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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대지가 읽는 『장자』 · 제6편

해마다 칼을 바꾸는 사람도 이미 좋은 요리사다―포정해우

일을 잘해 낸다는 것과, 자신을 덜 소모한다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Han Qin ·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아 해체합니다. 손이 닿고 어깨가 기대며, 발을 딛고 무릎을 대는 동작에 칼 들어가는 소리까지 박자가 맞습니다. 문혜군은 넋을 잃고 봅니다. 기술이 이런 경지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묻자, 포정은 칼을 내려놓습니다. 그런데 대답은 칼을 더 빨리 쓰는 요령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입니다. 기술보다 더 나아간 것입니다.

이어 세 종류의 요리사와, 세 종류의 칼이 맞는 운명을 말합니다.

훌륭한 요리사는 해마다 칼을 바꿉니다.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요리사는 달마다 바꿉니다. 내리쳐 꺾기 때문입니다. 제 칼은 열아홉 해가 되었고 소를 수천 마리 잡았지만, 날은 숫돌에서 막 간 것과 같습니다.

좋은 요리사는 일 년에 칼 하나, 보통 요리사는 한 달에 하나를 바꿉니다. 포정은 열아홉 해 동안 수천 마리를 해체하고도 날이 방금 간 것 같습니다. 기억하기 쉬운 것은 열아홉 해입니다. 저는 그 앞에서 멈추고 싶습니다. 해마다 바꾼다는 사람도 이미 좋은 요리사입니다.

1. 서투른 사람을 비웃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연습하면 능숙해진다는 이야기로 읽기 쉽습니다. 남은 덜 연습했고 포정은 많이 연습했으니 더 잘한다, 그러니 나도 격려 삼아 계속 연습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연습도 물론 이야기 안에 있습니다. 포정 자신이 서툴렀다가 익숙해진 과정을 말합니다. 그러나 ‘좋은 요리사’라는 말은 초보에게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알려 줍니다. 이미 잘하는 사람도 자신을 계속 소모하는 대가로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일은 끝났고, 남들은 잘했다고 하며, 실제 능력도 있습니다. 다만 한 차례를 마칠 때마다 무언가 조금 줄었다는 것은 자신만 압니다.

그때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하는 것이 문제를 짚은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이미 유능해서, 맞지 않는 방식을 오래 버티며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칼이 무뎌지기 전까지 바깥에서 보이는 것은 완수된 일뿐입니다.

2. 칼은 무엇에 부딪히는가

포정은 좋은 요리사는 자르고 보통 요리사는 내리쳐 꺾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방법은 소에게 원래 있는 결이나 빈틈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본래의 이치에 기대어 큰 틈을 가르고, 넓게 빈 곳으로 이끌며, 원래 그러한 모양을 따릅니다.

여기서 ‘천리’를 처음부터 신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는 균일한 덩어리 하나가 아닙니다. 이어진 곳, 빈 곳, 억지로 지나갈 수 없는 곳은 요리사가 그때 정한 것이 아닙니다. 칼이 날카롭고 쥔 사람의 결심이 강해도, 뼈가 그의 뜻에 맞춰 위치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포정은 일 자체에도 알아야 할 길이 있음을 봅니다. 솜씨를 가져오되, 그 소와 상관없이 짜 온 경로에 소를 맞추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물론 실험 보고서는 아닙니다. 세 요리사가 같은 양의 일을 했다고 쓰지 않았으므로, 피로가 모두 방법 때문이고 일의 양과 무관하다고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열아홉 해 된 칼은 과장되고도 선명한 그림입니다. 어떤 마모는 일을 많이 해서만이 아니라, 무리해서 부딪힐 곳이 아닌데도 같은 곳에 거듭 부딪히는 데서 생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3. 어려운 곳에서는 오히려 느려진다

한 번 더 읽을 만한 곳은 칼이 막힘없이 나아가는 대목보다, 그 뒤에 오는 ‘그렇기는 하지만’입니다.

그렇더라도 힘줄과 뼈가 얽힌 곳에 이를 때마다, 어렵다는 것을 알아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합니다. 눈길을 멈추고 행동을 늦추며, 칼은 아주 조금만 움직입니다.

그토록 익숙해도 힘줄과 뼈가 얽힌 난처한 곳에서는 경계하고, 눈길을 모으고, 움직임을 늦춰 칼을 살짝 씁니다. ‘고수는 힘들지 않다’는 모습을 지키려고 경계를 숨기지 않습니다. 임금 앞에서 여기는 어렵기에 조심한다고 인정합니다. 우리가 때로 능숙함을 생각하는 방식과 정반대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가서는 안 되는 곳을 더 일찍 아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타났을 때 거센 한 번의 힘으로 덮어 버리려고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일터에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숫자가 맞지 않고, 인수인계가 아무리 해도 분명하지 않고, 팀이 몇 주째 야근으로 넘어갑니다. 계속 재촉하면 오늘은 통과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멈춰서 어디가 막혔는지 물으려면, 원래 속도가 더는 맞지 않다고 인정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매듭에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도구를 바꾸고 사람을 더하고 목표를 고치거나 일을 멈춰야 할 수도 있습니다. 포정 이야기는 모든 것이 풀린다고 보장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어렵다는 것이 자동으로 더 힘을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알려 줍니다.

4. 태어날 때부터 보인 것이 아니다

포정도 처음에는 눈에 소 한 마리 전체만 보였다고 합니다. 삼 년 뒤에는 완전한 겉모양만 보지 않게 되었고, 이제 와서야 하나씩 계산하지 않는 듯한 대응에 이르렀습니다. 삼 년은 이야기가 그에게 준 경험이지 모든 학습자에게 주는 기한이 아닙니다. 전체를 보면 낮은 단계라는 뜻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어디에 주목할지 실제로 모릅니다. 익숙해져야 뒤섞여 있던 것들이 조금씩 나뉩니다. 우리는 마지막의 여유는 배우고 싶어도, 그 앞에 오래 구분하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그 시간을 건너뛰고 ‘자연에 따름’을 배울 필요 없음으로 삼으면, 따라가는 것은 일의 결이 아니라 가장 익숙한 자기 습관일 가능성이 큽니다. 포정의 몸이 길을 아는 것은 구체적인 저항을 몸으로 겪어 왔기 때문이지, 기술은 필요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뒤로 보지 않게 된 것도 아닙니다. 어려운 곳에서는 ‘눈길을 멈춥니다’. 익숙함이 눈앞의 새 상황에 끊길 여지를 여전히 둡니다.

5. 보이지 않는 칼 가는 소리

제가 익숙한 일터에는 근무시간표에 쓰기 어려운 피로가 있습니다. 시작한 지 석 달인데 여전히 매주 왜 할 만한 일인지 설명합니다. 팀마다 목표가 달라 같은 계획을 이리저리 고치는데, 하나씩은 이해되어도 합치면 실현할 수 없습니다.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부딪치는 요구가 잠시나마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힘의 상당 부분을 쓰고 있습니다. 주간 보고에는 ‘진행 중’이라고 적히고, 칼날에는 다른 기록이 남습니다.

쉬어도 소용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오래 과부하가 이어지면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소득, 건강, 돌봄 책임도 마음가짐만 바꾼다고 사라지지 않는 제약입니다. 버티지 못하는 사람에게 포정을 들며 흐름을 따를 줄 모른다고 나무라는 것은, 칼에 압력을 하나 더하는 일입니다. 다만 휴식과 별도로 내일 돌아갈 곳도 볼 수 있습니다. 결정권은 없는데 책임져야 하는 자리가 그대로인가요? 아무도 골라 덜어 내려고 하지 않는 요구들도 그대로인가요? 그렇다면 체력 회복만으로 업무 배치의 변화를 대신하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일을 배치할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충돌하는 요구를 모두 유지하면서, 동료에게 막힘없이 해내는 법을 익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6. 이야기를 듣는 이는 칼을 쥐지 않았다

마지막에 입을 여는 사람은 문혜군입니다.

훌륭하구나. 포정의 말을 듣고 삶을 기르는 법을 얻었도다.

그는 요리사의 생산량을 늘릴 방법이 아니라 삶을 기르는 법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방향 전환이 중요합니다. 권한 있는 사람이 남의 뛰어난 기술을 보면, 더 많은 사람도 이렇게 하게 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묻기 쉽습니다. 그러나 문혜군은 방금 들은 말을 자기 삶에 돌립니다. 그 역시 닳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판단과 욕망, 일을 짜는 방식도, 거듭 자신을 억지로 부딪혀야 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독자는 임금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좋은 이야기를 먼저 남에게 가져가 ‘너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려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내 삶에서 무엇에 거듭 부딪히는지 먼저 보고, 그 뒤에 남에게 줄 조언을 생각하는 순서입니다.

7. 사람을 소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

관리나 협력, 친밀한 관계에 이 이야기를 빌릴 때는 남겨 둘 경계가 있습니다. 소의 힘줄과 뼈는 포정에게 답하지 않지만 사람은 답합니다. 동료의 싫다는 말은 각도만 잘 잡으면 통과할 수 있는 ‘저항’이 아닙니다. 자기 목표가 있을 수 있고, 당신의 목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 사이에서 실제 사정을 존중한다는 말에는 상대의 이유를 듣고 거절을 인정하며 배치를 함께 고치는 일도 들어갑니다. 칼을 더 교묘하게 들이미는 뜻이 아닙니다.

포정의 기술이 도살 자체에 도덕적 의미를 자동으로 부여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야기가 칼로 생명을 보전하는 법을 말하고, 우리가 그것으로 생활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소 역시 그 행동으로 자기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비유가 한 곳을 비춘다고 비추지 못하는 곳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8. 칼을 거두어 넣는다

일을 마친 포정은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만족한 뒤 칼을 잘 간수합니다. 곧바로 다음 소를 앞으로 밀지 않았다는 점도 볼 만합니다. 이야기는 완성에 멈춤을 주고, 도구에는 돌봄과 보관의 순간을 줍니다. 제가 가져가고 싶은 것은 ‘영원히 지치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니라 구체적인 몇 가지 질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난히 지쳤을 때, 정말 일이 많아서 그랬던 부분과 거듭 다시 하고 설명하고 버티느라 그랬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어려운 곳에서 더 주의 깊게 보았나요, 속도만 높였나요? 일을 끝낸 뒤 무엇을 납품했는지만 아니라 일한 사람에게 어떤 상태가 남았는지도 보았나요? 해마다 칼을 바꾸는 사람도 이미 좋은 요리사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소모를 능력 부족 탓으로만 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에 손의 칼을 한번 더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원문과 출처

이 한국어판은 Non Dubito의 중국어 산문 전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장자』 원전 전체를 번역한 것은 아니며, 고문 인용 부분도 여기서는 그 내용을 한국어로 풀어 전합니다. 중국어 원래 페이지에는 고문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기존 영어판 역시 영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썼고, 중국어 간체·번체판에는 전문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례에 빗대거나 거기서 논의를 더 펼친 부분은 이 산문 저자의 해석이지, 원전에 그런 사건까지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문과 해석에 관한 설명

원문과 독법: 「양생주」.

중국어 페이지에는 고문 인용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기존 영어 서술은 이 판을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 이 한국어판에서는 인용의 내용을 한국어로 풀어 전합니다. 현대 사례에 빗대거나 더 펼친 생각은 저자의 해석이며, 원문에 그런 사건까지 따로 기록되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