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읽기
Non Dubito

국가의 전진과 후퇴 · 역사 읽기 · 02

헌법이 통과됐는데, 왜 다시 고쳐야 했을까

남아프리카공화국 · 1990–1997

새로운 다수는 규칙을 쓸 자격과 함께 그 규칙을 심사받는 일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환은 과거의 피해를 예전 방식으로 추궁할 수 없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Han Qin ·

실제 역사를 읽는 에세이입니다. 허구 사례나 현행법 안내, 국가 순위표가 아닙니다. 사료에 기록된 사건, 법원의 법적 판단, 필자의 구조적 해석을 구분합니다. 대화나 속마음을 지어내지 않고, 여러 사람을 합친 가상 인물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1996년 9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는 제헌의회가 이미 가결한 헌법안을 인증하지 않았다. 제헌의회가 투표하지 않아서도, 누가 쓸지 아직 정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5월 8일에 통과된 문안이었지만, 쓴 사람들에게 돌아가 수정을 거쳐야 했다.[1]

이렇게 돌려보낸 일 앞에서 잠시 멈춰 볼 만하다. 헌법을 쓴다면 이미 규칙의 맨 위까지 온 것 아닌가. 그 위에서는 누구를 찾아가야 할까. 더구나 이번 작성자는 인종으로 정치 참여 자격을 나누던 예전 의회가 아니었다. 그 뒤에는 1994년의 보통선거가 있었다.

표는 진짜였고 변화도 진짜였다. 그러나 ‘나에게 쓸 자격이 있다’와 ‘내가 쓴 모든 조항이 그러므로 요건을 충족한다’는 말은 여기서 하나가 되지 않았다.

돌아온 원고를 보자. 쓸모없는 종잇조각도 아니고 판사가 새 다수파를 모욕하려고 내민 물건도 아니다. 헌법안을 돌려보냈다는 것은 미리 합의한 절차가 가장 높은 곳의 결정에 실제로 닿았다는 뜻이다. 닿은 뒤에도 그냥 없던 일로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모든 것을 혼자 끝내지는 않는다

헌법안을 돌려보낸 일을 이해하려면 조금 앞을 봐야 한다. 소수 백인이 전국의 정치권력을 통제하던 체제에서 공동의 선거 자격으로 옮겨 간 과정은, 아무 이견 없는 회의를 한 번 열고 결과를 평온하게 넘겨준 일이 아니었다. 누가 공동의 정치생활에 들어갈지, 미래의 다수파가 새로 얻은 권력을 어떻게 쓸지가 바로 협상의 문제였다.

1993년 임시헌법이 전환의 다리가 되었다. 1994년 1월 승인을 받고 4월 27일 시행되어, 공통의 시민 지위와 인종에 구애받지 않는 선거 자격을 새 제도에 담았다. 1994년 선거로 구성된 양원은 그다음 제헌의회로서 최종 헌법을 만들었다. 임시 장치와 최종 문안이 같은 날 한 책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2]

순서가 중요하다. 전환 협상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미래의 유권자를 영원히 대신할 수 없다. 나중에 선출된 사람들도 표를 얻었다고 협상에서 미리 약속한 조건을 모두 잊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조건 가운데 하나가 최종 헌법은 임시헌법의 서른네 가지 헌법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71조는 제헌의회가 통과시킨 문안을 헌법재판소의 인증에 부치도록 했다. 인증 없이는 법적 효력이 생길 수 없었다. 재판소는 원칙에 맞는지를 심사하는 곳이지, 판사 취향대로 헌법을 하나 더 쓰는 곳이 아니었다.[2]

판사에게 판단할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원칙을 구체적인 조항에 적용하려면 해석이 필요하고 이견도 생긴다. 다만 그 판단에 다시 물을 자리를 마련했다. 어느 합의를 근거로 어느 조항이 부족하다고 하는가. 단지 이쪽이 더 좋아 보인다는 말로 모든 정치적 선택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할 수는 없다.

이 과정을 ‘법원이 마침내 국민 위에 섰다’고 쓰면 난제를 너무 쉽게 처리한다. 심사 권한도 전환기의 합의에서 나왔다. 재판소가 스스로 그 권한을 선언한 것이 아니다. 새로 선출된 다수파 역시 헌법을 쓸 자격을 잃지 않았다. 한 자격이 다른 자격을 삼키지 않도록 둘을 함께 놓았다.

처음으로 전국 선거에서 평등한 자격을 얻은 사람에게 이것은 국가기관의 배치만이 아니다. 자신의 표가 누가 결정할지를 실제로 바꿔야 한다. 동시에 자신이 표를 주지 않은 편이나 다음에 소수가 되는 편도 공동 규칙의 보호 안에 남을지 알아야 한다. 어떤 문제의 다수파가 다른 문제에서는 소수파일 수 있다.

그렇다고 1994년 모든 유권자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쓸 수는 없다. 투표 기록이 각자의 속마음을 내놓지는 않는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참여 자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고, 전환 제도가 그 변화를 ‘이제 다수의 말은 무엇이든 통한다’로 줄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돌아간 것은 자격이 아니라 고쳐야 할 원고였다

1996년 첫 인증 절차에서는 정당과 단체, 개인이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었다. 재판소가 들은 것은 제헌의회가 자기 문안을 설명하는 말만이 아니었다. 9월의 결론은 일부 내용이 미리 합의한 원칙과 맞지 않으므로 전체 문안은 아직 인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1]

이때 ‘부족하다’는 말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또 하나의 권위 있는 말투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부 행위와 공금 사용을 살피는 공공보호관과 감사총장의 독립성이 충분히 보장되는지가 심사의 일부였다. 정부를 살피는 기관이라는 이름만으로, 조사받는 쪽이 그 담당자를 쉽게 밀어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정안은 관련 임명과 해임의 문턱을 높였다. 국민의회가 임명을 추천하려면 적어도 의원 60%의 지지가, 해임을 요구하려면 적어도 3분의 2의 지지가 필요했다. 해임 자체에도 법정 사유와 조사 절차가 적용되었다. 12월 판결은 이 변경으로 해당 독립성 요건이 충족되었다고 판단했다.[3]

이 숫자가 어디에서나 통하는 처방은 아니다. 문턱을 높이면 교착이 생길 수도 있고, 후보를 누가 제시하는지, 조사를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도 결과는 달라진다. 눈여겨볼 것은 이번 수정이 겨냥한 문제다. 정부를 살피는 자리는 정부가 조사받기를 원하는 때에만 안정적으로 남을 수 있어서는 안 된다.

변화 전부를 재판소가 혼자 ‘아니오’라고 한 덕분으로 돌릴 수도 없다. 원고가 돌아왔는데 작성자가 무시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재판소가 언제든 인증 기준을 바꿀 수 있었어도 달랐을 것이다. 실제로는 제헌의회가 수정하고 다시 제출했고, 재판소가 12월 4일 수정 문안을 인증했다. 최종 헌법의 주요 부분은 1997년 2월 4일 시행되었다.[3][4]

어떤 제약은 자격도 다수도 역사적 정당성도 갖춘 결정자가 정말 멈춰 서야 할 때에야 작동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고치라는 요구를 받은 쪽은 참여할 권한도 없는 누군가가 아니었다. 이미 제헌 자격을 얻은 의회였다.

그렇다고 재판소의 이후 모든 판단이 저절로 옳아지는 것도 아니다. 독립 심사의 의미는 영원히 틀리지 않을 주인으로 갈아타는 데 있지 않다. 결정을 내린 쪽만 그 결정을 설명하고 인정하게 두지 않는 데 있다. 설명이 타당한지는 독자가 하나씩 살필 수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최종 헌법은 국가기관에만 무대를 주지 않았다. 제38조는 권리가 침해되거나 위협받는 사람이 구제를 청구할 수 있게 하고, 직접 행동할 수 없는 사람을 대신하거나 집단·공익·협회를 위해 소송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각각의 요건은 여전히 충족해야 하지만, 문제를 가져올 사람의 범위를 직접 피해자 자신만 말할 수 있는 경우보다 넓혔다.[5]

길을 조문에 쓰는 것과 그 길에 나설 돈과 시간, 법률적 도움을 갖추는 것은 다르다. 입구가 넓어졌음을 정확히 인정하면서도 모두가 똑같이 쉽게 도움받게 되었다고 미리 선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종이 위의 개방이 실제 처지를 대신 설명해 버린다.

자격을 얻은 사람도, 예전 길로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여기서 끝내면 이야기는 매끄럽다. 배제에서 보통선거로, 다수에서 제약받는 다수로, 권리에서 구제로. 그러나 같은 1996년에는 다른 사건도 있었다. 함께 놓고 봐야 이 역사가 만족스러운 도식으로만 남지 않는다.

7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진실·화해 제도의 사면 조항에 대한 위헌 주장을 기각했다. 신청인에는 아자니아 인민조직과 비코, 므셍게(Mxenge), 리베이루(Ribeiro) 등 피살자들의 유족이 있었다. 이들은 성공한 이야기 뒤에 붙는 추상적인 ‘사회적 비용’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을 가진 사건 당사자였다.[6]

쟁점은 가해자를 처벌할 것인가만이 아니었다. 해당 사면을 받은 사람은 관련 형사책임과 민사상 배상책임도 면제될 수 있었다. 국가와 다른 관련 주체의 민사책임도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공동생활이 세워지는 동안, 어떤 사람들이 과거의 피해를 추궁하던 길은 이 장치 안에서 제한되었다.[6]

사면이 화해라는 한마디로 모두에게 자동 발급된 것도 아니다. 법은 관련 사실을 전부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행위가 정치적 목적과 연결되었는지 살피도록 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임무에는 피해자가 경험을 진술하게 하는 일, 행방을 밝히는 일, 배상을 권고하는 일도 포함되었다. 사면이라는 말에서 조건과 절차, 개별 결정을 함께 생략하면 안 된다.[7]

그러나 진실을 밝히고 배상을 권고하는 것과, 기존의 소송·배상청구 자격을 보존하는 것은 여전히 다른 것이다. 누군가는 이 교환이 평화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왜 교환의 손실 일부를 이미 상처받은 사람들이 주로 떠안는지 계속 물을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를 인정한다고 두 번째 질문을 작게 쓸 필요는 없다.

재판소는 임시헌법의 화해 관련 합의가 이런 사면을 허용한다고 보았다. 동시에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희생이 대등하지 않다는 점도 정면으로 인정했다. 법적 답은 내놓았지만, 모든 유족이 받아들여야 할 감정적 결말까지 대신 정한 판결은 아니었다.[6]

따라서 새 나라가 이제 모든 경로에서 사람의 질문을 더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처음 평등한 전국 선거 자격을 얻은 사람이 있고, 공익을 대표해 소송할 수 있게 된 사람도 있다. 같은 시기에 다른 사람의 기존 책임 추궁은 전환기의 타협에 제한되었다. 한 나라 안의 이 변화들을 평균 내 점수 하나로 만들면 설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제한을 이유로 앞선 자격 변화가 전부 가짜였다고 해도 안 된다. 역사를 또 너무 반듯하게 정리한다. 배제는 정말 깨졌고 보장도 늘었다. 잃은 것도 실제였으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요구는 남아 있다.

1997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 완료라는 도장을 찍을 필요는 없다. 헌법은 빈곤과 사별의 고통, 과거가 남긴 불평등이 해결되었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이후의 사람이 계속 행동하고 질문할 근거를 몇 가지 주었다. 그 근거가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는 이후의 사람들이 겪어야 했다.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할 수 있다. 하나는 돌려보내져 수정되고 다시 제출된 헌법안이다. 다른 하나는 유족들이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청구다. 앞의 것은 새로운 다수가 어떻게 제약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뒤의 것은 새 공동생활을 누구도 추가 비용을 치르지 않은 선물처럼 묘사하지 못하게 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국가가 나아갔는지 물러났는지 조금 더 천천히 묻고 싶어질지 모른다. 누가 마침내 참여할 수 있게 되었는가. 누가 답을 요구할 수 있는가. 어떤 질문은 실제 결정을 바꾸고, 어떤 질문은 공동생활이라는 이름 아래 제한되는가. 질문들이 결론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결론이 그 안의 사람들을 쉽게 건너뛰지 못하게 한다.

사료와 읽기 안내

현재 공개된 중국어 역사 에세이 전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입니다. 기존 영어판도 독립 집필되었고 중국어 간체·번체판에는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실제 역사를 다루며 허구 사례, 현행법 안내, 국가 순위표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사료의 기록과 법적 판단, 필자의 구조적 해석은 구분하고, 대화나 속마음 또는 여러 사람을 합친 인물을 지어내지 않았습니다. 번호가 붙은 사료와 각 자료의 이용 범위는 아래에 제시합니다. 철학적 배경 논문 · EN / 中文은 원하는 독자가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질문의 관점이지 역사적 증거를 대신하는 자료는 아닙니다.

  1. 첫 헌법 인증 판결 · CCT23/96, 1996년 9월 6일

    헌법재판소 기록으로, 전체 판결과 인증받지 못한 1996년 5월 8일 문안을 포함한다. 서론과 인증의 틀, 결론을 참조했다. 인증 거부는 이미 시행 중인 최종 헌법의 폐지가 아니다.

  2. 임시헌법 · 1993년 제200호 법

    첫머리에 승인·시행 날짜가 있다. 제5–6절은 시민 지위와 선거 자격, 제68–73절은 제헌 절차를 다룬다. 특히 제71절을 참조하며, 부표 4에 서른네 가지 원칙이 열거되어 있다.

  3. 수정 문안 인증 판결 · CCT37/96, 1996년 12월 4일

    서두 제1–8문단과 기관 독립성에 관한 제130–144문단, 특히 임명·해임 문턱을 다루는 제134문단을 참조했다. 구체적 역사 설계를 읽는 것이지, 특정 득표 기준을 독립성의 보편적 충분조건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4.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 · 헌법 안내

    1996년 12월 4일 인증과 1997년 2월 4일 시행을 확인한다. 본문은 주요 조항을 가리키며 모든 조항이 한꺼번에 시행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5. 199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 · 제38조

    자신의 이익, 대리, 집단, 공익, 협회 등을 위한 권리 구제의 소송 자격을 다룬다. 이 조항만으로 소송의 절차 조건이나 현실의 장벽이 없어졌다고 추론하지 않는다.

  6. AZAPO 등 대 대통령 사건 · CCT17/96, 1996년 7월 25일

    첫머리에 당사자와 날짜가 있다. 제6–10문단은 책임과 신청인 주장, 제33–50문단은 사면의 결과를 다루며 제50문단은 희생이 불균등하다고 명시한다. 합헌 판결이 모든 피해자의 동의는 아니다.

  7. 1995년 제34호 국민통합·화해촉진법 · 제3조·제20조

    정부 안내와 원 관보 PDF다. 위원회의 임무와 사면 요건, 특히 사실의 전면 공개와 정치적 목적의 관련성을 읽는다. 사면은 조건에 따른 개별 판단이지, 과거 모든 잘못을 한꺼번에 지우는 결정이 아니다.

선택해서 읽는 철학적 배경 논문 · EN / 中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