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 SAE 가치론
SAE 가치론 · 한국어 독립 재구성판
02 / 08

가치의 원천

Han Qin (秦汉)

원천은 좋아하는 대상이 아니다

가치의 원천은 어떤 종류의 구체적 내용이 목적 가치의 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구조적 바탕이다. 노래, 가족, 연구, 신앙 같은 대상 자체도 아니고, 행동을 밀어붙이는 심리적 충동도 아니다. 원천은 자리를 만들 뿐, 무엇이 그 자리에 들어오고 언제 내 것이 되는지까지 결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일을 아끼는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원천에서 출발할 수 있다. 반대로 비슷한 구조를 지닌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선택이 같다고 해서 두 사람의 내면 구조까지 같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네 줄로 그린 원천

첫째는 경험의 방향성이다. 좋고 나쁜 경험을 기억하고 내다보면서 무엇을 이어 가고, 되풀이하고, 피할지 정하는 자리다. 둘째는 타인에게 삼켜지지 않는 자기의 경계와 환원 불가능성, 곧 13DD의 자기다. 셋째는 스스로 세운 목적과 그 목적이 삶에서 펼쳐지는 것, 14DD의 자기목적 주체다. 넷째는 바깥을 향한다. 타자 역시 대체할 수 없는 목적이라는 원천, 15DD다.

뒤의 줄은 앞의 줄을 지우지 않고 하나씩 더해진다. 네 줄에는 발생 순서가 있지만 가치 순위는 없다. 쓸 수 있는 차원이 넓어지는 것과 목적 지위가 높아지는 것은 다르다. 15DD를 연 사람이 13DD에 머문 사람보다 ‘더 사람답게 값진’ 것은 아니다.

‘내 가치’라는 공통선

네 줄을 관통하는 것은 여항이나 가장 높은 단계가 아니라 ‘내 가치’다. 완성된 주체에게 그것은 자기 법 안에서 내용을 받아들이고, 묻고,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직 그 능력이 자라는 아이에게는 먼저, 목적 지위와 가치의 원천을 바깥에서 수여하거나 대신 써 줄 수 없다는 뜻이다.

보호자는 아이가 말할 조건, 다른 가능성을 만날 조건, 나중에 고쳐 선택할 조건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삶을 아이의 최종 가치로 봉인할 수는 없다. 당분간 대신 돌보는 권한은 한 사람의 인생을 끝까지 대신 쓰는 권한이 아니다.

평평한 가치축과 움직이는 축

가치축은 평평하다. 어느 원천도 다른 원천보다 위에 있지 않다. 반면 새로운 구조 차원이 열리는 동역학축에는 방향이 있다. 두 축을 섞으면 성장이 곧 인간 서열이 된다. 새 차원은 주체가 1인칭으로 받아들일 때만 열린다. 사회나 역사가 대신 열어 줄 수 없다.

14DD에서 15DD로 향하는 다리는 이런 한계에서 시작한다. ‘목적이다’라는 지위는 나만의 사유물이 아니다. 실제 타자가 나타났을 때, 그는 내가 인정해 주어서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15DD는 이미 성립한 사실, 곧 타자도 목적이라는 점을 내 쪽에서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