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읽기
Non Dubito

행동론 · 들어가며

결정 앞에 선 사람에게

대신 결정해 줄 사람도, 그 일을 대신 판단해 줄 규칙도 없다. 그래도 자신을 넘겨주고 싶지는 않다. 이 연작은 그런 사람에게 무엇을 건네며, 무엇을 대신하지 않는가.

Han Qin ·

누구를 위한 글인가

이 연작은 어떤 결정을 눈앞에 둔 사람을 위해 쓴다. 결정해야 할 일이 자기 앞에 있는데, 누구도 대신 정해 주지 않고 이미 마련된 규칙이 대신 판단해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을 통째로 넘겨주고 싶지는 않다.

핵심은 마지막 말이다. 결정을 앞두고 기꺼이 자신을 상사나 습관, 정해진 공식이나 사람들의 뜻에 맡기는 사람도 많다. 이 연작은 그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그들에게 말하고 있지는 않다. 자신에게 남에게 넘겨줄 수도 있는 자기 자신이 있음을 알아차렸고, 그래도 넘기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이 이 글의 독자다.

여기서 살피는 것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기 법에 따라 행동하는가다. 이 체계에서 ‘자기 법’은 자신이 자신에게 세우며, 자신에게만 적용하는 법을 뜻한다. 다른 사람의 법이 내 법과 내용까지 꼭 같더라도, 그것은 그가 스스로 도달한 법이지 내가 준 법이 아니다.

연작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은 2편에서 자세히 풀어 볼 것이다. 안으로는 식민화에 맞서고, 밖으로는 타인이 스스로 자라도록 돕는다. 안으로는 남의 목적이 자기 법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고, 밖으로는 타인의 법이 그 사람 자신의 것으로 자라도록 돕되 내 법을 대신 심지 않는다. 뒤로 갈수록 이 두 가지는 같은 일을 양쪽에서 바라본 것임이 드러난다.

맨 앞에 놓은 이 글은 사실 마지막에 썼다. 아홉 편을 모두 써야 연작이 맡은 몫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네 가지 일을 한다. 이 연작이 무엇이 아니며 독자를 대신해 무엇을 하지 않는지 밝힌다. 누구에게 무엇을 건네는지 말한다. 앞선 연작들이 넘겨준 질문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각 편의 내용을 짧게 소개한다.

이 연작이 아닌 것 네 가지

성공학이 아니다. 이미 정해 놓은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기술을 알려 주지 않는다. 일이 반드시 잘되게 만드는 방법도 없다. 한 사람이 어떤 일 앞에서 어떻게 자기 선을 긋는지 살핀다. 그 뒤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흔히 그 사람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올바른 행동 목록도 아니다. 어느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알려 주는 목록은 나오지 않는다. 몇 가지 행동 방식을 나열하는 대목에서도 그대로 따라 하라는 목록은 아니라고 그 자리에서 밝힌다.

역사가 개인에게 내리는 동원령도 아니다. 9편은 많은 사람이 함께 향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공동의 변화를 다룬다. 그렇다고 그것이 개인을 징발할 권리를 가진 더 높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명단에 동료의 이름을 쓰지 않는 일, 한 사람을 보호하는 일, 발코니에서 목공을 하는 일도 큰 흐름에 쓸모가 있어야 비로소 의미를 얻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좋다는 것을 입증하면 실제로 남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더 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아니다. 마음속으로 사람은 목적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실제 어떤 일에서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은 같지 않다. 그래서 자꾸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로 돌아온다. 기초편이 밝힌 최소한의 요구는 직접적이다. 거짓말하지 않는 것, 한 일은 했다고 말하고 누구를 위해 한 일인지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독자를 대신해 하지 않는 일 네 가지

독자의 행동을 골라 주지 않는다. 어떤 일을 눈앞에 둔 사람이 등장하지만, 글은 그가 서 있는 자리가 어떤지 살필 뿐 그를 대신해 선택하지 않는다. 독자를 대신해서도 선택하지 않는다.

행동 규칙을 주지 않는다. 규칙은 판단할 때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규칙을 바로 이 일에 적용하는 판단까지 규칙이 대신할 수는 없다. 1편은 이 점에서 출발한다.

반드시 결론을 내주고 반드시 맞히는 판정 기준을 주지 않는다. 그대로 사용하기만 하면 언제나 판단할 수 있고 그 판단이 언제나 옳아지는 기준은 없다.

독자의 구체적인 행동에 옳고 그름을 판결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구조다. 어떤 설명이 스스로 내세운 전제와 양립할 수 없는지, 어떤 서술이 사실과 맞지 않는지는 지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바로 그 일에서 옳게 행동했는지까지 이 연작이 판결하지는 않는다.

왜 이 네 가지를 하지 않는가. 기초편은 하나의 보조명제만 세운다. ‘자기 자신에게 세우는 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를 세우지 않는 이유도 곁에 적어 두었다. 여기서 무엇이든 두 번째 명제를 끌어내 독자에게 적용하면 외부에서 독자에게 법을 건네는 일이 되어 첫 명제 자체를 어기기 때문이다. 위의 네 가지 중 하나라도 대신 해주는 순간, 이 연작은 독자가 자기 법을 세우는 자리 밖에 서게 된다.

이 연작이 건네는 것 세 가지

첫째는 부정과 여항을 행동에 적용해 보는 생각이다. 사람은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것을 부정한다. 그리고 한 번 판단했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남는 것이 있다. 이 생각은 1편부터 펼쳐진다.

둘째는 바꾸어도 되는 하나의 예로서 저자 자신의 자세다. 도덕률 연작에서도 저자가 제시한 자세는 자기 처지에서 택한 하나의 서는 방식일 뿐, 규범도 계율도 아니라고 밝혔다. 독자는 자기 자신에게 법을 세우는 사람이며 자신의 판본을 세워도 좋다. 여기 나오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셋째는 조건이 붙어 있는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여기서 어떤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할 때는 어떤 자리에 서 있는 한 그 일을 취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명령이 아니다. 그 자리가 무엇인지는 다음 절에서, ‘하지 않을 수 없음’에 어떻게 조건이 붙는지는 1편에서 설명한다.

독자에게 했던 약속과 관련되므로 서술 방식도 밝혀 둔다. 앞선 의미론의 여러 글은 ‘마땅히 해야 한다’는 문제가 나오면 도덕률·권리론·행동론으로 넘긴다고 안내했다. 그중 행동론에 맡긴 질문에 이 연작은 한결같이 ‘하지 않을 수 없음’과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됨’으로 답한다. ‘마땅히 해야 함’으로 답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1편에서 말한다.

한 번만 밝혀 두는 전제

전제는 하나다. 나 자신은 목적이며, 타인도 목적이다. 이것이 논의가 성립하는 범위다. 본문에서 전제를 밝히는 것은 여기 한 번뿐이고, 이후에는 이 대목을 짧게 가리킨다.

이 연작은 그 전제를 증명하지 않고 선언한다. 타인도 자기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인정은 남이 대신 주지 못한다. 앞선 글들은 각자가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몫으로 이 문제를 두었다. 여기서 다시 세우지 않는다. 그 전제에 서 있지 않은 사람에게 이 연작의 논의는 성립하지 않으며, 그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전제가 있다고 모든 일에서 실제로 남을 목적으로 대한다는 보장도 없다. 바로 이 일에서 그렇게 대하고 있는지는 이 일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로 확인해야 한다. 논의의 범위를 정했다고 그 확인까지 끝난 것으로 치지 않는다.

서 있는 자리는 자격이 아니다. 여기에 서 있다고 남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것도, 인증서를 받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말할 뿐, 층위를 정해 사람에게 딱지를 붙이지 않는다.

넘겨받은 질문과 글의 순서

가치론·의미론·충돌론이 행동론으로 넘긴다고 명시한 항목은 모두 스물아홉 개다. 앞글에 해당하는 논문은 그것들을 공개된 글에 비추어 하나씩 확인했다. 가치론이 스스로 세운 원칙을 따른 것이다. 나중 글에서 다루겠다는 참조는 빚이다. 약속을 이행하거나, 이유를 밝히고 공개적으로 다른 곳으로 넘기거나, 이유를 밝히고 공개적으로 철회해야 한다. 공개된 텍스트만 세며 내부 편집 기록은 세지 않는다. 스물여덟 항목은 아홉 편에서 이행했다. 남은 하나인 돌봄 윤리와의 대화는 마지막 대화편에서 다루기로 했고, 그곳에서 이행한다.

뒤에 이어질 작업도 밝혀 두었다. 이 연작은 우선 행동을 충분히 서술하고, 제2비판과 제3비판이 나중에 그것을 다시 검토한다. 여기서 그 두 비판을 미리 진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중에 검토를 받는다는 이유로 지금 해야 할 서술을 줄이지도 않는다.

먼저 예시의 성격을 말해 두자. 1편부터 6편까지는 보고서를 만드는 한 사람을 따라간다. 이론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 만든 일상적인 허구다. 7편부터 9편까지는 실제 역사 속 사건을 따로 들며, 모두 2000년 이전의 일이다. 개별 행동을 읽으려는 것이지 어떤 인물 전체를 기리는 초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아홉 편을 차례로 소개하면 이렇다. 1편은 연작 전체의 말하기 방식을 세운다. 사람이 결정할 때 하는 일은 부정이며, 규칙은 판단을 대신할 수 없다. 2편은 남의 규율 안에서 살던 사람이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살핀다. 남이 자신을 식민화하는 데 쓰는 일을 하지 않기 시작하고, 자신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알아보며, 타인의 몫은 타인만이 세울 수 있음을 알아간다. 3편은 바깥에서 온 것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당장 구별이 되지 않을 때 할 일, 나중에 돌아보는 방법을 다룬다. 무엇을 했는지는 한 그대로 말한다. 4편은 몸·감정·능력·습관·망설임이 어떻게 행동에 들어오는지, 행동이 어떻게 시작되고 지속되며 중단되거나 바뀌는지 살핀다. 한 번 감당하지 못한 경우와 끝내 할 수 없는 경우도 다룬다.

5편은 자기 가치를 남에게 쓸모 있다는 증명에 기대지 않고 시간 속에서 어떻게 발전시키는지 쓴다. 6편은 식민화하지 않는 일을 살핀다. 타인이 스스로 자라도록 돕는 것은 하나의 방향이며, 반드시 상대의 몫을 남겨 두어야 한다. 그가 내게서 얻은 것은 그의 것이다. 7편은 싹트는 시기, 뒤집히는 시기, 자리를 잡은 시기라는 서로 다른 처지에서 타협·비협력·퇴장·보호·저항을 살핀다. 8편은 자기 법에 따라 행동하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을 다룬다. 뜻을 같이한다고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며, 함께 일해도 하나의 주체로 합쳐지지 않는다. 9편은 공동의 변화가 함께 향할 수 있는 방향이지 사람을 징발할 권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을 다시 수단으로 환원하지 않도록 지키는 데서 아홉 편을 마무리한다. 이후에는 아홉 편 바깥에 서서 기존 철학 전통과 대화하는 글이 별도로 이어진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바탕이 된 논문은 Qin, Han (2026), 《행동이 아닌 것》, SAE 행동론 앞글이다. 원논문 · DOI: 10.5281/zenodo.22970747. 이 한국어 글은 공개된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독자에게 어떤 행동을 명령하거나 인물의 자격을 인증하지 않으며, 연작이 어떤 자리에서 누구에게 말하는지 밝힌다.

원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