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가 아닌 것
진주를 돌려보낸 사람
아주 아름다운 상자에 진주가 들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내고 상자만 가진 뒤 진주는 돌려주었다. 오래된 ‘매독환주’ 이야기다. 그가 상자를 좋아한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나무와 향, 세공과 장식은 실제로 비교할 수 있고 가격도 매길 수 있다. 문제는 상자를 재던 자로 진주까지 재려 했다는 데 있다.
가격이 생기려면 적어도 두 사람과 교환, 그리고 함께 쓰는 척도가 필요하다. 우주에 단 한 명의 주체만 있다고 해 보자. 거래 상대가 없으니 그에게 가격은 아예 정의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목적이며 자기 삶의 가치를 지닌다. 가격과 목적 가치는 높고 낮은 두 단계가 아니라, 성립 조건부터 다른 두 가지다.
행동의 방향과 사람의 가치를 섞지 않기
권력론은 한 사람의 개입이 상대의 가능성을 넓히는지, 아니면 닫아 버리는지를 읽는다. 이것은 행동의 방향에 대한 평가다. 그 행동을 당한 사람의 몸값을 매기는 일이 아니다. 억압받은 사람이 덜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가치가 줄지 않기 때문에 억압을 잘못된 방향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여항도 사람 안쪽에 숨은 보물은 아니다. 여항은 어떤 개념과 설명도 대상을 남김없이 담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값을 매길 수 없으니 값이 무한히 비싸다’고 말하면 다시 가격표를 붙인 셈이다. 무가는 가격의 최고점이 아니라 가격이라는 함수가 닿지 않는 자리다.
구조는 있지만 서열은 없다
주체의 구조가 펼쳐지면서 가치가 생길 수 있는 원천도 달라진다. 그러나 나중에 열린 원천이 먼저 있던 원천보다 더 고귀하다는 뜻은 아니다. 생겨나는 순서와 가치의 등급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 많은 차원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활동의 폭이 넓다는 뜻이지, 더 값비싼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마다 좋다고 하면 그만’도 아니다. 취향은 바뀌고, 틀릴 수 있고, 남에게 붙잡힐 수도 있다. 어떤 내용이 내 가치가 되려면 내가 자기 법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말하고, 필요하면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리즈의 기준은 두 문장을 함께 붙든다. 구조는 있다. 그러나 서열은 없다.
세 종류의 가치를 제자리에 놓기
가격은 교환과 비교를 읽는 시장의 값이다. 방향 가치는 어떤 행위가 상대의 가능성을 열거나 닫는지를 읽는다. 목적 가치는 한 주체가 목적이라는 지위, 그리고 외부 척도로 대체하거나 환산하거나 다 읽어 낼 수 없는 자기 가치를 가리킨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도 여기서 다시 읽을 수 있다. 쓸모가 없는 사람이 더 고귀하다는 뜻이 아니다. 한 사람을 그가 제공하는 기능의 목록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돕고 필요한 사람이 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그 일이 자기 법에서 나온 것인지, 타인의 필요가 내 가치의 저자가 되었는지는 구별해야 한다.