며, 더구나 남을 판정하는 기준으로 쓸 수 없다.
그는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다른 팀이 이미 알고 있었을 수 있다. 최근 기록을 확인하면 지금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종류의 오류다. 질문에 막힐 수도 있다. 동료가 그 팀을 위해 알리러 가는 것인지, 자기 마음이 편해지려고 그러는 것인지 묻는다면 답하는 사이 자신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확인과 다른 사람의 질문은 지금 활용할 수 있는 두 가지 수정 통로다. 반면 당장은 확인할 수 없는 오류도 있다. 밖에서 들어온 불안을 자기 법으로 잘못 받아들인 경우다. 그것은 나중에 돌아보아야 하며 3편에서 다룬다.
그는 오늘 퇴근 전에 직접 찾아가 말하기로 정했다. 그에게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늦게 알수록 그 팀의 수습이 어려워진다는 것, 자기 연말 평가, 젊은 동료의 처지, 오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 이미 받아들인 정직의 가치다. 이유가 저절로 행동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같은 이유들로 오늘 말할 수도, 제출 후에 말할 수도 있다. 직접 말하거나 이메일을 쓸 수도 있다. 이유들을 한꺼번에 잴 공통 척도도 없다. 그 팀의 손실, 자기 평가, 동료의 위험, 오늘과 내일은 서로 다른 데서 나오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 걸린 것이어서 같은 수치로 환산해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 그래도 그는 어느 쪽 위험이 큰지, 언제 말하는 편이 나은지, 자신이 할 수 있는지를 비교한다. 다만 비교는 바로 이 일 안에서 이루어지고, 비교한 뒤에도 선은 자신이 그어야 한다.
뒤의 글들도 이 방식으로 말한다. 하지 않음, 하지 않을 수 없음,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됨, 아직 판단하지 못한 것, 여항. 이것으로 그 판단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은 선이 모두 자기 법에서 나왔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3편의 문제다. 선을 그었다고 실행할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4편의 문제다. 결정을 대신해 줄 방법을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Qin, Han (2026), 《하지 않음과 하지 않을 수 없음》, SAE 행동론 1편을 바탕으로 한 중국어 산문의 한국어 독립 재서술이다. 원논문 · DOI: 10.5281/zenodo.22970752. 보고서 이야기는 허구다. 두 부정은 서로에게서 도출되지 않으며, 이 글은 독자를 대신해 구체적인 행동을 선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